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7 회


제 3 장


17


민규석의 조카가 진수를 찾아가 만난 곳은 기자회관이였다. 유럽과 아메리카대륙의 몇개 나라를 방문하고 돌아온 기자단의 귀환보고를 동료들과 함께 듣고있던 진수는 누군가 그를 찾는다는 소리에 휴계실로 나갔다. 말쑥한 옷차림에 색안경을 낀 민규석의 조카는 명함장을 내놓으며 가까운 다방으로 나가자고 했다.

그러나 진수는 회관에서 조용한 빈방을 찾아내여 그리로 안내했다. 뼁끼통들과 낡은 풍경화들, 페품으로 된 의자따위들이 널린 방이였다. 매캐한 냄새를 풍기는 장의자에 먼저 앉은 진수는 상대의 번들거리는 구두를 굽어보며 물었다.

《그래, 말씀하십시오. 무슨 일로?》

사나이는 어지러운것이 싫은지 마지못해 장의자에 앉더니 진수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난 민규석사장의 조카입니다. 삼촌의 부탁을 받고 왔는데, 실례지만 사적으로 조용히 알아보고싶은것이 있어서…》

혹시 정보부나 경찰에서 온자가 아닐가 하고 지레짐작했던 진수는 랭소를 지었다.

《민규석사장이 나를 찾는다? 그것 참, 희한한 일이군. 그래 무슨 일로?…》

《초면에 안됐습니다. 지난 전쟁시기에 군에 복무하신 일이 있습니까?》

《글쎄, 유감스럽게도 그런 일이 있는것 같소.》

《그럼 1951년 여름에 전선에서 저의 삼촌을 보셨거나 특별한 인연을 맺으신 일은 없어요? 삼촌은 그때 〈독수리〉사단의 3련대장이였다는데.》

《미안하지만 민규석이라는 자본가는 알고있지만 그런 이름의 련대장은 기억에 없소. 나야 보통사병이였으니까 쩍하면 바뀌고 쩍하면 목이 날아나는 련대장이 민가인지 최가인지 알턱이 없지요. 게다가 담배불을 붙이려고 그 각하에게까지 찾아갈 흥미도 없었으니까. 그쪽에서 말씀하시는 〈특별한 인연〉이란 있을수도 없었지요. 그럼 이만할가요?》

진수는 일부러 쌀쌀하게 대하면서 가슴우에 머리를 드리웠다. 민규석의 조카도 사람을 빗만났다는 생각이 들어서 의자우에 놓은 모자를 집어들더니 어물어물하며 물었다.

《하긴 이름도 얼굴도 기억에 없다면 괜한 말을 또 하는것 같습니다만 혹 그때 중상당한 련대장을 야전병원에까지 업어다주신 일은 없었던가요?》

《중상당한 련대장을 업어서?…》

별생각없이 되받아외운 진수는 깊은 생각에 잠긴 흐린 눈길로 상대의 얼굴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소. 그건 확실하오. 그래 그 련대장이 임자의 삼촌이라 그 말인가요?》

민규석의 조카는 모자를 허공에 내흔들며 소리쳤다.

《굉장한 발견입니다! 선생님이 옳군요! 그 련대장이 바로 저의 삼촌입니다. 선생님은 삼촌이 두고두고 찾아오던 생명의 은인입니다!

그사이 티각태각한것쯤 문제될것도 없어요. 이제 보십쇼. 경사가 나는걸. 자그만치 〈한국〉의 자동차왕이며 〈국회〉의원이며 〈한미경제협조처〉의 유력한 자문위원인 민규석의 생명의 은인이란 말입니다!》

《내가 민규석의 〈생명의 은인〉이라구?》

진수는 상반신을 꼿꼿이 세우고 상대를 무섭게 노려보더니 몸을 뒤로 제치며 요란하게 웃어댔다. 그 웃음이 어찌나 야단스럽게 련달아 터지는지 처음에는 덩달아 웃던 민규석의 조카는 두려운 생각이 들어 눈이 휘둥그래졌다.

이때 작업복차림에 뻰찌와 쇠줄을 든 초로의 남자가 휘파람을 불며 들어왔는데 그 역시 진수가 웃어대는것을 보고 눈이 올롱해지더니 얼른 뼁끼통을 들고 게처럼 모로 살살 빠져나갔다.

이날 밤 홀로 서재에 누운 진수는 오래도록 잠들지 못했다.

(내가 민규석의 《생명의 은인》이라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가!)

그는 어스레한 천정을 쳐다보며 생각했다.

