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7 회


제 7 장


37


가을도 저물어가는 어느날 저녁이였다.

문희는 어머니와 함께 밭에서 이삭을 딴 강냉이대를 낫으로 베고있었다. 아침부터 일을 하여온 모녀는 어지간히 지쳐있었다. 문희는 빨갛게 상기된 얼굴을 숙일사하고 힘겹게 낫질을 했다. 쉬였으면 좋으련만 앞서가는 어머니는 한그루한그루 힘겹게 찍어눕히면서도 쉬지를 않는다.

그렇게 얼마간 더 베여나가던 필녀는 겨우 허리를 펴고 딸을 돌아보며 쉬자고 했다. 둘은 떨어진채 베여놓은 강냉이대우에 주저앉았다.

문희는 너무 지쳐서 몸이 땅으로 잦아드는것만 같았다. 봄, 여름부터 어머니를 도와 거름나르기, 김매기, 수확 할것없이 다 해보았지만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다. 손으로 하는 농사인데다가 남정도 없이 녀자의 힘으로만 감당을 하자니 여간 고통스럽지 않았다.

문희는 저켠에 모로 앉아 수건을 벗어 검게 탄 얼굴을 닦는 어머니의 처량한 모습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이 고생을 하면서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가? 서글프기만 한 흉년농사, 그나마도 빚이며 세납 등 숱한 명목으로 다 뜯기우고 남편도 자식도 없이 십년, 이십년 고독한 운명의 무거운 사슬을 끌며 죄없는 류형수로 먼지속에 시달려오신 어머니…

위안할길 없는 어머니의 일과 자신의 처지가 애달픈 문희는 깊은 한숨을 쉬며 저물어가는 가을을 탄상했다. 문득 남편생각이 났다.

그 괴롭던 리별의 순간, 어두운 서재에 누워 수치와 노여움에 몸을 뒤틀던 남편의 잊을수 없는 그 모습우에 실업을 당하고 집까지 빼앗긴 그가 최하층사회에서 고역을 당하는 상상의 광경들이 어지럽게 덧놓인다.

(아, 내가 그를 지켜주고 받들어주었더라면 그렇게도 불행해졌을가?)

문희는 찬바람에 구슬픈 소리를 내며 휘청거리는 강냉이대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가 몹쓸년이지, 설사 생각이 서로 어긋나고 남들이 독설을 퍼부은들 그게 무슨 큰일이라고 남편을 그렇게 버릴수가 있었을가?…

그가 그른것이 무엇인가? 나도 이 무서운 곳에 와서 사무치게 느끼지 않는가, 사람은 반항없이 살수가 없으리라는것을…)

이런 생각과 함께 어머니를 돌아본 문희는 가볍게 몸을 떨었다.

어머니가 이상한 눈길로 그를 뜯어보는것이 아닌가. 심한 불안과 망설임이 내비친듯 한것이 심상치 않았다. 필녀는 딸과 눈길이 마주치자 한순간 어름거리더니 무릎을 짚고 겨우 일어나 일손을 잡았다.

문희도 일어났다. 한동안 모녀는 일을 계속했다. 필녀는 일손을 놀리면서도 몇번이나 딸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베여놓은 강냉이대우에 다시 주저앉으며 그를 불렀다.

《얘야, 여기 좀 오너라. 무얼 좀 얘기하고픈게 있다.》

문희는 일손을 놓고 어머니곁으로 가서 앉았다.

필녀는 생각에 잠겨 땅을 굽어보며 말했다.

《넌 철이 없어, 공부를 했으면 뭘 하니. 사람은 제 근본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거기에 맞게 처신할줄 알아야 하느니라.》

문희는 눈이 둥그래져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무슨 훈계를 하시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잘못을 사죄나 하듯이 눈빛을 흐리며 갈린 소리로 말했다.

