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8 회


제 5 장


28


진수의 간절한 소원은 땅우에 몸을 던지고 실컷 잠들었으면 하는것이였다. 어지러운 진창이라도 좋았다. 다만 한점의 나무그늘이 빛을 가리워주는 곳이라면 아무데라도 몸을 던지고 잠들고싶었다. 그러나 맥을 놓고 몸을 던지는데도 땅이 그를 받아주질 않으니 이런변이 어데 있나. 가슴은 땅을 향해 떨어지는데 지표면전체가 수레바퀴 돌듯 끊임없이 따라돌면서 그와의 거리를 좁혀주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도 그림으로 그려진, 배고파서 열매가 주렁진 과일나무로 달려가는 사람이 그 자세로 영원히 굳어진채 한알의 열매도 입에 넣을수 없는 괴로운 상태와도 같았다.

문득 씹어뱉는듯 한 야멸찬 고함소리가 안개처럼 혼돈된 흐린 정신을 찔렀다.

《이 쌍, 말라비틀어진 늙다리를 그저… 야, 야, 이 장작개비가 낯이 익어? 이걸로 순경을 때렸단 말인가, 엉?》

겁을 먹은듯 한 목소리가 더듬으며 대답했다.

《그, 그렇소. 그, 그걸로 순경놈을 죽어라 쳤습지요.》

진수는 가느스름하게 눈을 떴다. 얼굴을 쏘아대는 백광의 불빛 저편에 두 인간의 희미한 모습이 보인다. 건장한 사나이가 꿇어앉은 체소한 백발의 로인을 장작개비로 마구 때리며 고함을 쳤다.

《에-이, 귀신 같은것. 누가 널 시켰어?》

로인은 장작개비로 란장을 맞자 몸을 틀며 반사적으로 흠칫흠칫하더니 새우처럼 옹송그린채 쓰러져서 팔다리를 바들바들 떨었다.

이 처참한 광경을 본 진수는 그제서야 자신이 경찰서 류치장에 괴롭게 서있는것을 깨달았다. 그는 고문실의 한쪽구석에 세워진 쇠기둥에 묶이운채 커다란 조명등이 쏘는 백광을 얼굴에 받으며 벌써 며칠째나 밤낮으로 시달리고있었다.

온몸의 피가 아래로 쏠려 다리가 터질듯 저리고 주위가 온통 소용도는 물결을 탄듯 기우뚱거리며 빙빙 돌았다. 사정없이 쏘아대는 백광은 눈을 감아도 형체없는 무수한 바늘처럼 시신경을 찌르고 들어와서는 다시 독이 어린 무수한 불꽃으로 변하여 모든 생각을 잘디잘게 토막을 내며 끊임없이 내부에 흘러퍼져 재글거리며 모든 감각을 쪼아먹고있었다. 게다가 각성제주사를 찔러대는 바람에 며칠째나 잠들지 못해서 골은 조여드는 압착기에 끼운것처럼 아팠다.

진수에게는 자신의 이런 상태가 수개월이나 계속되여온듯 한 느낌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3일밖에 되지 않았다. 네댓번 고문을 당했으나 이번이 제일 고통스러웠다.

맞선보기라고 볼수 있는 첫 심문은 류별나게도 경찰서의 형구창고속에서 당했는데 그를 맡은것은 중키에 얼굴이 희멀끔하고 목소리와 거동에 애써 지성인냄새를 풍기려드는자로서 겉보기에도 만만치 않았다.

정보과의 내근형사 독고천이라고 자기소개까지 한 그는 어둑시근한 형구창고속에 진수를 끌고 들어가더니 구석에 놓인 의자를 권하면서 말했다.

《조용한델 찾다보니 이거 안됐소그려. 난 원래 관상학과 심리학전문이라서 첫인상에 벌써 당신이 그럴듯한 정의파란걸 판별했지요. 정당해요. 그렇지만 때를 잘못 만났지요. 모든 수난자들의 불행도 그 시기 선택과 관련되는거니까…》

《이거 좀 추운데 화형을 시키든지 뭘 좀 서둘러줬으면 하는데, 엉?》

진수가 담담한 얼굴로 빈정거리자 독고천은 차겁게 웃으며 그를 뜯어보더니 벽으로 다가가서 전등을 켰다. 창고안이 밝아지면서 여러단을 이룬 선반우에 실린 각종 고문도구들이 환상적인 옛말에 나오는 악마들의 동굴안에 차려있는 흉기처럼 섬찍하게 살기를 풍기며 두드러져 나타났다.

