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 회


제 1 장


6


아침일찍 조반을 치른 진수는 출근에 앞서 뜨락에서 와이샤쯔바람으로 아령운동을 한참 하고나서 서재로 들어갔다. 한쪽벽이 책으로 메꿔지고 그 맞은편 벽에는 문희의 취미를 보여주는 여러폭의 자그마한 그림들이 걸린 방이였다. 문희는 책상우에 널린것들을 정돈하다말고 남편이 남긴 몇장의 원고를 무심히 읽어보더니 놀란 얼굴로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니, 이게 엊저녁에 쓰신 기사예요?》

진수는 서둘러 출근차림을 하며 대답하였다.

《다시 쓰고 버린거구만. 잘못된게 있소? 기사는 오늘신문에 났을거요.》

무엇인가 심상치 않은것을 느낀 문희는 실망한듯 비통한 얼굴로 손에 쥔 원고를 다시 보았다.

《…매수한 대학재단을 앞잡이로 내세워 창덕사부지를 빼앗은 민규석재벌의 이 횡포는 그곳 령세민들과 사회계의 열띤 규탄을 받아…》

이런 구절을 다시 읽은 문희는 무턱대고 남편을 나무람했다.

《이게 뭐예요. 어떻게 된 사건인진 잘 몰라도 어쩌면 당신이 아버지의 사정도 돌보지 않고 이렇게 쓸수 있어요?》

진수는 놀라와하는 안해의 붉어진 얼굴을 마주볼뿐 대답을 못했다.

실상 민규석사장을 고발한다는것은 그 회사의 전무로서 중요한 사무직을 담당하고있는 장인에게도 타격일것만은 사실이였다. 더구나 궁지에 몰리게 된 민규석이 자기를 때리는 기자가 송건호의 사위라는것을 알게 된다면 사태가 험악해질수도 있었다. 이것은 진수도 어느 정도는 우려한 점이였다. 하기는 그도 사건을 파고드는 과정에 창덕사부지에 종교문화원을 건설하겠다던 ㄷ대학재단을 가교로 삼아 그 땅을 진짜로 삼키려드는것이 장인의 운명을 틀어쥐고있는 매판자본가인 민규석이라는것을 알아냈을 때엔 놀랄수밖에 없었다. 일이 묘하게 됐다고 생각했다. 장인의 립장이 딱해질것은 뻔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적당한 구실을 붙여 편집국장에게 담당기자를 다시 바꿔달라고 말할것인가 하고 망설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는 곧 동요한 자신이 부끄러웠다. 장인의 립장때문에 그렇게도 간악한 민규석을 때릴 용기를 내지 못한다면 나라는 인간은 심장도 없단 말인가 하고 자신을 꾸짖었다. 창덕사부지에 살고있는 숱한 령세민들의 그 무서운 가난, 아무런 죄도 없는 그들을 기다리고있는 새로운 참변을 생각한 진수는 범죄자들을 때리는것은 량심의 무조건적인 명령이라고 생각했다. 동요한다면 자신의 가치관도, 사랑과 증오도 거짓일것이였다. 뿐더러 더러운 매판에 붙어 고급사원노릇을 하는 장인을 노상 마뜩지 않게 보고있었던 그는 이런 기회에 간접적으로나마 그에게 경종을 울리는것도 나쁘지 않을것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문희는 남편이 마치도 저의 아버지를 공격하려고 그 기사를 쓰기라도 한것처럼 불쾌해할뿐 민규석사장이 얼마나 무서운 음모를 꾸미고있는가 하는것에 대해서는 알려고도 하지 않는것이였다.

안해의 이러한 단순한 편견이 놀랍기만 한 진수는 부모에게서 꾸지람듣는 소년처럼 한동안 벙벙해있다가 말했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 내가 아무렴 당신 아버지를 어쩌자고 그 기사를 썼겠소? 내가 때린건 무서운 협잡을 벌린 민규석이란 말이요. 그자는 숱한 령세민들을 깔아죽이려고 날뛰고있는데 그 점은 알려고도 안하고… 원, 외통으로만 생각한다구야…》

실망한 문희는 의자에 털썩 앉아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씨원하겠어요. 나를 훈계할 때마다 아버지의 영향이 어떻다느니하며 욕만 하더니 일꼬락서니 잘됐어요.》

화가 난 문희는 남편의 기분 같은건 아랑곳않고 강짜를 부리며 떠들었다.

