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제 3 장


16


흐린 날씨에 쌀쌀한 바람이 부는 음산한 아침이였다. 《한일자동차》회사의 민규석사장은 특별한 경우에만 입는 영국제고급신사복으로 말쑥하게 단장하고 신형캐딜락(승용차의 일종)에 앉아 뉴코리아호텔로 향했다. 거기서는 그의 회사가 조립하는 자동차부속품일체를 대여주는 일본의 자동차회사의 사장 이마무라 히데오가 기다리고있었다. 나흘째 서울에 머물면서 민규석회사를 비롯한 자동차업체의 실태를 료해하고있던 이마무라는 떠나기에 앞서 민규석과 함께 박정희를 만나기로 약속이 돼있었다.

민규석은 이즈음 계속되는 호경기를 누리고있었다. 그의 회사가 번창하게 된것은 이 땅의 모든 매판이 그러한것처럼 권력과의 야합밑에 맹렬하게 들이닥치는 외국자본의 격류를 타고 민중을 사정없이 착취한데서 이루어진 성공이였다. 그는 기업확대와 리윤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로동자들이나 일반민중에 대해서는 도끼를 휘두르면서도 박정희를 비롯하여 《대통령》비서실장, 중앙정보부장, 공화당 재정위원장, 경제기획원 장관 등 권력의 중심에 앉은자들앞에서는 무릎걸음으로 기여다니며 거듭 황금을 뿌렸다. 이렇게 해서 일본에서 들여오는 자금이나 물자를 배정받는데서 경쟁자들을 누르고 특전을 누렸고 시끄러운 기업감사나 세금법 같은것은 박쥐가 거미줄 무찌르듯 했다.

한편 《한국》의 자동차업체를 자기 회사의 부속물로 더 든든히 거머쥐려고 안달아하고있는 야망을 품은 이마무라는 기업가로서의 배짱도 있어보이고 어떠한 부정거래에도 발벗고 나설뿐아니라 그 면에서 솜씨를 보이고있는 민규석을 괜찮은 상대역으로 여기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해전보다는 두배 반이나 되는 부속품을 대여해주고 완제품중에서 민규석회사가 자유처분할수 있는 비률도 버쩍 올려주고있었다. 게다가 민규석은 박정희와 짜고 자동차의 대당 가격을 일본에서보다 두배나 되는 값으로 팔고있었고 요즈음은 창덕사부지에 이마무라와의 계약밑에 화물자동차 분공장까지 건설할 준비를 내적으로 하고있어서 더욱 흡족한 기분이였다. 다만 안타까운것은 기업을 크게 펼 때일수록 로동자들과 여론계의 반발이 심해지는것과 권력자들에게 더 많은 돈을 찔러넣어야만 하는것이였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비껴드리운 이슬비속에 우중충한 거리풍경을 내다보는 민규석은 얼굴에 감겨오르는 담배연기속에 빙긋이 미소를 지으며 며칠전 밤에 남몰래 찾아가 만났던 비밀의 녀인을 생각하였다. 서울교외의 수풀속에 숨어있는 특수별장으로 찾아간 그는 벽도 천정도 바닥도 벗꽃무늬로 치장한 화려한 응접실에서 박정희와 남다른 관계에 있는 묘령의 녀인에게 거액의 돈을 전했다. 《사례금》명목으로 박정희에게 뜯기우는 이런 돈은 수표놀음으로 은행이라는 제3자를 거치지 않고 직접 현금으로 박정희의 정부에게 전하는것이 제일 안전했다. 이렇게 전해진 돈은 비밀선을 거쳐 도꾜은행이나 미국, 스위스은행에 있는 박정희의 구좌에 들어갈것이다.

박정희는 이 땅우에 존재하는 최대의 부정축재자였다. 그는 집권초기에 벌써 《부정축재자처벌》의 간판밑에 오히려 부정축재자들에게 온갖 특혜를 보장해주고 천문학적액수에 달하는 뢰물금을 받아먹었고 그중에서 500만딸라를 미국과 일본은행에 저금했었다. 그런가 하면 4대의혹사건, 삼분폭리사건, 지리산도벌사건 등 수백수천가지의 사기협잡판을 벌려놓고 막대한 돈을 긁어모았다. 그는 매국적인 《한일협정》을 체결하고 이른바 《청구권자금》을 구걸하는 흥정판에서도 1억 3천만딸라를 떼여먹었고 미국과 일본을 비롯한 외국독점자본가들에게 숱한 리권과 특혜를 베풀어주고 거액의 돈을 받아먹어왔다. 그우에 각계층 민중들에 대한 2중3중의 살인적인 착취와 략탈로부터 《해외이민》의 이름으로 감행한 동족매매와 윁남파병 등에 이르는 수천가지의 수입항목에서 짜낸 끝없는 부정축재를 가산해보라. 참으로 박정희가 누벼온 통치행정이란 민중에 대한 전대미문의 폭압과 략탈의 행정이며 나라를 망친 매국의 행정이며 필사적으로 감행한 부정축재의 행정이였다.

