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8 회


제 3 장


18


김용기는 창덕사에 있는 자기의 판자집 부엌에서 함석쪼각들을 무어 버치를 만들고있었다. 기울어진 저녁해빛이 엉성한 부엌문짬으로 여러 가닥 흘러들어 부엌바닥은 숯불을 펴놓은것처럼 환했다. 그가 망치로 두드려 만드는 이 버치는 그의 어머니가 생선장사를 하는데 쓸것이였다.

용기의 생활은 고통스러웠다. 그곳 판자촌부지가 민규석의 소유로 굳어졌다는 말과 함께 마을이 곧 허물릴것이라는 위협적인 소문이 돌았다. 마을을 고수해보려고 그사이 민규석이나 구청, 시청을 상대로 진정서도 내고 항의소동도 벌렸으나 별효과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민규석회사는 몇달째 로임을 주지 않아서 특히 김용기와 같은 가난한 로동자들은 먹고살 길이 없었다.

용기의 어머니 한씨는 다리를 저는 몸으로 새벽마다 어물시장에 나가 물고기를 받아가지고는 도시변두리의 먼 주민지구들로 허덕허덕 달려다니며 팔아가지고는 몇푼 안되는 돈을 남겨오군 했다. 그것으로 하루 한끼도 에우기 어려웠다. 어쩔수없이 용기도 날품파는 싸움판에 뛰여들었다. 다문 며칠간이라도 품팔 곳을 찾아 숱한 실업자들과 함께 직업소개소들과 막로동판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그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단 한곳에서만은 매우 까다로운 신원조사와 체력검사까지 받고 고용되였다. 그러나 알고보니 천만뜻밖에도 일종의 강도후보들을 훈련시키는 《반공규찰대》라는 무서운 소굴이였다. 장발의 처녀들이 비수를 휘두르는 까마귀같은 사나이를 간신히 피해돌면서 악당들을 위안하기 위한 선정적인 광기훈련을 하는 밀실이 있는가 하면 복면한 사나이들이 소리없는 권총사격에 몰두하고있는 곳도 있었다. 한 방에 용기가 들어서자마자 복면한 두 사나이가 그에게 연방 칼을 던졌다. 눈 깜빡할 사이에 십여개의 칼이 그의 몸을 좌우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벽에 박히여 바르르 떨었다. 간이 콩알만 해진 용기는 그를 인도하던 검은 안경의 사나이가 위협적으로 붙잡는것을 가까스로 뿌리치고 그 악마의 소굴에서 정신없이 도망쳐나왔다.

혼이 난 용기는 장마당들을 찾아 돌아다니며 짐군노릇도 하였고 려행자들로 혼잡을 이룬 역으로 나가 이리 헤치고 저리 뚜지며 짐군을 부르는 손님들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해서 얻어걸리면 다행이였다. 때로는 손수레나 지게로 날라야 할 짐을 손과 어깨로 날랐다.

화려하게 성장을 한 한 녀인의 무거운 트렁크 두개를 가까스로 택시정류소까지 날라다 주었을 때였다. 고맙다는 말은커녕 귀중한 짐을 거칠게 다룬다고 고양이같은 눈으로 쏘아보며 종알거리던 계집은 손가방을 열고 한줌의 동전을 쥐더니 닭모이나 주듯 땅바닥에 홱 뿌려던지고는 택시에 올라 사라져갔다.

가난뱅이에게는 밑으로 뿌려줄수는 있어도 수평으로 넘겨줄수는 없다는 호화족의 비뚤어진 심보, 용기는 심한 모욕에 피가 바작바작 마르는듯 했다. 이런 멸시를 받고 살아서 무엇하는가 하는 생각까지 났다. 그 계집이 탄 택시가 끼얹은 먼지와 가스, 향수냄새속에 쭈그리고 앉아 여기저기 번쩍이는 동전을 더듬어집는 그의 손은 후들후들 떨렸다.

이런 날 밤이면 그는 내포국집에 들려 안주도 없이 쓰거운 술을 들이켰다. 오늘 저녁도 한잔 걸치고 들어온 용기는 화김에 함석쪼각을 더욱 소란스럽게 두드려댔다.

이때 뜨락에서 다급한 발자국소리가 들리더니 옷주제와 머리모양이 말이 아닌 용기의 어머니 한씨가 부엌문을 벌컥 열고 들어섰다. 어떤 절망감에 인사불성이라도 된듯 한 한씨는 두세마리의 물고기가 든 어지러운 꾸레미를 가마목에 던지고 아들을 뚫어지게 굽어보면서 화를 냈다.

