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회


제 1 장


3


신문사의 론설위원인 량성도는 몇개의 다른 기관과 단체들에서도 주역을 노는 정력적인 활동가인데다가 누구에게나 호감을 사려고 애쓰는 팔방미인이여서 여러 부류의 적지 않은 사람들을 주위에 거느리고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는 묘하게도 조류학자가 새들의 생태를 관찰하는듯 한 호기심이 어린 일종의 모욕적인 면이 있었다. 이러한 습관은 그가 지닌 풍운아로서의 다난했던 경력이라든가, 때에 알맞게 지을줄 아는 호인다운 미소며 기지있는 롱담 같은걸로 잘 반죽이 되군 해서 오히려 소탈하고 곰살궂은 성정으로 돋보이게 하였다.

지금도 편집국장실에 나타난 그는 자기와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인, 자그마한 몸집에 가무잡잡한 얼굴이 유난히 번들거리는 위달종편집국장의 책상우에 자기의 원고를 소리나게 쳐서 얹으며 오랜 술독에 붉은 반점이 내돋은 그의 코에 랭소어린 시선을 던졌다. 그 시선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자네같이 무식한 사람이 이 험한 시국에 어떻게 큰 일간신문을 꾸려나가겠다는건가? 난쟁이가 거인의 방패를 안은 격이지.)

그러나 위달종편집국장이 숱진 눈섭을 치켜올리며 매서워보이는 작은 눈을 들자 량성도는 쏘파에 자빠듬히 앉아 손끝으로 안경을 바로 잡으며 입을 열었다.

《력대 미국대통령들의 안보담당 고문들에 대한 련재물인데 이걸 쓰느라고 밤잠까지 설쳤소. 선생의 독재바람에 이거 영 죽겠소그려.》

《간밤엔 자네도 고 계집들에게 빠져 어지간히 취한것 같던데. 어느새 이렇게 썼나. 참 무서운 정열이구만.》

위달종은 녀성적인 자그마한 손으로 량성도의 원고를 탁탁 치며 말을 이었다.

《량선생이 없는 신문은 생각할수도 없다니까. 인제 두고보시오. 달에서도 보일만 한 굉장한 훈장을 하나 특별주문할테니.》

그는 몸을 뒤로 젖히며 껄껄 웃었다. 그러나 량성도는 지친듯 가슴에 얼굴을 떨군채 담배연기만 내뿜더니 정색을 하고 말했다.

《요즘 신문에 대한 일반의 평판이 그리 좋은것 같지 않은데, 공보부친구들의 말을 너무 고분고분 좇는게 아닌가요? 내가 보건대도 사회정치생활에 대한 보도취급에선 유력자들에 대한 아첨이 너무 로골적이거든요.》

《정세가 긴장하면 우린 가라앉아야지 어떡허겠소. 생활고와 끝없이 드러나는 부정부패, 걸핏하면 끓어대는 학생들의 반〈정부〉시위, 사정없이 밀려드는 일본, 이 모든것우에는 또다시 민중을 날뛰게 할수 있는 먼 우뢰소리가 들려오는 판인데, 이런 때일수록 우리야 아무래도 질서를 편들어야지 혼란을 조장할수야 없지 않겠소?》

떵떵거리는 멋쯤 례사로 부릴수 있는 편집국장이면서도 론설위원인 량성도의 두뇌를 감당하지 못하는 위달종은 자기의 소견이 또 꺾이우고말리라는것을 느끼면서 이렇게 자신없이 주장했다. 아닌게 아니라 량성도는 꾀가 어린 실눈을 짓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글쎄, 질서를 편들어야겠죠. 하지만 전술이 문제거든요. 여론에 어느 정도 미끼도 던져주면서 신용을 얻어두어야 가장 중요한 급한 대목에 민중을 질서에로 효과적으로 이끌수 있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 신문은 창덕사부지문제 하나를 다루는것만 봐도 일반여론을 등지고 만사람의 눈앞에서 위력자들의 창문아래로 달려가 세레나데를 부르고있단 말입니다.》

위달종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방문객들앞에서 자신을 지적인 거인으로 돋보이게 하려고 장식품삼아 진렬해놓은, 대체로는 겉뚜껑도 열어본 일 없는 각종 책들이 빼곡한 커다란 서가앞을 천천히 오락가락하였다.

