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1 회


제 6 장


31


진수는 집안에 붙박혀 지냈다. 어떤 날은 종일토록 바깥출입을 하지 않았다. 생활이 온통 빠져달아난듯 한 그에게는 우울한 공상밖에 남은것이 없었다. 기분이 개이는것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때뿐이였다. 서울에 와있는 고향친구들이나 대학동창생들이 간혹 찾아왔고 신문사의 동료들이 문안삼아 오기도 했다. 혹은 량성도가 와서 보호자연하면서 묘한 인상을 남기고 가는가 하면 최재명이 여러가지 통졸임을 가져다 주고는 《맥을 놓으면 바보야.》 하고 가벼운 롱담과 함께 그를 으스러지게 안아주고는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왔다간 뒤면 자신이 마치 불구의 몸이 되기나 해서 동정의 대상이 된듯 한 느낌과 함께 더욱 심해지는 공허감에 시달렸고 자신은 모든 일에서 실패했으며 애당초 어떤 희망도 이룰만 한 능력이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무도, 단 한사람도 구원하지 못한 나는 오히려 기세등등한 범죄자들의 저주를 받아 류치장에 갇혀 골수에 사무치는 모욕과 고통만을 당하지 않았는가. 그뿐인가. 신문이 정간되고 장인까지 제가 입은 피해를 나의 《죄》로 돌리면서 행패를 부리고 안해까지 끝내 나를 버리지 않았는가.

이런 일을 돌이켜볼 때면 소리내여 끙끙 신음하였다. 설음과 분노에 달아오른 그는 허술한 사냥군에게 사로잡혀 갇혀버린 표범처럼 좁은 방안을 빙빙 돌며 손에 닿는대로 책상이고 서가고 벽이고 주먹으로 탁탁 치며 세상을 저주하였다.

헌데 이상한것은 앉으나서나 무슨 생각을 하든지 한쌍의 설음에 젖은 맑은 눈이 쉬임없이 자기를 지켜보고있다는 의식이였다.

그것은 가뭇없이 사라진 안해의 눈이였다. 두려워하는듯 한 눈길로 무엇인가 원망하고 나무람하기도 하고 구름에 가리워진 희미한 쪼각달처럼 아스무레한 애달픈 미소로 무엇인가 하소연하면서 사방에서 그를 지켜보는 안해의 눈이였다. 자신이 안해를 참되게 사랑할줄 몰랐다는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안해라고 왜 사회의 추악을 증오하지 않으며 용감한 사람들의 반항과 투쟁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도 가정의 안락을 지켜야 할 제 남편만은 무서운 싸움에 끼여들지 말라는것이 아닌가. 이것이 무슨 태도인가? 어찌하여 문희에게 이런 리기주의로는 아무런 참된 행동도 할수 없으며 그 리기주의야말로 무서운 모든 사회악이 뿌리를 내리는 바탕이라는것을 끝까지 납득시키지 못했던가! 어찌하여 투쟁에서 피해만 보고 헛걸음치는 그 녀자에게 민중을 위한 투쟁에 바치는 자기희생은 어떤 경우에도 값없는 상실일수 없다는것을 깨우쳐주지 못했던가!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죄많은 사람들의 위협과 박해에 굴복할것이 아니라 추악한 범죄를 맞받아 싸워야 하며 이 투쟁을 떠나서는 그 어떤 지성의 가치도 량심도 말할수 없다는것을 어찌하여 깨우쳐줄수 없었던가! 문희를 불행에 빠뜨리고 망쳐놓은것이 나다. 그 녀자를 집에서 쫓아낸것도 나다. 그 사람이 저를 못이겨 제발로 뛰쳐나갔다고 나의 죄가 덜어질가. 그럴수록 나의 죄는 더 큰것이다!

진수는 자리에 누워있다가도 이 생각이 떠오르면 놀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나 앉아 오랜 시간을 움직일줄 몰랐고 어떤 때는 그대로 앉아 꺼벅꺼벅 졸기도 하였다.

저녁무렵이였다. 진수는 책상에서 무엇을 내리우다가 책상뒤에 세워둔 안해의 그림에 눈이 미쳤다. 그가 지난해에 전람회장에 내걸었다가 관객들의 혹평을 받고 손수 떼여가지고온 작품이였다.

그 그림을 끄집어내여놓고 보노라니 죽은 사람의 유물을 대하는듯 싸늘한 애수가 가슴에 스며들었다. 진수에게는 문득 총각시절에 어여쁜 문희와 함께 그들이 약혼한것을 알리려고 즐거이 찾아갔던 그 녀자의 어머니네 조촐한 초가집이 눈앞에 삼삼히 밟혀왔다. 그는 그집 울타리가에 키높이 솟은 늙은 피나무아래에서 어린 재일이를 가슴에 안은 문희가 한손을 이마에 얹고 발돋움하며 눈이 빠지게 자기를 기다리는 환상을 보았다.

