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0 회


제 5 장


30


시아버지가 찾아오지나 않을가 하여 늦은아침까지 집에서 기다린 문희는 신문사에라도 가서 남편의 소식을 알아볼가 하여 어린 아들의 손을 쥐고 집을 나섰다. 그들은 잡다한 영업간판들이 걸린 1~2층짜리 낡은 집들이 선 골목길을 걸어가고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매달리며 진창을 뛰여건느기도 하고 보이는 조약돌마다 툭툭 차굴리던 재일이 노란 모자를 뒤머리에 제껴쓰며 느닷없이 물었다.

《엄마, 아버지 나쁜 사람이나?》

《?…》

이따금 당하는 물음이여서 문희는 그때마다 좋은 아버지라고 적당히 얼러맞춰왔는데 또 그 물음이다. 재일은 아버지가 체포돼가던 현장은 못 봤으나 마을아이들에게서 아버지가 잡혀갔다는 비난의 말을 들어오군 해서 아무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인 모양이다.

《엄만 아버지 좋은 사람이라고 그랬지. 그런데 왜 잡혀갔나, 응?》

《너 또 그런 소리 하겠니? 멀리 출장가셨다는데…》

《출장? 거짓말. 엄마, 잡혀가면 밥이랑 먹나? 잘 땐 이불이랑 베개랑 있나?》

재일은 시무룩해지더니 어머니의 손에서 제 손을 슬그머니 뽑고 점점 뿌루퉁한 얼굴이 된다.

이런 때 두대의 승용차가 기우뚱거리며 이쪽으로 오더니 그중 한대가 그들의 옆에 급정거했다.

《아주머니, 어델 이렇게? 난 바로 댁으로 찾아가는 길인데.…》

이렇게 반기면서 신문사 취재용차에서 내린것은 말쑥한 검정옷차림에 정성스레 빗어넘긴 머리가 물개털처럼 반짝이는 량성도였다. 문희는 아버지네 집에서 그와 미국인의 무례한 말에 불쾌감을 느꼈던 일이 떠올라서 인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어제는 제가 그만 취했던가봐요. 정말 본의아니게 실수를 했습니다. 그래 사죄도 할겸 찾아가는 길인데… 용서하시겠습니까?》

성도는 이렇게 말하면서도 유명인사로 공인되고있는 자기와 같은 경우에는 그 어떤 실수를 한 때에도 진지하게 사죄한다는것은 어울리지 않는다는듯이 빙그레 웃기까지 했다. 문희는 그의 허식에 대한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으나 곧 쓸쓸한 미소로써 그 일은 잊어도 좋다는것을 표시했다.

성도는 재일을 허공에 들었다가 놓으며 친절하게 굴었다.

《허, 이놈이 쇠덩어리처럼 무겁구나.》

그는 재일을 저쪽에 가서 놀게 하고는 문희에게 말했다.

《그런데 진수군의 일이 걱정입니다. 곧 석방할 기미가 보여서 모두들 항의한 보람이 있는가 했는데 그 사람이 괜히 왈카닥했는지 놈들이 강경해졌거든요. 정보를 빼보니까 〈반공법〉위반에 걸려 미결감에 넘긴다는거예요.》

《미결감이라니요?》

문희의 눈이 둥그래졌다.

《그럼 앞으로 재판에서 몇년형을 받게 되겠는지도 모르겠군요. 전 그래도 경찰서에 얼마간 더 구류돼있다가 나올줄로만 알았는데…》

성도는 문희를 동정하는체 했으나 그것이 거짓인것처럼 진수가 미결감옥에 넘어가리라는것도 실은 거짓말이였다. 하기는 경찰서에서는 진수의 담당형사가 검사를 몇번이나 만나고 진수를 미결감으로 넘기려고 하고있는것도 사실이였으나 언론출판계가 련대적인 항의투쟁을 강화하는데 겁을 먹은 당국자들은 진수를 즉시 석방하기로 결심하고있었다. 이 점에 대해서 성도는 오늘 아침에 죤 버클과 무슨 문제를 의논하다가 그에게서 얻어들어서 명백히 알고있었다.

성도는 진수가 곧 석방될것이라는 말로 문희를 기쁘게 해줄수도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는데는 다른 속심이 있었다. 그 역시 송건호와 마찬가지로 문희가 진수를 버릴것을 바랐다. 그의 생각에는 진수는 안해를 잃고 한껏 고독과 불행을 겪어야만 하였다. 그래야 성도 자신이 그를 생활의 《방조자》로서 쉽게 거머쥘수 있을것이다. 요컨대 굶주림에 허덕이게 만들고 미끼를 던져주자는것이다.

《아시겠지만 나는 진수군의 재능을 매우 귀중히 여기고있어요. 그 사람의 행동방식이라 할가, 순간의 충동에 몸을 내맡기는 그런 처사에는 꼭 찬성하지는 않습니다만 견해나 주장에서는 나도 한짝이지요. 그렇지만 아주머니가 그 사람의 행동을 나무랍게 여기고 괴로와하시는건 그것대로 옳다고 봐요. 딸이 아버지의 불행을 외면하고 남편에게만 맹종할수야 없지 않겠어요.》

성실과 진정으로 대하는듯 한 성도의 생각에 잠긴 얼굴을 얼핏 살펴본 문희는 마음을 의지할수 있는 속이 깊은 사람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리해하여주시니 말씀드려요. 그이는 스스로 자신을 망치고있는거예요. 아직 희망이 있겠는지… 많이 힘써주세요.》

《글쎄올시다, 힘써봅시다. 그렇지만 그 량반기질에 곁에서 말린다고 효과가 있겠어요? 보나마나 더 기승을 부릴겁니다.》

성도는 머리를 숙인 문희의 유혹적인 미모를 매같은 눈으로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난 나나 진수씨의 립장도 떠나서 말합니다만 아주머니야 일생에 관한 문제니까 결정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그 사람과 함께 고생길을 가든지 아니면 용기를 내서 갈라져야죠, 두가지 다 어렵겠지만 망설이기만 하는건 더 무서운 일입니다. 녀자는 시기를 놓치면 전부를 놓치니까요.》

이 마지막말에는 분명히 독이 들어있었다. 문희도 그것을 느꼈으나 그런대로 거기에는 솔직성과 진실이 있다고 보았다.