《이 어미가 어째 혼자 살게 됐는지, 아버지와 계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두는게 나쁘지 않을게다.》

《어머니, 나도 몹시 알고싶었어요. 그렇지만 공연히 묵은 상처를 건드리는것 같아서…》

이렇게 전제한 필녀는 남의 일을 전하는것 같은 차분한 표정으로 다음과 같은 젊은 시절의 비밀이야기를 했다.

…필녀는 전라도 어느 시골 소작농의 외동딸이였다. 열세살에 어머니를 여읜 필녀는 어려서부터 부지런하고 눈썰미가 있어서 무슨 일이건 착실하게 잘했다. 김이 오른 솥에서 박죽으로 익은 밥을 퍼서 드리우면 밥알들이 구슬꿰미처럼 줄줄 드리우게 찰지게 했고 죽은 어머니의 본을 따서 베틀에 앉아 밤을 새워 짠 베는 물을 부어도 새지 않았다. 그런데다가 처녀꼴이 잡히면서 린근에 미인으로 이름을 날리게 되였다.

숱한 총각들이 그 처녀로 하여 가슴앓이를 했다. 그렇지만 아직은 사내들이 두렵기만 한 처녀는 온 마음을 아버지에게만 기울였다.

새벽별을 지고 들에 나간 아버지가 종일토록 고역에 시달리다가 저녁별을 지고 초막으로 돌아올무렵이면 필녀는 저녁상을 차려놓고 동구밖에 있는 늙은 버드나무아래에 나가 아버지를 기다려 맞아들이군 했다. 아버지 역시 딸을 무척 귀여워하고 자랑스러워했다. 허기진 배를 안고 비칠거리며 걷다가도 딸만 보면 걸음이 재여지고 어둡던 얼굴에 미소가 피여났다.

한해두해 세월은 흘러 필녀에게도 뜨거운 피가 설레이는 소리에 귀가 멍멍해지고 야릇한 환상에 까닭없이 눈물이 나는 꽃다운 시절이 찾아왔다. 벽에 붙은 쪼각거울앞에서 저로서도 눈부신 제 미모에 놀라 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뒤걸음을 치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필녀는 빨래감을 가지고 조용한 시내물에 나가 머리를 감았다. 그날은 운명적인 날이였다. 그가 머리를 다 빨고 젖은 긴 머리에서 물을 짜며 얼굴을 드니 뜻밖에도 가까운 다리우에서 두 남자가 그를 취한듯이 바라보고있었다. 한사람은 필녀도 알고있는 마름이고 다른 사람은 초면의 젊은 신사였다. 마름은 필녀에게 젊은 신사를 소개하면서 인사를 하라고 했다. 그러나 인사가 다 무엇인가. 걷어붙인 적삼바람인 필녀는 두손에 낯을 싸쥐고 돌아앉고말았다. 사나이들은 웃다가 돌아갔다. 후에 안 일이지만 젊은 신사는 지주의 아들로서 한해전에 일본에서 대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대전시에서 금융조합 리사로 근무하고있었다. 그가 총각이였던 송건호였다.

시골에 와서 우연히 필녀의 모습을 보고 정신이 뒤집힌 송건호는 그후 제 아버지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이 가난한 농가처녀를 홀려내는 일에 달라붙었다. 숱한 소동을 피우던 끝에 송건호는 끝내 필녀를 자기의 안해라는 무거운 사슬에 비끄러매고말았다. 대학을 나온 부자집 아들인 남편과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한 가난뱅이의 딸인 안해, 너무도 파격이였다. 불행을 안고있는 이 결혼을 필사적으로 반대한 필녀의 아버지는 딸을 잃은 뒤에 심화병을 만나 시들시들 앓더니 곧 저승객이 되고말았다.

그러나 관습은 행복의 대용품이라는 말이 있듯이 필녀는 결혼시절의 공포와 불안을 넘어서더니 제 운명에 순종하여 남편에게 온갖 희생을 다 바치며 충실했다. 곧 문희가 태여났다.