《그따위나 자꾸 만들면 무엇하니? 다 걷어치워라.》

《왜 그러세요? 가지고 나간 버치는 어떻게 했어요?》

용기가 불길한 예감으로 묻자 한씨는 맥을 놓고 쭈그리고 앉으며 울음에 짓눌린 소리로 통탄했다.

《아이구- 어쩜 좋니, 다 뺏기고 다 짓밟혔다. 글쎄, 그 국수집앞에 모두 고기버치를 주런이 놓고 앉아있는데 또 그 까마귀들이 달려들더니 어쩌겠니. 사람이고 물고기고 마구 차굴리고 짓밟아 뿌려던지지 않겠니. 난 그저 깨진 버치를 찾으려다 매만 실컷 맞고 겨우 빠져나왔다.…》

용기는 이를 갈며 황소숨을 몰아쉬였다. 한씨는 손바닥으로 무릎을 짯짯 치며 오열했다.

《아이구- 내 팔자야… 어째 벌써 죽지 못하고 이 여우같은 세상에 아직 살아가지구… 아이구- 아이구-》

한씨는 급작스레 넉두리를 그치더니 아들에게 다급히 호소했다.

《야, 이럴것 없다. 래일이라도 당장 고향으로 가자. 촌에 가면야 흙을 삼킨들 이놈의 도회지보다 못하겠니? 난 속에서 불이 펄펄 나서 굶어죽기 전에 타죽겠다!…》

세상사가 넌더리난듯 웅크리고 앉은채 두손으로 뒤머리를 싸쥐고 끙끙 신음하던 용기는 숯불같은 눈으로 어머니를 돌아보며 힐문했다.

《촌에 가면 누가 곱다고 할줄 알아요? 쫓겨올 때는 어떻게 왔는데 또 거길 간다고 그래요. 땅 한쪼각, 누울 집 한칸 없는 주제에 빌어먹을수 있을것 같아요?》

《모르는 소리다. 그래도 애비의 백골이 묻힌 땅이 낫지, 낫지 않고… 하다못해 큰아버지네 집에라도 얼마간 있다가 풀막이라도 짓고 나앉으면…》

한씨가 치마귀에 코를 풀며 고집하자 용기는 벌떡 일어나며 화를 냈다.

《그것도 말이라고 하세요? 그 집 형님이 감옥에서 오늘래일 죽는다고 큰아버지까지 실성해서 벙어리가 된 집안에 우리가 또 매달려요? 참, 이거야 답답해서 죽겠다니까.》

어두운 눈길로 아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한씨는 손으로 입을 싸쥐고 컥컥 막히는 마른 울음을 울었다. 결사적인 투쟁으로 버티여온 삶이 절망의 막바지에서 의지를 잃고 허물어지는데서 터진 넋으로 우는 울음이였다.

이때 밖에서 주인찾는 소리가 들려 용기가 나가보았다. 그를 찾아온것은 정진수였다.

용기에게는 뜻밖이였다. 용기는 그를 방안으로 이끌면서도 집안꼴이 너무도 말이 아니여서 반갑지 않았다. 방금 어머니와 주고받은 울분탓으로 기분이 상한 용기는 진수가 친근감을 강조하거나 자기를 너무 동정하거나 위안하지 말았으면 했다. 그런데 깨끗이 거두고 치장까지 했으나 가난만 돋보이는 좁은 방안을 둘러본 진수는 용기가 마치도 자기때문에 이렇게 가난에 시달리기라도 하는것처럼 죄스러워하는 눈치였다.

한씨가 자기를 찾는 아들의 목소리를 듣고 방으로 들어오자 진수는 그 녀인의 거칠고 꽛꽛한 손을 잡고 몹시도 반가와하였다. 어린시절에 고향에서 본 그의 슬픈 정상과 함께 다리를 저는 그 녀자의 뒤를 따라다니며 괴롭혀주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비록 철부지시절의 악의없는 장난이였지만 진심으로 용서를 빌고싶은 마음이였다.

방금 부엌에서 눈물을 짜던 한씨는 기분을 미처 돌리지 못해서 한손으로는 꼬깃꼬깃한 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다른 손으로는 진수의 팔을 더듬으며 말을 못하는것이 똑 벙어리같았다.