그는 부지중 조바심을 느끼며 책상앞에 가서 앉아 펜과 종이를 꺼내놓았다. 문희에게 편지를 쓰려는것이다. 그러나 그 어떤 복잡한 사건에 대한 기사도 단숨에 속필로 거뜬히 써내군 하던 그는 안해에게 보낼 편지는 한줄도 쓸수 없었다. 무엇을 쓰랴. 무슨 할 말이 있으랴. 다툼질도 사랑도 미움도 돌이킬수 없는 옛일로 영영 끝나버렸으니 미련이란 있을수 없다. 깨끗이, 랭담히 잊어버리자. 이미 안해도 아닌 그 녀자는 나에게선 죽은 사람이다.…

진수는 한자도 쓰지 못한 종이를 와락 꾸겨 휴지통에 던졌다.

이럴 때 김용기가 기척을 내고 들어와서 진수의 기분상태를 살피며 우물쭈물하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또 한가지 모를게 있어서 왔어요. 거시기 혁명이라는 말의 진짜 뜻이 뭡니까?》

《혁명이라니?》

진수는 받아외우면서도 자기 생각에서 풀려나지 못한채 그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자신없이 대답했다.

《혁명이란거야 본래의것이 다른것으로 뒤집히는 그런거겠지.》

《그래요? 아무거나 그저 뒤집는거라… 모르겠는데요. 난 그래도 혁명이라고 하면 아주 복잡하고 큰뜻인줄 알았는데요.》

진수는 쓰거운 눈길로 문희의 그림을 굽어보며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생각했다.

이 불행한 로동자가 왜 또 이런걸 물을가?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에 짓쫓기는 청년이 세상사의 리치를 캐여보는것이라면 그는 분명 무엇인가 새롭게 주장하고싶은것이 분명하다.

언제부터인가 용기는 드문히 진수에게 여러가지 물음을 던지고있었다.

《빈익빈, 부익부》라는것은 무엇인가? 로동자들은 뼈가 휘게 일하면서도 멀건 죽물에 눈물을 떨구고 부자들은 천하의 못된짓은 다하면서도 제세상처럼 날뛰는데 왜 그놈들의 손발을 묶는 법은 없는가? 파업하는 로동자나 항의시위를 하는 학생들에 대해선 언제나 《빨갱이》물이 들었다고 탄압하는데 그렇다면 《빨갱이》라는 사람들은 로동자나 학생들의 편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왜 나쁜 사람이란 말인가? 소문에 듣자니 그런 사람들이 정치를 하는 북은 더 강하고 살기도 좋다는데 그것은 사실인가?… 모두가 이런 류의 심각한 문제들이였다.

진수는 용기의 성실성을 믿는데서 이 한고향내기 로동자가 이런 질문을 하게 되기까지는 내부의 고민이 심했을것과 또 그가 진수 자기를 자신처럼 깊이 믿고있었던만큼 진지하게 대답하느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어느 한번도 용기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그자신의 견해가 너무 추상적이거나 정돈되여있지 못했던데다가 그의 해석에는 수더구가 너무 많아서 본질이 흐릿하게 전달되군 했다. 그때마다 용기는 부리부리한 눈을 묘하게 쪼프리고 힐문하듯 그를 바라보았는데 거기에는 분명 《공부깨나 했다는 당신도 별수가 없군요.》 하고 비난하는 빛이 확연했다.

진수에게는 큰 충격이였다. 자신을 당당한 지성인으로 자부했건만 생활과 시대의 기초적이면서도 근본적인 적지 않은 문제들에 대해서 견해가 투철하지 못한것을 아프게 느꼈다.

《물론 아무거나 망탕 뒤집는다고 혁명일수야 없지.》

진수는 이번에는 명쾌하게 풀이할수 있다고 생각하고 빙그레 웃으며 활기있게 말했다.

《옛날에는 권력을 가진자는 신성한 하늘의 뜻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는걸로 믿었지. 그래서 그 통치자가 하늘의 뜻에 어긋나게 정치를 할 때는 하늘이 대노하여 이전의 통치자를 짓부시고 새로운 통치자를 내세운다고 했거던.》

《하늘이라니요?》 하고 용기는 어이없이 헛웃음을 쳤다.

