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7 장


34


문희는 꿈에 자기의 리혼문제를 다루는 재판에 참가하여 모진 괴로움을 당했다. 판결은 리혼이였다.

잠에서 깨여보니 아침이 밝아오는 밖에서는 모든것을 짓찢어던지는듯 한 무서운 포소리가 련속 울리고있었다. 포소리는 어찌나 요란한지 땅이 부르르 떨고 집이 온통 들썩거렸다. 얼마전에 문희가 품을 놓고 종이를 바른 천정에는 지붕에서 흙부스레기가 부실부실 떨어지는 소리가 나고 창문이 끊임없이 달가닥거렸다. 언제부터인가 매일 아침과 저녁 땅거미가 질무렵이면 어김없이 울리는 이 포소리는 멀지 않는 곳에 있는 미군포사격훈련장에서 울리고있었다.

원산앞바다에서 《푸에블로》호가 북의 인민군해군에 잡혔다는 소식과 함께 당장 전쟁이 터진다고 끓어대더니 어느날부터인가 이 포소리가 울리면서 불안한 생활에 죽음의 독을 퍼붓고있었다. 문희는 소름끼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이제는 습관이 되여서인지 방금 깬 꿈이 어떤 운명의 예고나 아닐가 하여 마음을 썼다. 재일은 이 소란속에서도 네활개를 펴고 자고있었다. 문희는 아들에게 담요를 덮어주며 생각했다.

(이렇게는 살수 없어. 빨리 매듭을 지어야지.)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아침동자를 하며 기침을 깇는 소리가 들렸다. 뜨락이라도 쓸어볼가 하여 밖으로 나간 문희는 연기와 먼지가 자욱하니 피여오르는 포사격장쪽을 바라보며 진저리를 쳤다.

친어머니가 살고있는 옹기골이라는 이 고장은 험준한 태백산맥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치고 뻗어내린 두세갈래의 산줄기들이 울멍줄멍한 구릉들과 논바닥으로 된 좁은 들판을 펼쳐놓은 시골로서 마을에는 퇴락한 몇채의 기와집이 있을뿐 대부분은 게딱지같은 초가들이거나 거무튀튀한 동기와지붕들이였다.

문희네 어머니 집은 마을의 맨 서쪽에 나앉아있었는데 부엌과 살림방 두칸으로 된 기울어가는 동기와집이였다. 반나마 허물어진 토담밖에는 수명이 200년을 넘었다는 구새먹은 피나무 한그루가 서있어서 마을에서는 《피나무집》이라고 불렀다. 마을에서 북쪽으로 5리남짓한 곳에는 읍소재지가 있었다. 그 동쪽 소나무가 우거진 구릉의 부근에는 탄약저장고와 연유창이며 훈련장들을 갖춘 미군의 군사기지가 펼쳐져있었는데 그 둘레에는 각종 유흥장을 비롯한 봉사기관들과 미군에게 몸을 파는 계집들이 사는 각양각색의 집들이 촘촘히 박혀있었다. 그것은 침략자들이 이 땅에 칼질한 커다란 상처의 하나로서 거기서는 매일 매 시각 파괴가 감행되고 한많은 이 땅의 숱한 생명들이 우악스런 터럭손에 짓꺾이고있었다.

문희는 벌써 몇달째나 이 고장에 와서 살고있었으나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환멸과 공포에 시달릴뿐이였다. 남편과 갈라진 그 괴롭던 저녁에 재일이와 함께 렬차에 올랐을 때만 하여도 그는 무서운 죄의식과 절망속에서도 서울을 떠나는것이 마치도 감옥에서 탈출하는 기분이였다. 달리는 차창밖으로 흘러가는 불빛을 바라보는 그에게는 그것이 남몰래 오래 키워오던 따뜻하고 소중한 희망처럼 느껴졌다. 수백만의 인간들이 삶의 전쟁으로 와글거리는 도시를 버리고 소란하고 골치아픈 세상사를 떠나 오랜 전설과 잊혀졌던 민요의 가락들이 슴배여있는 옹기골 이름그대로 토색적인 시골에 가서 그 고장의 소박한 녀인들처럼 껄껄한 옷을 입고 흙을 주무르며 웃어나 본다면 얼마나 좋으랴. 조용히 외롭게 늙어가는 어머니의 쑥내 풍기는 품에 안겨 세상의 아귀다툼을 잊고 동심에 젖을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행복이 아니랴.

