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9 장


43


진수형제와 어머니는 움으로부터 집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엌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있던 어머니가 진수에게 말했다.

《아버지도 별일없을걸, 괜히 고생이겠구나. 뛰는 놈이 도적이라고, 공연히 숨어다니다가 의심이나 받지 않겠니?》

진수는 대답없이 집을 나섰다.

아침해살이 퍼진 마을은 방금 들어선 인민군대오를 맞이하여 흥성거리고있었다. 남녀로소가 온통 떨쳐나와 환영하였다. 목청껏 《김일성장군 만세!》를 부르기도 하고 로인들과 아이들은 군인들에게 매달려 그들의 총이며 옷을 만져보기도 하였다. 망건차림에 할미꽃처럼 허리가 꼬부라진 백발로인이 세워짚은 지팽이에 가슴을 고이고 키가 큰 병사에게 무슨 말인가를 물었다. 그 병사는 눈이 없어지게 웃으며 로인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대답을 거듭했다. 그러자 로인은 오랜 리별끝에 외아들을 만난듯 병사에게 몸을 맡기더니 검버섯이 돋은 작은 손으로 병사의 벼랑같은 잔등을 두드리며 울었다. 오골쪼골한 얼굴로부터 하얀 염소수염발을 타고 누런 눈물이 줄줄 흘렀다.

곁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던 까무잡잡한 녀인이 로인이 눈물을 흘리는 사연을 설명이라도 하듯 아이를 안아들고 웃는 하사관의 팔에 매달리며 푸념을 했다.

《왜 인제사 왔나. 죄없는 숱한 사람들이 맞아죽구 굶어죽었는데 왜 인제사 왔노!…》

감격은 군중에게 옮아 잠뱅이차림인 남정들도, 그뒤에서 기웃거리던 녀인들도 젖어오는 눈을 슴벅거렸다.

고향태생이라도 진수는 마을사람들의 이 감격을 완전히 리해할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도 인민군대의 진주와 함께 밝아온 이 아침이 바로 그들이 펼쳐들고온 매우 주목할만 한 새로운 세상의 광명이 아닐가 하고 생각했다.

그에게는 모든것이 놀라왔다. 어린 인수가 인민군대와 쉽사리 친해져서 날뛰며 히죽벌쭉하는거며 인민군군인들이 비자루를 들고 마을을 청소하는거며 군관들이 전사들과 함께 쌀자루며 물바께쯔를 들고 농가들의 부엌으로 드나드는것 등 모든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더구나 놀라운것은 그의 집에 들린 한개 분대의 군인들이 상을 차리는 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믿고 아끼고 좋아하는 모습이였다. 어머니는 마치 병사들이 모두 친아들이기나 한듯 기쁨에 둥둥 떠서 웃음이 떠나지 않는 얼굴로 날파람있게 음식을 섬겨주며 전에없이 활발히 덕담까지 펴는것이여서 진수는 오히려 자기가 길손으로서 남의 집 화목한 대가정을 보는듯싶었다.

진수는 이 놀라운 사태에 대해서 급히 동혁이를 만나 의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습게도 집을 나서자 그자신이 결심을 까맣게 잊어먹고 사람들이 모여드는 마을앞 숲으로 가고말았다. 거기선 그의 고향마을이 생긴이래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굉장한 광경이 펼쳐지고있었다. 두그루의 느티나무아래에 떠나갈 태세인 인민군부대와 그들을 환송하러 나온 남녀로소들앞에서 공연하려고 인민군예술단의 한 소편대가 기다리고있었던것이다.

군인들은 풀밭에도 앉고 각종 포들이 달린 포차들과 육중한 땅크들우에도 올라있었는데 사람도 장비도 온통 풀과 나무잎새로 위장하고있어서 분위기가 장엄했다. 사방에서 모여든 시골사람들은 이런 구경을 만난것이 꿈같기만 해서 얼굴들이 벌거우리했다. 들고있는 악기며 차림새들에 잔뜩 세련된 멋이 든 군악대원들은 사랑과 감탄어린 모두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눈빛도 거동도 조용한것이 몸이 온통 영예와 재간으로 빚어진듯싶었다.