(옛날에 만약 그 비슷한 사건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서로 도끼눈으로 노려보는 지금에 와서 그는 무엇때문에 옛일을 끄집어내는것일가?…)

무리를 지어 떠오르는 생각의 단편들을 더듬던 그는 지난 전쟁시기에 《국군》에 끌려나가 겪은 일들을 회상하였다.

…정진수사병이 속한 련대가 후방으로부터 진지교체를 위해 중부전선지대에 도착한것은 1951년 늦여름의 장마철이였다. 전선은 포화속에 격동하고있었다. 하나의 나지막한 산봉우리, 이름없는 골짜기를 놓고도 쌍방간에 무서운 격전이 벌어지고있었다. 간단없이 울리는 쌍방의 맹렬한 총포소리는 요란한 우뢰소리에 뒤섞여 울렸고 날카로운 쇠붙이들과 날뛰는 군화에 짓밟힌 대지는 세찬 비발속에 험상궂은 상처를 드러낸채 흙탕물의 격류가 넘쳐나는 수없는 강하천의 그물속에 잠겨들고있었다.

힘겨운 로정을 거쳐 전선지대에 당도한 련대는 우선 최전선을 시오리가량 앞에 둔 야산기슭의 인적없는 페허로 된 마을에 머물러 상급의 차후명령을 기다리고있었다. 북으로부터 마을앞을 돌아 남으로 뻗은 큰길로는 미군들의 시체와 부상자들을 나르는 수송차들이 하나같이 진창을 뒤집어쓴채 꼬리를 물고 지나가고있었다. 그곁으로는 무질서하게 걸어가는 크고작은 무리가 따라흐르고있었다. 머리나 팔다리에 피투성이붕대를 감고 맥빠진 동료들의 어깨에 의지하여 겨우겨우 걸음을 옮기는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모두 미군이였다. 최전선에서 악전고투를 거듭하면서 자기들을 교대하여줄 《국군》을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있던 그들 미군부대였다.

비가 그친 틈에 진수는 동료사병들과 함께 큰길 가까운 곳에 모여 세계《최강》이라고 떠들던 미군들의 동물적인 악의와 애수에 잠긴 놀라운 장송행렬을 구경하였다.

이때 찦차 한대가 미군사상자들의 흐름을 거슬러올라오는것이 보였다. 비칠거리며 힘겹게 걸어가던 서너명의 미군들이 찦차를 무턱 가로막아나서며 무어라고 악다구니질을 하였다. 그러자 멎어서는 찦차에서 거무스레한 얼굴이 말대가리처럼 길쭉하게 생긴 《국군》의 고급장교가 군모를 뒤머리에 제껴쓰며 내렸다.

사병들중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여, 련대장이다. 군단참모부에 있다가 이번에 우리 련대에 련대장으로 왔다는데 밸머리가 보통이 아니구 전투에도 귀신이래.》

진수는 그저 그런가부다 했다. 자동차에서 내린 신임련대장은 가로막아선 미군들을 노려보며 침착히 담배를 피워물더니 손을 내저으며 차앞에서 물러나라고 일렀다. 그러나 거듭되는 패전과 부상으로 밸이 뒤틀린 미군들은 하사관들인데도 《국군》련대장을 웃음거리바보로 알았다.

한쪽다리에 붕대를 감은 키큰 미군이 무어라고 꿱꿱거리더니 지팽이로 련대장의 배를 콱 찔렀다. 무수한 미군을 죽이고 상하게 만든것이 이 《국군》련대장인줄로 아는 모양인지 금시 때려죽일것만 같았다. 아픔과 분노에 낯색이 캄캄해진 련대장은 몸의 균형을 잃고 뒤걸음치다가 차체에 잔등을 부딪치며 발디디개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진수는 손에 땀을 쥐였다. 아닌게 아니라 련대장은 권총을 뽑아들고 튀여일어나며 노성을 질렀다. 그러나 이 순간 지나가던 위생차에서 미군중위가 뛰여내려 말썽을 일으킨 미군하사관들의 등을 밀어보내더니 련대장의 코앞에 주먹을 내대며 사납게 소리쳤다.

《야, 이 자식아, 숱한 미군이 죽어넘어지는데 너따위 엽전이 무슨 자존심이 있다구 발딱거려 앙? 눈알이 튀여나오기 전에 빨리빨리 가서 진지를 넘겨받으란 말이야!》

진수는 차라리 련대장의 참혹한 얼굴을 보지 않기로 했다.