그들부부는 대전시에서 유족한 생활을 했다. 건호는 금융조합일로 자주 서울에 다녔는데 그렇게 가면 오래 있군 했다. 필녀는 뒤늦게야 알았지만 남편은 언제부터인가 서울에 갈 때마다 단골로 다니는 술집작부와 불의의 관계를 맺고있었다. 기생은 젊고 야심많은 차디찬 미모의 녀인이였다. 게다가 재산도 있는 집 딸이였다. 그 점은 송건호의 야심을 더욱 자극했다. 그 녀자 역시 건호가 시골에 처자가 있는줄 알면서도 부자라는것이 탐이 나서 떡메에 찰떡 엉켜붙듯 달라붙었다. 건호를 남편처럼 섬기면서 음식대접, 옷시중까지 기막히게 해댔다. 그 녀자가 설희의 어머니인 강은월이였다.

건호에게는 이미 필녀라는 존재가 시끄러운 골치거리에 지나지 않았다. 간사하고 몰렴치한 기생에게 정신을 빼앗긴 건호는 대전의 집으로 돌아오면 안해를 악마처럼 괴롭히고 천대했다. 언쟁만 벌어지면 《무식한 가난뱅이꼬라지》라느니, 《렴치없는 년》이라느니 하면서 모질게 때리기까지 했다.

어느날 오랜 세월 시골에서 호랑이질하던 건호의 늙은 애비가 죽었다는 기별이 왔다. 필녀는 어쩔수없이 시골상가로 갔다. 남편은 서울에 가있다가 기별을 듣고 달려왔다. 지주의 장례는 봉건적인 옛 풍습에 따라 요란하게 지냈다. 생전에 자기를 한번도 며느리로 대해주지 않고 종처럼 거칠게 부려먹던 지주의 관앞에서 상복을 입고 선 필녀는 오직 자신의 불행이 서러워서 짓눌린 소리로 울뿐이였다.

그런데 관을 발인하게 된 날 아침에 조객들로 붐비는 이 커다란 기와집에 땀투성이가 된 청년 하나가 헐떡거리며 뛰여들더니 대감의 행차나 알리듯 야단스럽게 소리쳤다.

《알립니다! 서울며느님이 오십니다아! 가마를 타고 이십리밖에서부터 대성통곡하며 오는중이올시다아!》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필녀는 너무도 충격이 커서 쓰러지고말았다. 송건호는 자신이 더없이 난처하다는것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비극배우처럼 행동했다.

얼마후 상가의 대문앞에 도착한 강은월은 시중군들의 부축을 받아 온 목청으로 애고애고 울어대면서 안으로 들어오더니 생전에도, 죽은 뒤에도 본 일이 없는 관속에 든 로구앞에 머리를 풀어헤치고 어푸러졌다. 그러더니 미친것처럼 몸부림치면서 가슴을 쥐여뜯고 이마를 방바닥에 조아리며 목이 쉬도록 울어댔다. 그 울음소리야말로 송건호가 필녀에게 퍼붓는 증오와 멸시의 사정없는 채찍이였고 마녀가 필녀의 가슴에 찔러대는 독이 묻은 날창이였다. 아, 천민의 딸인 필녀는 어찌하여 미모를 타고나서 이렇게도 참혹한 파멸을 당해야했던가?

필녀는 밀려났다. 그나마도 제 몸에서 난 문희마저 남편에게 떼운채로 밀려났다. 남편은 자기의 더러운짓에 대한 항간의 비난을 막으려고 딸은 제가 맡아 키우겠다고 버티였다. 빌고 울어도 양보하지않았다. 어찌하랴, 필녀는 바람사나운 어느날 밤에 철부지 어린 문희의 온몸에 오래오래 얼굴을 비비고는 먼 친척이 살고있는 강원도시골로 가고말았다.…

목이 잠겨서 울음섞인 소리로 겨우 이야기를 마친 필녀는 머리수건으로 얼굴을 싸쥐고 소리를 죽여 울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내 눈물을 흘리던 문희는 《엄마!》 하는 목멘 부르짖음과 함께 어머니의 무릎에 어푸러져 애된 소리로 목놓아울었다. 그러자 어머니도 하들하들 떠는 딸의 잔등에 낯을 묻고 애간장이 녹아흐르는 목소리로 통곡을 터뜨렸다. 오랜 세월 만신의 힘을 다해 눌러온 설음이 터진것이였다.

