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0 회


제 8 장


40


진수가 야간학교에서 강의를 마치고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을 때 문희가 반겨맞으며 기쁜 소식을 전했다. 조학준기자가 찾아와서 진수가 신문사에 다시 복직됐다는 소식을 전하고 갔고 그보다 앞서 사의 사환아이가 와서 사장이 부른다는 지시를 전하더라고 했다.

다음날 아침 진수는 사장을 찾아갔다. 사장실앞에 이른 그는 마침 위달종편집국장과 무슨 이야기를 나누면서 문을 나서는 사장을 만났다. 륙십나이에도 성근 머리칼을 언제나 애지중지 염색하여 반들거리는 정수리를 덮어 가리우고 매춘부들을 찾아다닌다는 사장은 자기의 가슴높이에서 쳐다보는 위달종과 마주 웃으며 이야기를 하다가 진수를 보는 순간 어리뻥한 얼굴이 되였다. 진수는 그의 툭 불거져나온 정기없는 눈과 담배가 드리운 처진 입귀를 가벼운 랭소로 바라보았다.

《저를 불렀습니까?》

진수가 퉁명스럽게 물었으나 사장은 그냥 멍청히 지켜보더니 자기의 현란한 손목시계를 보고 방안으로 들어가면서 두덜거렸다.

《불렀소.》

그러나 그의 벌거우리한 살찐 얼굴은 《이 괘씸한 놈을 그저…》하고 벼르는듯 했다. 위달종은 말없이 가버렸다. 진수가 규모있게 차린 방안에 들어서자 사장은 하루에 두세번 앉아보는 자기의 커다란 의자에 한손을 얹고 창문을 바라보며 랭랭하게 말했다.

《당신은 복직되였소. 그저 그뿐이요. 교훈을 찾았겠지만, 처신을 잘하시오.… 그럼 난 바쁜 일이 있어서…》

《알겠습니다.》

진수도 한마디를 남기고 방을 나섰다.

푸대접은 편집국장실에서도 매한가지였다. 위달종은 두세명의 부서책임자들과 특집구상을 의논하면서 어느 틈에 진수를 돌아보며 복직을 축하한다는것과 전에 일하던 부서에서 사업하면 된다는 말을 했을뿐이였다.

진수는 불쾌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이러한 푸대접은 오히려 진수에게 자기의 복직을 위하여 꾸준히 투쟁해준 사내의 동료기자, 편집원들과 서울의 언론, 출판계에 대한 감사의 정을 불러냈다. 실상 《3선개헌》을 반대하는 대중투쟁이 날로 격화되는데 겁을 먹은 당국자들은 언론계까지 여기에 합세하는 기세를 보이자 몇가지 자질구레한 분쟁문제에서 양보하는체 했는데 진수의 복직도 그 언저리에서 이루어진것이였다.

진수를 만난 기자들은 누구나 그의 복직을 자기들의 승리처럼 기뻐했다. 그가 부서에 들려 동료들의 떠들썩한 웃음속에 싸여있을 때 녀성적인 얼굴에 살집이 좋은 기자가 뛰여들어 그를 붙안고 반가와했다.

《진수! 몹시 보고싶었다!…》

《로태식이! 살아왔구만!…》

《이 친구, 난 윁남의 불속을 헤매고도 무명전사로 돌아왔는데 자넨 그사이 서울바닥에서 영웅이 됐더구만. 다 들었네. 아주 비슷해.》

로태식은 윁남전쟁에 종군하고 돌아온 유능한 기자로서 진수와 오랜 우정을 맺어온 사이였다. 그는 진수를 끌고 다른 빈방으로 들어가더니 침울한 얼굴로 일변하였다.

《슬픈 소식을 전해야겠어. 귀국하자마자 만나고싶었는데 이틀동안이나 뒤처리건으로 여러 기관에 잡혀있다나니 이렇게 됐네. 다른게 아니구… 참 안됐네만…》

《뭔데. 내 동생이라도 만났나?》

《바로 그 얘긴데. 인수는 지금 서울교외에 있는 ∘∘정신병원에 갇혀있네.》

너무도 놀란 진수는 구원이나 청하듯 로태식의 팔을 잡았다.

