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5


어지간히 술기운이 오른 량성도론설위원은 미국인전용회관안에 있는 술집에서 꼬냐크병을 기울여 채운 마지막잔을 서울에서 발간하는 영문신문의 미국기자인 에드워드 하틀리에게 내밀며 영어로 롱을 하였다.

《이것 봐, 자네가 미국인이라 해서, 핵무기와 〈자유의 녀신상〉을 등뒤에 거느렸다고 해서 이 땅의 계집들이 모두 자네것인줄 아나? 빨리 결혼하란 말이야!》

이마귀에 난 오랜 상처자리와 불색고수머리가 인상적인 하틀리는 물마시는 닭처럼 고개를 뒤로 젖혀 잔을 내고는 비교적 조용한 목소리로 주위를 둘러보며 대꾸했다.

《난 워낙 인간행위가운데서 결혼을 제일 시시한걸로 보거던. 한 녀자에게 매여살다니, 더러운 인습이지. 두고보게나, 21세기엔 모든 남성은 모든 녀성에게 속할걸세.》

하틀리는 눈살을 찌프리고 털이 부시시한 손을 내저으며 계속했다.

《결혼은 자유의 무덤일세. 생각해보게. 시장에서 우유를 얼마든지 살수 있는데 왜 집에서 젖소를 기르겠냐 말야.》

하틀리에게 각종 기사거리와 그밖에 많은 자료를 제공하고있는 량성도는 흥미있다는듯 껄껄 웃었다. 그러나 성도에게 자기와 같은 아메리카인《재사》를 친구로 가지고있는것을 자랑으로 알도록 만드는데 성공한 하틀리는 웃지도 않고 담배연기만 뿜었다. 그는 자기가 세계에서 일류기자일뿐아니라 여섯개 나라 말로 번역된 장편소설의 저자라고 뽐내는것을 좋아했다.

량성도가 그를 처음 알게 된것은 지난 조선전쟁의 말기였다. 당시 미국의 유력한 한 신문의 일본특파원으로서 도꾜에서 흥청거리고있던 하틀리는 조선전쟁에 대한 책을 쓴다면서 가끔 서울에 왔는데 성도는 그때 《국군》의 한 군단을 틀어쥐고있던 미국인고문의 통역관 겸 정보장교로서 그와 사귀게 되였다. 하사관으로 참전한 태평양전쟁때 남양의 어느 섬에서 추장의 딸을 쏴죽이고 그곳 토인들에게 무리매를 맞아 죽을번 한 일이 있어서 지금은 증명서처럼 된 이마의 상처도 그때의 선물이라고 자기소개를 한 하틀리는 첫눈에 벌써 량성도의 마음에 들었다.

첫시작부터 녀성들에 대한 범죄적인 오락으로 특징적이였던 그들의 교제는 몇해를 두고 끊길락말락하며 겨우 이어져왔었다. 그런데 5.16군사쿠데타가 금방 지나간 어느날 하틀리는 경쟁률이 매우 심한 도꾜특파원자리를 버리고 서울로 이사해왔으며 얼마후에는 급료도 전직보다 아주 낮을뿐더러 영향력도 별로 없는 서울의 한 신문사에 취직하였다. 량성도가 어떤 장소에서 하틀리를 만나 거의 몰락이라고 볼수 있는 그의 이런 변화를 놀라와하자 그는 오히려 호걸웃음을 웃으며 말했다.

《화려한 직업을 버려야 바보를 면할수 있거던. 이를테면 본관은 사랑하는 〈한국〉미인들을 위하여 도꾜의 매혹을 버렸지.》

이때로부터 그들은 자주 만나는 친우로 되였고 또 은밀한 사업으로 떨어질수 없는 사이로 결탁한것이다.

그들은 술집을 나오려다말고 안에 있는 위생실에 들렸는데 성도는 거기에 걸려있는 한 괴짜그림을 보고 폭소를 터뜨렸다. 그가 너무도 야단스레 웃어대는 바람에 그곳을 출입하는 외국인들이 그를 미친사람으로 알 지경이였다. 다름아니라 위생실벽에는 큰 세퍼드로부터 주먹만 한 삽살개에 이르는 온갖 개들이 엄숙한 식전이나 거행하듯 한줄로 죽 서서 사람처럼 소변을 보는 그림이 붙어있었던것이다.