모녀는 부여안고 서로 끝없이 어루더듬으며 해가 져서 캄캄해질 때까지 실컷 울었다.

어머니의 놀라운 고백은 문희를 딴 사람으로 만들어놓은듯 했다. 이렇게 억울한 어머니앞에 딸구실을 못한 죄악감이 가슴을 저몄고 이제껏 자기를 속여온 아버지라는 인간이 막 무서웠다. 그렇게도 파렴치한 랭혈인간을 아버지로 여겨왔던 자신이 어이없이 허무했다.

자본이란 얼마나 더러운것인가! 이제 보니 그것은 인간의 정신에 똬리를 트는 무서운 독사였다. 그 자본과 권력의 횡포를 반대하여 힘겨운 싸움을 하는 남편을 괴롭혀온 자신이 죽을죄를 진것만 같았다.

문희는 많은 생각끝에 남편을 찾아가기로 결심하였다. 어머니도 그렇게 하는것이 도리에 맞는다고 했다.

며칠후 점심무렵 옹기골을 떠난 문희와 재일은 필녀의 바래움을 받으며 읍에 있는 기차역으로 갔다. 어머니와 딸은 작별을 앞두고 허줄한 간이역사앞에 반나마 잎이 진 네군도단풍나무가 몇그루 서있는 자그마한 마당에서 아껴둔 말을 주고받았다.

《내가 못나서 변변히 먹이지도 못하고 고생만 시키다가 보내는구나.》

윤필녀가 괴춤에서 똘똘 만 지전 몇장을 꺼내여 한사코 사양하는 딸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며 말했다.

《네가 왜 이러니? 그럼 못쓴다. 재일에게 내복이나 사입혀라. 재일아, 너를 못 보고 어떻게 살라니!…》

윤씨는 재일을 안아들고 발그레한 뺨에 백발을 부비며 눈물을 흘렸다. 문희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불쌍한 어머니를 림시나마 홀로 남겨두고 떠나는것이 죄를 짓는것만 같았다. 그는 제 아들을 안은 어머니의 꽛꽛한 작은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울음기에 마디마디 끊어지는 소리를 했다.

《꼭 어머니를… 모시겠어요!… 애아버지가 날 받아준다…면 서울에 모시고… 그렇게 안되면 내가 영영 돌아오겠어요.…》

《네가 또 그 소리냐. 말도 되지 않는 소리. 네가 남편과 의좋게만 산다면 내사 굶어죽어도 한이 없겠다!…》

차시간이 림박해서 그들은 헤여졌다. 트렁크를 하나 들고 아들과 함께 많지 않은 사람들이 괜히 안달아하며 붐벼대는 개찰구를 통과한 문희는 사람들의 어깨너머에서 허둥거리며 이쪽을 보는 어머니의 처량한 모습을 보는 순간 또 한번 가슴이 저며지는듯 한 아픔을 느꼈다.

어머니와의 작별로 옹기골에서의 생활은 일단 막을 내렸다. 일생 잊을수 없는 체험이였다. 난생처음으로 자기를 최하층사람들의 눈으로 어느 정도나마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할수 있었다.

세상이란 얼마나 부당하고 불의에 찬것인가. 옹기골에서 매일같이 보고 체험한것이지만 평민들에게 있어서 살아간다는것은 온갖 모욕과 천대와 끝없이 덮쳐드는 가지가지 재앙과의 암담하고 침울한 싸움이였다. 서울이 괴로와서 도망쳐온 시골이 오히려 더 무서웠다.

