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7 장


35


살아가는 일이 짐스럽고 두렵기만 한 문희에게는 이따금 자신의 일도, 눈에 보이는 모든것도 실제적인 현실이 아니라 한낱 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군 했다. 생활의 거치름과 그것이 내뿜는 열백가지 쓰거운 모순과 갈등에 시달린 그는 보장된 안락을 피타게 그리워하면서도 그 희망이란 공연히 실망만을 더 크게 더칠뿐임을 느꼈다.

어머니가 공사장에 몰리워나간 어느날, 집에 남은 문희는 생활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잊어볼양으로 방안에서 소폭으로 된 몇장의 수채화와 유화들을 뒤져보았다. 그가 이곳에 와서 짬짬이 그린것들이였다. 모두가 이 고장의 풍물과 생활에서 취재한것들로서 그중에는 화가의 부드럽고도 예민한 눈초리와 뜨거운 호흡이 선명하게 느껴지는 그림들도 있었다. 뛰여난것과 치기가 느껴지는 차이들은 있어도 추상과 관념의 병든 형상을 추구한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가 인간생활의 실제적인 모습이여서 그릇에 담아놓은 음식처럼 리해하기 쉽고 한송이의 꽃처럼 모상이 선명했다. 문희는 사실주의화풍으로 그려본 그 그림들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나 화단의 평가에 내여맡긴다면 득세한 추상파들에 의하여 참기 어려운 랭소와 경멸을 당할것이라는것을 옛 체험으로 알고있었다. 자기의 새로운 취미가 이단적인 행동처럼 두렵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자기의 지향을 버릴수가 없었다.

문희는 문득 아이들이 죽은 현장에서 목격한것을 그려보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래서 연필로 서둘러 구도를 잡아보았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뿐 잘되지 않았다. 아직은 현장에서 받은 충격이 너무 큰데다가 그 사건의 의미가 미처 정돈되여있지 않았던것이다.

곁에서 그의 손놀림을 지켜보던 재일이가 제법 한숨을 쉬며 불쑥 물었다.

《서울로 언제 가나? 아버지 보고싶어. 엄마도 아버지 보고싶지?》

문희는 가슴이 뜨끔했다. 갈수록 남편의 모습을 더 닮아가는듯싶은 아들의 귀여운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는 진수에 대한 원망과 죄의식과 그리움에 가슴이 활랑거렸다. 그러나 곧 자신에게 화를 내면서 무익한 감정에서 벗어나려고 도리머리를 흔들며 아들을 구슬려 밖으로 내보냈다.

이러고있을 때 자전거종소리를 울리며 늙은 우체부가 들려 설희의 편지와 아버지가 보낸 적지 않은 액수가 기입된 송금표를 전하고 갔다. 그것을 받아든 문희는 자기가 속해있던 서울의 중류사회에 대한 가슴짜릿한 향수를 느꼈다. 그와 함께 자기는 결코 옹기골사람들처럼 주림과 고역에 시달릴 사람이 아니라는 선발의식이며 어느 때는 높은 루각에 오를수 있다는 자부심을 느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그 향수도 선발의식도 자부심도 어덴가 범죄적이며 비도덕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설희의 편지봉투속에서는 한장의 남자사진이 나왔는데 설희는 쓰기를 정력과 재능을 겸비한 로총각이며 어느 회사의 기사인 그 사람은 《국회》의원의 조카로서 저와 아버지가 품을 놓고 찾아낸 문희의 새 남편후보라고 했다. 문희가 《예쓰.》 하고 한마디만 하면 온갖 행복과 욕망을 충족시킬수 있다는것이다. 문희는 호기심과 함께 남의 빈집에 들어가는듯 한 꺼림직한 기분으로 사진을 보았다. 어덴가 맺힌데 없이 물렁하고 열쇠나 주물거릴뿐 문화적사색의 능력이라고는 통 있어보이지 않는 사나이였다. 그는 입을 삐죽거리며 사진을 얼른 편지봉투속에 집어넣었다.

설희는 그사이 두세번 보내온 편지에서도 그러했던것처럼 이번에도 제 자랑을 늘어놓으면서 서울로 올라오라고 꼬드기고있었다.

그러면서 문희가 아버지를 옹호하여 남편과의 관계를 그처럼 《용감히》 끊어버린 후 동요없이 계속 버티고있는데 대해서 아버지와 계모가 몹시 감탄하고있으며 그런만큼 문희가 서울로 올라오면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과 후원을 받을것이라고 장담하고있었다.

문희는 이런 사설은 다 책략적인 엉너리같기만 해서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다만 다음과 같이 쓴 편지의 끝부분에 대해서만은 몇번이나 거듭 읽으면서 깊은 생각에 잠겨들었다.

《언니가 살던 집에는 아버지의 동업자의 친척되는 사람이 이사를 들었어. 이를테면 그 현명한 정진수아저씨는 보기 좋게 쫓겨났지.