민규석도 박정희의 《꿀강아지》여서 비밀로 되여있는 그의 정부에게까지 찾아가서 돈을 바치는 《특전》을 받은것이다. 그는 박정희의 계집에게서 정욕증진에 특효가 있다는 특제품음료 두잔을 얻어마셨지만 그것으로도 표창을 받은것처럼 만족했다.

세상을 심드렁하게 내다보는 눈속에 밑창없는 어둠과 악마적인 열정이 깔려있는듯 한 박정희의 정부는 민규석이 방을 나서면서 인사로 《〈대통령〉은 요즘 기분이 어떠신지요?》 하고 묻는 말에 장난기가 어린 미소를 그리며 흐리마리 대답했다.

《글쎄요. 노상 오르락내리락하는걸 보면 사랑놀음에선 비밀이 없는가봐요. 난 아마도 외국에 나가있던지…》

이것이 무슨 뜻이겠는가? 청와대 안방사정을 어느 정도 아는 사람들이 쉬쉬하며 돌리는 소문에 의하면 박정희의 많은 외도질이 자기의 정보선을 따로 늘이고있는 륙영수에게 들통이 나서 그들부부는 요즘 쩍하면 악다구니질을 벌리다간 마구 두드려패고 물어뜯는 활극을 벌린다고 하지 않는가.

민규석이 호텔에 들렸을 때 이마무라는 전화로 박정희와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배짱이 드세고 검질긴 이마무라는 악어가죽쏘파에 제빠듬히 누워 실내옷의 앞깃을 트고 검은 털이 부숭부숭한 살찐 가슴을 슬슬 문지르면서 연신 호걸웃음을 지으며 롱담조로 이야기하는것이 상대를 똑 술친구 대하듯 했다.

《허, 〈대통령〉이라구 해서 좀 뽐내려고 부인을 빼돌리려구 하나? 그사이 보살펴주질 않았더니 의처증이라도 생긴게 아닌가요? 롱담이 지나친다고? 부인이 앓는다? 그거 안됐군. 그렇다면 더욱 만나야지. 내가 병문안도 안하고 갈수야 없지. 나의 제수는 꼭 부인을 만나서 제 선물을 전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는데두 그러는군그래.》

전화의 상대가 눈앞에 있는것처럼 눈짓, 손짓 섞어가며 너스레를 떨던 그는 민규석이 들어온것을 그제서야 안것처럼 심술궂은 장난군같은 눈인사를 던지더니 제3자앞이라고 박정희에게 하는 어투를 약간 시정했다.

《오, 그렇습니까. 부인도 불러내시겠단 말씀이지요? 그럼 곧 들리겠습니다.》

이마무라 히데오가 박정희를 이렇게 대하는데는 그만한 바탕이 있었다. 히데오는 일본 청람회의 중추적인물의 한사람이며 륙상《자위대》의 요직에 있는 동생 마사오가 박정희와는 옛날 륙군사관학교의 동기생으로서 그를 여러모로 후원해준 친구여서 요즈음에도 군사면에서의 흑막거래가 잦은데다가 히데오자신도 박정희가 특혜를 베풀어준데 대한 보답으로 그에게 몇번이나 적지 않은 액수의 정치자금을 대주고있는터였다.

히데오는 젊은 서기가 입혀주는 외출복의 단추를 채우면서 민규석에게 말했다.

《당신네 〈대통령〉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야. 부인이 앓는다더니 또 금방 면회에 나올수 있다기도 하고… 혹 무슨 난처한 일이라도 있는게 아닐가요?》

민규석은 짚이는바가 있었으나 시치미를 떼고 발음이 굳은 구식일본말로 대답했다.

