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 회


제 4 장


19


량성도는 신문사의 자그마한 귀빈실에서 버클과 함께 긴 쏘파에 앉아 벌써 한시간이나 밀담을 벌리고있었다. 자주 벌리는 밀담이였다. 버클은 흔히 하틀리를 거쳐 성도에게 임무를 주군 했으나 때로는 미군전용의 빠의 밀실이나 호텔 같은 곳에 성도를 불러다가 만나군 했다.

하바드대학에서 동방학을 전공하다가 어떤 유력한 고위관리의 비밀지시에 따라 몇년간 카톨릭교리와 함께 《한국학》을 파고든 버클은 몇년전에 때맞춤하게 물든 백발을 날리며 남조선사람들속에 비집고 들어왔었다. 그사이 그는 많은 《유식한 한국인》들을 익히 알게 되였고 또 교제하고있었다. 그래서 그는 미국대사관뿐아니라 미국내의 일부 특수계층의 은밀한 관심까지 끌고있었다. 서울의 력사학계를 비롯하여 출판, 문화계와 정계의 일부 동향과 그 배후관계의 인물들을 깊이 료해하고있고 간혹 경우에 따라서는 그들을 조종하기까지 하는 그의 솜씨는 미국의 책략가들속에서 주목을 끌었다. 4.19나 6.3과 같은 무서운 군중소요가 본격적인 반미폭동이나 반《정부》시위로 번질가봐 두려워한 그들 책략가들은 버클의 경우에 비추어 특수한 목적을 띠고 속국에 파견되는 미국인은 다면적으로 준비돼야 하며 선교사로 파견되는 경우에도 과학분야의 기술자격이나 학직을 겸할수록 그 현지의 광범한 계층속에 폭넓게 파고들어갈수 있다는 결론을 짓게 되였다.

버클과 량성도의 빈번한 접촉은 비밀이랄것도 없었다. 폭넓은 사회활동으로 얼굴이 넓고 영어와 글재주가 능한 량성도는 이름있는 미국사람인 버클의 훌륭한 협조자, 친구로 간주되고있었다. 뿐더러 《한국》에 대한 버클의 단행본이나 신문, 잡지들에 내는 론설(대부분이 《한국》에서의 미국의 역할을 물질문화의 자기희생적인 《원조자》로 외곡했거나 이 사회에 만연되여있는 모든 악페를 반인민적인 정치제도의 산물로가 아니라 후진사회의 운명적인 질환인것처럼 동정한것으로서 실은 대중을 숙명적인 노예로 조롱한 글이였다.)이 발표되면 성도자신은 그 글을 동료들에게 자랑삼아 보이며 말했다.

《자, 이 친굴 좀 보게. 나의 취재노트를 옮겨베꼈군그래.》

혹은 또 이런조로 양념을 쳤다.

《거참, 한두마디 일러줬더니 또 한강물처럼 도도한 웅변이거던.》

그러나 이러한 엉너리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범죄적인 정탐활동을 가리우기 위한 연막에 지나지 않았다. 이 땅에 깊숙이 들어앉은 미중앙정보국의 음흉한 책사인 버클에게 있어서 량성도는 매우 훌륭한 안테나였다.

이날도 성도는 청와대가 빚어낸 몇가지 정치파동이 민중속에서 일으킨 후과며 위험한 재야인물들의 막후움직임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버클에게 고해바쳤다. 그 자료의 대부분은 그가 불평불만을 품은 재야인물들과 지성인들속에서 벌리고있는 이른바 《지성인중심의 리상적인 제도》를 위한 기만적인 운동과정에서 수집한것들이였다.

