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3 회


제 6 장


33


겨레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준 김일성장군님의 선언은 침략자들과 압제자들을 대혼란에 몰아넣었다. 서울의 상류사회에서는 어떤자의 입에서 나왔는지는 알수 없으나 조선과 미국과의 전쟁이 당장 터져서 모두다 몰살당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통신들은 서울과 미국의 도시들에서 하루밤사이에 주가가 폭락한 소식이며 일본의 군수재벌들이 지난 조선전쟁과 윁남전쟁에서 맛을 들인 그 황금소나기가 다시금 쏟아질것을 몽상하면서 앞을 다투어 미국의 장성들과 관료들의 턱밑으로 다가들고있음을 전했다. 그러나 서울의 권력자들과 부자들은 새벽닭이 우는 소리를 들은 밤도깨비처럼 놀라 갈팡질팡했다. 공포는 보이지 않는 쇠몽둥이로 모든 질서를 들부셔버렸다. 부자들은 부랴부랴 재산도피소동을 벌렸다. 영원한 영화를 꿈꾸던 왕궁같은 호화주택들로부터 값진 재산만을 골라실은 짐차행렬이 한강이남으로 속력을 놓는가 하면 상가에서는 보석상들이 부자들을 개몰듯 했다. 어느 부자나 간수하기 어려운 부피큰 재산을 밀몰아 팔아서는 보석으로 바꾸어쥐려고 안달아했으므로 보통때엔 장사치들을 코밑으로 내려다보던 큰 주식회사의 회장, 사장족들이 가물치처럼 보석상인들의 눈에 들려고 그들을 《형님!》, 《령감님!》 하고 불러대면서 아첨경쟁을 벌렸고 서로 경쟁자를 물리치려고 덜미를 잡아 끌어내는가 하면 골받이를 하면서 아귀다툼을 벌리기도 하였다. 어느 회사의 뚱뚱한 번대머리사장은 필사적인 싱갱이끝에 대부분의 재산을 판 거액의 돈을 보석으로 바꾸어쥐고는 호걸웃음을 터뜨리며 만족해하였으나 끝없이 몰려드는 사람들속에 묻혀 시달리는 사이에 귀신같은 날치기에게 보석꾸레미를 도난당했다. 절망으로 얼굴이 새까매진 그는 두팔을 내두르며 마디없는 여우울음을 울며 쓰러졌다.

이것은 구경삼아 들렸던 진수가 목격한 한 장면이였다.

부자집 녀편네들은 계돈찾기에 바빠맞아 돌아쳤다. 계주가 돈을 가지고 도망쳐서 거액의 돈을 떼운 계집들은 경찰들을 들볶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암시장에서 거래되는 딸라값이 터무니없이 뛰여올랐다. 평상시엔 그늘속으로만 다니던 딸라장사치들이 수닭처럼 차려입고 공공연히 부자집에 드나들면서 혀가 돌아가는대로 큰소리를 탕탕 쳤다.

하루하루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혼란은 더욱 심해졌다. 한강이남으로 옮겨앉기소동이 벌어지던것이 이제 와서는 배나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나 혹은 외국으로 내빼는 풍조로 바뀌였다. 비행장과 항구들은 도피소동으로 란리판을 이루었다. 항공사에서는 비행기표 한장을 가지고 필사적인 《럭비시합》을 벌리는가 하면 바다길에서는 정기려객선이 초만원이여서 짐배나 밀선이라도 붙들면 천행으로 여겼다. 더러는 짐배에 새까맣게 올라타고 먼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가라앉는 바람에 모조리 고기밥이 되기도 했다.

어느날 진수와 동혁은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우연히 김성우의 괴이한 시를 읽게 되였다. 그들의 옆좌석에서 진수와 안면이 있는 모 잡지사의 편집원이 얄팍한 원고를 읽으면서 하두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어서 진수가 무슨 글인가고 물었더니 그 편집원은 원고를 넘겨주면서 극구 찬양했다.

《보세요. 김성우의 신데 그 사람은 확실히 특이한 천재거든요. 정세를 감각하는 힘과 대담하고 철학적인 환상! 놀라운 개성이죠.》

진수는 궁금해하는 동혁과 같이 읽었다. 《인간종말》이라는 제목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불비 쏟아져

누리엔 휘몰아치는 불바다

세월과 유산도, 사랑과 증오도

모조리 태워버리는 불

찬란히 노래하는 불속에

인간 부나비들은 태초의 티끌

지옥의 사자, 저주받는 《푸에블로》여

《한국》도 미국도 없는

세계의 죽음우에

《에덴》의 원죄가 비돌로 솟았어라…


이렇게 시작된 시는 마지막까지 애조어린 파괴와 몰살의 만가로 흐르고있었다.

