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1


서울의 ㄷ신문사는 어찌나 조용한지 아래층에 있는 편집국에서 누군가 껄껄 웃으며 시외전화를 받는 소리가 이삼층의 모든 방에까지 똑똑히 들렸다. 아침출근후의 부산스러운 첫 모임과 짤막한 잡담이 끝나고 취재하려들 나간 뒤면 간혹 볼수 있는 빈집같은 고요다.

정진수기자는 취재부서의 한 집필실에서 피워문 담배가 다 타기도 전에 짧은 기사 한건을 속필로 거뜬히 끝냈다. 어느 늙은 악덕상인이 복면하고 뛰여든 젊은 강도의 비수에 찔려죽은 사건이였다.

스스로 또 하나의 추악을 빚어낸듯 울적하기만 한 정진수는 외출중인 부장의 큰 책상우에 원고를 던지고 창문에 다가가서 비껴드는 빛발속에 우중충하게 보이는 시가를 내다보았다.

진수의 옆에서 살색이 흐리고 관골이 두드러진 녀기자가 무엇인가 골똘히 쓰다가 옅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무슨 날씨가 이럴가. 출장갈 일이 걱정이네.》

진수는 반응이 없다. 그는 며칠후면 남부윁남으로 떠나게 될 동생을 생각하고있었다. 륙군소위인 그의 동생은 소속부대와 함께 윁남전쟁에 전투부대로 파병되는것이다. 진수에게는 남의 나라 전쟁판에 끌려가야 하는 동생의 신세와 그를 어쩔수없이 놓아보내게 된 자신의 무능력이 안타까왔다. 그는 또 새로운 사건을 찾아 어데인가 나가야 할것이지만 모든 일이 염증이 나고 마뜩지 않았다.

동생 하나 구원하지 못하면서 세상을 론하다니, 게다가 하는 일이란 고작 감추어져있는 어지러운 사건들을 파헤쳐 공개하는따위였다.

그런 놀음에서 가치와 의미를 찾고 글재간을 부리면서 돈푼이나 벌어쥐는 나라는건 도대체 무엇인가? 한달에도 몇번씩이나 가슴앓이처럼 치미는 이 우울증은 그에게서 사색하는 힘과 함께 육체적인 기력마저 앗아가는것이였다. 창가에 놓인 책상귀에 맥없이 걸터앉아 담배를 피워문 진수는 침울한 눈길로 비내리는 시가의 풍경을 바라보고있었다. 비물에 번들거리는 대통로를 달리는 각종 차들이며 우산이나 비옷차림으로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담벽밑에 모여서서 행인들을 바라보는 실업자인듯 한 사나이들, 모두가 부피와 키를 잃은것처럼 납작하게 내려다보였다. 그러나 그들의 머리우에 들쑹날쑹하게 층층이 걸린 무수한 간판들만은 황금의 탐욕적인 혀바닥을 날름거리며 제마끔 자기를 한껏 주장하고있었다. 보험회사며 백화점, 료리집, 약방 등속의 잡다한 건물들에 다닥다닥 걸린 영문, 한문, 조선어로 된 각양한 간판들 틈사이로 분주히 흘러가는 인간들은 목소리도 얼굴도 없는, 다만 습관된 노예의 삶에 급급한 목숨들에 지나지 않았다. 침침한 거리와 골목 어디에나 자본은 보이지 않는 그물을 늘이고 그우에는 간단없이 으르렁거리는 권력의 매서운 눈길이 드리워있었다. 도시는 천백가지 갈망과 울분에 타는 가슴을 차거운 비속에 열어헤친채 눈을 뜨고 악몽을 꾸고있었다.

불안한 계절이였다. 사람들은 누구나 격동하는 정세를 따라 자기들의 고달픈 생활이 어느새 포신과 감옥의 음침한 그늘밑에 든것을 보고 놀라와했다. 그러건말건 통치자들은 복지사회를 건설하지 못한다면 한목숨을 민중의 발밑에 던지겠다던 맹세를 개꿈처럼 저버리고 절대권력을 하늘이 내린 사유재산처럼 휘두르며 제가끔의 전당을 쌓아올리기에 피눈이 되여 날뛰였다.

