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3 장

13


박원작이 삭탈관직을 당하고 서민으로 되였다는 소문은 어지를 받은 그날로 온 병마도감에 짜했다.

병마도감은 벌둥지를 쑤셔놓은듯 하였다. 남권부가 병마도감사로 출세했다는것을 안 장공인들은 병마도감이 망했다고 울분을 터치였다.

박원작은 어지를 받은 그날 오후부터 관복을 벗어놓고 련장에 나가 일손을 잡았다.

불시에 닥친 도저히 예상치 못했던 이런 엄청난 사변은 그로 하여금 마음의 안정을 잃게 하였고 그러자 일시 기세를 숙였던 배아픔이 다시 용을 써댔다.

그의 배아픔은 남권부가 련장에 나타나서 이젠 천균노를 만들지 않으니 큰 철덕에 불을 지피지 말라는 령을 내린 다음 극도에 달하였다.

박원작은 그만 배를 그러안고 련장뜨락에 쓰러졌다.

놀란 장공인들이 그를 업어다 별관의 방에 눕히였다.

이 소식을 전해받은 해연이 사색이 되여 박원작을 찾아왔다.

해연의 병구완으로 박원작은 다음날에야 배아픔을 잊을수 있었다. 허나 그대신 머리가 쑤셔났다. 그것이 마음의 상처탓인줄 박원작은 잘 알고있었다.

남이 씌워준 중죄인이라는 루명을 쓰고 종보다도 못한 가련한 신세가 되였으니 이대로 살아서는 무엇하랴.

눈물을 머금고 미음을 떠먹여주는 해연을 보느라니 마음이 더욱 아파났다.

녀인이란 사내를 잘못 만나면 평생 고생이다. 가난으로 고생하는건 대개 수다한 녀인들이 겪는것이니 그런 고생은 얼마든지 참을수 있는것이다.

참을수 없는건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고 제딴에 나라를 위한 큰일을 하려다가 졸지에 죽지 부러진 수리개꼴이 된 사내를 남정네로 둔 녀인이 겪게 되는 고생이다. 그런 고생은 극도의 가난에 견딜수 없는 심신의 고통이 동반되는것이여서 삶이라고는 말할수 없다.

해연이 바로 그런 고생을 당하게 하였으니 내 죽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것이다.

이런 마음의 괴로움으로 하여 박원작은 다음날에도 일어나지 못하였다.

박원작이 병상에 누워있은지 여러날이 지난 한낮무렵에 근달을 위시한 병마도감의 행수들이 병문안을 왔다.

얼굴에 근심이 가득한 행수들을 본 박원작은 더욱 가슴이 쓰리여 눈물부터 앞세웠다.

며칠사이에 산송장처럼 피골이 상접해진 박원작을 바라보며 행수들은 눈물을 흘렸다.

근달이 힘겹게 일어나앉은 박원작의 두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병마도감사님! 힘을 내소이다. 저희들은 누가 뭐라하든 오로지 병마도감사님의 뜻을 따르겠소이다.》

박원작은 힘겹게 고개를 저었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도 몹시 가늘었다.

《그러면 안되오. 난 중죄인이니 다시는 병마도감사라고 부르지 마오. 그래야 행수들도 무사할수 있소.》

근달이 부르짖었다.

《아니올시다. 우리 장공인들은 병마도감사님이 나라앞에 티끌만한 잘못도 짓지 않았음을 잘 알고있소이다. 오직 하나 나라를 위하여 세상에서 으뜸가는 병기를 만들려 애쓰는 병마도감사님 같은 충신이 어찌 제손으로 만든 병기를 가지고 돈벌이를 생각이나 할수 있겠나이까.

이건 다 어느 간신이 꾸며낸것인데 그걸 잘 알면서도 병마도감사님은 왜 자기를 스스로 죄인이라 탓하는것이오이까?》

그 말에 박원작의 두눈이 번쩍했다.

왜 진작 자기의 청백함을 까밝힐 생각을 못했을가. 이게 정녕 나라위한 큰뜻을 품었다는 사람이 할 태도인가.

근달의 목소리가 다시금 방안을 울렸다.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병마도감사님의 뜻을 받들어 나라에 크게 소용되는 천균노를 기어이 만들어내겠소이다.》

박원작은 자기도 놀라울만큼 온몸에서 기력이 솟구침을 느꼈다.

천균노만 만들수 있다면 이 몸을 열백번 바친다한들 무슨 한이 있으랴.

박원작은 여러 행수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맙소.》

이번에는 돌석이 박원작의 앞에 꿇어앉아 입을 뗐다.