《가벼운 감기정도 앓고있겠지요. 그렇다고 해도 불러내도록 한건 훌륭한 수완입니다.》

그들은 곧 청와대로 떠났다. 이마무라의 서기가 선물을 들고 동행했다.

민규석과 이마무라가 청와대의 한 응접실에서 만난 박정희부부는 그 모습이 처참할 정도로 처량해서 방문자들에게 당혹과 동정적인 흥미를 자아냈다. 본시 보잘나위 없이 체소한 박정희는 누르퉁퉁한 뺨이 훌쭉 꺼진데다가 잠을 못 잤는지 눈에 피기가 보이고 눈덕이 퉁퉁 부어있는가 하면 그의 처는 더욱 한심한 꼴이였다. 무엇에 맞았는지 부딪쳤는지 이마가 두군데나 꺼멓게 부어오르고 한쪽입귀와 턱에는 긁히운 자리가 보였다. 게다가 상처를 감추려고 화장을 너무 짙게 해서 얼굴이 더 망쳐있었다.

그들이 이렇게 된것은 간밤에도 또 골육전을 벌렸기때문이였다. 박정희와 같은 난봉군을 남편으로 삼은 륙영수는 응당 좋은 처는 소경에 귀머거리여야 한다는 속담대로 남편이 무슨짓을 하건 못 본척, 못 들은척 해야 마음이 편할것이였으나 그렇지 못하고 오히려 남편의 눈초리만 보고도 계집냄새를 맡아내는데다가 경호실과 비서실, 행정부와 립법부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독자적인 정보선까지 늘이고있어서 남편의 뒤생활을 빤히 알게 되여 늘 속이 바글바글 끓어 싸울수밖에 없었다.

간밤에도 시작은 륙영수가 걸었다. 남편이 비밀료정에서 작부노릇하는 처녀와 눈이 맞아서 놀아댄다는 새로운 정보를 들은 그 녀자는 자정이 넘도록 홀로 침대에서 끙끙 앓다가 서재에 있는 남편에게로 달려가서 야멸차게 대들었다.

《고렇게 시치밀 따면 모를줄 알구? 어이구, 코가 무드러지게 엎드려서 맹세를 한건 언젠데 그사이 또 새로운 계집인가 말이예요. 앙?》

자신의 운명이 달린 숱한 난문제로 줄담배만 태우면서 잠들지 못하고있던 군사깡패는 피곤한 눈길로 돌아보며 눅잦히려들었다.

《하, 이런… 정신이 나가지 않았소? 지금이 몇신데 또 이러나. 당신까지 날 괴롭히면 이거야 어디 살아먹겠소? 제발 그런 개꿈같은 소릴 삼가해주오.》

《개-꿈?》 하고 륙영수는 어이없다는듯 얼굴을 이그러뜨리며 랭소를 짓더니 더욱 퍼래지며 대들었다.

《백운각에 있는 안춘란, 스물두살에 양귀비라면서? 이래도 개꿈이야? 아유, 미용사년에 아나운서년, 정인숙이년에 녀배우년에… 그러고도 성차지 않아서 보약만 먹고 또 새로운 년이야? 이거야 어디,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박정희는 입을 하 벌리고 눈이 올롱해서 바라만 보더니 더듬거리며 항의했다.

《하, 이건 어떻게 보고그래. 춘란인지 하는건 리후락의 정부란말이야. 알지도 못하면 가, 가만있어.》

《아니, 인숙이년을 정일권이하고 둘이서 해먹더니 이번에는 후락이하고 맞교대로 붙어먹는구나. 더럽다, 더러워. 해구신이 붙었냐? 네까짓 수개가 무슨 〈대통령〉이야?》

이렇게 되자 새된 고함을 지르며 튀여일어난 박정희는 일찌기 청년시절부터 익혀둔 꼬집어뜯기로부터 머리받기에 이르는 골육전의 다채로운 묘기를 번개같이 활용하여 순식간에 계집을 쓰러뜨렸다.

이런 형편에서도 자기의 처를 면회에 끌고 나온 박정희의 용기는 너무나 지나친것임에 틀림없다. 하기는 이마무라가 사정도 모르고 강요한 점과 선물이라면 쪽을 쓰지 못하는 륙영수의 기질도 감안해주어야 할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고 몇시간전까지도 제 처에게 행패를 부리고도 아닌보살하는 그의 이 철면피와 변신술은 참으로 무섭고 놀라운것이다.