그날 저녁무렵, 련대장은 도주하다가 붙잡힌 열한명의 사병을 전련대앞에서 총살하는것으로 자기의 부임인사를 대치했다. 총살을 집행하기에 앞서 부대의 법관이 부대앞에서 이 총살이 전적으로 정당하다는것을 장황하게 력설했는데도 련대장이 또 나서서 도끼눈초리로 부대를 돌아보며 떠들었다.

《〈자유세계〉의 최전선이며 〈한국〉과 미국의 방위선인 이 결전마당에서 저따위 도망병들이 생겼다는것은 최대의 수치다. 명령을 어기는자는 무조건 총살이다. 총살! 미군이 흘린 피와 잃은 목숨은 우리가 바쳐야 할 피와 목숨인데 살아남을 생각을 해서야 되겠는가? 우리는 전투에서 죽어야 한다! 죽기를 결심하면 산단 말이다!…》

도망치다 잡힌 열한명의 사병은 불에 타서 시꺼멓게 그슬린 줄기만이 남은 소나무아래에서 모두의 주시속에 총살됐는데 그 광경이 어찌나 잔혹했던지 모두가 몸서리치며 숨이 막혀 헉헉했다. 맨 마지막으로 쓰러진 체소한 사병은 빗맞았는지 소나무 밑둥아래에 어깨를 박고 몸을 뒤틀었는데 련대장자신이 권총을 뽑아들더니 그 사병의 몸이 회초리처럼 늘어질 때까지 피투성이머리에 계속 탄알을 쏘아박는것이였다.

그날 밤, 부대는 번개가 튀고 비가 억수로 퍼붓는 캄캄한 어둠을 뚫고 최전선으로 출동했다. 비는 갈수록 세차게 쏟아졌다. 장교들은 전지불을 휘두르며 행군속도를 높이라고 사납게 을러멨다.

진수에게는 《국군》살이와 전쟁이 죽도록 싫었다. 지난해 여름(진수는 그때 겨우 열여섯살 소년이였다.)에 전쟁을 도발하고 북으로 침략해들어간 미군과 《국군》을 즉시에 반격하여 남진해온 인민군대를 충청도의 고향에서 처음으로 보고 그들의 고상한 풍모에 반한바 있는 그에게는 북녘사람들에 대한 증오가 없었다. 징병을 기피하여 마을에서 숨어다니던 그는 어느날 밤에 운이 나쁘게도 지나가는 《국군》 홀치기패들에게 걸려들어 놈들에게 모질게 매맞은 끝에 군용차우에 던져지고말았다. 그때이후 진수의 열망은 대오로부터 도주하는것이였으나 이제껏 뜻을 이루지 못하고있었다.

이러한 그에게는 최전선으로 가는 한걸음한걸음이 지옥의 계단을 내려가는것처럼 괴로왔다.

(그래, 이것이 끝이란 말인가?)

이 하나의 절망적인 생각이 눈물처럼 가슴에 끓었다. 그런데 부대가 최전선에 도착했을 때 무서운 사태가 벌어졌다. 눈앞에 대치한 인민군대가 불의에 맹렬한 타격전을 벌린것이다. 용맹한 인민군대는 놀라운 포화로써 미군진지를 강타하면서 종심깊은 후방에까지 포탄을 들씌웠다. 그바람에 진수가 속한 부대도 호되게 얻어맞았다. 포탄이 우박치듯 떨어지고 파편들이 휘파람을 불자 모두가 갈팡질팡하는 가운데 더러는 마구 도망치기 시작했다.

진수도 운명을 하늘에 맡기고 뛰였다. 이따금 번개가 튈 때마다 드러나는 자연지세를 눈짐작으로 가늠하며 정신없이 뛰던 그는 비내리는 캄캄한 어둠속에서 어떤 육중한 물체에 부딪쳐 쓰러졌다. 그순간 코앞에서 《서라! 쏜다!》 하고 야멸차게 웨치는자가 있었다.

진수는 질겁하여 일어섰다. 이때 마치도 얄궂은 운명을 보여주려는듯 번개가 번쩍이면서 모든것을 드러냈다. 놀랍게도 발앞에는 복부에 중상을 입은 련대장이 땅바닥에 앉아 그의 가슴에 권총을 겨누고있지 않는가. 진수가 부딪친 물체는 앞코숭이가 부서져나간채 뒤집혀진 찦차였다. 옆에는 운전사인듯 한 시체도 하나 언뜻 보였다. 인민군포탄에 맞은것이 분명했다. 도망칠 생각뿐인 진수는 련대장을 처단해야 할것이였으나 찦차에 부딪쳐 넘어지면서 총을 떨군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손이 비여있었다.