진수는 읽어내려감에 따라 모욕을 당한것처럼 불쾌감을 느꼈으나 곁눈질로 함께 읽는 동혁은 아이들의 락서를 보듯 했다. 주제가 너절한데서 좋은 형상을 바랄수 없듯이 성우의 시는 발상부터가 틀려먹은것이였다. 다소나마 시풍과 차이가 있는 점은 언어의 희롱을 위주로 한 추상적인 시들에 비해 이런것은 그런대로나마 군데군데 생활이 얼굴을 내밀고 그에 따라 언어구사에서도 변화가 생긴것이다. 그러나 전체로 볼 때엔 독소를 짙게 풍기는것이였다.

동혁과 진수는 어이없어서 마주보고있었다. 진수는 원고를 편집원에게 넘겨주며 말했다.

《그런것도 시라고 내주겠단 말이요? 제발 그만둬요. 예술은커녕 무서운 독소만 풍기고있소.》

편집원은 알수 없다는듯이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진수와 동혁은 다방에서 나왔다.

진수가 동혁에게 말했다.

《어떤가. 지금 성우를 불러내서 한대 먹이지 않겠어? 영 못쓰게 되기전에 정신이 들게 살멱을 꽉 쥐여놔야 해.》

동혁은 두말없이 동의했다. 그는 가까운 양복점으로 뛰여들어가 전화를 빌어 성우를 당장 호출했다.

《여, 성운가? 나 동혁이다. 자네와 관계되는 아주 급한 일이 있는데 당장 파고다공원 석탑께로 오게.》

저쪽에서는 처음에는 칼싸움이라도 거는줄로 알았는지 말을 더듬으며 애매한 대답을 하더니 이쪽에서 안심시키느라고 웃으면서 말하자 이번에는 즐거운 술놀이 같은데나 초청하는줄 알고 요란스럽게 웃으면서 소리쳤다.

《알만 하이, 시국이 무서우니 알콜로 머리를 약간 마비시켜보자는건가? 듣던중 제일 희소식일세. 당장 초음속으로 날아가겠네.》

사실 성우는 빨리도 나타났다. 파고다공원과 신문사와의 거리를 생각해본 동혁과 진수는 그가 너무도 빨리 온것이 리해되질 않아서 혹시 가짜거나 도깨비가 아닌가 의심할 정도였다. 진한 밤색코트의 앞섶을 열어헤치고 날파람있게 공원입구에 들어선 성우는 약속된 석탑쪽부터 살피며 그리로 반달음을 치려고 했다. 동혁과 진수는 눈에 잘 띄우지 않게 출입구의 안쪽벽에 붙어서서 그를 지켜보았다. 진수가 불쑥 나서며 형사가 범인을 체포하듯이 성우를 거칠게 붙들며 엄포를 놓았다.

《섯! 체포하겠소.》

성우가 돌아보고는 말이발처럼 보기 흉하게 굵은 이발을 온통 드러내며 야단스럽게 웃어댔다.

《허, 이 친구들이 멋을 낸다?》

동혁도 차겁게 노려보며 조용히 협박했다.

《너스레를 떨지 말아. 소용없어!》

그렇게 되고보니 남보기에는 똑 사복경찰이나 정보원들이 사람잡이를 하는 꼴이였다. 그들로부터 가까운 곳에는 초로의 말라빠진 점쟁이가 풍로만 한 구멍탄난로를 끼고 앉아서 몽유병자같은 흐리멍텅한 얼굴을 기울이고 자기앞에 쪼그리고 앉아 입을 하 벌리고 쳐다보는 살집이 좋은 로인에게 하느님이 귀띔해준 운명을 읊조리고있었는데 둘 다 성우가 당하는 꼴을 겁에 질린 눈으로 돌아보았다. 급기야 로인은 옆에 놓았던 운두가 납작한 낡은 중절모를 급히 집어쓰면서 일어서더니 손끝을 달달 떨면서 게걸음으로 도망을 쳤다.