사람들은 어찌하여 이렇게밖에 살수 없을가. 사람은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하며 인생에서 소중하고 아름다운것은 무엇인가… 자주 떠오르는 물음이였다. 자신을 통해서만 세상을 보던 그 녀자는 점차 세상을 거쳐 자신을 보게 되였고 자신의 됨됨이와 처사가 불만스러워서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였다.

문희는 종래에 품었던 자신의 가치관이란 조잡한 환경과 그릇된 교육의 영향으로 이루어진 편견이라는 생각도 들었고 무엇인가 비도덕적이고 지어는 유치하기까지 한 사고방식으로 자신을 망치고있다는 두려움도 들었다. 그에 따라 남편에 대한 자신의 태도도 재검토하게 되고 더구나 아버지를 좋은 사람으로 동정하고 옹호해온것이 불쌍한 어머니에 대한 배신행위로 되였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부끄러운 일이지만 다시 남편에게 찾아가서 느낀대로 고백하고 그가 아량있게 받아주면 그를 도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해보는것이다. 그러나 만약 랭혹하게 거절을 당한다면 다시 시골로 내려와서 중학교 미술교원자리라도 찾아봐야 할것인지…

문희는 이날 해진 뒤에 서울역에 내렸다. 그에게는 마중나온 사람하나 없었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곳도, 기다려주는이도 없었다.

소란속에서의 이 고독은 그에게 남편과의 무서운 갈등과 불화속에서 생긴 자신의 온갖 불행을 뼈아프게 느끼게 했다. 남편을 찾아오는 길이면서도 자신이 렴치없고 미련해보였고 무슨 일이건 자신이 없어서 꽤 긴 동안 소란한 인파속에 망연자실 서있었다. 빨리 가자는 재일의 성화만 받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있었을것이다.

문희는 남편의 거처를 알려고 신문사로 찾아갔다. 그곳 현관에서 그 녀자는 남편과 친한 사이여서 잘 알고있는 조학준기자를 만났다. 총명하게 보이는 맑은 눈과 류달리 번들거리는 넓은 이마때문에 우스운 별명이 붙어있는 조학준은 동료의 부인을 보자 어찌나 떠들어대며 반가와하는지 문희는 금시 눈물이 핑 돌았다. 조학준은 재일을 등에 업더니 진수의 거처까지 안내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는것을 문희는 겨우 돌려세웠다. 어째선지 제삼자의 개입이 실퉁했다. 그래서 주소만 알아가지고 나섰다.

문희는 자신의 문제가 결정되고 안착되기 전에는 되도록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되지 않았으면 했으나 거리에 나서자마자 싫은 사람을 만났다. 그가 뻐스정류소에서 차를 기다리고있는데 지나가던 승용차한대가 인도쪽으로 대여 서더니 뜻밖에도 진하게 화장을 한 설희가 뛰여내려 달려와서 목에 매달리며 반갑노라 까불어댔다.

《아이, 정말 깜짝이야. 어쩌면 전보도 치지 않구… 됐어요, 왔으니 됐어요. 그것 봐, 결심하면 그렇게 쉬운걸.》

설희는 반가와하기보다는 애잡짤한 회상에나 잠기는것만 같은 문희의 너무나 침착한 태도를 의혹의 눈으로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이였다.

《물론 그 〈국회〉의원의 조카라는 기사와 약혼하러 왔겠죠? 답답해라. 아무래도 재혼할걸 왜 아까운 세월만 허비하면서 질질 끌겠어요.》

문희는 너무도 어이없어서 설희를 마주보지도 않고 핀잔을 주었다.

《철딱서니없는 소리! 세상물정을 그렇게도 몰라가지고서야 무슨 사람다운 생각을 하겠니?》

설희는 금시 새침해졌다. 그러더니 재일의 머리를 만져주면서 문희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그런데 우리 집으로 가지 않고 어델 가?》

《너희 집에서 무슨 대감이 부른다고 꼭 거길 가야겠니?》

《아니, 그럼?…》

《뭐 모를게 있니? 애아버지한테 돌아가는 길이다.》

설희는 눈이 둥그래졌다. 가로등의 불빛에 드러난 긴 인조속눈섭이 바르르 떨고 차겁게 반들거리는 눈길이 독을 머금고 꼿꼿해졌다.