진수는 안해에 대한 비판의 말이 혀끝에서 쏟아지려는것을 꾹 참고 창덕사부지에 대한 민규석재벌의 강도행위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준 다음 이렇게 덧붙였다.

《그 일에 아버지가 끼여들지 않았다면야 큰일날것도 없지 않겠소.》

이때 아래방으로 통하는 사이문가에 아들애가 나타나 아이들에게 특유한 감각적인 눈치로 부모의 심상치 않은 동정을 살피더니 볼부은 소리를 했다.

《싸우는거 난 싫어. 아버지 책이랑 엄마 옷이랑 막 찢어놔도 좋아?》

옆구리에 손을 짚고 딱 버티여 선것이 제법 위협이였다. 진수는 아들이 귀엽기도 하고, 안해의 마음에 무엇으로나 우스운 기분을 일으키고싶어 재일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딱 소리나게 퉁겨주었다. 그랬더니 아파서 울상이 된 재일은 눈물을 뚝뚝 떨구며 장난감자동차를 들고 덤벼들었다.

《재일이도 엄마편이구나! 어이구!》

진수는 겁먹은듯이 엄살을 떨며 가방을 들고 뜨락으로 내달았다.

그러나 문희는 아무것도 우습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남편의 이러한 거동에서 무엇으로써도 다잡을수 없는 그의 생활관의 완강성과 그러한 남편과 자기와의 이질성만 강하게 느낄뿐이였다. 쪽문으로 사라지는 진수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그의 눈에 눈물이 번쩍거렸다.

신문사에 들어선 진수는 만나는 사람마다 그를 특별한 존재처럼 대하는데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모두가 이날 신문 3면 웃자리에 크게 실린 《협잡매판 령세민 압살위기- ㄷ대학재단이 뺏은 창덕사부지 민규석재벌이 널름》이란 표제를 단 그의 기사에 대하여 찬양이였다.

현관에서 만난 한 편집원은 허덕허덕 달려와서 악수까지 청하며 단연 특종상감이라고 떠들어댔다. 햇내기기자들은 지나가는 그의 뒤모습을 바라보며 수군거렸다.

《저 량반 필력 보통이 아니야. 한번은 억울한 루명쓰고 교도소에 갇히게 된 교수의 미망인을 한단짜리 기사로 건져주었는데 그 글이 어찌나 명문이였던지 그 과부가 사위삼겠다고 굉장한 미인인 외동딸을 데리고 왔더라지. 그런데 처자있다는걸 알고는 〈아이고, 내 팔자야.〉 하고 무릎을 짯짯 치더라나.》

《재사란 결국 심장이란 말야.》

부서에 들어서자 동료들이 그를 둘러쌌다. 그들의 기분을 대표하듯 주한숙이 진수의 기사가 난 신문을 들고 말했다.

《문제작이예요. 정말 예리한 글이예요. 창덕사부지 주민들의 참상에 대한 감각적인 묘사… 아유, 눈물이 나요. 어쩜 이렇게 불덩이로 지지는것처럼 쓸수 있어요! 그리고 여기 〈종교문화원건설이라는 거짓말광고는 인간은 지상에 거주권을 가진다는 대전제보다 강한가? 이제 날뛰는 황소같은 매판의 공세에 직면한 사원부지의 령세민들이 살 곳은 구름 자욱한 하늘뿐인가!〉 하고 시작하여 매판의 생리와 반인간성을 단죄한 중간부가 특히 좋아요. 정말 성공이예요!》

진수는 칭찬이 부끄러워 손을 내저으며 만류했다.

《제발 그러지 말아요. 흔한 기사를 가지고 괜히 비행기 태우는구만.》

이마가 벗어진 늙은 기자가 끼여들었다.

