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종 장

 

나라가 처음 일어날 때는

이렇게 신기한 일 있는 법이로다

-서사시 《동명왕편》 중에서-


세월은 빨리도 흘렀다.

우리의 주인공들이 주몽을 따라 남행길에 오른 때로부터 어느덧 두해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기원전 277년(갑신년)의 어느날.

날씨는 무척 좋았다. 눈부신 해빛은 맑고 푸른 하늘에서 쏟아져내리고 흰구름은 뭉게뭉게 피여났다.

소리없이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 가슴속에 젖어드는 그윽한 꽃향기… 사람들은 이해의 천기가 류달리 상쾌한 기분을 자아낸다고 좋아들 하였다.

그래서인지 오랜 세월의 풍운에 부대껴오면서 낡고 퇴색한 구려왕실의 고색창연한 궁궐들과 전각들, 우아한 루각들과 기묘한 석등들도 오늘따라 별로 생기를 머금은듯 하였다.

붉은 비단에 《고구려》라는 글발이 새겨진 기발이 드리워있는 붉은 단이 특히 더 그러하였다.

아름다운 무늬들로 장식된 주홍빛란간과 오르내리는 계단을 둔 단우에는 아롱다롱한 천발과 화려한 축등이 걸려있었는데 천발과 축등의 댕기들은 바람따라 춤을 추며 금빛을 뿌렸다.

사람들은 붉은 단을 중심으로 하여 궁전뜨락을 메우고있었다. 푸른 갑옷을 입고 뿔나팔을 손에 든 악사들은 고루에 자리를 잡았고 조정의 원로들로서 머리가 흰 대신들과 젊은 관리들은 긴장한 표정으로 뜨락에 서있었다.

그들은 누구라 할것 없이 허리에 오자도를 차고 돈띠를 둘렀다. 문관은 머리에 책(모자의 일종)을 쓰고 여러가지 색갈의 옷을 입었고 무관은 새깃을 꽂은 절풍에 저고리와 바지를 입었거나 번쩍이는 투구에 갑옷을 떨쳐입었다.

어딜 보나 뜨락에는 자못 정숙한 침묵이 흘렀다.

그들모두는 지금 가장 숙연한 마음으로 새 나라의 탄생을 알리는 의식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오래동안 병고에 시달려오던 구려국왕이 자신의 명이 다하였다는것을 느끼게 된것은 얼마전의 일이였다.

인생이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기마련이지만 사람이 세상과 하직한다는것은 사실 가장 슬픈 일이였다.

조정대신들은 왕의 서글픔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나라의 동쪽에 단을 새로 쌓고 초제(별에 지내는 제사)를 지내도록 윤허해달라고 아뢰였다.

그러나 왕은 조용히 머리를 저었다.

《사람의 명은 하늘에 매였거늘 제를 지낸다고 수가 늘겠느냐.》

그리고는 부마를 가까이 불러들이라고 어지를 내렸다. 주몽이 침전에 이르러 엎드려 절을 하자 왕은 나직이 말하였다.

《천하가 바야흐로 어지러운 이때에 그대와 같은 영걸에게 나라를 맡기니 마음을 놓겠노라.

과인은 부마의 뜻하는 바를 알고있다. 5부의 군사와 백성을 거느리고 산천의 험고함에 의거하여 평생에 배운바를 크게 떨쳐 장한 이름을 만대에 남기도록 하라!》

《대왕전하, 황송하기 이를데 없소이다.》

주몽이 무릎을 꿇고앉아 유명을 받자 왕의 얼굴에는 기꺼운 표정이 그려졌다. 조종의 대가 주몽과 같은 호걸로 이어질것을 생각하니 죽어도 유한이 없을것 같았다.

그는 조정의 원로대신들을 둘러보며 다시 말을 꺼냈다.

《내가 불행히도 아들이 없어 후사가 늘 걱정이더니 하늘이 나에게 부마를 점지해주었다. 이로하여 나의 무거운 짐은 어질고 재주있는 부마에게 맡기려 하거니와 너희들 여러 신하들은 마음과 힘을 한가지로 하여 부마를 보좌하되 부디 내 뜻을 어기지 않도록 해라!》

《알아들었소이다.》

원로대신들은 한목소리로 대답하며 절을 하였다.

