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4 장


23


문희는 시골에서 외롭게 살고있는 친어머니에게 얼마의 용돈과 함께 문안편지를 부치고 돌아오던 길에 미술가협회의 인사과에 근무하고있는 미대시절의 남자동창생을 만나보았다. 취직자리라도 물색해볼가 해서였다. 남편과는 괴로운 랭전이여서 밖에 나가 무슨 일에건 마음을 기울이지 않고서는 현상유지도 곤난한 형편이였던것이다. 그러나 문희의 옛 동창은 다방에서 체신없이 그 녀자의 대접까지 받고서도 아무런 희망도 안겨주지 못했다. 문희의 창작능력을 얕보고있는 그는 조만간에 미술을 포기하지 않을수 없는 나약한 부인으로 보고있는지 대학시절의 싱거운 추억담이나 널어놓을뿐 취직알선에 대해선 열의도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잡지사 같은데서 삽화를 그릴 자리도 당장은 있음직하지 않다는 얘기였다.

문희는 우울한 기분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집에서는 훨씬 더 괴로운 일이 기다리고있었다. 집안에 들어선 그는 아버지의 성난 눈초리에 부딪쳤다. 의자에 웅크리고앉아 긴 상아물부리를 꽉 물고있던 송건호는 의아해하는 딸의 거동을 말없이 쏘아보더니 느닷없이 랭정하게 물었다.

《너도 남편과 한편이냐?》

당황한 문희는 대답을 못했다. 부엌에서 용기의 어머니가 우그러든 함석버치를 수리하느라고 탕탕 두드리는 소리를 내더니 조용해졌다.

《부엌에서 탕탕거리는건 누구냐?》

《남편이 데리고 왔어요. 고향사람이래요. 창덕사에서 살다가 집을 잃었다고…》

문희가 혀아래소리를 하자 건호는 코바람을 불며 개탄했다.

《잘은 한다. 그 꼴에 선심까지 쓰구. 네 남편은 이 집이 제 재산인줄 아는가. 왜 대답이 없냐? 너도 남편과 한편인가 말이다.》

《네? 난 몰라요, 뭐가 뭔지…》

딸이 입술을 감빨며 조용히 도리질을 하자 송건호는 버럭 화를 내며 쏘아붙였다.

《모른다구? 그럼 넌 아직 네 남편이 이 애비에게까지 도끼질한걸 몰라? 신문에다 빨갱이들처럼 폭동을 선동해서 저 민규석이 나를 망치자고 날뛰게 만든것도 모른다고 할테냐?》

《아니, 그렇게까지?…》

문희는 벗어든 코트를 떨군채 무섭게 성난 아버지를 여전히 멍하니 바라볼뿐이다. 남편이 창덕사사건을 가지고 소동을 일으킬줄은 그 녀자도 짐작은 했었다. 그러나 아직 남편의 기사도 읽어보지 못한데다가 신문사소식도, 민규석에게서 아버지가 당한 모욕적인 재난도 모르고있는 그에게는 그 말이 무섭기만 했다.

《너를 믿어온게 잘못이였다. 네가 내 자식이라면 남편이 그따위짓 하는걸 어떻게 놔둔단 말이냐. 시골에 있는 네 에미가 그렇게 시키드냐, 계모가 원쑤돼서 그러냐?》

분노가 분노를 낳아 견딜수 없는 송건호는 딸이 놀랄 지경으로 주먹으로 세차게 책상을 때리며 소리쳤다.

