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5 회


제 5 장


25


강동혁은 자기 집의 서재 겸 침실로 쓰는 루추한 방안에서 자신이 주관하는 자유동지회가 내고있는 잡지 《지열》에 실을 론설원고를 열심히 쓰고있었다.

잡지 《지열》은 인권운동의 기치밑에 사회의 식민지암흑상과 각종 범죄의 내막을 들추어 폭로하면서 파쑈적인 권력구조에 대한 반감을 고취하는 다양한 글을 싣고있었다. 그러나 이 잡지는 처음에 몇호를 월간으로 냈을뿐 그후부터는 줄곧 재정난으로 겨우 격월간으로 유지하고있는 형편이여서 일반대중속에서는 영향력이 그닥 크지 못했다. 그대신 지성인들과 대학가에서는 상당한 애독자들을 가지고있었다.

동혁이 지금 쓰고있는 정진수석방운동의 한 고리로서 당국의 언론탄압에 항의하는 이 론설은 편집중에 있는 이 잡지의 다음호에 실을 계획이였다. 그는 써놓은 원고를 거두어쥐고 방바닥에 벌렁 누웠다. 붓을 멈추지 않고 한달음에 여러매를 급히 쓰고는 숨을 돌리며 쓴것을 다시 읽는것이다. 서쪽방향으로 앉은 고서점채의 뒤켠에 ㄱ자로 붙은 살림집은 추녀가 낮아서 방안이 어둑시근했다. 안채에서 고서점으로 통하는 문이 열리더니 그의 안해 조옥림이 고객에게 팔 책을 한권 쥐고 들어서며 급히 속삭였다.

《그 지. 비가 또 왔어요.》

동혁은 원고에서 눈을 떼지 않은채 머리를 꺼떡했다. 가무슥한 얼굴이 언제나와 같이 수척한 옥림은 다시 서점으로 나갔다.

지. 비란 이 서점에 자주 오는 정보기관 요원을 암호로 그렇게 부른것이였다. 몇시간이고 서점안에 있는 쪽걸상에 앉아 서가에서 이 책, 저 책 뽑아쥐고 뒤적거리며 출입자들을 곁눈으로 열심히 살피는자다. 그놈이 아무래도 수상해서 한번은 동혁이 그자가 잘 뒤적거리는 책의 내용에 대해 이것저것 물으며 이야기를 나눠봤더니 그 부문에 대해서는 상식도 없는자였다. 책에 대한 그 거짓취미와 출입자들을 냄새맡는 그의 동정을 보고 동혁부부는 놈이 중앙정보부소속의 정보원임을 알아낸것이다.

동혁은 다시 일어나 앉아 계속 써나갔다. 어찌나 속필인지 손끝에서 글줄이 마구 쏟아지는것 같았다.

언제부턴가 그는 유력한 사회평론가로 알려지고있었다. 특별히 많이 쓴다고는 할수 없었으나 학보나 《지열》을 비롯한 잡지들에 일단 발표되는 글은 거기에 번뜩이는 지혜의 눈초리라든가 무게있는 자료에 토대한 째인 론리며 견해의 대담성과 독창성으로 해서 독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동혁은 주로는 남조선에 침투한 파괴적인 외국자본의 해독성과 사대주의자들의 반민족성을 해부하여 고발하는데 많은 힘을 돌리고있었다. 위정자들을 이러저러하게 두둔하고 감싸주는 일부 어용교수들과 언론인들에 대해서는 집요하게 따라다니며 뿔몽둥이를 내리질렀다. 그러되 그들이 낸 글이 큰 책이거나 내용도 크게 악질적이고 위험한것일 때는 반대로 고양이가 쥐를 다루는듯 한 태도로 되도록 짧은 글로써 대상을 저울대에 달아보이면서 그 반민족성과 치졸성을 랭담하게 비웃어주군 했다. 그것은 이쪽에서 상대의 글에 대해서 크게 놀라거나 분개해서 장문의 요란한 반박문을 내게 되면 괜히 독자들의 호기심을 상대에게 모아주는 역효과를 낼수도 있기때문이였다.