《이놈, 살고싶거든 날 업어! 빨리 야전병원으로!》

련대장은 위협사격을 하면서 맹수같이 다가들었다. 진수는 절망하고말았다. 목에 걸린 올가미였다. 그는 어쩔수없이 련대장을 업고 걷기 시작하였다. 얼마후 인민군의 포사격은 시작될 때처럼 급작스레 멎어버리고 남쪽하늘 한 귀퉁이에 달빛에 비친 흰구름이 보였다.

도망은커녕 살인귀의 손에 잡힌 진수는 놈을 업은채 진창에 미끄러지고 돌부리에 채이면서 소경처럼 더디게 걸어갔다.

등에 업힌 련대장(두말할것없이 그가 민규석이였다.)은 말에게 박차를 가하듯 구두발뒤축으로 연방 진수의 무릎을 차는 한편 손에 쥔 권총의 손잡이모서리로 그의 머리를 짓조기며 빨리 걸으라고 독촉했다. 진수는 아픔도 아픔이려니와 모욕을 견디기 어려웠다. 더구나 목덜미에 끝없이 부어지는 련대장의 더운 입김은 뼈속에까지 오물을 끼얹는것처럼 불쾌했다. 게다가 갈수록 더욱 무거워만지는 련대장의 몸무게는 언제나 눌려사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와 수많은 층을 이루어 그를 타고앉은 온갖 억압자들이 가해오는 압박감을 온몸으로 느끼게 했다.

진수는 이제라도 련대장을 죽일수만 있다면 자신이 도망치는것은 문제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아도 백번 죽여야 할 놈이였다. 이자를 살려둔다면 또다시 사소한 규률어김으로도 사병들을 함부로 총살할것이며 《전투를 보장하기 위하여》라는 하나의 구실로 집집을 략탈하고 스쳐가는 마을들에 불을 지를것이다. 뿐이랴. 이 땅의 숱한 아들들을 외세의 총알받이로 내몰아 죽일것이다. 그러면 숱한 고아들과 과부들이 생겨날것이며 아들, 손자를 잃은 부모들이 아이들처럼 발을 구르며 피눈물을 쏟을것이다.

이미 먼거리를 걸어온 진수는 한걸음한걸음이 힘겨웠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사나운 강물을 향하여 바위돌을 옮기듯 걸음을 끌었다. 야전병원까지는 한키로메터도 안되는 곳이였다.

(여기서 이놈을 죽여야 한다!)

진수의 생각은 이 하나뿐이였다. 그사이 이런 기회를 만난것은 열번도 더 되였으나 마주오는 군인들이 있었거나 물소리만 가까이에서 들리면 련대장이 겁을 먹고 구두발로 허벅지를 차고 권총으로 머리를 때리며 신경을 곤두세우는 바람에 매번 뜻을 이룰수 없었다. 그러나 기승을 부리던 그놈도 이제는 심한 출혈로 의식이 까무라드는지 반응이 없었다.

소란스레 갈기를 날리며 무섭게 흐르는 물우에 군데군데 부서진곳을 나무로 얽어맨 허술한 콩크리트다리가 겨우 붙어있었다. 진수는 다리우로 간신히 올라서며 당장 련대장을 떨궈죽일 생각으로 희미한 달빛에 번들거리는 소란한 물줄기를 보았다. 그 순간, 세찬 물소리에 의식이 겨우 돌아온 련대장이 본능적인 공포로 진수의 머리를 권총으로 때린다는것이 급소인 정수리를 깠다. 진수는 의식을 잃고 어푸러졌다. 그바람에 련대장도 콩크리트바닥에 머리를 찧고 너부러졌다.

진수는 다음날 중낮에 야전병원 병상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간호병의 말에 의하면 그가 쓰러진 다리근처에 요행 이 야전병원이 있은 덕에 살아난것이였다. 병원으로 운반돼왔을 때는 진수도, 련대장도 거의다 죽어있었다고 했다.

며칠후 진수는 수술을 마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련대장의 부름을 받고 그의 입원실에 들렸다. 얼굴을 알아볼수 없이 머리에도 붕대를 감은 련대장은 베개를 높이 베고 누운채 진수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뜻밖에도 눈물이 글썽하여 그의 손을 쥐고 말했다.

《이 사람, 자넨 나의 생명의 영원한 은인이야! 나도 잊지 않을테니 자네도 잊지 말게. 나나 자네가 만약 이 전쟁에서 살아남을수 있다면 나의 재산의 절반은 자네것이야! 자네를 꼭 부자로 만들겠네! 나에겐 그만한 밑천이 있다는걸 잊지 말게!…》

진수는 전혀 즐겁지 않았다. 한것은 그의 갈망은 앞날에 부자가 되는것보다는 당장 전선에서 도망치는것이기때문이였다. 이 욕망은 그가 련대장에게서 당한 뇌타박상을 구실로 부상제대되는 예상외의 방법으로 곧 해결되였다.