《참 안됐소만 이게 현실이란 말이요.》 하고 독고천은 박물관 해설원이 진렬품을 소개하는듯 한 태도로 말했다.

《알고있겠지만 당신한테는 투쟁을 선동했다는 죄가 붙어있더군요. 하긴 뭐 뇌수기능의 실수정도로 볼수도 있고 반대로 대역죄로 확대해볼수도 있겠죠, 요는 처신여하에 달렸거든요. 그건 그렇고, 이 고문도구들을 좀 보시오, 인간들이란 얼마나 독한지…》

진수는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으려고 했으나 문득 허리로부터 차거운 파충류 같은것이 목덜미로 기여오르는듯 한 느낌이였다. 이 한줄기 공포는 곧 드센 자존심과 충돌해서 모욕을 받은듯 한 불쾌감이 피를 설레게 했다.

《당신들은 이런 흉기따위나 만들어내겠지. 그런데 발톱이 날카로운 동물일수록 사색하는 힘은 막혀있다는걸 아는가요?》

독고천은 매눈이 되더니 곧 긴장을 풀며 제 말을 이었다.

《약속해두겠는데 당신이 솔직히 나오면 나는 당신의 터럭 하나 다치지도 않을게고 처분도 관대하게 내리겠소. 그러나 엇서고 숨기려고 할 때엔 참대바늘로부터 저 십자형틀에 이르는 숱한 고문도구들로 미안한대로 당신을 초쳐놓은 해삼탕으로 만들수밖에 없겠죠.》

이때 와이샤쯔바람의 다부지게 생긴 사나이가 급히 들어서더니 고문도구들을 이것저것 뒤져보며 독고천에게 말했다.

《그 고급기능공인지 하는 자식 보통이 아니군. 눈깔이 튀여나오게 만들어야지.》

그리고는 통속에 무엇인가를 담아들고 뛰여나갔다. 독고천은 진수의 우울한 기색을 슬쩍 살피며 말했다.

《저렇다니까, 자, 그래서 말이요. 일이 꼬이게 되면 정보부로 이관될수도 있는데 거기라고 뭐 교향악단이 놀아대는것도 아니고 여기보단 아무래도 더 험악하거든요. 그리고는 피를 바작바작 말리우는 법원출입과 감옥, 교수대… 난 이런 코오스를 밟지 않도록 하자는건데 피차 심사숙고합시다요.》

첫 심문이 이런 식이였다면 그 다음부터는 본색을 보다 더 철저히 드러낸것이였다.

독고천의 심문은 창덕사사건이 어찌하여 《계급투쟁》을 선동하는 자료로 《악용》되는가 하는것이였다. 회색와이샤쯔차림인 그는 심문실에 놓인 탁자를 사이에 두고 진수와 마주앉아 기름기가 함치르르한 반고수머리를 비닐빗으로 연신 빗어넘기며 따지고들었다.

《글쎄, 창덕사부지에서 살던 사람들이 밀려난것이야 그닥 아름답진 못하겠지. 그렇지만 민규석씨나 국가기관이 법을 어긴것도 없지않소. 그런데 왜 당신 눈엔 합법행위를 한 사람들이 강도나 식인종처럼 보이는가 말이요, 엉?》

진수는 흑백을 전도하는 이런 몰렴치에는 론의의 가치도 없다고 보았으나 어차피 입을 열지 않을수 없었다.

《그따위 만행이 합법이라면 비법과 합법의 차이는 뭐요? 하나 묻겠소. 만약 당신의 부모처자에겐 죄가 없는데도 어떤자가 법의 이름으로 달구지 같은데 실어다가 한강물에 차넣는다면 그런 경우에도 당신은 침착하게 앉아 머리에 빗질을 할수 있을것 같소?》

독고천은 눈찌가 사나와지고 아래턱이 삐뚤어지더니 탁자우에 놓인 목침같은 나무토막으로 진수의 어깨를 마구 내리찧으며 소리쳤다.