성우는 헛웃음을 쳤으나 동료들이 위협적인 자세를 풀지 않는것이 이상스럽기도 하여 점점 눈이 커졌다.

공원은 한산했다. 철이 늦어지는지 2월도 중순에 잡히는데 한겨울처럼 볕이 성글고 바람이 매웠다. 은회색의 여윈 가지를 젖빛하늘에 휘젓는 백양나무가 삼동추위에 맨살을 드러낸 고아들처럼 처량하게 보였다. 세사람은 팔각정아래를 지나 가까이에 있는 긴걸상으로 갔으나 아무도 말이 없었다. 긴 침묵끝에 성우가 거칠고 오만하게 항의했다.

《나를 모욕하자고 불러냈나? 어떻게 된 판인가, 엉?》

동혁과 진수는 심각해진 눈길로 보았다.

《너의 〈인간종말〉이라는 더러운 시를 보고 참을수 없어서 불러냈다.》 하고 진수가 나지막하나 엄하게 말했다.

《만나자 후려갈기려구 했는데 그렇게 못됐다. 너는 대체 어느 나라 종자냐?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쓰는거냐? 죽음이나 례찬하는 네가, 민족적인 의분도 량심도 없는 너따위가 무슨 시인이야? 한가지 묻고싶다. 북과 미국이 전쟁을 한다면 너는 어느 편이 이기기를 바라겠냐?》

《나도 묻고싶었다.》

동혁도 보탰다.

성우는 분노와 애수가 뒤엉킨 눈으로 진수와 동혁을 치떠보더니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담배를 피워물었다. 그리고 일분나마 씨근거리더니 담배를 땅에 던지고 그것을 발뒤축으로 짓이겨놓으며 큰소리를 쳤다.

《내가 아무렴 양키와 키스를 할것 같은가? 나를 뭘로 아는가? 가겠소. 당신들과 앞으로도 교제를 계속해야 하겠는가 하는건 좀더 생각해보겠소.》

성우는 몸을 홱 돌리고 떠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동혁의 손이 그의 팔을 아프게 틀어잡았다. 성우는 사로잡힌 승냥이가 사냥군을 쳐다보듯 시퍼런 눈으로 동혁을 돌아보며 몸의 균형을 잃고 뒤로 끌리우다가 의자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앉았다. 동혁이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다.

《왜 그 모양이야? 지금이 어떤 땐가? 미국이 핵함대까지 끌고 와서 으르렁대는데 인간종말이 어쩌구어째? 민족의 음료수에 독약을 섞는 범죄다. 이게 얼마나 악독한짓이란걸 알기나 해?》

동혁의 목소리는 나지막했으나 성우를 노려보는 그의 눈길에는 맹수에게서 볼수 있는 두려움을 주는 서늘한 기운이 돌았다. 이것은 그가 몹시 성났을 때에만 볼수 있는것이였다. 성우는 당황한김에 시에서의 죽음이야기는 군사적인 승패나 전쟁피해에 대한 개념에서 나온것이 아니라 자기 시의 추상적인 철학적테마라고 변명하면서 제딴에 짜증까지 냈다. 그러나 그의 말은 통하지 않았다. 동혁은 의자의 등받이에 기대여 서서 담배를 피워물고 진수에게도 한대 권하며 말을 이었다.

《난 그래도 네가 시상금을 서울시장에게 되돌려주었다는 소식을 진수에게서 들었을 때 너를 자랑으로 여겼다. 재능이 머리를 드는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이 희떠운 장난이였단 말인가? 하이네의 말마따나 재능은 없지만 성격만은 살아있다는 시위인가?

우리가 속히웠어. 너에게는 예술적재능도, 재능의 바탕인 인간에 대한 사랑도, 량심도 없어. 민중은 살려고, 사슬에서 풀려나려고 몸부림치는데 넌 눈물 한방울 없이 죽음과 멸망을 뇌까린단 말이냐!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인간증오냐? 넌 사람이 아닌 파충류란 말이냐? 시인으로선 류행복을 걸친 허수아비구 인간으로선 망나니지 뭔가!》

성우는 불꽃이 이글거리는 사나운 눈으로 동혁을 노려보았으나 한마디도 항의를 못했다. 비판을 하는 동혁은 기세가 등등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비판을 받는것처럼 얼굴이 처참한것이 아닌가.

