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3 장


13


몸이 불편하여 신문사에 늦게 출근한 진수는 동료들의 특별한 관심을 끌었다.

안한수가 소문을 놓는 바람에 진수가 깡패들에게 봉변을 당했다는것을 알게 된 기자들은 그의 주위에 모여들어 법석 떠들어댔다. 진수가 당한 일을 속으로 씨원해하는감도 있었으나 대개는 그가 공로나 세운것처럼 쳐다보는가 하면 글이 맵짜고 투지가 강한 그에게 수난까지 겹들여 또 한번 인기가 올라간것을 부러워하기도 했다. 지어 한숙이까지 감탄하여 말했다.

《참, 숱한 놈들에게 맞으면서도 맞받아쳤다니, 보통담이 아니군요!》

량성도는 이 사건을 언론에 대한 당국의 폭행이라고 분개했다. 그는 자기가 나서기만 하면 깡패들과 그들을 발동한 숨은 놈들까지 몽땅 적발할수 있다는듯이 공보부와 경찰국에까지 전화로 소래기를 질렀다.

그런데 당사자인 진수에게는 이러한 속이 빈 관심이 부끄럽고 불쾌했다. 언제는 기자들의 신변이 안전한적이 있었던가. 감옥을 각오하지 않고는 진실을 말할수 없는 사회, 언론에 대한 폭행은 흔해빠진 사건이 아닌가. 해결대책도 없이 공연히들 부산만 피운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위달종편집국장은 진수를 불러들이더니 폭행을 당한것은 유해로운 혈기탓이라고 몇번이나 강조했다.

진수는 이런 비린 분위기가 싫증나서 그사이 마지막고비에 이른 창덕사부지사건을 취재하러 나가려고 전화로 취재차를 불렀다. 그러나 저쪽에서는 취재차들이 모두 밖에 나갔다는것을 알리면서 돌아오는 첫차를 돌려주겠다고 했다. 진수는 몸도 불편하여 기다리기로 했다. 그사이 도서실에 들려 신문철을 뒤적거리며 자기가 창덕사사건에 대하여 쓴 크고작은 여러건의 기사들을 찾아보았다. 그는 그중에서 며칠전에 실린, 현재까지의 창덕사사건의 흐름을 요약한 기사를 읽어보았다.

다 읽고난 진수는 제가 쓴 글이면서도 권력과 결탁한 자본의 범죄가 얼마나 악질적이며 반인간적인가 하는것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그는 사태의 흐름으로 보아 시청이 오늘래일 창덕사부지 주민들에게 철거명령을 내리리라는것을 예측했다. 이것을 빨리 알아내는것이 필요했다. 그와 함께 ㄷ대학재단이 분쟁의 땅을 빼앗아 《한일자동차》회사에 넘겨준 대가로 얼마나 되는 부정뢰물을 먹었는가, 민규석의 《한일자동차》회사가 창덕사부지에 짓겠다는 공업전람관구상의 사실여부 등을 파헤쳐보고싶었다.

한시간가까이 기다려도 돌아온 취재차는 없는 모양이여서 그는 거리에 나가 뻐스를 타고 시청부터 먼저 찾아갔다. 담배를 사려고 종로2가에서 내린 그는 잡화상점앞에서 한 젊은 지게군이 40전후의 사치하게 차린 부인에게서 수모를 당하는것을 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짐군은 잠간 쉬고난 모양인지 지게에 하늘색뼁끼칠을 한 육중한 철궤를 지고 작대기에 의지하여 일어서려고 만신의 힘을 다하고있었다. 어찌나 모지름을 쓰는지 피가 내비쳐 벽돌빛으로 물든 얼굴은 온통 일그러지고 팔굽을 고인 한쪽무릎과 작대기를 틀어쥔 손이 와들와들 떨렸다. 짐군은 어지간히 거쿨진 몸인데도 굶주리고 지쳐서인지 일어서지를 못하고있었다. 그런데 노란 양산을 받쳐들고 몸짓, 얼굴짓에 애써 고관부인티를 내는 녀인은 긴 인조눈섭을 치떠빨며 옹알거리기만 했다.

