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2 장


8


진수부부가 울적한 기분으로 집안에 앉아있던 어느날 저녁에 문희의 아버지가 찾아왔다. 벌거우리한 윤택한 얼굴에 어리멍청한 놀람과 고집스런 표정이 뒤섞여있는 송건호는 딸과 사위에게 말을 걸기에 앞서 겅중거리는 걸음으로 이방저방 돌아다니며 보호자연한 태도로 살림살이부터 살폈다. 그는 네활개를 펴고 잠든 철부지외손자의 불긋한 뺨도 만져보고 혹은 책과 원고지들이 무질서하게 놓인 진수의 책상도 살펴보며 생리적인 만족감에서인지 허허 웃었다. 그리고는 저고리를 훌훌 벗어 딸에게 넘기고 안락의자에 앉았다.

진수는 장인이 자기에 대해서 성나있으면서 그것을 애써 누르고있는것은 어떤 다른 흥정을 무난히 치르자는 속심에서 그러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송건호는 빨간 호박물부리에 권연을 끼워들고 말했다.

《사람을 믿는다는게 이렇게도 허황한 일인가? 무슨 일을 그렇게 하는가 말이야. 엉? 자네가 민규석을 고발한 덕분에 내가 얼마나 곤궁에 빠졌는지는 알고있겠지?》

창가에 모로 앉은 진수는 대답을 안했다. 문희가 남편의 일을 변명하려고 억양이 풍부한 목소리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재일이 아버진 창덕사땅에 사는 령세민들의 처지가 하두 딱해서 민사장을 추궁한거죠 뭐.》

문희는 차를 끓이려고 부엌으로 나갔다.

《저질러진 일을 놓고 싸우려는게 아니야. 이제라도 잘 수습하면 되는거니까.》

건호는 진수의 눈치를 살피더니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애써 부드럽게 말했다.

《짐작하겠지만 민규석씨는 자네와 나와의 관계를 알아내고는 나를 철천지원쑤로 노려보고있어. 그러니 내 형편이 어떻겠나?》

진수는 고집스레 입을 다물고있었다. 변명하고싶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사죄해야 할 잘못을 저질렀다고 생각되지도 않았다.

송건호는 본론을 말했다.

《이제라도 자네가 창덕사부지문제에 대해서 민규석의 립장을 량해하여주기만 하면 되네. 돌변하여 그 사람을 편들라는건 아닐세. 창덕사부지에 살던 사람들도 일은 난처하게 됐지만 민규석도 그 사람대로 타당하다는 식으로 쓰면 되지 않겠나. 그렇게 쓸수 있는 근거자료는 민규석이 얼마든지 제공할테니 자넨 객관적으로 소개하면 되는거야. 그러면 나도 구원될수 있네. 그러지 않아도 민규석은 워낙 덩지가 커서 쉽게 넘어질 자본가가 아니야. 고위층과 금맥관계로 든든하게 얽혀있는데 서뿔리 자꾸 불질하다간 큰 화를 입는다는것도 알아야지.》

진수는 처음으로 장인을 돌아보며 나지막이 확신있게 말했다.

《참 딱한 말씀이군요. 신문에 그렇게 쓴 내가 이제 와서 위험에 빠진 령세민들을 배신하고 민규석이를 두둔해주다니, 어떻게 그럴수 있습니까? 그건 안됩니다!》

문희가 쟁반에 김이 물물 나는 차 두잔을 담아들고 들어와서 책상우에 놓고 참견했다.

《당신도 참, 뭘 안된다고 그러세요. 아버지의 립장을 봐서도 어떻게 그럴수 있어요?》

문희는 사태를 조용히 수습하려는 생각으로 부드럽게 나무람하고는 성나서 눈길이 꼿꼿해진 아버지에게 말을 돌렸다.

《재일이 아버지 걱정은 마시고 그 민규석사장에게 말씀하세요. 바라는대로 우리가 생각을 바꾸었다고!》

진수는 힐문하는 날카로운 눈길로 안해를 제어하며 꾸짖었다.

《숱한 군중의 운명이 달린 일인데, 당신은 부끄럽지도 않소?》

노여움에 속이 뒤집힌 송건호가 손을 덜덜 떨며 소리쳤다.