《하긴 운전대를 약간 쥐여보는것도 나쁠것 없지. 말썽많은 창덕사부지문제 같은거부터라도 좀 새롭게 다루도록 하지. 헌데 그 문제를 맡은 안한수는 돈 생길 구멍 뒤지는데는 명수인데 글재주가 막혔거던. 차라리 담당기자를 바꾸는게 좋겠군.》

비난받은 안한수는 밀수업에서나 악명을 날릴, 속이 흐리터분한 수단군이였으나 재사로 자처하는 량성도는 무엇때문인지 그를 자기의 숨은 충복으로 잡아두고있었다. 그러고보면 위달종은 안한수를 조롱함으로써 량성도의 희멀건 이마를 손가락으로 쿡 찌른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창덕사사건에 대한 담당기자를 바꾸는것은 량성도가 노리는바여서 그는 편집국장이 자기의 낚시를 받아문것을 보고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이 사건을 자기가 주목해온 정진수에게 맡겨 그를 여러모로 깊이 료해하여볼수 있는 기회로 삼고싶었던것이다.

《정진수가 어떻겠습니까? 너무 진지한것은 흠이지만 무서운 재주군이거든요. 한번 맡겨보십쇼. 아마 신문의 위신이 너무 올라가서 걱정일겁니다.》

량성도가 장담하자 위달종의 얼굴에는 복잡한 생각이 내돋았다. 그는 무엇인가 미타해하면서도 수긍이 가는듯 코를 킁킁거리며 머리를 끄덕거렸다.

량성도는 손목시계를 보더니 이야기의 분위기를 마스며 급히 일어나 방을 나서면서 량해를 구했다.

《자, 그럼. 난 다른데 모임이 있어서…》

량성도가 사라진 뒤에 편집국장은 녀서기를 불러들여 지시했다.

《정진수군을 불러와.》

날씬한 몸매에 어깨까지 산발을 드리운 예쁘장한 녀서기는 직업적인 미태를 부리며 문을 나섰다.

여기서 화제에 오른 창덕사부지문제에 대해서 미리 몇마디 하여두는것이 좋을듯싶다. 그것은 서울의 모처에 있는 자그마한 사찰인창덕사의 부지에 사는 주민들과 그 사원부지를 빼앗아 넘겨받으려고 한편이 된 한 교회와 그 계통의 ㄷ대학재단과의 복잡한 싸움으로 얽혀진 문제였다.

원래의 창덕사는 왜놈들이 쓰다가 버리고 간 사찰로서 8.15후에는 사처에서 흘러든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터전이였다. 의지가지없이 헤매던 그 수난자들에게 있어서 사원부지는 날바다에서 난파를 당하여 절망적으로 허우적거리던 조난자들이 만난 구원의 섬과도 같은것이였다. 그런데 교회와 ㄷ대학재단이 한짝이 되여 이 부지를 탐내더니 여기에 종교문화원을 건설하겠다고 요란스럽게 광고를 펴는 한편 관할세무서장에게 이른바 《국유지대부신청》을 낸것이다.