《이년, 배은망덕도 분수가 있지, 제 애비 잡아먹는 놈을 남편이라고 섬긴단 말이냐? 이젠 별것 없다. 당장 리혼을 하든지, 나와 인연을 끊든지 결판을 내라. 어느쪽이냐?》

문희는 갑자기 귀가 열린 귀머거리가 소리의 폭풍에 놀라 흐느끼는듯 한 얼굴이였다. 뺨이 뻣뻣이 마비되고 입이 얼어붙는것 같았다. 아버지의 얼굴이 딴사람처럼 보였다. 깊고도 온후한 표정에 굳은 의지가 어울려 독특한 무게와 존경을 자아내던 그런 얼굴이 아니였다. 부어올라 우둔해보이는 눈까풀이며 피발이 선 눈자위, 일그러진 입가장자리에 씰룩거리는 주름살, 뜯어볼수록 눈먼 분노에 인정도, 사리판단의 능력과 균형도 다 잃어버린 암울한 얼굴이였다. 문희에게는 아버지가 쏟아놓은 말보다도 고통에 질린 그 모습이 괴로왔다. 딸구실을 못했다는 혈연적인 죄책감, 용서를 빌고싶은 강렬한 충동을 누르며 그는 자신없이 말했다.

《빌고 울어도 통하지 않는걸 어떻게 해요. 그인 판판 남이예요. 그렇게 모질게 나올줄은 나도 몰랐어요. 나도 이대론 못살아요.…》

문희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내부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붙잡는것을 느꼈다.

(내가 못할 말을 하는것이 아닐가. 남편은 그래도 크게 살고 크게 죽자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난 도와주질 못했어. 이런 사람을 버린다는건 내가 나를 버리는게 아닐가?…)

송건호는 당장 사위를 불러오라고 딸을 내몰았다. 그러나 문희는 싫은 심부름을 하지 않아도 되였다. 그가 힘없이 코트를 집어들었을 때 밖에서 쪽문소리와 함께 진수의 말소리가 들려왔던것이다.

아버지와 딸은 약속이나 한듯 창문에 드리운 창가림짬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한손에 자그마한 손짐을 든 진수가 강동혁이와 얘기를 하면서 쪽문안으로 들어서는것이 보였다. 그들의 이야기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쪽문가에서는 동혁이 진수를 멈춰세우고 시원스런 얼굴에 리지적인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활발하게 말을 하고있었다.

《글쎄, 현상만 보지 말라니까. 자네의 그 근시안적인 절망과 비관주의꼬리는 잘라버려야겠어. 불완전진화의 흔적이거던. 공허한 락관주의의 뒤면이란 말이야. 민중은 고통과 불행속에서 분노를 배우고 분노의 거센 바람은 격랑을 일으키는 법이야. 프랑스, 로씨야, 중국, 우리 나라 력사를 잊지 말게. 고통과 분노에서 대변혁의 에너지가 폭발하지 않았나. 형체없던 자유는 압제속에서 무장을 틀어쥐고 민중항쟁의 불길속에서 자기의 실체를 나타내는 법이야.》

《그건 전형적인 력사지만 질식된 왜소한 력사는 또 얼마나 많은가. 아니냐, 우리 세대는 어떤 가능성을 위한 밑거름으로 돼도 만족한거야. 자넨 오늘의 조건에서도 그 폭발이 가능하고 또 승리할수 있다고 보나?》

진수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반문하자 동혁은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안될건 또 뭔가. 우리가 4.19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뭐 그렇게 큰 승리를 미리 약속받고 했나? 싸움이 커지면서 담도 커진게 아닌가.》

소리없는 미소로 빛나는 얼굴로 동혁은 진수가 들고있는 꾸레미를 가리키며 조용히 덧붙였다.

《그 계란 가지고 왔다는 로인의 의미도 결국 그게 아닌가. 민중의 의지앞에서 사명감을 높여달라는…》

진수는 자기 집 창문을 힐끗 돌아보고나서 쓸쓸히 웃었다.

《그런데 난 랑패야. 한걸음 걷재도 처와 충돌하고 장인에게 걸려들거던. 〈민중을 위하여〉가 딱하게도 〈장인을 반대하여〉로 된단 말이야. 그 령감이 시뻘겋게 달아서 왔다갔는지도 몰라.》

진수는 손가락을 입에 대고 집안을 경계하는 시늉을 해보이며 동혁을 뜨락으로 이끌었다.