《같이 서울에 살면서도 제가 그만 버릇없이 살다보니 인사가 늦었습니다. 머리까지 이렇게 희여지신걸 보니 고생이 말이 아닌가 봅니다.》

진수가 다시 인사를 차리자 한씨는 또 설음에 잠기며 겨우 입을 열었다.

《우리 사는데가 무슨 사람사는 서울이겠나? 그래, 임자넨 애기어머니랑 잘 있겠지? 아이는 몇이나 두었나?》

《하납니다.》

《하나라니? 장가간지 언젠데 아직 하난가. 부지런하지 못했구먼.》

한씨가 비로소 웃음을 짓자 진수도 따라웃으며 받아주었다.

《이제 부지런히 만들지요. 그런데 어머닌 빨리 며느리를 두셔야겠어요. 용기더러 제꺽 하나 업어오라고 하지요 뭐.》

용기에게는 진수가 표시하는 친근감이 순수하지 못한것처럼 느껴졌다. 자기와 같은 천덕꾸러기로동자를 깔보는것으로만 느껴진 어덴가 상류계층 사람들의 그 특유한 거만과 리기적인 냄새를 감추고있는것만 같은 진수에게서 혈육의 정 같은것을 느낀다는것은 안될 일이였다. 그러나 이러한 거부반응은 소탈하고 진심어린 진수의 맑은 얼굴을 보자 누그러졌다.

진수는 정색을 하더니 용기에게 자기가 민규석에게서 어떻게 되여많지 않은 돈이나마 낚아낼수 있었는가 하는 전말을 간단히, 그것도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사건의 색조까지 바꾸어말하면서 웃옷 안주머니에서 돈봉투를 꺼내여 한씨앞에 내놓았다.

《얼마 안되지만 보태여 써주십시오.》

한씨와 용기는 매우 놀라와했다. 한씨는 이럴수 없다고, 남의 돈에 손을 대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오히려 물러앉았다. 진수는 아무 걱정말고 받으라고 사정사정하여 겨우 돈을 맡겼다. 한씨는 고맙기도 하고 동정받는것이 서럽기도 하여 구겨진 수건을 눈에 가져간채 소리없이 울었다. 진수도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그런데 용기는 긴장한 생각이 내돋은 노여움어린 눈길로 진수를 쏘아보더니 딱딱하게 말했다.

《이러지 마십쇼. 정말 모르겠군요. 형님이 그 흉악한 민규석에게 가서 우릴 위해 구걸했단 말입니까? 누가 부탁합데까? 누가 바라기나 한대요? 그놈이 얼마나 악독한 놈인데 내가 유독 그놈의 돈을 구걸해 먹는단 말입니까?》

《구걸》이라는 말에 진수는 기분이 상해서 언성이 높아졌다.

《용기,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민규석이 권세가 드세다고 내가 아무렴 그놈에게 구걸을 할것 같은가?》

한씨도 아들을 책망했다.

《용기야, 그러면 못써. 진수가 어떤 사람인데 실수를 하겠니. 다 우릴 생각해서… 오죽 마음을 썼으면 이렇게까지…》

한씨의 말끝은 흐려졌다. 그러나 용기는 어머니의 손에서 돈봉투를 나꿔채여 진수의 무릎앞에 딱 소리나게 쳐서 밀어놓으며 눈이 뻘겋게 되여 항의했다.

《진수형까지 날 이렇게 업수이여기는줄은 몰랐소. 내가 공부도 못한 로동자구, 이런 개우리같은 집에서 산다구 사람까지 거지가 된줄 알았소?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까지 이렇게 짓밟아놓으면… 난 어쩌라요?… 형님은 집도 있고 돈도, 생활도 있지만 피투성이가 된 나에겐 심장과 자존심밖엔 아무것도,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그것마저 짓밟히면… 어떻게 살란 말이요. 예?…》

용기는 어찌나 울분했는지 목소리가 갈리고 눈빛이 무서웠다. 틀어쥔 주먹으로 꽉 누르고있는 무릎이 후들후들 떨렸다. 진수는 채찍으로 온몸을 마구 맞는것처럼 괴로왔다. 민규석에게서 돈을 받아온 행위가 한심한 과오이며 수치라는 느낌이 피속에 불을 다는듯싶었다. 민규석이 뿌려주는 돈은 더러우니 나는 받기 싫어도 용기는 받으리라고 생각한것이 과연 이 로동자를 숫보고 모욕한것이 아니란말인가! 진수는 자신을 경멸하고 개탄하면서도 자기의 과오와 수치를 이렇게까지 깨우쳐주는 용기의 깨끗하고 거센 인격미를 발견한 감동으로 숨이 찼다.