《아니, 이 량반이 거미장을 지져먹었어? 그만큼 쉬고도 맥을 못춰. 시간이 바빠죽겠는데.》

진수가 얼른 도와주려고 했으나 짐군은 이그러뜨렸던 얼굴을 풀며 맥을 놓고 주저앉았다. 그 순간 진수는 놀라며 한걸음 물러섰다. 짐군은 진수의 한고향내기로서 창덕사부지에 사는 로동자인 김용기였다.

《용기!…》

진수가 놀라와하자 용기는 시퍼런 눈길로 쏘아보더니 지게다리를 땅에 놓고 지게에 작대기를 버티여놓으며 한숨과 함께 서글프게 웃었다. 진수는 짜증을 내는 부인에게 량해를 구하고 친근감을 주는 꾸짖는 투로 용기에게 말했다.

《사내대장부가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회사엔 왜 안 나가고 거리에서 이 모양인가?…》

용기는 대답이 없었다. 자기와는 처지가 달라서 제노라 하면서 사는 유명짜한 기자앞에서 자신이 너무도 가련한 존재로 동정을 받는것이 기분상한 그는 다시금 맵짠 눈길로 진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진수의 얼굴에서 진실한 애정과 아픔의 빛을 본 용기는 이내 마음이 부드러워졌다.

《회사에선 두달째나 로임을 안 주지. 그래도 먹고살기는 해야겠으니 어떻게 합니까. 참, 창덕사는 기어이 헐릴것 같지요?》

용기는 이렇게 물었으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틀어쥔 작대기에 짐무게를 옮기며 일어나려고 안깐힘을 썼다. 진수는 얼른 지게다리를 들어주었다. 간신히 일어선 용기는 걸음이 위태로왔다. 집이 철거를 당하면 어머니를 모시고 자기 집에 오라고 진수가 말했으나 용기는 짐무게로 인한 고통때문인지 대답이 없었다.

호사스러운 계집의 독촉을 받으며 무거운 짐에 짓눌려 간신히 걸어가는 용기를 보는 진수는 가슴이 쓰리였다. 서울이라는 험악한 도시가 용기를 괴롭히는것은 한고향내기인 그 청년 한사람도 구원하지 못하는 그의 부도덕과 무능력을 폭로하느라고 그러는것만 같았다. 용기의 등에 얹힌 커다란 푸른 철궤는 붐비는 인파를 헤치고 기우뚱거리며 천천히 멀어져갔다. 진수는 그 푸른 철궤가 옆골목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았다. 그는 상점에서 담배를 사가지고 시청으로 급히 걸어갔다.

진수가 만난 서울시장은 자기의 권위를 돋보이려는 의식 하나로만 살아가는 허풍선이 같았다. 력기선수처럼 몸집이 옆으로 퍼지고 물기가 가랑가랑한 눈에 자기의 선량함을 돋보이려는 사교적인 웃음에 익숙된 시장은 본국으로 돌아가기에 앞서 인사차로 들린 세명의 서도이췰란드기술자들과 작별의 악수를 하면서 통역관에게 말했다.

《이 사람들에게 그간의 공로는 내가 절대로 잊지 않겠다고 한다는것 그리고 내 수첩에 이 사람들의 이름과 공로가 적힌만큼 대사관에 가장 기분좋은 평가보고가 들어가리라는걸 내가 특별히 언명한다고 멋들어진 말로 전하게.》

기자의 권한으로 시장실에까지 무턱 들어선 진수는 시장의 어리석음이 역겨워서 랭소를 금할수 없었다. 시장은 오직 자기를 내세우기 위해서만 말을 하는듯 했다. 외세의 사슬에 묶이고 서방문화에 병든 폭정의 도시, 세계제일의 저소득과 숨막히는 공해따위로 이름난 서울, 이 도시에서 시장자리에 앉은자라면 응당 모든 범죄와 추악에 책임을 느끼고 감옥에나 가야 할것이 아닌가! 그런데 오히려 자기는 곧 영광이며 신성한 힘이라는듯, 자기가 맡아보거나 관심하는 일은 그 무엇과도 비할바없는 커다란 의미를 가지며 자기가 신다버린 구두나 양말 같은것도 박물관에 보관해야 할것이라고 생각하는듯 한 거동이다.