송건호와 딸이 놀란것은 잘 들리지 않는 두사람의 대화내용보다도 의례히 죄책감에 처량해보여야 할 진수가 일상적인 기분으로 동무까지 데리고 나타난 점이다. 지어는 그 태도가 확신에 차있어보일뿐만아니라 어떤 승리를 자랑하는듯 해보이는데는 속이 뒤틀리지 않을수 없었다.

방안에 들어선 진수와 동혁은 분노에 굳어진 두사람의 랭대에 당황할수밖에 없었다. 방바닥에 모로 앉아 목을 접은 문희는 일어나지도 않고 동혁이를 한번 차겁게 돌아보았을뿐 인사삼아 앉으라는 말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런가 하면 응접의자에 앉은 송건호는 어두운 방구석에 울분의 시선을 겨눈채 움직일줄 몰랐다.

놀랍기만 한 동혁은 진수에게 눈짓으로 자기는 가겠다고 알렸으나 난처한 진수는 그런대로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언제 오셨습니까?…》

진수가 한마디 물었으나 그의 장인은 큰숨을 내쉬였을뿐 대답이 없다.

《오해하신것 같은데 나로선 피할수 없는 다른 문제가 있었다는걸 리해하여주십시오.》

계란꾸레미를 방구석에 놓으며 다시 부드럽게 량해를 구했으나 송건호는 동혁을 돌아보며 큰소리를 했다.

《안됐소만 좀 돌아가줄수 없겠소? 내 이 사람과 따로 할 말이 있는데…》

모처럼 왔던 동혁은 두말없이 선선히 밖으로 나갔다. 친구에게 량해를 구한 진수는 안해를 나무람했다.

《인사쯤 해야지 않겠소.》

문희는 머리를 더욱 깊이 숙일뿐이였다. 송건호는 몹시 흥분해있으면서도 감정의 개입없이 정직한 리성으로 대한다는것을 알리려는듯 애써 조용히 떨리는 낮은 소리로 말했다.

《말 좀 해보게. 내가 자네한테 무슨 죄를 졌는가. 자네는 내가 망하는게 그렇게도 소원이란 말인가?》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창을 향해 섰던 진수는 뒤로 고개를 꼬며 말했다.

《나는 〈한일회사〉 사장인 민규석을 고발했을뿐입니다. 장인어른께서 그 회사에서 일을 보시는데 낸들 왜 난처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수백명 사람들의 운명에 관한 문제인만큼 나도 어쩔수 없었습니다.》

《어쩔수 없었다고? 네가 한짓때문에 그 민가놈이 나를 쓰러뜨리려고 날뛰는데도 어쩔수 없었다고 할텐가? 그놈은 나를 쫓아내겠다고 이를 갈고있단 말이다. 이래도 어쩔수 없었다고 할텐가, 엉?》

송건호는 벌떡 일어서며 격하여 컥컥 막히는 소리로 대들었다. 부르쥔 주먹을 부들부들 떠는것이 손찌검도 사양치 않을 태세였다. 따라 일어선 문희는 급히 아버지를 막아서며 만류했으나 남편을 돌아보는 그 눈에는 적의와 원한이 어려있었다.

장인의 험악한 모습에 놀란 진수는 할 말이 가득했으나 자기의 항의와 비판이 정당할수록 상대를 더욱 날뛰게 할뿐임을 직감하고는 고통스러운 침묵을 택했다.

《참는것도 한도가 있지, 이래도 내가 너를 사위로 남길줄 아느냐?》

진수에게 못 잊을 말을 던진 그는 딸의 어깨를 잡아흔들며 소리쳤다.

《넌 당장 짐 싸가지고 우리 집으로 들어가자. 이 사람이야 제갈데로 가라지! 가난뱅이들과 잘살라고 말이다!…》

울상이 된 문희는 아버지의 입앞에 손을 내저으며 제발 참아달라고 애원했다.