《이 새끼, 여기가 너의 안방인줄 아느냐? 혀바닥을 그저!… 기와집에서 곱살한 녀편네까지 끼고 빈둥거리는 자식이 뭐가 답답해서 한사코 란동질이야. 책개나 읽으면 엇서야 맛인가? 어리석은 자식, 너따위가 뭘 정치에 손을 뻗쳐. 참, 기가 막혀서… 삶은 소대가리가 웃겠다.》

상대를 모질게 조롱하려는 갈망에 달아오른 독고천은 분노에 푸들거리는 얼굴을 외로 꼬며 파랗게 면도한 턱을 추켜들더니 앙다문 이짬으로 새진 소리를 내며 짤막하게 웃어댔다. 그러더니 마치 자기가 옹호하는것은 흥정할 여지도 없이 신성한것이여서 그것을 모욕하는자와는 마주앉기만 하여도 너무도 화가 나고 수치스러워 몸뚱아리의 생리작용마저 엉클어져 고통스럽다는듯이 토할것처럼 목을 씰룩거려 푹 썩은 트림을 하더니 더욱 맵짜게 을러멨다.

《야, 임마, 뭐 권력과 결탁한 자본은 그자체가 범죄라구? 피는 보복을 어쩌구, 상층에 대한 하층의 조직적인 반타격이 어쩌구어째? 그따위 공산나발은 어디서 배웠어? 너를 쑤셔대는 놈이 누구냐? 내게 걸려드는 놈은 염통까지 쪼개보이기 전에는 놓여나질 못해!》

독고천은 이런 조로 삼십분간이나 침방울을 튕기며 달려들었다. 그러나 진수는 이따금 랭소로 마주볼뿐 고집스레 침묵으로 대했다. 그러다가 상대가 하두 집요하게 비틀어대는 바람에 이런 경우엔 아무 리득도 없는 항의를 하고말았다.

《여보시오, 철부지아이들도 미운 놈 만나면 모여들어 몰아치는데 그것도 당신 눈엔 계급투쟁인가? 리재민들을 편든것이 범죄라면 진짜 범죄자들을 비호하는자들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하는가? 당신도 아이적에 따뜻한 젖을 한방울이라도 먹었다면 량심정도는 흉내낼줄 알아야지, 부끄럽지도 않소?》

그는 상대를 경멸적으로 쏘아보며 덧붙였다.

《경고하겠소. 그따위로 없는 죄를 만들어 씌우다간 당신자신이 편안치 못할거요. 틀림없이 숱한 기자들이 당신의 뢰물행위나 만행을 집요하게 들췄을거요. 그날에는 모든 신문과 잡지들이…》

독고천은 더는 들을수 없다는듯이 고함을 지르더니 탁자모서리에 붙어있는 신호단추를 눌렀다. 곧 얼굴이 시뻘건자가 뛰여들었다. 독고천은 진수를 그자에게 맡기며 말했다.

《이 량반이 체조를 좀 하고싶다는데 도와주게.》

진수는 고문실로 끌려내려가서 모진 매를 맞지 않으면 안되였다.

이런 방식의 문초가 두어번 있은 뒤엔 한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호출도 받지 않은채 만행을 치른 류치장구석에 박혀있었다. 진수는 놈들이 너무도 오래동안 자기를 찾지 않아서 어떤 엄청난 꿍꿍이를 벌리고있는것이나 아닌가 하고 날이 갈수록 더욱 마음을 조였다. 그러나 실상은 당국자들이 당황하고있었다. 진수가 체포된이래 언론의 위기와 함께 민중에 대한 관권의 횡포에 대하여 더욱 절감한 적지 않은 지성인들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가해자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있었다. 강동혁이 주관하는 자유동지회 성원들을 비롯하여 학계의 많은 학자들은 권력과 자본의 횡포가 빚어낸 사회악을 예리하게 진단하는 분석적인 평론들을 부지런히 써냈다. 여러 신문들과 잡지들은 정진수를 옹호하면서 민규석과 권력과의 흑막거래의 내막이며 경찰들의 각양각색의 만행과 부정행위의 진상을 폭로하면서 끈덕지게 집중공격을 들이대고있었다. 결국 당국자들은 진수를 붙잡고있는것이 리롭지 않을뿐아니라 여차하면 사태를 돌이킬수 없이 그르치는 결과를 빚어낼수 있다는것을 타산하지 않을수 없었다.