절망속에 이러한 기대를 품고 읍소재지에 도착한 문희는 처음에는 거리에 불빛이 많고 왕래가 번잡한것을 보고 이런 소도시도 심심치는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짐군에게 트렁크와 보따리를 지우고 어린 재일의 손을 쥐고 엷은 달빛에 잠긴 옹기골마을에 이르러 어머니를 만났을 때 그 모든 기대는 어리석은 환상이 아닐가 하는 첫 의혹이 들었다.

그때 문희는 무슨 일로 집에서 나오던 어머니를 짙은 어둠이 드리운 피나무아래에서 만났다.

《누구신지요? 어머니 아니세요?》

문희는 어둠속에서 서너걸음앞에 주춤 멈춰서는 희미한 모습을 눈여겨보며 물었다.

《저예요, 문희예요.》

《무어, 문희라니?…》

어머니는 화뜰 놀라며 말끝을 흐리였다. 문희는 어머니의 열띤 애무와 울음섞인 넉두리를 예감하면서 늙은 녀인의 품에 안겨 어깨를 들먹거렸다. 그러나 너무도 놀란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딸의 잔등을 쓰다듬더니 뜻밖에도 거의나 꾸짖는 투로 물었다.

《아니, 네가 이런델 다 오다니. 무슨 일이 있는게 아니냐?》

《…난 집을 버렸어요. 여기서 살려구요.》

문희가 혀아래소리를 하자 다시금 놀라 한걸음 물러선 어머니는 《에구, 그것도 말이라고 하니?…》하고 주먹으로 무릎을 탁 치며 개탄하더니 어떤 불길한 예감에 구원을 기원하는듯 희미한 달빛을 드리우고 산산하게 설레이며 파도소리를 내는 늙은 피나무의 무성한 가지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집을 버리다니, 철두 없어라. 이 무서운데를…》

어머니는 그제서야 그때까지 한켠에 오도카니 서있는 재일을 안아들고 기뻐 어쩔줄 모르며 짐군을 앞세우고 집안으로 향했다.

시골에서의 문희의 하루하루는 어머니가 중얼거린 《무서운데》라는 말의 의미를 생활로써 깨닫는 나날이기도 하였다. 어데서나 그런것처럼 이곳 사람들도 먹는 일부터 급했다. 아직은 밀보리밭에도 푸른빛이 흐르는 이른봄이여서 어느 집에서나 아이어른 할것없이 멀건 죽이라도 먹으면 다행으로 여겼다. 돼지나 먹을 술지게미를 읍에서 겨우겨우 사다먹고는 허우적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농협》에서 꾸어쓴 영농자금과 비료값도 빚으로 남아있는데다가 지주나 밥술이나 먹는 집에서 꾸어다 먹은 식량이며 각 기관에서 독촉하는 수십가지의 세금도 빚으로 남아있어서 누구나 깰줄 모르는 악몽속을 헤매고있었다. 흙벽에 수북이 걸려있는 세금문서만 쳐다보아도 머리칼이 희여지고 피가 바작바작 마른다고 했다. 험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범에게 잡혀죽게 된 농군이 《세금!》 하고 비명을 질렀더니 호랑이조차 피똥을 쏘고 너부러져 죽었다는 말이 돌았다. 품을 팔아서라도 빚을 갚아내라고 채권자들이 사방에서 들볶는 판인데 행정기관들은 그것들대로 각종 부역공사를 벌려놓고 따라다니며 잔등을 찔렀다. 이래저래 군대에 끌려나가지 않은 얼마 안되는 청년들은 농촌에서 뛰쳐나갈 궁리만 하였다. 누가 읍에 나가서 볼품없는 업체에 견습공으로라도 들어가거나 장거리 같은데서 거간군자리라도 잡으면 그 소식이 징소리처럼 온 마을을 돌았다. 어느 봉사기관에라도 들어가려고 물찬 제비처럼 몸을 단장하고 분내, 향수내를 풍기며 읍으로 오르내리던 많은 처녀들은 어느새 미군전속의 양공주로 굴러떨어지거나 일반 사창굴에 갇히여 악몽속에 시들어갔다. 타락의 독소가 퍼져서 아이들은 반반한 벽만 보이면 음란한 락서를 그렸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눈에 달이 오른 계집사냥군들과 바지주머니속에서 포승줄을 주물럭거리는 정보원들이 어슬렁거렸다.