그 처참한 얼굴에 그의 아픔과 우정의 뜨거움이 선명하게 내비친것을 느낀 성우는 가슴이 뜨끔했다. 자신이 혐오스럽기만 한 그는 얼굴을 외로 꼬고 열병환자처럼 입을 하 벌리고 가쁜숨을 쉬였다.

진수가 그의 앞으로 오락가락하며 말했다.

《성우, 너의 시에는 기괴하고 병적인것은 있는데 서민적인 소박성과 아름다움이 없어. 너는 왜 사람들을 인류일반으로만 보는거냐. 서민, 권력층, 부르죠아, 외세, 매국노로 갈라보고 구체적으로 보면 안될가? 너에게는 현실적인 인간과 사랑이 없어. 그러니까 시도 예술도 없는거야.》

동혁이 다시 끼여들었다.

《그게 본질이다. 우리가 얼마나 말했니. 대중을 위하여, 대중을 사랑하는 글을 쓰라고. 민중의 모습이 없는 곳에는 시도 예술도 없어. 그런데 넌 민중을 깔보지? 그들이 가난하고 무식하다고… 너처럼 썩어빠진 양풍에 골이 썩지 않았다고 해서 깔보는거지?》

동혁의 물음이 너무 위협적이여서 성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항의했다.

《이치들이 날 뭘로 아는거야? 민중에 대한 사랑이 뭐 너희들의 전매특허품인가? 내 피에도 온기가 있고 내 눈에도 눈물이 있다.》

그는 폭발적으로 기세를 올리며 이 말을 했으나 곧 바람이 새는 차바퀴처럼 맥없이 꺼져들며 자신없이 말을 이었다.

《하긴 너희들의 말이 옳다. 난 머리가 병들었다. 더러운 관습과 류행의 사슬… 이것때문에 민중에게로 갈수 없었다. 아마 그랬을거다. 그러나 내가 페인이라고 실망하는건 조급한 속단이다. 두고보라. 언젠가는 너희들도 나의 시를 외우면서 인간에 대한 사랑을 즐기게 될게다!…》

진수는 성우가 풀이 죽은듯 한 겉모습과는 달리 속이 살아서 우둘거리는것이 우습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여 동혁을 보며 웃었다.

그러나 동혁은 생각에 잠겨 성우의 흩어진 머리칼을 멍하니 바라보더니 두사람의 등을 밀며 그 자리를 떴다.

《너를 믿고싶지만 뭘 가지고 믿으라는건가? 담보를 달라. 담보를!》

동혁이 손바닥을 내대고 흔들면서 이렇게 말하자 성우는 괴로움이 내비친 혼란된 눈길로 동료들을 바라보다가 얼굴을 돌렸다. 그러더니 어떤 즉흥적인 생각으로 멀지 않은 돌의자에 앉아있는 로인과 아이를 턱으로 가리키며 물었다.

《그럼 민중에게 사죄하는 표시로 저 로인에게 가서 엎드려 절이라도 하라는가?》

성우가 가리킨 로인과 손녀인듯 한 아이는 먼 산골에서 왔는지 얼핏 보기에도 행색이 초라했다.

진수가 동혁의 얼굴을 살피고 대답했다.

《글쎄, 맹세로 된다면 말리진 않겠네.》

성우는 날카로운 눈으로 로인과 아이를 바라보더니 머리를 떨구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더니 결심한 모양, 두 동료를 그 자리에 남겨두고 허청거리는 걸음으로 주저하듯 천천히 로인과 아이를 향하여 나아갔다. 성우에게 두 인간의 모습이 점점 확대되여왔다.

볼모양없이 구겨지고 덞어진 바지저고리를 입고 갈색토끼털모자를 쓴 로인은 돌의자에 앉아 이가 없는 입안에 무얼 넣고 호물거리면서 무릎우에 풀어헤친 음식보자기에서 크고 꽛꽛한 손으로 낟알부스레기를 움켜쥐여 손녀아이의 입에 넣어주고있었는데 되박이마에 머리칼이 푸시시한 아이는 자꾸 헛눈을 살피며 책망을 듣고있었다.

성우에게는 돌아서고싶은 생각도 있었다. 무엇때문에 거지와 같은 로인에게 무턱 절을 한단 말인가.

《시인은 누구앞에도 엎드릴수 없다.》고 동혁과 진수에게 소리치고 영원한 결별을 선언하고싶은 유혹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한 일이였다. 그로서는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력과도 같은 당할 길 없는 그 어떤 힘이 그의 걸음을 앞으로 이끌었다.