진수는 정신없이 군악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어쩌면 이렇게도 매혹적이란 말인가. 음악, 청춘, 무장이 이렇게도 기막히는 조화를 이룰수 있단 말인가! 느티나무가지사이로 드리운 해빛에 찬란히 빛나는 악기들, 건장한 몸매를 드러내는 고상한 옷차림들, 총명한 얼굴들에서 풍기는 고귀한 문화의 향기…

특히 녀성군인들의 모습은 진수의 가슴을 끓여주었다. 뒤머리에 표나게 군모를 얹은 하나같이 어여쁜 얼굴들, 자랑에 부푼듯싶은 높은 가슴과 가뜬한 치마며 싱싱한 다리에 그렇게도 어울리는 깜찍스런 장화라구야.

흙과 물과 곡식밖에는 아무것도 없던 광야, 절기따라 계절들은 번거로이 바뀌여도 헐벗은 땅의 신음처럼 농부들의 애절한 노래가락만이 텅 빈 지평선에 흐르던 광야, 먼 읍거리에 나가 군수의 자동차만 보아도 몽둥이를 삼킨듯 꼿꼿해지는 무지한 시골관헌들이 농군들앞에서 호랑이질하던 우울하고 답답한 시골에 이런 멋진 사람들이 나타난것은 전쟁이라는 거센 열풍이 몰아온 하나의 기적이였다.

진수는 아까부터 녀배우들가운데서 한 녀자에게 부지중 자꾸 눈길을 주었다. 얼굴이 류달리 희고 속눈섭이 긴 공상적인 눈에 입술이 이쁘게 생긴 녀자였다. 손풍금수인 그는 다른 동료들과 마찬가지로 공연이 어서 시작되기를 기다리면서 악기로 여러가지 화음을 조용히 울려보며 이 사람, 저 사람의 얼굴에로 생각없이 시선을 옮기고있었다. 그러던중에 진수의 눈은 그 녀자의 시선과 마주쳤는데 처녀는 우아한 화음을 조용히 짚으며 자기 생각에 잠겨 방그레 웃었다.

순간 진수는 가늘게 떨었다. 아마도 포화가 울부짖던 서울을 비롯한 수많은 도시들과 촌락들을 지나오면서 련속된 환호와 승리의 기쁨이 이미 생활로 돼버린듯 한 처녀, 그 녀자의 초불같은 눈에서 진수는 읽었다.

《학생은 청춘이 무엇인가 아세요? 그것은 무장으로 인간의 원쑤를 치는 투쟁속의 삶이예요. 혹은 초연에 그을린 기발을 날리며 불속을, 노을속을 지나가며 부르는 노래, 우뢰가 뒤섞이는 포화아래에서 피로써 해방한 땅을 안아보는 가슴이예요.

그렇구말구, 청춘이란 날마다 자기가 해방한 땅을 밟으며 낯선 사람들의 친근한 미소를 거쳐 두고 온 고향땅을 감회깊이 추억하며 시적인 삶을 살줄 아는 영원한 젊음이란 말예요!…》

처녀는 드러난 느티나무뿌리우에 손풍금을 내려놓더니 저켠을 향하여 가만히 서있었다. 진수는 자신에 대한 이 명백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 녀자를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저 아름다운 처녀손풍금수의 마음속에선 눈보라의 험한 길도 꽃이 웃는 초원처럼 즐겁고 캄캄한 밤에 듣는 우뢰소리도 하늘의 북소리로 들리리라싶었다.…

진수가 이런 공상을 하는 사이에 부대의 지휘관들이 도착하고 공연이 시작되였다.

