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9 장


42


한강뚝으로부터 집으로 돌아간 진수는 서둘러 려행차림을 하고 신문사를 거쳐 곧장 서울역으로 나갔다. 부산행 밤렬차를 타고 공주부근의 고향으로 가기로 한 그는 려행하는 각양각색의 사람들로 혼잡을 이룬 매표구앞에서 기자의 권한으로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2등차표를 겨우 구해쥐고 기차가 떠날 때까지의 몇분간을 대합실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때에도 오직 한사람, 강동혁만을 생각했다. 무엇을 보나 거기서 동혁의 열띤 얼굴이 우러나고 그의 충격적인 놀라운 말들이 뇌리에 화끈거렸다.

진수는 충심으로 동혁의 진정한 벗으로 되고싶었다. 그런데 보매 동혁은 너무나 류다른 사람이였다. 그가 그렇게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여 나타날수가 있는가! 놀라우면서도 무섭게 매혹시키며 끌어당기는 존재였다. 그는 얼마나 자기의 신념을 확신하고있었던가! 북에 대한 그의 환희에 찬 동경, 그의 주장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얼마나 맹렬한것이였던가!

진수는 자기의 맞은켠 의자에 앉아 트렁크를 열고 그속에 빼곡한 잡동사니들속에서 무엇을 분주히 찾고있는, 호화롭게 차린 중년부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생각했다.

(살아가는 일에 급급한 이 사람들은 이북사회와 북녘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것일가? 보호색을 두르고 불안한 나날을 헤쳐가는 사람들, 그들의 본심은 무엇을 찾고있는것일가?…

고향사람들은 나의 물음에 선뜻 응해줄것인가? 두려워서 대답을 피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걸해서라도 기어이 알아내야 한다. 전쟁때에 이북정치에 실제로 참여해본 그들, 장년들과 로년세대가 감추고있는 비밀은 과연 무엇일가?…

그들이 긍정하면 나도 동혁과 함께 정의로운 그 길에서 투쟁하고 목숨을 바칠것이다. 그렇다,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대중이 어떻게 생각하고있는가 하는 바로 그 점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확성기가 렬차의 출발을 알렸다. 진수는 곧 역홈에 나가 지정된 차에 올랐다. 한칸에 든, 중류급관리들로 보이는 려객들은 독서취미가 있는 사람들이여서 진수에게 무관심했다. 다행히 자기 기분을 보존할수 있게 된 진수는 자리에 누웠다. 천천히 떠나가는 차창밖으로 시가의 불빛들이 구슬꿰미처럼 흘러갔다.

진수는 열여섯살의 소년시절에 맞이했던 지난 전쟁을 회고하려고했다. 이 생각은 곧 오랜 추억속에 잠자던 그 전쟁의 자취를 떠올리게 했다.

…혼란으로 끓어대던 1950년 6월말의 서울 북쪽하늘에서 북악산을 넘어 메아리쳐오던 인민군의 둔중한 포성, 넋나간 얼굴로 시내로 밀려들던 《국군》부상병들…

충청도의 시골태생으로 서울에 와서 3류급중학교에 다니고있던 애숭이 진수에게는 피가 얼어드는듯 한 무서움이였다. 어찌된 일인가, 평양에서 점심을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겠다던 《북벌》의 맹장들은 어데로 갔는가? 금시까지도 《〈국군〉은 영용하게 북진을 계속 하고있다.》고 떠들더니 《정부》와 사령부, 고관, 부자들은 어찌하여 악마구리끓듯 하며 도주한단 말인가?

자가용승용차로, 짐차로 혹은 두발로 정신없이 도주하는 관리들과 부자들, 잡히는대로 이고지고 향방없이 붐벼대는 사람들, 그 흐름에 떠밀린 정진수는 공포에 질려 아무것도 알수 없었다.

이 시골내기 량순한 소년이 학교에서 배운것은 《강대한 미국》이였다. 그러나 공산주의란 모든것을 략탈하는 세상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만능》인 미국의 무기가 하루아침에 꺾이고 《자유체제》가 산불을 만난 짐승들처럼 도망치다니, 얼마나 기막히는 일인가.

그때로부터 열아홉해의 긴 세월이 지나간 지금 이미 중년기에 들어선 진수는 차창밖으로 어둠속에 긴 꼬리를 끌며 이따금 지나가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렇군, 그 피난의 서울역에서부터 나의 사회탐구의 길이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참, 그때 그 친구 강동혁이를 만나 함께 헤맸지. 그러구보니 그 친구와의 우정도 그때부터 시작된거지.)