문희의 마음속에 어떤 결심이 생기고있음을 감촉한 성도는 그더러 어데로 가겠는지 차에 태워다주겠다고 하면서 쾌활하게 재일이를 불렀다. 경찰서에 가서 더 알아보고싶은 문희는 권하는대로 재일이와 함께 차에 올랐다.

경찰서뜨락에서는 두세명의 사복경찰들이 검은 방수포를 친 짐차에서 5~6명의 남자들과 녀대학생으로 보이는 한 처녀를 우악스럽게 끌어내려 컴컴한 현관으로 끌어가고있었다. 정문밖에서 성도의 차에서 내려 그 광경을 바라보는 문희는 공포와 설음에 진저리치며 재일이의 손을 꼭 쥐고 한동안 서있었다. 어째서인지 진수는 종신류형수로서 이 무서운 집을 거쳐 지구의 아득한 저편, 먼지가 구름처럼 일어번지는 황막한 땅에 끌려가 운명의 짐처럼 무거운 돌을 등에 진채 발목에 매인 사슬을 끌며 죽어가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함께 이제는 진수와 자기사이에는 마지막 실오리같은 인연의 줄까지도 다 끊어져버렸구나 하는 절망이 엄습해왔다. 영원히 잃어버린듯만싶은 그를 두고 목놓아울고싶기만 했다.

문희는 떨어지기 싫어하는 재일이를 꾸짖어 정문밖에 남겨두고 안으로 들어갔다. 소란한 사찰과에 들려 랭대를 무릅쓰고 몇몇 형사들에게 거듭 사정한 그는 진수의 담당형사를 겨우 만날수 있었다.

어떤 수감자를 금방 고문하고 들어온듯 한 독고천은 의자에 털썩 앉더니 불쾌한 자기 생각에 옴하여 문희의 존재는 완전히 무시하고 살기띤 얼굴을 찌프린채 주둥이로 벼룩을 씹는 개처럼 신경질적으로 딱딱 이발소리를 내며 입방아를 찧었다.

문희는 지옥의 파수병을 만난듯 몸이 굳어지는것을 느끼면서 겨우 입을 열었다.

《전 정진수가족입니다. 너무 괴로와서 찾아왔습니다. 제발 관대하게 봐주십시오. 언제면 석방해주시겠는지…》

독고천은 여전히 자기 생각에 옴하여 입방아를 찧더니 깐깐히 차려입은 문희의 아래우를 몇번이나 훑어보았다. 그러더니 아무런 흥미도 없다는듯 훌쩍 일어나 저쪽출입문쪽으로 걸어갔다. 울상인 문희는 그의 뒤를 급히 따라가며 애원했다.

《좀 봐주세요. 언제쯤이면… 선생님!…》

《그따위 빨갱이를 봐달라고? 흥, 교도소에나 가서 빌어봐!》

독고천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꽥꽥거리더니 방에서 나가며 등뒤로 문을 후려닫았다.

창백한 얼굴로 방에서 나온 문희에게는 독고천이 뱉은 《빨갱이》라는 말이 칼처럼 가슴을 찌르고있었고 자기자신이 무서운 죄를 짓고 중형을 선고받은듯 한 착각이 들었다.

진수는 이미 잃어버린 사람이구나! 한줄기 희망이라도 잡아보려고 운명을 거슬러 앙버티고 헤덤빈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사랑하던 시절의 그 투명하고 온후하던 진수, 미래의 커다란 희망과 행복을 후광처럼 두르고 소년처럼 순진하게 웃던 지난날의 그 진수는 영영 사라지고만것을…

정문가에서 눈이 빠지게 안쪽을 살피며 오도카니 서있는 어린 아들의 처량한 모습을 본 그 녀자는 의지의 힘을 가다듬어 태연하려고 애쓰면서 맥없이 걸어나갔다. 시골에서 외롭게 살고있는 어머니한테라도 찾아가야지 이대로는 미치고말겠구나 하고 그는 생각했다.

(참 그렇구나. 어머니와 나는 같은 운명, 나는 어머니한테로 가야 한다!)

문희는 이 하나의 생각에 옴한채 철부지아들의 머리를 자꾸 쓰다듬었다.

헌데 일은 뜻밖의 방향으로 번져갔다. 이날 오후에 진수가 석방된것이다.


간수의 호출을 받고 류치장문을 나선 진수는 또다시 고문하려는게다 하고 짐작하고는 취조실로 가는 지하층계쪽으로 발길을 돌리는데 간수가 선언했다.