이렇게 되자 사원부지의 주민들은 쑤셔놓은 벌둥지처럼 끓어댔다. 딛고 설 마지막 땅쪼각마저 빼앗길 위험에 빠진 그들은 자기들의 억울함을 당국과 여론계에 호소하는 한편 그 땅은 의례히 거주자인 자기들이 처리할 권리를 가진다는것을 당국에 주장했다. 이 강경한 주장의 배후에는 여차하면 너 죽고 나 죽고 해보자는 비장한 태세를 갖춘 군중이 겹겹한 담벽처럼 서있어서 무시할수 없는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그곳 주민들과 그들을 몰아내려는 세력은 당국자들을 중간에 놓고 끝없는 싸움을 벌리게 되였고 마침내는 일종의 사회적인 문제로 발전하였던것이다. 정진수가 편집국장실에 들어섰을 때 위달종은 각종 원고들과 책을 가득 쌓아놓은 커다란 책상을 마주하고앉아 자기옆에 두툼한 원고를 쥐고 엉거주춤하여 서있는 늙은 편집원에게 짜증을 내고있었다.

《답답하구만. 그 실직교수란거야 〈반공법〉위반으로 옥살이까지 하고 나온 놈인데 그런 작자의 론문을 내겠단 말이요? 그렇게도 적신호를 올렸는데 정신들이 온통 썩었단 말이야.》

뺨과 턱에 살주머니가 드리운 늙은 편집원은 나도 할 말은 많다는듯 한 뚝한 얼굴을 하고있더니 툭 불거져나온 눈에 용하게도 미소를 띠우며 말했다.

《고집하진 않겠어요. 그렇지만 우리 신문이 여당지와 결혼하여 청와대 목욕탕에 뛰여드는 만화까지 나온 점 등을 고려하여볼 때…》

위달종은 주먹으로 책상을 치며 소리쳤다.

《아아, 듣기 싫소! 온통 시비군들이라니까. 양로원에 가고싶지 않거들랑 그따위 론문은 휴지통에 던지시오!》

편집원은 처진 턱을 가늘게 떨며 편집국장을 언뜻 노려보더니 짧은 한숨과 함께 머리를 떨구고 나가버렸다.

직위와 권세야말로 무서운 힘이라는것을 실감있게 향락한 위달종은 매우 사근사근해보이는 얼굴로 변하더니 오똘거리는 팔자걸음으로 쏘파에 앉아있는 진수앞에 다가와서 물었다.

《자네 혈액형은 어떤건가? 아마 O형이겠지?》

《글쎄 어데 수혈할 일이라도?…》

진수가 별로 흥취없이 반문하자 편집국장은 그의 곁에 엉치를 던지고 앉으며 말했다.

《바로 신문에 수혈해달라는걸세. 다른게 아니구 말이야, 그 창덕사 사원부지문제는 자꾸 복잡하게 꼬여가기만 해서 아무래도 맡아줘야겠어. 이때까지 맡아오던 미스터 안은 유감스럽게도 손이 곰의 발이거던.》

진수는 웃지 않을수 없었다. 그는 담배를 호박물부리에 끼우는 위달종의 보동보동한 작은 손을 보면서 생각했다.

(안한수를 곰의 발이라고 비웃을수 있다면, 가치있는 지론이 들어있을지도 모르는 실직교수의 론문은 읽어보지도 않고 차던지는 이자는 곰의 발이 아니란 말인가? 머리우에 군림하는 세력과 일반군중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면서 량쪽에 동시에 엉너리를 치는 이 작자는 곰중에서도 곡마단의 곰같은 괴물이 아닐가?…)

정진수는 심드렁해하는 태도로, 그러나 확고하게 말했다.

《안한수도 붓대가 서는 기자로 통하지 않습니까. 거기다 곰의 발같은데가 있다면 오히려 호랑이머리에 뿔이 아니겠습니까? 이제 와서 그 문제에 내가 뛰여들 흥미는 전혀 없어요.》

《자, 이러질 말게. 부탁이 아니라 지시인줄 알게. 한수군에게는 윁남파병문제라든가 그러루한 중요문제를 맡길테니 어색해질것도 없지. 참, 자네 동생이 이번에 파병된다지? 고무해서 보내게.》

진수는 무엇이건 막연한 생각이나 부당한 의견이라도 지체가 낮은 사람이 그것을 꺾으려들면 곧 자기를 고집하는 편집국장의 성질을 잘 아는터여서 더 주장했댔자 시간랑비라는것을 알고 입을 열지 않았다. 편집국장은 자기의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랭랭한 공식적인 태도로 표변하여 말을 이었다.