권력은 재부를 의미했고 자본을 탄 권력은 미친 말떼처럼 민생을 짓밟았다. 어디에나 상실의 아픔이 있었고 고통에 찌프린 얼굴들이 소리없는 울음을 울었다. 누구나 발밑에 함정을 보았고 누구나 희망없는 생활의 전쟁에 지친 피로속에서도 감시하는 독사의 눈초리를 느끼고있었다. 인정은 메말라가고 외세와 매국노들이 빚어내는 타락풍조와 함께 그 부산물인 소시민적근성이 성행했다.

그러나 사회의 깊은 밑바닥으로부터는 설음과 분노가 엉켜서 이룬, 천둥번개를 품은 먹장구름이 끊임없이 떠올라왔다. 충돌과 투쟁은 각양각색이였다. 동방례의지국이라는 미명에 향수를 느끼는 세대와 삼강(三綱)을 세개의 강(江)으로, 오륜(五倫)을 다섯개의 바퀴(올림픽마크)로 착각하고 외국산 망나니생활양식에 빠진 세대가 서로 도끼눈으로 노려보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로동자들과 학생들의 붉은 주먹이 개의 몸뚱아리에 코끼리대가리를 접한듯 한 방독면을 쓴 험상궂은 경찰떼와 맞붙어 격전을 벌리기도 했다.

애국적인 청년학생들과 민중은 67년 봄에 감행된 이른바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서 온갖 협잡과 폭압을 저지른 공화당의 전횡에 항의하여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강력한 시위를 벌렸다. 서울의 거리들은 민중들과 군경들의 싸움으로 소란했다. 겁에 질린 미국인들과 박정희는 뒤흔들리는 통치체제를 강화하려고 매일같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악법의 사슬로 사회를 백겹천겹으로 조이고 비틀어댔다.

이즘에는 민중의 투쟁이 소강상태에 들어가고 거리에서의 충돌도뜸해졌으나 탄압의 흉기는 어디에나 번뜩이고있었다. 주민지구들엔 《특별허가를 받고 산보하러 왔다.》는 사복경찰관들과 정보원들이 인사도 없이 집집의 문을 열어제꼈다. 참으로 용기가 없이는 량심을 고백하거나 진실을 주장하기가 어려운 시국이였다.

진수가 피워문 담배가 다 타도록 울적한 생각을 더듬고있을 때 턱이 뾰족한 혈색좋은 얼굴에 꾀가 어린 세모진 눈이 인상적인 안한수기자가 비물이 뚝뚝 떨어지는 비옷을 벗어들고 들어서며 알려주었다.

《진수, 시골서 자네 어머니가 찾아오셨어. 현관에 계셔.》

어머니라는 말에 가슴이 저려난 진수는 구석에 세워둔 우산을 들고 급히 방을 나섰다.

계단을 달려내려간 그는 어머니가 현관문밖에서 비에 후줄근히 젖은 차림으로 행인들과 차량으로 붐벼대는 포도쪽을 우두커니 바라보고있는것을 보았다. 처량한 모습이였다. 그 모습은 이미 괴로우면 후날을 기대하고 마음이 어두워지면 오랜 고목이라도 찾아가서 불행을 제발 가셔달라고 열렬히 기원하던, 그런대로 능동적이고 다감하던 모습도 아니였다. 그것은 벌써 삶이란 알고보니 설음과 고뇌뿐이여서 무슨 불행이건 저항할 길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인 어리멍청한 모습이였다. 이런 모습을 보는 진수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죄를 진듯 가슴이 뭉클해지는것을 느꼈다.

《어머니! 언제 오셨습니까?》

윁남으로 떠난다는 작은아들을 리별의 역두에서나마 만나보려고 찾아온 리씨는 흠칫 놀라 돌아보더니 비명같은 나지막한 환성을 지르며 달려와서 아들의 손목을 쥐고 반가와 어쩔바를 몰라했다.

《막 오는 길이다. 그래, 모두 별탈없니? 인수가 윁남인지 불이 붙는 먼 나라로 싸움하러 간다니, 어찌겠니!…》

이러면서도 리씨는 삼십대의 장년인 진수가 아직 위태로운 철부지여서 어데 다친데라도 없는지 알아보려고나 하는듯 눈과 손으로 그의 몸을 어루더듬었다.