전쟁때의 이런 추억을 더듬던 진수는 문제의 그 련대장이 민규석이라는 사실이 아무래도 잘 믿어지지를 않았다. 그러나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 횡포하고 랭혈적인 련대장과 사리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한일자동차》회사의 사장은 하나의 생리와 하나의 염통으로 살아가는 하나의 인간, 다름아닌 민규석일수밖에 없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진수는 퇴근하려다가 신문사현관에서 검은색벤즈를 몰고 온 민규석의 조카를 만났다. 민규석의 조카는 이미 친구로나 된것처럼 벌쭉거리며 자기 삼촌의 초청장을 진수에게 내놓았다. 진수는 응하기로 했다. 민규석이 무슨 수를 쓰려고 하는지 만나서 알아보고 공세를 가하고싶었다. 뿐더러 창덕사사건때문에 급히 만나서 알아봐야 할 문제도 있었던것이다.

시민들이 흔히 《백억촌》, 《도둑촌》이라고 부르는 동빙고동의 고급주택마을에 있는 민규석의 집은 궁궐같이 으리으리한 3층양옥이였다. 차가 자동개페식대문안에 들어서자 인공적인 동산을 장식한 가지각색의 고급정원수들이 눈을 끌었다. 그속에는 은진미륵의 축소형인 돌부처며 자그마한 돌암자며 어데서 훔쳐왔는지 모를 커다란 김치독만 한 부도(이름난 중이 죽은 뒤에 유골을 두는 돌탑)까지 보였다. 차는 라선형의 미끄럼대같은 정원길을 돌아올라 2층 현관앞에서 멎었는데 거기에는 좌우에 각각 커다란 돌사자가 머리에 석등을 이고있었다. 솜씨에 따라 돌이 미에 품격을 높여주며 고전적인 운치를 돋군다는 말을 얻어들었는지 어데나 돌치레였다. 이 집의 주인은 분명 자기는 흡혈귀가 아니라 고상한 문화의 옹호자라는것을 기어이 증명하고싶은 모양이였다.

음치의 노래를 듣는것처럼 우습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진수는 커다랗게 아가리를 벌린 돌사자의 대가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민규석은 내가 황홀해하기를 바랄것이다. 아니다. 발길을 돌려 가버리는것이 좋겠다.)

진수가 한순간 망설이고있는 때에 금도금이 번쩍거리는 커다란 자동개페식현관문이 열리더니 광택이 나는 하르르한 흰 천으로 지은, 품이 헐렁한 한복바지저고리를 입은 민규석이 나타났다. 그는 진수를 만나게 된것이 일생 잊을수 없는 대단한 경사라는것을 강조하려고 기쁨보다도 놀라움이 어린 얼굴로 두팔을 벌리고 휘청거리면서 환성을 질렀다.

《정선생, 나를 용서하오!… 내가 그만 생명의 은인도 몰라보고!…》

한손으로 진수의 손을 쥔 민규석은 감동의 효과를 부쩍 높이려고 다른 손으로는 조금 축축해진듯 한 눈에 얼른 손수건을 가져다 대기까지 하였다. 이렇게 되면 부자의 힘을 알거나 지체가 낮은 사람이면 응당 당황해하고 감격해야 할텐데 진수라는 기자는 젊은 사람이 일반로인에게 차리는 인사정도를 차렸을뿐이였다. 민규석은 물론 그의 랭담을 눈치챘으나 친절하게 그를 자기의 《아방궁》(옛날 중국 진시황의 궁궐, 호화로운것으로 유명함)안으로 이끌었다.

민규석의 집은 요란스러웠으나 동빙고동에 있는 고급호화주택들가운데서는 중류급이였다. 이 일대에는 최하 3천만원으로부터 최고 3억원에까지 이르는 호화주택들이 많았다. 이러한 집들의 주인들은 물론 《국회》의원, 전직, 현직 장차관들, 보좌관들, 대기업주를 비롯한 매판재벌 등이였다. 그들은 서민주택을 백여채나 지을 공지마다에 화려한 십여개의 방에 이색적인 목욕실만 해도 둬서너개, 최고 백만원짜리 나무까지 심은 돈덩어리정원을 갖춘 집을 지어놓고 풍청거리는것이다. 방마다에 깐 백만원이 넘는 주단, 방음, 방습, 비밀유지가 된다는 알루미니움자동2중창, 급수시설과 난방시설을 갖춘 실내온실, 서유럽풍으로 꾸민 집안술집, 방마다 설치된 안테나에 련결된 대화마이크, 대형무리장식등과 최신식텔레비죤, 집꼭대기에 있는 인공수영장, 방문객을 식별할수 있게 대문에 설치한 화면감시장치, 수만원을 들인 개집… 소문에 좋다는것은 다 차리고 그것을 자랑하는것이다.