이런 생각은 추억의 화폭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무서운 란리판이 된 서울역. 허물어져가는 세상을 서둘러 조상하며 하늘의 예언처럼 울리는 그 포소리는 도망자들을 미치게 하였다.

권세도, 명예도, 돈과 호령도 통하지 않았다. 앞쪽에 선 사람들이 짓밟혀죽는다고 아우성쳐도 뒤에선 결사적으로 밀고 비집고 나갔다. 군인들은 총탁으로 차창유리를 까부시고 기여올랐다.

낯선 로인의 잔등에 기여올라 승강대의 손잡이를 거머쥐는 창부가 있는가 하면 애첩과 지전뭉치를 두어깨에 메고 헛되이 차창에 매달리는 어느 회사의 사장도 있었다.

진수도 덤벼들어보았으나 매번 밀려나고말았다. 그러나 단념할수는 없었다. 무슨 바퀴우에라도 올라타야만 충청남도의 공주아근에 있는 고향으로 도망칠수 있는것이다.

렬차는 이미 초만원을 이루고 차체의 지붕에도 사람들이 가득했다. 진수도 지붕에 오르려고 렬차의 꼬리쪽으로 달려갔는데 거기서 그는 같은 시골내기로 역시 서울에 와서 어느 허줄한 중학교에 다니고있던 강동혁을 만났다. 방학때 시골로 내려가는 렬차에서 사귄 일이 있는 그들은 서로 의지하고싶은 마음에 운명을 같이하기로 했다.

진수는 지금도 그때 헐어빠진 운동화에 누르끼레한 남방샤쯔차림을 한, 만만치 않게 생긴 동혁이 두손을 옆구리에 짚고 《세상의 종말》에 대해 무어라고 단언하던 일이며 그와 함께 가까스로 차체의 지붕우에 기여올라가서 사람들속에 비집고 앉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었다.

렬차의 지붕우에 기여올라가 앉던 이 추억의 토막은 이상하게도 여러해나 진수의 꿈속에 자주 비쳐들었다. 어떤 꿈속에서는 렬차가 푸른 불길이 소리내며 타번지는 굴속으로 달렸다. 그 불타는 동굴은 가도가도 끝이 없어 질식한 진수는 온몸을 사르는 불속에서 고통뿐인 자기의 생명과 감각을 저주하였다. 그런가 하면 다른 꿈속에서는 렬차가 궤도에서 벗어나 번개와 소낙비가 후려치는 경사진 돌바닥을 가속도로 달렸다. 그러다가 돌바닥은 낭끝으로 변하고 렬차는 사방이 하늘뿐인 허공에 떨어졌다. 캄캄한 땅에서 떨어져나간 하나의 세포, 구름을 뚫고 떨어져가는 진수는 아득한 멀리로부터 옛말의 극락인듯 꽃이 만발한 새로운 천체, 눈부신 세계가 풍악을 울리며 마중해오는것을 보는것 같았다.…

렬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진수와 동혁이 앉은 곁에는 트렁크와 배낭들을 가진, 신분을 추측할수 없는 검은 안경쟁이들이 역시 검은 안경을 쓴, 작달막하면서도 도고해보이는 사나이와 커다란 인형같은, 경박해보이는 젊은 녀자의 둘레에 앉아 무엇인가를 모의하고있었다.

우두머리인듯 한 가운데사나이는 박죽같이 넙적한 턱에 찢어진 상처자리가 뚜렷한 창백한 얼굴인데 그는 천연스레 녀자의 넙적다리를 베고 누워 자그마한 고무주머니에서 술을 빨아먹군 하였다.

그들이 은어와 암호를 많이 쓰기때문에 진수와 동혁은 처음에는 그들의 화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러나 자주 반복되는 《살모사》나 《뚜쟁이》, 《뻰찌부대》 등 하는 말들을 여러가지로 종합해본 결과 녀자사냥과 무서운 도적질을 일삼는자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아닌게 아니라 계집의 무릎을 벤 놈은 악마적인 힘과 만행으로 뭇사람들을 전률케 하던 다름아닌 강도단, 도적무리의 왕초였다. 이제껏 그를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다만 서울에 본거지를 두고 낮에는 거지복장으로, 밤에는 특등신사복으로 밤거리를 휩쓰는 정체불명의 인물이라는 풍설이였다. 서울에만도 천여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그 부하들에게서 받는 막대한 세금으로 주지육림에 파묻히는 그는 경찰같은것은 시녀다루듯 한다고들 했다. 끔찍스런 존재였다. 놈에게는 구두닦기부대, 살모사부대, 걸인부대, 소매치기부대 등 숱한 조직체들이 있어 사람들의 목숨을 휴지찢듯 한다는것이다.