《병마도감사님은 화약의 비방을 하나도 념려마소이다. 소인이 죽으면 죽었지 그 비방만은 발설하지 않겠소이다.》

박원작은 가슴이 뭉클하여 눈물을 흘리였다.

물어보나마나 남권부가 화약의 비방을 내놓으라고 돌석이를 못살게 굴었을것이다.

장공인들이 입을 모았다.

《우린 누가 뭐라든 병마도감사님을 믿소이다.》

그 말이 박원작의 가슴을 쿵! 하고 울려주었다.

가슴속의 세찬 충격은 그순간 박원작으로 하여금 보다 새로운것을 불쑥 깨달아지게 하는것이였다.

처음에는 장공인들을 밥벌이때문에 시키는 일이나 받아하는 막사람이라고 하찮게 여겼다. 그러다 다년간 지내보면서 고심도 함께 하고 땀도 함께 흘려보니 장공인들도 나라를 위하고저하는 애국충정의 마음을 안고사는 의로운 사람임을 알았다.

허나 그들과 꼭같은 처지에 놓인 오늘의 시점에서 새로운 눈으로 이들을 대하고보니 장공인들이야말로 나라를 아끼고 나라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서슴지 않고 바칠수 있는 그 누구보다도 충의로운 대장부들임이 불쑥 깨달아졌다.

아, 이들이 지닌 나라위한 마음과 절개는 진정 벼슬아치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수 없는 지극히 갸륵하고 지극히 훌륭한것임을 왜 진작 몰랐을가.

그것을 환히 깨닫고보니 자기로서도 꿈만같이 여겨져온 그 모든 성과들이 바로 이들, 서경사람들을 떠나서는 바랄수 없는것이였음을 흉벽을 치며 절감하게 된다.

이들이 아니였다면 아무리 병마도감의 주인이라한들 변변한 병쟁기 하나 새롭게 내놓지 못했을것이다.

화전, 수질노, 팔우노, 뢰등석포, 수질구궁노… 그 하나하나에 장공인들의 피땀만이 아닌 무수한 심혈도 바쳐져있으니 《신기한 병기》는 바로 그들의것이였음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장하고 의로운 일을 할수 있도록 추동하였을가. 박달조선의 혼과 동방강국 고구려의 장한 기상이 어려있는 서경의 기운이 그들로 하여금 벼슬아치들과는 비길수 없는 애국충정을 북돋아주었을가.

이런 감흥은 박원작에게 련속 새로운것을 또 깨달아지게 하였다.

그것은 짙은 안개가 말끔히 걷혀져서 깨끗이 드러난 강산의 형체를 보는것처럼은 아니더라도 어렴풋한것보다는 더 선명한것이였다.

선조들이 대대손손 물려준 겨레의 삶의 터전을 다지고 가꾸느라 한몸 바쳐 일할적에 흘리는 땀방울들이 바로 애국충정의 마음을 분출시킨것이니라.

옳다. 그게다. 백성들의 피땀이 슴배인 재물로 살아가는 벼슬아치들로서는 죽을 때 가서도 깨닫지 못할 진리가 바로 이 아닌가.

아, 내 주위에 이런 훌륭한 장공인들이 가득한데 이 박원작이 없다한들 천균노가 어찌 자기의 억센 웅자를 드러내지 못하겠는가.

이미 천균노는 장공인들의것이 되였다.

박원작은 돌석이의 손을 꼭 부여잡으며 부르짖었다.

《난 서경사람들을 믿소. 서경사람들을 말이요!》

돌석은 박원작의 품에 얼굴을 묻으며 《병마도감사님!―》하고 목메여 불렀다.

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최충이 들어섰다. 그의 뒤로 리순일과 남권부가 따라 들어왔다.

최충은 황급히 꿇어엎드리는 행수들을 둘러보며 나직이 일렀다.

《일어들 나오. 어서!》

행수들이 주섬주섬 일어서자 최충은 아직도 꿇어엎드린채 일어설념을 못하는 박원작을 부둥켜안았다.

《이 사람아!…》

최충의 목소리는 몹시 갈려있었다. 최충은 장성공사의 그 바쁜 속에서도 만사전페하고 평로진의 본영을 떠나 곧장 여기로 찾아온것이였다.

최충의 손이 흐느껴우는 박원작의 몸을 어루만졌다. 바싹 여윈 그의 몸을 느끼였을 때 최충은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이 사람아, 몸이 이 지경이 되도록 왜 제몸을 돌보지 않았나말일세.… 자네가 할일은 아름찬데 몸을 생각지 않으니 어쩔셈인가.》

그 말에 행수들은 감동되여 눈물로 얼굴을 적시였다. 최충의 얼굴에서도 눈물이 흐르고있었다.