《정신병원에? 그애가 미쳤단 말인가?》

《말두 말게. 내가 데리고 오느라고 혼났어.》

진수는 가슴속에서 바늘묶음이 돌아가는듯 한 아픔과 함께 마치도 자기가 오랜 세월 감추고있던 무서운 범죄가 드러난듯 한 절망감에 싸여 의자에 주저앉았다. 로태식도 마주앉았다. 그는 사태의 전말을 간단히 이야기했다.

…남부윁남의 모든 지대와 마찬가지로 메콩강삼각주일대는 《베트공》의 강화되는 련속적인 공세로 무서운 수라장을 이루고있었다. 증강된 미군도, 《국군》과 남부윁남《정부군》도 필사적인 반공격을 시도했으나 그때마다 상대측의 불소나기에 맞아 최후의 지탱점인 도시로 되밀리군 했다. 뼈속까지 애수로 절구는 무서운 장마와 숙명적인 괴멸에 대한 예감, 동물적인 야성이 끝없이 빚어내는 천만가지 치떨리는 만행으로 도시도, 군인들도 얼을 잃고있었다.

어느날 특파기자 로태식은 사이공으로부터 직승기편으로 삼각주에 있는 한 소도시의 교외로 《국군》의 한 부대를 찾아갔다. 그가 그곳의 한 침울한 소령을 만나 이것저것 취재를 한 끝에 야자수숲속에 있는 자그마한 군수창을 돌아보는데 뒤켠 어데선가 발악적으로 지르는 무서운 비명소리가 거듭 들려왔다.

《저게 무슨 소리요?》

기자가 묻자 소령은 짧은 한숨을 쉬였다.

《뭐 관심거리가 못됩니다. 흔해빠진 미친놈인데 곧 처단할 〈곶감〉이지요.》

《처단해요?》

《그럼요. 부대내에서 제일 겁이 많거나 사상이 불온한 놈들을 골라내서 전투정신을 키워줄겸 총창으로 해제끼게 하지요. 그래서 〈곶감〉이라고 하는데…》

로태식의 요구로 그들은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각종 페설물무데기의 뒤켠 숲속에 철문에 쇠빗장이 질린 자그마한 단층구조물이 있었는데 거기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소령이 철문을 열었다. 그 순간 로태식은 놀라 한걸음 물러섰다.

인분내가 코를 찌르는 어스레한 방안에서 짐승이 다된 새까만 두사나이가 칼날같은 시선으로 내다보고있었다. 하나는 구석에 앉아있고 하나는 금시 달려들듯 한 기세로 서있었다. 소령은 인분내가 싫어 담배를 피워물고 돌아섰다.

《나를 죽여라! 이 쌍X같은 짜식아!》

서있는 사나이가 거미같은 손으로 가슴을 쥐여뜯으며 발가락에 피가 나는 맨발로 바닥을 구르며 소리쳤다.

《그저 보려구 왔소. 나는 기자요. 신문기자요.》

《기자?… 뭐 기자라구?…》

사나이는 머리를 가슴우에 드리우고 앉아 이따금 푸들거리는 저의 동료를 돌아보더니 싯누렇게 더러운 이발을 온통 드러내며 야단스럽게 웃어댔다. 그러더니 다시 로태식을 빤히 바라보며 물었다.

《기자라구? 그럼 진수라는 개자식은 알아? 서울이다, 서울! 서울에 있는 그 개자식! 내가 동생이다!…》

이렇게 되여 로태식은 그가 진수의 동생인 인수라는것을 알게 됐다. 한동안 온전한 의식으로 돌아온듯 한 인수는 태식과 단편적인 이야기를 나누더니 애간장이 타는듯 한 절망으로 팔을 내두르며 《영옥아!》 하고 숨이 넘어가는 소리를 쳤다. 그 부르짖음은 그대로 통곡이 되였다. 바닥에 쓰러진 인수는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몸부림치며 슬피 울었다.

태식은 기자의 권한으로 인수를 구출하여 군에서 빼내는데 간신히 성공했다. 그렇게 한 후에 귀국할 때 직접 데리고 왔었다. 인수에게는 절대로 일반시민들과 접촉시키는것을 금한다는 상급의 조건부가 붙어있었다. 호송관은 그에 따라 인수의 혈족들에게도 알리지 않고 정신병원에 가두어버린것이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진수는 한동안 눈물만 닦을뿐 아무 말도 못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소지품 같은걸 남긴건 없던가?》

로태식은 인수가 짬짬이 써둔 일기토막이 있었는데 그와 가깝게 지냈던 군인들의 부탁대로 간밤에 박명찬교수의 집으로 찾아가서 영옥에게 직접 전했다고 했다.