《아니, 정말이요. 내가 보건대는 끝부분이 더 좋아. 범죄에 가담한 당국자들에게 불도젤이 사원부지로 진공하기 전에 매판의 마수를 꺾어버릴것을 호소한것은 매우 교훈적이요. 관조하는 기록자가 아니라 누구나 이렇게 사건의 참여자, 주관자가 돼야 할텐데…》

그때까지 침울한 얼굴로 앉아있던 안한수가 진수를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참여자, 주관자로 되다니. 그럼 공정성을 잃는건 어떻게 하구? 그 점이 이 기사의 흠이 아닐가 하는데…》

이때 부장인 윤만이 벌겋게 상기된 살찐 얼굴을 쳐들고 열병식장을 행진하는 병사처럼 야단스럽게 들어왔다. 그는 자기의 안락의자에 털썩 앉더니 어떤 중대사건의 고소자와 같은 태도로 진수에게 말했다.

《믿는 나무가 꺼꾸러진다더니, 이거 못해먹겠군. 아니, 진수씨는 공인된 유능기자인데 무슨 기사를 이따위로 썼소?》

《이따위》라는 그의 말은 순간에 방안을 썰렁하니 얼궈버렸다.진수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무능을 근면으로 보충하며 머리칼이 성글어지도록 기자세계의 진흙탕길을 헤쳐오는 사이에 눈치보기와 상급에 대한 아첨만 능해진 부장을 혐오어린 동정으로 대해온 진수는 그를 한번 돌아보았을뿐 담배를 피워물고 연기만 뿜었다.

한숙이 참다못해 참견했다.

《모르겠군요. 이렇게 훌륭한 기사를 썼는데 뭐가 잘못됐다고 그러세요?》

안한수는 한숙이 얄미워 참지 못했다.

《좀 자중하고 들어보는게 좋겠는데 참.》

윤만부장은 무전을 치듯 손가락으로 책상을 토닥거리며 짜증을 냈다.

《순진하다구야. 기사에 자기 푸념을 잔뜩 널어놓으니 한계선을 넘는 소리가 망탕 튀여나온건 어떡허나 말이요? 공보부에선 경고전화가 오지, 편집국장은 왕청같이 나를 비틀어대지. 이게 뭔가 말이요? 편집국장실에서 필자를 찾는데 가서 잘 처신하는게 좋을것 같애요.》

진수는 꾹 참고 한수가 만족해하는 시선을 몸으로 느끼며 복도에 나섰다. 국장실로 가며 그는 오늘호의 기사가 일으킨 말썽보다도 신문의 역할에 대하여 우울한 생각을 더듬었다.

기자의 길에 처음 들어설 때만 해도 그는 신문의 위력을 믿었다.

사회의 악을 마음껏 파헤쳐 고발하고, 정치가 부당하면 항의도 하고 뒤집어던지기도 하며 억눌린 사람들을 언어의 성새로 옹호하면서 자기의 정열을 전개할수 있다고 보았다. 산 현실을 리상적으로 재창조하는 일을 할수 있다는 이 믿음때문에 그는 그렇게도 야심적으로 탐구해오던 력사과학마저 밀어던지는 용단을 내렸던것이다. 그러나 알고보니 신문도 일반문화라든가 저술이나 마찬가지로 민중의 광야를 누비는 생명수가 아니였다. 그것은 권세가들이 쌓은 두 제방사이에서나 골풀이하며 감탕투성이늪으로 흘러드는, 유해물질로 더럽혀진 개울물이 아닌가.

(나는 과연 무엇을 할수 있을가? 안해마저도 같은 전호에 끌어넣지 못한 주제에… 아니, 나에겐 전호라는것이 없는지도 모른다. 누구를 지켜 누구와 싸운다는건가? 나는 안개속에서 개별적으로 나타나는 범죄자들과 승부없는 싸움을 할뿐이다.

그 범죄자들은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그들은 소굴이 있고 저들의 완강한 대렬이 있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전투다운 전투를 벌린 일이 있는가… 오늘호의 기사만 해도 거기엔 분노는 있어도 전투는 없지. 창덕사의 주민들이 그 기사를 본다면 혹시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속담을 생각할지도 모르지…)

진수는 청소부령감이 걸레를 밀고 오며 비껴달라는 소리에 생각을 중단했다. 자기 생각에 옴하여 저도 몰래 걸음을 멈추고 창문밖을 멍하니 바라보고있었던것이다.