량성도는 제 이마를 치며 한바탕 웃더니 하틀리에게 선언했다.

《걸작이야! 당신들은 참 사색할줄 알거던. 문화가 가치있는것이라면 이런 웃음을 낳을줄 알아야지. 이건 20~30세기의 문화일세!》

《한국》지식층의 정화로 자처하는 사람이 외국인변소에 걸린 추악한 그림을 보고 이렇게 감탄할 때 동료의 치졸성에 놀란 하틀리는 자신이 식민지에 와있는 선발된 인간이라는것을 온몸의 감각으로 느낄수 있었다.

《이건 극비밀인데 이 그림은 로스안젤스의 어느 호텔에 걸려있는 원화를 죤 버클교수가 인쇄해다가 남몰래 내놓은거란 말야.》

성도는 눈이 둥그래졌다. 버클이라면 그가 존경해마지 않는 선교사이며 대학의 교수인데 어떻게 그럴수 있나싶었다. 말이 난김에 그들은 버클의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교수의 딸이 《한국》노래를 부른다는것이다.

버클교수가 살고있는 집은 옛적에 도이췰란드인선교사가 살던 적갈색의 고지크식지붕이 솟아있는 2층벽돌집이였다. 성도와 하틀리는 그 집 현관에서 버클의 마중을 받았다. 백장미무늬의 회색세타차림에 실내모를 뒤머리에 얹은 버클은 금발이 하얗게 세여버린 오십대의 침울한 얼굴의 사나이였다. 얼굴표정이나 모든 동작은 고집스레 엄숙성을 드러내고있었고 지어 웃을 때조차 그러하였다. 그는 량성도와 하틀리의 등에 각각 손을 얹어 친절을 표시하면서 그들을 응접실로 안내하였다.

버클은 서울의 카톨릭교사회와 학계에서 선교사와 교수라는 두가지 간판을 든 파격적인 존재였는데 그 두 간판은 그에게 《권위》와 《매력》을 서로 보충해주고있었다. 바꾸어말하면 선교사로 나설 때는 박식의 대명사인 교수라는것때문에 그의 종교적인 행동은 심오한 과학지식의 결과인것처럼 보이게 했으며 반대로 대학에 나가면 선교사인것으로 하여 그의 학술적주장은 어떤 숭고한 사명감과 합치되는것으로 보이게 했다.

량성도와 하틀리는 호화장정을 한 번쩍거리는 책들이 빼곡한 두개의 책장과 그우에 걸린 성모마리아를 그린 커다란 유화가 이채를 띤 서재식으로 꾸려진 화려한 응접실에 들어섰다. 거기서 그들은 버클의 손님으로 와있는 대학교수인 구일동을 만나 인사를 나누었다. 몇년전에 하바드대학 박사원을 나오면서 미국의 근세동방정책사에 대한 연구론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타가지고 귀국한 야심많고 도고한 구일동은 량성도나 하틀리와는 구면이면서도 뻣뻣하게 대하는것이 개 닭보듯 했다. 마치도 자기의 권위는 누구에 대해서나 사정없이 무뚝뚝하게 대해온데서 이루어진것임을 확인해보이는듯 한 얼굴이였다.

버클은 손수 부은 차잔을 성도와 하틀리앞에 내놓으며 잘 울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엘레나의 〈한국〉노래는 아직 련습이 부족인가본데 먼저 올라가보시든지 좋도록 하시오. 우리도 곧 올라가보겠소.》

언제나와 같이 이 집에 들릴 때면 명절기분인 성도는 차잔을 들면서 유쾌한 얼굴로 대답했다.

《네, 곧 올라가봐야죠. 따님이 〈한국〉노래를 부른다는건 우리 음악에 국제적인 가치를 선물하는것이라고 할가. 참 따님은 재간둥이거든요.》

이렇게 말하면서도 그는 금방 보고 온 소변보는 개들에 대한 그림을 수집해온 사람이 버클이라는것을 생각하고는 빙그레 웃지 않을수 없었다. 하틀리는 커피를 한잔 들고는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버클은 담배를 피워물며 구일동에게 잠시 끊어졌던 이야기를 다시 폈다.