《그만, 그만둬요. 어쩌문 그런 얘기까지… 그건 아버지가 상관할 일이 아니예요.》

그 녀자에게는 아버지를 편들어 남편과 리혼한다는것은 감당키 어려운 문제였다. 아버지가 타격을 당한것은 분명 민규석이라는 악덕자본가때문인데 아버지는 그 점은 제쳐놓고 무턱대고 남편만 걸고들뿐아니라 딸의 부부관계까지 깨뜨리려고 강요하는것은 파렴치라고 생각했다.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편을 버리면서까지 편을 들어주어야 할 정도로 호감을 주는것도 아니였다.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지켜주는것을 하나의 도덕적의무라고 보고있을뿐 그 이상의 열정은 없었다. 아버지 역시 남들의 원망을 사는 자본가의 수족노릇을 하면서 돈을 버는 떳떳치 못한 사람인데다가 미운 계모와 한편이 아닌가. 이런 사정들로 해서 문희는 격분한 아버지를 거슬러 출가한 딸로서의 독자성을 명백히 보이고싶었다.

《제발 부탁이예요. 재일이 아버지와 나와의 문젠 더 얘기하지 마세요.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예요!》

사소한 모욕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는 기질인 진수는 분노의 먹장구름이 온몸에 감겨오르는것을 느꼈으나 용케도 침착히 장인에게 말했다.

《장인님은 화를 입은 진짜원인이 어데 있는지 생각할 힘이 그렇게도 없는가요? 참 우습습니다. 민규석은 권세와 자본을 가지고 장인님에게 행패질, 장인님은 딸을 가지고 나를 때리고… 어째 좀 비슷하지 않습니까. 돈이 사람을 망친단 말입니다!》

어떤 충격에 주춤해진 장인을 본 진수는 안해에게 말끝을 돌렸다.

《내가 그렇게도 당신을 괴롭힌다면 떼여버리구려 뭐, 매달릴가봐? 그런 걱정은…》

이런 때 용기의 어머니 한씨가 장지문을 급히 열며 놀란 소리를 했다.

《경찰이 왔어요!》

문희와 건호는 눈이 둥그래서 진수를 쏘아보았다. 그러나 진수는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쓸쓸히 웃을뿐이였다.

두명의 경찰이 쪽문앞에 검은 차를 세우고 뜨락으로 급히 들어오고있었다. 말코에 얼굴이 검실검실한, 키가 큰 경찰은 마루앞까지 왔다가 집바깥을 수색하려고 부엌문쪽으로 꺾어들고 반들거리는 흰 살결에 작은 눈이 독스러워보이는 보통키의 경찰은 곧바로 집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소란스럽게 엄포를 놓지도 않고 제 집이나 막역한 친구집에 들리는것처럼 조용히 사이방에 들어섰다. 자못 유쾌하기까지 한 모양, 휘파람을 휙휙 불며 반쯤 열린 장지문을 열고 서재에 있는 세사람을 피뜩 살펴보며 눈으로 냄새를 맡았다.

《허, 정진수씨, 약간 구면같기도 하고… 이 아줌마는 부인, 저분은 장인, 맞지요?》

구두발로 들어선 그는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또다시 휘파람을 불며 아래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고 겁에 질린 한씨를 살펴보았다. 이러고 나서야 진수앞에 마주섰다.

《몹시 불쾌하지요? 그러나 참아야지. 뽈은 우리가 찰 차례니까. 문전 11m벌축, 그 비슷한거지요.》

놈은 전에 어느 기자나 시위에 나선 학생들에게 걸려들어 혼쌀이 났던 앙갚음을 하려고 하는지 손가락으로 코구멍을 우비며 잔인한 미소를 흘렸다. 진수는 무엇보다도 놈의 구두발에 모욕을 느끼고 쏘아붙였다.

