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4


정진수와 안한수는 신문사의 현관앞에 멎어있는 취재차에 올라 사진반의 기자를 기다리고있었다. 윁남파병렬차가 저녁에 룡산역을 떠나게 되여있어서 그곳 역으로 가려는것이다. 진수는 동생과 작별하자는것이고 한수는 윁남파병에 대한 보도를 맡은 기자로서 나가는것이다.

창덕사사건에 관한 취재권한을 진수에게 떼운 한수는 불쾌감을 어쩔수 없었으나 자기는 원래 질투같은 감정은 알지도 못한다는 태도를 꾸미고있었다.

《난 말이야. 앞질러 기사를 써팡개쳤어. 〈리별의 역두에 반공의 굳은 맹세, ㅇㅇ부대 꽃에 묻혀 윁남 출발!〉 제목이 괜찮지?》

한수는 무슨 경주에서나 이긴듯 한 만족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고 껄껄 웃어보였다. 진수는 차창에 얼굴을 향한채 빈정거렸다.

《그렇게 앞지를바엔 차라리 윁남전쟁판에 뛰여들었다는 보도까지 미리 다 내게나.》

한수는 속이 찔리웠으나 대답이 궁해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차창밖에는 각양각색의 남녀로소들이 무료한 얼굴로 누구를 기다리기도 하고 혹은 기자들을 만나 무슨 흥정을 벌리기도 하였다. 그들은 기자들이 진 빚돈을 받아내려고 상가에서 달려온 사람들이거나 혹은 물건팔러 온 뜨내기들이였다. 그러고보면 오늘이 분명 월급날이였다.

기자들이란 대개의 경우 합법적인 수입외에도 이른바 《무관제왕》행세를 하여 묵돈을 삼키는것을 례상사로 삼는데다가 방랑기질에 술군들이여서 돈을 망탕 쓰고 어디서나 외상으로 먹고 마셨다. 그러다보니 월급날이면 의례 빚받이군들에게 쫓겨다녔다. 오늘도 형편은 마찬가지였다. 무슨 관, 무슨무슨 장, 무슨 원의 알려진 오래된 접대원들로부터 빈대떡집의 쭈그렁할머니며 다방녀인들까지 와서 단골로 출입하는 기자들을 찾아 만나서는 빚을 받아내기도 하고 누구를 불러내달라고 조르기도 하였다. 당한 기자들은 이미 습관된듯 짜증을 내거나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런가 하면 양복상, 구두상, 넥타이상들까지 와서 매상고를 올리려들었다.

승용차안에 앉아있는 진수에게도 화장으로 고양이꼴을 한 몇몇 녀인들이 다가들어 교태를 부렸다.

《참 선생님은 빚단련도 안 받으셨는데 그렇게 발을 싹 끊으시겠어요?》

《우리 미인소굴 모나코료정을 깔보시다뇨. 기다리겠어요, 네?》

진수는 별 반응도 보이지 않고 얼굴을 돌려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차의 반대켠으로 서너명의 녀인들이 한수에게 달라붙어 빚을 졸랐다. 한수는 월급봉투를 꺼내여 빚돈을 갚아주기도 하고 어떤 녀자들에게는 찾아가서 갚겠노라 하며 물리치기도 하였다. 녀자들이 물러가자 키가 난쟁이같은 늙은이가 또 차창에 매달리더니 들고 온 비닐통속에서 뱀장어를 꺼내들고 너스레를 떨었다.

《자, 값은 선생님이. 요통과 정력부족엔 이거 하나면 당장 그저… 흐흐흐.》

한수는 로인의 얼굴에 모욕적으로 담배연기를 확 뿜고는 차창유리를 닫아버렸다. 사진반의 기자와 운전사가 오르자 차는 역을 향해 떠났다.

진수는 달리는 차창밖으로 자동차들과 보행객들로 붐비는 초가을의 거리풍경을 내다보며 쓸쓸한 기분에 잠겨들었다. 안한수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지난 전쟁때 겪은 일이 생각나는구만. 우리 부대는 인민군에게 쫓겨 정신없이 내빼는데 소대엔 오발사고로 중상을 입은 학도병이 하나 있었어. 할수없이 그 자식을 버리고 가게 됐는데 인민군대에 산채로 넘길수야 없지 않아. 그래 내가 권총으로 몇방 먹여버렸어. 즉사하더군.》

이야기가 이렇게 벌어지자 듣는둥마는둥하던 진수가 반문했다.