그런데 한씨는 아들이 진수를 탓하는것을 딱하게 여겼다. 여우같은 부자놈에게서 돈을 뜯어내왔으면 잘한 일이지 나쁠건 뭔가? 또 그 돈을 친척도 아닌 우리에게 무턱 주고 가려는 마음이 좀 용한가! 전쟁을 하듯 싸워도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주제에 굴러든 목돈을 물리치다니, 기막히는 일이였다. 한씨는 주저없이 돈에 손을 댔다.

순간, 머리를 수굿하고있던 용기가 주먹으로 구들바닥을 치며 애원섞인 위협조로 소리쳤다.

《어머니- 안된다는데!… 그게 독약이란걸 왜 몰라요? 혀를 깨물면서도 버티여야지 마음까지 무너지면 우린 못산단 말예요!…》

한씨는 아들의 격정을 리해한듯 떨리는 손으로 그러나 확고하게 돈을 밀어내고는 아들을 바라보았다. 용기는 어머니가 마치도 생명을 모험해야 할 위태로운 큰일을 희생적으로 해내기라도 한것처럼 감격의 눈길로 바라보더니 얼굴을 외로 돌리고 눈물을 닦는것이였다. 설음만이 끝없이 밀려오는 검은 세월, 그 가난, 그 수난속에서도 금강석같이 변함없이 단단하고 빛나는 보배로운 마음을 느끼는 진수는 그들에 대한 새로운 믿음으로 가슴이 뿌듯했다. 그는 용기모자의 주시속에 돈을 가지고 부엌으로 나가 아궁이속에 그 돈을 흐트러넣고 라이터로 불을 달았다. 마른 락엽을 쓸어모아놓고 태우는 때처럼 부드럽고 애틋한 동심같은 즐거움이 가슴에 차오르는듯싶었다.

생각깊은 얼굴로 방안에 들어간 진수는 작별을 고하면서 한씨에게 사죄하였다.

《용기 어머니, 이거 내가 못할짓을 했습니다. 용기는 정말 훌륭합니다.》

그리고는 용기의 손을 틀어쥐였다. 둘은 빛나는 눈길로 마주보았다.

용기는 진수를 큰길까지 바래워주었다.

김용기와 헤여진 진수는 그길로 강동혁의 집으로 갔다. 민규석과 김용기에게서 받은 느낌을 놓고 몇가지 의논하고싶었던것이다. 진수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두워진 다음이였는데 동혁은 외출하려고 서류가방을 들고 집에서 나오던 참이였다.

동혁은 진수를 방안으로 끌어들이고 안해까지 불러대면서 무척 반가와했다.

《그만큼 도를 닦았는데도 내가 방문하리라는걸 예측 못했단 말인가?》

녀주인이 켜주는 성냥불에 진수가 담배를 붙여물며 롱을 하니 동혁은 즐거운 생각이 떠올라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러지 않아도 하나 전할게 있어. 전번에 만났을 때 자유동지회에 들수 없느냐고 했지? 그게 해결이 됐어. 우리 회원의 위원들에게 자네 얘길 했더니 대번에 찬성들이야. 자유동지회의 권위를 말해주는 증거라고 평하는 친구도 있었고…》

《고맙네. 많이 배워주게.》

동혁이 진수를 받아들이려는 자유동지회는 박정희의 파쑈적인 통치체제에 반감을 가진 지성인들이 학술연구의 성과를 서로 나누며 대중교양을 하는 합법적인 조직이였다. 강동혁이 회장인 이 조직은 《지열》이라는 정치리론잡지까지 내고있었다. 회원들은 각종 출판물들에 의욕적으로 글을 내기도 하고 학술보고회와 강연회들에 출연하는 등 다면적인 활동을 벌리고있었다. 뿐만아니라 그러한 새로운 일들이 비밀리에 진행되고있었다.

동혁은 자유동지회의 한 소조에서 학술토론회가 있어 그리로 가려던 참이라고 하면서 진수더러 같이 가자고 하였다. 진수는 쾌히 동의했다. 집을 나선 그들은 산보삼아 걷기로 했다.

