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4 회


제 9 장


44


《손님, 왜 그러시우? 몸이 아프시우?》

맞은켠 자리에서 이렇게 묻는 소리에 진수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는 생각에 옴하여 흥분한김에 저도 몰래 일어났다. 누웠다 하기도 하고 누워서도 자꾸 움지럭거렸던 모양인데 맞은편에서 소설을 읽던 사나이에게는 그가 병이 난것이라고 여겨진 모양이다.

《아니, 괜찮습니다. 관절염이 좀 도져서…》

일어나 앉은 진수는 적당히 둘러맞추고 다시 누웠다. 기차는 쾌속으로 달렸다. 레루의 이음짬을 넘어가는 차바퀴소리가 장단치듯 재게 울렸다. 어둠속에 숨박곡질하는 마을불빛들, 희끄무레한 하늘을 배경으로 느린 파도를 이루어 흘러가는 검은 산들을 바라보는 진수는 전쟁의 회상을 이어갔다. 남쪽으로 멀어져가던 인민군대의 전선수송을 도와 삽을 쥐고 도로공사에 나갔던 일이며 난생처음으로 쌀달구지를 몰고 읍거리로 갔던 일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다닐 때면 이름도, 행방도 알수 없는 처녀손풍금수를 생각했다. 자기가 나르는 쌀이 그 녀자에게 닿기를 비는것만으로도 가슴이 클클해났다. 비오는 길에서 이렇게 되면 얼굴에 흐르는것이 비물인지 눈물인지 분간을 못했다.

진수는 나이가 어리기도 했지만 워낙 공상하기를 즐기는 랑만적인 기질이여서 실제적인 생활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했고 흥미도 느끼지 못했다. 마을에서는 토지개혁이 벌어지는 등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났으나 진수는 그 사변들의 본질은 알지 못했다. 이렇게 된데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다. 아버지 정재만은 정세를 조심스레 관망하면서 아들에게 세상일에 끼여들지 말라고 자주 충고를 했다. 계룡산에 피신했던 그는 북녘사람들이 지난날의 면서기를 리승만과 한사슬에 묶어 피고석에 앉힐 눈치가 아닌것을 알고 마을에 슬그머니 돌아와있긴 했으나 무엇인가 불안했던것이다. 이런 사정들로 해서 진수는 땅을 받고 좋아하는 농민들을 대하는것보다 인민군 처녀손풍금수의 모습을 그리는것이 더 즐거웠다.

그러던중에 인민군대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진행하고 부산삼각지에 몰려가 멸망의 공포에 질려있던 미군과 《국군》이 다시 들어오는 무서운 사태가 벌어졌다.

공포와 파괴와 예속의 나날이 다시 흘렀다.

진수는 할바를 몰랐다. 보고 듣는것은 무섭고 끔찍스러운 일들뿐이였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성수가 난 마을사람들로 흥성거리던 인민위원회가 자리잡았던 집은 살기찬 류치장으로 변하고말았다. 그 집뜨락에선 읍에서 왔다는 경찰과 망나니들이 미처 피신 못한 인민위원회 간부들과 정치단체의 열성자들을 몽둥이로 죽도록 때리는가 하면 무장대를 거느린 지주의 아들놈은 토지개혁에서 앞장섰던 농민들의 집을 밤중에 습격하여 어른, 아이 가림없이 쏴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런가 하면 빨래하러 강에 나갔던 처녀들이 지나가던 미군들에게 잡혀 륜간을 당한 끝에 숲속에 시체로 버려진것을 나무군들이 달구지에 싣고 돌아오기도 했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참사를 따라 살인자들의 이름이 역귀처럼 나돌고 공포는 쌓이고쌓여 숨막히는 암흑을 빚어냈다.

진수는 불안에 시달렸다. 마가을의 찬바람이 락엽을 말아올리며 울부짖는 하늘에 피를 얼구는 폭음과 함께 피빛황혼이 저물어가고 음산한 땅우에 어둠이 짙어올무렵이면 세상엔 종말이 온것만 같아 가슴을 쥐여짜는 우울에 신음하며 마른 울음을 울었다. 단풍이 타는 먼산이 어느덧 흰눈에 덮인것을 보거나 폭격에 집도 고향도 없이 떠돌아다니는 수난자들을 보면서 그는 절망을 느꼈다. 영원히 버려진 류형수의 기분이였다.

세월은 갈수록 험악해갔다. 《북진》한다던 미군과 《국군》들이 또다시 치명적인 참패를 당하고 서울 남방에까지 쫓겨내려왔다는 소식과 함께 난민들과 부상병들이 쏟아져나오고 사회의 혼란은 극도에 이르렀다.

군인들과 관헌들은 저희들끼리나 백성들과나 입을 열면 호령과 욕질이였고 노예적인 복종을 꺼려하는 상대에 대해서는 두마디안팎에 총칼을 휘둘렀다.

진수는 어느날 읍으로 나갔다가 미군들의 패싸움을 본 일이 있었다. 술에 취한 5~6명의 주먹싸움이 분대와 소대에까지 번져 비수가 날고 총소리가 터졌다. 그바람에 주민들과 관리들이 도망치고 눅거리매춘부들까지 속치마바람으로 갈팡질팡했다.