진수는 곧 석방될수 있었다. 그러나 경찰서는 진수를 석방하는 경우에도 그의 의지를 마비시키는것을 양보할수 없는 의무로 여기고있었다. 그런데다가 공보부 차관이라는자는 출입기자들에게는 진수가 무사히 풀려나오도록 성의를 다하겠노라고 몇번이나 약속을 하고서도 돌아앉아서는 경찰서장에게 정진수같은 문제아가 반란적인 뿔을 그대로 가지고 언론계로 복귀한다는것은 생각할수도 없는 일이니 어떻게 하든지 그의 골통을 바스어달라고 몇번이나 전화와 문건으로 《조언》을 주었다. 거기에 또한 자기에게 걸려든자는 죽음이 아니면 굴복을 택하게 해야 한다고 보는 독고천이라는 악마가 버티고있었다.

이렇게 되여 진수는 벌써 3일간이나 고문실의 기둥에 묶이운채 백광을 쏘는 조명등에 시달려야 했다. 이제는 기력과 함께 시력조차 마비되여 그 높은 촉수의 조명등이 반들거리는 커다란 검은 접시처럼 보였다. 검은 접시는 하나의 점으로 아득히 멀어지는가 하면 어느새 커다란 검은 접시의 무리로 되여 눈앞에서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아가며 그의 흐릿한 토막생각과 모든 감각마저 마비시켰다. 진수는 의식이 점점 희미해지는것을 느꼈다. 창백한 얼굴을 가슴에 드리운 그는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한줄기의 불안한 느낌과 함께 땅우에 몸을 던져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자연계로 돌아가고싶은 갈망을 느꼈다.

《그래 순경을 때려죽이곤 어쩌자는거냐? 주동질한건 누군가 말이다. 죽여치우기 전에 대지 못하겠어, 엉?》

이런 악다구니소리가 들려와서 그는 간신히 눈시울을 열어보았다. 몇분전의 광경이 꿈장면처럼 흐릿하게 보인다. 바닥에 쓰러진 백발의 로인과 장작개비를 틀어쥐고 문초하는 거구의 무서운 사나이, 쓰러진 로인이 피투성이의 얼굴을 이그러뜨리고 갈린 목소리로 중얼거리듯 대답했다.

《〈죄〉를 짓고싶어서… 감옥에 오래오래 갇히고싶어서 때렸다는…》

《참, 별일도. 내 원, 이런 미치광이는 또 처음이군.…》

고문하는 사나이는 쭈그리고 앉아 로인을 찬찬히 살펴보더니 피가 얼룩진 장작개비로 흰 수염이 부시시한 로인의 턱을 툭툭 건드려보았다. 그러더니 로인을 질질 끌고 문밖으로 나갔다.

진수는 2~3일간 자기의 눈앞에서 여러 사람들이 번갈아 고문을 당하는것을 보았으나 지금 끌려나간 로인같은 수인은 처음이였다.

어떻게 감옥을 스스로 원할수 있단 말인가? 아마 벗어날 길 없는 무서운 괴로움이 있어서 고의로 순경을 때리고 감옥살이를 택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흐릿한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있던 진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거듭 들려와서 겨우 다시 눈을 떴다. 검은 안경을 낀 독고천이 쪽의자에 불빛을 등지고 앉아 담배연기를 날리며 다시 묻는다.

《어떻게 할텐가, 시말서에 지장을 찍고 래일이라도 풀려나고싶은가 아니면 이런 고문을 계속 받다가 교도소로 넘어가는쪽을 택하겠는가?》

진수는 불쑥 화가 치밀어 목청껏 소리치느라고 했으나 실제로는 겨우 들리는 속삭이는 소리로 말했다.

《나가고싶다. …무조건 석방하라!…》

독고천은 벌떡 일어나며 곤봉으로 진수의 배허벅을 때렸다.

《이 새끼가 아직도 살았어. 누가 견디나 보자. 다음번엔 일주일을 이 꼴로 비끄러매둘테다.》

놈은 이렇게 소리치며 신경질적으로 조명등을 끄고는 진수를 기둥에서 풀어주었다. 진수는 순간에 체중이 감당할수 없이 몇십배로 무거워지는듯 한 느낌과 함께 칠흑같은 어둠속에 세상만사를 잊어버리고 맥을 놓고 나동그라졌다. 그리고는 순간에 깊은 잠속에 빠져들었다. 담가에 들려 류치장에 옮겨지는것도 알지 못했다.