진수는 어떤 인연으로 민규석이 자기를 《생명의 은인》이라고 하면서 회사의 외사부나 홍콩대리점을 맡아달라고 하면서 선심공세를 펴더라는 얘기며 민가가 주는 돈을 용기네 집으로 가지고 갔다가 뜻밖의 항의에 부닥친데 대해서 얘기했다. 진수는 사실대로 터놓고 말하면서 친구의 의견을 듣고싶다는 태도였고 동혁이 역시 그것을 느끼고 솔직히 말했다. 그는 전쟁시기와 오늘에 걸친 진수와 민규석과의 관계를 흥미있는 이야기라고 하면서 진수가 민가의 선심을 물리친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민가가 보호자연하면서 주는 돈을 김용기네 집으로 가지고 갔다는 말에는 즉시에 날카롭게 비판했다.

둘은 산책자들이 널린, 불빛이 어스레한 한강변을 걸었는데 동혁은 마주 오는 한무리의 청년들을 지나보내고나서 진수앞에 막아서며 말했다.

《그래서 될가? 잘못이야. 범하기 쉬우면서도 무서운 과오일세. 민규석의 〈선심〉을 더럽다고 물리친 자네가 용기라는 로동자에게는 어떻게 그놈이 뿌리는 뢰물을 먹이려고 한단 말인가? 그건 그 로동자에 대한, 아니 민중일반에 대한 혹심한 모욕일세.》

동혁의 비판이 아플수록 거기에서 깊어가는 우정을 느낀 진수는 달빛에 기름처럼 번들거리는 강물우에 뻗어간 여러 줄기의 불장식을 한 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옳은 말일세. 그러나 그렇게 한것이 꼭 모욕일가?》

《왜 모욕이 아니겠나?》 하고 동혁은 어이없다는듯 헛웃음을 치며 친구의 침울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생각해보게. 민규석이 돈을 내놓은것이 덕행이겠는가? 그건 기만적인 〈자선〉일세. 부르죠아지들의 자선이란것이 뭔가? 초과리윤의 일부를 떼여 선심을 쓰는체 하면서 민중의 반항의식을 마비시키는 독약이라는거야 상식이 아닌가.

그런데 자넨 그런 더러운 돈을 가지고… 그게 어디 제정신 가지고 한짓인가?…》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깊은 생각에 잠겨 수굿하고 걷기만 하던 진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픈 교훈이야. 백번 옳은 말일세. 그런데 민규석은 그렇다 하더라도 용기를 구원해보려는 나의 선의까지 거짓일수야 없지 않은가?》

《그럼 자넨 이런 사회에서도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구원될수 있다고 보는가?》

《글쎄, 노력여하에 달린게 아닐가?》

《아닐세. 사람은 제가 속한 계급과 함께 망하기도 하고 계급과 함께 구원되고 해방되기도 하는걸세. 김용기를 두고보세. 그가 속한 로동자들은 민규석이네 매판자본가들, 권력층에게 짓밟히고있는데 어떻게 그 한사람이 구원될수 있겠나? 그 사람은 자기와 같은 로동자들이 자기를 억압하는 착취자들을 뒤집어엎고 사회의 주인이 되여야 구원되는게 아닐가? 김용기에 대한 자네의 선의가 행동에 옮겨지자 모욕적인것으로 일변한 원인은 바로 인간의 운명을 그가 속한 계급의 처지와 투쟁속에서 보지 않은데 있단 말일세.》

동혁의 말은 간단했으나 거기에는 진수의 정신세계를 온통 뒤흔드는 힘이 있었다. 사람을 고립적인 개인적존재로만 보고있는것이 (또 자신도 그런 관점에서만 행동한것이) 얼마나 우둔한 처사인가 하는것을 깨달은 그는 자기의 사고방식에서 전환을 일으켜야겠다는 막연한 욕구를 느꼈다. 게다가 이날 밤에 열린 자유동지회의 소조학술토론회는 진수의 이 느낌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었다.

동혁은 학술토론회를 열기로 한 모대학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부교수네 집 서재로 진수를 데리고 들어가면서 거기에 벌써 모여있는 회원들에게 그를 소개했다. 두개의 긴 쏘파와 의자, 방석과 침대에 널려앉아 한담을 하던 스무명 가까운 사람들이 인사를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모습이 너무도 굳어보였던지 진수와 구면인 모대학의 한 력사학강사가 챠플린의 흉내를 내며 익살을 부렸다.