그러나 따지고보면 이들 갑작부자들은 취미가 천하기 이를데없어서 구멍가게의 잡화상처럼 울긋불긋한것을 하나라도 더 차려놓으면 그것이 멋인줄 아는것이다. 배타적인 리기주의 하나로 자본을 모은 그들 흡혈귀들은 기술이나 문화를 즐길 수양이 없기때문에 무엇이나 값비싸고 희귀한것이면 좋은줄로 안다. 그것은 그런것들을 차려놓아야 부자는 세상의 모든것을 다 가질수 있으며 자기는 흡혈귀나 돼지가 아니라 화려한 궁전에서 세상을 내려다보면서 살기 위하여 태여난 귀골이라는것을 강조할수 있다고 보는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달마다 자기 집 운영비만도 60만원이 든다는것을 자랑하며 하루저녁 료정놀음에 로동자로임의 몇달분을 뿌리고도 그것이 만용이상의 추악한 범죄라는것을 모르고 오히려 도량이 큰 거물인체 하는것이다.

진수를 데리고 화려한 응접실로 들어간 민규석은 저켠 문으로 왕후처럼 차린 뚱뚱한 자기의 처와 딸이 나타나자 선소리군처럼 높은 억양으로 기쁨을 표시하며 소리쳤다.

《여보, 인사를 하오. 이분이 바로 나의 생명의 은인이요! 우리가 그렇게도 찾고찾던 그 정진수, 력전의 영웅인 정진수씨란 말이요! 야, 넌 뭘 그렇게 웃기만 하니? 례절이야 례절대로 지켜야지. 얼른!》

기름빵처럼 부풀고 반들거리는 민규석의 처는 진수와 악수를 하면서 소리내여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어떻게 인사를 할가요. 정말 반갑군요! 저인 그저 정진수라는 은인을 찾을 길 없다고 어찌나 말을 하시는지. 우리 집에서 선생님은 구름속에 사라진 영웅처럼 됐죠 뭐.》

적당히 마주 웃어준 진수는 프랑스식으로 다리를 까부리며 인사를 하는 민규석의 숙성한 딸에게도 눈인사를 던지고나서 민규석에게 말했다.

《내가 무슨 은인이겠습니까. 롱담으로도 그런 말씀은 하지도 마십시오. 나는 기자로서 왔을뿐인데…》

민규석은 방안이 별로 어둡지도 않았으나 수십만원짜리 무리장식등을 자랑하려고 전기를 넣더니 진수와의 뉴대감을 강조하려고 례의 전쟁시기의 회고담을 또 벌렸다. 그의 이야기인즉 진수가 그때 자기를 업고 야전병원으로 필사적으로 달리지 않았더라면 오늘의 자기도, 자동차산업도, 이 집도 있을수 없다는것이다. 그러나 진수는 그때 자기는 전선에서 도망치려던 생각밖에는 아무 생각도 없었다는것, 련대장이 권총으로 정수리를 때려준 《덕분》에 자기는 제대되였다는것을 고집스럽게 주장했다. 그런데 우스운것은 민규석의 처나 딸은 물론, 민규석이까지도 진수가 너무나 겸손해서 그러는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이였다.

진수는 화제를 바꾸어 창덕사부지에 짓겠다고 광고한 공업전람관건설구상의 사실여부를 따지고들었다. 민규석은 물론 그 구상은 곧 실천에 옮겨질 엄연한 사실인것처럼, 진수가 그것에 의문을 가지는데 대해서 매우 섭섭한것처럼 여러가지로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는사이에 민규석의 처와 딸은 외국산 특제품인 당과류들과 향기로운 음료를 권하기도 하고 진수가 담배를 피울듯 한 눈치만 보여도 얼른 라이터불을 켜들고 다가들었다.

진수는 자리를 뜨려고 하였으나 뜻대로 되지를 않았다. 그것은 민규석이 진수를 초청한 목적을 말해주는 본론을 폈기때문이다.