《언닌 머리가 돌았어. 아버지가 아시면 가만있을줄 알아?…》

설희는 무슨 말인가 더 하려고 했으나 이때 뻐스가 와서 문희가 재일의 손을 잡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설희는 더 탈 자리도 없는 자기 차로 태워다주겠노라고 인사치레로 몇번이나 문희를 불렀으나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문희가 남편이 방을 빌려 살고있다는 장태일기사네 집이 있는 구식기와집들이 촘촘히 선 마을에 도착한것은 음력 보름을 하루이틀 앞둔 둥근달이 유난히 밝은 저녁경이였다. 어느 한 집에서 나오는 젊은이에게 기사네 집을 물었더니 바로 눈앞에 보이는 국수집 옆집이라고 가리켜준다.

그 집을 보는 순간 문희는 불시에 가슴이 두근거려 트렁크를 내려놓았다. 울고싶도록 강렬한 반가움과 그리움우에 커다란 바위와 같은 두려움이 쿵하고 사정없이 내려찧는듯 했다.

남편은 나를 용서할것인가? 그이가 그렇게도 괴로운 시련을 겪던 때에 제발로 뛰쳐나간 배신행위를, 남편에게서 내가 돌아와달라는 쪽지편지 한장 받은 일 없는 내가 무슨 렴치로 왔을가…

이런 생각에 괴로운 문희는 쭈그리고 앉아 어리둥절해있는 재일을 가슴에 부여안고 아이의 볼에 이마를 비비며 신음하였다.

그들은 조용히 두려운 집으로 다가갔다. 드나드는 사람이 많은 국수집앞을 지나자 짧은 판자쪽들로 엮은 기사네 낮은 울타리가 나졌다. 눈높이의 간살이 성근 그 울타리너머로 창문에 불이 비친 안채며 직각으로 잇달린 컴컴한 사랑채가 보였다. 뜨락어귀에 수도가 있는지 누군가 물소리를 내고있었다. 그쪽을 눈여겨보던 문희는 깜짝 놀랐다.

그는 울타리짬에 눈을 댄 아들애를 급히 끌어당겨 같이 뒤걸음치면서 속삭이였다.

《제발 소리를 내지 마!》

수도가에서는 남편이 빨래를 하고있었다. 달이 밝은데다가 국수집 외등불빛이 사각으로 비쳐들어 남편이 입은 허름한 옷이며 낡은 신발까지 알아볼수 있었다. 쭈그리고 앉아 작업복인듯 한것을 몇번이나 물이 담긴 대야에서 헹구어짜던 그는 손맥이 풀려서인지 아니면 마음이 괴로와서인지 턱을 높이 들고 수척한 얼굴을 검푸른 하늘로 향한채 입을 하 벌리고 가늘게 신음소리를 내며 무슨 소린지 조용히 중얼거리고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는 문희는 그 어떤 거센 손아귀가 심장을 비틀어짜는듯 한 괴로움에 가볍게 발을 구르며 속으로 부르짖었다.

(나를 저주하는구나!… 이 못난 녀자를 어떻게 하면 좋아요?…)

아버지를 알아보고 뜨락으로 달려들어가려고 안깐힘을 쓰는 아들을 가까스로 억제하고있던 문희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이렇게 몇초동안 서있다가 결심을 다지고 쪽문쪽으로 몇걸음 옮겼다.

이때 진수가 놀란 사람처럼 훌쩍 일어나 빨래대야를 들고 집안으로 뛰여들어갔다. 그러더니 연기가 모질게 나는, 남비가 얹혀진 석유곤로를 헝겊에 싸들고 뜨락으로 허둥거리며 뛰여나왔다. 그는 재빨리 남비를 들어내놓고 걸레로 불을 껐다. 석유연기와 밥탄 연기가 코를 찔렀다. 빨래바람에 그만 곤로불을 꺼야 할 시간을 놓친것이다. 그는 옆구리에 손을 짚고 바닥에 밥이 새까맣게 타붙은 남비를 멍하니 굽어보고있었다.