《거참 멋있군요. 뜬소경같은 하늘이 그런 재간을 부린단 말이죠? 그럴것 있나요. 혁명은 염라대왕의 화투짝놀음이다, 이러면 어때요?》

《허 이거 한대 먹이는데. 그런데 용기, 그런게 아니구, 민심이 천심이란 말 있지 않아? 하늘이란 결국 백성, 민중의 뜻이란 말이거던. 그깐 옛말은 그렇다치고… 그건 결국 민중을 억압하고 못살게 구는 더러운 정치를 들부시고 만사람이 자유와 문명을 공기처럼 마시며 숨쉴수 있는 좋은 정치를 세우는것일수도 있는거야. 그러자니 쉬울턱이 있나. 세상의 나쁜것을 온통 새롭게 뜯어고쳐야 하는거니까.…》

용기는 로동에 거칠어진 커다란 손으로 강심이 느껴지는 너부죽한 턱을 뻑뻑 문지르며 한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항의하듯 눈을 맵짜게 치뜨며 물었다.

《그렇다면 더러운 5.16 같은것이 어째서 혁명행세를 합니까? 그따위도 혁명이란 말입니까, 예?》

《글쎄, 그거야 말도 안되겠지. 이건 밖에 나가선 조심해야 할 얘긴데… 내 생각에도 5.16이란건 4.19를 해친 교형리야. 놈들이 아무리 봉황새날개로 치장해도 그건 사람잡는 총칼과 쇠사슬과 짐승의 주둥아리이외의 다른게 아니거던. 한마디로 하면 반혁명이겠지. 그쯤해볼가?》

《아니 하나만 더! 그럼 지금의 이 미친놈의 세상을 뒤집어야 하는건 틀림없겠죠? 문젠 그거예요. 그걸 하는데는 무슨 방법 같은게 없을가요? 우리 같은거야 나설 일이 못되겠지만 그래도 앞이 너무 캄캄하니까 죽을 지경이거든요. 토굴집 하나 짓재도 계산이 있는데 그런 큰일이야 의례 그럴듯한 방법이 있어야 할거 아니예요?》

진수는 속이 활랑거렸다.

그럴듯한 방법! 너무도 엄청난 문제였다. 이즈음 초보적인 투쟁에서 집중타격을 받고 맥이 빠진 그로서는 생각하기에도 두려운 문제였다. 용기가 의젓해보였다. 그렇다면 자본가에게 피땀을 빨리우는 이 청년은 그 욕되고 괴로운 나날에도 실망을 모르고 저 거쿨진 손으로 끊임없이 세상을 어루더듬으며 삶의 길을 찾아 헤맸단 말인가. 절망에 어두워진줄 알았던 저 서늘한 눈에 쉬임없이 어둠을 찌르는 탐조등이 숨어있고 고포점에서 사온 낡은 군복에 검정물을 들여입은 저 초라한 행색속에 왕망치로도 바술수 없는 불덩어리심장이 골풀이치고있었단 말인가!

용기의 질문은 진수로서도 미지수로 되여있었던것이여서 그는 마무리를 지으려고 단편적인 생각을 이것저것 하며 문희의 그림을 치웠다.

이때 누군가 뜨락으로 뛰여들어오며 그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내다보니 얼굴이 벌거우리한 안한수가 퇴마루앞에 와서 히물히물 웃고있었다.

진수는 밖으로 나가는 용기에게 생각해보고 후에 대답하기로 약속하고 뒤따라 마루에 나섰다. 한수는 힘찬 걸음으로 뜨락을 나서는 용기를 지켜보다가 진수에게 말했다.

《희소식이야. 우리가 승리했네. 신문이 복간됐어!》

그는 급히 한대 피워물고 우쭐렁대며 말했다.

《빨리 가세. 자네를 데려오라고 야단들이야!》

진수는 오래간만에 즐거운 기분으로 집을 나섰다. 한수는 빌빌 앓던 위달종편집국장까지 고혈압이 쑥 내려가서 병원에서 뛰쳐나왔고 복간을 기념할 신문의 첫호가 왕이 명절날에 받는 수라상처럼 푸짐하게 편집됐다면서 신문사와 진수의 승리에 대해서 떠들었으나 진수는 무엇을 두고 승리했다는것인지 알수 없었다.

그들이 신문사현관에 도착했을 때 한수는 앞질러 안으로 뛰여들어 가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여- 정진수가 왔어! 진수가 왔어-!》

그 소리에 숱한 기자, 편집원들이 방에서 나오더니 진수에게로 달려왔다. 모두들 앞을 다투어 진수를 붙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며 환영했다.