그날부터 사흘후 왕은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그리하여 오늘 궁궐뜨락에서는 구려의 대통을 이어 왕위에 오른 주몽이 새 나라를 선포하는 의식을 거행하게 되였던것이였다.…

별안간 고루에서 두둥!- 하고 고요한 정적을 깨뜨리며 북이 울었다. 그 시각을 기다리고있던 악사들은 멋을 부리듯 일시에 뒤로 몸을 제끼며 뿔나팔을 들어올렸다.

《뚜우!-》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뿔나팔소리가 구성지게 울렸다.

단군겨레의 새 나라의 탄생을 알리는 장엄한 메아리였다.

뿔나팔소리가 련달아 울리는 가운데 왕의 상징인 절기와 천자의 상징인 금부월(금도끼)을 받쳐든 의장병들이 붉은 단을 향하여 걸음을 옮겼다.

하나와 같이 끌끌한 젊은이들이였다.

그들이 붉은 단을 둘러싸고 사람들을 향해 돌아서자 다시한번 뚜- 하고 뿔나팔소리가 울렸다.

궁전뜨락은 대바람 경건하고 숭엄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주몽은 문무관료들과 군사들에게 미소를 지어보이며 천천히 붉은 단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새깃으로 장식한 금관을 쓰고 구름무늬를 수놓은 붉은 비단옷을 입었는데 앞가슴과 깃에 달린 단추모양의 장식품들과 흰 구슬들이 해빛을 받아 령롱한 빛을 뿌렸다.

문무관료들을 굽어보는 그의 두눈은 영특한 지혜로 번득이고 구레나룻이 내려덮인 입가에는 자기가 하는 일이 정당하다는것을 알고있는 사람한테서 볼수 있는 긍지와 자부심이 차넘치고있었다.

소서노와 연나부공주는 주몽의 뒤를 따랐다.

그들은 다같이 금빛이 번쩍이는 머리꽂이와 비녀로 머리를 단장하였다. 소서노는 나이에 어울리게 초록무늬가 박힌 흰 저고리에 누런 등거리를 입었고 그와는 반대로 공주는 누런 저고리에 초록색의 등거리를 입었다.

옷에 장식한 흰 구슬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눈이 부시게 반짝거렸다.

둥!… 둥!… 둥! 건국을 축하하는 북소리는 마치 먼곳에서 울려오는 우뢰마냥 여운을 길게 남기며 지심깊이 울렸다.

오이의 안내를 받아 단에 이른 주몽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고구려》라고 씌여진 기발을 바라보았다.

아, 고구려… 드디여 새 나라가 태여났던것이다.

그에게는 불현듯 흘러온 나날들이 뜨겁게 되새겨졌다.

그 나날엔 기쁨도 슬픔도 있었고 사랑과 증오도 있었으며 목숨을 내대야 하는 위험한 고비를 넘겨야 하는 아슬아슬한 순간도 있었다.

얼마나 많은이들이 새 나라의 성립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바쳤던가? 문득 려송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도 애타게 오빠를 찾던 처녀, 부여에서 돌아오면 인차 오이와 성례를 치르어주자고 그리도 별렀었는데…

이 기쁜 날 려송이 살아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텐가?

주몽은 그들먹이 차오르는 가슴속의 흥분을 지그시 누르며 계단을 올랐다.

주몽이 란간앞에 이르러 자리를 잡자 단아래의 문무관료들은 일제히 한쪽무릎을 꿇고앉으며 절을 하였다.

절이 끝나자 자리에서 일어난 사람들은 또다시 《만세!》하고 웨쳤다. 그는 손을 들어 답례를 보내며 단아래의 사람들을 미더운 눈길로 둘러보았다. 그들속에는 구려의 오랜 원로대신들도 있고 건국을 도와준 연타발도 있었으며 모둔곡에서 사귄 재사와 무골, 묵거도 구려왕실의 무예도감 부위염과 장수로 된 부분노도 있었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오이와 마리, 협보에게서 한동안 머물렀다. 잊을수 없는 추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그의 눈에 매달렸다. 어린시절에 손을 얹으며 고락을 같이하기로 약속하던 일과 산을 넘고 강을 건느며 큰 뜻을 품고 걷고걸은 남행길 그리고 졸본천 둔덕에서 다진 맹약을 지켜온 그 나날들을 어떻게 잊을수 있겠는가.

(아, 귀중한 나의 벗들!)

주몽의 가슴속에 뜨거운 격정이 끓어올랐다.