진수가 편집국장실에 들어섰을 때 거기에는 위달종국장과 그와 대조적인 거구의 사나이인 최재명부국장, 량성도를 비롯한 신문사의 수급책략가들이 모여 국장의 책상우에 놓인 대장지를 둘러싸고 주간편집계획을 토의하고있었다.

최재명부국장이 자빠지듯 쏘파에 앉으며 투덜거렸다.

《아니, 그 철도청부정사건을 빼고 청와대와 밀수재벌의 공모사건까지 뒤로 돌린다면 이놈의 신문이야 꿰여진 그물이 아니겠소?》

《무얼 그러오. 형세가 딱한데 제살궁리도 해야지 자꾸 비틀건 또 뭐요. 다룬다고 해도 격을 훨씬 낮춰야겠소.》

위달종은 이렇게 떠들다가 곁에 온 진수를 보고 어이없다는듯 피씩 웃더니 갑작스레 표정과 목소리를 바꾸어 공박했다.

《자네, 거 어떻게 된건가? 자네의 기사를 공보부에서 뭐라고 위협하는지 아나? 공산당의 입김이 풍긴다는거야! 이건 보통문제가 아니란 말이요.》

진수는 덤덤히 국장을 노려보았다.

부국장이 참견했다.

《옥에 티를 가지고 그렇게 위협할것까지야 없지 않아요?》

량성도는 버릇된, 가늠해보는 날카로운 눈으로 진수를 여겨보며 한마디 했다.

《재능과 정열, 아주 좋아요. 그러나 궤도가 좀 빗나간감이 있어요. 자신을 아껴야 하잖을가?》

국장은 쓰다듬는 말들이 비위에 거슬려서 신문을 와락 펼쳐 진수의 기사에 눈을 주더니 신통히도 부서의 동료들이 칭찬한 개소들을 골라 몇구절씩 읽어대며 모난 말을 골라뿌렸다.

《보라구, 이쯤되면 이 내용이 설사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소용있는가. 그곳 령세민들과 일반독자들을 업자들과의 충돌에로 추동하다못해 민중은 업자와 당국을 결박할 자기의 새로운 법을 요망하고있다는건 무슨 망녕된 소린가? 그리고 여기 이건 또 뭔가?》

그는 색연필로 줄을 친 부분을 읽었다.

《〈매판이 관권을 끼고 민중을 짓누르자 모든 법은 인권이라는 시체를 실은 령구차로 변하였다.〉 이게 누구의 소린가?》

진수는 모욕에서 우러난 짭짤한 미소를 짓고 당당하게 말했다.

《누구의 소리라뇨. 생활의, 민중의 목소리지요. 그 한심한 강도행위를 이 정도로 다룬것이 문제된다면 신문이란 휴지쪼박이지 뭡니까? 부탁은 나를 문제삼기 전에 사건현장에 한번 나가보시라 그거예요. 그 아우성치는 인간피라미드속에 한번 들어가보시고… 그래도 내가 허위를 쓴것이 확실하다면 난 내 발로 경찰청장한테로 직행할 용의가 있습니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국장은 매섭게 진수를 노려보더니 허거픈 웃음을 웃었다.

《진수군은 자꾸 그 유해로운 젊음을 자랑하고싶은 모양인데, 숱한 기자, 편집원들의 밥통이 떨어질수 있다는것쯤 생각해야 할것 아니요?》

긴장해하는 자신을 옆에서 보면 초라해보일것이라고 느껴진 진수는 량미간을 찌프린채 시치미를 따고 익살을 부렸다.

《글쎄요. 그 점은 생각 못했습니다. 하긴 모두 밥통들이 떨어진다면 내가 혼자 이 숱한 위주머니를 채워주기엔 좀 바쁘겠는데요. 국장선생과 공동부담하면 어떨가요?》

《비슷해. 걸작이다!》

량성도가 온몸을 흔들어대며 폭소를 터뜨리는 바람에 모두가 한바탕 웃어댔다. 국장이 고추가루 훔쳐먹은 고양이상이 된걸 보자 또다시 웃음이 터졌다.