《여러분, 이 정진수각하는 〈국무총리〉를 만나 돼지뒤다리같은 자식이라고 욕질하고 교도소에 갇혔다가 방금 출옥한 면도칼같은 사상가올시다!》

그바람에 모두들 웃었다. 진수는 매 사람과 악수를 하면서 통성을 하였다. 대학교원, 연구사, 기사, 작가, 기자, 무직자… 각이한 신분들이였으나 뜻을 같이한다는 련대감으로 후더운 온기를 느꼈다. 일동은 동혁의 제의에 따라 진수의 가입을 박수로 환영하였다. 모두 자리에 앉고 부드러운 롱말이 오가는 가운데 녀주인이 과자와 커피를 대접했다.

동혁의 눈짓에 따라 잡지 《지열》의 편집장인 함영초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손수건으로 입술을 열심히 닦고 이마에 드리운 머리칼까지 손가락으로 천천히 뒤로 빗어넘기고나서 무겁게 입을 열었다.

《오늘 밤부터 3회에 걸쳐 〈한국〉의 상층부르죠아지들에 대해서 론의해보겠습니다. 에- 민중을 괴롭혀온 가난과 굴욕은 체념해야 할 천명도, 천형(하늘이 내린 형벌)도 아닌 시대적체제, 외세와 그에 의존하여 팽창한 토착상류층중심의 사회제도의 산물이라는것은 쟁론의 여지도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르죠아지들의 죄악적생태와 본질에 대한 우리의 연구는 민중의 력량을 총동원하여 빈궁과 사회적모순을 극복하기 위한 투쟁에서 투쟁대상을 해부해보는 중요한 과정으로 될것입니다.

그럼 오늘 밤에는 먼저 〈이남의 매판상층, 그 생성의 공개된 비밀〉이라는 제목으로 강동혁씨가 출현하겠습니다.》

함영초가 자리에 앉자 진수옆에 앉아있던 동혁이 가방에서 연설개요를 적은 종이를 꺼내들고 마련된 탁자앞으로 가더니 진수에게 미소를 던지고 자못 엄숙한 표정으로 본론을 폈다.

여기에 동혁의 토론요지를 적어본다.

《주지하는바와 같이 금세기초에 일제침략자들에 의하여 진행된 토지조사사업은 조선봉건왕조시기의 경제적기반을 허물어 빼앗을 목적과 함께 토호들이 욕심스레 확대한 개인토지를 근대적인 법질서밑에 승인함으로써 식민지경영의 동맹군을 마련하기 위한것이였습니다.

일제의 비호밑에 새로운 근대지주가 된자들은 세습경작지로부터 쫓겨난 소작인들을 상대로 배부른 흥정을 시작하였습니다. 네가 아니라도 소작을 바라는자 구름처럼 많으니 싫으면 멀찍이 물러서라는 투로 을러멨지요. 하기는 많은 농촌과잉인구의 생계를 지주가 마음대로 좌지우지하게 된지라 농민들은 소작방법, 소작기한, 소작조건 등 계약체결에서 언제나 불리한 처지에 몰렸습니다. 땅을 떼울가봐 살점을 뜯기는듯 한 아픔을 무릅쓰고 피눈물이 스민 소작료를 바쳐야 하였고 명절마다 선물진상, 쩍하면 무상로동, 아부의 비극에 울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농가의 추녀아래엔 그렇게도 슬픈 전설이 많고 소먹이는 아이들이 부른 민요가락조차 마디마디 설음에 질린것이 아닙니까.

나는 먼 어린시절을 회고할 때면 나를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불러준 어머니와 할머니의 흥얼거리는 소리며 여러 할아버지들의 푸념소리, 농부들과 머슴들이 일하면서 애끊는 넉두리를 하고 영탄가를 부르는 소리가 다시 귀가에 어렴풋이 살아오군 합니다. 헌데 소리는 모두가 울음이 시들어지면서 생겨난 소리같기도 하고 점차 다시 울음이 되고저 울리는 소리라는 생각에 잠기군 합니다. 그럴 때면 그 추억과 함께 오늘의 우리 민중들이 흘리는 비분의 눈물이 장마철에 불어나는 강물처럼 나의 가슴을 신산하게 때립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에 의한 인간의 착취와 학대는 바람소리, 물소리, 여닫기는 문소리에조차 울음의 선률이 울리게 하였던것입니다.… 일제는 대중을 억압하는데서 자기들과 동조할수 있는 토호들을 지주로 내세우고 그들과 함께 토착지배층을 친일화시켰습니다. 철저히 친일, 매국배족의 길을 걸은 그들이 바로 4.19이전체계의 주역들을 낳은 원형적세력이였습니다.