그는 벗들이 지닌 진실한 사랑과 믿음, 변치 않는 의리야말로 또 하나의 세계를 낳았고 장차 나라를 부강하게 할수 있는 정신적힘의 원천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가장 훌륭한 법전으로 된다고 생각하였다.

환호성이 멎고 궁전뜨락이 조용해지자 주몽은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말하였다.

《듣거라. 일찌기 하늘나라의 자손이신 단군이라는 거룩한이가 있어 나라를 세우고 그 이름을 아침의 나라라는 의미로 〈조선〉 이라 부르게 하였다.

이제 과인도 옛 성인들의 법을 따라 밝은것을 숭상하여 〈구려〉라는 나라이름에 하늘을 상징하는 〈고〉자를 덧붙이려고 한다.

이로써 태양을 숭상하여온 조상의 훌륭한 뜻을 잃지 않을것이요, 단군이 끼친 나라임을 만세에 길이 전하여 갈것이다. 하나의 강토에 온겨레가 모여 서로 싸우는 일이 없이 화목하게 살며 외세가 감히 넘보지 못하는 강국을 세우는것은 우리 대고구려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대업이다. 그대들 여러 신하들은 마땅히 힘과 지혜를 다하여 백성들모두가 동방일각에 높이 솟아 빛나는 〈대고구려〉의 백성임을 긍지와 자랑으로 삼게 할지어다.》

《만세!-》

《대고구려만세!》

새로운 력사의 출발을 알리는 만세의 환호소리는 산을 넘고 들을 지나 온 세상이 다 들으라는듯 하늘가 멀리에로 울려퍼졌다. …


×


기원전 259년 가을.

고구려의 창건자이며 지난 10여년간 비류국, 행인국, 북옥저를 통합하여 강대한 고구려의 기틀을 마련한 시조왕 고주몽은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였다.

등촉을 환히 켜놓은 그의 침전에는 오이, 마리, 협보를 비롯한 원로중신들과 간난신고끝에 고구려로 찾아온 유류왕자가 포복하고앉아 주몽의 병환을 걱정하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기울어져가는 생명의 불꽃인양 빠드득빠드득 심지를 태우며 스러져가는 초대를 이윽히 바라보던 주몽은 병색짙은 눈길을 자기의 아들과 신하들이 있는 곳으로 돌렸다.

《유류야, 이리 가까이 오너라.》

주몽은 신음소리처럼 가는 목소리로 유류를 불렀다.

주몽을 그대로 빼물고 나온듯 거방한 체구며 정기가 뿜어져나오는 새별같은 눈동자를 가진 유류가 주몽의 곁으로 와서 공손히 허리를 굽히였다.

어쩌면 이리도 꼭 같을수 있단 말인가? 분명 그 모습은 십여년전 부여의 왕실목장에서 나라세울 큰 뜻을 키워가던 자기의 모습이였다.

새삼스러운 눈길로 성장한 아들을 바라보던 주몽은 두눈을 감았다가 조용히 아들의 손목을 잡아쥐였다.

《너도 이젠 다 자랐구나.》

주몽은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부왕마마, 무슨 분부시오니까?》

유류는 영민한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주몽은 침상에서 몸을 반쯤 일으키며 맞은편 벽에 높다랗게 걸린 장검을 가리켰다. 생사를 내건 무수히 많은 전장을 함께 헤쳐온 만단사연이 깃든 장검이였다.

《네 저기 걸려있는 장검을 내게 가져다줄수 있느냐?》

《어렵지 않은줄 아오이다.》

유류는 말코지에서 장검을 걸어놓은 끈을 벗겨내여 주몽의 앞으로 가져갔다.

주몽은 이윽토록 장검에서 눈길을 떼지 못하다가 모를 일이라는듯 머리를 기웃거리다 중얼거렸다.

《너의 키가 아무리 크다 한들 칠척을 넘지 못할터인데 어찌 그리 쉽게 구척높이에 걸린 장검을 내리웠느냐?》

너무나 번연한 물음이여서 유류는 물론 신하들도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였다. 죽기 전에 사람은 로망을 한다더니 혹시…

그러나 주몽의 눈빛은 진중하였다.

유류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정중히 수그리며 아뢰였다.

《부왕마마, 소자는 발뒤꿈치를 높이 괴고 두팔을 높이 뻗쳐 장검을 벗겨내였나이다.》

《다른 방법은 없었던고-》

《어찌 다른 방법이 있으리오이까?》

주몽은 그 말에 머리를 끄덕이며 병약한 얼굴에 만족한 웃음을 피웠다.