진수는 웃음을 뿌리면서도 어찌할바를 몰라했다. 저때문에 신문이 정간되고 모두들 고통을 겪은걸 생각하면 용서를 빌고싶은 생각까지 났다. 그런데 동료들은 환영이 부족한것만 같아 그를 맞들어 헹가래를 쳐주며 환성을 올렸고 목마까지 태워가지고 떠들어대며 웃층으로 올라갔다. 진수는 무등 기쁘면서도 한편 투쟁에서의 실패와 안해의 버림을 받은 수치심이 떠올랐다. 제발 이러질 말라고 빌다가 짜증까지 냈고 목마에서 내리려고 심술부리는 소년처럼 떼를 쓰기도 했다. 그럴수록 동료들은 그것이 재미있어 더욱 열을 올렸다. 그래서 진수는 위달종편집국장을 복도에서 만났을 때도 목마를 탄채 그와 내리악수를 하였다. 아직 병세가 채 가시지 않아 반들거리는 가무잡잡한 얼굴이 부석부석한 위달종은 화만 돋구는 말썽군이 감히 군마를 탄 개선장군처럼 받들려있어서 어차피 자기는 미천한 시중군처럼 쳐다볼수밖에 없게 된것이 참을수 없었다. 그는 난쟁이를 겨우 면한 자기의 작은 키에 대해 이때처럼 처참하게 느낀 일은 일찌기 없었다. 그러나 용케도 곧 씁쓸한 웃음을 짓고 진수의 다리를 철썩치며 고자세로 동정을 표시했다.

《이 친구, 참 안됐구만. 응?》

그리고는 싸늘한 표정으로 일변하여 반대쪽으로 가버렸다.

진수는 사무실에 들려 한시간가량 동료들과 잡담을 했다. 그러고있던 때에 량성도가 비분이 어린, 풀이 죽은 꼴로 들어와서 진수의 손을 아프게 틀어쥐며 느닷없이 혼자소리처럼 말했다.

《절벽이야, 통하지를 않아… 어쩌겠나, 마음을 든든히 다지라구!…》

그리고는 중형을 선고받은 피고인같은 암담한 얼굴을 하고 방에서 나갔다. 량성도를 지켜보던 기자들의 눈길이 진수에게로 쏠렸다. 량성도가 암시한 진수의 불행이란 무엇이겠는가? 그것은 해임일것이다.

진수도 그것을 직감했다. 예상하고있던 일이 닥쳐온것이다. 긴 침묵이 흘렀다. 문득 전화종소리가 요란히 울렸다. 주한숙이 전화를 받더니 송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알렸다.

《편집국장이 진수씨를 부르는군요.》

진수가 편집국장실에 들어갔을 때 위달종은 자기의 안락의자에 앉아 물을 마시는 닭처럼 고개를 잔뜩 쳐들고 가루약을 마시고있었다. 진수는 방안복판에 버티고 서서 지켜보았다.

《참 모를 일이거던. 난 왜 진수군과는 즐거운 일을 놓고 웃으면서 만날수가 없는지. 본심과는 달리 늘 불쾌한 일로 다투기만 했거던. 안됐소만 또 슬픈 소식을 전하겠소. 그저께 일자로 신문사리사회는 군을 해임하기로 결정했소.》

위달종은 한옆으로 돌아앉아 몽톡한 손끝으로 가무잡잡한 이마를 습관적으로 툭툭 두드리며 이렇게 말하고는 서랍에서 한장의 문서를 내놓았다. 그것은 신문사 사장의 직함이 찍힌 진수에 대한 해임통지서였다. 사장이 관례와는 달리 편집국장을 내세우고 슬쩍 숨어버린것은 모욕적인 경멸을 강조하기 위한것임을 느낀 진수는 분노가 치밀어오르는것을 느꼈으나 한마디도 반응하지 않는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믿어주시오. 나로선 어떻게 하나 이 사태만은 막아보려고 했으나 뜻대로만 될 일이 아니였소.》

위달종은 짐짓 신중하게 말했으나 바로 3일전에 사장을 만났을 때 성도가 《진수군을 해임하는건 리사회의 뜻이기에 앞서 공보부의 요구라는 사실을 부인할수야 없지요.》 하고 의견을 내자 자신이 《이 문제야 더 론의할거나 있습니까?》 하고 잘라말한 사실은 잊은듯 했다.

그는 처음으로 눈을 들고 진수의 얼굴을 언뜻 살폈으나 상대의 노기가 서린 서늘한 눈길에 부딪치자 곧 얼굴을 돌리고 말을 이었다.

《공보부의 압력도 있었지만 이곳 리사회는 단호했소. 결정을 하구선 나더러 전하라니 딱한 일이 아니오. 한 시대를 같이 헤쳐가는 지성인으로서 도중에 이렇게 헤여지는것이 가슴 아프오. 더구나 부인까지 집을 나간 이런 때에…》

《그만두시오, 국장선생.》

동정을 받는다고 생각한 진수는 끝내 참지 못하고 위달종의 말허리를 꺾으며 쏘아붙였다.

《당신도 더 출세하자면 그따위 사카린이나 뿌릴 생각을 말고 태권도 같은거나 더 익혀야 하지 않겠소? 그럼 가보겠소.》

진수는 끝까지 참아내질 못하고 괴로움을 드러내며 화까지 낸 자신의 경박함을 꾸짖으며 홱 돌아섰다.