그러나 방대한 권력기구를 혼란에 몰아넣으며 요란스레 울려오는 인민군의 포성은 이 숨은 밤의 유령들까지 남으로 락엽처럼 쓸어가고있는것이다.

대구로 거처지를 옮기고있는 왕초는 막료들과 계속 꿍꿍이를 벌리더니 무엇때문인지 그중의 한놈에게 왈칵 짜증을 냈다.

《야, 임마! 란리에 리승만의 법이 없어졌다고 이 왕초의 법도 없어진줄 아나, 엉?》

이와 함께 놈은 상대를 주먹으로 갈겼다. 맞은 놈은 윽! 하고 짤막한 비명을 지르며 달리는 기차지붕우에서 땅우에 거꾸로 떨어져 즉사했다. 그런데도 왕초는 누운채로 태연했고 막료들도 계집도 자세를 허물지 않았다.

진수와 동혁은 겁이 나서 앉은걸음으로 옆사람들을 비집고 자리를 옮겼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앞에 앉은 로인이 별스러웠다. 백발홍안에 눈섭이 까만 로인은 관절염때문인지 호랑이가죽을 무릎에 감고앉아 파리쫓는 소대가리처럼 연신 머리를 내두르며 끅끅 울고있었다. 그러다가 금시 시계줄을 드리운 배허벅을 손바닥으로 짝짝 치며 넉두리를 하는것이 꼭 실성한것 같았다.

진수와 동혁이 가만히 들어보니 큰 부자로 보이는 이 로구는 저를 팽개치고 먼저 도망친 아들놈들과 서울에 두고 온 재산을 두고 통탄하고있었다.

진수에게는 모든것이 놀랍고 무서웠다. 패주의 길에 끓어대는 《국군》장병들의 악의와 공포에 쩌든 얼굴, 자동차들속에 얼른거리는 미군들의 침통한 얼굴, 망탕 총을 쏘며 악다구니질을 하는 처참한 부상병들…

어떻게 된 일인가? 북을 단숨에 먹겠다더니 왜 쫓기기만 하는가? 이제는 《자유》도 끝장나고 세상은 망한단 말인가? 물어볼데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몇번이나 렬차에서 쫓겨내렸다간 간신히 다시 기여오르군 하면서 조치원에 도착한 진수와 동혁은 거기서부터 지나가는 짐차를 타고 공주까지 간 후 농촌길로 얼마쯤 더 같이 가다가 갈라졌다. 진수의 고향마을과 동혁의 집은 이십리나 서로 떨어져있었던것이다. 그들은 헤여지면서 피차에 중대한 일이 생길 때는 서로 련락을 가지든가 만나서 운명을 같이하기로 다시금 약속하였다.

진수의 고향일대는 거세고 호방한 풍치와 잔잔하고 오밀조밀한 재미있는 풍경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동쪽으로 금강의 힘찬 흐름을 사이에 두고 여름철의 윤택한 푸른빛에 물든, 잡힐듯 가까이 솟은 소백산맥의 기세좋은 련봉들, 유구한 마을들이 널린, 서쪽으로 시원히 탁 터진 연하서린 드넓은 논벌, 그 아득한 지평우에 피빛으로 타는 황혼을 등지고 높이 솟은 해발높이 팔백 삼십여메터를 헤아리는 전설많은 검푸른 계룡산, 어데를 보나 무엇인가 기다리는듯 숨죽인 고요속에 잠겨있었다.

무서운 혼란속에서 간신히 빠져나온 진수에게는 이 변함없는 자연의 고요가 놀랍고 이상스러웠다.

고향집에 도착한 진수는 한가로이 쉴수 있었으나 마음은 어두운 밤에 수렁창을 헤매는 기분이였다. 처음은 점점 더 많은 폭격기들과 전투기들이 북으로 날아가고 지상부대와 중무기들도 꼬리를 물고 올라가는것을 보고 인민군대가 항복할 날이 박두한것으로 믿었는데 일은 정반대로 벌어지고있었다. 인민군대가 홍수처럼 밀려나오면서 모든 촌락과 도시들을 《덮치고있다는 무서운 소식》을 달고 《국군》들과 미군패잔병들이 남으로 쏟아져내려가고있었다. 그것은 처량한 거지떼같기도 하고 불을 맞고 혼이 빠진 짐승같기도 했다.