진수를 혼내우자고 벼르었던 국장은 분위기가 반대로 된것을 난처해하면서 맥이 빠진 소리를 했다.

《하여튼 위험신호가 올랐다는걸 명심하시오. 요는 다음번 기사를 누그러지게 써서 캄프라지(어떤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일)하는 수밖엔 없을것 같소. 알만 해요?》

더 이야기하고싶지 않은데다가 전술적으로 후퇴하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한 진수는 대답을 하지 않는것으로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는 뜻을 알리고는 방을 나왔다.

그는 도서실로 내려가서 오랜 시간 책을 이것저것 읽으며 답답함을 달랬다. 이러고있는 그를 량성도가 찾아와서 불러냈다. 말쑥한 차림에 얼굴이 번듯한 성도는 손뒤짐을 지고 진수앞에서 오락가락하더니 물었다.

《우리 좀 나갈가? 할 얘기 있는데…》

진수는 따랐다. 성도는 그를 데리고 가까운 《파랑새》다방으로 갔다. 무성하게 자란 남방화초들이 이채를 띤, 깐깐히 꾸려진 다방이였다. 늙은 화가들이 몇사람 간막이너머로 보일뿐 조용한 방안에 일본경음악이 흐르고있었다. 진수도 성도도 구면인 아련한 미모의 녀주인이 반겨맞았다.

《어서 오세요. 오늘은 일찍들 오셨군요.》

성도는 진수에게 구석진 자리를 가리키면서 녀주인에게 말했다.

《여기 〈파랑새〉에서까지 일본음악이 고전음악을 밀어냈는가? 참, 무섭군.》

《새로운 류행을 따라야죠. 하긴 류행이란 참을수 없는 추악이란 말도 있더군요. 어떤 류행도 철이 지나면 바꾸지 않고는 못 배기니까요.》

《그럼, 그까짓것 다 버리면 추악에서 벗어날것 아뇨?》

《아이참, 그 추악이 돈벌이로 되는데두요? 호호호.》

녀주인은 먼저 자리로 가서 앉은 진수의 눈치를 살피며 성도에게 미태를 부렸다.

성도는 진수의 맞은편 자리에 가서 앉으며 말했다.

《국장을 익살로 업어넘긴건 잘했어. 자네 성미에 와당탕하지 않을가 걱정했는데… 그건 그렇고, 난 사람들을 움직일수 있는 군의 순수한 열정이 부럽거던.》

《순수한 열정이라뇨. 난 머리속에 잡동사니가 많아 생각에 초점이 없어 고민입니다.》

성도는 안경을 벗어놓고 접대원이 날라온 커피를 들며 물었다.

《잡동사니라니, 뭐가?》

진수도 잔을 들며 말했다.

《교육과 환경에서 온거지요. 수입제사상과 개념, 수입제문물의 홍수, 번쩍거려서 정신없이 삼켰는데 나는 여전히 쑥대거든요. 환멸입니다.》

성도는 감겨도는 진한 담배연기속에서 묘한 시선으로 진수를 노려보았다. 그 눈을 본 진수는 같은 신문사의 기자이며 재능있는 시인으로 지방려행에서 오늘래일 돌아오기로 된 친구인 김성우가 한 말을 문득 상기했다.

《량성도자식을 조심하게. 그 자식 그리스도흉내를 내지만 그 눈속엔 독을 쏘는 또 하나의 눈깔이 있단 말이야. 여우가 아닌지 모르겠어.》

하기는 진수도 성도를 성깔이 센 수단가로 보았다. 그러면서도 이른바 《중간세력》의 대변자이며 학생운동의 열렬한 옹호자로서, 지어는 감옥에 갇혀서까지 지론을 저술한바 있는 명사로서의 량성도를 또한 무시할수 없었다.

《쑥대, 환멸, 흥미있는 말이요. 사색하는 지성인일반의 느낌이겠지.》

성도는 손을 뻗쳐 진수의 팔을 쥐였다놓으며 이야기의 본마당을 폈다.