민규석은 그들이 또 대판들이로 싸웠다는것을 알았으나 이마무라는 아무래도 판단이 잘 서지 않는지 주단우에 눈길을 굴렸다. 이마무라의 의혹을 눈치챈 박정희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류창한 일본말로 기발하게 변명했다.

《애완견도 위험동물인줄은 몰랐군요. 감출것 없지. 우리 륙녀사가 그놈의 개를 너무 애무하다가 화를 입었거든요. 몹쓸 병이 났는지 갑자기 버둥거리면서… 하 참.》

《아, 그렇군. 그만하길 다행이군. 아무렴. 애완견도 역시 짐승이니까 조심하셔야죠.》

이마무라는 잘 믿어지지 않았으나 적당히 대답하면서 륙영수에게 동정의 미소를 던졌다. 그 녀자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우고 숙녀답게 웃으려고 하였으나 그 웃음은 애달픔과 거짓을 드러낼뿐이였다.

이마무라는 어색한 분위기를 가시려고 서기가 들고온 선물을 서둘러 내놓았다. 그는 손잡이와 칼집에 금장식을 한 고색창연한 커다란 일본도를 박정희에게 주면서 말했다.

《나와 마사오의 공동명의로 드리는겁니다. 중일전쟁때 중경까지 쳐나갔다가 후에 홍군의 복병들에게 걸려 장렬하게 전사하신 나의 부친 이마무라 사부로중장의 유물이지. 두자루중의 하나일세. 피차간에 칼의 언어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흣흣.》

부동의 자세로 정중히 받아든 박정희는 그 칼이 죽은 중장의 유해이기나 한듯 목례를 하더니 꼴깍 소리가 나게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의미심장한 보뱁니다. 은혜를 잊지 않겠습니다.》

그는 날파람있게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었다. 금속성과 함께 희푸른 장검이 마른번개처럼 차겁게 번쩍거렸다. 순간 간흉하게 생긴 그의 수척한 얼굴에 매몰스럽고 광적인 연기가 확 내돋더니 그우에 실성한 사람에게서나 볼수 있는 어리뻥한 추억의 검은 그늘이 엉켜들었다. 그는 생각했다. 이것이다. 이것이 나의 령혼이다! 나는 칼이였고 지금도 칼이지! 칼로 엮어온 일생, 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것인가?

민규석은 박정희가 너무도 칼에 취하고 거동이 위태로와서 저러다가 혹 충동을 못 견뎌서 마구 휘두르면 어쩌나 하고 조마조마해있었다. 만족한 이마무라는 자그마한 화려한 함을 륙영수에게 건네여주면서 말했다.

《제수 하루꼬의 선물입니다. 장신구일식인가본데… 남아프리카로 려행했을 때 요하네쓰뵈르그에서 구했다나요.》

륙영수는 함을 열어보더니 가느다란 환성과 함께 얼른 그중에서 다이야몬드목걸이를 꺼내여 가슴에 드리워보며 소리내여 웃었다.

《그렇게 받기만 할수야 없지. 당신도 답례를 해야지.》

제 처의 추한 꼴을 난처하게 여기던 박정희가 말했다.

《들어가보구려. 우리끼리 의논할 일이 있으니…》

《답례를 하구말구요. 감이 정해지면 조용히 찾아뵙겠어요.》

륙영수는 민규석의 존재는 안중에도 두지 않고 이마무라에게만 인사를 남기고 자리를 떴다.

셋은 이마무라회사가 일본에 비하면 거저나 다름없는 값싼 임금으로 《한국인》로동자들을 부려먹을수 있는 더없이 유리한 환경에서 투자를 대폭 확대할 전망문제며 민규석회사의 생산실태에 대하여 실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박정희는 민규석회사가 창덕사자리에 건설하려고 하는 공장이 이마무라의 후원을 받아 적재량이 많은 군용차들을 생산하게 되기를 열망했다. 이마무라는 여러모로 조건을 타산한 끝에 찬성의 뜻을 표시했다.

얼마후 민규석은 이마무라가 박정희와 따로 할 이야기가 있다는 말에 마시던 음료잔을 깨끗이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따로 할 이야기라면 또 무슨 비법적인 비밀흥정임에 틀림없었다. 그는 방을 나서면서 박정희가 내미는 손을 잡았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그의 한쪽 광대뼈 언저리에 분명히 손톱으로 긁히운듯 한 상처가 보여서 속으로 고소하게 웃을수 있었다. 그런데 그가 잡은 박정희의 손은 뼈가 앙상한데다가 어찌나 차거운지 똑 죽은 게다리를 쥔것처럼 불쾌했다.