진수의 이 실수를 본 문희는 곧 남편이 겪고있는 고생살이가 자신의 죄악처럼 괴로왔다. 그러나 그 죄책감도 뒤따라 일어난 폭풍같은 사랑의 감정에 휩쓸리고말았다. 남편이 빨래를 하다가 밥을 태웠다는 그 평범한 실수가 문희에게는 오히려 그의 인간적인 커다란 우점처럼 보였다.

제가 입은 타격은 생각지도 않고 민중을 위하여 류치장살이를 하는가 하면 직업과 집까지 잃기도 하고, 안해를 잘못 만나 홀아비생활도 하고 빨래바람에 밥을 태우는 아이같은 실수도 할줄 아는 사람! 얼마나 적라라하고 얼마나 속속들이 남자답고 진실한 인간인가! 이런 남편을 사랑하지 않고 누구를 사랑하랴!

이 강렬한 느낌은 그들이 일찌기 처음으로 만나 사랑을 터놓았을 때보다도 더욱 격렬한 감정이였다. 뜨락으로 달려들어가 열정적으로 애무해주고싶은 충동으로 숨결이 거칠어졌다. 문희는 자기 손에서 벗어나려고 안깐힘을 쓰는 어린 아들을 자기대신으로 놓아주었다.

재일은 언뜻 어머니를 돌아보더니 돌돌 구울듯 뜨락으로 달려들어가며 순진한 즐거움이 담뿍 어린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버지!… 아버지!…》

망연자실하여 서있던 진수는 흠칫 놀라 온 시력을 아이에게 쏟으며 마주 나섰다.

《이게 누구냐?… 재일아!…》

진수는 무릎을 꿇고 아들애를 그러안고 얼음같이 차거운 되박이마며 뺨 할것없이 온 얼굴에 정신없이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도 갈린 목소리로 《엄만 어데 있니? 어데 있어?…》 하고 몇번이나 물었다.

쏟아지는 눈물을 이리 씻고 저리 씻으며 이 광경을 바라보던 문희는 남편이 자기를 찾는 소리를 듣고는 두손에 얼굴을 싸쥐고 트렁크우에 주저앉아 짓눌린 목소리로 조용히 흐느껴울었다.

남편이 쪽문밖으로 뛰여나왔다.

《여보!…》

진수는 이렇게 불렀을뿐 말을 잇지 못했다. 문희는 밝은 얼굴로 자기의 감정을 극적으로 표현하고싶었으나 무릎에 얼굴을 묻은채 어깨를 들먹일뿐이였다.

《여보! 나를 용서하오!…》

진수는 갈린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면서 한손으로 안해를 부축하여 일으키고 다른 손으로 트렁크를 들었다. 재일은 뜨락으로 들어서는 아버지, 어머니의 두리를 까치걸음으로 빙빙 돌며 좋아서 어쩔줄 몰라했다.

주인집 문이 열리더니 기사내외가 마루에 나와 그들의 경사를 축하했다.

《좀 있다가 인사하러 들리겠습니다.》

장태일기사가 전에없이 벙글거리며 진수에게 말했다.

진수부부는 재일을 앞세우고 자기의 방으로 들어갔다.


×


재일의 곁에 앉아 남편의 작업복을 손질하는 문희도, 벽에 기대여앉아 무릎에 책을 펴놓고 담배를 피우는 진수도 얼굴이 평온했다.

《생각해볼수록 가슴이 아프오, 당신 어머니의 일 말이요. 집마련이 되면 인차 기별을 해서 꼭 모시자구.》

간밤에 이미 안해로부터 장모의 슬픈 이야기를 전해들은 진수였다. 커다란 충격이였다. 그렇게도 억울한 희생자를 제대로 알아보지도 못한것이 부끄러웠고 안해를 진작 떼여내여 가치있는 사명감에 충실한 사회인으로 추세워주지 못한것이 못내 가슴아팠다.