밖으로부터 여러명의 기자들이 왁작하니 떠들며 그들곁을 지나 들어가고 그뒤로 차에서 내린 사십대의 사나이가 환한 풍채로 거들먹거리며 들어섰다. 신문사의 론설위원에 평론가이며 몇개의 사회단체들에서도 중추로 활약하는 량성도라는 꽤 유명짜한 인물이였다.

그는 지나가다말고 말을 걸었다.

《어머니신가요?》

《그렇습니다.》

진수가 대답하자 량성도는 코허리에 걸린 안경을 손가락으로 밀어올리며 리씨에게 덕담을 했다.

《반갑습니다. 훌륭한 아들을 두셔서 얼마나 좋으시겠습니까. 이사람은 재주가 너무 많아서 흘리며 다니는것이 탈이랍니다.》

리씨는 손을 모아쥐고 각근히 인사를 했다. 량성도가 안으로 들어가자 진수는 우산을 펴들고 어머니와 함께 현관을 나섰다.

중키에 어깨가 쩍 벌어진 진수는 단정하게 생긴 입언저리가 어머니를 닮았을뿐 아버지를 닮아 길죽하고 거무슥한 큰 얼굴은 어머니의 둥그스름하고 관골이 솟은 얼굴과는 대조를 이루고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에건 몰두하기 잘하고 풍부한 직감력을 바탕으로 늘 사색하기 좋아하는 점은 젊은 시절의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것이였다.

진수는 동생 인수가 몇시간 틈을 내여 자기 집에 와있다는 소식을 알려 어머니를 기쁘게 했다. 리씨는 무서운 혼잡을 이룬 렬차안에서 손짐을 도적맞혔다고 하면서 몇번이나 한탄했다.

진수가 아담한 자기의 단층양옥의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며 어머니의 도착을 알리자 그의 처인 동그스름한 맑은 얼굴에 순하게 삼시울진 눈이 인상적인 송문희와 놀러 온 처제인 이쁜 얼굴에 표정이 당돌하고 어덴가 들떠보이는 송설희가 달려나와 진수의 어머니에게 인사를 하였다. 뒤미처 키가 후리후리하고 어머니를 닮아 관골이 솟은 얼굴이 우울해보이는 동생 인수도 군복을 잡아다리며 복도에 나왔는데 그는 어머니를 보는 순간 히죽이 웃기는 했으나 즐거움보다는 마지못해 무슨 의무를 따르는듯 한 태도였다. 그런데도 리씨는 다른 사람들에겐 마음을 줄 짬도 없는듯 인수를 붙안고 눈물을 짰다. 무조건적인 모성애의 열광이였다.

한순간의 법석이 지나자 모두들 방에 들어가 앉았다. 행주치마를 두르고 감색나이론수건으로 뒤머리를 가볍게 동인, 이목구비가 단아한 문희가 비를 맞은 시어머니를 념려하여 세타를 권하며 말했다.

《바꿔입으세요. 아버님은 편안하세요?》

리씨는 세타를 한사코 사양하며 호사스러워보이는 며느리앞에서 송구스러워했다.

《령감은 농사가 씨원치 않아 늘 걱정이구 늘 분주하지.》

리씨는 괴춤에서 사탕곽을 끄집어내여 방구석에 놓으며 손자를 찾았다.

《재일이는 놀러 나갔는가. 그새 많이 컸겠지?》

《네, 인제 다섯살밖에 안되는 애가 글쎄 어찌나 장난이 세찬지… 어둡기 전엔 들어오질 않아요.》

이렇게 대답하는 문희는 시어머니에게 무엇으로나 기쁨을 드리고싶은 생각으로 가득찬 얼굴이다.

진수가 어두운 얼굴로 담배만 빨아대는 동생에게 물었다.

《그래, 윁남으론 글피 떠나니?》

《네, 일요일 저녁에.》

메마른 대답이였다. 그들형제는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만나면 웬일인지 어떤 넘을수 없는 강이라도 사이에 둔듯 마음의 소통이 별로 없었다. 오래전부터 서로 떨어져 살아온 그들은 생활일반이나 취미거리에 대해서도 터놓고 이야기해본 일이 별로 없었고 신념이나 주장같은것에 대해선 더욱 그러했다.

