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제 3 장


14


진수가 취재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니 문희는 재일을 데리고 어디로 나갔는지 문이 잠겨있었다.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간 진수는 서재의 책상우에서 편지를 보았다. 남부윁남에서 보낸 동생 인수의 편지였다. 편지를 뜯는 그는 이상하게도 자기때문에 무서운 불행에 빠진 어떤 낯선 사람이 원한에 찬 고발장을 보내여온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였다.

뜯어보니 잔글씨로 여러장에 촘촘히 채운 편지였는데 구겨진데다가 어떤데는 땀인지 기름인지에 절어있어서 글자가 잘 보이지 않았다.

진수는 의자에 앉아 읽어내려갔다.

《형님, 나의 편지는 인사가 아닙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놈이니 흔적이라도 남기려는겁니다.

여기는 언제나 비, 무더위, 폭음과 피뿐입니다. 미칠듯 한 땅입니다. 우리는 이미 짐승이나 다름없습니다. 공산군대에 대한 련속적인 포위전을 그리며 왔는데, 이건 무슨 란장판인지 우리 편이 오히려 사방으로 찢겨 포위속에 빠져있습니다. 베트공은 밤마다 번개처럼 아군을 치고 달아나기때문에 우리는 북데기속에 숨었다가 도리깨에 맞는 개구리신세입니다.

몸차림이 깨끗한 놈부터 적탄에 맞는다고들 믿고있어서 사병이건 장교이건 세수도, 리발도 안합니다. 그러다나니 얼굴은 야수인데다가 땀투성이옷은 악취나는 누데기구요. 이외에 파편이 두려워서 배낭이며 공병삽이며 숱한 쇠붙이를 주어두르고 다니는 꼴은 꼭 미친 거지입니다. 오죽하면 고국에서 온 위문단이 이런 꼴을 보다못해 붙안고 대성통곡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양키들은 딴판입니다. 그놈들은 마시고 처먹고 지랄입니다. 공산군이야 오건말건 쥐 한마리 얼씬할세라 매일 24시간 자기 진지의 둘레를 기관총으로 사격하고 하늘에선 련속 비행기가 돌아치며 기총소사로 엄호한단 말입니다. 그리고도 세계〈최강〉이라는 그 자식들은 안전한 곳만 골라 차지하고 죽을데는 〈한국〉발바리들이 끌려가야 하니 이가 갈리고 부아통이 터지는 일입니다.…》

여기까지 읽은 진수는 다음 몇줄은 꺼멓게 기름이 배여있어서 알아볼수 없었다. 그는 점점 마음이 괴로와지는것을 느끼며 다음 부분을 읽었다.

《베트공에게 골탕을 먹고는 사민부락을 칼탕치는겁니다. 헬리콥터로, 포사격으로 마을을 쑥밭으로 만들고는 간신히 피해달아나는 로인들과 아녀자들을 향해 돌격하는거예요. 그럴 때면 갑자기 용감해지는 〈화랑의 후예〉들은 체면이고 수치고 생각할것 없이 이리 쑤시고 저리 날뛰며 녀자로 생긴것은 닥치는대로 붙잡아 강간하는 짐승으로 변하는거예요.

윁남정부군속에 있는 극렬분자들은 베트공과 그 가족들의 살을 료리해먹는가 하면 다낭 도지사네 집에서는 사람의 귀를 베여 가득가득 채운 큰 상자가 세개나 나왔다고 합니다.

무서운 지옥입니다. 베트공과의 싸움이 이런 야만행위인줄은 꿈에도, 꿈에도 몰랐습니다.

형님은 언젠가 내 손에 묻히는 남의 피는 씻을수 없다고 했지요. 신통한 말입니다. 나는 아직은 보급계통에 있으니 너무 걱정마십쇼. 아, 그러나 신성한줄 알았던 이 싸움터가 이 지경이니 내 머리속에 일어난 미칠듯 한 혼란은 어느 하느님이 정돈해준단 말입니까!