《자네가 죽였단 말인가?》

《어떡허나, 그럴수밖에 없었거던.》

한수는 뜯어보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진수의 옆얼굴을 언뜻 살피고나서 계속했다.

《그런데 이튿날 우리 부대는 인민군을 겨우 떼여던지고 서울근방의 한 마을에서 쉬게 되였는데 알고보니 그 마을이 바로 죽은 사병의 고향이였거던. 거기서 그 사병의 늙은 어머니를 만났어. 아들소식을 자꾸 묻는데 참 난처하더군. 그래 서로 다른 부대로 갈라졌다고 거짓말을 하고는 그 집에서 한 이틀 눈알이 튀여나오게 먹어댔어. 기분은 별스럽데만 굶주렸던 판에 볼것 있나? 기껏 먹고 뛰쳐나왔지.》

사진기자가 물었다.

《모르겠는걸. 음식이 목에 넘어가던가?》

한수는 거리풍경을 내다보며 쓸쓸하게 웃었다.

《친구가 죽은 집에 가서도 마시는데 뭐가 이상한가?》

아무도 말이 없었다. 눈들은 달리는 차창밖을 향하고있었으나 보고있는것은 마음속이였다. 정신적인 구토감을 느낀 진수는 문득 얼굴을 한수에게 홱 돌리는것과 함께 그를 무섭게 노려보다가 말했다.

《자네는 인간이 아니구만. 그따위 심장을 가지고야 무얼 사랑할수 있겠나?…》

무릎에 얹은 한수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이로써 진수를 원쑤처럼 여기게 된 한수는 당장 그의 멱살을 틀어잡고싶은 충동을 겨우 누르며 말했다.

《자네라고 나를 깔볼 자격이 있나? 친구사이에 너무 그러진 말게.》

얼마후 차는 룡산역사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린 일행은 려객들로 붐비는 역사안을 거쳐 역홈으로 빠져나갔다. 거기에는 이미 차창마다에 철창처럼 굵은 쇠창살을 붙여 무시무시해보이는 시꺼먼 군용렬차가 도착해있었다.

윁남으로 떠날 장병들은 렬차에서 내려 저녁해를 등지고 차체의 짙은 그늘에 정렬해있었고 그곁에는 그들을 데려가는 소임을 맡은 미군장교들과 서울의 몇몇 고위관리들이 어슬렁거리고있었다. 장병들앞에는 그들과 작별하려고 모여든 수백명의 가족친척들이 안타까이 바장이며 웅성거리고 한켠엔 성장을 하고 꽃을 든 녀배우들과 녀대학생들의 얼굴도 보였다.

안한수와 사진기자는 저켠 기자들이 모여선 곳으로 가고 진수는 군중속을 헤치고 들어가며 안해와 어머니를 찾아 살폈다. 한참만에 군중의 앞쪽에서 문희와 어머니를 찾은 진수는 가까스로 그들곁에까지 갔다. 짧은 코트에 노란 목도리를 두른 문희는 남편을 보자 눈인사를 보내더니 얼없이 군인대렬을 바라보는 시어머니에게 말했다.

《재일 아버지가 오셨어요.》

《왜 인제사 오니.》

진수의 손을 쥐고 반긴 리씨가 군인대렬의 한곳을 가리키며 재촉했다.

《저길 봐라. 우리 인수가 저기 있어. 그런데 저앤 왜 이쪽을 잘 보질 않니, 글쎄.》

진수는 첫눈에 동생을 알아보았다. 군모를 삐뚜름히 올려쓴 인수는 진수와 시선이 마주쳤으나 별로 반기는 기색도 없이 이내 피로해보이는 얼굴을 다른쪽으로 돌려버렸다. 이때 소란한 군중이 바람잦은 수풀처럼 조용해지더니 저켠으로부터 서울주재 미국대사관의 무관이 사방을 둘러보며 오만한 걸음으로 나타나고 그뒤로 국방부 차관이 따라오고있었다. 진수가 보매 얼굴도 몸집도 잡아다린듯 가늘고 긴 미국대사관 무관은 마치도 매매를 위해 상인을 대동하고 명절기분으로 자기의 목장에 나타난 목장주의 거동이였고 국방부 차관은 자기의 성실한 노력의 결과를 주인이 높이 평가하여주기만을 고대하는 소심한 목장관리인같은 모습이였다.