나는 왜 이렇게 그릇이 작을가? 쫓아내주시니 이 이상의 표창이 없다고 랭소나 뿌리고 떠날수도 있지 않았을가?

위달종은 화가 나서 짖어대듯 마구 된욕설을 퍼부었으나 진수는 자기 생각에 잠겨 방을 나섰다.

그가 자기의 방으로 돌아왔을 때 거기에는 김성우, 주한숙을 비롯한 십여명의 기자들이 기다리고있다가 그를 둘러쌌다. 진수는 침착히 담배를 피워물고 슬픔이 어린 부드러운 미소로 동료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끝났어, 서운한 해방일세. 미안하이. 그사이 형씨들께 걱정만 끼치다가…》

《더러운 놈들, 그럴줄 알았어.》

성우가 사나와지며 개탄했다.

《자네 없이야 무슨 신문이겠나. 총에서 격발기를 뽑아버렸어!》

진수의 옆에 선 주한숙은 애섧은 미소를 짓고있는 그의 창백한 얼굴을 애달프게 바라보더니 눈물을 흘렸다. 진수를 재능과 담력이 겸비된 뛰여난 기자로 우러러보아온 그 녀자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책상에 엎드려 소리내여 울었다. 모두의 눈이 젖어올랐다.

나이많은 조학준이라는 기자가 진수의 손을 조용히 틀어쥐였다. 민첩하고 기품있는 탐방의 명수로서 시원스럽게 벗어진 번들거리는 이마에 손을 한번 얹기만 하면 날카로운 풍자가 마구 쏟아진다고 하여 《사색하는 놋대야》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그는 젖은 눈을 슴벅거리며 위로했다.

《맥을 놓지 말라구. 두고보게나. 우리가 왜 지겠나? 복직은 시일문제야. 걱정은 정형이 부인도 없는 집에서 절망할가봐 무서운거야. 그러지 말고 우리 집에 오게. 방이 있어. 약속하게나, 응?》

다른 기자들도 진수를 청했다. 진수는 동료들이 고마왔다.

《이 사람은 우리 집에 오기로 벌써 약속했어.》

성우가 끼여들더니 순간에 노기등등해서 소리쳤다.

《이러고있을게 뭔가. 집단적항의다. 리사회구 낫자루구 막 들이받구 항의서를 내서 공보부새끼들도 조겨대야 해.》

진수는 그럴것 없다고 만류했으나 친구들은 벅작 떠들며 복도로 달려나가 다른 부서의 동료들까지 불러내여 소동을 일으켰다.

한패는 위달종에게로 찾아가고 더러는 사장네 집으로 가자고 떠들면서 밖으로 몰려나갔다. 량성도와 안한수를 비롯한 몇명은 진수를 료정으로 끌었으나 그는 몸이 불편하다는 구실을 대면서 사양하고 신문사를 떠났다.

그는 쫓겨나면서도 자기 의사에 따라 신문사를 포기하는것으로 자기를 위안하려고 했다. 음악을 들으려고 극장에 간 사람이 거기서 뜻밖에 너절한 어리광대놀음을 보고 중간에 뛰쳐나온다면 그보다 당연한 일이 또 있겠는가.

그는 따라나온 동료들을 돌아보며 이런 생각까지 하였으나 어느새 자신을 동정하며 괴로와하는 그들의 눈으로 자신을 관찰하였다. 그러자 문득 충청도의 시골고향에서 지낸 먼 옛시절의 한토막 추억이 느닷없이 떠올랐다. 장난이 세찼던 그는 지주의 마름이 길가에 세워둔 자전거를 타보다가 시궁창에 빠뜨리고 달아났으나 끝내 마름에게 덜미를 잡혀 숱한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모질게 매를 맞았다. 그런데 맞는 매가 아픈것보다는 아이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이 꼴을 당한다는 수치심때문에 죽을 지경이였다. 그것은 벌써 삼십년전의 아득한 옛일이였다. 헌데 어찌하여 그때의 절망적인 부끄러움이 이렇게도 피부에 생생히 감각되는것일가, 동정을 받는 패자로서 신문사에서 쫓겨났다는 느낌이야말로 온몸에 진창을 뒤집어쓴듯 한 괴로운 수치심을 일으킨것이였다.

동료들을 돌려보낸 진수는 금방 가로등이 켜진 호화주택가를 걸어가다가 머리우에서 녀인이 호들갑을 떠는 웃음소리가 들려 무심히 그쪽을 쳐다보았다. 방안에서 내비치는 푸른 불빛에 물든 높은 로대에서 장발의 젊은 녀인이 건장한 사나이의 어깨에 팔을 얹고 보도를 굽어보며 무엇때문인지 깔깔대고있었는데 진수에게는 똑 자신에 대한 조롱처럼 느껴졌다. 그의 눈길은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가까운 창문에서 멎었다. 거기서는 군복을 입은 대머리의 침울한 사나이가 입귀에 커다란 고불통을 드리우고 엄엄하게 서있었다.