…형님은 리별의 룡산역에서 나에게 엇서던 녀자를 보았지요? 그게 나의 애인입니다. 내가 학생시절부터 수없이 편지를 보내며 짝사랑을 해온 녀잡니다.

그 녀자에게 모욕을 당했을 때엔 죽고싶었으나 오지 않을데로 오고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따귀라도 맞아야 할걸 못 맞은것이 한입니다!

나로서도 모를 일, 나는 그 박영옥이라는 녀인이 없다면 살고싶지도 않습니다.

제발 비웃지 말고 간청이니 들어주십쇼. 꼭 그 녀자를 만나 전해주십시오. 나를 기다려주겠다는 한마디 편지라도 보내준다면 이 정인수는 지옥에서도 기어이 인간으로 버티여 살것이며 깨끗한 손을 가지고 돌아갈것이라고! 그러나 이 단 하나의 희망이 거부를 당한다면 나는 인간으로 소생하지 못한채 값없이 죽고야말것입니다!…》

편지를 읽은 진수는 동생의 불행이 너무도 가슴아파 한동안 의자의 등받이에 기댄채 눈을 꽉 감고있었다.

그는 동생이 윁남유격대를 무서워하지만 보다는 그들을 반대하여 싸우는 세력을 더욱 증오하고 무서워하고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짐승으로 변하는 동료들과 련합군에 대한 이 증오와 공포야말로 피투성이아가리를 벌리고 동생을 추격하는 진짜 적이 아닌가. 동생은 그 야수들에게 쫓겨 향방없이 들뛰고있는것이다. 그러면서도 희망도 없이 짝사랑하는 지구의 반대켠에 있는 처녀에게 인간으로 살아남을 힘을 달라고 피타게 웨치고있는것이다.

진수는 창가에 가서 섰다.

밖에는 눈이 내리고있었다. 바람없이 내리는 굵은 눈이였다.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드는 복잡한 세상사를 소리없이 덮어 가리워주며 무슨 위안처럼 내리는 그 눈을 내다보며 진수는 생각했다.

(박영옥이라는 그 처녀를 찾아가서 만난다고 하더라도 내가 덧붙여 할 말은 없지 않을가. 유명한 규수의 딸에 대학생인 그 처녀가 윁남이라는 죽음의 땅에서 절망에 빠진 비참한 하급장교가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사랑에 자신을 얽어매거나 희생할리는 없다. 그저 창피스러워하면서 동정이나 할것이다.

그렇다면 영옥이 본인보다는 박교수를 만나보는편이 어떨가?…)

진수는 동생의 편지를 몸에 간수하고 코트차림으로 밖에 나섰다. 교수의 집까지는 멀지 않아서 눈도 맞고싶은겸 걸어가기로 했다.

행인들속에 섞인 그는 우울한 기분으로 스적스적 걸었다. 무질서하게 뒤섞인 침침한 단층과 2~3층건물들에 눅거리음식점, 잡화상점, 가구류상점 등의 잡다한 간판들이 볼꼴사납게 걸린 너저분한 거리다. 걸어가는 진수의 눈에 걸리는것은 모두가 버림받은 처량한 《군상》이다. 담벽밑에 암담한 얼굴로 서성거리는 실업자들, 털모자며 낡은 군모들을 앞이마에 내려쓰고 지게에 기대여앉아 눈을 맞는 품팔이군들, 새까만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행여나 하여 행인들을 말똥말똥 쳐다보는 구두닦기소년들…

《동방철학가 황파, 사주팔자도 봅니다.》라는 간판아래엔 검은 구레나룻의 거짓말쟁이가 련탄로를 끼고 앉아 점대통을 흔들며 눈내리는 을씨년스러운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비로운 예언을 중얼거린다. 그앞에는 시골티가 뚝뚝 떨어지는 녀인이 갓난애기에게 젖을 물리고 앉아 점쟁이의 입에서 행복의 씨앗을 문 봉황새가 날아온다는 소리라도 나오는가싶어 어두운 눈을 떨군채 귀를 강구고있다.