성도는 마치도 자기의 두뇌를 믿는 학자가 어떤 학술적인 문제를 사색하는듯 한 진지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문제는 중간세력이 빗나가는데 있거든요. 집권층에서 끝없이 일어나는 부정부패사건들은 대세관망론자들까지 반항아들의 편에 밀어붙이는 작용을 하고있지요. 이것은 선생도 늘 걱정하는 권력의 소외현상을 심화시키니까…》

《그래서 자네 임무가 무겁다는거야. 그들이 큰 세력으로 뭉치지 못하도록 자꾸 끌어당겨 작은 무리들로 토막을 쳐야지. 거기다 또 뭐랄가. 엷은 얼음장우에서 날뛴다는건 우둔한짓이란걸 알도록 공포의 바람을 불어넣구, 미국의 반미행동조사위원회가 하는것처럼 말이지.》

이렇게 대답한 버클은 무릎우에 수첩을 펴놓고 무엇인가 속필로 기록했다. 그러더니 수첩과 문서를 가방에 챙겨넣고 일어나더니 불맞은 승냥이가 몸을 뒤틀듯 두팔을 우로 뻗치고 몸에서 우적우적 소리가 나도록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하였다. 이러는 그를 암담한 눈길로 쳐다보며 한순간 망설이던 성도는 자기의 가방에서 크지 않은 카드묶음을 꺼내여 넘겨주며 말했다.

《전번에 부탁한 요시찰지성인들에 대한 조사카드입니다. 소요사건들에 참여한 정형과 사상동태, 저술경향 같은것에 중점을 둔건데…》

버클은 심드렁한 태도로 카드를 뒤져보더니 맥없이 피식 웃었다.

《이건 뭐, 최경운따위 야당〈국회〉의원까지? 글쎄, 로동자들과 접촉이 많은 한진오 같은 이런자는 흥미거리야. 그러나 이런 박명찬같은 상아탑교수한테야 뭐가 있겠다구…》

《그렇게 속단할건 아니지요.》

《글쎄, 그 박교수는 미국의 〈한국〉정책의 지난 력사에 대해선 더러 비판적인 모양이지만 그런 견해의 위험성도 모르고 그걸로 나하고 몇번이나 론쟁을 펴는 순진한 로인이거던. 행동의식이 마비돼있는 그런 글뒤주에게는 접때처럼 불의의 타격을 안기던가 몇번 류치장냄새를 쏘이면 풀썩하는 법이지.》

버클은 창가로 걸어가더니 창턱에 제빠듬히 기대여 덧붙였다.

《명석한 자네도 류개념으로 갈라보는데는 정확하지만 종개념으로 진단하는데는 허점이 있어. 례컨대 박명찬은 위험하지 않아도 그런 교수에게 진지한 수재형의 애제자가 있다면 그 제자에게는 일단 의문표를 붙여야 하는걸세.》

《글쎄, 그럴수도 있겠지요.》

성도는 담배를 피워물며 말했다.

《그러나 백이 백질이 아닐가요. 선생도 아는 이 신문사에 있는 정진수라는 기자도 그 박교수의 수제자로 틀림없는 수재지요. 그 사람을 보더라도 4.19때엔 이름을 날린 저돌아였는데 내가 아무리 뒤를 캐여보아도 지금은 별것 없거든요. 그런가 하면 그의 동창친구로서 역시 4.19때에 맹장으로 날뛰던 강동혁이란자가 있는데 지금은 보잘것없는 고서점에 박혀 밥벌이에 시달리고있거든요. 답답하니까 자유동지회인지 하는 시시한걸 만들어가지고 술추렴이나 하는 모양인데…》

버클은 소리내여 웃고나서 곧 담담한 얼굴이 되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위험하지. 그 침묵이 바로 문제거던. 흔히 성난자의 침묵은 위험한 행동의 준비일수 있지 않은가. 무서운 복병일수록 기치와 무기를 눕히고 숨어있는 법일세.》

성도는 버클의 판단을 즐기며 껄껄 웃었다. 이때 손기척소리가 나더니 편집국장의 녀서기가 나타났다. 버클에게 목례를 보낸 녀서기는 성도에게 말했다.

《아이, 여기 계신걸, 〈한일자동차〉 민규석사장님한테서 전화예요.》

《민규석한테서? 전활 여기로 돌려줘.》

녀서기는 습관적인 미태를 부리며 나갔다. 쥐를 노리는 고양이눈으로 그 녀서기의 일거일동을 즐기던 버클은 가방을 챙겨들고도 걸쭉한 육담을 던지고야 떠났다.