《그 문제를 다루는데서 잊지 말아야 할것은 갈등을 진 어느 한쪽에도 기울어지지 말아야 한다는거요. 무얼 자꾸 사색하거나 사태를 변경시키려고 하진 말게. 중요한것은 균형이거던. 알겠소?》

진수는 울적했다. 사색을 버리라는 말에 은근히 화가 난 그는 담담한 얼굴로 익살을 부렸다.

《그럼, 나의 목을 칠 단두대는 준비돼있습니까?》

《단두대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위달종이 눈이 올롱해서 반문하자 진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사색을 중지하자면 아무래도 머리를 떼여두고 가봐야 하지 않겠어요?》

위달종은 머리를 절레절레 저으며 킬킬 웃었다.

《그렇게 롱을 하면 안되네. 창덕사문제때문에 소동이 커지면 화를 입을수 있다는걸 잊지 말란거여.》

무엇인가 놀림을 당하고도 아무런 항의도 못한듯싶은 진수는 자기자신에 대한 불쾌감을 품고 그 방을 나섰다.

이날 오후에 그는 할수없이 문제의 창덕사로 찾아갔다. 그곳은 서울에서도 구석진 곳이여서 그로서도 첫걸음이였다.

약간 둔덕진 산자락우로 고층건물들이 무질서하게 솟은 번화가의 한 귀퉁이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창덕사의 부지에는 사라져간 울창한 소나무수풀의 마지막흔적인 너덧그루의 꽤 장려한 늙은 소나무가 점점이 서있어서 지금도 멀리서 보면 유흥객들의 눈을 끌만도 했다. 그러나 그 소나무아래에 펼쳐진것은 혈거생활로 만족해하였던 아득한 상고시대의 인간들도 모골이 송연해져서 뒤걸음치지 않을수없는 스산한 판자촌이였다. 하기는 이 판자촌도 서울의 도심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나 변두리에서 흔히 볼수 있는 판자촌보다 더 참혹한것은 아니였다.

진수를 우선 놀라게 한것은 펴다린 깡통과 고무신바닥으로부터 각종 파고철에 이르는 천만가지 페물들로 제가끔 빛다른 누데기를 기워얹은 천태만상의 지붕들이였다. 그것은 마치 서울이 버린 쓰레기의 전람회장같았다. 그우에 짙은 그늘을 드리운 소나무는 이 무서운 인간수용소로부터 도망치지 못하고 영원히 포로된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듯 누르끼레해보이는것이 애수에 병든것만 같았다.

그 소나무 뒤켠에는 아직 사찰로서의 체모는 잃지 않았으나 이제는 세월의 중하에 앙버틸 마지막기력마저 잃고 한켠으로 기울어져가는 컴컴한 창덕사의 몸체가 음침하게 솟아보였다.

(언젠가 황금장식 찬란했던 저 사찰에서 죄많은 인간들을 열반의 기슭에로 부르던 대자대비의 부처님은 이 수라장속에서도 상기 백일몽을 깨지 못했는가? 그는 어찌하여 이제는 삶의 막바지에서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 수난자들을 보면서도 한마디도 말이 없는가? 통곡해볼 심장마저 없는것일가? 아니면 어느 추운 겨울날에 어느 실업자의 안내를 받아 아궁이속으로 들어가 연기로 변신하여 저만이 하늘나라로 뺑소니쳤단 말인가?