《여기가 돼지우린줄 아는가?》

《역시 도발이군. 골통이 성한게 답답한가?》

경찰은 맵짠 시선으로 진수를 저울질해보더니 방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먼저 서가에 달려든 그는 직업적인 날랜 솜씨로 책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한번 손에 쥔것은 제자리에 두는 법없이 방바닥에 마구 뿌려던졌다.

진수는 창을 향해 밖을 내다보았으나 의자에 앉은 송건호는 얼굴을 푹 숙이고 굳어진것이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문희는 절망이였다. 방바닥에 어지럽게 뿌려지는 책들과 경찰의 조폭한 행동을 암담한 눈길로 번갈아 살펴보는 그 녀자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에게는 생활이 온통 끝장난것만 같았다. 풀 길 없던 모순과 우울속에 드물게 차례지던 부부간의 따뜻한 웃음과 사랑의 갈증도, 남편과 싸울 때마다 불처럼 일어번지던 안락에 대한 애달픈 기대도, 실망만 더치던 미술창작에 대한 욕망도 깡그리 짓밟히고만것이다. 이제는 동무들앞에서 고민을 감추고 행복한 안해인체 했던 그 서글픈 위선조차 부릴수 없는것이였다.

남편이란 이런 사람이였던가. 모나게 살지 말라고, 세상이란 제가끔의 보금자리를 꾸리기 위한 싸움터라고 그렇게 타이르고 애원했는데도 굳이 엇서나가더니 끝끝내 사방에서 불을 맞는 미련둥이… 아, 나는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남편의 뒤모습을 돌아본 문희는 그의 온몸이 절망 그것처럼 캄캄해보였다.

밖에서 뒤지던 키큰 경찰이 야단스럽게 집안으로 들어오더니 상관으로 보이는 독사눈에게 합세했다. 둘은 책장뒤, 서랍, 화구통, 선반, 옷장, 이불속까지 발칵 뒤지며 돌아쳤다.

문희의 속옷을 뒤집고 훌훌 털어보는가 하면 문갑을 열고는 거미같은 손으로 세월의 때가 누렇게 앉은 옛사랑의 편지들까지 마구 뜯어보고 흐트러놓았다.

진수는 그들을 돌아보면서 생각했다.

(어떻게 된 놈들이기에 저렇게도 야만의 짓에 열중할수 있을가. 인간적인것이, 사색하는 힘을 주는 모든것이, 생활이 온통 화가 나고 두려운게다. 저놈들을 날뛰게 하는것은 악의 의지이기에 앞서 고립의 공포, 살아남기 위한 발악, 그것임에 틀림없다.)

진수는 담배를 피우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라이터를 딸깍하고 켜는 순간 두 경찰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몽둥이를 틀어쥔 사람의 손을 본 도적고양이의 얼굴이였다.

《라이터를 놓아!》

독사눈이 꽥 소리를 지르며 다가오더니 무기를 압수하듯 라이터를 빼앗아 뒤켠으로 던졌다. 그리고는 구석에 놓인 계란꾸레미를 집으려고 했다. 진수는 반사적으로 경찰을 밀어제끼며 엄하게 말했다.

《다치지 말아, 그건 안돼!》

그럴수록 경찰은 기를 쓰고 꾸레미에 달려들어 그것을 풀어보았다. 그 무슨 놀라운 비밀이 들어있는줄로 짐작한 모양이였다. 그러나 계란들을 보자 너무나 실망한 경찰은 저절로 턱이 떨어졌다. 놈은 뒤틀린 심보에선지 그중의 두알을 방바닥에 던져 깨여버리고는 경멸적인 랭소와 함께 꾸레미를 내밀었다.

순간 한없이 고귀한것이 모욕을 당한것을 본 진수는 가슴속에서 무엇인가 발을 구르며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떨리는 손으로 꾸레미를 치워놓은 그는 만신의 힘을 다해 주먹으로 경찰의 낯짝을 후려갈겼다. 놈은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제가 널어놓은 책무지에 걸채워 저켠벽에 뒤골을 찧고 나떨어졌다.