민규석의 전화는 곧 성도에게 돌려졌다. 수화기에서는 애써 친밀한감을 강조하는듯 한 웃음소리가 섞인 활기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량선생, 이거 오래간만이군그래. 난 전번에 서울에 왔던 이마무라상에게 급한 용무가 있어 그를 찾아 사흘전에 도꾜로 가서 뒹굴다가 엊저녁에 왔는데…》

《글쎄, 이상하게 옥상들의 향수냄새가 뿜어나온다 했지.》

성도는 무표정으로 다만 목소리에만 흥을 냈다. 그래도 저쪽에서는 소란스레 웃어대며 달라붙는다.

《량형이 좀 도와줘야 할 답답한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다름아니라 그 창덕사부지문제때문이죠. 당국과도 락착이 돼서 난 그곳 주민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그 부지에로 막 전격전을 벌리는 참인데 아무래도 신문이… 어떡허겠어요. 사정을 좀 봐줘야지. 흐흐흐.》

《전격전이라면서 뭘 그러쇼. 자본은 권력을 타면 만능이겠다, 까짓것 신문 같은거야 막 때려누르고 내달려갈 판이지.》

그들은 보통때엔 아무런 거래도 없었고 별로 친밀하지도 않은 사이였다. 지난 전쟁때 성도가 《국군》에서 군단 미군고문의 통역 겸정보장교로 있었을 때 민규석은 그의 소속군단의 한 련대장으로 옮겨와서 잠시 머물러있다가 전술상의 자그마한 의견차이로 사단장과 충돌하고는 곧 다른 군단으로 옮겨간 일이 있었는데 그때에 서로 직무상으로 사귄 사이였다. 그러다가 몇년전에 공식적인 어느 명절초대연에서 만나 한술상에서 풍청거리며 기염을 토한 일이 있었는데 큰 회사의 사장과 유명짜한 사회명사로 등장한 그들은 서로 상대방의 리용가치를 느끼고 친교비슷한 관계를 맺어온터였다.

실무적인 어조로 변한 민규석은 성도더러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 분쟁문제를 담당한 오만한 기자의 머리에서 위태로운 뿔을 쑥 뽑아주던지 물렁물렁한 기자로 교체해주길 간청한다면서 꼬리를 달았다.

《다른 신문사들은 점잖게 체면놀음이나 하자는 태도인데 선생네 그 정 아무개 기자는 별스럽게 련대투쟁을 해야 한다고 자꾸 들쑤시는가봐요. 나도 만나보긴 했는데 어처구니없게 동격으로 턱 맞서질 않겠소. 내 참, 우스워서… 그 사람은 나에게 덜미를 잡히고 사는 제 장인을 봐서도 물러남즉도 한데 그냥 오또기처럼 발딱발딱한다지 않소.

좌우간 국장선생과 잘 상론해서 어떻게 좀… 꼭 부탁합니다. 사례는 한턱 크게 낼테니까.》

성도는 파도소리처럼 귀를 메우는 민사장의 조야스러운 웃음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려 대답했다.

《그 정기자는 마침 어제부터 앓아서 결근하는 모양이니까. 내 국장을 조종해서 소경에 귀머거리기자를 내세워보죠.》

메마른 웃음으로 전화를 끝낸 량성도는 곧 국장실로 위달종을 찾아가서 정진수대신 림시 안한수기자를 복귀시키는데 쉽게 성공했다.

이렇게 되여 안한수가 문제의 현장으로 나가게 됐는데 그를 조용히 불러낸 성도는 창덕사부지가 재벌의 손에 떨어진것은 어쩔수 없는 일이며 따라서 이런 경우에 한수가 할 일은 그곳 부지에서 쫓겨나는 주민들에게 약간의 동정을 표시하는것은 피할수 없겠으나 회사측과 당국에 대해선 어떤 의혹도 표시할 필요가 없다고 못을 박는것을 잊지 않았다.