저놈도 나의 적인지도 모른다. 내가 쫓겨난것이 무척 만족스러운 모양이지.

이렇게 생각한 진수의 머리속에 환상이 끓었다. 그는 권력자와 부자들의 궁전과 요새들의 량쪽에 렬지은 거리로 황황 타는 홰불을 들고 지나가는 자신을 본다. 층층이 렬지은 휘황한 창문들에선 권력의 요충에 틀고앉은 정상배, 고위관료들, 억대의 부자들과 군경장성따위들이 잔치상이며 음모의 원탁에서 일어나 하나같이 진수를 손가락질하며 목청껏 소리친다.

《저놈은 소동군이다!》

《저놈과 우리는 같이 살수 없다! 당장 처단하라!》

창문마다에서 쏟아지는 소리는 무수한 화살처럼 몸에 떨어져 박혀도 진수는 고집스럽게 걸어가며 생각했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나는 자식들아, 너따위들이 무슨 정치를 한다구그래. 내가 살아움직이고 진실을 말하는것이 그렇게도 무서워? 그럴게다. 나는 민중의 량심이니까. 무서울게다. 래일이면 네놈들은 철잃은 풀메뚜기로 변할테니까…)

진수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듯싶어 걸음을 멈췄다. 출입자들로 붐비는 캬바레의 현관앞에서 밤화장을 짙게 한 설희가 한손으로 입을 가리우고 웃으며 빤히 지켜보고있었다.

《아니, 그렇게 부르는데도 듣지를 못하세요. 신문이 다시 복간이라지요? 혹시 어데 아프지 않으세요? 어마나, 얼굴이 막 무섭군요. 또 무슨 일이… 혹시 해임이라도 된거 아니예요?》

진수는 머리를 끄덕이고 행인들을 쓸쓸히 바라보았다.

《그럴줄 알았어요. 내가 뭐랬어요. 아저씬 소경이구 둔재바리예요.》

설희는 내기에서 이긴것처럼 우쭐하여 로골적으로 경멸하고는 때마침 다가온 유표하게 샛노란 양복차림에 얼굴이 곱살한 사나이의 손을 반갑게 잡았다. 그리고는 그 사나이야말로 자기의 행복이라는듯이 미소를 짓더니 순간에 오만한 얼굴로 진수를 돌아보며 덧붙였다.

《좀 늦긴 했어도 이제라도 사는 방법을 배우세요. 아유- 오죽하면 언니가 달아났겠어요?》

진수는 설희를 이야기상대로도 여기지 않았으므로 별로 노엽게 여기지도 않았다. 그보다도 이런 부나비같은 인간이 자기의 처제였다는데 대해서 부끄럽게 생각했다.

《그만두지 못해? 철부지 같은것.》

진수는 얼굴을 돌리고 가려고 했다.

《거기다 훈계까지 하시우? 옮겨가 살데나 있으면서 그래요?》

설희는 이 말을 남기고 사나이의 팔을 끼고 환락의 소굴로 달려들어갔다.

옮겨가 살데라니, 무슨 뜻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나 진수는 이말이 새로운 재난을 의미한다는것을 몇분후에 알수 있었다.

그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쪽문앞에 한대의 화물자동차가 서있고 너덧명의 사나이들이 어두운 널마루에 걸터앉아 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한 사나이가 꾸벅 인사를 하며 얄팍한 봉투를 내민다.

방안에 들어가서 전등을 켠 진수는 장인 송건호가 달필로 휘갈겨 쓴 다음과 같은 편지를 읽었다.

《정진수군에게!

거두절미하고 용건만 쓰겠소. 다름이 아니고 군이 지금 쓰고있는 집을 내주어야겠소. 그 주택은 결혼한 문희에게 내가 마련해주었던 나의 재산임을 상기해주시오. 내 딸이 군과의 관계를 끊은 이상 나와 군과의 관계도 끝난것으로 아오.

군이 저지른 필화사건때문에 내가 입은 피해는 헤아릴수 없이 크지만 옛 친분을 고려해서 그것은 묻어두겠소. 다만 주택만은 나의 동업자에게 넘겼으므로 즉각 내여주시오. 문희의 짐은 나의 집에 옮기겠소. 이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 그애의 재산목록을 정확히 작성할수 있게 되기를 기대하오.

나 역시 인간이니 군의 불행이 가슴아프오.