《거긴 왜, 임잔 석방이야.》

진수는 온몸의 힘이 발끝으로 새여나가는감을 느꼈으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간수로부터 진수를 인계받은 독고천은 응당 교도소로 끌어가야 할 그를 왜 불의에 석방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방금전에 서장이 들어와서 시경찰국장으로부터 정진수기자를 즉시 석방하라는 외마디지령이 내렸다고 알려준것이다. 진수의 석방을 마련한것은 물론 언론인들과 사회계의 끈질기고 강력한 압력이였다.

독고천은 다른 수감자에 대한 조서를 급히 꾸미고있던 참이여서 진수와 긴말을 할 경황이 없었던지 다시 이런 사건을 도발할 때에는 살려두지 않겠다는 짤막한 위협적인 말을 했을뿐이다. 그러나 그는 진수의 검은 머리카락이 파뿌리처럼 하얗게 바래지도록 한껏 괴롭히지 못한것을 분하게 여기는 기색은 감추지 못했다.

진수는 서장실로 불려갔다. 우람한 몸집을 가누기가 힘겨운듯 안락의자에 자빠듬히 앉아 전화로 누구인가를 개탄하며 꾸짖던 서장은 수화기를 놓고 네모난 검실검실한 얼굴에 쓰거운 미소를 그리더니 진수에게 의자를 권하고 비수나 내대듯 거칠게 담배를 내밀었다. 그동안에 겪은 고통과 모욕을 생각한 진수는 한순간 울분의 눈길로 서장을 굽어보았으나 의자에 앉아 담배를 받았다. 서장은 라이터불까지 켜주고 자기도 피워물더니 움쭉 일어나서 벽에 걸린 모자를 집어쓰며 말했다.

《밖에 볼일이 있어서… 흠, 그새 고생이 많았겠소. 피차 휴전하게 돼서 기쁘오. 당신과는 노여움이 싹 풀리도록 이야기를 충분히 나누고 헤여지고싶었는데 급히 가볼데가 있어놔서… 한마디만 한다면 시국에 역행하다가 만사 그르치질 말고 순응과 협조의 길에서 힘을 내기를 바랄뿐이요. 명석한 머리를 그렇게 척 돌려놓고 생각해보시오. 무한한 전망이 선생을 부른단 말입니다. 자, 그럼!》

서장은 뭉툭한 손을 내밀고 까맣게 삭은 이발을 드러내며 웃어보였다.

세상이란 롱간이 많은것이니까 제가 혹시 이 망종같은 놈의 손아귀에 덜미를 잡혀 끌려다니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 잠재의식적인 한줄기 위구심에서 자기도 어느 정도는 인정을 아는 동물이라는것을 알려주려는 교활한 시도였다.

진수는 인상적인 말로 경멸을 표시하고싶은 충동을 느꼈으나 꾹 참고 그와 악수를 하고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런데 함께 나가던 서장이 자기의 옆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 방에 들려보시오. 신문사에서 온 사람이 기다리고있소.》

진수가 옆방으로 들어가니 거기에는 뜻밖에도 량성도가 홀로 창가에 놓인 탁자를 마주하고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쓰다가 이쪽을 알아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바람에 쪽의자가 뒤로 넘어졌다. 모진 슬픔과 감격에 휩싸인듯 한 그는 경기에서 대단한 투지를 보이기는 했으나 억울하게도 패전하여 뭇사람들에게 한없는 애석의 정을 불러내고 돌아온 권투선수를 보는 감독과 같은 얼굴이였다.

《아, 진수! 얼마나, 얼마나 고생했나!…》

달려와서 진수의 어깨를 끌어안는 그의 목소리는 저으기 떨리기까지 했다. 열정적인 마중에 감동한 진수는 그에 대해 평상시에 품고있던 의혹도 잊어버리고 한순간 마주 붙안았으나 이내 몸을 빼면서 인사를 차렸다.

《어떻게 여기까지 다 오셨습니까?》

성도는 돌아서서 눈물도 안 나오는 눈을 손수건으로 열심히 닦더니 창백하고 부석부석한 진수의 모습을 살피며 그냥 가슴아파했다.

《그사이에 이렇게까지 상하다니. 죽일놈들. 온통 야만들이라니… 자, 이러지 말구 빨리 복마전에서 나가자구.》

그리고는 허둥거리며 탁자로 가서 쓰던것을 급히 서류가방에 넣었다.

《이런데까지 와서 뭘 쓰십니까?》

진수가 지나가는 말로 묻자 성도는 한쪽팔에 가방을 끼고 다른 팔로는 진수를 부축하며 웃었다.

《잡지에 줄 론설이지. 나야 〈옥중일기〉의 저자가 아닌가.》

그는 진수의 귀에 속삭이였다.

《자네의 석방에 대해선 이곳 서장보다 내가 둬시간 앞질러 알아냈지. 모 요직에 박혀있는… 응, 알만 해?》

제가 마치도 큼직한 정보선이나 갖고있는듯 한 냄새를 풍기면서 껄껄 웃었다.

경찰서에서 나온 진수는 성도가 이끄는대로 가까운 음식점에 들어가서 먹고 마셨다. 어둑시근한 온돌방에 두리상들을 놓고 눅거리음식을 파는 집이여서 얼마 되지 않는 고객들은 가난한 일반서민들이였다. 두사람의 화제는 정간된 신문사이야기, 기자들과 문화계의 토막소식 등으로 번져갔다.

술질하지 않은 자기 몫인 두부국을 진수앞에 밀어놓은 성도는 진수의 필화사건이 그의 장인을 곤궁에 몰아넣은 이야기며 그가 진수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고 문희를 리혼시키려고 한다는것을 어떤것은 구체적으로, 어떤것은 암시적으로 전해주었다.