《어쩌문 좋겠니?》

리씨가 작은아들의 손을 만지며 큰아들에게 하소연하였다.

《남들은 좋건싫건 다 이 하늘아래서 딩구는데 어째 인수가 꼭 그 무서운 불속에 끌려가야 한단 말이냐. 글쎄, 듣자니 어떤 집들에서는 자식을 빼여돌렸다는데… 우린 무슨 수가 없겠니, 엉?》

진수는 대답을 못했다. 윁남파병이라는 그처럼 예리하고 복잡한 문제를 한마디로 단순화하면서도 그 본질을 찌르는 어머니가 놀라와 보였다. 그는 생각했다.

(참, 어머니들에게서 아들을 떼여내여 남양의 불속에 던지는 이 파병이란 조직된 만행이 아니고 무엇인가. 권력자들은 그 대가로 상전에게서 돈을 먹고 무기를 받고. 게다가 이 현대판 노예매매를 위업인것처럼 자랑까지 하고. 그런데 나는 떠나가는 동생 하나도 붙들어둘 열정도 수단도 없는 약자인것이다.)

진수는 덤덤히 앉아있는데 짝을 뭇기로 한 남자가 미국류학중이여서 아직 유족한 부모의 슬하에 있는 송설희가 끼여들었다. 흰 바탕에 붉은 연필로 락서를 한듯 한 이색적인 무늬의 원피스차림에 짙은 화장을 한 그 녀자는 시골로파의 걱정거리엔 아무런 흥미도 없었지만 유해로운 몽매에 대해선 계몽할 의무가 있다는듯 꾸민 웃음을 지으며 리씨에게 말했다.

《어머니, 그건 잘못된 생각이예요. 윁남공산주의자들과 싸운다는건 세계공산주의를 쳐부시는거나 같은거예요. 두고보세요. 아드님은 꼭 영웅이 되여 돌아올거예요.》

리씨는 알수 없다는 표정이였다. 갑갑증이 난 설희는 서재로 꾸려진 웃방으로 통하는 문어구에 놓인 전축에 스위치를 넣고 레코드판을 얹었다. 모두의 심사를 조롱이나 하듯 서유럽의 어느 작곡가의 감상적인 소야곡이 조용히 울렸다.

벽에 자빠듬히 기대여앉은 인수는 썩은 콩을 씹은듯 한 얼굴로 잡지만 벌컥벌컥 뒤졌다. 남의 나라에 가서 전쟁을 치러야 할 그에게는 자신도, 눈앞에 어릿거리는 모든것도 래일이면 잃어버릴 림시적인 환영에 지나지 않았으며 인간다운 일상생활로부터 추방되여 살아온 자기는 미천한 거지보다도 못한 존재처럼 느껴져서 울적하고 노엽기만 했다. 그래서 그의 흐린 눈길은 어머니의 부드러운 눈길과 마주치는 순간에조차 밝아질줄 몰랐다. 그의 기분을 더욱 망쳐놓은것은 고국땅을 떠나게 된 지금에 와서 그가 몇년째 온 마음을 기울이고있는 처녀가 어찌된 영문인지 편지에 회답조차 주지 않는 점이였다. 그는 서울에 살고있는 그 처녀의 침묵이 멸시처럼 노엽고 슬펐으며 또 허용할수도 없었다. 사랑하는 처녀가 랭담해진다면 앞날의 삶이란 고통이며 자기는 일생토록 웃음이나 그 비슷한 기분도 느껴볼수 없을것이라고 생각했다. 청춘의 첫 시절부터 군대살이에 속박되여 무엇인가 증오하기에 시달린 그에게는 오래간만에 잠시 맛보는 사민생활의 분위기여서 종신형을 선고받은 죄수가 병보석으로 림시 풀려나왔을 때처럼 서글픈 명절기분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런 기분을 즐기기에는 랭담해진 처녀를 두고 외국의 전쟁터로 간다는 고통이 너무도 무거웠다. 제노라 하는 신문기자인 형의 가정분위기에서도, 형수의 동생인 설희의 자기만족적인 거동에서도 무엇인가 설명할 길 없는 모욕 같은것을 느낀 그는 자신은 생활도 이름도 없는 하나의 번호에 지나지 않으며 누군가 그 번호를 지워버리면 그것으로 형적없이 사라질 존재라는 느낌만이 들었다.