송건호》

진수는 온몸의 힘이 발밑으로 새여나가는것만 같았다. 의자에 주저앉은 그는 흘러간 갖가지 생활의 온갖 희노애락의 추억이 응결돼있는 방안의 비품들을 돌아보았다. 손에 익은 그 잡동사니들은 처참한 붕괴를 앞두고 여러해나 저를 애무해온 불행한 주인앞에 마지막으로 다채로운 정취를 한껏 풍기며 세상을 헤쳐온 가정이라는 쪽배가 사나운 풍랑속에서도 이따금 맛본 웃음과 노래며 덧없이 품어본 희망을 상기시키는듯싶었다.

(이제 나에게 남은것은 나자신밖에 없는가. 잘됐지. 다 없어지라지. 직업도 안해도 잃은 놈이니 집까지 잃는거야 백번 지당합지요. 이쯤되면 불행의 완성이라고 볼수 있지 않을가? 헌데 이러다가 내가 성인이라도 되면 그것도 문제가 아닌가.…)

허탈상태에서 자신을 빈정거린 진수는 감상에라도 빠질가 두려워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편지를 가져온 사나이에게 그것을 도로 넘겨주며 말했다.

《집세는 물지 않아도 되겠는지 걱정하더라고 전해주시오.》

《글쎄요. 전합지요.》

사나이는 꾸벅 머리를 숙이더니 장부책을 펼쳐들고 말했다.

《그럼 선생님 소유물만 갈라내여주시오. 나머지는 명세를 작성하고 다 운반하겠습니다.》

진수는 짐군들앞에서 제것이라고 볼수 있는 물건들을 갈라냈다. 가정이 참혹히 파괴되였다는것이 이렇게도 더러운 아픔인가 하는것을 비로소 느끼는듯싶었다. 아무런 멋도 없는 생활을 계속하기 위하여 제 물건을 제가 찾아쥔다는것이 그리고 비록 사소한 물건들이지만 제가 그것들의 임자라는것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슬프고 부끄러울가 하고 그는 생각했다. 헌데 막상 고르면서 보니 천여권의 책과 약간의 옷가지를 내놓고는 두 방벽에 가득한 물건들은 거개가 문희의것이였다. 그중에는 진수의 수입으로 장만한것도 적지 않았으나 아낌없이 짐군들에게 내주었다. 다만 한채의 이불과 몇몇 부엌비품만은 용기네를 위하여 남겨두었다. 자기의 짐은 일단 옆집에 옮겨놓았다가 새로운 거처를 잡은 후에 가져가기로 작정한 진수는 옆집으로 찾아가서 주인에게 량해를 구하고 돌아왔다.

방안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을 피해 어두운 뜨락귀에 선 진수는 짐군들이 부산스럽게 짐을 들어내다가 짐차에 싣는 광경을 바라보았다. 련속된 타격에 지친 그는 아무것도 깊이 생각할수 없었다. 그러나 몇가지 결론만은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그것은 창덕사 주민들이 당한 재난이 자기에게 와서 되풀이되고있다는것, 인간과 대립된 권력과 자본은 사회생활의 모든것을- 가정과 도덕도, 문화와 풍습, 사람들의 일상생활과 뉴대마저 더럽히고 파괴한다는것, 그리고 리성의 충고나 규탄을 들을 귀가 없는 야만들에 대해서는 오직 힘으로 된매를 안겨 쓰러뜨리는것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그것이였다.

진수는 너무도 허기증이 나서 저녁이라도 사먹으려고 집을 나섰다. 그는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쳐있어서 비칠거리며 겨우 발을 옮겨디뎠다. 대통로가 보이는 골목길어구까지 겨우 걸어온 그는 숨을 돌리며 바람에 설레이는 버드나무우에 걸린 가로등을 쳐다보았다. 그때 강동혁과 김성우가 이쪽으로 오다가 진수를 알아보고 걸음을 멈췄다. 진수는 그런줄도 모르고 이번에는 등을 구부정하고 땅우에 얼룽이는 버드나무의 그늘을 멍하니 굽어보았다. 한순간 몸을 기울이며 그렇게 서있던 그는 파도를 탄듯 한 심한 어지럼증에 머리를 외로 꼬면서 털썩 땅바닥에 쓰러졌다.

황급히 달려온 동혁과 성우는 진수의 팔을 잡아일으켰다. 그러나 탁 풀어진 눈길로 친구들을 바라본 진수는 그들의 팔에서 신경질적으로 제 몸을 빼더니 다시금 땅바닥에 쓰러지면서 애원조로 말했다.

《건드리지마. 아무 일도 없어. 제발 가라!》

성우에게서 진수의 해임소식을 듣고 온 동혁은 그를 다시 일으키며 아픈 심정을 누르고 거칠게 꾸짖었다.

《무슨 추탠가. 이건 뭐 실업자가 됐으니 이젠 사는 일까지 넌더리났다는건가? 정신을 차려, 정신을!…》

진수는 두사람이 부축해주는대로 일어서기는 했으나 그들을 물리치면서 말했다.