류치장에서 나온이래 소용돌이치는 생활의 급류로 하여 머리가 어질어질했던 진수는 이런 이야기까지 듣자 정신적인 구토감과 함께 가슴이 저려나는 슬픔을 느꼈다.

《미리 어느 정도 알아두는게 나쁘지 않을것 같아서 얘기했네만 극단으로 생각할건 없어. 자, 한잔 들게. 화제를 돌리자구.》

성도는 진수의 잔에 술을 따르고는 울적한 얼굴을 절레절레 저으며 세상사에 대한 환멸을 표시했다.

《장인의 태도는 나도 알아요. 그렇지만 안해에 대해선 믿어요. 나를 완전히 리해하고있진 못해도 량심에 먹칠할 사람은 아닙니다.》

진수가 자신없이 말하자 성도는 저울질하는듯 한 이상한 눈길로 그의 이마를 바라보았다.

《자네 부인이야 훌륭한 사람이지. 그사이엔 만나보질 못했네만… 아니, 그런것도 아니군. 얼마전에 무도장에서 보았지. 설희의 생일파티에서도 만나고… 오늘 아침에도 길가에서 우연히… 참, 안됐더군.》

《무도장이라니, 그 처지에 춤을 추더란 말예요?》

《뭘, 그런것에 신경을 쓰나? 지나가다가 구경삼아 들렸겠지. 이러질 말고 다른 얘길 하자는데.》

《솔직히 말씀하세요. 그 사람이 아버지의 말에 끌리는것 같던가요?》

《그거야 내가 어떻게 알고 대답하나. 중요한건 아량있게 대해주는거네. 연약한게 녀자가 아닌가.》

성도가 모든것을 애매하게 이야기하고 거기에 위안의 색조를 가미할수록 진수에게는 의혹만 커지고 불쾌감만 더해갔다. 이 점이야말로 성도가 노리는 점이였는지도 모른다.

성도와 헤여진 진수는 기분도 일신할겸 목욕탕에 들렸다가 황혼무렵에 자기 집 쪽문앞에 다달았다.

조용히 퇴마루앞에 다가선 그는 집안에서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류치장에 얼마간 갇혔다가 돌아오는 꼴에 밖에서부터 떠들썩한 마중이나 받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아무의 눈에도 띄우지 않고 방에 들어가 누울수 있게 됐으니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안해와 아들이 돌아오면…

그는 달가운 공상을 즐기며 어스레한 서재로 들어갔다. 그런데 아래방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안해의 힘없는 목소리가 들린다.

《재일이냐?》

재일이라는 한마디가 어쩌면 이리도 감미롭고, 부드러운 그 목소리가 이렇게도 피를 설레게 하는것이랴.

오래간만에 안해의 따뜻한 목소리를 들은 진수는 향기롭고 훈훈한 바람이 온몸을 휩싸는듯 한 달가운 느낌과 함께 자기가 정말로 일상생활속으로 돌아왔구나 하는 안도감을 느꼈다. 이 느낌은 곧 안해를 열렬히 애무해주고싶은 충동으로 번져졌다. 좀 놀래워줄가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반쯤 열려진 사이문을 거쳐 조용히 아래방으로 건너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기를 알렸다.

《그새 잘 있었소?》

그 순간 그의 눈에 보이는것은 어스레한 방안의 저켠구석쪽에 있는 옷장앞에 무릎을 꿇은채 방바닥에 엎드려있다가 비명인지 환성인지 알수 없는 외마디 가느다란 소리를 지르며 놀라서 머리를 드는 안해의 희미한 모습이였다.

《누구세요? 아니, 당신이?… 어쩌문 이렇게!》

문희는 튀여일어났으나 그래도 잘 믿어지지 않는듯 주저하며 다가오더니 성급히 부드럽고 날랜 동작으로 진수의 가슴에 낯을 부비며 온몸을 열정적으로 밀착해왔다. 거기에는 정열의 도취로 그 어떤 무서운것을 잊어버리려는 처량한 몸부림이 있었다.

진수도 그사이에 겪은 시련의 고통과 번거로운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잊고 애무의 열정에 자신을 맡겼다.

한순간이 그렇게 지난 후 문희는 숨이 가쁜듯 옅은 한숨을 쉬더니 어디 내 랑군의 얼굴이나 잘 보자는듯 후훗하고 새여나오는 웃음과 함께 경쾌한 동작으로 전등을 켰다. 밝은 불빛아래 둘은 취한듯 마주보았다.

빛나는 청순한 얼굴인 문희는 진수의 한쪽뺨에 난 상처를 부드러운 손으로 쓰다듬으며 얼마나 고생했는가고 같은 말만 거듭했다. 그러더니 문득 긴장하면서 겁을 먹은 얼굴이 되였다. 남편이 방바닥에 널린것을 굽어보며 심상치 않아하는것을 눈치챈것이다. 그제서야 문희도 뒤돌아보았다. 현장을 발각당한 범죄자와 같은 절망적인 공포가 그 녀자를 휩쌌다. 옷장은 열려져있고 방바닥에는 여러가지 옷가지들이 혹은 널려있고 혹은 보자기에 싸여있다. 뚜껑이 제쳐져서 그속에 넣은 옷들과 요긴한 물건들이 보이는 커다란 트렁크는 첫눈에도 집을 떠나가는 사람의 길차비라는것이 확연했다.

불길한 느낌과 함께 진수가 물었다.