《기껏 한다는 대답이 그따윈가? 그래, 제 장인까지 구렁텅이에 차넣은 주제에 무슨 배짱이냐? 자네가 거절하면 민규석이 나를 짓밟으려들건 뻔한데 그런줄 알면서 그따위 대답인가?》

《하긴 나도 장인님까지 해칠 생각은 없었어요.》

진수는 힘없이 말했다.

《그렇지만 장인님도 잘 생각해보세요. 그 더러운 민규석밑에서 돈벌이를 하시다뇨. 거기다가 이런 판에까지 그자를 두둔하시고… 그러시면 안돼요.》

송건호의 처진 뺨이 푸들푸들 뛰였다. 위험한 사위를 거머쥠으로써 민규석을 사회의 규탄으로부터 지켜주는 한편 자기의 돈자리를 지키려는 송건호에게는 진수의 거절이 기가 막히는 일이였다. 그는 당금 출전하려는 경마수가 자기가 타려는 말이 비길데 없는 주력을 가졌으나 너무나 무섭게 날뛰여서 탈 길이 없어 안달아하는듯 한 얼굴로 사위를 노려보더니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며 노성을 질렀다.

《뭐라구? 배은망덕해도 분수가 있지, 알거지나 다름없던 너에게 이 집을 주고 이 살림을 꾸려준게 누구냐? 그래, 민규석이 원쑤라면 그 전무의 딸과는 어떻게 사느냐 말이다!》

더는 참을길 없게 된 진수는 문희의 겁에 질린 시선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옳은 말씀입니다. 시골농사군 아들놈에게는 분수에 넘는 살림이겠지요. 그렇지만 나는 머리에 돈이 차서 심장이 썩는 사람들을 한번도 높이 본적이 없다는걸 아셔야 합니다!》

밖으로 나가려는 진수에게 문희가 절망하여 매달렸으나 그는 듣지 않았다.


진수가 밤거리를 정처없이 헤매다가 돌아왔을 때 송건호는 돌아간지 오랜 뒤였으나 문희는 자리에 누운채 눈물이 글썽하여 천정을 물끄러미 쳐다보고있었다.

둘은 경계하듯 한동안 말을 안했다. 진수가 옷을 입은채 웃목에 벌렁 드러눕자 문희가 주저하며 말을 뗐다.

《아버지는 당신과 싸운걸 가슴아파하시면서 가셨어요. 당신이 유력자들과 자꾸 싸우는 길로만 나간다면 어느 틈에 큰 화를 입을거라고 걱정하면서 이번 기회에 더 잘 생각해보는게 좋겠다고 거듭 이르고 가셨어요.》

진수는 자기로서는 압제자들을 징벌하고싶어도 시위투쟁에 열을 올렸던 학생시절부터 펜으로 싸우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끄러운 실패만 겪어오는데 새로운 방도를 알수 없는 괴로움때문에 사는 일이 즐겁지 않다고 실토하였다.

그의 심중한 이야기에 문희는 일어나 앉았다. 진수는 누운채 담배를 피우며 조용히 이야기했다.

《당신이 고민을 같이 나누면서 나를 도와준다면 얼마나 기쁘겠소. 나는 총각시절에 생각했어. 나의 안해는 꼭 이쁘지 않아도 좋다, 부자가 아니래도 좋다, 다만 마음이 아름답고 교양이 높았으면, 또 죄많은자들의 사치와 방탕을 경멸하고 단벌옷에 죽을 먹으면서도 불행한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한 자랑을 안고 웃을줄 아는 녀인이였으면, 그리고 남편이 돈에 홀리거나 권력에 아부하는 눈치만 보여도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 들여놓지 않는 자존심쯤 있는 녀자였으면! 이렇게 생각했지.》

문희는 오래동안 흐린 얼굴을 드리우고있다가 힘없이 말했다.