《알만 합니다. 구선생 의견을 요약하면 박정희식정치는 부단히 민중의 반항을 생산한다, 그런데 박정희란 곧 미국정치의 산물이다, 고로 민중의 반항은 반미로 쏠리기마련이다, 이런 삼단론법이겠지요? 그러나 박정희처럼 검열된 철저한 반공정치인은 없다는 점도 고려해야지요. 일전에 내가 우리 대사를 만났을 때 그는 현시점에서 미국의 〈한국〉정치의 핵심은 박정희라는 현상이 아무리 괴상한 질병이라고 하더라도 그를 최대한 강화하고 연장하는것이라고 단언했소.》

구일동과 량성도는 박정희를 《괴상한 질병》이라고 이죽거렸다는 미국대사의 표현이 너무도 경멸적인데 놀라서 처음으로 서로 마주보고 웃었다. 버클은 말을 계속했다.

《금년(1967년) 상반년의 정치일지를 상기해보면 백악관과 이곳 대사관이 박정희의 립장을 강화해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가를 알수 있을것이요. 2월말에 〈한국〉의 〈국회〉의장을 대북에 보내여 장개석의 지지를 받게 했지, 3월초엔 서도이췰란드대통령이 서울에 왔지, 련이어 〈한국〉총리가 죤슨대통령을 찾아가 만났지… 헌데 이렇게까지 련속 법석을 떨어대면서 그를 다시 〈대통령〉에 당선시켰지만 학생들을 비롯한 대중은 역시 강력한 항의시위로 대답했거던. 여기에, 바로 여기에 나나 구선생이 심사숙고해야 할 문제가 있다는겁니다.》

구일동은 번들거리는 넓은 이마에 한손을 얹고 진실로 심오한 사색을 할줄 아는 꾀많은 재사연한 묘한 미소를 짓고 말했다.

《알만 합니다. 요컨대 젊은 세대들을 우리가 틀어쥐지 못한것은 엄중한 실책이다, 그들을 우리의 바리케드에서 떼여가는 그 저항파교수들을 결정적으로 격파해야 한다, 이런 말씀이겠지요?》

버클은 웃지 않고 머리만 끄덕거렸다. 구일동은 계속했다.

《그 저항파들을 철저히 격파하자면 그들이 주장하는 민족성옹호나 민족주의적인 문물과 제도란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의 산물인 반면에 그리스도교적인 서구문명은 이미 세계문화로 확립됐다는 점을 강조해야겠지요. 이를테면 미국문화를 축으로 한 그리스도교문화는 합리주의에 기초한 우월한 기술지식과 산업력이라든가, 군사력을 가지고 이미 낡은 세계를 석권하고 지구를 하나의 세계문화라는 보자기로 거뜬히 싸들었다는것을 확인해보여야지요. 요컨대 서유럽의 문명 특히 아메리카니즘의 공세로 민족단위의 문물과 제도란 옛 인까의 문명이나 마야의 문명처럼 어쩔수없이 사멸할것이라는것을 론증하는것이지요.》

버클은 미국인들보다도 더 미국적인 구일동의 견해가 어느 정도 마음에 들어서 실눈을 짓고 그를 바라보고나서 자기의 말이 결론으로 된다는것을 강조하듯이 둘째손가락을 높이 들어 흔들며 활기를 띠고 말했다.

《중요한것은 민족주의적인 사고방식이란 공산주의자들에 의하여 흔히 민중을 움직이기 위한 지레대의 받침돌로 리용된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점을 민족성옹호자들에게 상기시켜서 그들의 눈앞에 공포의 검은 그림자를 드리워야 합니다.》

책장에서 호화본으로 된 판화집을 꺼내여 뒤적거리던 량성도가 끼여들었다.

《옳은 말씀입니다. 이 말썽많은 아시아에서는 민족주의자들의 좌익은 공산주의자들과 한전호에서 후렴구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지요. 이른바 〈외세배격〉이라는 후렴구말입니다.》

성도는 주의깊이 듣고있는 구일동을 훔쳐보며 말을 이었다.

《선생네 대학에서는 로장파로 자처하는 박명찬 같은 교수들이 아마…》

구일동이 량성도의 말허리를 꺾었다.

《박명찬은 어떤 경우에도 빨갱이로는 못돼요.》

《글쎄, 난 모르겠는걸.》

버클이 믿지 못해하자 구일동은 활기를 띠였다.