모두가 제가끔의 기분에 잠겼을 때 그사이 부엌에 나가있던 문희가 주부다운 미소를 그리며 큰 쟁반에 여러개의 병맥주와 안주를 차려들고 들어서며 권했다.

《먼저 맥주들이나 드셔요.》

설희가 상을 차리자 문희는 익숙한 솜씨로 고뿌들에 맥주를 부으며 설희를 나무람했다.

《네가 역할을 못한게로구나. 왜 모두 이렇게 무거운 얼굴들을 하고있니, 글쎄.》

진수형제가 말없이 잔을 들었다. 먼저 잔을 비운 인수가 어머니에게 잔을 권하며 처음으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자, 어머니도 드세요. 꼭 드시라니까. 자요.》

리씨는 잔속에 두꺼비라도 들어있는것처럼 몸을 젖히며 손을 내여들었다.

《아사라. 내가 어떻게 그걸. 애두 참!》

문희와 설희는 어머니와 아들의 이런 광경이 재미있다는듯 눈을 맞추고 웃었다.

그들은 민규석이라는 큰 자본가가 경영하는 《한일자동차》회사에서 전무로 근무하는 송건호의 딸들로서 어머니가 제가끔인 배다른 자매였다. 그래서인지 용모나 거동이 호사스러워보였고 생활이란 자기중심의 안락을 위해 즐기고 소비하는데 목적이 있다고 보고있었다.

그러나 자매는 차이점도 많았다. 5년전에 미술대학을 졸업학년에 중퇴해버린 문희는 그때 이미 기자로 활약하고있던 정진수와 결혼한 이래 한두해 잡지사에 나가 삽화를 그리다가 가정에 들어앉은 몸이였다. 슬프게도 미술계의 락오자로 자인하게 된 그 녀자는 형이상학적인 관념의 세계에서 피타는 노력으로 자기의 경지를 개척해야 하는 추상파미술의 그 동굴속과도 같은 길을 헤쳐가는 모험을 계속할것인가, 아니면 유족한 부친의 후원을 받으며 안락에 만족하여 지낼것인가 하는 갈림길에 서있었다. 그런데 그는 어느 하나도 놓치고싶지 않았다. 하기는 요즘에는 마지막 시도삼아 그간 고심해온 몇개의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하고는 거기에 기대를 걸고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그 녀자의 온갖 미술적시도나 노력에 대해서 동정의 미소나 보낼뿐 리해하여주지 않았다. 문희는 일반이 재능아라고 인정하는 남편의 이 무관심이 불만스러웠고 더구나 처세술이나 출세에 대해서는 생각할줄도 모르면서 무슨 사상가인체 하는 그의 태도가 나무랍고 두려웠다. 서로 걸어치고 깎아내리는 장마당에서 자기상품을 고작 원가를 받고 파는 우둔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문희는 이러한 남편과 무어진 자기의 미래에는 그 어떤 흥취도 경사도 없을것이라고 생각하며 한스러워하였다.

그러나 설희는 봄뜰에 놓여난 망아지였다. 홀몸에 유족한 그 녀자는 끊임없이 새로운 자극과 향락을 갈망하였고 외래의 문물이면 무엇이든간에 찬미하였으며 그것을 척도로 민족전래의것을 깔보는것을 지성인의 자랑으로 또 의무로 여겼다. 쓸쓸한 성적으로 음악대학을 나온이래 간혹 흥행악단에 값싼 작품을 섬기는 그 녀자는 자기의 미모를 활용하는데서와 자신의 분명한 타락적인 행위에 대해서도 예술가가 응당 겪어야 할 체험으로 슬쩍 돌려버리고 시치미를 따는 《재능》을 갖고있었다.

설희는 아들의 잔을 끝내 거절한 리씨를 측은해하는 눈길로 바라보더니 자기앞에 놓인 빈 잔을 문희에게 내밀었다. 문희가 부어주자 그 녀자는 리씨에게 시위나 하듯 단숨에 마셔버리고 인수에게 공상적인 미소를 지어보이며 말했다.