문희에게는 이 모든 고통과 비참이 무서운 발견이였다. 서울에서 보장된 생활을 하면서 호미자루 한번 쥐여본 일이 없이 제멋대로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온 그에게는 시골사람들이 이런 절망속에서도 어떻게 살아갈수 있는지 알길이 없었다. 이제껏 자기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과 참혹한 죽음우에서 살아왔다는 느낌이 파고들었다.

무엇보다도 어머니가 불쌍했다. 쉰살을 갓 넘었는데도 머리칼이 하얗게 바랬고 주름살이 몰려든 눈에는 습관된 고역과 공포에 어리멍청해진 빛이 굳어져있었고 여윈 등조차 구부정해있었다. 특히 이야기를 하며 빙그레 웃을 때면 성글어진 이발이 드러나고 여윈 뺨에 덮인 실주름이 굵게 패이면서 어찌나 애처롭게 보이는지 몰랐다. 게다가 어머니는 문희가 제 딸이면서도 옛적에 갈라진 부자인 남편의 손에서 자라난것때문에 반은 남의 자식이라는 생각을 감추지 못해서 더구나 처량해보였다.

실상 문희의 어머니 윤필녀에게 있어 문희의 출현은 오랜 옛적에 송건호에게서 버림을 당한 그 상처, 세월과 함께 겨우 아물어 어느결에 아픔조차 모르는 때가 많았던 그 옛 상처를 다시 파헤치는듯한 아픔이기도 하였다. 그래선지 윤필녀는 딸을 바라보다가도 설음이 북받쳐서 얼굴을 외로 돌리는 때가 많았다. 문희도 그것을 느꼈다. 그러나 문희에게 가장 괴로운것은 서로 딴세상에서 살아온 자기와 어머니와의 사이에는 그 어떤 취미의 공통성조차 없다는 그것이였다.

마당비를 들고 뜨락에 선 문희는 계속 쿵당거리는 포소리에 짜증을 내며 불깃한 새싹이 돋아나는 피나무의 높은 가지를 쳐다보고있었다. 어느새 찾아왔는지 반장노릇을 하는 매몰차보이는 중년녀인이 문희에게 차겁게 눈인사를 하고는 부엌문에 대고 소리친다.

《계세요? 오늘 도로공사는 한시간 앞당겨 시작되니 그리 아세요!》

부엌문이 열리더니 증기속에서 윤필녀가 내다본다. 반장은 다시금 다짐을 놓고 급히 가버린다. 열흘이 넘도록 매일같이 계속되는 도로공사였다. 문희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여러날 대신 나가서 일을 했다. 그는 이날 아침에도 식탁에서 물러나자 교대를 하자는 어머니를 굳이 만류하고 삽자루를 들고 나섰다.

도로공사는 읍에 있는 미군주둔지곁을 거쳐 분계선쪽으로 뻗은 길을 대폭 확장하는 힘겨운 일이였다. 산자락을 깎는다든가 날라야 할 토량이 특별히 많은 몇개 구간에서만 불도젤과 짐차가 움직이고 다른 구간은 거지반 손으로 해야 했다. 부근농민들과 함께 읍사람들까지 끌려나와 시달림을 당했다. 문희는 옹기골사람들과 함께 도로변의 밭흙을 파올리는 일을 했다. 아침 한동안은 모두들 수걱수걱 일을 했으나 얼마를 못 가서 맥을 놓고 주저앉는 사람들이 많았다.

삽이나 곡괭이자루를 잡은채 무릎을 박고 가쁜숨을 몰아쉬는 녀인들이 있는가 하면 앉은채로 도랑바닥에 미끄러져내려가 게두덜거리며 다리를 뻗어버리는 사나이들도 있었다. 쪼골쪼골 메마른 얼굴에 검버섯이 얼룩얼룩한 한 로인은 내리찍은 곡괭이를 들 힘이 없어 자루를 잡은채 우들우들 떨더니 끄윽하는 신음소리와 함께 흙바닥에 꼬꾸라졌다.

《에구, 내사 죽겠다. 벌써 이매가 화끈하고 눈앞에 별이 막 쏟아지는걸 보니 죽을 날이 다됐어.》

귀밀눈에 광대뼈가 두두룩한 가무잡잡한 녀인이 맥을 놓고 주저앉으며 걸걸한 목소리로 두덜거리자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했다.