허상을 꾸민 몽매, 그 몽매를 딛고 자비를 가장한 장난감, 얼마나 터무니없는가!…)

진수는 이런 생각을 하며 판자촌의 꼬불꼬불한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는 자주 걸음을 멈추고 서로 밀고 밀리기도 하고, 남을 발밑에 깔았는가 하면 남에게 정수리를 짓눌리우기도 한 판자집들의 거칠고 숨가쁜 정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정경은 마치 광폭의 홍수가 생활의 잔해를 휩쓸어안은채 어떤 마술에라도 걸려 그대로 굳어져버린것처럼 느껴졌다.

(아니다. 이것은 절망과 희망이라는 개념이나마 있는 땅우의 인간생활이 아니라 고통만이 살아 독을 뿜으며 영원을 주장하는 무서운 지옥이 아닌가.

삶이 곧 고통이라면, 가난과 굴욕, 환멸과 랭담에서 이렇게도 헤쳐나갈 길 없는 인간환경이라면 사람은 무엇때문에 태여나야 하는가. 인간이 공동으로 즐길수 있는 광명이나 행복은 없고 오직 몰렴치하고 우악스런자들만이 남을 희생시켜 얻은 피투성이재부를 안고 너털웃음을 웃는다면 인간이 짐승보다 나은 점은 무엇인가? 판단의 기준도, 사물의 가치도 혼돈에 빠지고 어디에도 행복에로 가는 길은 찾을 길 없고, 안개와 추위와 어둠속에서 더러운 인습과 몽매의 사슬에 묶여 몸부림쳐야 하는 이 인생, 얼마나 모욕적인가! 여기서 나는 아무런 참된 가치도 생산 못하고 못나게도 량심에 지지리 앓으면서도 돈을 벌어먹는 속물인것이다!…)

이런 생각에 옴하여 걷던 진수는 눈을 꽉 감고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모두가 거리로 나간 한낮이여서 처량한 아이들과 집지키는 로인들이 많이 보였다. 헌옷밑으로 푸르딩딩한 장구배를 드러낸 아이가 각기병으로 휘여든 앙상한 다리를 벌려딛고 진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지나치려다가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너의 집엔 누가 사니?》

아이는 눈을 크게 뜨며 뒤걸음칠뿐 대답하지 않았다. 진수는 자기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것을 납득시켜야만 하였다. 그제야 아이는 대답하였다.

《누나하고 나하고…》

《누나는 무슨 일 하지?》

아이는 오래 망설이다가 혀아래소리를 했다.

《술집에 가서… 자는거…》

《하 그래. 넌 학교에도 못 다니니?》

《학교? 우습다. 꿀꿀이죽 먹으면 취해서 자는데…》

물에서 건져낸 새같은 아이는 코물을 훌 들이마시며 히죽 웃어보였다. 진수는 마른번개에 머리를 맞은것처럼 정신이 뗑해졌다.

뒤켠을 돌아보니 여러명의 아이들이 둘러섰다. 그들에게 부모의 직업을 물었더니 고정직업을 가진 로동자로부터 콩국장사와 넝마주이에 이르는 각양각색이였다.

착잡한 생각에 잠겨 그 자리를 떠나던 진수는 자기를 집요하게 뜯어보는 시선을 느끼고 그쪽으로 낯을 돌렸다. 후리후리한 키에 모가난 이마와 턱이 두드러지고 눈길이 맵짜보이는 어딘가 낯익은 아리숭한 청년이였다. 청년이 먼저 긴장을 풀며 입을 열었다.

《진수아저씨 아닙니까? 나 김용깁니다!》

《김용기? 난 또 누구라구. 영 몰라보겠구만.》

스물을 갓 넘어보이는 김용기는 진수와 같은 고향 시골내기로서 큰 홍수가 난 해에 농토와 함께 아버지마저 잃고 서울로 흘러온 청년이였다. 진수의 기억엔 이 청년의 어머니는 처녀시절에 지주집 부엌데기노릇을 하다가 지주의 첩년에게 모진 행패를 당하여 한쪽다리를 절었었다. 장난이 세찬 철없던 시절 진수는 그의 어머니가 마을길로 절룩거리며 지나가면 그뒤로 골려주는 외마디노래와 함께 다리저는 흉내를 내며 지꿎게 따라다녀서 그 녀자의 눈물을 짠 일도 있었다.