《거시기 식탁에 앉기 전에, 알콜기분을 빌지 않고 하고싶은 얘기가 있소.》

민규석은 눈짓으로 처와 딸을 내보내고는 쏘파의 등받이에 기대여 찬란한 무리장식등을 실눈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선 말해둡시다. 선생은 내 마음에 드오. 나처럼 큰 자본가는 어떤 경우에도 넘어지는 일이 없다는것을 잘 알면서도 기어코 도전하는 선생의 그 담에 우선 반했소. 무얼 감추겠소. 나는 워낙 솔직한 인간이요.(언제나 책략적이고 이중적으로 행동하는 그는 솔직성을 바보의 기질로 알고있기때문에 이 말을 더 즐겨 썼다.) 내가 찾던 은인이 선생이란걸 안 이상에야 선생과 싸우며 선생의 장인까지 쓰러뜨리겠소. 그건 말도 안되오. 나는 선생을 크게 출세시키고싶소. 털어놓고 말해서 나야 뭐 아시다싶이 청와대는 물론 일본바닥에까지 큰길을 트고있겠다, 돈은 쓸데가 없어 걱정이겠다, 당신 한사람 추켜올리는것쯤 부담으로 될것도 없단 말입니다.》

진수는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담배연기를 길게 뿜으며 이따금 담담한 시선으로 민규석의 얼굴을 보았을뿐이다. 진수가 대답을 안하는것은 그의 내부에서 심한 동요가 일어났거나 감동한때문이라고 판단한 민규석은 방마다에 련결된 대화마이크로 주방의 식모와 처에게 술상을 잘 차렸는가고 묻고나서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진수에게 말했다.

《그래서 내 생각엔 한두달 우리 회사의 실무행정을 료해한 다음 당분간 회사의 외사부를 맡아주시던지, 그렇지 않으면 가족을 동반하고 홍콩에 가서 거기에 차리는 우리 회사의 대리점에서 일을 보아주셨으면 하는데 어떻겠소?

잘 생각해보시오. 우린 도꾜의 후원회사로부터 우리가 조립한 승용차가운데서 적지 않은 부분을 자체처분으로 해외에 판매해도 좋다는 인가를 받았단 말입니다. 그래서 수출시장을 잘 잡아두려고 해외에 몇군데 대리점을 꾸리는중이지요. 동의만 한다면 홍콩에서 남부럽지 않게 흥청거리며 살수 있도록 충분히 보장해주겠소. 물론 그 과정에서 피차 신임과 리해가 두터워지면 나는 선생을 더 중요한 위치에 옮기겠소. 만약 이 제안이 마음에 든다면 제3자까지 앉히고 계약서를 꾸며도 좋겠소.》

진수는 머리를 숙인채 대답하지 않았다. 민규석은 잘 생각해보란듯이 손을 들어 량해를 구하면서 자리를 떴다.

진수의 이러한 경우는 비교적 진보적인 사상과 재능을 겸비하였어도 의지가 약한 젊은이들을 흔히 타락시키는 유혹이였다. 즐거움과 행복을 바라는것을 기회로 사람들을 타락에로 끌어들이는 유혹이 가장 무서운것이다.

진수의 내부에서는 비록 약하기는 하지만 무서운 목소리까지 울리고있었다.

(참, 이상한 일이지. 민규석은 나의 정신을 죽이려고 하는데 나는 왜 싫어하기만 하고 분노할줄 모르는것일가? 나는 이자의 《선심》을 사양하고 거절할줄은 알면서도 대바람에 경멸적으로 배격하는 기개는 보이지 못하고있지 않은가…)

진수는 곧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이때 방으로 들어온 규석은 한잔씩 나누면서 얘기하자고 하면서 그를 집안 식당으로 이끌었다. 열려진 문으로 독특한 멋을 부려 꾸민 식당이 들여다보였는데 그 방 창가에는 얼핏 보기에도 야단스럽게 차린 술상이 보였다. 진수는 난처하게 된것을 느꼈으나 오늘 밤에 급히 써야 할 글이 있다고 둘러대면서 돌아가봐야겠다고 하였다. 순간 규석은 독이 어린 매눈으로 진수를 노려보더니 곧 웃음으로 노여움을 얼버무리며 말했다.

《아니, 시작한 얘기도 끝맺지 못하고 헤여져요?》

그는 이때 오리걸음으로 급히 다가오는 제 처에게 말끝을 돌렸다.

《여보, 이런 변이 있나. 이분이 가시겠다누만.》

민규석의 처는 눈을 커다랗게 뜨고 두손바닥을 마주치면서 지어먹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원 선생님도, 그건 안돼요! 저녁도 잡숫지 않았는데 우리가 내놓을줄 아세요? 어서 들어가 앉으세요.》

진수는 민규석의 처에게 적당히 인사를 차리고는 그 녀자가 식당으로 돌아간 후 그의 남편에게 말했다.