《그 령감은 낡은 지식의 과다증에 지쳐빠졌거든요. 그 무거운 력사창고를 잔등에 지고서야 공산주의는 고사하고 근대라는 가파로운 언덕에도 오르지 못하지요. 일전에 그 교수가 낸 반미적인 색채가 짙은 론문에 대해서는 내가 반박론문으로 호되게 때렸습니다만…》

버클은 실눈을 짓고 빈정거렸다.

《당신의 반박론문은 나도 읽었소. 그러나 빈약합니다. 내가 강의에 나갔다가 그 박교수를 만났을 때 넘겨짚어봤지. 〈구박사가 당신의 론문을 꽤 맵짜게 때렸거든요.〉 했더니 그가 하는 말이 〈많이 배웠지요. 그 혈기가 부러워요. 그런데 그 량반은 방법론이 걸렸어요. 그런 비뚤어진 사고방식을 가진 선생에게 나의 론문이 만약 지지를 받는다면 그보다 슬픈 일이 또 어데 있겠어요?…〉 이러면서 허허 웃더란 말입니다.》

구일동은 화가 났으나 권위가 상하지 않을 정도로 빙그레 웃었다.

그러나 꾸며짓는 미소도 노여움때문에 얼굴에 번지는 피빛은 감추지 못했다.

버클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림사이로 비쳐드는 해살을 받으며 창가를 거닐면서 다시 입을 열었다.

《로장인 박명찬을 꼭 휘여잡아야 합니다. 그를 따르는 많은 숭배자들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니까.》

여기서 버클은 손목시계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는 성도에게 말을 건넸다.

《당신네 신문사에서 무엇때문인지 기자가 만나러 오겠다고 하는데… 시간이 됐구만.》

량성도가 물었다.

《이름이 누군지요?》

《정진수라던가?》

《정진수라면 내가 관심하는 기자인데 역시 박명찬교수가 키운 수재지요. 따님 엘레나에게 다니는 송설희양은 바로 그 사람의 처제구요.》

버클은 흥미있다는 얼굴이였다. 이때 손님의 래방을 알리는 초인종소리가 울렸다. 마중나간 버클은 약속한 시간에 나타난 초면인 정진수기자를 현관에서 맞아들였다. 그사이 구씨와 량씨는 음악을 들을겸 2층으로 올라갔다.

버클의 안내로 응접실에 들어와서 창가에 놓인 가죽의자에 앉은 진수는 피로해보이는 눈으로 방안을 둘러보다가 맞은켠에 앉은 버클의 담담한 얼굴에 시선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한두가지 도움을 받고싶습니다. 저는 선생께서 관여하시는 대학과 교회가 창덕사부지에 종교문화원을 건설한다는 명목으로 그 터전을 넘겨받으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있습니다. 그런데 내막을 헤쳐보니까 그 종교문화원을 건설한다는 광고는 놀랍게도 거짓말이거든요. 한데 적지 않은 사람들은 그 종교문화원건설에 대한 첫 구상은 선생께서 발기하신걸로 알고있어요.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모로 비스듬히 기대여앉은 버클은 화제가 뜻밖인데다가 너무나 솔직한 질문에 기분이 상한듯싶었다. 이 땅에선 매사에 스승으로, 지도자로만 행세하여오던 그는 마치도 어떤 형사사건의 피고로서 검사에게 심문을 당하는듯 한 이러한 굴욕은 참기 어려웠다. 게다가 그는 이 기자의 지성미가 풍기는 사색적인 눈길에는 미국인들에 대해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징벌도 할수 있다고 하는듯 한 당돌한 무엇이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음험한 버클은 옛친구의 아들을 대하는듯 한 얼굴을 하고 대답하였다.

《창덕사부지에 대한 소유권을 둘러싼 아름답지 못한 싸움에 나를 관련시켜보는 그 용감성이 우선 마음에 드는군요. 헌데 아시다싶이 그 사건과 나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는것을 밝혀두지 않을수 없소.》

버클은 수고스럽게 담배와 라이터를 진수앞에 놓인 탁자우에 밀어놓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는 종교문화원건설에 대한 구상은 사실인것이요. 다만 교회와 대학재단은 재정부족으로 그 구상을 실천에 옮기는데 난관을 겪고있었던것 같소. 나에게까지 응원을 바라기에 직접 아시아재단의 한 분과에 자금원조를 요청한 일까지 있소. 하긴 거기서도 절약바람이 불어서 꼬여있긴 하지만… 하여튼 그 구상만은 사실인줄 믿고있소.》