《한일자동차》회사에 다닌다는 김용기는 난처해하면서 고향에서도 출세한 인물로 알려진 일류신문의 기자를 초라한 자기의 판자집으로 안내하였다. 용기의 어머니는 벌이를 나간 틈이였으나 그대신 문앞에서 때국이 찌득찌득한 자그마한 보따리를 든 백발장신의 로인이 어떤 슬픔에 지친듯 흐리멍텅한 눈길을 떨구고 비애의 조각상처럼 서있었다. 진수는 첫눈에 이 로인이 너무도 과묵하여 고향사람들이 《벙어리》로인이라고 부르는 김용기의 큰아버지임을 알아보고 인사를 하였다.

《로인님, 언제 이렇게 오셨습니까?》

《벙어리》로인은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두번 겨우 머리를 끄덕여 알아본 기미를 보였을뿐 다른 어떤 표정도, 한마디 말도 없었다.

김용기가 로인의 손짐을 받아들며 말했다.

《큰아버지, 왜 안으로 들어가시지 않고 이러세요?》

로인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용기가 진수에게 설명했다.

《장기형을 받고 감옥살이를 하는 우리 4촌형님이 앓기까지 해서… 큰아버님은 일요일에 면회를 가시겠다고 가끔 이렇게 시골서 오시군 하죠.》

그 장기수는 진수의 기억에도 선명한 인물이였다. 농민적인 해학과 지혜로 빛나는 김용권이라는 사람, 린근처녀들이 황홀한 눈길로 훔쳐보던 쾌남아였다. 전쟁시기에 인민군대를 도와나섰다가 체포되여 《부역죄》로 투옥된 불운한 사람이였다. 썩 오래전에 누구에게선가 들은바에 의하면 그는 전쟁때에 어떤 남다른 행운도 맛본 일이 있다고 했다.

《용권형은 아직 형기를 마칠 때가 멀었는가요? 병세는 좀 어떤지요?》

진수가 물었으나 로인은 머리를 조용히 도리질할뿐, 손바닥만 한 마루에 주저앉더니 여전히 실성한 사람의 얼굴이다.

용기는 진수에게 물었다.

《여기 절터에 사는 우린 다 쫓겨날 모양인데, 어떻게 붙어배길 방도가 없을가요?》

《글쎄, 나도 그 일때문에 돌아보러 오는 참인데…》

지체할수 없어 진수는 떠나려다말고 《벙어리》로인에게 다가가서 주머니에서 잡히는대로 몇장의 돈을 꺼내주면서 말했다.

《적지만 보태여 써주십쇼.》

로인의 축축한 눈에 한줄기 미소가 비치는듯싶었다. 그러나 돈을 쥔 진수의 손을 천천히, 그러나 억센 힘으로 밀어버리더니 일어나서 그의 어깨를 몇번 다독여주고는 다시금 그를 밀어보냈다. 거기에는 그 어떤 동정이나 위안도 용납하지 않는 상처입은 심장의 자존심이 있었다.

진수는 무거운 마음으로 좁은 길을 내처 올라갔다. 눈앞에는 벽체도 지붕도 오랜 세월의 풍상에 까맣게 그슬려진 붕괴직전의 창덕사가 나타났다. 그속에 한발을 들여놓은 진수는 꿈속에서처럼 벼랑끝에서 발을 헛디디여 컴컴한 심연에 떨어지는듯 한 전률을 느꼈다. 절은 가난과 굴욕에 악이 날대로 난 사람들로 치쌓아진 인간피라미드의 내면이였던것이다.