《태자는 내 말을 명심해 들을지어다.

벽에 걸린 자그마한 검 한자루 내리자 해도 팔과 다리의 도움이 있어야 하거늘 충의로운 신하들의 보필이 없이 어떻게 대고구려국의 오늘이 있으며 래일이 있겠는고.…

아무리 거인이라 할지라도 칠척을 넘기 어렵지만 소인일지라도 두팔을 높이 쳐들면 능히 팔척에 닿으리니 태자는 이를 명심하고 간신을 멀리하고 충신을 가까이하며 그들의 충고를 귀담아들어 자기의 키를 항상 크게 할지니라.》

주몽은 이어 오이와 마리, 협보를 비롯한 개국공신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주몽의 이야기를 듣던 세 신하는 머리를 깊이 숙이며 젖어드는 목소리로 《대왕전하!》하고 목메여 불렀다.

주몽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침전을 내려섰다.

병약하고 쇠잔해진 몸이였건만 휘청거리지 않고 박달나무처럼 꿋꿋했다.

《어서 일어들 서오.》 주몽이 말했다.

그러나 세 신하는 선뜻 일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는 그들을 주몽이 한사람, 한사람 일으켜 세워주었다.

물기가 그렁하니 고인 그들의 모습을 하나하나 일별하던 주몽은 누가 미처 말릴새없이 세 신하앞에 절을 하였다.

《벗들! 고구려가 오늘 이렇게 될수 있은것은 전수히 그대들의 공로요. 그대들이 충의로 받들어주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의 성공을 생각이나 할수 있겠소. 내 오늘은 군주와 신하로서가 아니라 사생동거를 맹약한 형제의 정으로 이 절을 드리는것이니 그대들은 사양치 말고 받아주오. 》

《주몽형!》

주몽의 눈가에도 세 신하의 눈가에도 비오듯 눈물이 쏟아져내렸다.

유류태자도 문무중신들도 소리를 죽여가며 눈물을 흘리였다.

한동안 오이네를 바라보던 주몽은 조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자네들과 옛 시절에 함께 부르던 그 노래소리를 듣고싶구만.》

눈물을 닦은 오이가 낮은 목소리로 부여 말목장시절 부르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저기나 등판은

풀맛이 좋더란다


마리와 협보의 웅글은 목소리가 합쳐졌다.


풀맛이 좋다면

나도야 먹으련다


어서 가자 동트는 저기 저 풀판으로

너도 가고 나도 가고


휘익! 휘익! 휘익!

나도 가고 너도 가고


×


이로써 이야기는 다 끝난셈이다. 그러나 독자들을 위해 우리 주인공들의 그후 이야기를 좀더 쓰려고 한다.

평양의 중심부에서 60여리 떨어진 력포구역 룡산리에 자리잡고있는 동명왕릉에는 두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우에 당대의 이름난 문무관들의 돌조각상들이 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동명왕릉을 개건하도록 하시여 풍운속에 빛을 잃었던 고구려의 옛 모습을 찾아주시였을뿐아니라 동명왕에게 충실하였던 실재한 력사적인물들을 돌로 조각하여 릉앞에 세우도록 하여주시였다. 그리하여 어느 한 개인의 공적보다도 동방의 강국이였던 고구려건국에 이바지한 평범한 사람들, 인민들의 공적이 비로소 세월의 이끼를 털고 력사앞에 내세워지게 되였다.

우리의 건국공신들도 옛 무관들과 문관의 모습으로 왕릉앞에 서있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력사에 남긴 공적을 감회깊이 돌이켜보게 한다.

유감스러운것은 주몽을 도와나선 벗들의 생애와 활동이 구체적인 력사기록으로 남아 후세에 전하여지지 못한것이다.

바로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동기의 하나이다.

그러나 고구려건국후 단편적으로 전하여지는 력사자료속에서 그들의 그후 행적을 어느 정도 짐작할수 있다.

오이는 어렸을 때부터 고락을 같이하기로 한 약속을 지켜 한생을 고구려의 건국과 강성을 위해 바친 사람이였다.

동명왕 6년(기원전 272년) 10월에 고구려는 오이한테 군사를 주어 행인국을 치도록 하였다.

행인국은 태백산(백두산)의 동남쪽에 있는 소국이였다.