《에구, 나두 모르겠다. 사흘째 낟알 한알갱이 없는 풀뿌리죽만 먹었더니 골이 아찔아찔하네요. 너-무, 어느 개놈이 이 일을 벌렸는지 콱 뒈지지 못하구…》

《이 바쁜 농사철에 길닦기가 다 뭐요. 하여튼 한다는짓들이…》

《하, 저 령감이 것두 모르슈? 포소리는 왜 울리는줄 아우, 이 길루 막 밀구 올라가서 이북을 쳐부시겠다고 윽윽 벼르는걸 못 봐요?》

《글쎄, 모르긴 하겠소만 미국이 이기기나 할것 같소? 짐승같은 그 꼴에 지랄춤 추고 계집사냥이나 하는것들이… 아차, 이놈의 혀바닥이 또…》

모두들 조용해졌다. 이야기가 금지항목으로 뻗은데 대한 두려움이였다. 그때까지 한삽한삽을 느릿느릿 힘들게 파올리고있던 문희는 분위기가 이상하여 눈을 들었다. 그러고보니 모두들 경계하는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는것이 아닌가.

《서울아줌마, 너무 노엽게 듣지 마세요.》

례의 귀밀눈의 녀인이 눙치려들었다.

《배운기 없어놔서 말이 비뚤어지는거 아니겠어? 사람들이사 부처님처럼 얌전하구말구. 그러루 알아두세요, 예?》

문희는 사람들을 취하게 하는 아름다운 눈을 가느스름히 뜨고 멍하니 마주볼뿐 대답을 못했다. 사람들이 자기를 정보원으로 보는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여러날 같이 일하면서 서울이야기랑 이것저것 한담도 했으나 농민들은 어줍어하는체 하면서도 실은 경계하고있었던것이다.

《이러시면 섭섭하군요. 고생살이가 화가 나서 하는 말들인데 뭐가 나쁘겠어요. 전 오히려 배우고있어요.》

문희가 이렇게 말하면서 부드럽게 미소하자 모두의 얼굴에 믿음과 동정의 빛이 떠올랐다.

한동안 더 일하다가 잠간 쉬고있을 때였다. 어린 파도를 이루며 솟아오른 메마른 밭너머로부터 새까만 여윈 얼굴에 걷어올린 헌 바지밑으로 쇠꼬챙이같은 다리를 드러낸 농민이 이쪽으로 달려오며 넋나간 소리를 쳤다.

《저걸 어쩌겠소. 소옥의 어미 여기 있소? 저기서 소옥이가 잘못됐소! 죽었다니까…》

《예? 우리 소옥이가?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그앤 간밤에 제 동무네 집에서 잤는데…》

사흘째 풀뿌리죽만 먹는다고 푸념을 하던 체소한 녀인이 눈이 올롱하여 손을 후들후들 떨면서 나섰다. 달려온 농민이 머리를 내두르며 재채기를 하더니 한탄했다.

《참새같은 계집애들이 셋이나 죽었소. 한 아이는 분명 소옥인데 다른 둘은 알수 있어야지.》

여러 사람들이 농민을 따라 달려갔다.

소옥의 어머니는 울음기가 넘치는 물닭의 목소리로 《소옥아!- 소옥아!-》 하고 부르면서 몇걸음씩 허둥대며 달리다간 어푸러지군 했다. 문희와 한 청년이 그 녀인을 량쪽에서 부축하고 갔다. 아이들이 죽은 곳은 쑥대며 엉겅퀴 같은 지난해의 마른 풀들이 듬성듬성 돋은 구릉진 모래밭아래에 움푹 패인 곳이였다. 곁에는 마른 잔디가 흩어진 서너개의 오랜 무덤들이 있고 그밑에는 바닥만 물기가 있는 샘터가 보였다. 예닐곱살씩 나보이는 세 아이는 넙적한 돌우에 동글납작한 흙떡을 여러개나 빚어놓고 그앞에서 숨져있었다. 한 소녀는 베여먹은 이발자리가 나있는 흙떡을 쥔채 흙에 얼굴을 박고있었고 회초리같이 여윈 다른 소녀는 숨지는 순간에 겪은 고통을 말해주듯 먼지투성이옷이 반나마 벗겨진채 흙이 가득한 입을 일그러뜨리고 지릅뜬 눈으로 하늘을 노려보고있었다. 마지막아이는 물을 찾아 헤맸는지 아래켠으로 치우쳐서 몸이 뒤틀린채 굳어져있었다. 무섭고 처절한 광경이였다.