《이건 뭐요, 어데로 가려던 참이였소?》

문희는 두려움에 꼿꼿해진 눈길로 진수를 돌아보더니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며 고개를 접었다.

운명적인 순간이였다. 남편의 처사에 대한 자신의 불만과 아버지가 사정없이 강요하는 리혼, 여러 군데서 들은대로 남편이 정말로 《빨갱이》일수도 있다는 불안 등으로 하여 그는 춘천 가까운 시골에서 살고있는 그리운 어머니한테로 가서 당분간 지낼 작정이였다. 그런데다가 량성도의 말이 남편은 면회도 할수 없는 미결감으로 넘어간다고 하니 언제 풀려나오겠는가 하는것은 더욱 막연해진것이다. 그러니 무서운 속박에서 벗어나 한적한 시골에 가서 지치고 뒤엉킨 머리를 정돈할 짬은 얼마든지 있는것이다. 하기는 이렇게 집을 떠나는 걸음이 단순한 나들이나 려행으로 되겠는지 아니면 리혼이라는 무서운 결과를 빚어내겠는지 하는것은 현재로서는 알수 없었다. 문희는 오전에 경찰서에서 돌아오는 길로 내내 이 하나의 생각으로 눈물을 짜면서 길떠날 차비를 하고있었던것이다.

《왜 대답이 없소?》

진수가 주저앉으며 다시 물었으나 문희는 여전히 말을 못했다.

옷가지들을 두루 정돈하던 참이였다고 말해버렸던들 오래간만에 만난 부부사이라 사태는 두루두루 누그러질수도 있었다. 그러나 문희는 거짓말을 하고싶지도 않았고 무엇을 감추고싶지도 않았다. 다만 고생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사실대로 말하는것이 너무도 가혹한 타격일것을 생각하며 주저하고있을뿐이였다. 그 녀자는 옷장앞에 가서 맥을 놓고 앉으며 입을 열었다.

《난 당신을 따르기가 정말 숨이 차요. 피차 괴로움만 줄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강원도에 계시는 어머니한테 가려고 했어요.…》

사태를 알게 된 진수는 더 묻고싶지도 않았고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싶지도 않았다. 량성도가 일러준것이 바로 이것이였구나 하고 생각하니 갑자기 맥이 풀렸다.

모든것이 부서지고 허물어진것이다.

나에게는 아무런 힘도 없고 무엇 하나 이룩한것도 없다. 량심의 기치를 들수록 모든것이 적의를 품고 썰물처럼 물러가는것이 아닌가. 안해는 정당하다. 어서 떠나가라지. 제발 나를 동정하여 주저앉지나 말아라. 부자의 딸이 어찌 나같이 무능한 수난자와 한사슬에 묶일수 있겠는가. 사라지라지. 나 같은 놈은 고독속에서 말라 비틀어져도 싸다 싸…

감당할 길 없는 울분때문에 크고작은 온갖 모순과 불행을 확대하고 과장하면서 자신에 대한 모멸감에 시달리는 그는 주저없이 선언했다.

《가오! 붙잡지 않겠소. 당신은 자유스럽소!…》

그리고는 문희가 혹시 마음이 약해져서 주저앉을가봐 일부러 모욕을 주려고 덧붙였다.

《너를 안해로 여긴 내가 바보였다. 나가라, 제발! 나도 너에게 지쳤다!》

이 말을 한 진수는 문희쪽은 보지도 않고 어두운 서재로 건너가 쏘파에 누웠다. 낡은 용수철이 소란스레 삐걱거렸다. 화석처럼 굳어진채 숨결도 없이 앉아있던 문희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비스듬히 열려진 서재의 문을 원망스레 바라보더니 일어나서 부엌으로 나갔다.

얼마후 재일이 들어오더니 누워있는 진수의 품에 안기며 어데로 갔다왔느냐, 잡혀갔다는건 거짓말이지, 과자랑 사왔느냐 하면서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진수는 어째서인지 눈물이 나서 철부지아들을 어루만져줄뿐 목이 잠겨서 제대로 얼러맞추지도 못했다.

이상한 기미를 차린 재일은 부엌에 있는 어머니에게로 뛰여가더니 눈이 둥그래져서 속삭이였다.

《엄마, 큰일났어. 아빠가 운다!…》

암담한 기분으로 곤로불에 차를 끓이던 문희의 얼굴이 까맣게 질렸다. 그는 남편앞으로 달려가 엎드려 이마를 방바닥에 조아리며 용서를 빌고싶었다. 아니, 못난 자기를 사정없이 때려달라고 애원하고싶은 문희는 쟁반에 차잔과 사탕가루 등을 담아들고 서재로 들어가서 눈물을 쏟으며 입을 열었다.

《여보! 내가 그만… 나를 사정없이 때려주세요!…》

그러나 진수는 벽쪽으로 돌아누워 소리쳤다.

《듣기 싫소! 서푼짜리 연극은 걷어치우오. 떠나기로 결심했으면 가는거지 무슨 헛소린가 말요?》

진수는 눈을 꽉 감았다. 안해가 실망하여 아래방으로 건너간 후에도 그대로 누워있었다. 얼마후 문희가 재일이를 데리고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허약한 몸에 몹시 지친 진수는 온몸이 나른해지고 머리속이 몽롱해지는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비상태와 같은 세찬 졸음이였으나 해가 진 뒤에 노을이 남듯이 비분의 감정만은 부드러운 애수로 변하여 오래동안 흐릿한 의식속에 고요히 물결치고있었다. 그렇게 얼마동안 비몽사몽간에 누워있던 진수는 이마에 얼음처럼 차거운것이 닿는것을 감촉하고 눈을 떴다. 재일이녀석이 무릎을 꿇고 앉아 제 아버지의 이마에 얼음장같은 손을 얹은것이다. 아버지가 눈을 뜨자 아들은 해님처럼 웃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마주 웃지를 못하고 조용히 쳐다보기만 했다. 어린 아들은 이번에는 두손으로 아버지의 목덜미를 감아안고 일으키려고 하였다. 진수는 아들의 손이 너무나 차거워 소스라치며 일어나 앉았고 다음에는 아들에게 이끌려 사이방으로 건너갔다.