인솔장교의 돼지멱 따는듯 한 대렬보고의 웨침소리를 시작으로 하여 부대를 떠나보내는 간단한 의식이 벌어졌다.

국방부 차관이 부대앞으로 나오더니 목소리가 잠겨 자주 기침을 하며 환송사를 하였다. 진수는 그 연설을 듣지 않았다. 그는 렬지은 장병들의 피로가 어린 얼굴들을 하나하나 여겨보았다. 어리멍청한 표정우에 눈먼 악의와 피로가 뒤섞인 장교들의 얼굴, 승급과 명예와 향락을 위해서는 무슨 목숨이나 맨손으로 죽일수 있다고 장담하는듯 한 하사관들의 매서운 눈초리, 이들과는 대조적인 사병들의 얼굴들, 아직은 학생티나 시골내기, 애숭이티를 벗지 못한 모습들이 있는가 하면 마치도 꽃과 해빛이 찬란한 평화로운 리상의 나라로 자기들을 태워가려고 오는 화려한 륜선이라도 보는듯 들떠서 히죽거리는 가련한 철부지들도 있었다. 그러나 보다 숙성해보이는 다른 사병들은 인생이란 살아보니 괴롭고 화만 나는데 무엇때문에 죽음을 피해 달아나겠는가고 밸풀이라도 할듯 한 침통한 얼굴이였다.

진수는 가슴쓰린 동정을 안고 그들 젊은 세대들의 슬픈 운명을 생각했다.

전쟁의 불속에서, 미국제폭탄에 페허가 된 도시와 마을에서 혹은 어머니와 누이의 등에 업혀다니는 정처없는 류랑의 길에서 걸음을 익히고 말을 배운 세대였다. 그들의 어린시절의 추억속에는 잃어버린 고향에 대한 로인들의 넉두리며 친척, 친지들의 비명횡사며 부형들과의 생리별의 아픔이 아물 길 없는 상처로 남아있었다. 가난과 불행이 무리를 지어온 나날, 그들이 주은것은 매춘부들의 사진과 투신자살자들이 강변에 버린 고무신이였고 혹은 4.19의 광장에 흩어진 경찰곤봉과 탄알깍지와 피묻은 책가방이였다.

군대와 병영생활은 그들을 맞이한 새로운 감옥이였다. 거기서 그들은 군복입은 형리들에게 무서운 기합을 당하면서 한없이 흘린 눈물과 함께 인간애도 도덕도 량심도 버려야 하였으며 두뇌가 아니라 굶주린 위주머니로 생각하며 사랑이 아니라 증오로 사는것을 유일한 생활로 배우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들에게는 꿈속에서나마 미소를 짓게 하는 그리운 고향도 없었다. 왜정세월로부터 양키들이 주인행세를 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너진 생활의 잔해를 안고 향토에서 고뇌하며 가난하게 살아가는 늙은 세대에 대해서는 동정하면서도 사랑하진 않았으니 그 품에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지친 몸을 쉬여볼 그리운 품도 없는 이 청춘고아들앞에 장성들과 관리들은 윁남전쟁이라는 기발한 주제를 던졌다.

키높은 야자수아래에서 윁남에 파병된 《국군》하사관이 가슴이 엄청나게 큰 사이공의 매춘부를 안고 입맞추는 사진이 수없이 뿌려졌다. 윁남에 가면 누구나 돈과 미인과 무훈의 영예를 얻을수 있다는 광고였다. 고전을 겪는 미군과 함께 패전의 고통을 나누어야 할, 피와 야수적인 울부짖음이 쏟아지는 《베트공》과의 격전은 사랑놀음이 싫증나는 틈틈에 여흥삼아 즐길수 있는 오락으로 묘사되였다. 게다가 상관들은 꼬드겼다.

《사나이 한번 나서 외국에도 못 가보고 우물안의 개구리로 죽어서야 되겠는가!》

그리하여 일부 사병들속에서는 윁남에 대한 유혹적인 광고의 오십프로나 백프로가 거짓말이라쳐도 아무러면 이놈의 생지옥보다야 더하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에 개인의 그 어떤 사정이나 의사도 허용치 않는 윁남에로의 엄한 출동명령까지 내렸음에야.