《좋겠어요. 남양의 하늘아래서 생명을 내대고 모험도 하고 마음껏 애수와 우울에도 젖어보시고. 그러느라면 인생을 덧없는 꿈으로 돌릴수도 있을거구요. 그것도 하나의 행복이지 뭐예요.》

《글쎄요. 나 같은거야 죽음에서나 행복을 찾아야겠지요.》

잔을 거듭하여 눈시울이 벌거우리해진 인수가 이렇게 대답하자 설희는 그 말의 뜻보다는 운명을 롱담에 걸줄 아는 그의 기질이 재미있어 하얀 손으로 입을 가리우며 소리내여 웃고 다시 재재거렸다.

《요는 생활에서 궤도를 바꿔본다는게 중요하지 않겠어요? 답답한 질서에서 벗어나 류성처럼 균형에서 뛰쳐날수 있다는게 부럽단 말이예요. 아저씨, 그러찮아요?》

설희는 말끝을 진수에게 돌렸으나 우울한 생각에 잠겨 마시기만하던 그는 처제의 말은 무시하고 동생과 이야기했다.

《넌 거기에 가게 된 일이 마음에 드니?》

《배운것이 반공이고 싸움이니까, 가라면 가는거지요. 하긴 이 땅도 싫증이 났구요.》

《그럼 윁남공산분자들이 조상의 뼈라도 파갔다고 생각하니?》

《?…》

《난 네가 군공이나 승급을 노리는 바보가 아니길 바란다. 손을 아끼라. 네 손에 묻은 남의 피는 씻을수 없다.》

《모르겠는데요. 형님이 내 처지라면 어떻게 하겠어요?》

《글쎄, 모든걸 포기할수도 있겠지.》

이야기는 더 계속될수 없었다. 누군가의 감시를 두려워하며 마음속에 부글거리는 거치른 말을 입밖에 내기를 주저하고있는것만 같은 동생의 검붉은 옆얼굴을 살펴보던 진수는 문득 군에 들어가기 이전시절의 동생을 회상했다.

소년시절의 인수는 내성적이고 유순한 성격에 동무들과의 우정에 충실한 단정한 아이였다. 인수가 시골에서 국민학교 4학년인가 5학년에 다니던 해의 겨울에 있은 일이였다. 마을에서 같은 학급에 다니는 만규라는 소년이 스케트를 타러 강에 나갔다가 불장난을 하던끝에 바지가랭이에 불이 당겨 심한 화상을 입었었다. 만규소년의 아버지는 지게에 아들을 져업고 읍에 있는 병원에 여러달 다니면서 치료를 받게 했는데 그 기간에 인수는 매일 밤 만규에게 찾아가서 학교에서 배운것을 빠짐없이 배워주었다. 그러다가 만규의 상처가 차츰 나아져서 병원에 다니지 않게 되자 인수는 궂은날 마른날 가림없이 5리나 되는 학교에 그를 업고 다녔다. 아직은 뼈가 여린 나이에 저만큼 큰 동무를 그렇게 업고 다닌다는것이 말이 쉽지 보통일이 아니였다. 인수가 힘이 진해서 꼬꾸라지면 그의 목덜미는 업힌 소년의 눈물로 젖군 했다. 만규소년의 부모는 어찌나 감동했던지 인수의 생일을 택하여 구차한 살림에도 새 양복 한벌과 구두를 마련하여 선물하기까지 했다. 이 미담은 아동잡지에까지 크게 실려서 지금도 진수의 어느 책갈피에는 잡지에서 오려낸 그 기사가 끼워있었다.

마음이 어질고 찬찬한 인수는 철이 들면서 식물학에 남다른 취미를 붙였었다.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던 진수가 여름방학에 고향집에 가보면 인수는 집안팎에 온통 채집한 식물들을 널어놓고 분주히 돌아치고있었다. 여러권으로 된 인수의 두툼한 책들에는 진수로서는 이름도 모르는 고향일대의 별의별 꽃들과 풀들이 다 들어있었다. 지금도 진수는 어느해 여름에 청춘의 첫 시절을 맞이한 동생이 방금 서울에서 돌아온 자기를 만났을 때 웃주머니에서 향기를 뿜는 새라새로운 가지각색의 꽃들을 연방 꺼내여보이며 자랑스레 웃던 얼굴이 선했다. 생기발랄하고 놀라울 정도로 영민한 귀여운 그 모습에 취한 진수는 방안에 진동하던 그 향기가 다름아닌 동생의 숫스럽고도 밝은 마음에서 풍겨난 향기처럼 느껴졌었다.