그는 이전보다도 소박해지고 생각이 깊어진듯 한 안해의 모성적인 부드러움을 살펴보며 말했다.

《년로하신분이 그 험한 시골에서 홀로 고생을 하시니 나를 얼마나 욕하시겠소. 되도록 빨리 모셔야겠소.》

문희는 재게 놀리던 바늘을 쥔 손을 멈추고 부드러운 눈길로 전에없이 소중해진 남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때 밖에서 자동차의 경적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뜨락에 들어서며 묻는 소리가 들렸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장태일씨라고 이 댁에 사시는가요?》

안채에서 그렇다고 대답하는 소리가 들렸다.

방문자가 다시 물었다.

《그럼 이 댁에 정진수씨가 계시는가요?》

귀를 강구고있던 진수가 밖으로 나가 방문자를 만났다. 차를 몰고 온 운전사였다. 그가 쪽문밖으로 나가더니 다른 사람이 들어왔다. 야등의 불빛에 모습이 드러나는 그 사람은 놀랍게도 송건호였다.

《이렇게 와서 미안하오.》

잘 차려입은 송건호가 안채와 진수네가 사는 사랑채를 둘러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겨우 찾아왔군. 난 자네에겐 아무 감정도 둔게 없네. 설희에게 듣자니 문희가 왔다기에 신문사에서 겨우 주소를 알아가지고 왔지. 그애한테 좀 볼일이 있어서…》

진수는 거칠어지는 마음을 누르고 말없이 송건호를 집안으로 안내했다.

문희는 아버지가 방안으로 들어섰으나 일어나지도 않았고 쳐다보지도 않았다. 얼굴이 훌쭉해진 건호가 선채로 말했다.

《지금 나하고 같이 집으로 좀 가자. 조용히 의논할 일이 있어서 그런다.》

《난 조용히 의논하고픈게 없어요, 돌아가세요. 여긴 올데가 아니예요.》

문희가 샐쭉해서 이렇게 말하자 건호의 눈길이 매서워지고 굵은 주름이 패인 뺨이 푸들거렸다.

《무엇이라고? 네가 시골에 가더니 에미한테서 무슨 망녕된 소리라도 들었냐?》

《듣구말구요, 다 들었어요! 가슴속에 감옥을 갖고있으면서 무슨 렴치로 낯을 들고 살아요?》

《하 이런, 입을 다물지 못해? 배은망덕도 분수가 있지. 이날이때까지 너를 키워주고 돌봐준게 누구냐. 너 같은걸 다 딸이라구…》

《왜 딸이 아니예요. 내 어머니를 망쳐죽이는 죄많은 아버지의 딸이지요. 더러운 자본가에게 붙어살려고 딸과 사위까지 허벼내는 못난 아버지의 딸이지요. 덕분에 나는 바보처럼 살았지요. 그렇지만 이젠 나도 소경으로 살순 없어요!…》

문희는 울지 않았고 낯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분노는 붉어진 살빛에만 내여비칠뿐 설음에 씻긴 맑은 눈에는 자신을 찾고 새롭게 살려는 밝은 희망이 선명히 빛나고있었다. 딸의 이러한 모습을 일별한 건호는 적의 견고한 요새를 쳐다보는 무졸장군처럼 자신의 어쩔길 없는 패배를 절감했다. 그는 흐려지는 눈을 슴벅거리며 자기를 변호해주기를 바라는것처럼 진수를 멍청히 건너다보았다.

《안됐습니다.》

진수가 조용히 말했다.

《사람답게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는 나가달라는 표시로 출입문을 열었다. 송건호는 창백한 얼굴로 다시한번 딸을 돌아보더니 머리를 떨구고 밖으로 나갔다.

이날 밤 진수부부는 친구들의 떠들썩한 방문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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