당시 고구려는 소금과 수산물을 옥저(함경도일대)지방과의 교역을 통해 얻군 하였는데 그 중간에 있는 행인국은 고구려가 강해지는것이 두려워 자주 통상로를 봉쇄하였다.

동명왕은 여러번 사신을 보내 고구려의 후국이 될것을 권고하였다.

겨레의 성지 태백산에 기치를 꽂고 의기남아들을 불러일으켜 하나된 강대국을 일떠세우려는것은 동명왕이 건국이전부터 품고있던 웅지였다.

마침내 주몽은 오이와 부분노로 하여금 행인국으로 진격하여 항복을 받고 그 지역을 고구려의 성읍으로 만들어버렸다.

이 사실을 《삼국사기》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있다.

《…겨울 10월에 왕이 오이와 부분노를 시켜 태백산 동남방에 있는 행인국을 치고 그 땅을 빼앗아 고을로 만들었다.》

오이는 동명왕이 사망한 후에도 그 아들인 유류왕을 도와 많은 일을 하였다.

당시 오늘의 태자하(료하지류의 하나)일대에는 고구려와 같은 갈래에 속하는 량맥이라는 소국이 있었다.

량맥의 통치자들은 저들의 부귀만을 도모하면서 주변나라들을 통합하려는 고구려를 적대시하고있었다.

이것은 고구려의 강성을 방해하는 하나의 장애물이였다.

오이는 여률왕 10년(기원전 227년)에 2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위풍당당히 량맥으로 짓쳐들어갔다.

그때 그는 칠십이 퍽 넘은 고령이였다. 그러나 백마우에 앉아 청룡도를 잡은 그 모습은 왕년의 그 시절과 조금도 다를바 없었다. 결국 량맥은 고구려에 병합되고말았다.

오이는 무장으로써뿐아니라 평상시 왕을 보좌하면서 나라의 크고작은 정사들을 처리하는데서도 큰 공을 세웠다. 그리하여 그는 무관으로서가 아니라 점찮고 의젓한 문관의 모습으로 동명왕릉앞에 서있다.

마리도 고령에 이르기까지 동명왕과 그 아들을 받들어 공을 세운 사람이였다.

그에 대하여 전하는 력사기록은 거의 없다싶이 하지만 주몽과 함께 남행길을 걸었고 졸본천둔덕에서 맹약을 다졌을뿐아니라 주몽이 사망한 후에도 오이와 함께 량맥을 평정하는데서 공을 세운것으로 미루어 잘 알수 있다.

마리는 오늘도 충신답게 꼬리가 들린 눈을 부릅뜨고 긴 수염을 드리운 믿음직한 모습으로 동명왕릉앞에 서서 옛 주인을 지키고있다.

송양은 고구려에 통합한 첫 소국왕으로서 일생을 마칠 때까지 고구려에 충실한 사람이였다.

고구려가 건국을 선포한 그 이듬해(기원전 276년)여름에 큰비가 내렸다. 이때 비류국의 도성은 완전히 물속에 잠기고 백성들은 집과 재물을 거의나 잃었다.

피해가 너무 막심하여 나라가 더이상 구실을 못할 지경이였다. 비류국의 많은 사람들은 나라를 평안히 잘 다스리는 동명왕에게로 마음이 쏠리였다.

그해 어느날 송양왕은 드디여 민심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여러명의 대신들을 거느리고 동명왕을 찾아간 그는 장하에 엎드려 절을 하며 나라를 바치고 신하가 되기를 간청하였다.

동명왕은 이미 그가 진실한 사람이라는것을 알고있었으므로 그의 청을 쾌히 받아주었다. 그는 비류국을 《다물국》으로, 수도를 《다물도》로 부르도록 한 후 송양을 《다물후》로 봉하였다.

즉 고구려에 속한 작은 소국인 다물국의 왕으로서 종전처럼 자기 나라를 다스리도록 하여주었던것이다.

고구려말에 옛 땅을 회복한것을 《다물》이라고 하기때문에 그 지방의 명칭으로 삼은것이다.

송양은 그후 동명왕의 아들 유류가 태자(왕위를 계승할 아들)로 책봉되였을 때에는 자기의 딸을 왕비로 삼게 하였다. 왕비 송씨는 아들을 낳아 고구려의 대통을 잇게 하였다.

송양은 한때 왕으로 있었으나 동명왕을 따른것으로 하여 주변의 여러 소국들을 통합하는데 좋은 영향을 주었다.