진수는 이 말이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그는 이곳으로 오기에 앞서 대학재단리사회를 여러모로 찔러보았는데 그들은 종교문화원설계도를 보여달라는 진수앞에 설계도를 보여주지 못하고 쩔쩔매기만 하였다. 광고와는 달리 설계도란 있지도 않았던것이다. 게다가 진수의 친구이며 옛 동창인 그 대학의 한 조교수가 자기 이야기를 비밀에 붙인다는 약속을 받고 알려주는데 의하면 재단이 종교문화원을 짓는다는 거짓말로 우선 창덕사부지를 빼앗은 다음 그것을 다시 민규석이라는 매판자본가에게 넘겨줄데 대한 밀약이 오래전부터 돼있다는것이였다. 한데 민규석이라면 진수의 장인이 전무로 일하는 《한일자동차》회사의 사장이 아닌가!

진수는 그 놀라운 비밀의 사실을 확인할겸 대학재단 리사장에게 다시한번 종교문화원설계도를 보여줄것을 강경히 요구해보았다. 그랬더니 어느 자그마한 나라의 왕쯤은 찜쪄먹을듯 풍채가 좋은 재단 리사장은 현장을 발각당한 좀도적으로 둔갑하여 《기자어른, 다 굳어진 일을 가지고 뭘 그러쇼.》 하며 온갖 너스레를 떠는것과 함께 뢰물을 먹이려고 떡돌에 찰떡 엉켜붙듯 하였다.

진수는 그를 겨우 떼여버리고는 잠시 짬을 내여 시골로 돌아가는 어머니를 바래드리고 곧장 버클을 방문한것이다. 진수는 버클까지 더러운 음모의 조직자라고는 보지 않았다. 오히려 《고결한 신사, 인도주의자》로 알려져있는 이 버클은 사기협잡을 한 무리를 틀림없이 규탄할것이며 사태를 바로잡는데 허심하게 도움을 줄것으로 기대하고 왔던것이다. 그러나 이 은발의 로회한 미국인은 자신을 그 사건과는 무관계한것으로 못을 박으면서도 종교문화원건설의 구상만은 사실이라고 고집함으로써 대학재단과 그 배후에서 커다란 검은 마수를 내뻗치는 또 다른 매판자본가를 은근히 옹호하고있는것이 아닌가.

《아닙니다. 선생은 잘 모르시는가 보군요.》

진수는 취재수첩을 펼치며 말했다.

《나는 창덕사부지가 한 매판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것까지 알고있습니다.》

《호오, 놀랍습니다. 누구의 고백입니까?》

《그건 말하지 않겠습니다. 정보를 알려준 사람의 부탁이니까요.》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에 진수가 다시 말했다.

《협잡군들은 얼마나 비렬합니까. 한 매판을 위하여, 또 거기서 돈을 얻어먹자고 의지가지없는 수많은 령세민들을 사원부지에서 쫓아내는겁니다. 이것이 면밀히 조직된 강도행위가 아니란 말입니까?》

격하여 주장하던 진수의 목소리는 마음속아픔을 털어놓는 애원조로 변하였다.

《선생님, 부탁합니다. 권위와 영향력을 행사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짓밟는 이 범죄를 부시는 일에 도움을 주십시오!》

버클은 량미간을 꽉 찌프린채 무슨 생각에 옴하여 진수를 노려보다가 긴장을 풀며 말했다.

《당신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스럽소. 그러나 만약 한 자본가가 무서운 가난에 짓눌려 쓸모없던 땅에 생산적인 업체를 건설한다면, 그리하여 이 사회의 후진성을 메꾸는 일에 기여할수 있다면 그것 역시 주목거리가 아닐가요? 뿐더러 일반적으로 창조와 건설과정, 넓은 의미에서의 문화의 발전과정이란 희생을 동반한다는것에 대해서는 당신도 동감이겠지요?》

《그럴수 없습니다.》

진수는 실망하여 항의했다.

《민중과 대립하여 민중을 희생시키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수 없습니다. 만약에 그것이 정당화될수 있다면 명백한 범죄와 인도주의적선행과의 차이는 어데 있는것이겠습니까?》

버클은 자리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며 웅얼거렸다.