송건호는 쓰러져서 풀떡거리는 경찰을 겁에 질려 돌아보더니 진수를 향해 눈을 뒤솟구치며 무릎을 쳤다.

《이 우둔한것아, 이게 무슨짓이냐?》

두손에 낯을 묻고 허둥대던 문희는 진수를 출입문쪽으로 밀어가며 탓했다.

《어쩌자고, 어쩌자고… 그까짓 계란이 무언데. 빨리 빌어요!… 빌어야 해요, 빨리!》

진수는 안해를 물리치며 짜증을 냈다.

《빌다니, 바보야! 모르면 가만히나 있어!》

아무것도 알수 없는 문희는 다시 두손에 낯을 묻었다.

아래방에서 키큰 경찰이 뛰여들더니 곤봉으로 진수의 가슴을 사정없이 때렸다. 한손으로 벽을 짚고 간신히 아래방으로 넘어서던 진수는 문턱너머에 꼬꾸라졌다. 문희와 한씨가 그에게로 급히 달려갔으나 이번에는 쓰러졌던 독사눈이 한쪽뺨이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을 이지러뜨리고 달려들었다. 놈은 두 녀인을 밀어던지고나서 구두발로 진수를 마구 걷어찼다. 문희와 한씨, 송건호까지 경악하여 비명을 질렀다. 한씨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짯짯 치며 목놓아울었다.

진수의 손에는 수갑이 채워졌다. 경찰들은 몸을 가누지 못하고 터진 코언저리에서 피를 뚝뚝 떨구는 진수를 한사코 추슬러 일으키며 밖으로 끌고나갔다.

송건호는 밖을 내다볼 생각도 못하고 수라장이 된 방안에 우두커니 서있었다. 사위의 정열적인 인간상과 함께 한줄기 동정심이 그의 가슴을 때렸다. 그러면서도 사위가 혹시 불온분자인지도 모른다는 커다란 의혹이 그를 꼼짝도 못하게 하고있었다.

문희는 체포돼가는 남편을 뒤따라 뜨락까지 허둥지둥 내려갔으나 거기서 행동이 마비돼버렸다. 사랑과 배신감과 절망에 압도된 그 녀자는 진수의 참혹한 얼굴에서 피를 닦아줄수도, 목메여 그를 불러볼수도 없었다. 다만 이제는 모든것이 돌이킬수 없이 무너졌다는 하나의 생각에 몰려 어머니의 품에서 내여몰린 아기처럼 끄윽끄윽 소리를 내며 흐느껴울뿐이였다.

그러나 한씨는 열광적이였다. 다리를 절어 발을 옮길 때마다 광풍에 뒤채기는 버드나무처럼 몸을 저으면서도 경찰에게 매달리며 이런 법이 어데 있느냐고 통곡을 터뜨렸다. 천대와 고난속에 늙어온 이 녀인이 진수에 대해서 아는것이란 그가 한고향사람이란것뿐이였으나 경찰에 잡혀간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진수가 소중해보였던것이다. 원한많은 자기와 아들을 알아준 사람, 자기들과 한편이라는 본능적인 감촉인것이다. 한씨는 경찰에 떠밀려 나동그라졌다가도 다시금 절뚝거리는 걸음으로 따라가며 진수의 이름을 슬피 불렀다. 이러는 한씨를 만류하던 진수는 입안으로 흘러드는 피를 팔소매로 닦으며 소리쳤다.

《용기 어머니, 우리 집에 계셔야 합니다! 계란은 어머니께 드립니다! 꼭 자셔야 합니다!…》

그리고는 고통에 질린 얼굴로 문희를 돌아보았다. 쪽문밖에서 그는 자동차에 실렸다. 그 순간에 거리의 싸움에서 지친 걸음으로 돌아오던 용기가 그를 알아보고 뛰여오며 소리쳤다.

《진수형님!…》

그러나 진수가 그를 돌아볼새도 없이 자동차는 떠나가버렸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