《믿고서 한가지 의논하고싶은데… 어떤가? 내가 또 한가지 반공개로 준비하고있는 사회운동을 같이해볼 생각 없어?》

진수는 약간의 불안과 함께 흥미를 느끼며 물었다.

《야당적인 운동인가요?》

《이를테면 쑥대에 꽃과 열매를 주는 운동이겠지. 난 말이야. 반세기를 살아오면서 꽤 다채로운 체험을 해봤지. 왜정때엔 좌익서적을 탐독하고 비밀소조놀음도 해봤고 8.15후엔 우익에 뛰여들어 출세해보려고 아귀다툼도 해봤어. 그런데 다 아니거던. 공산체계는 멀리 있으니 덮어두더라도 우리의 환경인 이 현실을 보게나. 권력이나 자본의 시녀노릇을 하니까 지성이란건 락엽이나 다름없거던.》

《그러니까 좌도 우도 아닌 어떤 새로운?…》

《글쎄 들어보게. 나의 결론은 형상적으로 말하면 순수한 지성인의 왕국을 세워 탐욕적인 자본에 굴레를 씌우고 그 행동반경을 좁히는 한편 수동체인 군중을 정치의 방청석에 앉혀놓고, 저 거시기 사회여론의 통제를 받는 지성인사령부가 모든것을 지휘통제하는 새로운 체계를 건설하자는거요. 그러자면 당신 같은 유능한 지성인의 조직된 대부대가 필요하다 그건데…》

성도가 제법 심각한 얼굴로 이러한 망상을 펴자 그의 진지성이 우습게 여겨진 진수는 들었던 커피잔을 소리나게 놓으며 롱을 했다.

《그 지성인의 왕국이 선다면 나도 장관감투쯤은 하나 나꿔챌수 있을가요?》

《왜 장관감투겠나, 적어도 정진수총리나 그 이상으로 불리우겠지… 허허허.》

성도도 롱으로 받더니 다시금 남의 리론들을 이것저것 주어모은 장광설을 늘어놓았다. 요컨대 2차세계대전후에 식민지체계에서 떨어져나온 신생독립국가들이 전개하는 쁠럭불가담운동을 감히 흉내내면서 거기에 《지성인의 주도성》이라는 양념을 친 얼치기리론이였다. 헌데 이 리론을 펴는 성도자신은 실상 이러한 리론에 대한 맹렬한 반대자였다. 그것은 그가 미국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자이며 충복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그는 특수한 계층의 주문에 따라 사처로 다니며 연극을 놀아야만 했다.

여기에는 력사의 배경이 있었다. 4.19봉기는 그 기점이였다. 절대적인 존재로 군림했던 미국의 늙은 노복인 리승만을 쓰러뜨리면서 《반공》을 핵으로 한 미국의 《한국》지배체제우에 수많은 시체와 피를 뿌린 그 거창한 함정은 미국인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미국은 울며 겨자먹기로 장면《정권》의 보루까지 후퇴하여 수습책을 꾀했으나 5.16군사쿠데타라는 가장 렬악한 강도적인 방법에 매달리지않고는 대중운동을 짓누를수 없었다. 그럴수록 그들은 새로운 공포에 싸이게 되였다. 대중속에서 반미, 반독재기운이 높아지고 남조선과는 너무도 판이한 북의 현실을 탐색하며 동경하는 분위기가 짙어갔기때문이였다.

바로 여기에 대처하여 미국인들과 집권자들은 파쑈적인 독재의 보루를 더욱 높이 쌓는 한편 정치적인 연극놀음에 능한자들을 대중속에 밀어넣었다. 반항적인 색채가 드러나는 사람들속에 들어가 그들의 기분을 얼려맞추면서 일반의 동향과 숨은 조직을 내탐하여 폭력의 처분에 내여맡기는것이 목적이였다.