진수는 시장이 서도이췰란드기술자들과 헤여지기가 바쁘게 그에게 30분간의 면회를 요청했다.

《나하고 30분간이나? 5분도 안되오. 내가 바쁘다는거야 하늘의 별들도 알텐데. 오늘은 일정이 꽉 물려놔서…》

시장은 이렇게 말하면서 손뒤짐을 지고 화려한 주단우를 거닐더니 그대로 나가려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제가 알아보자는 문제는 시장님의 명예와도 관련되는 문제인데 적당히 발표해도 좋겠습니까?》

진수가 배짱있는 소리를 하자 제 생각에만 잠겨있던 시장은 출입문손잡이에 손을 얹다말고 교통순경처럼 급히 돌아서며 반문했다.

《명예와 관계되는 문제라니, 무언데?》

시장이 자기의 특별석에 와서 틀지게 앉자 진수도 쏘파에 앉아 기자로서의 기품을 보이며 재치있게 넘겨짚었다.

《구청에 들려보니까 창덕사주민들에 대한 강제철거가 림박했다고들 하는데 사실이겠지요? 시장님도 독촉하였다고 하더군요. 제가 알고픈건 철거후에 그 사람들이 옮겨가서 살게 될 새 주택부지를 어데로 정해두었는가 하는겁니다.》

《새 주택부지라니?》

시장은 진수에게 잡히운것이 짜증이 나는지 찌뿌둥해서 손목시계를 보며 말했다.

《그것까지야 내가 알 일이 아니지요.》

《그럼, 시장님이 맡아보는 한계란 그 사람들을 한지에 내쫓는데 까지라는 말로 되는데두요?》

《말을 왜 그렇게 뱅뱅 꼬는거요?》

《사실이 그렇지 않습니까? 또 하나 묻겠습니다. 아시겠지만 민규석회사가 창덕사땅에 손을 뻗치는것은 완전한 불법이라고 여론이 물끓듯 하고있는데 시장님은 그 철거를 무엇으로 정당화할수 있습니까?》

《원 무슨 말씀인지. 판자촌이 서울의 수치란걸 몰라서 묻는거요? 화재방지와 보안도 미관도 위생도 다 판자촌이 망친단 말입니다. 이점, 신문에서도 힘을 넣어 강조했으면 좋겠소.》

《알겠습니다. 그런데 판자촌문제란 빈민, 령세민문제인데 그 판자촌을 자꾸 만들어내는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구조부터 수술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드십니까? 도시행정의 암은 바로 여기에 있는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범죄의 뿌리는 두어두고 피해자들만을 괴롭힌다면 모든 시민을 보호해주어야 할 시장님의 명예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대화는 이런 투로 이십분가까이 끌었다. 이 면담에서 진수가 얻은 결론은 창덕사부지 주민들이 불원간에 강제철거를 당할것은 확실하다는것 그리고 현행의 모든 법과 규정들은 일단 부자들과 일반민중사이에 분쟁이 터질 때면 언제나 부자들의 일방적인 무기로 되여 가난한 사람들을 해칠뿐이라는것이였다.

진수가 자리를 뜨려고 할 때 시장의 젊은 녀서기가 검은 목갑과 두툼한 봉투를 한손에 받쳐들고 오똘거리며 들어오더니 상전에게 무엇을 보고해야겠는데 진수가 있는것이 께름직한 모양인지 그의 눈치를 힐끔힐끔 살폈다.