태식과 헤여진 진수는 맥없이 신문사에서 나왔다. 자신의 복직과 동생의 파멸, 이 상반되는 사태앞에서 그자신이 미칠것만 같았다.

집에 도착한 진수는 방안에서 그를 기다리고있는 박영옥을 만났다. 문희는 음식을 사러 거리로 나가고 재일은 뜨락에서 놀고있었다. 얼굴이 창백해진 영옥은 진수를 보자 손수건을 눈에 대고 조용히 울었다. 진수도 묵묵히 담배만 태웠다.

《어떻게 하면 좋아요?》

긴 침묵끝에 영옥이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면서 가방속에서 백지로 포장한 얄팍한 책 같은것을 내놓고 일어섰다.

《인수씨의 일기예요. 무서운, 정말 무서운 책이예요. 읽어보세요. 야수들이 날뛰는 지옥의 어둠속에서 꽃을 찾다가 미친거예요.》

영옥은 지금 너무도 마음이 혼란되여 아무 얘기도 할수 없다면서 돌아갔다.

진수는 인수의 일기라는것을 손에 들었다. 백지를 헤쳐보니 겉표지와 내용의 많은 부분이 떨어져나간, 기름과 손때에 더럽혀진 속지의 한토막이였다. 그는 후에 찬찬히 읽기로 하고 먼저 책장이 번져지는대로 대충 읽어보았다.

《7월 11일.

2소대의 윤덕삼일병이 죽었다. 참혹한 죽음이다. 이틀전에 도망치다가 7키로메터밖에서 수색대에 걸려 개처럼 끌려왔던 인천내기, 대대장명령으로 중대앞에서 기합으로 초죽음을 만든 후에 돼지같은 곽도치하사가 그를 발가벗겨 하필이면 우리 3소대와 2소대사이에 있는 나무에 묶어놓았다. 덕삼은 이틀간이나 모기에 뜯기우며 비명을 질렀다. 그바람에 우리는 한잠도 자지 못했다.

오늘 아침에 나가보니 죽어있었다. 모기가 온통 뜯어먹어서 피부가 없는 시꺼먼 살덩어리였다. 속이 치밀어서 아침을 못 먹었다.

어째서, 어째서 이런 만행이 벌어지는것일가?… 중대장은 왜 나의 얼굴이 새까매졌는가고 묻는다. 나는 대답을 안했다. 아,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7월 17일.

어제 ∘∘부락을 없애치웠다. 리유는 하나, 베트공과의 내통이 심하다는거다. 불의에 포로 갈기고 비행기로 맹폭격했다. 그뒤로 두개중대가 쳐들어갔다. 남녀로소 가릴것 없이 총으로, 수류탄으로, 날창으로 죽였다.

나는 출전전에 술을 너무 마셔서 맥을 추지 못했다.

나는 짐승이였다. 송곳이 심장에 박히는것 같았다. 넋잃고 멍하니 서있다가 뒤에서 어떤 령감태기가 후려갈기는 몽둥이에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제때에 잘 죽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더럽게도 살아났다.

숲속에서는 사병놈들이 할머니가 다된 두 녀자를 륜간하고 목을 졸라죽이고있었다. 쑥밭이 된 마을은 남녀로소의 시체로 덮였다. 그속에 총을 쥔 베트공의 시체는 단 두구뿐이였다.

저녁에 두 사병이 발광했다. 그들은 총살됐다. 나는 밤새도록 엎드려 이를 악물고 울었다.

왜 나는 로인의 몽둥이에 죽지 못했을가.

이것이 과연 베트공을, 국제공산주의를 〈소탕〉하는 성스러운 싸움이란 말인가? 곡식을 말리우고있던 로인들과 아기를 안은 녀인들을 칼탕치는것이 과연 〈자유세계〉를 지키는 투쟁이란 말인가?… 내가 미치지 않는것이 이상스럽다.》


《8월 3일.