진수는 이런 내막을 잘 몰랐으므로 량성도에 대해서도 정확한 판단을 할수 없었다. 그러나 진수는 화려한 말로 거짓을 감추고 민중을 꼬이려고드는 《유명인사》일반을 싫어했다. 량성도도 그러한 위선자인지 모른다고 생각한 진수는 버클교수네 집에서 그를 만난것을 돌이켜보면서 이야기짬에 슬쩍 물어보았다.

《량선생은 그 버클교수와 친한 사인가요?》

성도는 갑작스런 물음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친하다기보다는 존경한다는게 정확하겠지. 훌륭한 신사야. 현금주의와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무자비한 미국사회에서 흔하게는 볼수 없는 알쭌한 인도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하는데… 참, 자넨 오늘기사에서 그 사람을 념두에 두고 한두마디 맵짠 말을 했던데, 그건 분명 오해일거요.》

성도는 여러모로 진수를 끌려고 하였으나 그의 지론의 가치를 의심한 진수는 어물어물 물러났다.

《량선생은 나를 너무 높이 평가하는가 봅니다. 정치운동은 비판의 소질과는 그 성격이 다르지 않겠어요. 난 큰 재목이 못되거든요.》

진수의 태도에 실망하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성도는 조잡한 사회환경때문에 그의 재능이 꾸겨질가봐 걱정이라는, 보호자연한 태도를 보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거기서 다시 신문사에 들어가 해가 지도록 우울한 시간을 보낸 진수는 퇴근을 앞두고 지방취재에서 돌아온 김성우를 만났다. 호리호리한 큰 키에 머리칼이 언제나 들썽하니 곤두서고 눈길이 맵짠 김성우는 방안에 홀로 있는 진수를 발견하자 가방을 책상우에 팽개치며 떠들었다.

《야, 너까지도 심각한 얼굴이냐? 세상엔 심각한 문제란 없어.》

우울하던 진수는 친구를 보자 얼굴이 풀렸다.

《지금 돌아오는 길인가? 얼굴이 탄걸 보니 재미 많이 본 모양이구나.》

《재미가 뭐야. 개판이다. 현지보도를 써서 편집국에 던지구 월급탔다. 한려수도에선 기분이 괜찮아서 시도 몇편 끄적거렸는데 제주도에선 더럽게 대장염에 걸려 전복회도 못 먹고 해녀들에게서 민요나 둬편 춰냈어.》

성우는 몇잔 걸친 모양인지 술냄새를 풍겼다. 그는 창턱에 모로기대여 시가우에 비낀 피빛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또 개똥같은 하루가 다 타서 붉은 연기로 걸렸어. 이놈의 도시는 숯덩어리야. 너 생각이 없니?》

황혼을 보자 역시 습관적으로 울화와 애수에 가슴이 클클한 진수도 술생각이 나서 대답했다.

《왜 생각없겠나. 가자.》

그들은 술집으로 향했다. 부지런히 마시는 술이였다. 저녁마다 서울은 갈증에 시달려 술을 찾았다. 누구나 빨갛게 타는 황혼을 보면 생활의 싸움터에서 물러나면서 또 하루 량심을 속이고 헛살아온것을 한탄하였고 자신의 무능과 패배와 어리석음에 속을 앓았다. 그렇다고 풀 길 없는 생활난을 비롯한 숱한 골치거리가 기다리고있는 집으로 곧장 돌아가기도 싫어했다.

그리하여 황혼병에 걸린 각양각색의 무리는 고통과 울분을 마취시키려고 물뱀떼처럼 끓어대는 네온의 회오리속에 감겨들어 술과 도락에 빠져버리는것이다. 낮의 도시엔 폭력이 도사리고 밤거리엔 악마가 끝없는 환상을 폈다. 가난한 사람들이 도람통이나 사과궤짝을 식탁삼고 막걸리 한잔에 울고 떠드는 눅거리술집으로부터 앞날이 두려운 죄많은 정객들과 부자들이 계집들과 놀아대는 고급료정들에 이르는 무수한 술집들, 성도락과 음모의 소굴로 변한 호텔과 려관들, 혹은 로마제국시절에 몸종을 거느리고 살던 귀족들의 흉내를 내는 변태성욕자들이 우글거리는 뛰르끼예식목욕탕이며 발열한 남녀들이 촉수낮은 전등아래에서 아프리카토인들의 춤을 추며 꿈속에 떨어지는 각종 캬바레… 이 천태만상의 마취와 타락의 소굴들은 서로 엇갈리고 뒤엉켜돌아가며 종심도 폭도 알수 없는 파멸의 심연속에 뭇사람들을 끌어들이고있었다.