진수는 큰길 가까운 덤불에 숨어 그 무서운 광경을 보았다. 자동차며 위생차들에 처실린 피투성이몰골들, 떨어져나간 자기의 팔이나 다리를 주어다 끓여먹기라도 한것처럼 《국군》들에게 돼지멱 따는듯한 규성을 지르는 미군들, 볼수록 처참한 꼴이였다.

풀숲에 숨어서 이 광경을 보며 진수는 생각했다.

(하기는 강대한 나뽈레옹군대도 모스크바원정에서 실패하고 도망칠 때는 야수의 무리로 변했다지 않는가.…)

그날 밤 이 고장일대는 미군기들의 맹폭격과 인민군 포부대들의 맹렬한 포성이며 쌍방의 땅크들과 보병들의 화력전으로 무섭게 진동했다. 진수네 식구들은 든든한 청기와지붕도 미덥지 않아 뜨락귀에 깊이 판 방공호속에 숨었다. 습기찬 굴속에서 가물거리는 등잔불을 바라보는 창백한 얼굴들은 속이 한줌만해있었다.

진수의 아버지 정재만은 청주가 반쯤 찬 술병의 부리를 연신 빨았다. 알콜기운을 빌어 떨리는 속을 좀 위로해보려는것이다. 왜정때에 대전에 나가 중학교에도 다닌바가 있어 자기는 손보다도 머리로 빌어먹을 재목이라고 생각한 그는 면소에 나가 서기자리에 틀고앉았다. 헌데 그의 판단에 의하면 면서기가 인민군대에게 용서를 받을 가능성은 꿈에도 있을수 없는 일이였다.

장년의 한창나이인 정재만은 술병을 안주머니에 찌르더니 만리타국으로 뛰기나 할것처럼 한숨을 쉬며 맏아들인 진수의 어깨를 만져주고 막내인 어린 인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면서 울상인 안해에게 말했다.

《난 아무래도 안될것 같소. 계룡산에 붙어볼가 하오. 인차 기별을 띄울테니…》

진수는 방공호에서 나와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아버지를 바래우면서 요란한 폭음과 무수한 불줄기로 가득찬 밤하늘을 정신없이 올려보았다.

다음날 새벽 어머니와 동생과 함께 방공호속에서 쪽잠에 들었던 진수는 마을앞 둔덕쪽에서 여러 사나이들이 왁자자 웃어대는 소리와 경쾌한 손풍금반주에 맞춰 부르는 힘찬 노래소리에 놀라 깨여났다. 그 순간 공포로 예민해진 본능으로 그것이 그가 그렇게도 무서워하는 인민군대라는것을 직감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누군가 쿵쿵 울리는 걸음으로 뜨락에 들어서더니 굵은 목소리로 몇번이나 물었다.

《계십니까? 인민군대입니다. 말씀 좀 묻겠소다.…》

새벽빛이 새여드는 땅굴속에서 공포에 몸서리치며 서로 꽉 잡은 진수네 세 모자는 숨도 못 쉬고 얼어붙었다. 진수는 무자비한 법정의 호출을 받은 중죄인처럼 가슴이 꺼지는듯 한 절망을 체험했다.

그는 자기를 잡아가려고 온 사자의 악마적인 모습이며 키가 서너발이나 되는 큰 거인을 상상해보았다.

그런데 《사자》의 발자국소리는 요행 돌아나가는가싶더니 바로 굴어구에서 박히듯 멎으며 다시금 호출이다.

《계십니까?…》

진수는 최후를 각오하며 생각했다. 분하구나. 사내놈이 제 집뜨락에서 죽다니. 내가 만약 뛰여난 인물이 될 재목이라면 죽는 한이 있어도 추태를 보여선 안된다. 아, 나의 목숨은 인생을 맛보지도 못한 열여섯나이에 엎질러진 사발의 물처럼 버려진단 말인가?…

이런 생각과 함께 진수는 굴속에서 기여나갔다. 그러자 《에그, 어찌겠니!…》 하는 넋나간 소리와 함께 어머니가 모성의 본능으로 앞질러나서며 그 좁은 가슴으로 아들을 막아나섰다.

그 순간에 진수가 본것은 인민군병사의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였다. 군복어깨와 군모에 망울이 진 들꽃으로 듬성듬성 위장한 패기어린 청춘다운 꿋꿋한 몸매, 가무스름한 어진 얼굴에 그려진 단순하면서도 깊은 성격에서 우러난듯 한 밝은 미소며 무엇인가 자기의 미흡점을 두고 량해를 구하는듯 슴벅거리는 선량한 눈, 첫눈에 정이 콱 쏠리는 이 매혹적인 존재가 과연 인민군대란 말인가?

