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4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11


밝은 해살이 비쳐들고있다. 소생과에 들려 중환자들을 돌아본 권일학은 가벼운 마음으로 해빛이 비쳐드는 2층로대로 나갔다.

붐비는 거리,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바삐 걸음을 재촉하며 서두르고있다. 그에 경쟁하듯 무궤도전차는 경쾌하게 경적을 울리며 거리를 질주하고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청높은 웃음소리, 꽃다발을 든 한패의 젊은이들이 웃고 떠들며 산원정문으로 밀려오고있다. 팔을 내저으며 황급히 막아서는 경비원아바이, 또다시 터지는 웃음소리, 모든것이 좋았다. 따뜻한 해빛도, 밝은 거리도, 청높은 저 웃음소리도.…

그 밝은 웃음과 거리의 활기를 새삼스레 느끼는 권일학이였다. 그는 수술장에서 쌓였던 피곤이 어디론가 가뭇없이 사라지는것을 느끼며 가슴을 쭉 펴고 힘껏 숨을 내쉬였다.

그리고 속으로 조용히 뇌였다.

《고맙소, 하선생!…》

무엇때문에 하경옥이 고맙게 느껴지는것인지?… 그는 구태여 그것을 따져보려 하지 않았다. 정철이의 밝게 웃는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전화로 침이 마르도록 정철이를 돌봐준 녀의사선생에 대하여 칭찬하던 말이 귀전에 쟁쟁하였다.

아름다운 생활, 눈앞에 흘러가는 이 모든것이 그 처녀로 하여 새롭게 느껴지고있다는것을 그는 알고있었다. 기쁨과 즐거움만이 아니라 간혹 아픔도 있고 눈물도 있고 오해도 없지 않은 우리의 생활! 생활은 그 모든것을 하나의 큰 물결에 실어 줄기차게 변함없이 흘러가고있는것이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권일학은 등뒤에서 나는 조심스러운 인기척소리에 몸을 돌렸다.

《저, 기술부원장선생님…》

웬 청년이 머리를 떨구고 엉거주춤 서있었다.

한순간 권일학의 얼굴이 놀란듯 굳어졌다.

《아니, 이게 위인섭선생이 아니요?》

《…》

권일학이 반갑게 다가갔으나 위인섭은 여전히 한자리에서 눈길을 떨구고있었다. 처녀들처럼 해말쑥한 얼굴, 멋부리며 빗어넘긴 머리, 잘 손질한 고급구두… 그는 여전히 멋쟁이였다. 하지만 그 해맑은 얼굴에 비껴있는 번민의 흔적은 감출수 없었다. 총명과 지혜를 뽐내던 거만한 눈길, 남을 깔보는데 습관되였던 오만한 표정… 그러나 지금 그에게서는 남달리 우쭐렁거리던 전날의 그 모든 위세와 자부심을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인섭선생, 왜 여기 숨어있는거요?》

《저…》 그는 기여들어가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수술장앞에서 기다렸었는데 모두가 강학선과장선생을 축하해주는 말을 들으면서도 전… 나서지 못했습니다.》

권일학은 웃는 눈길로 그를 지켜보다가 조용히 물었다.

《그러니 다시 돌아왔겠지?》

《예.》

《그럴줄 알았소, 알았다니까. 자, 그럼 같이 당비서동지한테 가자구.》

여전히 쭈밋거리는 그를 끌고 당비서방에 갔을 때 림숙정은 젊은 군관과 마주서있었다.

림숙정이 웃는 얼굴로 권일학을 돌아보았다.

《마침 왔구만. 기술부원장, 글쎄 이 사람이 부대로 돌아가면서 꼭 기술부원장을 만나야겠다지 않나. 우리 현희를 업고온 그 포병중대장이네.》

《아, 그렇습니까?》

젊은 군관이 허리를 쭉 펴며 거수경례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군관 안순남입니다!》

권일학은 언제인가 자기에게 두고간 그의 편지를 상기하며 안순남의 두손을 힘껏 잡았다.

《군관동무, 우린 다 알고있소. 우리 산원에서 탄원한 현희를… 그 특류영예군인녀성을 등에 업고 왔다는걸 말이요. 정말 고맙습니다. 우리모두의 인사를 받아주시오.》

군관 안순남이 차렷자세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전 오늘 여기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정말 많은것을 느꼈습니다. 최전연에서 실어온 군인가족 세쌍둥이에 대한 수술전투를 보고 여기서도 매일같이 전투가 벌어지고있다는걸 알게 됐습니다. 참된 의료일군들에 대해서도 알게 되고…》

안순남이 림숙정에게로 몸을 돌리며 목멘 소리로 계속했다.

《비서동지, 이렇듯 훌륭한 의사선생님들에게 우리 현희동무를 맡긴다고 생각하니 전 마음을 푹 놓겠습니다. 오늘 당장 부대로 돌아가겠습니다. 돌아가서 우리 병사들에게 죄다 말해주겠습니다.》

림숙정이 환하게 웃었다.