어째선지 자신이 두려웠다. 시로써 선이 아니라 악을 조장했다는 죄의식이 안개처럼 서려들었다. 허무와 애수가 무슨 투쟁이겠는가? 그것은 자살의 《반항》이다. 그런데 예술에서는 자살이 언제나 타살이고 무서운 살인이 아닌가.

성우는 자신이 무서웠다. 어디에나 알아주는 곳이 있다면 충심으로 용서를 빌고싶었다. 그를 앞으로 끄는 힘은 바로 이것이였다.

성우는 정밀사진기와 같은 치밀한 감각으로 로인과 아이를 뜯어보았다. 무섭게 처량한 로인이였다. 백발, 쥐여짠듯 한 주름살투성이의 훌쭉한 얼굴, 큰 흙살이 굳어진 손… 모든것이 삶의 고통과 상실의 서러움을 하소하는듯 했다. 로인을 이 지경으로 망쳐놓은것은 세상이 아니라 성우자신이라는 느낌이 가슴을 찔렀다. 그가 업수이보고 배반했던 민중이 로인의 모습으로 나타나 그의 죄악을 고발하는것만 같았다.

로인의 시뻘겋게 짓무른 작은 눈이 성우를 보았다. 그 시선을 포착한 성우는 표현할수 없는 그 어떤 초자연적인 엄한것이 그의 내부를 투시하는듯 한 두려움과 함께 이제는 자신을 벌하는 일만이 남아있다는 처절한 생각이 파고들었다.

정작 로인앞에 엎드리려고 가까이 다가가던 성우는 뒤따라온 동료들이 다급히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성우를 본 순간에 벌써 겁을 먹고 본능적인 방위의식으로 아이를 등뒤에 돌려감춘 로인은 급히 음식보자기를 접어들고 훌쩍 일어나더니 공포에 턱을 덜덜 떨며 뒤걸음을 쳤다. 그러면서도 혹시 운명의 장난으로 오랜 옛적에 헤여진 친척이나 비범한 귀인이라도 만난게 아닌가 하여 심한 전라도억양의 깔끄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이코, 와 이러신게요. 내가 뻐꾸기눈이라서 뉜지 알수 있어야지라우.》

로인이 물러가자 동혁과 진수는 시인의 팔을 틀어쥐였다. 성우는 속이 넘어나는지 젖어오는 눈을 찌프리며 고개를 돌렸다.

《믿어진다! 너에게 힘이 되는 일이라면 뭐든지 하겠다.…》

진수가 그의 어깨를 안으며 어눌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를 버릴수 없다. 버릴수 없어! 끝까지 같이 헤쳐가자, 같이!…》

동혁이 성우에게 담배를 권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마주 바라보는 성우의 눈에 눈물이 번쩍거렸다.


해빛이 설핏해진 저녁무렵에 진수는 집으로 돌아가고있었다. 동료들이 보인 성격미와 충격적인 이야기들을 되새기며 깊은 생각에 잠겨 명동거리를 걸어가던 그는 거리에 흐르던 자동차들의 흐름이 갑자기 멎어서는것을 보았다. 가까운 교차도로에서 승용차와 뻐스가 충돌하여 사상자가 난것이다. 그바람에 통행이 막혀 모든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급정거를 했다. 사고현장에서는 경찰들과 관계실무자들이 구경군들속에 둘러싸여 사건조사와 뒤처리를 하느라고 바삐 돌아치고 있었다. 길이 급한 승객들은 참지 못하고 차에서 뛰여내려 빨리 길을 내라고 앞쪽에 대고 호통을 쳤다.

진수는 그들중에서 문득 민규석을 보았다. 민규석은 길이 급해서 한초한초 시간을 헛되이 버리는것이 제 몸에서 피가 새여나가는것처럼 괴롭고 무서운 모양인지 뚱뚱한 몸을 잽싸게 놀리며 바장거리는가 하면 아이들처럼 바지를 훌훌 춰올리며 앞쪽에 대고 《저 자식들은 굼벵이를 지져먹었나, 넨장. 빨리 길을 열어라! 코등에서 폭탄이 터져야 정신이 들겠냐, 엉?》 하고 악을 쓰는가 하면 《꾸물거리는 꼴 보니 공산군이 쳐들어오면 다 밟혀죽겠다. 에이, 다 뒈져야지, 놈의 씨…》 하고 개탄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자기처럼 저마다 떠드는 구면의 큰 회사의 사장들이며 정계의 모모한 관리들과 대상에 따라 각이한 인사를 주고받으면서 자기의 가족들이 탄 차와 그앞에 선 자기와 한 사나이가 타고 가는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진수는 거기서 가까운 유보도에 서있었으므로 서로 눈이 마주쳤다.