어째서 이자는 최대의 부정축재자, 거부이면서도 이렇게 궁상맞게 여위여빠지고 시들어가는것일가? 그의 무자비한 탄압통치와 한계없는 리기적인 축재심, 갈수록 심해지는 변태적인 성도락, 이 모든 행위의 힘은 어데서 생기는것일가?

이런 의문을 품고 차에 앉아 청와대를 나오던 민규석은 곳곳에 지켜선 무장한 경호병들을 보는 순간 청와대의 어느 지붕우에 감춰져있다는 직승기를 생각했다. 그러자 그의 생각은 비약하여 박정희의 일체의 행위는 피할 길 없는 파국적인 종말에 대한 공포에서 출발하고있다는 느낌이 뇌리를 쳤다. 숱한 사람들의 파멸과 죽음우에 도사리고있다는 생각, 끊임없이 새로운 범죄를 생산하는 권력에 목을 매고있어 달리는 살아남을 길이 없다는 공포, 이 공포야말로 그를 더욱 조폭하게 만들고 여위게 만들고 성도락에 빠지게 만드는것이 아닐가? 그러나 박정희라는 괴물이 없었다면 나의 회사가 이렇게 빨리 흥하지는 못했을걸! 그러니까 그 자식은 큰 도적이고 나는 작은 도적일뿐이지. 문제는 그놈이 어느때 망하든간에 나는 그놈을 리용해먹기만 하면 되는거야.…

민규석은 머리속에 오락가락하는 이런 생각을 침울히 음미하면서 자기의 회사로 직행하여 관부건물앞에 이르러 차에서 내렸다. 현관안에서 허여멀쑥한 얼굴에 키가 큰 건장한 중년사나이가 민규석에게로 달려나왔다. 회사의 생산부에서 부장으로 근무하는 민규석의 조카였다.

《벌써 오신걸 보니 청와대엔 안 가셨는가요?》

조카가 눈을 반짝이며 묻는 말에 민규석은 딴소리를 했다.

《거시기 그 사람을 만나 알아보라고 한건 알아봤냐?》

《그 사람이라뇨. 정진수말인가요? 바빠죽겠는데 언제 나다닐 사이가 있어야죠.》

《말같지 않은 소리. 천만뜻밖에 그 사람이 내가 찾는 은인이 옳다면 어떻게 하겠냐? 빨리 남몰래 알아봐야 한다. 방금전에도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이마무라랑 창덕사땅에 지을 공장이야길 했지만 문제는 그곳 판자촌부터 당장 쓸어던져야 할게 아니냐? 이게 제일 어려운 고빈데. 어떻게 하나 그 정진수를 돌려세워야 한다. 그 사람이 내가 찾던 은인이라면 하늘이 나를 돕는거야. 알겠니?…》

민규석은 어기는 많은 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용케도 남이 알아듣지 못할 소리로 조카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계단을 거쳐 2층의 사장실로 올라갔다.

민규석이 진수가 자기의 《은인》일수 있다고 하면서 찾는것은 그들사이에 벌어진 비타협적인 싸움에 비추어볼 때 어처구니없는 웃음거리같기도 하지만 내막을 알고보면 그런것도 아니였다.

며칠전 저녁에 있은 일이다. 민규석은 볼일이 있어 상공회의소에 들렸다가 집에 돌아왔는데 숙성한 막내딸이 그의 웃옷을 벗겨주면서 말했다.

《아버지, 신문을 보니 그 정진수라는 기자가 또 무섭게 걸고들었더군요. 아버지가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죠?》

《응, 알고있다. 그놈이 제 신세를 영영 망치고싶은 모양이지. 감히 어데라고 걸고들어. 제 무덤 제가 파는거야.》

딸이 나가자 쏘파에 앉아 려송연을 피워문 민규석은 등받이에 머리를 젖히고 자못 만족한 기분으로 눈을 감고 피로를 풀었다. 한동안 그렇게 있던 그는 문득 놀란것처럼 눈을 크게 뜨고 중얼거렸다.