진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이 윁남파병이 민족의 리익의 시점에서는 옳은 일인가 그른 일인가, 부당한 처사라면 방지할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하는데 대해서는 정리된 주견도 없었거니와 이상하게도 깊이 생각하는것이 두려웠다. 그것은 기자로서 다루어야 하였던 수다한 사건들앞에서도, 며칠째 그의 생각을 잡아두고있는 창덕사부지문제에서도 그러하였다. 그는 훨씬 후날에 가서야 자기 사색이 이처럼 중도반단되군 한것은 자신이 인민의 압제자들에게 복무한데서 기인했음을 명백히 깨달았다.

그러나 지금 그의 가슴을 쓰리게 하는것은 눈앞에 있는 이 젊은세대가 어찌하여 그렇게도 철저히 이지러지고 망쳐졌으며 그나마도 이제는 《위업》이라는 미명아래 파멸에로 흘러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였으며 불쌍한 동생을 그 대오속에서 바라보면서도 자신은 어찌하여 멍청히 서있어야 하는가 하는것이였다.

진수는 동생을 바라보았다. 간혹 울적한 눈길을 허공에 겨눌뿐 내내 찌프린 얼굴을 숙일사하고있는 동생을 여겨본 그는 그에게 무엇인가 다정한 말로 용서를 빌고싶었다.

문희가 그의 팔을 건드리며 조용히 물었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세요?》

그바람에 생각을 멈춘 진수는 서글픈 미소를 짓고 안해의 침착한 얼굴과 인수를 뚫어지게 바라보고있는 설음과 공포가 뒤섞인 어머니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그사이 기자들에게 싸여 연설을 끝낸 국방부 차관이 큰일이라도 치른듯 한 얼굴로 연설원고를 누구에겐가 넘기자 당국자들이 기관별로 할당하여 끌어낸 녀인들이 군중앞으로 나가 장병들에게 꽃묶음을 주기도 했는데 주는측도 활기없이 주저주저하고 받는 장병들도 침울한 표정을 풀지 못하는품이 똑 상가집에서 조화를 주고받는듯 했다. 그들중에는 녀배우들과 녀대학생들도 보였는데 특히 녀대학생들의 모습은 눈에 드러나게 침울했다.

그 허식이 한차례 지나갔으나 정인수를 비롯한 적지 않은 장병들은 꽃을 받지 못하고있었다.

군중의 뒤켠에서는 꽃을 든채 앞으로 나오기를 꺼려하는 수십명의 녀대학생들이 문교부관리와 헌병에게서 모욕적인 꾸중을 듣고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반감을 감추지 않았다. 코트를 입은 자그마한 처녀가 입술을 깨물더니 꽃묶음을 땅바닥에 팽개치고 짓밟아버렸다. 그러자 두세명의 다른 처녀들도 꽃을 팽개쳤다. 이 단호한 반발에 놀라고 당황한 헌병들은 야멸차게 욕질하며 그들을 저켠에 세워둔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왁살스럽게 끌고 갔다. 그바람에 주춤거리던 다른 녀대학생들은 성급한 재촉을 받으며 앞쪽으로 떠밀려나갔다. 그들중에는 박영옥도 있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처녀들과 철갑모들이 소란스레 뒤섞였다.

허우대가 큰 녀대학생이 인수의 목에 꽃목걸이를 걸었다. 순간 인수는 멀지 않은 곳에서 뜻밖에도 박영옥이 얼굴을 숙이고 한 늙은 하사관앞으로 꽃묶음을 들고 다가가는것을 보았다. 놀란 인수의 눈에서는 불꽃이 이는것 같았다. 아무런 량해도 구하지 않고 서둘러 목에서 꽃목걸이를 벗어 허우대큰 녀대학생에게 도로 주어버린 인수는 그 무엇으로써도 더위잡을수 없었을뿐더러 그에게 아픈 상처만을 남긴 교수의 딸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박영옥!…》

이름을 부른 목소리의 임자를 돌아본 영옥은 가늘게 몸을 떨며 눈길을 떨구더니 꽃묶음을 쥔 팔을 맥없이 드리우고 다시금 원망과 두려움이 어린 흐린 눈길로 인수를 건너다보았다. 그 녀자는 분하기만 했다. 제발 그의 눈에만은 띄우지 않기를 그렇게도 가슴조이며 바랐는데 무슨 운명이 이렇게도 심술이 궂은지 모를 일이였다.