진수도 민규석도 담담한 얼굴로 린색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민가는 무슨 생각에선지 차안에 앉아있는 자기 안해와 딸에게까지 인사를 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화려하게 차려입고 여러가지 짐짝속에 비좁게 앉아있는 안해와 딸은 다행히 진수를 외면하고있어서 그자신만이 진수에게로 다가왔다.

《정선생, 이놈의 세상이 대체 어떻게 돼가는거요?》

그는 등뒤로 손을 내둘러 빼곡이 늘어서있는 차들을 가리키며 개탄했다.

《이거 모두 피난이요, 피난! 한심한 일이 아니요. 그래, 오늘 오후 정세는 어떻소. 당장 와당탕할것 같습데까?》

진수는 주독에 곰보가 된 민가의 불깃한 주먹코를 보며 생각했다.

(북소리에 놀라 허둥거리는 도둑고양이같은 이놈이 과연 자본의 불도젤로 숱한 사람들의 운명을 유린하던 그놈이란 말인가?…)

진수는 대답대신 이죽거리는 투로 말했다.

《글쎄요, 우리야 뭘 압니까. 그런데 〈국회〉의원인 민선생이 이러시면 나라는 어떻게 되고 백성들은 어떻게 되는겁니까. 정말 어데로 이렇게?…》

《글쎄, 나라고 앉은벼락 맞으란 법이야 없지 않겠소. 전망도 료해할겸 두루두루 부산으로 해서 일본쪽으로 슬슬…》

규석은 속이 빈 웃음을 웃으며 말끝을 얼버무리더니 덧붙였다.

《나야 물론 회사일로 출장이지요.》

《글쎄, 그래야죠. 력전의 영웅인 선생이야 의례 몸으로 〈대통령〉을 지키고 〈자유세계〉를 지켜야죠.…》

규석은 무뚝뚝해지며 진수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이때 차단된 차도가 다시 열려 모든 차들이 천천히 움직이며 저마다 경적을 울리는 바람에 규석은 위신을 차릴수 있는 날카로운 말도 던지지 못한채 자기 차로 달려갔다.

진수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는 차도에 붐비는 도주하는 소란한 무리를 보며 생각에 잠겨들었다. 이 며칠사이에 여러곳에서 목격한 상층사회의 혼란과 도피소동은 그에게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확인케 했다. 그것은 권력자들은 겉보기에는 빈틈없이 조직되고 강한것같이 보이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승냥이들의 동맹으로서 어떤 막강한 세력이 도전해오거나 그것으로 운명의 위협을 느낄 때에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며 살아남기 위해 서로 들볶는 악마들처럼 수라장을 벌리는 리기적인 겁쟁이들이라는 사실이였다. 진수는 이전에는 생각하기를 권력자들의 세계는 련쇄적으로 엉켜있고 그 조직의 모든 고리가 완강한 방어수단과 공격수단을 갖추고있는 반면에 서민들의 저항세력은 비록 정당하고 투쟁에서 용감하긴 해도 산만무질서해서 설혹 국한된 공세는 가할수 있어도 종당에는 패배할수밖에 없지 않을가 했었다. 이 점이야말로 그의 고민거리였다. 그는 4.19항쟁이나 6.3투쟁을 회고할 때조차 군중의 격랑이 가라앉기 바쁘게 다시 군중을 짓밟고 올라선 권력자들의 조직된 폭행과 그놈들의 힘을 잊을수 없었다. 민주주의가 말살된 파쑈적인 사회에서는 량심과 정의의 뼈아픈 수난은 어쩔수 없는것이라고 생각했다. 창덕사사건에서 자신이 당한 고통은 그것을 또 한번 증명한것이였다. 그러나 이제 보니 죄악으로 빚어진 상층사회란 검질기면서도 우습도록 허약하며 능히 때려부실수 있는것이였다. 진수에게는 하나의 커다란 발견이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