《나는 당신이 공상한 그런 녀자는 못돼요. 하기는 나라고 왜 대바르고 아름답게 살고싶지 않겠어요. 나도 처녀시절엔 그 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민중을 위해서 좋은 일을 찾아하면서 깨끗하게, 대바르게만 살자고요.》

문희는 이불을 차던지고 자는 재일을 보살펴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지만 생각해보세요. 사회인으로서 가정생활을 꾸려나간다는것이 공상만으로 될 일이예요? 당신은 줄창 밖으로 돌아다니니 그렇지만 집에서 아이와 남편을 섬기고 친척들에 이웃과의 관계까지 살펴야 하는 내 처지는 다르단 말예요.》

진수는 말이 없었다. 문희는 남편의 침울한 기색을 살펴보고 그가 아무것도 공감하지 않고있다는것을 알았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을 누그러뜨려야겠다고 생각한 문희는 련이어 자기속을 털어놓았다. 민규식의 횡포가 요행 제지를 당해서 수백명의 령세민들이 화를 면할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렇지만 관권을 업은 큰 자본가가 펜대에 찔리워 넘어지겠는가. 민규석을 꺾지도 못하면서 그의 분노만 사서 공연히 아버지만 곤궁에 몰아넣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된걸 안다면 아버지사정도 봐주면서 새로운 출로를 같이 의논하는 아량쯤이야 왜 보이지 못하는가.

문희의 조용한 말은 남편의 성난 소리에 잘리웠다.

《그러니 당신은 령세민들도, 민규석도, 아버지도 다 좋게 되길 바라는거요? 한심한 일이요. 그런 사고방식을 가지고있으니 뭘 하나 제대로 판단할수 있겠소. 옳은 일을 하자면 아픔도 견딜줄 알아야지 걸핏하면 놀라고 실망하고… 그게 뭐요? 그렇게 세상바람에 휘둘리우니까 그림창작도 그 꼴이란 말이요!》

여러가지 사건으로 괴로왔던 문희는 아픈 비난까지 당하자 그만 울분을 터뜨렸다.

《듣기 싫어요! 내가 뭐 당신한테서 모욕이나 받자고 살아있는줄 알아요? 어서 제 장인까지 해치면서 마음껏 세상과 싸워봐요. 그림가지고 창피당한 처나 붙들고 괴롭히는것도 투쟁이예요? 너무해요. 아유, 기막혀라!…》

정의감보다도 상처받은 자존심에 매달려 화풀이를 하던 문희는 베개우에 엎드려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울었다. 그바람에 잠자던 재일이 벌떡 일어나 뜬소경처럼 팔을 벌리고 방안을 돌아가더니 아버지의 무릎에 쓰러져 다시 잠들어버렸다.

흐느껴우는 안해를 보며 어린것의 머리를 만지는 진수의 얼굴은 캄캄했다. 이런 경우에 진수가 자제력을 잃는다면 처참한 사태가 벌어질것이다. 드문히 벌어지는 부부싸움이였다. 많은 부부싸움이 그러하듯 진수내외의 싸움도 그들을 볼모양없이 치졸하게 만드는 경우들이 많았으나 거기에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추악한 세상의 마력같은 힘이 작용하고있었다.

자신에 대한 혐오에 지친 진수는 언젠가 그의 가슴을 울렁이게 했던 처녀시절의 문희를 처음으로 만났던 그날을 회상했다. 그날은 진수가 3학년에 다니던 해의 이른봄 어느날이였다. 진수는 그무렵 친교를 맺은 문과의 김성우가 자기의 시극 《계월향》을 가지고 미술대학에서 시연회를 하니 같이 가보자고 하여 따라갔었다.

시극의 시연은 소인극으로서는 훌륭했다. 진수는 시극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졌지만 특히 녀주인공인 계월향역을 하는 처녀의 재치에 감탄했다. 그는 시극의 작자인 성우를 축하해주고는 롱조로 물었다.

《어떤가, 계월향역을 하는 처녀가 마음에 드는걸. 사귀여볼 방도가 없을가?》

성우의 대답은 간단했다.

《이제 합평회에서 남들이 저 처녀의 연기를 비난하면 너는 마구 칭찬을 하고 남들이 칭찬하면 맵짠 말로 마구 비난하란 말이야. 그러느라면 무슨 일이 생기겠지.》

이윽고 합평회가 벌어졌다. 더 완성할 여지가 있다는 평도 있었으나 계월향의 형상에 대해서는 성공이라고 칭찬들이였다. 마감으로 극장에서 초빙돼와서 무대형상을 지도해준 꽤 유명한 감독이 만족해하며 결론을 하려고 일어났는데 그때까지 녀주인공만 쳐다보던 진수가 의자를 소란스레 뒤로 밀며 일어났다. 그는 성우의 충고와는 반대로 보고 느낀 그대로 특이한 개성을 가진 녀걸인 계월향을 미술학도로서 이만큼 살려낸것은 빛나는 성공이라는것을 달변으로 풀이했다. 그리고는 끝에 가서 다만 유감스러운 점은 실재한 계월향이 환난에 찬 당대 시대의 어떤 사회적요구를 체현했는가 하는것을 엄밀히 따져보지 않은데서 무대형상은 몇군데가 삐뚤어진 거울에 비친것처럼 됐다고 주장했다. 이것은 날카로운 관찰에서 이루어진 정확한 평가였다.