사람들은 그앞에 털썩털썩 주저앉을뿐 억이 막혀 말을 못했다. 죽은 아이들의 처참한 모습에는 세상을 고발하는 소름끼치는 웨침이 울리고있었고 저들의 참혹한 죽음으로 산 사람들의 넋을 매질하는듯한 형언 못할 애소의 울부짖음이 울리는듯 해서 한순간 누구도 범접을 못했다. 그앞에 선 문희는 피가 얼어드는듯 한 공포와 함께 자기의 내부에서 무엇인가 벼락을 맞아 무너지는듯 한 충격을 느꼈다. 내가 이제껏 간신히 피해온 두려운 진실이 바로 이것이였구나 하는 느낌과 함께 그 아이들을 자신이 죽인듯 한 죄의식에 미칠 지경이였다.

몇발자국 뒤늦게 온 소옥의 어머니는 흙을 문채 눈뜨고 죽은 제딸을 보자 맥을 놓고 풀썩 주저앉더니 딸이 아직 살아있기라도 한듯 팔을 벌리고 무릎걸음으로 다가가며 넋나간 소리를 했다.

《에구, 소옥아! 무슨 장난을… 흙을 뱉아라. 뱉으라는데. 건 못먹어. 응. 야, 소옥아!- 밥을 해줄게 소옥아!-》

녀인은 이미 싸늘히 식은 꼿꼿해진 시체를 안아들고 오열하며 앞으로 곤두라지더니 먼지투성이얼굴을 필사적으로 돌에 짓찧으며 아이처럼 애된 소리로 통곡하였다.

《아이구- 나는 어쩌라오- 이놈의 세상 나를 잡아먹으라아!-》

문희랑 여러 사람들이 녀인을 안아 일으켰다. 녀인은 벌써 몇군데나 찢어져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내두르며 발버둥질쳤다.

체소한 로인이 돌우에 놓인 흙떡을 여윈 손으로 쓸어만지다가 서너오리 드리운 염소수염을 달달 떨더니 하늘에 삿대질하며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 때 뒤미처 온몸이 거쿨진 사나이가 뛰여들어 다른 두 소녀의 시체를 나란히 눕혀놓고 소발통같은 주먹으로 땅을 치며 황소울음을 울었다.

《이 못난것아, 나긴 왜 나가지고… 어째 흙을 먹고 살이 찌지 못하고… 어이쿠- 어이쿠-》

모두의 얼굴에 싯누런 눈물이 쏟아졌다. 문희는 한 녀인의 등에 낯을 묻고 울었다. 어느 갈피엔가 안락의 보금자리가 있어 남몰래 부르는듯싶던 세상이 털이 부르르한 야수의 아가리로 보였다. 설음과 분노에 온 마음이 노도로 솟구치며 뒤끓었다.

얼마후 농민들은 이곳에 달려온 사복경찰들이며 감독들과 한바탕 싱갱이를 벌린 끝에 공사장에 끌려갔다. 적지 않은 농민들은 고래고래 저주를 퍼부으며 제 갈데로 가버렸다. 남은 사람들도 주저앉은채 일을 안했다. 문희도 그들속에 끼여있었다. 이렇게 되자 그들앞에서 어슬렁거리던 사복경찰이 독사눈으로 농민들속에서 누군가를 찾더니 아까 시체앞에서 세상을 저주한 로인의 살멱을 틀어쥐고 끌어내면서 삽을 쥔 뱁새눈의 청년에게 물었다.

《이놈의 두상이 옳아?》

뱁새눈이 고개를 끄덕이자 사복경찰은 개끌듯 로인을 끌고 갔다.

그들의 모습이 읍쪽으로 멀어져갔을 때 분노에 치를 떨던 농민들이 고발자인 뱁새눈에게 달려들어 무섭게 무리매를 쳤다. 주먹으로 치고 흙발로 짓밟고 침을 뱉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문희는 충격이 너무도 커서 머리가 얼떨떨했다. 이렇게 무서운 땅에 재일이를 데리고 온것이 불안했다. 흙을 문채 눈을 지릅뜨고 죽은 소녀의 얼굴이 커다랗게 떠올라 육박해오며 세상을 가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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