그날은 공교롭게도 그 사람이 신문사에서도 쫓겨난 날이였어. 그 사람에게도 한가지 용한 점은 있었어. 제 책과 입을 옷 몇벌만 가지고 나머지는 깨끗이 언니의 소유로 넘겨준거야. 자포자기해서 그랬는지도 모르지. 언니의 소유물은 다 우리 집에 옮겼어. 소문에 듣자니 정씨는 새로운 취직자리도 구하지 못한채 무지렁이처럼 날품팔이를 한다지 않어. 그것 봐, 제가 혼자 현명한체 날뛰더니 그런 꼬라지가 됐어. 언니가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은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어.》

문희는 가슴이 아팠다. 전에는 남편이 자기를 괴롭히고 불행에 빠뜨렸다고 원망했으나 어째선지 이제 와서는 그 사람을 망쳐놓은것이 자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자책과 후회는 머리속에서나 돌아가는 바람일뿐 생활은 자기의 궤도를 따라 흘러갔다. 문희는 재일을 데리고 읍으로 가서 자못 흡족한 기분으로 아버지가 보내준 돈을 찾아쥐였다. 돌아오던 길에는 상점이며 장마당에 들려 려행용가방이 넘쳐나게 식료품이며 화구며 어머니의 기침약 등 이것저것 가득 사들었다. 산듯한 달린옷차림에 흰 양산을 받쳐들고 귀여운 아들까지 거느린 그 녀인의 모습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지나가던 미군들은 례외없이 먹이를 발견한 맹수같은 눈으로 한참씩 그 녀자를 돌아보군 하였다.

문희는 그런줄도 모르고 거리풍경을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영어간판이 많은 이색적인 거리였다. 긴 가발을 늘어뜨린 짧은 옷차림의 젊은 녀인들과 미군들이 들락거리는 무도장, 술집들, 높은 철조망속으로 보이는 군수물자창고들, 오물적치장에서 페물들을 주어들고 히히닥거리는 람루의 소년들, 웃동을 벗은 미국인과 양공주의 뒤모습이 창가림짬으로 보이는 창문, 어디선가 들려오는 웃음소리와 쟈즈풍의 일본무도곡, 침침한 골목으로 들여다보이는 형형색색의 괴이한 시설물… 어디를 보나 이 땅 고유의 정취를 풍기는것은 없고 모두가 침략군에게 강점당한 패자의 수난이 깔려있는듯 했다.

급작스레 큰길 건너편쪽에서 녀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보아하니 담쟁이덩굴이 벽을 덮은 2층집 현관에서 웃도리를 벗기운채 속치마만 걸친 젊은 녀인이 런닝그바람인 은발의 미군에게 무섭게 행패를 당하고있었다. 시뻘겋게 달아오른 미군은 쓰러진 녀인의 머리칼을 틀어쥐고 녀인의 머리를 땅바닥에 짓찧으면서 구두발로 몸뚱아리를 마구 걷어차고있었다. 녀인은 단말마의 몸부림을 치면서 숨막히는 소리로 무어라고 저주를 퍼붓고있었다. 그럴수록 은발의 야만은 더욱 기승을 부리면서 때리고 찼다. 현관에서 두명의 미군장교가 나오더니 팔짱을 끼고 동료의 만행을 구경하면서 씨물씨물 웃고있었다.

모여드는 행인들과 함께 이 참경을 보는 문희는 치를 떨었다. 격분한 사람들이 차도를 가로질러 그쪽으로 달려갔다. 겁에 질린 미군들은 꿱꿱 소리지르며 녀인을 밖으로 차굴려던지고 대문을 후려닫았다. 대문밖에 버려진 녀인은 이미 숨이 넘어간것인지 아니면 극도의 절망으로 수치심마저 잃은것인지 길바닥에 늘어진채 움직일줄 몰랐다. 흩어져 뒤엉킨 먼지투성이의 머리칼, 유방대마저 끊어져 떨어진 발가벗기운 맨살에 어지럽게 찍힌 구두발자리들, 군데군데 피가 터진 푸들푸들 경련을 일으키는 다리… 눈뜨고 볼수 없는 꼴이였다.

잡부차림의 나이든 뚱뚱한 녀인이 아무데나 림시 옮겨가려고 그 녀자를 안아 일으키려 하였다. 그러자 그는 제 몸에 손을 대는것이 미군인줄로 알았던지 발작적으로 몸부림치며 비명을 질렀다. 흰테안경을 낀 중년부인이 서둘러 자기의 코트를 벗어 녀인의 몸을 가리워주었다. 녀인은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는지 피발선 눈으로 둘러선 사람들을 멍하니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귀염성스럽게 생긴 얼굴을 온통 일그러뜨리고 소리없이 마른 울음을 울었다.

이런 때 말쑥한 차림에 사진기를 멘 작달막한 사나이가 달려오더니 사람들을 비집고 앞으로 나섰다.

《하, 이런! 난 ㅂ신문 촉탁기자입니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사진부터 찍으며 말했다.

《대관절 어떻게 된겁니까? 랭정하게 사실대로 말해주시오!》

녀인은 한순간 원한이 사무친 무서운 눈길로 기자를 노려보다가 마디마디 씹어뱉듯 말했다.