《날 버리라구. 난 너희들의 수치야. 녀편네도 직업도 집도 자존심도 다 빼앗기고 털리운 패배자, 바보다!》

《아니, 집까지 빼앗기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성우가 다우쳐물었다. 진수는 꽤 오래동안 두사람을 멍청히 바라보고나서 버드나무의 드러난 뿌리우에 맥없이 앉으며 집을 잃은 일을 마지못해 전했다.

동혁과 성우는 아무런 위안의 말도 할수 없었다. 버드나무가지의 그늘이 어지럽게 얼룽이는 진수의 수그린 잔등을 굽어보는 동혁은 한손으로 이마만 자꾸 문지르고있었다. 진수를 도와주지 못한것이 죄스럽기만 한 그에게는 그가 안해를 잃은것도 벗을 지켜주지 못한 자기에 대한 징벌처럼 분하고 아팠다. 이제 와서 동정이나 한다면 얼마나 위선인가. 그는 진수가 자기의 절망적인 고통으로 그를 질책하면서 말없이 비난하는것만 같아서 마주보지도 못했다.

성우는 바지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설렁거리는 버드나무사이로 달을 쳐다보면서 개탄하고있었다.

《이게 무슨 생활인가. 인생이란건 쓸데없이 누구나 적의 아니면 몰리해를 환경으로 두르고있으니 넨장, 무얼 할수 있겠나. 기껏 한다는게 몸부림뿐이지.》

진수가 담배를 꺼내여 붙여물고 연기를 길게 뿜으며 한탄했다.

《난 안돼. 틀렸지. 버티고 싸운들 무슨 보람이 있어? 죽도록 짓밟히고 다 잃어버렸지.》

그는 울분에 일그러진 얼굴로 동혁을 문득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날 버리게. 난 친구도 아무것도 못되네. 정말 부탁이야, 날 잊어버려주게!…》

동혁은 진수를 뜨겁게 안아주고싶었다. 련속된 타격에 맥을 놓고 쓰러진 그의 절망을 함께 아파하면서 우정의 눈물로 상처를 씻어주고싶었다. 그러나 그러한 동정은 오히려 그의 정신을 깡그리 무너뜨릴수 있는 위험도 있었다.

《진수, 그것도 말이라고 하나? 이제는 절망이란건가? 꼴 좋다. 놈들이 이러고있는 너를 보았으면 춤을 출게다. 항복으로 놈들에게 축하의 인사라도 보내자는건가? 너절하다. 너의 자존심이 이따위 눅거린줄은 정말 몰랐다!…》

친구의 불행앞에서 약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은 동혁은 애써 분노를 불러일으키며 날카로운 말을 골라 쏘았다. 진수는 천천히 머리를 들고 동혁을 쳐다보았는데 그 얼굴에는 놀라움이 가득했다.

성우가 긴장을 누그러뜨리려고 끼여들었다.

《여, 패전장군, 어때 한커트 찍어놓고 두고두고 감상회나 열가? 일어나게. 가서 한잔 하는거야. 넨장.》

그러면서 동혁을 제지하려고 했다. 동혁은 엄하게 그를 물리쳤다. 이러한 때엔 오직 호된 비판으로써만 친구를 구원할수 있다고 생각한 동혁은 더욱 엄하게 꾸짖었다.

《난 그래도 네가 투쟁과 명예의 참뜻을 아는줄 알았다. 그런데 이건 뭔가? 제가 공격할 때는 강한체 하고 타격을 입으면 항복하고… 거참 멋있는 투사다.

잊어버려달라구? 넌 그래, 투쟁이란 수난의 련속인줄 몰랐단 말이냐? 세상이 이런줄 알면서도 박수를 받고 꽃다발이나 받을줄 알았어? 넌 너의 희생적인 투쟁으로 새로운 륜리를 만들 결심 하나 없이 그저 얄팍한 량심의 발작으로 싸움에 나섰단 말이냐?

내가 왜 이런 설교까지 해야 하나? 슬픈 일이다. 정말 기가 막힌다!…》

숨결도 없이 앉아있던 진수가 일어서더니 동혁의 어깨를 안으며 격정에 갈린 소리를 했다.

《고맙다!… 난 치욕때문에 견딜수 없었다. …이 지경인데도 날 버리지 않는다면 나도 다시 생각해보겠다.》

동혁은 무엇인가 부드러운 말을 하려고 했으나 끝내 한마디도 못했다. 옆으로 돌린 그의 얼굴에 번들거리는것이 흘러내렸다.

셋은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밤 진수는 저마끔 자기 집으로 가자는 동료들의 간청을 물리치고 고향에 가서 당분간 쉬겠다면서 굳이 서울역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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