진수는 눈이 퀭해서 쳐다볼뿐이였다. 이상하게 굳어진 리씨와 진수를 본 병사는 어렸을 때부터의 버릇인듯 선자리에서 자근자근 발을 옮겨디디며 짤막한 총을 멘 어깨를 훌 추키더니 소리내여 웃으며 함경도억양으로 말했다.

《전 인민군대오다.》

진수에게는 그 말이 마치도 《나를 모르겠어요? 어렸을 때 여길 떠난 친척 아무겝니다!》 하는 소리처럼 들렸다.

《내가 그만 놀래웠는지 모르겠소다. 어서 나오시오다. 그런 굴속에 있다가 병을 만나겠소다. 저 머시기 군대밥을 지어야겠는데, 미안한대로 부엌을 조오꼼 빌려쓸수 없겠는지 해서…》

병사가 또 발을 옮겨디디며 이렇게 말하자 진수의 어머니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나붓이 허리를 숙여보이며 혀아래소리를 했다.

《예, 부엌이요? 어서 쓰십시오.》

이때 소성견장을 단 깨끗한 차림의 키큰 군관이 들어서더니 진수의 어머니에게 눈인사와 함께 거수경례를 붙이고 병사에게 물었다.

《량해를 구했소?》

병사로부터 만족한 대답을 들은 군관은 어머니의 손을 덥석 잡으며 고마와했다.

《감사합니다. 어머니! 험한 세상에 얼마나 고생하셨습니까. 우린 어데서나 어머니들이랑 모두들 아껴주고 도와주는 덕분에 침략자들과 싸워 이렇게 이기고있습니다!…》

리씨는 군관에게 손을 맡긴채 머리를 떨구더니 쪼그리고 앉으며 눈물을 흘렸다. 군관은 얼른 어머니를 공손히 일으켜주었다.

《웃어야지, 이러시면 섭섭합니다.》

이 말에 리씨는 손등으로 젖은 낯을 닦더니 눈물속에 밝게 웃으며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이렇게도 정많은 어른들인줄 모르고… 우린 그저 속아만 살다보니 죽는줄로만 알고…》

아득히 사라진 어여쁜 처녀시절의 마지막잔영이 문득 내비쳤는지도 모르는 어머니의 빛나는 얼굴을 본 진수는 소박한 진정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세차게 끌어당기는 인민군대앞에 진정으로 감탄할뿐이였다.

그때까지 굴속에서 동정을 살피고있던 인수가 비실비실 나와 어머니옆에 붙어섰다. 병사는 눈을 빛내며 씨물씨물 웃더니 지어먹은 엄포를 놓으며 손가락으로 어린 소년의 까무잡잡한 되박이마를 딱소리가 나게 튕겨주었다. 인수는 어지간히 아픈지 잔뜩 찌프린 눈으로 병사를 흘겨보며 끙끙거리더니 끝내 히죽 웃고말았다. 그바람에 모두 웃었다.

군관은 진수의 어깨를 다독거려주며 말했다.

《학생이군. 좋은 때구나. 새세상이 왔는데 마음껏 배워야지. 글뒤주가 되지 말고 애국자가 되야지, 응?》

진수는 머리를 숙일뿐 대답을 못했다. 두 군인은 다시 오겠다면서 사라졌다.

후날에도 자주 때와 조건에 따라 여러가지 색조로 아름답게 채색되여 떠오르는 이 놀라운 몇분간을 체험하고난 진수는 인생이란 기나긴 하나의 꿈이 아닌가 하는 환각을 느꼈다. 사형장에 나섰던 사람이 무슨 리유때문인지 용서를 받았다는 명백한 선언도 들은바 없이 풀려나온다면 아마 이런 기분이겠지 하고도 생각했다. 그는 방금 인민군대에게서 받은 명백한 자기 감각과 느낌에 대해서도 그것이 진실한것이였던가 하고 의심했다.

내가 두 군인에게 매혹된것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져나온데서 생긴 편견이 아닐가? 정작 인민군대가 아름다운 사람들이라면 미국사람들과는 왜 이렇게도 무서운 전쟁을 벌렸단 말인가? 두 편이 다 선량하면서도 다만 어떤 오해때문에 결사전을 한단 말인가? 아니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평화》와 《자유》의 아들들인줄로만 알고있는 미국사람들을 비둘기날개로 몸을 가리운 짐승이라고 가정할수도 있단 말인가?

진수의 의문은 끝이 없었다. 그러나 명백한것은 인민군대가 틀림없는 좋은 인간들이며 마음놓고 탐구할수 있는 대상이라는 사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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