《마음놓게. 현희의 치료는 이 기술부원장이 다 생각해두고있네. 이제 그 애의 하반신마비도 꼭 완치시켜놓을거야. 앞으로는 자네들의 귀여운 애기두 가슴에 안겨줄거구.… 그렇게 믿고 부대에 돌아가 보고해도 돼.》

《알겠습니다! 그렇게 보고하겠습니다.》

결패있게 군복앞자락을 잡아당긴 안순남은 가슴을 쭉 펴며 뒤로 한발 물러섰다. 이어 힘있게 모자채양옆으로 손을 들어올리며 당비서와 기술부원장 그리고 방에 들어와있던 위인섭에게도 패기있게, 멋들어지게 거수경례를 했다.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전연군인들의 진심으로 되는 경례를 드립니다!》

당황한것은 위인섭이였다. 저도 모르게 뒤걸음치다가 문에 부딪치자 어깨를 움츠리며 한쪽구석으로 비켜섰다.

《안녕히 계십시오!》

《잘 가시오, 군관동무.》

안순남을 문밖에까지 바래주고난 림숙정이 가늘게 좁혀뜬 눈으로 위인섭을 바라보며 권일학에게 물었다.

《여기 이 사람은 누구요?》

권일학은 당비서가 우정 그런다는것을 잘 알고있으므로 역시 롱조로 대답했다.

《예, 한때 우리 산원에서 도망갔던 위인섭이라는 사람입니다.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돌아왔답니다.》

《오- 뒤걸음치기를 잘하던 그 괴짜로구만.》

권일학이 소리내여 웃으며 위인섭의 등을 당비서앞으로 떠밀었다.

《예, 그 괴짜가 왔습니다.》

위인섭이 울먹거렸다.

《비서동지, 제가… 잘못했습니다. 남의 웃음거리가 되는것도 모르고 거꾸로 가는것을 그 어떤 재기처럼 떠들면서 그만… 사실 뒤걸음쳐가면 어디로 가겠습니까. 너무 늦게야 알았지만 제갈길을 못 가고 뒤걸음치니 가는 곳마다 거절당하고 밀려나고… 그래서 더 괴로웠습니다. 정말 우리 기술부원장선생이 아니였다면, 두번세번 이 못난걸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제가 무엇이 될번 했습니까. 정말 그걸 생각하면…》

《음, 이제야 인생이란 뒤걸음치는게 아니라는걸 깨달았단 말이지?…》

《예, 비서동지.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나한테 절을 하는거나? 여기 기술부원장한테 해야지. 언제봐도 반대로 한다니까.》

《아닙니다,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부원장선생이 이미 다 말해주었습니다. 비서동지가 이 못난걸 도와줘야 한다구 그리고 원장선생두 저를 꼭 찾아와야 한다고 몇번이나 부탁했다는걸 말입니다.》

림숙정은 허허 웃었다.

《좋은 사람들이 많아. 그걸 잊지 말라구.》

《예, 잊지 않겠습니다.》

권일학은 점도록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았다. 앞으로 더 활기를 띠게 될 체외수정연구실… 서범천이 복강경수술을 성공시킨것처럼 위인섭이도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반드시 체외수정을 성공시킬것이다.

그러면 눈물로 호소하던 선우금숙환자, 그토록 어린애들을 위해 자기를 다 바치는 그 녀성도 소원대로 어머니가 될것이다. 새 생명만이 아니라 자기자신도 어머니로 태여나게 될것이다!

얼마나 많은 녀인들이 이 집에서 어머니로 태여났던가. 두 생명이 태여나고 두 생명을 지키는 여기 평양산원, 아름다운 인간들이 자기를 다 바쳐가고있는 이 평양산원은 앞으로도 우리 녀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녀성종합의료봉사기지로 자기의 역할을 더욱 훌륭히 수행하게 될것이다.

그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있는 림숙정에게 말했다.

《비서동지, 그럼 전 가서 체외수정문제를 토론하겠습니다.》

《그래주오. 꼭 성공해야 돼.》

《념려마십시오, 비서동지.》

한순간 그는 당비서의 기대어린 눈빛을 마주보면서 자기가 너무 쉽게 대답하는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헐치 않은 일이다. 오랜 시일이 걸릴수도 있다.

그때 권일학은 1년도 못되여 영영 어머니가 될 꿈을 잃었던 선우금숙녀성이 체외수정으로 귀여운 애기를 낳게 되리라는것을 그리고 평양산원의 기술집단이 새로운 최첨단의학기술인 줄기세포연구에 전력을 다하게 되리라는것을 아직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는 문쪽으로 나가며 위인섭의 팔을 끄당기였다.

《인섭선생도 제창 자기 맡은 일에 착수해야지?》

《저… 그래도 될가요?》

등뒤에서 림숙정이 소리쳤다.

《저런! 아직두 뒤걸음쳐가겠다는건가?》

《아, 아닙니다. 비서동지.》

권일학은 웃으며 그를 문밖으로 밀어내였다.

《어서 앞서가오. 홍정순실장이 좋아할거요. 참, 그리구 오늘 저녁 강학선과장선생이 우리모두를 초청한다는데 선생도 늦지 않도록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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