남권부만이 뱁새눈이 되여가지고 행수들에게 어서 나가라고 눈화살을 쏘아댔다.

그 눈화살에 쫓기운 행수들이 방을 나서자 이윽하여 최충은 눈굽을 닦고나서 남권부에게로 얼굴을 돌렸다.

그의 눈길에서 시퍼런 불길같은것을 느낀 남권부는 속이 한줌만해졌다.

《남공은 듣거라. 박공은 나라에 둘도 없는 재사이니 이 사람의 신상에 조금이라도 변이 생긴다면 내 결단코 그대를 용서하지 않겠다.》

그 말이 남권부에게는 지옥사자의 호령으로 들렸다.

병마도감은 리자연에게가 아니라 북계군을 통솔하는 저 최충의 줌안에 들어있다. 그러니 최충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가는 어떤 날벼락이 떨어질지 모르는것이다. 더우기 부월을 가지고 변방에 나온 병마사에게는 먼저 형을 실행하고 그다음 그 실태를 임금에게 알려도 되는 큰 권한이 부여되여있다.

박원작이로 말하면 최충이 오래전부터 손때를 묻혀 키운 수제자이고 또 그의 령만을 따라야 하는 수하이다. 반대로 이 남권부는 최충의 정적인 리자연과 한패이다.

남권부는 비로소 자기가 두개의 큰 쇠바퀴가 맞퉁기며 돌아가는 그 틈새에 끼운 신세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니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편에서도 저편에서도 치여죽이자고 할것이다. 이런 판국에서 살아남자면 최충과 리자연에게 다같이 발라맞추는 수다.

남권부는 아첨기를 가득 짓고 허리를 굽신댔다.

《아무렴 여부가 있겠소이까. 소인은 판병마사님의 수하이니 그 분부를 명심불망하겠소이다.》

최충은 쓰겁게 웃으며 남권부에게 일렀다.

《그대는 종전처럼 하던 일을 맡아하라. 천균노를 만드는 일은 이전처럼 박공에게 맡기겠다.》

남권부는 두눈이 올롱해서 목청을 돋구었다.

《천균노를 만들다니요? 천균노를 만들지 말라는건 중추원의 지원사의 뜻이고 성상의 뜻이라고도 하오이다.》

최충은 어이가 없어 한동안 남권부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저런 속물따위에게 마음이 어질고 착하며 병기를 만드는 재주 또한 뛰여났다고 치하하는 어지가 내렸다는것은 후세토록 통탄할 일이 아닐수 없다. 이건 다 천균노를 만들어내는 일을 백방으로 방해하는 리자연이 그런 어지가 내려지도록 작당질을 하였기때문이다.

일신의 권세를 위해 못된짓도 가리지 않는 리자연의 턱밑에 붙어 저 살 궁리만 하는 저따위에게 나라의 큰 병마도감을 맡기였으니 대성통탄할 일이다.

최충은 여기로 오기에 앞서 박원작의 무죄를 알리는 표문을 임금에게 올리였다.

표문에서 최충은 박원작을 복직시켜서 천균노를 만들자고 하였다.

최충은 그와 같은 글을 또하나 써서 서눌시중에게도 보냈다.

조정에 리자연이 틀고앉아있어서 당장 박원작을 복직시키기는 힘들어도 천균노를 만드는 일만은 중단말라는 어지가 내려올것이다. 아무리 리자연이 못되게 굴어도 임금의 안목을 전부 가리우지는 못할것이다.

《남공은 아직도 내 말뜻을 모르겠는가?》

추상같이 울리는 최충의 호령에 남권부는 몸을 떨었다.

분명 선견지명이 뛰여났다는 최충은 박원작의 일을 가지고 임금에게 간하는 글을 올렸을것이다. 그러했기에 어지를 받은 사람에게 그를 뒤집는 령을 당당히 내릴것이다.

남권부는 급히 꿇어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명심하겠소이다. 소인은 그전처럼 일하겠소이다.》

최충은 리순일에게 분부했다.

《병마부사는 염초장에도 군사를 파해 파수를 세워야겠소.》

《알겠소이다.》

최충은 직접 박원작을 부축하여 자리에 눕히였다.

《박공! 내 당분간 여기에 남아 천균노를 만드는 일을 돌봐주겠으니 자넨 몸조리에 전심해야겠네.》

그 말에 박원작은 감격했다면 남권부는 자기에게 차례진 병마도감사란 자리는 단지 명색뿐임을 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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