3일전에 중대장회의에 갔다오던 한치세놈이 다른 두 중대장과 불교사찰에서 늙은 중을 때려죽이고 로인의 열다섯살 난 손녀를 륜간하고 목을 졸라죽였다. 대대장 련락병이 숨어서 봤다면서 전해준다. 소대안에서도 쉬쉬하며 뒤소문이 돈다.

장교식당에서 한치세를 만나 도전했다.

〈소녀사냥을 했다지요? 그 맛이 맥주맛보다는 좋겠지요?〉

한치세는 스프링처럼 튀여일어나며 나의 멱살을 틀어쥔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주먹으로 본때있게 쳐갈겼다. 놈은 서너메터밖에 모재비로 떨어지며 벽에 뒤골을 찧고 너부러졌다. 그통에 나는 상관놈들로부터 무리매를 맞고 대대장실로 포대자루처럼 끌려갔다. 대대장은 나의 소위견장을 뜯어던지고 병졸로 강급시켰다.

물러가라, 치욕스런 나의 장교시절이여!

고국을 떠나던 리별의 룡산역두에서 박영옥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던 최하급장교! 이제는 코가 발이 된 졸병으로 그 녀자를 만나야 하는가! 영옥아, 빈다, 제발 불쌍히 여겨 너의 구슬같은 손을 나의 어깨에 얹어주렴!…》


《8월 11일.

곽도치하사놈이 ∘∘촌장의 딸을 겁탈했다. 겁탈당한 처녀가 범죄자를 찾으러 왔다. 부대가 정렬한 대오앞에서 처녀는 곽도치놈을 색출했다. 중대장은 마지못해 곽도치를 후려갈기고 호되게 징벌하겠다고 하면서 끌어갔다. 촌민들의 집단항거가 두려워서 속이는 연극이다.

처녀는 우리모두를 무섭게 욕질했다. 이글거리는 화로불을 얼굴에 퍼붓는듯 한 규탄이였다.

무섭다. 치가 떨린다. 베트공한테 련속 벼락을 맞고는 백성들을 사정없이 도살하는 〈국군〉, 이곳에선 울던 아이도 〈따이한!〉 하면 소스라치며 울음을 뚝 그치는 판이다.

온통 야만이고 미친 색마들이다. 녀자로 생긴것은 모조리 겁탈하는거다.

베트공이 이런 짐승들을 처단하는것은 정당하다! 정말 우리의 진짜적은 베트공이 아니라 살인귀, 야만으로 변한 우리자신이 아닐가? 우리를 이 지경으로 망쳐놓은 장교놈들, 그놈들을 조종하여 우리를 총알받이로 죽이는 저 양키놈들, 그 양키들에게 우리를 팔아넘긴 서울의 박〈정권〉, 그 개새끼들이 때려죽일 진짜적이 아닌가? 아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걸가. 빨갱이로 몰려 가죽을 벗기울라. 까짓것, 죽이라지! 죽이라지! 차라리 짓밟아, 짓밟아서 캄캄한 무덤속에 묻어달라!

아, 영옥이! 나의 마지막희망인 사람아, 나는 어쩌라느냐?…》


《9월 11일.

오늘은 나의 명절이다. 영옥의 회답편지를 받았다! 윁남에서 받은 세번째 편지다. 정보관, 검열관놈들이 띠염띠염 13개의 글줄을 새까맣게 지워버린 한장의 편지다.

망할것, 사랑이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다. 그저 〈깨끗한 손〉으로 돌아오라는 말뿐… 증오도 사랑도 없는, 슬픈 동정뿐이다. 그래도 스무나문번이나 읽고 또 읽었다.

생각은 자꾸 지워진 글줄들을 더듬는다. 거기에 무슨 말이 씌여있었을가? 사람잡이를 저주하는 날카로운 말이 아니였을가? 검열관들이 새까맣게 지워버릴 그런 편지를 쓸줄 아는 영옥은 얼마나 똑똑하고 고상한가! 그러나 나는 이미 악취나는 짐승, 그 녀자를 감히 바라볼수나 있겠는가?

영옥은 내가 잃어버린 인간세계의 상징, 미칠듯 그리운 평화로운 삶의 문어구에 서서 나를 돌아보는 아름다운 눈, 그러나 나는 지옥의 불속에서 날뛰는 야만이니 그 녀자는 별처럼 멀구나! 오, 죽어서 구름이나 되여 천둥소리로 통곡하면서…》


《11월 23일.