《아까의 얘깁니다만. 저에게 무슨 혜택을 입히려는 생각은 완전한 오산입니다. 나는 과거에도 선생의 은인으로 봉사한 일이 없고 오늘은 대립된 기자라는걸 잊지 마십시오.》

《그거 표현이 멋있소.》

민규석은 이렇게 반응하더니 쐑소리가 나게 호탕하게 웃어제끼며 진수를 끌고 응접실의 제자리로 돌아가서 반롱조로 말했다.

《허 참, 나를 어떻게 보시는지 모르겠군. 난 한번 결심하면 다라는데두 그러는군그래.》

여기서 진수는 차라리 이 부호에게 돈을 뜯어내여 가난에 시달리는 다른 누구를 구원해주는것도 나쁘지 않겠구나 하는 그릇된 생각을 하게 되였다. 그래서 순간적충동으로 머리에 피뜩 떠오르는대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 내 의견을 조금 고쳐봅시다. 김용기라는 한고향사람이 선생네 회사공장 선반공인데 그 사람을 구원해주시오. 집은 창덕사부지에 있으니 며칠후면 그 판자집도 허물릴것 아닙니까. 그런데 민선생은 두달째나 로임도 주지 않는다더군요. 며칠전엔 거리에서 날품을 팔더군요. 이 사람을 나인셈 치고 구원해주시오.》

순간 민규석의 얼굴에는 내부의 복잡한 생각이 내비치는가싶더니 즉석에서 대답했다.

《그까짓 로동자 한사람 신세를 고쳐주는거야 뭐 심심풀이도 못되지. 한두가지 알아볼거나 알아보고 즉석에서 해결해치웁시다.》

그리고는 방에서 나갔다. 그사이 그의 처가 진수의 가족형편에 대하여 이것저것 물으면서 친근감을 표시했다. 곧 민규석이 돌아왔는데 그는 심중해진듯싶었다.

《정선생, 사람을 잘못 골랐거던. 그 김용긴지 하는 로동잔 안되겠어. 공장의 관계부서에 알아본즉 그치는 아주 말썽꾸러기라누만. 툭하면 파업을 선동하구.》

민규석은 역시 보통인간이기에 앞서 탐욕적인 자본가였다. 몇분전까지도 초과리윤의 일부를 가지고 《자선》놀음을 할 생각이였던 그는 김용기가 반항심이 강한 로동자라는것을 알게 된 그 순간에 자기와 대립된 무수한 로동자들로부터 자본을 사수해야겠다는 분노어린 경계심이 머리를 치여들었다.

그는 제가 거물인체, 도량이 큰체 광고하고 으시대지만 실상은 조금이라도 자본을 확대할수만 있다면 로동자들의 생명도 휴지 찢듯하는 랭혈의 폭군이며 누가 자기의 자본에 손톱자리라도 내지 않을가 하여 벌벌 떠는 속이 버들잎처럼 좁고 비렬한 수전노인것이다. 기자로서의 다년간의 체험에서 오는 직감으로 민규석의 본심을 감촉한 진수는 말없이 자리를 뜨는것으로써 민규석에게 무안을 주려고 생각하고는 분위기를 마스면서 벌떡 일어섰다. 민규석의 처는 만류하는체 따라일어서면서도 짜증난 눈초리로 남편을 쳐다보았다. 그 눈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당신은 참 바보군요. 이렇게 빡빡 맞서는 기자놈을 왜 혼뜨검을 떼놓지 못해요. 아이, 기막혀라. 이걸 어떻게 참아요?)

그러나 그 녀자는 남편이 눈을 꾹 감아보이자 순간에 진수의 손을 잡아 자리에 주저앉히려고 일류배우 못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진수는 무릅쓰고 급한 걸음으로 방을 나섰다. 그사이 민규석은 급히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더니 김용기에게 주라고 하면서 한달 남짓한 생활비로 쓸수 있는 돈이 든 봉투를 진수에게 주었다. 그것은 물론 용기의 생활을 완전히 개선하라는 진수의 요구에 비추어보면 너무도 적은 돈이였다. 그러나 민규석은 이 정도라도 《호응》을 보여야만 자기와 기자로서의 진수의 관계가 덜 랭랭해지고 차후로 다시 거래를 틀 여유도 남길수 있다고 본것이다.

진수는 꺼림직한 생각이 들어 사양했으나 민규석도 듣지 않았다. 진수는 용기가 돈 몇푼을 벌려고 거리에서 철궤를 지고 허우적거리던 모습을 생각하고는 받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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