《옳은 말이요.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만이 민중이 아니지요. 그 점에서 민중의 권리와 리익은 신성불가침이요. 헌데 〈한국〉과 같은 후진사회에서는 아직 민주주의를 제대로 소화 못하는데 불행이 있거던. 그럴수록 나는 내가 이 땅에서 방조하고있는 지식과 문화의 창조자로서의 사명을 더욱 무겁게 여긴단 말입니다.》

진수의 요청을 이렇게 에둘러 거부하면서 도피할수 있는 안개를 뿜은 그는 문득 진수를 향하여 자주 활용하는 보충적수단인, 사해동포주의자와도 같은 화려한 미소를 지었다. 그것은 눈만이 아니라 백발과 얼굴의 모든 주름살까지 남김없이 써서 웃는 미소로서, 마치도 인간을 사랑하는 이 기자야말로 자기와 필생의 사명을 같이하는 한없이 친근한 형제여서 바라만 보아도 행복감에 가슴이 끓는다고 고백하는듯 한 그러한 미소였다.

이때 누군가 현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버클은 진수를 회피할수 있는 구실이 생긴것을 기뻐하며 마중나가더니 옷차림이 초라한 검붉은 얼굴의 늙은이를 달고 들어왔다. 실내에 깔린 주단에 기가 질린듯 맨발로 들어선 불의의 방문자는 썩살이 앉은 커다란 두손을 마주 쥐고 거듭 허리를 굽신거리며 애원조로 말하였다.

《선교사님, 이거 안됐습니다. 저는 신도인데요. 저 거시기 손수레를 끄는 아들놈이 미군차에 치워죽게 돼서 사방 헤매며 송사중이온데 이거 안됐습니다. 돈없어 입원도 못 시키고있어요. 제발 그 미군에게서 치료비라도 먼저 받도록 도움을 줍쇼!》

로인은 저고리 안주머니에서 접은 쪽지를 꺼내들고 말을 이었다.

《여기에 그 미군의 주소가… 네, 이거 죄송합니다. …》

버클은 쪽지를 받지 않고 주단귀에 꼼지락거리는 로인의 험한 맨발을 굽어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슬픈 일입니다. 무서운 불행이군. 그런데 어떻게 헌다? 그런 일엔 난 전혀 무능하고 또 관계할수도 없는 형편인데…》

이런 때 바둑무늬의 달린옷을 입은 버클의 뚱뚱한 마누라가 나타나더니 방문자들의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떠들어댔다.

《당신도 참, 언제부터 기다리고있는데 이러고있어요. 빨리 올라오세요. 빨리!》

버클은 눈찌가 날카로와진 진수를 보더니 마누라에게 말했다.

《곧 올라가겠소.》

그리고는 로인의 잔등에 손을 얹고 그를 문밖으로 밀고나가며 말했다.

《매우, 매우 미안합니다. 리해하여주시오. 나는 당신의 가련한 아들을 위하여 주님께 거듭거듭 기도를 드리겠소. 그럼 안녕히!》

겉으로는 친절한 배웅이지만 실은 모욕적인 추방이였다. 로인은 문밖에서 발에 신을 걸치고 밀려나가면서 몇번 앙버티며 무어라고 고래고래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 광경을 보는 진수는 뜨거운 피가 얼굴에 쏠리는것을 느꼈다. 버클에게 어떤 기대를 걸고 찾아온 자신이 바보로 느껴졌다. 추방당한 로인을 옹호하여 버클을 때리는 맵짠 기사라도 쓸가보다 하고 생각하면서 복도에 나섰다. 그러나 현관문을 닫고 돌아오던 버클은 진수를 친구대하듯 하면서 말했다.

《벌써 가시려고? 그건 안됩니다. 우리 집 음악회에 초대합니다. 량성도씨랑 송설희양이랑 〈한국〉인들 여럿 와있습니다.》

그러면서 처에게도 요청했다.

《우리의 형제인 저명한 기자선생을 안내해드려요.》

버클의 처는 사교적인 미소와 함께 목례를 하고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모시는 영광을 지니겠어요.》

건성으로 인사를 받은 진수는 풍자적인 말을 던지고 나갈것인가, 아니면 이곳에 와있다는 처제가 무슨짓을 하는지 한번 볼것인가 하고 망설였다. 결국 그도 2층으로 올라갔다.