혼성합창단이 장중한 관현악반주에 맞춰 부른 《김일성장군의 노래》로 막을 연 공연은 청중의 심혼을 휘둘러놓았다. 눈이 보석처럼 반짝이는 녀성소개자가 호기있게 나와서 처음 부를 곡은 《김일성장군의 노래》라고 알리자 렬을 지은 가수들과 반주단의 그쯘하고 화려한 모습앞에 탄성을 지르며 술렁대던 군중은 바람이 잦아진 수풀처럼 숨을 죽였다.


장백산 줄기줄기 피어린 자욱

압록강 굽이굽이 피어린 자욱

오늘도 자유조선 꽃다발우에

력력히 비쳐주는 거룩한 자욱

아 그 이름도 그리운 우리의 장군

아 그 이름도 빛나는 김일성장군


노래는 사람들을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군인들은 눈길이 심중해지고 어깨들이 조용히 물결쳤다. 그들은 수없이 부르고 들은 이 노래를 들으며 침략자들의 폭격에 페허로 된 도시와 촌락들이며 궂은비속에 헤쳐온 진창투성이 행군도로며 필사의 각오를 안고 치달아오른 불타는 산악들을 회상하는듯 했다.…

처음에는 예술단의 외모에만 정신이 팔려있던 마을사람들도 노래에 취해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흙살이 터갈라진 커다란 손으로 검붉은 턱을 쓸어쥐고 굳어진 장년들, 세운 무릎우에 얼굴을 모로 기울여얹고 자기의 마음속을 응시하는 녀인들, 움쭉 일어설듯 두손을 땅에 짚고 눈물이 질벅한 눈을 든 로인들 등 각양각색이였다.

그들은 모두 해와 달도 어둡던 왜정세월부터 자기들의 운명을 의탁했던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을 그리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노래가 끝나자 환성이 오르고 만세가 터졌다. 마을처녀들은 수줍어서 쩔쩔매면서 배우들에게 꽃묶음을 안겨주었다.

공연종목은 다채롭게 바뀌고 분위기는 한층 무르익어갔다. 이런즈음 남쪽 어데선가 비행기소리가 들리더니 요란한 포소리와 폭탄터지는 소리가 연방 울렸다. 마침내 여러대의 미군폭격기들이 높이 떠서 마을상공을 엇비슷이 지나갔다. 그러나 공연은 계속되였다. 녀성군인들의 군무가 벌어지는가 하면 류량한 피리소리와 북장단에 맞춰 농악무가 신선경을 펼쳤다. 농민들은 무릎을 치며 쾌재를 부르고 어떤 로인들은 엉거주춤이 일어서서 대통을 간들거리며 어깨춤을 췄다.

진수는 가슴이 뻐근하도록 감동했다. 관객들의 마음의 금선을 이토록 세차게 두드리는 예술을 창조한 사람들이 다름아닌 인민군대라는 이 놀라운 감격을 감당하기에는 그의 가슴이 너무도 작았다. 그는 푸른 하늘에 수없는 흰점을 수놓으며 터져오르는 고사포탄을 피해 긴 연기를 그을며 도망치는 미군비행기를 보며 생각했다.

저것이 미국인가? 땅에서, 인간세상에서 쫓겨나 하늘이나 썰고 다니며 죽음을 뿌리는 저것이 미국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할수록 진수는 그 공중비적으로부터 땅을 옹호하며 눈앞에 벌어진 이 절묘한 예술과 그속에 융합된 마을사람들의 명절같은 행복을 옹호하고싶은 충동을 느꼈다.

이러한 기분에 성원이나 보내듯 처녀손풍금수가 의자를 들고 바로 그의 앞에 나와앉아 부드러운 서정가요곡을 탔다. 처녀는 뜨거운 자기 마음을 열듯 힘차고도 유연하게 주름진 풀무통을 펼치며 잽싸게 바뀌는 변화무쌍한 화음으로 신비로운 꿈나라를 그려보였다. 아니, 그속에선 이 나라의 수려한 산하가 선명히 드러나고있었다. 빨간 고추타래가 널린 방아간지붕우에선 닭들이 졸음에 싸이고 동구밖 버들숲으로 낟알을 실은 달구지들이 황혼속에 돌아오는 평화로운 농촌의 정취가 풍기는가 하면 수줍은 산촌처녀가 아슬히 높은 산봉우리로 사슴처럼 날래게 치달아올라 일엽편주를 타고 눈부신 강으로 흘러내려가는 용감한 님에게 안녕을 비는 선명한 그림이 살아오기도 했다.