진수가 칭찬할 때는 기쁘고 부끄러워서 귀바퀴까지 발개진 얼굴을 숙이고있던 녀대학생은 그가 학구적인 엄격한 태도로 약점을 지적하면서 삐뚤어진 거울이야기까지 하자 금시 창백해져서 원망에 흐려진 커다란 눈으로 비평자를 쳐다보았다. 감독은 진수의 평가가 매우 충격적이라고 하였다.

진수는 맨 나중에 그곳을 떠나게 되였는데 뜻밖에도 녀자의 목소리가 그를 멈춰세웠다. 돌아보니 녀주인공이였다. 그 녀자가 송문희였다.

《저 미안합니다. 고마운 충고를 주셨는데 좀더 구체적인 말씀을 들을수 없을가요?》

처녀의 신청에 진수는 당황했다.

《글쎄… 잘은 모르지만 아는데까진…》

두사람은 조용한 방으로 갔다. 여기서 진수는 처녀의 귀여운 모습을 곁눈으로 훔쳐보면서 계월향과 그 주변에 대해서 상당한 박식을 털어놓았다. 문희는 그가 재치있는 유모아들을 섞어가면서 늘어놓는 사화들이 재미있어서 몇번이나 입을 가리우고 웃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그들은 이따금 만나 산보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문희가 무슨 얘기끝에 불쑥 물었다.

《혹시 정진수라는 력사과 학생 모르세요?》

문희는 진수가 처음에 성우하고 같이 나타난걸 보고 그때까지 그를 문학도인줄만 알고있었던것이다. 진수는 어지간히 놀랐으나 듣던 이름이라고 시치미를 뗐다. 그러자 문희가 말했다.

《그 정진수라는 학생, 무척 수재라는데요. 왜 못 보셨어요? 그 사람이 발표한 유명한 론문말예요. 어쩜 학생인데 그렇게도 박식하고 용감할가요. 그런분과 한번 산보라도 해본다면 일생 못 잊을 추억이 될거예요!…》

진수는 너무나 만족하여 가슴이 활랑거렸다. 처녀가 감탄하는 론문이란 진수가 절친한 친구이며 좌익적인 날카로운 두뇌를 가진 강동혁이라는 동창생의 도움을 받아 쓴 론문이였다.

오래 망설이던 끝에 진수가 무엇을 사죄하는듯 한 태도로 그 글의 필자가 바로 자신이라는것을 고백했을 때 문희는 자기와 산보하는 진수가 변장한 왕자처럼 보여 놀랐으며 그를 바라보는 처녀의 빛나는 눈은 《저의 행복은 바로 당신이예요!》 하고 끝없이 고백하는것 같았다.

유족한 아버지의 슬하에서 돈걱정을 모르고 자라난 문희는 진수의 다면적인 지성과 남아다운 정의감을 부드럽고 순진한 마음으로 잘 조명해주군 해서 서로 이야기하기가 즐거웠고 리상적인 짝처럼 여겨졌다. 한것은 문희는 그때까지도 뚜렷한 생활관이 서있지 못한 대신 타고난 풍부한 감성과 계모의 랭대속에서 바깥세상을 랑만적으로 그리워한데서 생긴 내부적인 정열로 해서 호감을 주는 사람에게는 자기를 훌륭히 순응시킬수 있었던것이다.