한수는 즉시 현장으로 떠났다. 시청에 나간 주한숙의 전화통보로 이미 창덕사부지에 철거반과 경찰들이 몰려나갔다는것을 알고있는 그는 사진반에도 알리지 않고 자신이 부서의 사진기를 메고 나갔다.

그는 량성도의 충고대로 이 사건을 적당히 다룬다는것이 쉽지 않다는것을 알고있었다. 한것은 진수가 크고작은 여러 기사를 통해 다루어온대로 한다면 의례히 당국과 회사측에 분노의 불을 퍼부어야 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나 량성도의 충복인 그는 사태야 어떻든 그의 충고를 따르리라 마음먹었다.

안한수의 생각에 의하면 돈을 잘 버는것이 훌륭한 기자였다. 각종 비도덕적인 범죄사건들을 대할 때마다 그에게는 가해자에 대한 증오나 피해자에 대한 동정심을 일으키기에 앞서 그것이 얼마나 돈을 짜낼 사건인가 하는데 관심이 갔다. 만나본 범죄자가 찔러주는 꾹돈봉투가 예상보다 얄팍하면 그는 상대의 범죄는 가장 무서운것이여서 서울운동장이나 종로복판에서 만인의 칼탕을 맞게 만들듯이 을러메여서 예상액수보다 몇배나 되는 돈을 따내고야 놓아주었다. 그리고는 그 사건이 사회적으로 경종을 울릴 중대사건이거나말거나에 관계없이 말라 비틀어진 꽛꽛한 문투의 짤막한 기사를 써내깔리군 했다.

유부녀간통사건은 그의 특별한 흥미를 끌었다. 한번은 모차관의 늦바람이 난 늙수그레한 처가 제 집에 몇번 다닌 젊은 사장의 미모에 홀려 간통을 한것이 우연히 한수의 귀에까지 들려온 일이 있었다. 한수는 지체없이 차관의 처를 《친선방문》했다. 그리고는 늙은도적고양이같은 그 계집을 악마처럼 괴롭혀서 그의 계돈에서 막대한 액수를 잘라내는데 성공했다. 그러고도 만족하지 않은 그는 그 녀자의 간통상대방인 젊은 사장이 휴양하러 가있는 제주도에까지 따라가서 슬슬 위협한 끝에 역시 목적을 달성했다. 하기는 며칠후에 그 젊은 사장이 림시 고용한 사설깡패들에게 걸려 똥을 쌀 지경으로 란장을 맞고 처자들이 눈물로 지켜보는 어느 병원 침대우에서 겨우 제정신으로 돌아온 화려한 체험도 겪었지만…

두더지의 기질로 뛰여난 한수는 글재주는 비록 한심했어도 사건을 탐방하는데는 남다른바가 있었고 사방에 귀를 가지고있어서 언제나 떠들썩한 화제로 값싼 인기를 모았다. 그러고보면 량성도가 기자들과 그들의 주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데 한수를 틀어쥐고 리용해오는것은 이상할것이 없다.

한수는 창덕사현장으로 곧바로 가자고 떠나온것이였으나 후날을 생각해서 진수에게 이렇다는 말이라도 한마디 던지는것이 좋을듯싶어 도중에 그의 집에 들려가기로 했다.

몸살인지 감기인지 한 이틀 고열에 시달리며 앓고난 진수는 아직 미열이 내리지 않아 자기 집 서재에 누워있었다. 아래방에서는 열려진 문을 사이에 두고 문희가 재일의 꿰진 바지를 손질하고있었는데 얼굴에는 혼란되고 울적한 생각이 비쳐있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뜻밖에 남편이 여사여사한 일로 민규석으로부터 매우 유리한 청탁을 받았다는 희한한 소식을 들었었다. 이 《비밀》은 민규석이 송건호에게 알려준것이였다. 급해맞은 송건호를 시켜 어떻게 하든지 진수를 끌어당기려는것이였다. 실상 화가 복이 되는줄로 큰 기대를 갖게 된 송건호는 그사이 두번이나 사위에게 찾아와서 기자노릇을 그만두고 민규석의 청을 당장 수락하라고 집요하게 설유하고 간청했다. 그렇게만 되면 민가에게 쥐여사는 자기는 구원된다는것이였다. 그러나 진수는 드팀없이 거절했다. 그바람에 서로 모욕적인 말을 뿌리며 싸우기까지 했다.

