(제 63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10


산원의 의료일군들은 바쁜 사람들이다. 언제나 많은 일감이 꼬리를 물고있으므로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오랜 시간 축하의 인사말을 나눌 새가 없다.

모두가 각기 자기 초소로 갔다. 강학선은 당비서와 같이 보조청사로 가고 권일학은 소생과로 걸음을 옮겼으며 서범천은 복강경수술장으로 뛰여올라갔다.

서범천이 헤여져가는 사람들의 등뒤에 대고 소리쳤다.

《오늘 저녁엔 강과장선생의 집에 가야 한다는것을 잊지 마십시오. 경철이 어머니가 한상 잘 차리겠다고 약속했다는걸!》

하경옥이만은 입술을 깨물고 원장방으로 향했다. 아까 수술장에 들어가기 전 임선해원장이 자기를 찾았었다는것을 잊지 않고있었던것이다.

하경옥은 눈을 들수 없었다. 오늘 자리를 비워두고 외출했던 그 일때문에 원장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리라는것을 너무도 잘 알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임선해원장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하선생, 수고했어요. 그런데 내가 왜 불렀는지 알겠어요?》

《예, 알고있습니다. 그리구 무슨 처벌이든 다 받겠습니다.》

임선해원장은 소리내여 웃었다.

《무슨 처벌이든 다 받겠다?》

《예.》

기여들어가는 목소리였다. 기술부원장이 그에게 한 말, 절대 용서할수 없다고 한것이 그래 무엇이란 말인가.

임선해원장이 의미있게 웃으며 또 물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있었다면서요? 환자인가요? 아니면 애인?…》

하경옥은 도전적으로 머리를 쳐들었다. 다음순간 가슴속에 쓸어드는 밀물과 같은 격정에 못이겨 부르짖었다.

《애인이라구요? 누가 그렇게 말합니까? 기술부원장선생이 그렇게 단정했습니까?》

《아니.…》

《전 그래도 요즘에 와선 기술부원장선생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보고있었습니다. 차고 랭랭한 사람이라고만 여겨왔던 기술부원장선생이 진심으로 복강경수술의 책임을 지고 나서는것을 보면서, 현장에 내려가있는 강학선과장을 데려오는것을 보면서… 그리고 어떤 우연한 일로 그의 마음속 진정을 알게 되면서 그야말로 참된 인간애를 지닌 훌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하선생, 너무 흥분하는것 같군요.》

하경옥은 머리를 저으며 재빨리 말을 이었다.

《애인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이제 겨우 다섯살난 애인… 예. 그 애는 바로 기술부원장선생의 아들애입니다. 기술부원장선생이 급한 환자때문에 수술장에 들어가있을 때 그 어린 아들은 아버지를 찾아 헛소리치며 고열에 떠있었습니다. 오지 않는 아버지를 기다리다가, 이 세상에 없는 엄마를 찾고 부르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졌는데… 그래 기술부원장선생은 아버지로서 그 어린 아들에게 해준것이 무엇입니까. 그 어린것이 급성페염으로 쓰러졌댔다는것을 알고나 있습니까?…》

북받치는 오열에 몸을 떨었다. 가슴에 사무쳐오는 련민과 아픔에 얼굴을 싸쥐며 흐느끼기 시작했다.

《음-》

자리에서 일어난 임선해원장이 하경옥에게 다가와 그의 어깨를 꼭 그러안았다. 그리고는 눈물에 젖은 그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의미있게 미소했다.

《하선생은 그를 사랑하고있군요.》

《예?…》

《기술부원장선생을 사랑하고있단 말이예요.》

《제가요?》

《그래요.》

하경옥은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임선해원장을 바라보았다. 미소를 짓고있는 원장, 지금 그는 큰 병원을 책임지고있는 원장선생이 아니라 서로의 눈물과 괴로움을 허물없이 터놓는 다정한 녀인, 모든것을 리해하고 공감하며 진정으로 믿어주는 그런 다정하고 친근한 벗이였다.

임선해원장이 소리없이 웃으며 말했다.

《그래요. 선생은 지금 그를 사랑하고있어요, 미처 자신은 깨닫지 못할수도 있지만.…》

《아니, 아닙니다! 난 아직 한번도 그런 생각을 해본적이 없어요. 정말입니다.》

원장은 머리를 저었다.

《하선생, 두고보라니까. 그건 그렇구… 내 보건대 기술부원장선생도 하선생을 남달리 생각하고있는것 같더군요.》

《?!…》

눈앞이 아뜩해졌다. 갑자기 들이닥친 폭풍에 온몸이 산산이 부서지는것만 같았다. 그것은 기쁨도 눈물도 아니였다. 소스라치는 격동과 온몸을 뒤흔들어놓는 충격… 모든것이 정지된듯 싶었다. 자기가 꿈을 꾸고있는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왜 그래요?》

원장의 물음에 그는 가까스로 속삭이였다.

《그건… 무슨 말인가요, 예?》

원장은 또 웃었다.

《그는 하선생이 어린 정철이때문에 집에 갔었다는것도 알고있어요.》

《예?》

《하지만 무슨 일이 있었다 해도 초소를 리탈할 리유는 없다면서… 이런 일이 두번다시 있어서는 안되기에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며 정말 가슴아파했어요. 그러면서 이번 일은 자기가 맡고있는 과들에서 제도와 질서를 엄격히 세우지 못한것때문에 일어난 일이라고, 그래서 자기가 처벌을 받겠다고 정식 제기했어요.》

또다시 몰아쳐오는 충격에 하경옥은 아직 눈물로 마르지 않은 두손을 마주잡고 비틀었다.

《자기가 처벌을 받는다구요? 어쩜 그럴수가?!…》

《하선생을… 사랑하기때문이지요.》

하경옥은 가쁘게 숨을 내쉬며 속삭이였다.

《뭐라구요?… 사랑? 그런 말을 그렇게 쉽게 하다니?… 원장선생님, 그게 뭘가요, 무엇이 사랑입니까?》

임선해원장은 정색해졌다. 무엇이 사랑입니까? 사실 《무엇》이란 어떤 구체적인 사물과 현상을 찍어서 말하는것이다. 그런데 지금 하경옥은 흔히 말하듯 사랑이란 무엇인가고 개념적으로 묻는것이 아니라 《무엇이》 사랑인가고 구체적으로 찍어서 말해줄것을 요구하고있는것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밝은 해살이 스며드는 창가로 다가가며 혼자소리처럼 조용히 말했다.

《무엇이 사랑인가고?… 그걸 내가 어떻게 한마디로 다 말할수 있겠어요. 아마 이럴 때 우리 당비서동지라면 전쟁시기에 있은 일을 꺼들면서 잘 말해줄수도 있겠지만…》

《?!》

하경옥은 손을 들어 눈굽을 씻었다. 무엇인가 새로운것이, 한없이 크고 뜨겁고 빛나는것이 자기의 가슴을 꽉 채우는것을 느꼈다.

이 세상 제일 크고 뜨거운것, 가장 밝고 눈부신것, 그것은 하늘에서 빛나는 태양이다. 그 무엇에도 견줄수 없고 비길데 없는 거대한 불덩어리, 사랑도 그처럼 크고 뜨거울수 있을가?… 하경옥은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이 서있는 창가를 바라보았다. 저 멀리 태양이 눈부신 빛을 뿌려주는 창공에서 눈길을 떼지 않으며 가슴가득 차오르는 경건한 심정에 눈시울을 떨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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