거기에는 안해가 저녁상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머리를 숙이고 앉아있었다. 몸치장까지 깐깐히 한 문희가 언제 싸운 일이 있었냐는듯 수집은 신부처럼 앉아있는것을 본 진수는 순간에 거부반응을 느꼈다.

도망치려고 하던 계집과 한상에서 밥을 먹어? 안된다. 그럴수는 없다!

그는 다시 서재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재일의 설음이 어린 놀란 얼굴이 그를 멈춰세웠다. 아버지와 한상에서 같이 밥을 먹는것이 그렇게도 간절한 소원인 어린 아들의 순진한 기쁨을 꾸겨놓는다는것이 큰 죄악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재일은 아버지를 어머니의 맞은켠에 앉히더니 숟가락까지 손에 쥐여주고는 그렇게 한것이 커다란 승리이고 세상이 모두 자기를 축하하며 부러워하는것처럼 뽐내며 눈이 없어지게 웃었다. 그렇게도 좋아하는 아들을 보고는 새여나오는 웃음을 어쩔수 없었던 문희와 진수는 얼결에 서로 마주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주고받았다.…

문희는 남편과의 싸움이 가정을 깨는 절망적인 사태에 이르기 전에 일단 멎은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강동혁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석방된 진수를 격려해주면서 유쾌한 롱담도 펴군 해서 집안분위기는 한결 밝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부부가 회복한 평온은 화해가 아니라 휴전상태와 같은것이여서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나겠는지 알수 없었다.

문희는 인생과 세상사에 대해서 그릇되게 생각하는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였는데 그렇게 된데는 받은 교육의 결함을 비롯하여 많은 요인들이 있었으나 그중에서도 남다른 가정환경의 영향이 컸다.

문희는 부모가 리혼하게 된 실제적인 원인이나 동기는 딱히 알지 못했다. 아버지로부터 몇번 단편적으로 들은바로는 어떤 크지 않은 일로 부부싸움이 있었는데 어머니가 성질이 메말라서 참지를 못하고 집에서 뛰쳐나간 바람에 리혼하게 됐다는것이였다.

송건호는 문희가 수수께끼에 싸여 신비스럽기만 한 어머니에 대하여 이것저것 알고싶어하거나 그리워하는 눈치를 보이면 마치도 교원이 부정행위를 한 학생을 대하듯 차겁게 노려보거나 그런 철딱서니 없는 생각을 다시는 하지 말라는 투로 비웃어 눌러버렸다. 살림이 넉넉했던 그는 제 체면을 세우려고 딸을 대학에까지 보내주고 그후에도 기분내키는대로 돈푼이나 쥐여준것으로 어머니를 겸한 아버지노릇을 하는체 했다. 그러나 문희는 어려서부터 계모의 독기서린 싸늘한 눈길에서 벗어날 길이 없었다. 전실태생에 대한 기생퇴물의 증오는 따벌처럼 집요하고 강물처럼 줄기찬것이였다. 이래저래 어린시절의 문희에게는 눈에 보이는 모든것이 설음을 자아냈다. 계모의 학대로 마음을 붙일 곳이 없는 그는 차라리 거지가 되여 정처없이 실컷 헤매여보기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남의 눈초리에서 벗어나 혼자서 놀수 있을 때는 고독이 오히려 무척 감미로왔고 동심의 날개가 활짝 펴져서 아름답고 즐거운 공상이 끝없이 일었다. 그러나 계모가 표독스런 얼굴로 멀찍이 한번 나타나기만 하여도 즐거운 공상의 락원은 즉시에 색조를 잃고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주위의 살뜰하던 모든것이 죽은 사람의 유물처럼 두려운 생각이 들군 했다.