마취제를 먹지 않고는 잘수가 없다. 머리가 짜개지는것처럼 아프다. 두번이나 코끼리에게 물리워 기절했다. 그런데 남궁모자식은 빤히 보고 웃어대더니 벌벌 떨며 뒤걸음을 친다. 개자식들은 왜 나를 무서워하는걸가? 모두 비실비실 피한다.

간밤엔 군의관이 나를 진찰하고 머리를 설레설레 젓는다. 무슨 개수작이냐. 나를 죽이자는거다. 곽도치놈이 자꾸 칼을 가는것이 수상하다.》


《12월 27일.

우리 3소대엔 세사람이 남았다. 나머지는 푸네이사라든가 하는 동굴습격전투에서 다 죽었다. 곽도치놈도 소대장놈도 다 뒈졌다. 모두 화장터에 실려가서 배가 빵빵 터졌다.

나는 어떻게 살아남았을가? 전혀 생각이 안 나는걸. 아이구, 골이야. 어느 새끼가 내 머리속에 칼을 박았을가?… 저것 보라, 저기 새까만 어둠속에서 숱한 눈깔들이 나를 노려본다.…》


진수는 더 읽을수 없었다. 시꺼먼 구름이 두리상처럼 커다란 달을 움켜 돌산에 동댕이쳐 산산쪼각을 내는 환영이 얼른거렸다. 그는 주먹으로 일기를 내리치며 책상에 이마를 꽝꽝 조아렸다. 동생은 파멸한것이다.


다음날 아침에 진수는 동생을 찾아 서울에서 멀지 않은 야산속에 있는 ∘∘정신병원으로 찾아갔다. 말이 병원이지 너절한 창고 같은 자그마한 이층벽돌집에 토벽이 군데군데 떨어지고 유리가 깨진 자그마한 창문들에 돼지우리에서처럼 더러운 널쪼각들을 붙인 두채의 납작한 단층건물에 붙어있는 스산한 수용소였다.

단층모서리로 긴 머리를 흐트러뜨리고 웃통을 벗은 먼지투성이녀자가 팔다리를 마구 내뿌리는것처럼 흔들며 뛰여나오는것이 보였다. 어느 방에선 녀자가 왕왕 우는 소리가 나는가 하면 다른 채의 어느 방에선 신음소리도 아니고 노래소리도 아닌 괴상한 웨침소리가 들려왔다.

자그마한 음식꾸레미를 든 진수는 한순간 뜨락에 멍청하니 서있었다. 감옥보다도 무서운 이런 곳에 인수가 박혀있다고 생각하니 기가 막히고 맥이 싹 풀렸다. 이런줄도 모르고있는 고향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더욱 쓰렸다.

진수는 벽돌집 2층에서 하늘소처럼 귀가 빨쭉한 늙은 원장을 만나 사유를 이야기했다. 원장은 인수의 담당의사를 불렀다. 좁은 이마에 굵은 주름이 패이고 맵짜보이는 눈밑으로부터 짧은 수염털이 부시시 돋은 야인같은 의사는 진수가 들고있는 꾸레미에 눈을 주며 무뚝뚝하게 말했다.

《정인수환자는 면회할수 없습니다. 호송해온 군인의 명령입니다. 절대로, 네. 절대로 안됩니다.》

진수는 말없이 기자신분증을 내보였다. 털보는 난처하다는듯이 원장을 돌아보았다. 원장은 응하는수밖에 없다는 표시로 머리를 끄덕여보이고 방에서 나갔다. 진수는 의자에 털썩 앉으며 환자를 보기전에 병상을 간단히 알고싶다고 했다. 의사는 바투 깎은 머리를 자꾸 쓸어올리며 두덜거리는 투로 말했다.

《인수환자는 확실히 문젭니다. 조용히 있다가도 급작스레 발광을 하는데 그럴 때면 온통 〈반공법〉과 〈보안법〉에 걸릴 쌍욕만 웨쳐대거든요.》

《그런가요. 이를테면 어떤조로?…》

《내가 그 말을 옮겨요?》

의사는 눈이 둥그래지더니 손을 내둘렀다.