얼마전에 구일동박사는 《서방문화와 〈한국〉》이라는 야심적인 두툼한 단행본을 냈는데 이 책이 민족을 서방문화 특히 미국문화(미국에 자체의 고유문화가 있다는 설정부터가 사실은 하나의 웃음거리지만)의 숙명적인 노예로 만들기 위한 매우 음험한것임을 판단한 동혁은 역시 40여매의 짤막한 글로 그 책을 볼꼴없이 요정을 냈다.

그것이 어찌나 랭소적인 고자세의 단평이였던지 그를 방문한 박명찬교수까지도 무척 통쾌해하면서도 《도리깨를 휘두르는 농부처럼 너무 밀몰아 때린것이 흠》이라고 주의를 주고 간 형편이였다.

동혁이 원고의 마지막부분을 쓰고있을 때 문밖에서 그를 조용히 찾는 소리가 들렸다.

《강선생!》

동혁은 그 한마디를 듣고도 방문자가 최재명이라는것을 알았다. 얼른 맞아들인 그는 서점으로 통하는 문과 바깥출입문을 잠그고 경계신호를 하면서 재명과 마주앉았다.

지나가던 길에 잠간 보고싶어서 들렸다는 풍채좋은 재명은 되도록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쓰고 왔던 모자와 색안경을 벗어놓고는 일간신문의 분주한 간부답게 수면부족으로 피로해보이는 눈을 빛내며 동생의 집에 오래간만에 들린 형처럼 부드럽게 미소했다. 방안이 비좁을 정도로 몸이 좋은 그는 모양없이 커다란 낡은 서가에 무질서하게 가득 실린 책이며 아이들의 손때에 덞어진 볼품없는 가장집물들을 둘러보면서도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계속 해대는군. 어델 또 때리자는건가? 어디 좀…》

재명은 원고에 손을 내밀었다. 동혁이 내주는 원고에서 《언론부재는 악몽인가?》라는 제목을 보고 물었다.

《또 진수에 대한 지원인것 같군.》

《그렇습니다.》

재명은 원고를 뒤적거리며 글의 체계와 내용을 훑어보는데 곁에서 지켜보는 동혁은 어떤 평을 받을지 마음을 쓰는 얼굴이다.

그들이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4.19봉기로 절정을 장식한 학생투쟁이 일어나던 이른봄이였다. 대학생들의 중추적인 지휘자의 한사람이였던 동혁은 경찰서 류치장에 몇번 갇힌 일이 있었다.

어느날 모진 고문으로 빈사지경에 처한채 지하실감방에 던져진 그는 거기서 인상적인 한 수인을 만났다. 잔등과 어깨에 벌겋게 피가 내돋고 얼굴에도 여러 군데 죽은피가 꺼멓게 말라붙은 수인은 인생에선 아무것도 놀랄것이 없다는듯 빙그레 웃더니 아기를 잠재우는 어머니처럼 동혁의 머리를 자기의 무릎에 얹고 간호해주었다. 그가 최재명이였다. 이미 일가견을 이룬 지식인으로서 불혹의 40대에 이른 최재명은 억울한 피고들을 위해 싸울줄도 아는 유명짜한 변호사였다. 그는 무소속인사들과 함께 리승만통치를 반대하는 자그마한 반《정부》적인 조직체의 한 성원으로서 혁신운동에 참가하고있었다. 그러다가 학생투쟁의 거류를 만나게 된 그들은 학생들의 투쟁에 사회세력을 합류시키기 위한 몇가지 운동을 벌렸는데 그만 변절자가 생기는 바람에 주모자이하 여러명이 가혹한 탄압을 받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동혁은 경찰서 류치장에서 최재명을 사귀게 된것이다. 동혁은 재명이보다 나이도 10여살이나 어렸으나 같이 겪은 시련은 그들을 친구처럼 만들었다.

류치장에서의 그들의 인상적인 교제는 동혁이 바깥동료들의 격렬한 투쟁으로 먼저 석방되는 바람에 곧 끝나고말았다. 그러나 동혁은 불과 한달도 채 기다리기 전에 그를 다시 만날수 있었다. 처음처럼 역시 우연히 만났다. 학생투쟁이 치렬한 폭동으로 번져간 4월 19일 한낮에 폭동자들의 일부는 경찰서의 무기고를 습격하다가 여러명이 사살된 일이 있었다. 격전장의 투사로서 맹활약을 하던 동혁은 잠시 시간을 내여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희생된 한 고등학교 학생의 장례식에 참가했는데 거기서 최재명을 다시 만난것이다. 그것도 희생자의 관앞에서 입술을 깨물며 흐느껴우는 그를.