밖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안에서 보니 명색이 4층으로 되여있는 최악의 수용소였다. 지하동리로 불리우는 1층은 이 건물의 마루밑이였다. 높이는 고작 한메터정도여서 거기선 어른도 아이들도 네발걸음을 치고있었다. 캄캄하고 비좁은 그속에는 이십여세대나 되는 사람들이 저마다 마분지나 누데기, 판자 같은것으로 《집》을 꾸리고 무덤속의 생활을 하고있었다. 그안을 들여다본 진수는 어둠속에서 까무락거리는 로인들과 아이들의 시뿌연 유리알같은 눈들과 마주치자 기겁을 하며 뒤걸음치고말았다.

웃동리로 불리우는 2층도 형편은 비슷했으나 다만 허리를 펴고 걸을수 있는것이 나은 점이였다. 3층은 2층우에 다락처럼 올려붙어있었고 4층은 처마밑에 제비둥지처럼 아슬아슬하게 매달려있었다. 그리하여 건평이 백수십평정도인 이 컴컴한 절에는 백여세대가 층층으로 뒤엉켜있어서 세계제일의 인구밀도를 기록하고있었다.

한치의 공간도 없이 요리조리 채워진 이 무섭고도 슬픈 건축의 곡예를 쳐다보는 정진수는 가슴속이 뒤집히고 정신이 휘휘 돌아가는듯싶어 한순간 눈을 감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는 다시 실눈을 짓고 아이들의 지친 울음소리가 들리는 추녀밑에 달린 집들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관료배들이 숨겨온 이 령하의 음달지대, 도시행정의 이 처참한 치부, 여기서 처녀들은 어머니가 되고 아이들은 태여나 눈물에 잠긴 어머니들에게서 말을 배우고 걸음을 익히고… 로인들은 세상과 작별한단 말인가?

리기적인 세상에 밀려 굴속에, 공중에 숨어사는 이 사람들을 영영 쫓아내려고 덤벼치는 대학재단은 그렇게도 무자비하고 든든한 위주머니를 가졌단 말인가?

아니다. 백보를 양보하여 이 수난자들이 개인이나 단체소유의 땅에 강제로 입주했다고 가정하자. 그리하여 그들을 징벌하는 법이 정당하다고 하자. 그러나 그 법전을 주림과 질병에 파먹히워 젊은 나이에 벌써 백발의 페인이 된 저 사람들앞에, 불행에 시달리는 저 거무죽죽한 녀인들과 노오랗게 타는 아이들의 발앞에 던져보라. 그러면 그 법이 백개의 혀를 가지고있다한들 무슨 말로 이들을 비난할수 있단 말인가!)

진수는 몇몇 사람들이 적의를 품고 곁에 다가온것도 모르고 덮칠듯 압박해오는 조잡한 구조물들의 틈사리를 빠져나갔다.

어둠속에서 해빛아래 나와서 머리가 어질어질해진 진수는 몇사람의 앞장에서 그를 노려보며 버티고 서있는 검은 구레나룻의 장대한 사나이와 부딪쳤다. 사자상을 한 그 사나이가 굵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을 걸었다.

《기어이 쓸어낼 잡도리인가요? 아마 비자루보다는 폭탄이 낫겠지요. 하긴 우리에게도 물어뜯는 이발이 남아있어서 간단친 않을거요.》

진수는 그를 한번 훑어보았을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투쟁위원회 같은것이 있다면 누굴 좀 불러주시오. 나는 신문기잡니다.》

모두들 기대하는 얼굴로 그를 반겼다. 사자상의 사나이가 표정을 풀고 다시 입을 열었다.

《이거 실례했군요. 그러나 우리가 그다지 상팔자가 아니란걸 고려해주시오.》

진수는 그를 쳐다보며 동의했다.

《참, 가슴아픈 일입니다.》

치째진 작은 눈에 매서운 강기가 보이는 작달막한 사나이가 나서며 챙챙한 목소리로 자신을 투쟁위원으로 소개했다.