《말두 마십쇼!… 나두 살아야 할게 아닙니까.》

《일없소. 절대 안심하십시오. 난 인수의 친형이요.》

《글쎄, 그렇다면… 거시기 뭐랄가요, 인수환자는 쩍하면 박〈대통령〉과 미군들을 때려죽이라니, 목을 뽑아 홍문에 박으라느니… 어휴, 말도 마십쇼, 별의별 저주를 다 퍼붓거든요.》

《…그저 그런것뿐이요?》

《그러다간 어떤 때는 영옥인지 하는 녀자이름을 부르며 통곡을 하고… 그건 그런데 문제는 거시기 그 무서운 욕질이 하두…》

진수는 일어섰다.

얼마후 진수는 《몽둥이찜질실》이라는 어지러운 방에 옮겨진 동생을 만나볼수 있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방안에 들어선 진수는 시뿌연 머리가 까스스한 말라빠진 먼지투성이사나이가 창문에서 비껴드리운 해살 저편 어스레한 방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무엇인가 어지러운것을 정신없이 갉아먹고있는것을 보았다. 그 사나이를 보는 순간 진수는 피가 얼어드는듯 한 본능적인 공포와 함께 언젠가 동물원에서 본 늙은 류인원을 생각했다. 숱한 구경군들앞에서 처량한 애수에 잠겨 누군가 던져준 과자쪼각을 열심히 갉아먹고있던 그 류인원, 어쩌면 이 사나이는 이렇게도 그 늙은 류인원을 닮았을가. 아니다, 내 동생이 아니다! 진수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몇걸음 앞으로 나섰다.

사나이는 얼결에 탁 풀린 흐린 눈길로 진수를 쳐다보았으나 전혀 알아보지 못한채 남이 먹다버린 사과속을 다시금 갉아먹었다.

진수는 가느다란 비명과 함께 발을 구르며 동생을 불렀다.

《인수야!…》

인수는 벌떡 일어섰으나 여전히 형을 알아보지 못했다. 진수는 동생을 와락 끌어안고 와들와들 떨리는 손으로 까스스한 머리며 여윈 잔등을 어루만졌다. 줄지어 흐르는 눈물이 환자의 어깨를 적셨다.

《인수야, 나다, 진수다, 형도 모르겠냐? 어쩌다가 이렇게 됐냐? 이 자식아!…》

그러나 인수는 불시에 형을 밀어던지고 구석으로 어슬비슬 물러서더니 린광이 철철 흐르는듯 한 시퍼런 눈으로 뚫어지게 쏘아보며 마디마디 씹어뱉는듯 한 소리를 쳤다.

《이 쌍… 날 잡아먹겠다구? 처먹어라, 다 처먹어라! 내 염통, 내 대가리는 양키들이 기름에 지져먹었다! 이 쌍, 내 손가락, 발가락이나 잘라먹어라! 박정희놈의 졸개새끼야!…》

저주를 퍼붓던 인수는 급작스레 무엇에 찔리운것처럼 오만상을 찌프리며 머리를 숙이더니 벽에 잔등을 끌며 털버덕 주저앉았다. 절망으로 캄캄해진 진수는 얼굴을 싸쥐고 의자에 주저앉아 한동안 신음하였다.

형을 멍하니 쳐다보던 인수는 앉은걸음으로 다가와서 진수가 의자에 놓은 꾸레미에서 설기떡 한개를 꺼내여 입이 미여지게 먹어댔다. 그렇게 한동안 먹고나더니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여돌아가서 애수에 절은 신음소리로 마른 울음을 울었다.

너무도 기막힌 정상을 본 진수는 불길처럼 타오르는 절망적인 분노에 벌떡 일어나 동생을 마구 잡아흔들며 소리쳤다.