어데선가 녀인의 비명같은 웨침소리가 울렸다.

《까마귀 떴다!》

그러자 과일이며 물고기들을 담은 광주리며 함석버치들을 벌려놓은 되거리장사군녀인들은 저마끔 귀청이 떨어지게 아우성치면서 팔던것을 걷어안고 야단법석을 떨며 도망들을 친다. 순경들이 나타난것이다. 놈들은 랭혈동물인가. 할머니건 젊은 녀인이건 잡히는대로 마구 주먹을 지르며 구두발로 광주리를 짓밟고 차버린다. 눈내리는 땅우에 어지러이 휘뿌려지는 과일과 물고기들, 억이 막혀 헉헉거리며 흩어진 살점을 거두듯 애고애고 호곡하며 짓밟힌 물고기들을 어루더듬어 모으는 떨리는 붉은 손들…

진수는 걸음을 멈췄다. 설음과 분노에 가슴이 쓰렸다. 자주 보아오건만 습관될수 없는 만행이였다. 마음 같아서는 한두놈의 순경을 곤죽이 되도록 때려눕히고 수난자들과 행인들에게 웨치고싶었다.

(이 더러운 짐승에게 침을 뱉으시오!)

그러나 숨도 쉬는듯마는듯 굳어져있는 진수는 몇몇 순경들이 서너명의 행상군들을 백정이 개끌듯 질질 끌고 가는 광경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무리 일류신문의 기자라도 추악한 순경 한놈도 마음대로 처치할수 없을지 모른다. 저놈들은 교통단속이니 뭐니 하고 백가지 구실을 내걸것이다. 합법화된 만행과 죄악, 그것은 벌써 맨손으로는 끊을수 없는 쇠그물을 이루어 사회전체를 짓누르고있는것이다.)

이런 생각에 잠겨있던 진수는 발밑에서 모기소리처럼 어렴풋이 들리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람루를 걸친 가냘픈 소녀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대고 엎드려 두팔을 내밀고있었다. 발갛게 얼어든 두손사이에는 약간의 돈잎이 얹혀진 접시가 놓이고 그앞에는 누구의 지혜인지 먹으로 쓴 글발이 얹혀있었다.

《엄마는 먼저 가고 아버지는 중병입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하염없이 내리는 눈송이를 맞으며 죽은듯이 엎드려있는 소녀의 여린 잔등과 손이며 처량한 접시며 글발을 굽어보던 진수는 자기로서는 어쩔수 없는 괴로운 속박감을 느꼈다. 소녀는 구걸하고있었지만 그 본질적모습은 매정한 세상을 고발하고있는것이 아닐가. 인간의 지향과 대립된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가 고아일지도 모른다. 사회는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있어도 어느 한 기관, 어느 세부에도 민중을 사랑으로 안아주고 따뜻이 보살펴주는 곳은 없다. 모두가 뜯어먹고 착유기처럼 비틀어 짜먹을뿐이다. 더는 빼앗길것이 없는 개인, 아무런 밑천이 없는 개인은 파멸을 당할수밖에 없다. 그러니 살길이 막힌 가정들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낡은 트렁크나 놋대야까지 고물가게의 매대에 던질 때 자기 몸에 애인의 손길이 닿는것조차 수줍고 부끄러워 파들파들 떨던 처녀들조차 한끼의 밥을 위하여 인육시장의 침대에 자기의 정조를 버리는것이다.

어찌하여 살아간다는것이 이렇게도 고통스럽게 되였는가? 피타는 원한과 어리멍청한 놀래임에 이그러진 얼굴들이 때아닌 락엽처럼 되여갈 때 폭력과 간계로 무장한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야만의 승리를 축하하여 끝없는 환락에 놀아나는것이다.

진수는 불쌍한 소녀의 접시에 지전 한장을 놓으며 생각했다. 이것은 이 세상은 왜 이렇게도 잔인한가고 묻는 소녀에게 대답이 못된다. 구걸에 적선을 하고 죽음에 눈물은 흘려줄수 있어도 운명을 건져줄수는 없다는 무력한 고백이 아니고 무엇이랴.