석방된지 사흘이라고 했다. 그무렵은 경찰서의 류치장이 체포된 시위자들로 립추의 여지없이 초만원을 이루고있어서 당국자들은 건별심의를 할수도 없었던데다가 권력자들전체가 극도의 공포에 싸여 쩔쩔매고있었던 때여서 재명도 예상외로 빨리 석방된것이다. 헌데 동혁이 장례식에서 큰 충격을 받은것은 전사한 학생이 다름아닌 최재명의 맏아들이라는 점이였다. 재명은 너무 울어서 눈이 새빨갛게 충혈되고 퉁퉁 부어있었다.

동혁은 그날 대부분의 학생들과 지식인들인 많은 조객들앞에서 그들의 심금을 울린 의미심장한 조사를 하였다.

그가 조사를 끝냈을 때 재명은 자신의 처지마저 잊고 그의 어깨를 안으며 말했다.

《고맙소! 아픔이란 이렇게도 많은 힘인걸…》

두사람은 그후 계속 우정을 키웠다. 장면《정권》시기에 변호사일을 포기하고 ㄷ신문사에 입직한 재명은 곧 편집국 부국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섰다. 동혁은 그의 이러한 《출세》를 처음에는 사상적타락의 표현으로 보았으나 속내를 알고보니 꼭 그런것도 아니였다. 재명은 신문사에서 권력의 시녀노릇을 하는 위달종편집국장을 비롯한 몇몇 악질적인 기자, 편집원들에게 능숙하게 제동기를 걸고있었고 반《정부》적인 기분을 가진 많은 지성인들의 숨은 지휘자로 활동하고있었다.

그는 바쁜 사람이여서 동혁과는 드물게 만나군 했다. 그러나 동혁은 그를 만날 때마다 새로운것을 느꼈고 배웠다. 생각이 깊고 내부에 무엇인가 커다란 자부심을 지닌듯 한 그는 울분을 못이겨 무모한 행동을 할 위험성이 있는 동혁의 사고방식을 정돈해주기도 하였고 사람들을 규합하는 방법도 가르쳐주었다.

그들의 남다른 관계는 그후에 벌어진 투쟁속에서 더욱 깊어져서 마침내는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친구로 되였다. 동혁은 모든 투쟁에서 재명의 숨은 지도를 받았다. 합법적인 사회단체인 자유동지회를 조직하고 잡지 《지열》을 내게 된것도 재명으로부터의 방조가 컸었다.

재명은 동혁의 원고를 끝까지 훑어보더니 흥취없는 얼굴로 원고를 돌려주었다.

《안되겠어. 이런걸 어데다 내려는건가?》

동혁은 악평에 실망하면서도 서점에 정보원이 와있다는것을 알려주고는 힘없이 대답했다.

《잡지에 냈으면 하는데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습니까?》

재명은 킬킬거리며 웃더니 동혁의 눈을 똑바로 마주보며 말했다.

《오늘은 전혀 자네같지 않군그래. 유도8단이 무단으로 떨어졌어. 글이 칼 같으면 뭘 하나. 나는 정진수의 고무자니 날 체포해주시오, 이런걸 고백하자는건가? 놈들이 피눈이 되여 날뛰고있다는걸 계산하면 결과는 명백하지 않을가?》

동혁은 어느 정도 수긍이 가면서도 동의할수는 없었다.

《난 선생이 그 완만성과 소극성에서 벗어났으면 하는데요. 큰 죄악에는 큰 몽둥이를! 이것이 옳다면 다른 피해는 사소한것이 아니겠어요?》

《추상론이야. 놈들이 기관총을 란사하는데 꼿꼿이 서서 내달리다가 쓰러질셈인가? 이런 때엔 기여서 톺아나갈줄도 알고 우회하여 뒤통수를 때릴줄도 알아야지. 진수가 귀중할수록 이런 글에서는 모르는체 해야 하고 주제도 전혀 다른 측면에서 강조할수 있지 않을가? 이따금 이렇게 과격하게 겉멋을 피우는게 탈이거던.》

재명은 동혁이 생각에 잠긴것을 보고는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자유동지회만 해도 그렇지. 견해가 각이할수록 좋지. 그래야 뼈대가 있는 말도 섞어할수 있거던. 무리하게 주장하다가는 좋지 않을거요. 새끼를 보호할줄 아는 비둘기도 자기의 보금자리가 눈에 띄지 않게 꾸릴줄 알거던. 이 점 강조하고싶던 말이요.》

재명은 소리없이 웃으며 주먹으로 동혁의 무릎을 탁 쳤다. 동혁은 따라웃으며 선선히 수긍했다.