계모의 학대와 멸시에 대한 항거로 어여쁜 처녀로 자라난 문희는 어서 독립적인 인간으로 되고싶은 갈망이 컸다. 사람에 대한 멸시가 없는 집, 오붓하고 화목하고 사랑과 배려로 넘친 집에서 서로 손을 잡기만 하여도 즐거운 웃음이 나는 순하고 살뜰한 사람과 함께 살고싶었다. 자기의 남편으로 될 사람은 세상의 모든것우에 자기들 부부의 사랑을 놓는 사람이여야 했고 어데서 무엇을 하건 이 사랑을 지키는 사람이여야 했다. 그러나 문희가 택한 진수는 정직하고 부드러운 호남아이긴 했어도 가정보다 사회에 마음을 쓰는 사람이였다. 애정에 굶주리며 자라난 문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것은 자기네 부부애와 가정의 안락이라고 보았으나 진수는 그것을 사회라는 나무를 튼튼하고 찰지게 키워야만 거기서 필수 있는 꽃이나 열매라고 보았다. 문희는 사회로부터 자기가 가정을 위해서 필요한것을 떼여다 쓰는것은 용서받을수 있는, 또 허용돼야 할 일이지만 그 사회를 위해서 자기가 가정의것을 덜어주거나 희생하는것은 옛말에서나 볼수 있는 아름다운 현상이고 실제의 생활에서 일종의 우둔이라고 보고있었다. 그러나 진수의 량심은 무수한 사람들의 운명이 사태처럼 참혹히 무너지는 사회의 모순과 부정앞에서 언제나 피를 흘렸다. 그는 모든 권력자, 부자들의 이마에 범죄자의 불도장을 찍고싶었고 땅우의 모든 보배를 수난자들의 가슴에 안겨주고싶었다. 그러나 눈앞이 어둡고 힘이 없는 그는 마음껏 싸워보지도 못하고, 승리도 패배도 없이 생활이 흘러가는대로 살아가는것이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그래서인지 그는 이따금 사회적사건들의 담당자로 뛰여들어 무서운 정열로 저돌적으로 싸움으로써 당국의 집중공격을 당하군 했다. 그것은 물론 정의감때문이였으나 그속에는 패배나 고통으로 무력한 자신을 징벌하면서 단련하고싶은 욕망도 섞여있었다. 그에게는 지성이란 부정한 사회와의 투쟁의 무기였으나 문희에게는 그것이 개인적명예를 위한 수단이거나 가정의 장식품이였다. 문희는 남편을 사회로부터 가정의 리기적인 안락속에 이끌어들이려고 하였으나 진수는 안해가 애써 지키려는 소시민적인 가정의 보금자리에 사회의 쓰겁고 사나운 바람을 휘몰아넣군 했다.

이처럼 대조적인 두사람은 남녀라는 점만 내놓고는 서로 용납키 어려웠다. 특히 문희는 남편의 견해와 생활방식을 참을수 없었다. 더구나 아버지까지 해치면서 창덕사사건을 가지고 싸움에 열중하는것을 보고는 완전히 실망하고말았다. 그러고보면 그 녀자가 진수와의 갈등을 참을길 없어 서로 갈라서려고 한것은 여러해를 거쳐 가슴속에 잠재의식처럼 자라온것임에 틀림없었다. 이제 문희가 남편에게 걸고있는 마지막희망은 그가 자기의 생활관이 우둔한것임을 깨닫고 다소라도 《현명》해지는것뿐이였다.

진수가 집으로 돌아온지 닷새째 되는 날 밤이였다. 문희는 남편이 문안하러 왔다가 가는 동료들을 쪽문밖까지 바래워주고 들어왔을 때 그의 잠자리를 깔아주며 부드럽게 말했다.

《아마 신문사에선 보나마나 당신을 해임시킬거예요. 그럴바엔 먼저 사직서를 내는게 어때요? 정말, 꼭 그렇게 하세요. 난 당신이 말썽많은 기자노릇만 안했으면 세상에 두려운게 없겠어요. 국민학교에서 산수를 배워주면 어떻고 온돌수리공을 한들 어때요. 난 정말 티끌만큼도 불평 안하겠어요!》

문희는 맹세의 표시로 두손을 맞잡고 호기있게 흔들며 어여쁜 눈을 치떠빨면서 활짝 웃었다. 정의의 수난자로 되기보다는 자기와 같은 미녀의 남편으로 조용히 살아가는것이 더 좋다고 웨치는듯 했다. 진수는 생각에 젖은 엷은 미소를 짓고 안해를 이윽히 지켜보다가 책상앞에 마주앉아 영문소설을 펼쳐들며 흥취없이 말했다.

《원 별소릴. 사직서를 내다니, 그렇게 항복할줄 알았소? 천만에! 난 해임된다 해도 다시 기자로 입직해가지고 끝까지 해댈 생각이요.》

문희는 진수가 어찌하여 《나는 모든 자본가, 권력자들과는 계속 싸우면서 감옥출입이나 부지런히 하겠소.》 하고 말하지 않는지 모를 지경이였다.

문희는 긴 동안을 두었다가 물었다.

《당신은 이제 와서도 이전처럼 살 생각이예요? 그거야 고문이지 무슨 생활이예요? 난 정말 더는 견딜수 없어요.》

《권력이 그렇게도 무섭소?》

진수는 소설책을 접어놓고 미소하면서 돌아보았다. 안해의 울분한 눈길을 포착한 그는 믿는바가 있어서 빈정거리는 투로 말을 이었다.

《당신은 재일이보다 더 몰라. 분하면 반항하는거야 살아있다는 초보적인 표현인데 왜 자꾸 그러는거요? 반항한다고 다 망한다는 법은 또 어디 있소? 아무 고통도 치르지 않고 고귀한걸 바라는것처럼 웃음거리가 어디 있겠소? 당신의 마음속엔 아버지의 재산이 언제나 그늘을 드리우고있거던. 그게 탈이야. 그래도 설희와는 처지가 다른데 왜 그렇게 소심하오? 당신은 죽어있어! 심장이 죽어있어! 그러니 아무것도 참답게 사랑할수 없단 말이요!》

문희는 설교조의 말에 짜증이 났다. 자신도 남편도 싫었다. 남편의 말에 진실이 있다고 느껴질수록 화가 났다.

《쇠사슬이 머리우에 드리우고있는데 어떻게 정의감 하나로만 살수 있단 말이예요?》 하고 웨치고싶었다.

남편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없다는것을 느낀 그는 며칠전에 량성도를 만났을 때 그가 하던 말이 생각났다.