소녀는 진수가 놓은 지전을 떨리는 손으로 틀어쥐더니 천천히 얼굴을 들고 쳐다본다. 요란한 문기척소리에 놀란 환자와 같은 얼굴, 어린것이 어쩌면 이렇게도 늙어보일가. 추위에 까맣게 질려 헤벌어진 입은 무엇인가 말을 하려고 옴지락거렸으나 소리는 없다. 그대신 눈이 말하고있었다. 상실의 고통과 절망적인 고독에 눈물도 없이 울고있는 그 눈은 두꺼운 얼음으로 된 감옥에서 내다보고있는것만 같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것뿐이예요? 당신들은 모두 인간이 아니군요.…》 하고 말하는것만 같다.

진수는 이와 비슷한 눈을 어데서 꼭 본것만 같았다.

그렇지. 전쟁때였다. 인천의 어느 고아원이 떠올랐다. 《국군》에서 제대되기 얼마전, 우연한 기회에 구경삼아 들렸던 고아원, 질병과 주림에 말라죽어가던 처량한 고아들, 한 소년에게 사탕을 주며 이름을 물었을 때 뜻밖에도 침을 뱉으며 뒤걸음질치던 그 아이의 저주와 설음에 찬 눈물어린 그 눈. 소년은 세상의 잔인과 포악, 랭담이 어떻게나 무서웠고 어찌나 짓쫓겨다녔던지 이쪽에서 표시하는 동정에도 겁을 먹고 무엇인가 혀아래소리로 중얼거리며 맹수나 본것처럼 뒤걸음질치고있었다. 만약 그 순간에 진수가 무리하게 애정 같은것을 보이느라 팔이라도 벌리고 다가갔다면 그 아이는 기절해 넘어졌을것이다.

사람을 무서워하던 그 여윈 소년, 공포와 절망에 얼어붙은듯싶었던 그 눈과 이 소녀의 눈은 어쩌면 이렇게도 같은것을 말하는것일가?

《너 이름이 무어지? 몇살이냐?》

진수는 허리를 굽히고 조용히 물었으나 소녀는 대답이 없다. 몇번이나 거듭 물은 뒤에야 소녀는 접시우에 내려앉는 눈을 꿈꾸듯 굽어보며 갈대피리처럼 처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송문희》, 진수의 안해와 이름이 같았다. 열두살.

직업도 없는 아버지 송덕삼은 간장염으로 위급하단다. 주소는 말썽많은 창덕사 판자촌…

진수는 수첩에 적어넣었다. 짭짤한 글과 사진을 받쳐 신문에 광고라도 내주려고 생각했다.

진수는 소녀가 다시 눈우에 엎드리는것을 보고 자리를 떴다. 순경들의 행패질에 몰려 들뛰던 행상군들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듯이 다시 제자리에 앉아 행인들을 부르고있었다.

(어째서 이렇게밖에는 살수 없을가.)

진수는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고뇌는 그자체가 생의 목적이란 말인가? 모두가 제나름의 고통과 불행에 몸부림치고있다. 어떤 힘이, 어떤 개자식들이 세상을 이렇게 짓이겨놓았는가. 리별의 정거장에서 짝사랑하는 처녀에게 화를 입고 윁남의 피바다속에 던져진 동생, 그리고는 아직도 그 처녀에게 매달리다니…