《이거 또 순식간에 한꼴 먹었군요.》

그들은 당국의 언론탄압과 학원침해를 비롯한 몇가지 만행에 대하여 다양한 방법으로 타격을 가할데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그런데 내 전에도 말했지만 량성도를 조심해야겠어요.》

재명은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제 혼자서 진수를 석방할듯이 떠들고 다니는데 속히우지 않도록 진수군에게도 후에 잘 귀띔해줘야겠어요.》

동혁이 물었다.

《량성도가 미국의 고등첩자라는 판단에는 변함없어요?》

재명은 확신한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요즈음에도 경향이 주목되던 중간인사들이 여럿 체포되였는데 대부분이 량성도와 휩쓸렸던 사람들이였다. 아무데나 푸접좋게 코를 들이미는 그 기질, 겉으로 풍기는 좌익냄새, 체포사건이 있을 때마다 짓는 비극배우같은 표정… 이런것이 다 첩자의 기질이라고 했다. 신문이 정간되고 진수가 체포됐을 때에는 밤잠을 못 잤다느니, 공보부 장관을 비틀어 죽일놈이라느니 하면서도 《미국위인전》의 련재물을 계속 써낸 량성도였다. 하여간 괴물이였다. 예상외로 호화생활을 하는가 하면 녀자라면 체면도 가리지 않았다.

재명은 말을 이었다.

《그놈때문에 난 신문사에선 철저히 보호색을 띠고있어야 하거던. 진수에 대해서도 애정을 숨기고 일체 무관심한체 해야 하거던. 알겠소? 내가 진수를 자꾸 자네에게 부탁하는 원인을…》

두사람은 한동안 묵묵히 생각에 잠겨있었다. 밖에서는 아이들이 공차기를 하느라고 벅적 떠들고있었다. 공이 몇번이나 창문에 와서 부딪치고 여럿이 맞붙어 싱갱이를 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하나가 빌빌 울어댔다.

《보시건대 진수가 어떻습니까?》

동혁이 불쑥 묻는 말에 재명은 실눈을 짓고 말했다.

《어떻고가 있나. 자네의 배필이지. 흠은 마음이 너무 맑은거요. 자기를 감출줄 몰라요. 지금도 아마 짐승같은 놈들앞에서 론리를 캐면서 자존심경쟁을 할지 몰라. 그러니 얼마나 시달리겠소.》

동혁은 가슴이 아팠다. 진수가 겪고있을 고통을 생각하니 죄스럽기만 했다.

재명은 자유동지회를 운영하는데서 주의할 몇가지 문제를 강조하고는 자리를 일었다. 그는 배웅해주려고 따라나서는 동혁을 문안으로 밀어넣으며 서점에 와있다는 첩자를 경계하는 눈짓을 했다.

동혁은 잠시 최재명의 인간성을 두고 생각했다. 깊은 사색에서 오는 가식없는 짧은 말에 담겨진 의미심장한 여운, 실제적이고도 부드러운 성격미, 많은것을 기대하고싶은 사람이였다.

진수는 마음이 맑아서 자기를 감출줄 모르는것이 흠이라던 재명의 말이 귀에 따갑다. 비록 지나간 일이지만 여러해나 진수를 타락하고 변절한자라고 속단한것은 얼마나 잘못인가. 혼란했던 4.19직후에 진수가 장면《정권》에 대해 환상을 품는 과오를 범했다고 해서, 그가 대단치도 않은 기업가의 딸과 결혼했다고 해서 부르죠아의 진지로 가버린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적대시한것은 얼마나 근시안의 속견인가. 과오와 변절을 가려볼줄 몰랐으니 나는 얼마나 눈이 어두웠던가.

동혁은 방바닥에 엎드려 오래도록 자신을 꾸짖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