문희는 남편이 굴러든 복을 차버리는것 같아 분하고 안타까왔다. 이날도 남편을 설복하려고 성과없는 노력을 기울이고있던 문희는 긴침묵끝에 바느질자리에서 이발로 실밥을 뜯으면서 말했다.

《생각해보세요. 당신이 민규석의 청을 거절하고 그와 싸우게 되면 당신은 물론 아버지까지 망하는거예요. 그때 가서 후회한들 뭘해요?》

진수는 듣는둥마는둥 사발에 담긴 물만 들이키고는 벽쪽으로 돌아누웠다. 문희는 또 좀이 쑤셔서 말했다.

《이번엔 나도 물러서지 않을걸요. 내가 인제 민규석에게 찾아가서 홍콩대리점에 가기로 승낙한다는것을 알리고말지 않나 두고봐요. 정말이예요.》

《아 참, 그렇게도 소원이면 어서 좋도록 하구려!》

진수는 어이없어 역설적으로 말했으나 문희는 그 말이 정말이나 아닌가 하여 얼결에 손벽까지 치며 황홀한 눈을 들었다. 그 눈은 마치도 서울에서의 온갖 골치거리는 벌써 잊혀진 악몽이고 훈풍을 맞받아 남방에로 날아가는 려객기우에서 구름갈피에 신기루처럼 비쳐오는 향락의 도시를 보는듯싶었다. 그러나 남편이 비난하는 소리에 그의 기분은 다시 흐려졌다.

안한수가 진수네 집에 들린것은 이때였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진수는 한수가 방안에 들어오자 안해가 말리는데도 일어나 앉았다. 문희는 널려있는 약과 책을 한켠으로 치우고 한수에게 방석을 권하며 말했다.

《간밤엔 고열이 났어요. 당분간은 불러내심 안돼요.》

《그렇거죠.》 하며 문희의 틀잡힌 아름다움을 일별한 한수는 앉지도 않고 동료에게 말했다.

《바쁜 길에 들렸네. 자네가 결근하길래 대신 창덕사쪽으로 취재가는 길이야. 철거반과 경찰들까지 거기로 몰려갔다는걸 보니 이젠 다된 모양이야.》

《뭐라구, 지금말인가? 경찰들까지? 그 자식들이 끝내…》

진수는 매우 놀라와했다. 그러나 더욱 긴장한것은 문희였다. 그는 이불깃을 틀어쥐고 굳어진 남편과 한수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부드러우면서도 물리칠수 없는 힘으로 남편을 다시 눕히며 타일렀다.

《가만히 누워계세요. 바람맞겠어요.》

문희는 살틀하게 굴었으나 지금 그 녀자의 가슴에는 돈벌이가 좋은 자리를 지켜 싸움에 나선 아버지의 피가 세차게 뛰고있었다. 주택철거부대가 달라붙었다면 여러 사람을 괴롭히던 그 사건도 이젠 잘되나 못되나 해결이 나는걸가. 남편이 앓아누워 그 일에 끼우지않게 된건 천만다행이지. 누가 알랴. 그 민사장이 회사의 홍콩대리점에 파견해주겠다던 약속을 지키고 남편도 말썽많은 기자노릇 그만둘 마음을 먹게 되여 문득 화려한 생활이 열릴지…

번개같이 이런 생각을 더듬어보는 문희는 희망을 잡아볼수 있다는 급작스러운 충격에 심장이 너무나 뛰여서 급히 나가는 한수에게 말 한마디도 못했다.