식민지통치기구가 꾸려지게 되자 친일화한 지주층에서는 친일관료들이 생겨났습니다. 일제 말기에 이를수록 총독정치에 참여한 관료층과 친일문화인들이 증가했는데 그들의 주역은 토지조사사업으로 출현한 친일 제1세대들의 후예들이였습니다. 이들은 일본을 비롯한 해외류학으로 근대학문과 근대의식을 배우고 지성인으로 대두했습니다. 그러나 제국대학에 들어가 사각모를 쓰고 금단추를 번쩍거리며 가정의 돈을 물쓰듯 하면서 륙법전서를 외운 목적도, 시골에서 기다리는 초혼녀를 생각하며 심란해하다가는 카페인을 먹고 밤을 새우며 왜왕조사를 암송한 목적도 벼슬자리에 올라 왜놈처럼 권세를 휘둘러보는것이였습니다.

사실 그들은 일제의 식민지경영의 추악한 하수인노릇을 했습니다. 〈황국신민화〉를 위한 교육으로부터 〈륙군지원병제〉에 이르는 온갖 반민족적행동과 범죄행위의 앞장에 선것도 그들이였습니다. 지어는 일제의 고등경찰에 들어가거나 헌병이나 헌병보조원이 되여 험산밀림을 헤치며 초인간의 투지로 혈전한 영웅적인 항일투사들을 〈토벌〉해보겠다고 날뛰며 만행을 수없이 감행한자들까지 있는것입니다. 우리는 현행권력의 최상층에서 그러한 독사들을 목격하는바 이것이 우리의 고통인것입니다.

이처럼 친일 제1세대는 재산을 휘두르고 제2세대는 신분과 지식으로 권세를 휘둘렀습니다. 마침내 돈과 벼슬만능의 풍조가 일고 최상층에는 그 어떤 상상력도 초월하는 온갖 반민족적인 악행과 몰렴치와 부패행위가 생활로 돼버린것입니다. 요는 외세와 결탁한 자본은 필연코 반민족적범죄와 극도의 암거래, 부패행위를 산생한다는 그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개탄할 점은 그들 친일망국의 반역아들이 미국이라는 새로운 상전의 축복밑에 옛 버릇, 옛 배짱그대로 옛 죄과를 오히려 뿔처럼 자랑하며 8.15후의 사회로 뛰여든 점입니다.

…당시로는 산업시설이 매우 빈약하였고 그나마도 반휴업상태였는데 이 땅에 기여든 미국은 소비재상품일색으로 된 허울좋은 〈원조〉로 이 땅의 시장구조를 소비재위주의 대미의존체제로 만들어버렸습니다. 이러한 소비재위주의 〈원조〉는 랑비적인 소비풍조만 조장시켜 소비구조만을 고도화하고 대외의존성을 심화시켰으며 자체의 산업과는 상관없는 〈원조물자〉의 교류에 붙어살면서 류통상에서의 미친듯한 투기와 폭리, 사기협잡을 노려 아귀다툼을 벌리는 추악풍조를 빚어낸것입니다.

한편 미군정청은 과거 일제의 소유였던 귀속재산(사회재산 총액의 80%)을 시가의 절반값으로 소수의 특정기업가들에게 불하하였는데 그것도 15년간의 년불로 돼있어서 그 기간에 화페가치가 3백분의 1로 떨어졌으니 거의 공짜(그것도 기업가들자신의 돈이 아니라 특혜융자로)로 준것입니다. 이리하여 미국과 〈한국〉의 당국자, 수혜자인 자본가와의 거래는 일제시대의 그것에 비할바없는 추악의 극치를 이루었습니다.

미국은 또 거기에 막대한 특혜융자와 〈원조물자〉의 책략적분배로 그들 소수의 기업가들을 매판대재벌로 만들어 민중을 압살하고있는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악마도 부끄러워 낯을 돌릴 〈한국〉정계의 무서운 온갖 협잡과 부정, 부패의 모태인것입니다.