버클부처와 함께 방음장치가 된 둔탁한 문안으로 들어선 진수의 눈앞에 펼쳐진것은 광기어린 무도곡에 맞춰 허영과 쾌락에 뛰노는 남녀의 무리였다. 과반수는 버클의 딸 엘레나와 가까이 사귀는 서울시내의 부자집 딸들이였다. 그들은 방자스런 눈짓을 주고받으며 온몸을 흔들어대는것이 마치 거기에 인생의 모든 보람과 영예가 있다는듯 한 모습이였다.

흰 저고리에 감색치마를 받쳐입고 분홍수건을 뒤머리에 동인 엘레나는 량성도와 짝을 뭇고 공주같은 자랑에 넘쳐있었다. 성도는 능란한 솜씨로 이끌며 연신 가벼운 롱담으로 처녀의 미소를 자아내며 진수의 눈앞에로 지나가다가 그를 알아보곤 눈을 질끈 감아보였다. 한편 화려하게 양장을 한 설희는 허영에 달뜬 얼굴로 하틀리와 짝을 뭇고 들까불다가 진수를 발견하고는 뜻밖인듯 놀라더니 속눈섭이 긴 눈을 치떠빨며 자랑스러운듯 웃어제꼈다. 진수는 힐문하는 시선을 던지며 버클부처와 함께 춤판을 구경하고있는 구일동의 쏘파에 가서 앉았다. 버클의 처가 신호를 하자 모두 춤을 멈추고 자리에 널려앉았다. 량성도는 설희를 진수의 옆자리에 데리고 와서 앉으며 버클에게 말했다.

《이 재능있는 녀류작곡가가 바로 정선생의 처제랍니다.》

버클은 좀전에 들었으나 처음으로 알게 된듯이 말했다.

《호오, 반갑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처제분은 우리 엘레나의 〈한국〉음악선생이고 친구니까 당신과 나도 친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그려.》

진수도 웃으며 응수했다.

《글쎄요. 그런 론리라면 내가 만약 처제를 증오하는 경우에는 선생과 나는 위험한 적으로 될수도 있지 않을가요?》

설희는 진수의 대담한 말이 순전한 롱담이란걸 확인하려는듯이 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깔깔 웃었다.

음악발표회가 시작되였다. 엘레나가 송설희와 몇몇 《한국인》음악가들에게서 전습받은 노래와 춤을 발표하는것이다.

첫 곡목은 설희가 작곡한 《버드나무는 알고있어요》라는 노래였다.

엘레나는 반주를 맡은 설희를 피아노에로 불러내고 호기스럽게 청중앞에 나섰다. 주의가 모아지자 설희의 피아노반주에 맞추어 엘레나가 쟈즈곡창법에 고유한 반남성적인 원시적인 석쉼한 앨트창으로 노래를 불렀다.


사랑은 달빛 눈물은 별의 바다

늙은 버드나무는 알고있어요


조선어발음이 서투른데다가 음질이 나쁜 《가수》는 고음에 이르러서는 비명같은 소리를 지르며 몸을 뒤틀었다. 그럴수록 설희는 도취의 무아경에 잠겨 반주하였다. 모두들 황홀해하였다. 미국인녀성이 후진사회의 노래를 불러주는데 대한 감격이였다.

하기는 이 점이 버클이 노리는바였다. 그는 자신이 학문과 교리를 가지고 이 땅의 지성인들의 심장을 틀어쥐는 한편 딸까지 음악을 교제수단으로 삼아 녀배우들과 일부 녀대학생들까지 휘여잡게 하여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는데 리용하고있었다. 이를테면 미군이 무력으로 이 땅을 점령하고있다면 버클은 문화로 온갖 《한국》적인 정신을 마취시키고 그우에 미국 그자체를 보다 다면적으로 옮겨심으려고 애를 쓰고있는것이다.