소란한 보통술집에 들려 어지간히 취하도록 마신 진수와 성우는 한강과 면한 강안거리를 걸었다. 진수는 취하면 말이 적었으나 오만하고 괄괄한 성우는 취한김에 행인들이야 놀라건말건 탁 터진 목소리로 마구 웃어대고 떠들었다.

《야 임마, 나에겐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화만 돋군다. 이놈의 땅도, 악어의 도시도, 캄캄한 하늘도 다 혼돈으로 돌아가래라.

사람은 먼지속에 딩구는데 저것 봐, 자가용을 탄건 개들과 돼지들이다. 궁전에도, 〈국회〉에도 다 짐승들뿐이야. 그런데 그 새끼들은 제가 사람인체, 정의의 투사인체, 걸물인체 하거던. 어어, 그 엄숙과 존엄을 가장한 피둥피둥한 낯판대기들,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

성우는 이렇게 떠들며 정말로 허리를 까부리고 구역질을 하더니 자동차들이 잇달리는 차도에 뛰여들어 가방을 동댕이치며 소리쳤다.

《야, 이 더러운 새끼들아, 다 처먹어라!》

달려오는 자동차에 깔릴번 한 순간에 진수가 뛰여들어 그를 끌어냈다.

순경이 호각을 불며 달려오더니 욕설을 퍼부으며 주저앉아있는 성우를 구두발로 마구 찼다. 이렇게 되자 화가 난 진수는 무턱대고 순경의 뺨을 후려갈기며 거짓말로 을러멨다.

《이놈! 눈은 보라고 있는거지 가죽이 모자라서 째진거냐? 이분이 누군줄 아느냐, 청와대비서실장의 동생도 몰라봐?》

진수는 또다시 련속 후려갈겼다. 그바람에 얼떨떨해진 순경은 벌벌 떨며 가재걸음을 하더니 뺑소니를 쳤다.

진수가 성우의 가방을 주어메자 성우는 아무런 일도 없었던것처럼 또다시 걸음을 옮기더니 엷은 구름장속에 희미하게 륜곽을 그린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진수, 난 말이야. 우리를 따르는 불행과 괴로움을 짓밟아놓고, 개념과 시간을 짓밟아놓고, 사람들을 산채로 썩게 하는 습관을 짓밟아놓고 끝없이, 끝없이 도망치고싶다.

야, 이 자식, 너 듣니? 난 말이야. 자연의 기적인 미인과 단 둘이 얼음뿐인 북극이나 남극으로 도망가서 얼어죽고싶다. 슬픔과 애수뿐인 나의 시집들을 불태워 마감으로 몸을 덥히고 얼어죽고싶다.

북극광에 번쩍이는 얼음산우에서 선채로 얼어죽어 영원한 석고상처럼 서있고싶다!》

《이 바보같은 놈아, 넌 곰의 열처럼 쓰거운 그따위 애수의 시를 쓰지 말고 후손들을 위해서 나무 한그루라도 똑바로 심어라!》

진수가 비난하자 성우는 그를 사납게 노려보며 물었다.

《넌 도대체 어떤 자식이냐?》

《모르겠다.》

진수는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나는 바라는 내가 아니다. 먼지와 오물에 더럽혀지고 무기도 없이 꺼부러져 사는 이 몸은 내가 아니다. 참다운 나를 찾는게 당면과업이다. 그 진짜 나는 이따금 불타는 기발과 무기를 들고 희미하게 나타나 허깨비인 이 나를 쳐부시는거야.》

두사람은 걷고 또 걸었다. 얼마후 성우와 헤여진 진수가 자기 집의 불꺼진 창문앞에 이르렀을 때 하루의 죽음을 고하는 통곡과도 같은 통금고동소리가 길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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