처녀손풍금수는 저로서도 제 재주에 취하는듯 실눈을 짓고 몸을 가벼이 옆으로 기울거리더니 살그머니 일어서며 선풍처럼 휘몰아치는 가락을 울렸다.

무아경으로 도취된 진수는 열정적인 처녀의 아름다움이 너무도 눈에 부셔 눈을 허공에 들었다. 그러자 높이 뻗어오른 힘찬 가지들과 무성한 잎새로 거대한 궁륭을 이룬 느티나무가 우줄우줄 춤을 추며 중천에 솟아오르는것만 같았다.

전쟁승리를 위해 모두가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장중한 합창으로 공연이 끝나게 되자 진수는 박수갈채로 환호하는 사람들속에서 빠져나와 이리저리 허둥댔다. 그는 처녀손풍금수에게 꽃을 전하고싶었던것이다. 이제 한번 떠나가면 다시는 영원히 보지 못할수도 있는데 그 정도의 인사도 못한다면 한생토록 후회할것만 같았다.

마침 여러명의 마을젊은이들이 한켠에서 꽃묶음을 들고 배우들에게로 나가려는 참이였다. 그리로 달려간 진수는 무턱대고 한사람의 손목을 잡고 꽃묶음을 달라고 졸랐다. 싱갱이와 애원끝에 겨우 꽃을 넘겨받은 진수는 다른 사람들이 다 꽃을 주고 돌아온 다음에야 달려나갔다. 손을 흔들어 환호에 답례하는 녀배우들에게로 뛰여간 그는 다 같은 모습들속에서 누가 그 손풍금수인지 분간을 못해 이리기웃, 저리 기웃하면서 안타까이 허둥거렸다. 머리가 핑핑 돌아 끝내 찾지 못한채 절망하여 무턱 한 녀자에게 꽃묶음을 주고 돌아서던 그는 문득 다른켠에서 처녀손풍금수를 알아보았다.

어떻게 할것인가. 이젠 꽃이 없지 않은가. 그냥 돌아갈것인가. 그러나 그럴수는 없는 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손풍금수에게로 간 그는 의아해하는 눈으로 자기를 보는 그 녀자에게 머리를 숙이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고맙습니다!… 안녕히!…》

처녀는 놀라는듯싶었다. 그러나 이내 반기는 얼굴로 소년의 손을 잡아주기도 하고 어깨도 쓸어주면서 그의 귀가에 속삭이였다.

《아이, 반가워요. 꼭 훌륭한 사람이 돼야 해요!…》

진수는 다시 인사를 하고는 황황히 자리를 피했다. 급작스레 다가온 다감한 청춘의 첫 시절을 맞이했던 이날의 이 추억은 여러해가 지난 후날에도 그에게 생생한 감각으로 남아있었다.

인민군대의 출발을 앞두고 부대의 지휘관은 군중에게 온 민족이 침략자들을 몰아내는 성전에 떨쳐나설것을 호소하는 의미심장한 연설을 하였으나 금방 있은 일로 어리벙벙한 진수는 열에 떠서 반들반들해진 눈으로 그들을 멍하니 둘러볼뿐이였다.

인민군대는 남쪽으로 떠나갔다. 멀리 계룡산쪽으로 뻗은 큰길로 땅크들과 군용차들을 앞세우고 멀어져가는 위력한 흐름을 바래우며 진수는 느티나무아래에 서있었다. 이리하여 인민군대를 무서운 적인줄로만 알고 수라장의 서울로부터 결사적으로 도주해온 소년은 다름아닌 그 인민군대가 자기를 고향땅에 세워주고는 참된 진리란 무엇인가를 두고 깊이 생각할 여유를 주었음을 알게 된것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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