《에그, 기자라구? 이 뻔뻔스런 새끼야. 뭐 사실대로 말하라구? 양키들앞에선 찍소리도 못하면서 썩어문드러진 양갈보는 들쳐볼 용기가 있단 말이지. 대-단하군요. 신문에 내구, 돈도 타먹구…》

《하, 이런 참, 범죄자를 고발하자는거니까 제발 침착하시오.》

《침착하라구? 더럽다!》

녀인은 악을 쓰며 저주했다.

《너희들은 눈깔도 없느냐? 양키들이 밤낮으로 우리 녀자들을 짓이기고 잡아먹는데 너희들의 피줄엔 피도 없고 구정물만 흐르느냐? 구경이나 하구 눈물이나 짜구… 어디 있어, 나서봐라, 사내다운 사내가 어디 있어? 없지, 없어! 없으니까 내가 양갈보가 됐지. 어이 더럽다, 더러워!》

사람들은 주먹으로 뺨을 맞는것처럼 얼굴들이 처참했다.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던 문희는 자꾸 앞으로 비집고 나서려는 재일을 꾸짖어 뒤켠으로 밀어내면서 짜증을 냈다. 원한을 터뜨릴수록 절망에 미칠 지경인 녀인은 문득 문희를 쳐다보더니 자기와는 너무도 대조적인 순결하고 부드러운 그 모습이 화가 나서 마구 행악을 부렸다.

《이년아, 내가 무서워? 어이구, 고 얄밉게 고운 백만원짜리 눈이 다 찡그릴줄 알구. 네년이 네 서방과 웃고 까불 때 난 사람으로 살길이 없어 암개가 됐다!…》

문희는 진저리치며 한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뒤걸음질쳤다. 그러자 녀인은 몸을 가리우고있던 코트를 발작적으로 벗어던지고 젖가슴을 내밀고 흔들어대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봐라, 실컷 보고 실컷 뜯어먹어라! 어이구, 귀국할 때면 데리구 가겠다던 저 양키가… 교대하러 온 두마리의 돼지들에게… 가사도구에 덧붙여 팔아먹은 이 암개를 봐라! 말을 듣지 않았다구, 나도 사람이다. 한마디 엇섰다고 곤죽이 되게 짓밟힌 이 피투성이를 봐라! 이 돼지구유통같은 나라를 봐라!…》

쌓이고쌓인 원한이 흔들어깨운 넋으로 우는 절규였다. 순간 인간이하였던 양공주는 마음껏 터뜨리는 울분의 힘으로, 또 파멸한 자신의 끔찍스러운 육신으로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부짖음으로써 원한을 간직한채 쓰러진 비극의 주인공처럼 쳐다보이는듯 했다.

녀인은 누군가 가리워준 코트에 낯을 묻고 갈린 목소리로 슬피 울었다. 몇몇 사람들이 그 녀자를 맞들고 병원으로 떠나갔다.

《짐승들을 때려죽이자!》

누군가 한마디 웨치자 태반의 군중들은 가까이에 있는 편마암쪼각들로 쌓은 돌담을 허물어 저마끔 크고작은 돌들을 틀어쥐고 양키들의 소굴로 달려갔다. 한 운전사는 길에 선 짐차를 뒤로 몰아 차의 꽁무니로 닫아건 대문을 와지끈 부시고 계속 들이몰았다. 숱한 사람들이 그뒤를 따라 양키들에게 저주를 퍼부으며 달려들어갔다. 안에서 모든것을 짓부시는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울리더니 몇사람들이 겁을 먹고 밖으로 뛰여나왔다.

그러나 격노한 사람들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담장우로 보이는 2층창문의 유리가 부서지며 벌컥 열리더니 몇사람이 양키를 후려갈기며 창밖으로 내던지는것이 보였다. 그뒤로 방안의 물건들이 마구 밖으로 뿌려졌다. 이럴 때 거리의 북쪽방향으로부터 미군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몰려오고 길목에서는 경찰들이 탄 차량이 나타났다. 그때까지 문희는 한무리의 녀인들과 함께 사태를 지켜보다가 겁을 먹고 현장에서 피하고말았다.

읍에서 집까지의 5리길을 100리처럼 겨우 걸어온 문희는 그날 밤 한잠도 자지 못했다. 누운 자리에서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다간 한동안씩 일어나 앉아 달빛이 희미하게 비치는 창문을 바라보며 피나무가 설렁거리는 소리에 귀를 강군채 오만가지 생각에 시달렸다.

자신의 알길없는 운명은 불안스럽기만 한데 생활은 무서운 몰골을 떨어대면서 숨막히게 압력을 가해왔다.

정과 안락은 목마르게 그리웠으나 그 안락이란 숱한 사람들을 희생시켜서만 얻어지는 범죄라는 생각이 집게처럼 뇌를 물어 비틀었다. 그런데다가 처참한 양공주의 목소리는 모든 생각의 갈피마다에서 귀따갑게 들려왔다.

《나는 사람으로 살길이 없어 암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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