《무언데? 얼른 말해.》

진수와의 면담에서 기분이 상한 시장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녀서기는 손에 든것을 탁상우에 놓고 분망한 사교생활에서 바다가의 조약돌처럼 다스려진 반들거리는 미소로 시장을 쳐다보며 말했다.

《시인 김성우씨가 왔댔습니다. 얼마전에 시장님께서 수여하신 문화상과 상금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서 도로 가져왔습니다.》

《무어라구? 원 별일이 다 있군. 상금을 거절하다니?…》

시장은 넓은 이마를 주름살투성이로 이그러뜨리며 진수를 보고 개탄하더니 금시 얼굴색을 붉히며 이건 모욕이라느니, 시인을 불러들이라느니 하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녀서기는 방에서 급히 뛰여나갔으나 인차 들어오더니 시인은 이미 사라졌다고 보고하였다. 요전날 밤에 강동혁과 함께 김성우를 만났을 때 그가 표창을 받은것을 불쾌해하던 일을 생각한 진수는 상금을 반환하고 돌아간 그의 엄숙한 표정을 상상하고는 터지는 웃음을 참을수 없었다. 그러나 진수는 급히 손수건을 꺼내여 얼굴을 닦는체 하면서 웃음을 지워버렸다.

《그래 김성운지 하는 시인이 무슨 말은 안하더냐?》

시장이 녀서기에게 묻자 그는 또 진수의 눈치를 살피다가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그분이 하는 말씀이 며칠전부터 갑자기 심한 변비증이 생겨서 죽을 지경이랍니다. 너무 급해서 점쟁이한테 가서 점을 쳐봤더니 잘못 먹은 쇠붙이를 토해야겠군 하더랍니다. 생각해보니까 상금이 집안에 들어온것이 더럭 겁이 나더랍니다.》

진수는 시장의 검은 눈알이 웃눈시울에 반달처럼 매달린것으로 보아 그가 어지간히 불어났다는것을 알았다. 그래서 아까처럼 목을 치받는 웃음을 겨우 누르고 이렇게 둘러댔다.

《제가 보건대 시장님의 명예와 관련되는 사건은 아닌것 같습니다. 유럽나라들의 경우를 보면 노벨상까지 코웃음치면서 거절한 거인들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김성우라는 시인은 국민학교시절부터 상을 타게 되면 울면서 반환했다는 말이 있어요.》

시장은 진수의 진지한 얼굴빛을 보더니 어느 정도 납득이 가는 모양이였다.

시장실을 급히 나온 진수는 혹시 성우를 만나면 웃어볼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고 현관으로 급히 달려나갔다. 그러나 시인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그대신 잘 아는 사이인 다른 신문사 기자를 만났다. 조개턱에 운두가 낮은 중절모를 삐딱하니 쓴 그 기자는 진수를 한옆으로 부르더니 그의 귀에 속삭이였다.

《자네 들었나? 공보부 차관이 기자들앞에서 일부 사회보안에 저촉되는 보도를 하는 기자들이 있다고 하면서 자네 이름을 비쳤다는 말? 뭘 뜻하는지 알겠나? 창덕사사건을 피하라 그 말이야.》

《별소릴… 뭐가 그리 무섭다구.》

《아니, 어쩌자구 그러나? 다른 신문들이 다 그 사건을 피하는 리유 모르겠나? 문제의 〈한일자동차〉회사가 바로 박정희의 돈주머니의 하나인데 그걸 건드리자면야 모종의 각오가 돼있어야 할게 아닌가! 조심하라구. 신셀 망치기 전에…》

진수는 웃으면서 그와 헤여졌다. 언론의 보신주의, 사람들의 소심성이 그의 마음을 어둡게 했다. 압제자, 략탈자들은 사람들의 이 보신주의와 소심성을 보충적인 수입항목으로 보고 더욱 횡포해지는것이 아닌가.

진수는 몸이 불편한것을 무릅쓰고 계속 취재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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