어찌할수 없어 역에까지 끌려나온 영옥은 윁남전쟁에 나가는 장병들에게 꽃을 준다는것이 도무지 내키지 않는데다가 더구나 잊어버리고만싶은 인수라는 특정한 사람에게 꽃을 주는 일은 있을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쪽에서 싫은 남자가 나를 짝사랑할 때는 되도록 만나지 않는것이 상책일것이다. 더구나 인수라는 사람은 남의 나라에 가서 범죄적인 전쟁을 치르어야 할 딱한 존재였다. 그런데 그에게 꽃을 주게 된다면 그는 자기가 마치도 사랑을 받아들이거나 지어는 범죄자체도 묵인해주는것으로 오해할수도 있고 어쩌면 그것이 친분관계를 새롭게 만드는것으로 되여 앞으로 어떤 우환거리를 빚어낼지도 모를 일이였다.

역으로 나오면서 내내 이런 생각에 두려웠던 영옥은 인수의 부름을 당하게 되자 어찌할바를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대로 도망치고 싶었으나 숱한 사람들이 주시하는 속에서 그렇게 극적인 행동을 할만 한 용기가 나지 않았고 그것이 인수에게 지나친 모욕으로 되리라는 위구심도 있었다. 그런데 인수는 모두에게 들으라고나 하는듯 커다란 소리로 다시 불렀다.

《그 꽃을 나에게 주시오!》

당황하여 생각이 혼란된 영옥은 어쩔수없이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숙인채 인수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꽃을 주는것은 내 마음이 아니라 몸의 일부인 손인줄 아세요 하고 알리는것처럼 축 늘어진 한손으로 꽃을 내밀었다.

인수는 경멸에 가까운 이 랭담이 놀라왔으나 처녀가 수집어서 따뜻한 마음을 감추고있는지도 모를 일이며 어쨌든 이렇게 다시 보게 된것이 다행스럽기도 하여 역시 한손으로 꽃을 받으며 빙그레 웃었다.

이 광경을 보는 진수는 동생과 보통사이가 아닌것으로 보이는 처녀가 뜻밖에도 자기가 대학시절부터 존경해오는 력사학계의 권위있는 로장의 한사람인 박명찬교수의 딸인데 우선 놀랐고, 그들의 이러한 관계가 너무도 파격적이라는것에 위구를 느꼈다. 그러나 송문희와 리씨는 인수가 퍼그나도 어여쁘게 생긴 처녀를 거느린것을 희한해하면서 서로 의미있는 눈짓을 교환했다.

인수는 꽃묶음에서 이울어진 코스모스 한송이를 뽑아버리면서 영옥에게 말했다.

《전번 일 용서해주시오! 꼭 가치있는 인간이 되여 오겠소.》

영옥은 무슨 말을 할듯 했으나 동정의 눈길로 인수를 언뜻 바라보았을뿐 고집스레 입을 열지 않았다.

인수는 불쑥 그의 손을 쥐며 강요했다.

《그래, 아무 말도 안하겠단 말인가요?》

영옥은 자신의 얼굴이 정서의 긴장을 나타낼수록 잊을수 없는 싱싱하고 눈부신 아름다움으로 가련한 인수의 정신을 더욱 휘저어놓는다는것을 모르고 분한듯 입술을 깨물고는 짜증을 내며 사나이의 억센 손아귀에서 자기의 손을 홱 채여뽑았다. 그러자 무안해진 인수는 다시금 처녀의 팔을 틀어쥐며 말을 더듬거렸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놀라움과 부끄러움에 몸을 떨며 사나이의 손을 뿌리치려고 안깐힘을 쓰던 영옥은 화가 난김에 얼결에 다른 손으로 인수의 가슴을 콱 밀쳤다. 인수는 몸의 균형을 잃고 모양없이 비칠거렸다. 무안을 당하여 낯빛이 흐려진 그의 손에서 꽃묶음이 털썩 떨어졌다. 처녀는 눈물이 글썽한 얼굴을 푹 숙인채 군중속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이 사건은 한순간의 혼잡속에서, 더구나 제가끔 리별하는 자기의 혈육에게 정신을 쏟고있는 때에 벌어졌기때문에 별로 두드러져보인것은 아니였으나 인수를 눈여겨보던 진수부부와 특히 그의 어머니에게는 머리가 핑 도는 충격을 주었다.

《아이구, 저런!… 저년이 어쩌자구…》

리씨는 이렇게 소리치며 박영옥이 군중속에 사라질 때까지 분을 못 참아 발을 탁탁 구르는가 하면 혼란을 방지하려고 군중을 밀어붙이는 헌병들을 뚫고나가려고 헛되이 안깐힘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나 놀라면서도 침착성을 잃지 않은 문희는 분위기의 조야스러움에 환멸을 느끼는 얼굴이였다.