《가만있자. 정진수… 정진수… 그 이름이 이상한데? 그 사람이 혹시 내가 찾는 그 은인이 아닐가?…》

민규석은 점점 더 꿈꾸는 얼굴이 되였다. 그는 정진수라는 기자의 이름이 지난 생애의 한순간에 발생했던, 자기의 운명이 아슬아슬하게 구원된 비상한 사건과 결부되는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정진수라는 이름은 화살처럼 그의 지난 생애의 공간을 날아가서 잊을수 없는 그 추억을 명중하는것이였다.

민규석은 전쟁이 가렬했던 1951년 여름에 련대장으로서 전선에서 싸우던 어느날 불의에 가해온 인민군대의 맹렬한 타격으로 전체 련대가 파멸적인 혼란을 겪던 순간에 치명상을 입고 죽음의 고비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원된 일이 있었는데 그때 그를 구원해준 사병의 이름이 정진수였던것이다. 당시 야전병원의 침상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여난 그는 눈물이 글썽하여 사병의 손을 쥐고 그를 《생명의 영원한 은인》이라고 하면서 일생토록 그에게 모든것을 베풀어주겠다는 약속을 맹세처럼 남겼던것이다.

이미 그 사병의 얼굴모습은 긴 세월의 바람속에 흐려지고 잊혀졌으나 다만 정진수라는 희미한 이름만은 그가 두고두고 자랑하는 《빨갱이》들과의 무서운 결사전의 추억우에 자기의 영웅성과 무훈의 상징처럼 남아있었다.

민규석은 온갖 기회에 자기가 죽음의 불바다를 헤쳐온 력전의 영웅이라고 자랑했다.

나는 아이스크림이나 만들어 팔아 돈을 모은 자본가도 아니고 손마디가 여린 책상물림의 자본가도 아니다, 나는 적어도 피를 뿌려 《자유세계》를 지킨 무사출신의 자본가다.… 이 긍지는 그의 흐려질줄 모르는 자랑이였다. 그래서 그는 동료나 적수들과 술자리에 어울릴 때면 의례히 기회가 생기는껏 전쟁때의 자기 무훈담을 꺼냈고 그때마다 죽음의 고비에서 자기를 구원한 사병-은인을 찾지 못해 괴롭다는 말로 자기의 거인상과 《따뜻한 인간미》를 광고하군 했다. 그러나 생명의 은인은 한번도 나타나지를 않아 그는 어느새 이 매혹적인 추억을 잊어버리고 지나는 때가 많았다. 정진수라는 기자가 그를 고발하는 적수로서 나타났을 때에도 그 생각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하기는 증오에 시달리면서 사랑을 떠올릴수는 없었다. 그런데 불쑥 그 이름의 주인공이 뜻밖에도 생명의 은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비쳐온것이다. 기자인 정진수는 이름이 같을뿐 다른 사람이 아닐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만약 뿔몽둥이로 후려치는듯 한 무서운 글을 쓰는 그 기자가 천만뜻밖에도 진짜 은인이라면 이보다 맹랑한 일이 또 있겠는가. 그는 곰의 열을 씹은것처럼 구토감을 느꼈다. 그래서 추억을 들추는 쬐쬐한 감상따위는 깨끗이 털어버리기로 작정했다.

그러나 금력과 권력에 도전하는 정진수라는 기자는 어차피 신세를 망칠 가련한 존재라는 사실과 되도록이면 사회여론의 증오를 덜 받으면서 창덕사판자촌을 불도젤로 밀어던져야 할 중대사앞에서 그의 생각은 또 달라졌다. 만약 파멸할 정진수를 구원하여 돋보이는 자리에 춰올려세워주고 유족한 생활을 꾸려준 뒤에 그와 자기와 맺어진 전쟁시기의 무훈담과 자기가 오늘의 적대관계를 뛰여넘어 그를 은인으로 받들어준 사연을 적당한 방법으로 세상에 공개한다면 여러모로 예상이외의 큰 리득을 보게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자기는 워낙 도량이 비범한 인물이며 누구보다도 《뜨거운 피》를 가지고있는 알짜인간이여서 때에 따라서는 신분의 장벽이나 개인적리해관계를 뛰여넘어 자기를 희생하면서까지 선행을 베풀수 있다는것을 광고하고싶었다. 그렇게만 되면 비방자들은 한풀 꺾일것이고 정계로 크게 출세하는 기회를 잡을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런 유혹을 버릴수 없는 그는 정진수가 다름아닌 자기의 은인이기를 진심으로 바라는것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