그러나 지금 눈앞에 앉아있는 군복입은 동생은 생각도 성격도 지어는 눈까지도 전혀 다른 사람만 같았다. 어머니가 눈물이 글썽하여 손이며 어깨를 자주 쓰다듬어주는데도 밝은 얼굴로 웃거나 부드러운 위안의 말 한마디도 할줄 모르는것이다. 군대라는것이 사람을 이렇게도 거칠고 검게 만드는가 하고 생각하면서 진수는 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정돈하고 닦아주고싶었으나 할 말을 미처 찾지 못했다.

그들형제와 어머니가 저마다 마음을 조이며 풀기없는 말을 몇마디씩 주고받는 사이에 문희와 설희는 무엇인가를 두고 소곤거리더니 설희가 상글상글 웃으며 목소리를 높였다.

《놓치면 안돼요. 나뽈리악단공연은 오늘 밤으로 마감이라니까, 글쎄.》

문희는 이런 장소에서 어쩌면 남의 심사도 모르고 그러느냐는듯 코를 씰룩하며 나무람했다.

《어떻게 가겠니, 뻔히 보면서 그러는구나.》

그래도 설희는 고집이였다.

《아이참, 꼭 가야 해요. 이딸리아에서도 최고수준을 자랑하는 악단인걸요. 난 두번이나 들었는데도 그냥 기갈이 난다니까. 그 악마적인 환상 그리고 뭐랄가. 우뢰질하는 사상의 광란에 저항하는 섬세한 감정의 그 애수, 그속에서 숨막히게 압도해오는 원시에로의 절규!… 참, 뭐라고 말할수도 없어요. 우리것에 비하면 척추동물과 아메바의 차이라니까. 그걸 놓치다뇨?》

《넌 그 과장병 좀 못 고치니?》

문희가 퉁을 놓자 설희는 어쩔수 없다는듯 얇고 윤택한 입술을 쭝긋 내밀어보였다.

이야기가 이렇게 끼리끼리 벌어지자 리씨는 따돌림을 당한듯 설음이 설음을 낳을뿐이였다. 세워짚은 한쪽무릎에 두손을 모여얹고 암담한 눈길을 방바닥에 떨군 그 얼굴에는 그 무엇으로써도 위안받을길 없는, 밑창없는 애수가 비껴있었다. 놓쳐버릴 아들을 붙잡아둘수도, 마음껏 울거나 애무할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들들이나 며느리와는 이야기조차 잘 통하지 않는데다가 그들이 하는 말은 알아들을 수조차 없는것이다. 그렁그렁 맺혔던 눈물이 주름진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모두들 리씨의 이런 모습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이런 때 인수가 시계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군모를 썼다.

《급히 볼일이 있어 가봐야겠어요.》

이렇게 말하는 인수는 거동이 어찌나 갑작스럽고 거친지 모두들 자기들이 어떤 실수로 그를 모욕이나 한것처럼 당황해하였다.

《어째 이러니, 속에 떨어지게 뭘 먹지도 못했는데. 이러지 말고 좀 앉거라!…》

리씨가 인수의 팔을 잡고 앉히려고 했으나 설희는 군대걸음은 말릴수 없다고 했다.

인수는 서울을 떠나는 날 정거장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그사이 비가 멎은 밖에 나섰다.

진수는 군대라는 특수세계가 동생을 얼마나 거칠고 우둔하게 만들었는가를 새삼 느끼면서 안해, 처제와 함께 뜨락에서 인수와 헤여졌다. 그러나 리씨는 성큼성큼 걸어가는 인수를 따라 골목길로 반달음을 치며 마감으로 말을 걸었다.

《넌 어디 보아둔 처녀도 없니?》

인수는 량미간을 찌프리며 돌아보더니 어머니가 내여맡기는 우산도 물리치고 등을 돌렸다. 그 순간 리씨는 아들의 뺨이 푸들푸들 뛰고 두눈이 심상치 않게 번들거리는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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