진수는 기자의 권한으로 헌병을 물리치고 동생한테로 나아갔다.

그러나 이때 인솔장교의 승차명령이 떨어져서 모든 군인들이 렬차에로 몰리는 바람에 진수는 동생을 만날수 없었다. 비참해진 인수는 어머니와 형을 만나는 괴로움에서 벗어난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는지도 모른다.

장교들과 헌병들의 재촉을 받아 군인들이 렬차에로 몰리자 군중은 순간에 마음의 균형이나 의지력을 잃고 절망적인 참화속에서 구원을 부르짖는듯 저마다 허공에 손을 내두르며, 이 땅을 떠나가는 혈육의 이름을 피타게 부르며 무섭게 달려나갔다.

《종삼아!》, 《덕기야!》, 《오빠!》, 《영식아!》…

한없이 쏟아지는 이름들, 격랑이 휘뿌리는 난파선의 쪼각같은 이름들, 놀라고 억울한 심장에서 뿜어나오는 비명같은 목소리로 웨치는 이름들, 그것은 영원히 잃어버릴지 모르며 혹은 되찾는다고 하더라도 무서운 범죄의 대명사로 바뀔지도 모르는 그 이름을 마감으로 어린시절의 때묻지 않은 사랑의 이름으로 불러보는 애끊는 절규였다. 아니, 그것은 파멸에로 떨어지는 자식과 동생과 오빠들을 조상하는 오열이였다.

밀어닥치며 끓어대는 군중속에 휘말려든 진수는 거센 울분에 눈앞이 흐려졌다. 동생과 헤여진다기보다는 동생을 비롯한 수백명의 군인들이 집단적으로 바다에 수장을 당한듯 한 무서운 상실감이 가슴을 때렸다. 이 비통한 절망은 이전에 동생을 살뜰히 아껴주지도 못하고 그를 구원하기 위해서 싸우지도 못한 죄책감과 합쳐져서 그를 견딜수 없이 괴롭혔다. 그리하여 진수도 끓어대는 다른 사람들처럼 목멘소리로 동생을 부르며 분별을 잃고 허둥거렸다. 그러면서도 그는 한편 군중의 격랑속에서 처참한 모습으로 헤매고있을 어머니를 찾느라고 사방을 급급히 살폈으나 찾을 길이 없었다.

갈수록 사나와지는 군중속에서는 세상을 저주하고 당국자들을 규탄하는 부르짖음이 연방 터졌다. 진수의 뒤켠에서는 한 중년사나이가 두주먹을 휘두르며 피타게 웨쳤다.

《박정희놈을 때려죽이라아! 때려죽이라아!…》

렬차에 오른 군인들은 다시 차창을 거쳐 밖을 내다보았으나 가로세로 붙인 굵은 쇠창살때문에 겨우 손을 밖으로 내밀고 흔들뿐이였다. 이렇게 되여 군중은 서로 밀치고 짓밟히며 차창마다에 매달려 몸부림쳤다. 헌병들은 무기를 휘두르며 군중을 떼여놓으려고 날뛰였으나 허사였다. 고위관리들은 자기들의 처사가 이렇게도 거센 울분에 부닥친것을 보고는 겁을 먹고 지하도로 통하는 계단으로 빠져나갔다. 갈수록 더욱 날뛰며 울부짖는 군중속에서는 들볶이며 옷이 찢어지고 머리마저 풀어진 녀인이 주먹을 내두르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이놈들아, 내 아들을 내놓으라!》

그러자 숱한 목소리가 되받아 웨쳤다.

《내 아들을 내놓으라!》

《내놓으라!…》

이때 진수는 어머니가 무서운 모습으로 사람들속을 헤치며 인수를 찾아 한 차창에서 다른 차창으로 정신없이 헤매는것을 보았다. 그러나 어느 차창에도 인수는 보이지 않았다.

군용렬차는 목쉰 기적을 길게 울리더니 천천히, 힘겹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래도 군중은 렬차에 따라묻어 움직이며 아우성을 치고 리씨는 여전히 인수를 찾아 한 차창에서 다른 차창으로 절망적으로 헤매였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점점 더 속력을 높인 군용렬차는 자기 몸에서 소란한 사민들을 털어버리고 금방 해가 진 뒤에 타번지기 시작하는 황혼속으로 쫓기는 괴물처럼 사라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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