…이 부패, 이 고통속에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절규가 터져나왔고 4.19에 련달아 〈신생활운동〉의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는 그때 외래상품을 배격하고 랑비와 부패를 막기 위한 각종 구호를 불렀습니다.

얼마나 소박하고 순진했습니까! 지게에 마이크를 지고 낮에는 다방에 들어가 커피를 마시지 말라고, 밤에는 유흥장에 들어가 오랑캐춤을 추지 말라고 호소했고 때로는 퍼렇게 성나서 일본제축음기판과 양담배를 압수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상류 호화족들이 우리의 단속에 걸려들었습니까. 양담배를 피우다가 혹은 커피를 마시다가 망신당한 고급관리, 관용차로 장보러 다니다가 단속된 〈사모님〉, 춤추다가 중지를 당한 사장족… 그들은 단속자, 학생들을 폭도처럼 대했습니다. 적의에 차서 뱀처럼 노려보던 소름끼치는 부호들의 그 눈길, 그 뱀의 눈들은 웨치고있었습니다.

〈우리에게는 가난뱅이들의 권고따위는 들을 귀가 없다! 자본을 포기하다니! 우리는 그 말의 뜻조차 리해할수 없다!〉

…미국에 의한 〈한국〉경제의 예속화과정은 친일 제1세대인 토호들의 뒤를 이어 제2세대인 일제의 식민지관료 및 문화인들이 미국과 리승만에 의하여 반공투쟁의 주역으로 등장한 과정과 일치했습니다. 아무런 주저나 고민도 없이 일제대신 미제와 리승만을 섬겨나선 그들은 행정과 경제의 요충에 뛰여들어 돈과 벼슬을 위한 무자비한 아귀다툼을 벌렸습니다. 이 탐욕은 사회전반에 온갖 부정과 탄압과 위선을 낳았고 근대화보다 절대왕정시대적인 질서를 요구했습니다.

일본제국과 같은 더러운 문화형태속에서 자라나서 자유에 대한 사소한 동경이나 공화주의까지 이단시한 그들은 민중을 일반적으로 호령하고 마음껏 부려먹을수 있는 절대왕정이나 제국관료제같은, 폭력만이 위력한 언어로 통하는 침통한 질서를 갈망했던것입니다.

내외여론은 현 군사〈정권〉에 대하여 〈구악을 찜쪄먹을 신악〉이라고 비평하고있습니다. 미국과 리승만의 착유기같은 살인체제에 반항하여 삶의 권리와 인간다운 삶을 절규하여 폭발한 4.19인민항쟁과 그를 계기로 새롭게 각성한 민중의 투쟁의식에 질겁하여 일체의 정치적인 치레와 놀음을 단념하고 내댄 탄압의 사슬과 총칼이 바로 군사〈정권〉입니다.

이 군사〈정권〉의 주역은 과거에 일제의 〈황군〉에 들어가서 동족을 물어뜯다가 다시 미국식인간증오의 〈성수〉로 세례받은 독사형의 군인들과 거기에 배합된, 가장 야수적이고 패덕적인 부르죠아지들인것입니다.

여기서 이 군사〈정권〉의 범죄록을 들출 흥미는 없습니다. 다만 외세와 결탁한 자본이란 민족과 대립할뿐아니라 민중일반의 적이라는 한마디를 강조해둡시다. (여기서 동혁은 빛나는 눈길로 진수를 바라보며 말했다.) 따라서 한사람의 로동자도 그가 속한 계급이 승리해야 진정으로 구원될수 있는것처럼 상층의 압제자를 타승하려는 경우에도 그가 속한 계급과 함께 청산하는 길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것을 끝으로 강조해둡시다!…》

동혁의 토론에서 감명을 받은 진수는 자리에 돌아와 앉은 그의 손을 잡고 훌륭하다고 찬양까지 하였으나 다른 회원들은 첫 체험이 아니여서인지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거나 옆사람과 조용히 견해를 나누고있을뿐이였다.

이날 밤 집으로 돌아간 진수는 도무지 잠들수 없었다. 그는 외세와 결탁한 권력자, 자본가들을 증오하면서도 그들도 인간인 이상 경우에 따라서는 량심의 충동이야 느낄줄 알겠지 하고 막연하게 생각해왔었다. 그러나 위험하기 짝이 없는 부당한 생각이였다. 따지고보면 략탈과 매국행위는 그놈들의 생리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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