《그 사람과 함께 고생길을 가든지 아니면 용기를 내여 갈라져야지요. 두가지 다 어렵겠지만 망설이는건 더 무서운 일입니다. 녀자는 시기를 놓치면 전부를 놓치니까요.》

진수가 다시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우린 아무래도 화목하긴 틀렸어. 당신은 전번에 트렁크를 꾸린것까진 비슷했는데 왜 주저앉았소? 난 원기도 회복됐으니 걱정하지마오. 이제라도 가고프면 가구려.》

이불에 펼쳐진 꽃무늬에 끊임없이 동그라미를 그리던 문희의 손가락이 천천히 멎었다. 그는 불빛서린 울분한 눈길로 진수를 쳐다보더니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게 자유스럽다면 가지요 뭐. 못 갈줄 알았어요? 나도 더는 못 참겠어요. 헤여지는게 현명하다마다!》

그리고는 분노와 절망이 내돋은 긴장한 붉은 얼굴로 훌쩍 일어서더니 도고하면서도 짜증이 섞인 급한 걸음으로 아래방으로 건너가서 거칠게 문을 닫아버렸다.

진수에게는 너무나 예상밖이였다. 스스로 려장까지 꾸려놓았을 때는 당장 나가라는 모욕적인 욕설에도 한마디 대답도 없이 주저앉던 녀자가 어찌하여 오늘은 믿고 조용히 빈정거려본 말에 그렇게도 순종한단 말인가. 불화를 가셔낼 길이 막연하여 걱정으로 던져본 말을 그렇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법이 어디 있는가?

아래방에서는 문희가 짓눌린 소리로 조용히 흐느껴우는 소리가 들렸다. 진수는 안해에게로 가서 제가 한 말을 취소하고 눈물을 닦아주면서 용서를 빌고싶은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안해가 오히려 자기의 본심을 드러낼 이런 순간이 오기를 은근히 기다려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함께 모든것이 엎질러진 물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얼굴을 푹 숙인채 숨결도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다음날 황혼무렵에 문희는 정말로 떠날 준비를 서둘렀다. 커다란 트렁크와 자그마한 보따리를 꾸린 그는 옷장을 다시 정돈하고는 방구석에 놓인 노트에서 두장을 뜯어 책상우에 놓고 연필로 굵직굵직하게 급히 썼다.

《강원도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한테로 갑니다.

당신의 식사는 당분간은 아버지네 삼월녀가 지어드리기로 했어요. 얼마간의 돈도 맡겨두었습니다. 재일이를 데리고 갑니다. 당신의 품에서 그애를 떼내는 이 괴로움을 알아주셨으면!… 나를 저주해주세요. 당신의 비난과 증오속에서 나도 자신을 정돈해보겠어요.…》

고별의 글을 남긴 문희는 영문을 몰라 눈이 올롱하여 바라보는 재일에게 외투를 입히며 아이의 온 얼굴에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그 옛날 어머니도 이렇게 아버지와 갈라졌지, 이 무슨 운명의 반복인가.

그는 이런 생각과 함께 손짐을 들고 서재로 통하는 문을 열고 섰다. 진수는 쏘파에 누운채 움직이지 않았다.

《엄마, 우리 어데로 가나?》

《촌에.》

《기차 타고 가나?》

《…》

《아버지랑 같이 가자.》

《…》

문희는 너무도 힘이 없어 벽에 기대였다.

《재일아, 내 인제 데리러 가마.》

진수가 아들을 쓰다듬어주며 이렇게 말하자 문희는 속으로 빌었다.

(나를 제발 꾸짖어 붙잡아주세요. 희망도 없이 스스로가 못나서, 세상의 무자비한 손에 밀려 떠나가는 녀자가 불쌍하지도 않아요? 마음을 돌리세요. 총칼과 철창과 사슬에 시달려야 하는 승산도 없는 그 괴로운 생활이 그렇게도 소원인가요? 사랑과 안정과 보장된 생활이 그렇게도 싫증이 났는가요? 이제라도 웃어준다면, 《문희, 여기 와 앉어. 내가 잘못 생각했어. 반항의 교훈은 고통과 상실뿐인걸. 그 점을 알았으니 이제는 순하게 살아보자구!》, 그렇게 둬마디 하고 웃어만 준다면 나는 이 괴로운 길을 단념할것을!…)

그러나 남편은 반응이 없다. 문희는 절망에 흐려진 얼굴을 푹 숙이고 주저하며 문을 나섰다. 재일이도 몇번이나 아버지를 돌아보며 따라나섰다. 진수는 참기 어려운 수치와 설음에 시달리고있었다.

그는 생각했다.

(가라! 말리지 않는다. 다 가라! 투쟁도 투쟁답게 못하고 울분만 안고 짓밟히기만 하는 나 같은 패자에게 안해는 무슨 안해, 다 가라!…)

그는 신경을 모아 안해와 아들의 동정을 살피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빈다, 그렇게 주저하지 말고, 무서워하지 말고 제발 저주나 실컷 퍼붓고 가려무나!

아, 사는것이 이렇게도 괴로운것을. 어찌하여 류치장에 더 오래 갇혀있지 못했던가!…)

문희와 재일이 퇴마루에서 뜨락으로 내려서는 소리가 나고 발자국소리는 다시 쪽문가로 멀어져갔다. 그러더니 흐느껴우는 소리와 함께 쪽문소리가 났다. 조용히 삐-익 하고 울린 그 소리가 진수에게는 어마어마한 요새의 철문이 닫기는 소리처럼 들렸다.

그는 일어나서 창문을 열었다. 습기찬 바람이 어두운 뜨락에 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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