진수는 식사시간마다 누군가 음식물을 입에 떠넣어주는것을 겨우 받아먹으며 30시간가까이 죽은것처럼 자고나서야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회복된 그는 자신의 참을수 없는 처지를 생생히 느끼는것과 함께 심해지는 마음의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이미 여러해전인 4월봉기의 나날에 대학생으로서 첫 류치장살이를 체험한 그에게는 이번의 고통이 새롭지 않았다. 그러나 첫번째보다는 몸과 마음이 비할바없이 지쳐있었다. 처음으로 류치장을 체험한 그때에는 그래도 온 거리에 파도치던 봉기한 대중의 전위로서 추악한 권력기구를 일대 혼란에 몰아넣었다는 투사의 자부심과 만족감을 가질수 있었다. 뿐이랴. 그가 체포된것을 그렇게도 가슴아파하던 아름다운 련인(문희)의 눈물과 사랑이 있었다. 또 그때는 수많은 동료들과 함께 체포됐으므로 불행 같은것은 오히려 호기심의 대상으로 우습게 보는 든든한 집단의식이 있었던데다가 야심만만한 호협한 청춘으로서 새로운 궤도를 찾아 뛰여오르기 위해서는 생명을 모험하는것도 하나의 멋이라는 랑만적인 기분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중의 어느것도 없었다. 이미 세상의 뒤란길까지 다녀보며 각양각색의 비밀의 장막까지 들쳐본 중년기에 이른 그는 사회의 모순을 깊이 깨달음에 따라 격분도 하고 죄많은자들에게 도전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이란 속속들이 더럽혀지고 병들어서 개조하기에는 너무도 늦었다는 절망감도 그만큼 강했다. 그런데 진수의 경우 이 절망감은 육체적힘까지도 마비시키는 혹심한것이였다.

괴로운 나날, 그는 악취나고 추운 류치장의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비좁게 들어찬 각양각색의 수감자들을 멍하니 바라보며 암담한 마음으로 자신을 생각했다.

(나는 제 가정 하나 제대로 정돈하지도 못했고 무슨 일 하나 이룩한것도 없다. 안해는 딴마음 먹고있는것이 확실하다. 그 녀자는 습관의 힘에 끌려 생색이나 내듯 부부생활을 할뿐 자기의 앞길이 막연하고 추문이 두려워서 나를 버리지 못하는것이 아닐가. 자기 아버지가 아무리 민규석의 밑에서 돈을 번다고 하더라도 그 민규석의 죄행을 공격한 남편을 그렇게도 적대시할수 있단 말인가. 어찌하여 생활의 터전마저 잃어버린 숱한 령세민들의 불행앞에서 내가 다르게는 행동할수 없었던 고통스러운 사정을 보려고 안하는가.)

진수는 이런 생각에 잠길 때면 홍콩대리점이라는 민규석의 미끼를 받아물어야 한다고 떼를 쓰던 문희며 불쌍한 김용기네를 집으로 데리고 왔을 때 선뜻 반겨주지 못하던 문희를 회상했다. 혹은 가난뱅이들과 잘살라느니 하면서 모욕적으로 리혼을 강요하던 장인이며 체포되여 끌려나오던 자기앞에서 생소한 남남끼리인 용기의 어머니가 터뜨린 그 처절한 통곡과는 대조적으로 랭담하던 장인이며 다만 자기 파탄이 괴로와 눈물을 흘리던 문희의 모습이 피할 길 없이 육박해왔다. 그것은 류치장의 속박을 몇갑절이나 괴롭게 만들었고 고문실에서 당하는 모욕과 맞는 매를 참을수 없이 아프게 만들었다.