이런 때 진수가 벌떡 일어나며 싸움이나 걸듯 밖에 대고 소리쳤다.

《한수, 거기 좀 기다리게!》

한수는 짜증난 얼굴로 뜨락에서 멎어섰다.

《아니, 그 몸으로 뭘 그러세요. 저렇게 바쁜분인데…》

어리둥절한 문희는 남편이 이불을 제껴붙이고 급히 외출할 차림을 챙기는것을 허겁지겁 만류하며 애원했다. 그러나 진수는 어두운 시선으로 안해를 물리치고 약간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밖으로 나가 한수앞에 섰다.

《내가 가겠네. 맡아오던거니까. 사에 가서 그렇게 전해주게.》

한수는 뜻밖이여서 멍청해있다가 거부했다.

《그렇겐 안되네. 난 국장의 지시를 받았네. 자넨 앓는 몸이 아닌가?》

진수는 번쩍하는 시선으로 한수를 보더니 그의 어깨에서 사진기끈을 잡아벗겼다. 한수도 사진기를 놓지 않고 고집을 부렸다.

《하, 이런! 내가 괜히 들렸나?》

《처앞에서 안됐네만 고집부리지 말게. 자네야 그 사건을 알기나하고 이러는가.》

진수는 사진기를 기어이 제 어깨에 멨다. 한수는 창백한 얼굴로 문밖에서 입술을 깨물고있는 문희에게 너도 이런 옹고집과 사느라고 고생개나 하겠다는듯 랭소를 던지더니 홱 돌아서서 분노를 시위하듯 야단스레 쪽문을 열어붙이고 빠져나갔다.

《여보, 어쩌문 그래요!…》

문희는 울상이 되여 원망했다.

《앓는 사이에 처리되면 량심도 편할걸 너무해요. 모든걸 망칠수있다는걸 왜 몰라요!…》

진수는 대답이 없었다. 안해의 말이 정말일수도 있다. 그러나 숱한 사람들의 운명이 망쳐지는 순간에 모르쇠를 할순 없다. 그는 쪽문으로 향했다.

《여보, 좀 서요!》

문희는 급히 집안으로 뛰여들어가더니 코트와 빵을 들고 달려나왔다. 앓는 남편이라고 코트를 손수 입혀주고 주머니에 빵을 찔러넣어주었다. 이렇게 나서는 사람을 무장시켜주면서도 떨리는 손으로 남편의 손목을 잡고 마감으로 애원했다.

《이렇게 열이 있는데, 네? 제발 다시 생각해봐요!…》

그러나 진수는 쓸쓸하게 웃을뿐이다. 안해의 부드러운 아름다움이 어쩌면 이렇게도 슬플가 하고 생각한 그는 무엇인가 변명하고싶은,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말없이 떠났다. 쪽문 문설주에 의지한채 멀어져가는 남편의 고집스런 뒤모습을 지켜보던 문희의 삼시울진, 꿈꾸는듯 한 눈에 눈물이 함초롬히 실리더니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렸다.

그 순간에 그 녀자는 속속들이 절망하고말았다. 닫혀진 희망앞에 젊음은 보람없이 막을 내리고 사랑도 거짓처럼 사그라졌다. 저 사람은 한생토록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해서 자신과 함께 남까지 괴롭힐 무능한 인간, 나를 캄캄한 광속에 가두어넣은 우둔한 파수병인지도 모른다.

문희는 이렇게 극단으로 생각하면서도 남편이 권력과 부귀와 안락을 경멸하며 싸우는데는 고귀한 아름다움이 있다는것을 부정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투쟁은 비록 고귀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너무나 가파롭고 미끄러워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안락이 발을 붙일 곳이 있어보이질 않았다. 그러니 남편에게서 무엇을 기대하랴!

옆집에 건너가서 놀던 재일이 앞에 와서 손뒤짐을 지고 빤히 쳐다본다.

《엄마, 아버지 정말 나빠?》

문희는 턱밑으로 감겨드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천천히 머리를 끄덕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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