어느날 무슨 이야기끝에 진수는 그 처녀에게 왜 어머니가 아버지와 갈라지게 됐는가 하는걸 가볍게 물어봤는데 뜻밖에도 한동안 대답을 못했다. 그들은 그때 어느 조용한 뒤거리를 걸어가고있었는데 문희는 길가에 놓인 커다란 토관옆에 이르더니 두손으로 낯을 싸쥐고 소리를 죽여가며 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마디마디 끊어지는 소리로 하는 말이 전라도의 어느 시골의 극빈한 농가태생인 어머니는 오래전에 무슨 실수로 오해를 사서 아버지의 버림을 받았는데 지금도 강원도의 시골에서 외롭게 살고있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오리오리 저며지는것 같다고 하였다.

그밤의 문희를 눈앞에 선명히 그려보는 진수는 안해의 생활관이 이토록 모순에 빠진것은 자기를 키워준 유족한 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대신 불행한 어머니를 잊어버린데도 중요한 원인이 있음을 깨달았다. 가난하고 원한많은 그 어머니의 립장에서 생활과 사회를 대한다면 지금같지는 않을것이라고 확신했다.

날을 따라 친밀해진 진수와 문희의 관계는 그후 온 민중을 열광속에 잠기게 한 4.19항쟁의 광장에서 고조에 이르렀다. 죄많은 양키의 늙은 주구가 도사리고있는 경무대를 향하여 살인마들의 총칼과 탄우를 맞받아 매일같이 온 서울이 봉기자들의 시체를 넘어 육박하던 어느날, 진수는 강동혁을 비롯한 친구들과 함께 여러 군데나 심한 부상을 당한채 경찰들에게 체포되였다. 뒤미처 달려온 학생들이 동료들을 구원하려고 경찰들과 란투를 벌렸다. 진수는 바로 피방울 튀는 그 싸움판에서 그를 구원하려고 문희를 비롯한 여러명의 녀대학생들이 경찰들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드는것을 보았다.

문희는 그때까지 시위투쟁에 별로 참가하지 않은 《잔류파》로 남아있다가 세상이 뒤바뀔것만 같은 격동하는 정세의 바람에 날려 투쟁속에 들어선것이였으나 진수에게는 장검을 든 춘향으로만 보였다.

문희는 진수를 구원할수 없었다. 끝내 경찰들에게 끌려가던 진수는 머리에 타박상을 입고 피를 뚝뚝 떨구는 자기를 문희가 눈물로 바라보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것을 보았다. 진수는 자기의 온넋을 뒤흔드는 문희의 그 모습과 그 눈물로 하여 호송차에 처실리는 그 순간까지 경찰들에게 란장을 맞으면서도 아픈줄을 몰랐다.

미중앙정보국의 직접적인 지휘밑에 박정희군사깡패가 5.16쿠데타로 4.19의 열매를 짓밟고 세상을 철창없는 감옥으로 만든 비통한 계절에 진수는 문희와 결혼하였다.

그무렵은 진수도 돌변한 험악한 정세앞에서 실망하고 당황하여 뒤걸음쳤지만 문희는 남편이 저항운동에 나설가봐 쩔쩔맸다. 남편이 무슨 일로 퇴근이 늦어지기만 해도 철부지를 강변에 내보낸 어머니처럼 안절부절을 못했다. 매일같이 수백수천명의 사람들이 잡혀가고 어데 가나 군사재판에 대한 무서운 소식들로 뒤숭숭한 나날이여서 문희에게는 정치적인 반항이란 곧 감옥행이고 가정의 파탄을 의미했던것이다.

진수는 점차 안해의 이러한 공포가 돌변한 정세로 생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전부터 유족한 생활과 가정적인 안락을 일종의 희망처럼 품어온데서 흘러온것임을 깨달았다. 처녀시절에는 그것이 다른 좋은 기질들속에 싹으로 숨어있던것이 가정을 가지고 세간살이를 주관하게 되자 급속도로 자라올라 자기를 주장하게 된것이다. 하기는 문희가 처녀시절에 진수에게서 반했던것은 그가 투쟁의 거리에서 압제자들과 싸운 그 영웅성보다는 험난한 세파속에서도 자신과 가정의 안락을 위해서는 어떤 야심이라도 이룰듯싶은 그 사내다운 용감성때문이였던것이다.

울다가 잠들어버린 안해의 처량한 모습을 바라보며 그와의 옛일을 더듬은 진수는 온갖 충고나 꾸중으로도 이때껏 안해를 교양해내지 못한 자신의 무능을 개탄했다.

고민에 지친 그는 벽에 기대여앉은채 잠들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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