그러나 진수의 가장 큰 고통은 죄많은자들과의 싸움에서 자신이 너무도 무능하다는 그 점이였다. 그 정도의 글로 철창속에 갇혔다면 무슨 싸움을 할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압제자들을 제압할수 있는 싸움의 방략도 수단도 없지 않은가? 이 회의심은 그의 의지를 갉아먹었고 그를 둘러싼 압제자들의 포위망을 사실이상으로 견고한것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심한 피로감을 느낀 진수는 두팔로 싸안은 세워짚은 무릎에 이마를 얹고 눈을 감았다. 밖에서는 간수가 옆감방의 수감자들에게 악다구니질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바람에 감방에서 끼리끼리 떠들던 수감자들은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런데 진수의 바로 앞에 앉은 두사람은 목소리를 낮추어 아까부터의 대화를 계속했다.

빈약한 조개턱에 노르끼레한 서너오리수염이 볼성없이 돋은 체소한 사나이가 고문에서 3대나 부러져나간 이발그루터기를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더니 살결이 가물치처럼 검고 반들반들하고 곰처럼 우악스럽게 생긴 둥실둥실한 사나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에 참, 뭘 미루겠다고 그러슈. 나가면 네댓새후에 제꺽 해치우자는데.》

거구의 사나이가 손등에 털이 부르르한 커다란 손으로 앙증스럽게 생긴 납작코의 코끝을 습관적으로 주무르며 갈린 목소리로 의문을 표시했다.

《넨장 조급하긴… 그놈 집구조가 문제야. 몇번 정찰해서 휑 꿰들어야지.》

체소한 사나이가 불평을 했다.

《구조야 뭐, 내가 작년에도 인천 너구리패들과 두번이나 뚫고들어가서 성공했다는데. 팔십만원이나 널름했지. 그땐 힘들게 지붕밑으로 들어가서 락하산식으로 했지만 다른 길도 있지.》

그는 괴춤에서 손때가 까맣게 묻은 대추씨만 한 물건을 꺼냈다. 그것은 밥알을 으깨고 짓이겨 만든 《밥알칼》이였다. 그 《밥알칼》로 세멘트바닥에 략도를 그리며 말했다.

《이게 계집년의 목욕탕이고 여기로 공기창을 따고 들어가면 이게 응접실 뒤방으로 가는 복도고 여기서 왼쪽으로 꺾으면서 그 가재수염의 침실이라는데. 밤 세시쯤 해서 얏! 꼼짝말앗! 그 다음은 스리슬슬… 히…》

《음, 생각해보지. 너무 서두를건 없이 골을 써야지. 아차하면 또 이 꼴이다.》

거구의 사나이가 그닥 탐탁해하지 않는 눈치인것을 보자 이쪽은 다가앉으며 속삭이였다.

《형님의 그 비겁성엔 간이 싹싹 마른다니까.…》

이때 누군가가 그들을 나무람했다.

《거 무슨 끔찍스러운 소리들을 하고있소, 원 참.》

순간 거구의 사나이는 메돼지를 본 호랑이같은 눈으로 비난자쪽을 돌아보더니 마디마디 씹어뱉듯 위협했다.

《그게 어떤 새끼야? 주둥이를 그저. 뭐, 끔찍스럽다구? 야, 임마, 청와대 왕초는 나라까지 팔아먹고도 떵떵거리는데 내가, 이 무관제왕이 부자놈 금궤쯤 털어먹는게 뭐가 끔찍스럽단거야, 엉? 저 자식 박가놈의 코물을 빨아먹었나, 미친개에게 물렸나?》

풀무질소리처럼 몹시 쉑쉑거리는 그의 갈린 목소리는 연마지로 고막을 사정없이 문지르는것처럼 듣기가 괴로왔다. 하지만 그의 꾸짖음이 하두 오만한데다가 상대를 정신병자로까지 모는것을 듣고는 여기저기서 킥킥 웃는 소리가 터졌다. 심한 우울증에 잠겨 무릎에 머리를 박고있던 진수까지 미소를 지었다.

이때 밖에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소리와 함께 급히 자물쇠를 여는 요란한 절그럭 소리가 나더니 벌컥 철문이 열렸다. 얼굴이 잡아다린것처럼 길다란 간수가 눈을 부릅뜨고 씨근거리며 소리쳤다.

《야 야, 이 자식들이 장마당에 온줄 알아, 엉? 갈비대를 그저 콱! 에이, 다시 찍소리만 냈단 봐라.》

놈은 철문을 요란스레 후려닫고는 지나가버렸다. 감방안은 쥐죽은듯 조용해졌다.