《죽어라, 이 못난 자식아! 이 더러운 세상에 나긴 왜 나가지고… 코를 꿰여 끌려다니며 사람잡이로 피투성이가 되구, 잘두 잘났다!…

죽어라! 노예로 산 너따위가 무슨 량심이 살아가지구 사치하게 고민까지 하구 미친단 말이냐. 이 자식아, 개가 돼야 출세를 한다는걸 몰랐느냐? 어휴, 별처럼 먼 녀잘 짝사랑이나 하다가 죽어라! 이 못난 자식아!…》

너무도 서럽고 너무도 분하여 마구 된욕설을 퍼부은 진수는 류인원같은 얼굴로 멍청히 쳐다보는 동생을 남겨둔채 방에서 뛰쳐나가 수직실인듯 한 빈방에 뛰여들어가 어지러운 침대에 낯을 묻고 엉엉 울었다. 그러다가 가슴을 세차게 때리는 하나의 생각에 머리를 들었다.

(왜 우는가. 무슨 렴치로 운단 말인가. 동생을 망친것은 내가 아니란 말인가? 압제자들이 날뛰도록 내버려둔것은 내가 아니였던가! 내가 바보이고 무력하니까, 내가 압제자들을 쳐부시지 못하니 그놈들이 먼저 나에게서 동생까지 빼앗아 짓밟아버린거다.

세월은 고리대금업자, 벌써 청산했어야 할 일을 미루어오니 오늘에는 그 빚이 열백배로 되여, 바위돌로 되여 나를 내리찧는것이 아닌가! 야, 인수야! 너는 이 뼈아픈 교훈으로 나를 후려갈기려구 그렇게도 무섭게 죽어 나타났구나!…)

진수는 이를 악물고 소리없이 울었다.


3일후에 진수는 정신병원에서 보내온 사망통지서와 죽은 원인을 밝힌 담당의사의 짤막한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환자가 병원하수도의 망홀속에서 시체로 발견됐는데 조사결과는 자살이 확실하다고 하였다.

장지에는 진수부부와 조옥림(동혁은 다른 급한 일로 참여 못했다.), 조학준기자를 비롯한 몇몇 동료들, 진수의 어머니 리씨와 기타 몇몇 사람들이 갔다. 죄악감과 분노에 지친 진수는 자신이 울지 않았을뿐만아니라 남들까지 울지 못하게 했다. 손수 무덤의 흙을 다 지고 떼장을 입히던 그는 목놓아우는 어머니와 안해에게 버럭 화를 내기까지 했다. 리씨의 절망은 너무도 격렬하고 무서운것이였다. 그대로 놓아둔다면 새로운 끔찍한 참사가 벌어질것만 같아서 옥림이랑 여럿이 달라붙어 부축해가지고 먼저 떠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해가 질무렵에 모두 무덤을 떠났다. 그런데 이때 일행을 거슬러 숨차게 올라오는 두 녀인이 있었다. 리씨를 부축하고 먼저 갔던 옥림이 뒤늦게 도착한 박영옥을 안내해오는것이였다. 영옥은 흰 장미와 들꽃을 곁들인 시든 꽃묶음을 들고있었다.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진수를 알아본 그 녀자의 흐려진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네가 여기까지!… 인수녀석은 너에게까지 죄를 짓고…》

《그런게 아니예요.》

영옥은 젖은 눈을 떨구고 도리머리를 흔들더니 말했다.

《그 사람은 처참한 죽음으로 저에게 가르쳐주었어요. 원쑤는 사람들을 짐승으로 만들어죽이는 양키들과 그 졸개들이라는걸 가르쳐주었어요!…》

영옥은 가볍게 목례를 하고 옥림이와 함께 산으로 올라갔다. 진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담배를 붙여물었다.

영옥은 중간에 옥림을 남기고 혼자서 인수의 무덤에까지 올라가더니 상석에 꽃을 놓고 소리없이 앉았다.

멀리서 그 모습을 바라보는 진수는 가슴이 오리오리 저며지는것만 같았다. 언젠가 룡산역두에서 영옥의 꽃을 강요하였던 동생은 이젠 짐승으로 죽어 동정의 꽃을 받은것이다. 그에게 있어 영옥은 지옥의 고통속에서 피타게 갈망한 인간세상의 모든것이였고 어둠속에 단 한점 아득히 반짝인 희망의 별이였다. 그는 미쳐서까지 그 별을 바라보았다. 동생과 그 별과의 무한한 거리, 그것은 그가 살인귀들에게 끌려내려간 지옥의 깊이였다. 철저한, 너무도 잔혹한 파멸이였다.

영옥은 산에서 내려왔다. 진수는 무슨 말인가 해야겠다고 생각했으나 한마디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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