진수가 요즘의 사태형편을 묻자 투쟁위원은 짧은 한숨을 쉬더니 기관총쏘듯 급하게 말했다.

《참, 일은 더럽게 됐지요. 우리는 이놈의 땅을 제가끔 쪼개여 사서라도 틀어쥐려고 측량사들을 데려다가 분할측량에 붙였는데… 아, 글쎄 삼백명이나 될 변장한 괴한의 큰 무리가 달려들더니 측량을 못하게 막 잡아 두드려패는거 아니겠어요. 측량사들은 죄수처럼 묶여가구요. 그런데 경찰서는 강건너 불보듯 하지… 그때 분하던 일을 생각하면…》

《그래 어떻게 했습니까?》

진수가 수첩을 꺼내여 적으면서 물었다.

《어떡하구가 있습니까. 또다시 측량사들을 불러다가 자체로 분할측량을 했지요. 그래가지고는 죽기내기로 모두들 잡동사니를 두드려 팔구, 피와 살까지 팔아서 수매대금을 마련해서는 세무서장에게 냈습지요. 한즉 그 염병할 놈들이 받아두긴 하면서도 문건처리는 할수 없다는거 아닙니까. 자체로 측량한건 믿을수 없다면서… 에이, 더러워서…》

투쟁위원은 이렇게 쏘아대더니 분을 못 참아 한발을 탁 구르면서 땅에 침을 뱉았다. 사자상을 한 사나이가 끼여들었다.

《그런데 기자선생, 보십쇼. ㄷ대학재단은 여기에 개X같은 종교문화원을 세우겠다고 날마다 소래기를 지르고있은즉 공익사업은 우선권이겠다, 우리는 범아가리속에 앉았습니다그려.》

《어디 그뿐인가요.》

사나이들의 뒤켠에 서있던 젊은 녀인이 말했다.

《뒤소문에 듣자니 저편엔 〈평화봉사단〉으로 와있다는 죤 버클이라는 미국사람까지 뒤받침해준다잖아요.》

죤 버클이라면 진수로서도 짐작이 가는 사람이였다. 처제인 송설희가 허영심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버클의 딸과 음악을 놓고 교제하고있었는데 설희가 자랑삼아 하는 말에 의하면 하바드대학에서 교환교수로 이곳에 온 버클은 대학에선 《한미외교사》를 강의하고 교회에 나가면 선교사노릇을 하는 유력자라는것이였다. 그러고보면 이곳 거주자들의 패배는 정해놓은것이나 다름없었다.

진수의 뇌리에는 문득 위달종편집국장이 하던 말이 되살아왔다.

《무얼 자꾸 사색하거나 사태를 변경시키려고 하지 말게. 중요한것은 균형이거던.》

생각해볼수록 모욕적인 말이였다. 위달종의 속심은 너무도 뻔한것이여서 당장 달려가서 모든것을 포기하고싶은 충동까지 느꼈다. 마주선 사람들에게 아무런 대책이나 위안의 말도 못하고 습관적으로 수첩에 무엇인가 갈겨쓰던 진수는 한쪽에서 녀인들이 나지막이 주고받는 말을 들었다.

검은 얼굴에 입술이 하얗게 바랜 녀인이 가슴에 안겨자는 젖먹이를 추슬리며 곁에 선 젊은 녀인에게 물었다.

《아무래도 쫓겨나는가부지? 저 손님도 아무 말 못하잖어?》

젊은 녀인이 저켠으로 돌아가면서 중얼거렸다.

《기자란거야 뭐 맥을 쓰나. 다 눈치껏 제 돈벌내기지.》

겨우 들린 조용한 말이였으나 진수에게는 아픈 타격이였다. 그는 이상하게도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눈이 그의 심장의 밑바닥까지 꿰뚫어보는 환각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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