그 고요속에서 누군가 아까부터 무엇을 먹는지 청승맞게 쩝쩝 입소리를 내고있었다. 그 소리의 임자는 진수로부터 서너사람 건너편구석쪽에 앉은 체소한 로인이였다. 진수가 백광등고문을 당할 때 거기서 취조관에게 장작개비로 모질게 맞던 그 수수께끼의 로인이였다.

광대뼈와 목덜미에 피가 꺼멓게 엉켜붙은 끔찍스런 상처가 난 해골같이 여윈 로인은 눈을 감고 념불을 하듯 백발머리를 앞으로 기울거리며 이발이 없는 입으로 호물거리다간 쩝쩝 소리를 냈다. 먹는 재미에 세상만사를 까맣게 잊어버린듯싶었다. 식사시간에 곁사람들이 동정하여 덜어준 음식찌꺼기를 남겨두었다가 그렇게 오래오래 즐기며 씹는것이였다.

누군가 조용히 로인에게 물었다.

《년로하신분이 어떻게 되여 여길 다 들어왔소?》

로인의 검은 눈시울이 무대막처럼 천천히 걷혀올라갔다. 실성한 사람같은 시뿌연 눈으로 묻는 사람쪽을 멍하니 넘겨보더니 깔끔거리는 뾰족한 소리로 느릿느릿 대답했다.

《어찌구가 있노, 배고파 들어왔지. 농사 망쳐 굶던 판에 염병에 온 식솔이 다 죽지 않았겠소… 허- 내사 그때 죽어야 하는걸… 어찌겠소. 서울 와서 빌어먹는다는게 영 굶어죽게 됐지. …장마당서 배추잎도 주어먹고, 고기밸도 주어먹다가…》

《그런걸 주어먹는다고 잡혀들어왔어요?》

다른 목소리가 성급히 묻자 로인은 황새목처럼 여윈 목을 씰룩거리며 《끄윽-》 하고 트림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

《그랬으면야 작히나 좋을라구. 아무리 궁리를 해봐야 낟알물이라도 얻어먹는데는 감옥살이가 딱 좋긴 하겠는데 무슨 수가 있어야지. 그래 생각하던 끝에 하루는 장작개비를 구해가지고 지나가는 순경놈을 무턱 마구 후려쳤지요. 허어, 그랬더니 그저 제꺽인걸…》

마음먹고 자기를 표현한 로인은 저로서도 어이없다는듯 절망적인 웃음을 짓더니 어느새 그 웃음이 그대로 오열로 변하는것이였다. 눈을 꽉 감고 입을 벌린채 흰 수염이 흩어진 턱을 덜덜 떨며 끄윽끄윽 짓눌린 소리로 울었다.

온 감방이 숨을 죽였다. 눈물이 젖어올랐다. 치욕의 짐을 진 수난자들의 삶과 험악한 세상과의 무서운 대립감, 말 못할 비애가 강철의 손아귀처럼 심장을 비틀어짰다. 로인은 그냥 울었으나 누구도 위안의 말을 찾지 못했다. 몇사람이 중얼거렸다.

《어이구, 먹자고 감방을 찾아오다니, 세상도…》

《온통 지옥이니 감방이랬자 지옥의 층계를 하나 더 내려온것뿐이지.…》

오열하는 로인의 모습을 앞사람의 어깨너머로 바라보는 진수는 가슴에 얼음이 배여드는것만 같았다. 언젠가 읽은 이와 비슷한 운명을 다룬 프랑스작가의 소설이 생각났다. 그러나 감옥을 자청한 프랑스인에게 비하면 이 로인의 참혹과 절망은 질적인 차이가 있는것이 아닐가.

진수는 사람마다의 삶이 어떤 검은 바람에 몰려 락엽처럼 밑창없는 낭떠러지로 흩어져내리는것을 느꼈다. 그는 그 파멸의 깊은 골짜기에서 느닷없이 윁남의 불속에 끌려간 동생 인수의 피타는 울부짖음소리를 듣는듯 한 환각을 느꼈다.

《사람 살리오-!》 하고 어린시절의 애된 목소리로 필사적으로 웨치는 그 처절한 소리는 수많은 사람들의 울부짖음소리와 합쳐지면서 비명의 폭풍으로 변하여 그의 몸을 아득한 허공에 날려던지는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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