그러면 나는 어떤가? 출로를 알수 없는 고민때문에 미칠 지경이 아닌가? 세상의 죄많은자들과 사생결단을 하고싶건만 무기도, 투사들의 대오도 없다. 기분은 언제나 비오는 궂은 날씨다. 그러나 온 마음으로 갈망하는 통쾌한 우뢰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모든것이 뒤죽박죽이다. 모두가 자기의 위치를 잃어버렸거나 찾지 못한채 어떤 타률적힘에 밀리여 괴로움만이 전기마당처럼 힘을 뻗치고있는 싫은곳, 불행한 장소에만 잡혀있다. 죽을 기를 써서 희망하던 곳에 도달한 사람도 거기서 으깨여진 행복의 부스레기나 손에 넣을뿐 또다시 짙은 먼지와 안개속에서 수난자의 고달픈 길에 나서야 한다. 하나의 불행을 밀어제낀다고 하더라도 결국 얻는것은 불행의 형태를 바꾼데 지나지 않는다. 물논마다에 개구리가 끓듯 고통은 생활의 갈피마다에서 독아를 날름거리고있어 일반민중은 살기 위하여 태여났건만 산것도, 누려본것도 없이 빼앗기기만 하다가 분노와 원한만 유산으로 남긴채 땅우에 쓰러지는것이다.

그러나 음모와 협잡, 략탈과 패덕에는 아무런 제동기도 없고 거칠것이 없다. 법이니 규정이니 질서니 하는것들은 모두 대의명분을 빌어 아름답게 치장했어도 그것은 자본과 권력의 엄엄한 울타리거나 매듭마다에 예민한 덫이 달린 민중을 구속하는 사슬인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것을 구상하고 빚어놓은것은 누구인가?)

진수는 박명찬교수네 집쪽으로 통하는 골목길에 들어서며 생각했다.

(그것은 위정자들이다. 주모자, 장본인은 침략자들이다. 백악관과 그 현지대리기관인 미대사관과 거기서 수없는 가지를 펼친 기구와 업체들이다.)

진수는 불안한 가슴속에 커다란 돌멩이가 떨어져내리는듯 한 충격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자기 생각이 두렵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럴수록 생각은 의지를 띠고 집요해지기만 했다. 걸음을 멈춘 그는 담배를 피워물고 전주대에 한손을 얹은채 연기를 깊이 들이마셨다. 박명찬교수네 집에서 벌어졌던 《셔먼》호사건에 대한 론쟁이 떠올랐다.

코트주머니에 두손을 찌른채 머리를 가슴에 드리운 진수는 다시 걸음을 떼며 생각했다.

(거기로부터, 이 땅에 처음으로 상륙했던 미국으로부터 모든 불행은 시작된것이 아닐가?

미국이 없었다면, 정말 그랬더라면 리승만이라는 괴질이 있을수 있었을가. 락하산융자와 악질매판세력의 등장과 그 만행이 38도선이라는 분계선이 민족을 동강내는 국경 아닌 국경으로 되는 비극과 전쟁이라는 무서운 참화가 빚어질수 있었을가. 미국이 아니였다면 불모의 땅에 뿌린 청춘들의 피우에 희망의 봄처럼 밝아온 4.19를 릉욕한 독사들이 쏟아져나온 5.16과 박정희라는 깡패무리가 허깨비룡상에 뛰여올라 미국제도끼를 휘두르는 시대역전의 참변이 있을수 있었을가.

《한국》이라는 옛 먹이를 노려 발버둥치는 일본을 위하여 현해탄에 세관도 없는 가교를 놓은것도 미국, 만사람을 전쟁에로 가는 직통로에 뿌려놓고 《승공통일》을 재촉하는것도, 나의 동생을 윁남전쟁에 끌고 간것도 그자들이 아닌가.

짓밟히고 찢겨진 모든 상처들에, 제가끔 앓고있는 모든 사람들의 멍든 가슴에는 외세의 발자국이 락인처럼 찍혀있는거다. 나를, 친척들과 친구들을 괴롭히는것도, 동생의 신세를 망쳐놓은것도 그 검은 손아귀다.

그렇다고 무슨 수가 있는가. 나는 무력하다. 미물같은 존재, 차라리 죽으려무나!…)

좁은 골목길로 발을 끌며 맥없이 걸어가는 진수는 눈이 멎은 시뿌연 하늘에 우울한 눈을 겨누었다. 길가에서 본 구걸하던 소녀가 떠올랐다. 그 아이와 자신이 다를바없다고 느꼈다. 소녀는 엎드려 접시로 구걸하고 자기는 위력한체 허풍을 떨며 구걸해 먹고사는것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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