그는 신하로서의 도리를 끝까지 지킨것으로 하여 반듯한 얼굴에 조용한 눈을 가진 부드러운 인물로 형상되여 왕릉앞에 서있다.

그러나 동명왕릉에는 건국공신인 협보의 돌조각상이 세워지지 않았다. 력사책 《삼국사기》에는 그 까닭을 짐작할수 있게 하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전하고있다.

《22년… 12월에 왕이 질산 북쪽에서 사냥하면서 닷새동안이나 돌아오지 않았다.

대보 협보가 전하여 말하기를 〈왕께서 새로 도읍을 옮겨서 백성들이 아직 안착되지 못하였으니 마땅히 치안과 행정사업을 돌보는데 몰두하여야 될것인데 이런것은 생각하지 않고 말을 달려 사냥만 하며 오래동안 돌아오지 않으니 왕께서 만일 허물을 고치고 새로운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나라정사는 거칠어지고 백성들은 흩어져서 선대임금(고주몽)의 업적이 땅바닥에 떨어질것을 저는 두려워합니다.〉고 하였다.

왕이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협보의 관직을 파면하고 관가의 동산을 관리하게 하였더니 협보가 분개하여 남한으로 가버렸다.》

협보 역시 어린시절부터 주몽을 따르면서 건국에 이바지한 사람이였다.

하다면 동명왕의 충신이였던 그가 정말로 유류왕에 대한 원혐을 안고 남쪽으로 떠나갔단 말인가?

수수께끼와도 같은 력사의 이 물음에 우리는 잠시 고구려의 그후 국토통합과정을 통해 해명해보려고 한다.

고주몽이 세상을 떠난 후 고구려의 서북변방은 선비족의 출몰로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선대왕의 대업을 이어 겨레의 나라들을 통합하고 동방에 강대한 봉건국가를 일떠세우려던 고구려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나의 난관이 아닐수 없었다. 하여 대장군 부분노는 선비족을 굴복시킬 기발한 계책을 내놓았다.

그는 선비족내부에 간자를 들여보내 고구려의 군력이란 보잘나위 없고 군주와 장수들은 사냥에만 미쳐 정사를 돌보지 않는다는 헛소문을 내돌렸다. 그러나 고구려의 위상을 잘 아는 선비족들은 그 소문에 반신반의하면서 경계심을 풀지 않고 고구려를 주시하고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 대보 협보가 사냥놀음에만 미친 유류왕에게 충언을 드렸다가 쫓겨나 남쪽으로 내려가는 《충격적인》사건이 벌어졌다. 선비족은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한 후에야 비로소 탕개를 풀고 변방의 방비를 소홀히 하였다. 그로부터 몇달후 유류왕은 부분노를 선봉에 세우고 선비의 소굴을 들이쳐 마침내 고구려에 복속시켰다.

한편 협보가 내려간 남한땅에서는 고주몽의 피를 받은 자손들이 백제라는 소국을 세우고 그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백제는 고구려가 자기들의 부모의 나라임을 세상에 선포하고 여러지방의 소국들을 통합하여 고구려 남쪽변방을 믿음직하게 수호함으로써 고구려의 북방개척과 령토안정에 적지 않게 이바지하였다.

그후 수백년동안 고구려와 백제사이에는 오랜 혈맥관계가 유지되였다.

이 력사적사실의 밑바탕에서 협보가 어떤 역할을 하였겠는가는 독자들의 상상에 맡기려 한다.

력사에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자기의 한목숨까지도 서슴없이 바쳐싸운 무명의 영웅들과 애국충신들이 있는 법이다.

아마도 우리의 주인공들중 한사람인 협보도 그런 충신들중의 한사람이였으리라.

주몽이 사랑하고 아끼던 첫 신하들인 오이와 그의 친구들인 마리, 협보의 도움과 강대한 단군겨레의 나라를 지향하는 백성들의 애국충정이 있어 고구려는 동방의 강대국으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하였다.

사대와 굴종을 몰랐던 고구려는 고조선이 차지했던 땅을 모두 되찾고 국토를 더욱 넓혔으며 백제와 신라를 비롯한 겨레의 나라들을 하나로 통합하기 위한 통일정책을 시종일관 밀고나갔다.

동방의 천년강국 고구려, 그의 국토통일념원은 그의 뒤를 계승한 고려에 의하여 드디여 실현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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