진수는 쏘파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댄채 눈을 감고있었다. 이 미국사람들이란 어떤자들일가? 《한국》노래를 부르는 이 놀음의 뜻은 무엇일가? 린색한 현금주의자들인 이들이 어떻게 되여 입만 벌리면 《원조》와 《협조》를 떠든단 말인가. 세계에 퍼지고 이 땅에 들이닥친 각양각색의 미국인무리, 그들의 위협적인 무기와 상품과 사상의 오만한 질주, 《원조》와 파괴, 《자유》의 송가와 전쟁, 그우에 휘뿌려지는 외교의 엉너리, 백가지 얼굴과 혀, 천개의 우악스러운 손을 휘둘러대는 아메리카…

혹시 이 모든것은 반미적인 세계가 떠드는것처럼 민족들에 대한 질식과 도살행위의 흐름이나 아닐가? 어찌하여 우리는 그들의 《원조》속에서 오히려 세계제일의 저소득국민으로 울어야 하며 그들이 자랑하는 문화와 질서속에서 오히려 지옥의 고통에 몸부림쳐야 하는것일가?…

자기 생각으로부터 음악에로 돌아온 진수는 엘레나가 또 다른 노래를 부르는것을 들으면서도 아래층에서 버클과 나누었던 대화의 불쾌한 결말이며 그 방에 맨발로 들어왔다가 밀려나가던 억울한 로인을 생각했다. 그러자 다시 눈앞에는 창덕사의 무서운 참경우에 드리우는 매판의 검은 마수가 선명히 떠올랐고 리별의 역두에서 처녀에게 무안을 당하던 동생이며 렬차에 처실려 윁남으로 떠나는 혈육들을 피타게 부르며 울부짖던 군중의 광란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진수는 노래에 열중한 엘레나와 버클부부를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허위다. 이 땅의 민중을 고통속에 묻어두고도 그들과는 마지막 빵쪼각도 나눠먹을 한가족이라는듯이 시치미를 떼고 떨어대는 이 사랑의 제스츄어는 거짓이다!)

그사이 노래 몇곡을 부른 버클의 딸은 여러 사람의 박수에 만족하여 물러났다. 역시 찬양받으며 제자리로 돌아온 설희는 자기의 성공에 대해서 특별히 축하를 바라는 열띤 얼굴로 진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진수의 랭담한 시선에 실망한 그는 문화의 문맹자는 어쩔수 없다는듯 얼굴을 외로 돌렸다.

노래에서 기세가 오른 버클의 딸은 이번에는 장고를 메고 나타나더니 제멋에 겨워 장단을 치면서 가벼운 춤과 함께 《밀양아리랑》을 불렀다. 열심히 련습한 흔적도 보였으나 서투른 모방이여서 은근하고 감칠맛있는 멋이라곤 없고 경박하고 조야스런 쟈즈풍이 뒤섞인 얼치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푸른 눈에 은발인 양녀가 조선치마저 고리바람으로 장고를 치며 놀아댄다는것자체가 자극적이여서 몇몇 녀자들은 감탄의 소리를 지르기도 하였다.

버클은 량성도와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진수에게 말했다.

《이 춤노래엔 〈한국〉문화의 오랜 력사가 선명히 보여서 마음에 듭니다.》

적당히 반응한 진수는 움쭉 일어나 엘레나에게 도취해있는 설희에게로 갔다.

《좀 나갈가, 할 말이 있어.》

설희의 귀에 속삭인 진수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쿵쿵 울리는 도전적인 걸음으로 먼저 문밖으로 나갔다. 뒤미처 따라나온 설희는 진한 향수내를 풍기며 영문을 몰라 인조속눈섭을 붙인 커다란 눈으로 진수를 빤히 쳐다보았다.

《너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여기에 뭐가 볼만 한것이 있어 그러니? 가는게 좋겠다.》

진수가 충고하자 설희는 발끈 성냈다.

《왜 이러세요? 아저씬 무슨 권리가 있다고 이래라저래라하는거예요? 음악이 싫다면 혼자 가심 되잖아요?》

《여기에 무슨 음악이 있어? 사교와 아첨의 수단으로 된 음악은 벌써 추악한 시체다. 후날 후회말고 신셀 망치기 전에 빠져나와!》

진수는 설희의 손을 잡아끌며 돌아가자고 했다. 그러나 향락적인 외국문화에 혼을 잃어 타락의 정서를 현대예술의 기조로 알고있는 설희는 진수를 뿌리치며 오히려 동정을 담아 비난했다.

《아유, 부끄럽지 않으세요. 어쩜 봉건도 그리 심하세요.》

설희는 다시 웃음과 박수소리가 울리는 방안으로 바람처럼 사라졌다. 진수는 불쾌한 기분으로 이 집 현관을 나섰다.

그날 밤 진수는 창덕사사건에 대한 분노에 찬 기사를 써서 신문사에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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