이 싸움 역시 거듭된 패전으로 이글거리던 울분에서 빚어진것이였다. 여름의 무더위와 내장까지 얼구는 겨울밤의 추위, 죽음이 기다리는 겹겹한 험산에 놓인 길, 피투성이로 간신히 강점한 지점에서, 혹은 숨이 턱에 닿아 쫓겨와서 맥을 놓고 회초리처럼 쓰러진 지점에서 또다시 퇴각하라는 기막힌 명령, 끝없이 치솟는 공포와 저주… 이 모든것에 지친 그들은 이미 무서운 짐승이였다.

진눈까비가 내리던 어느날 밤에 뜻밖에 동혁이 진수네 집으로 찾아왔다. 인민군대를 도와 민청사업을 좀 했다고 죽이겠다고 벼르는 놈들이 있어 숨어다니는 몸이라 했다. 진수는 아버지가 마뜩지 않아하는것을 무릅쓰고 벗에게 자기 집 뒤방을 내주었다.

그날 밤 두 소년은 무서운 세상에 대한 자기들의 불안을 나누며 진눈까비가 쏟아지는 동구밖을 오래도록 헤맸다. 그러다가 어느 한 밭머리에 이르렀을 때 몇걸음앞에 있는 버드나무아래에 웬 사람이 엎드려있는것을 발견했다.

둘은 급히 그리로 다가가다가 서로 상대를 제어했다. 찬찬히 눈여겨보니 진수의 어머니였다.

눈우에 무릎을 꿇은 리씨는 주먹으로 버드나무그루를 치며 소리를 죽여 울고있었다. 그러다간 불타버린 사당처럼 스산한 나무가지사이로 밤하늘을 쳐다보며 마디마디 끊어지는 떨리는 소리로 기원하고있었다.

《아이구, 살피소서. 이게 무슨 세상이요. 슬피 불러도 해와 달은 없고, 보는 곳마다 피의 강만 우나이다.…

살피소서! 얼음우에 떨어진 씨앗같은 사람들이… 고운 손에 풀을 만지고 아이들을 만지도록 제발 해님을 돌려주옵소서!…》

진수는 가슴이 뭉클했다. 지난밤에도 한두번은 이런 어머니를 본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집안사람들에 대한 기원이였는데 지금의 어머니는 세상을 두고 빌고있는것이다. 퍼그나 젊어진듯 한 행복한 얼굴로 인민군대에게 밥을 지어주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어머니는 짐승같은자들만이 날뛰는 이 괴로운 세상을 저주하면서 가슴속에까지 해빛이 비쳐드는듯 했던 그 나날을, 사람들이 밝은 마음으로 웃을수 있던 꿈처럼 아수히 사라져간 그 뜻깊은 시절을 눈물로 부르고있는것이다.

얼마나 훌륭한 어머니인가! 그러나 세월이 모질어 글 한자 배울수 없었던 어머니는 제 마음속의 보배도 모르고 흙과 풀에 묻혀 늙어가는것이다.

어머니의 기원의 말소리는 점점 가늘어지더니 끊어졌다. 그러나 질벅한 눈우에 무릎을 꿇고 앉은 자세만은 허물지 않았다.

《어머니, 뭘 그러세요? 그러다가 감기라도 드시겠어요.》

진수가 조용히 말하자 리씨는 흠칫 놀라 일어서며 나무람했다.

《아니, 너희들이?… 엿듣다니, 못쓴다.…》

둘은 량켠에서 리씨를 부축하고 걸었다. 리씨는 오한이 나는지 우들우들 떨었다.

다음날 아침 진수네 마을사람들은 계룡산으로 피신하라는 관공서의 명령을 받고 발칵 뒤집혔다.

《숲속에 숨어있던 〈공산비적〉들이 쳐들어온다!》

《여기서 결사전이 벌어진다! 계룡산밑의 국민학교로 모두 가시오!》

《떠나면 살고 남으면 죽는다!》

이런 웨침소리가 다급한 총소리와 함께 마을을 온통 흔들었다. 경찰들과 군인들은 구장과 반장들을 내세워 사람들을 고래고래 불러내기도 하고 직접 구두발로 뛰여들어 총칼로 남녀로소를 몰아내기도 했다. 호령과 아우성, 군견들이 짖어대는 소리와 아이들의 울음소리로 마을은 떠나갈듯 했다.

뒤늦게 안 일이지만 이것은 그들중에서 인민군대와 협력한 사람들을 색출하여 집단적으로 학살하기 위한 음모였다. 전쟁에서의 거듭되는 패배에 밸이 뒤틀린 권력자들은 어데서나 무고한 사람들을 도살하는것으로 화풀이를 하고있었던것이다.

집안에 둘만이 남아있었던 진수와 동혁은 어른으로 《진화》하려고 첫 담배를 피우는 《련습》을 하다가 이 봉변을 당했다. 그들은 피울줄도 모르는 담배를 열심히 빨아 연기를 깊이 마셨다가 코로 내보내는 내기를 하며 웃고 떠들다가 뜨락으로 달려들어오는 경찰을 보았던것이다.

《요 풀메뚜기같은 새끼들이 하항, 담배질을?》

이렇게 씨벌이며 뛰여든 가물치처럼 까맣고 반들반들한 경찰은 붓으로는 옮길수 없는 쌍스러운 욕설을 뱉으며 총탁으로 마구 욱박질러 몰아내였다. 진수의 어머니는 다행히 인수를 데리고 어데론가 간틈이여서 이 봉변을 피할수 있었다. 그러나 정재만은 마을에 나갔다가 잡히고말았다.

진수와 동혁은 마을사람들과 함께 《피난》의 길에 나섰다.

긴 장사진은 백설의 광야우로 소란스레 흘러갔다. 전후좌우로 무장한 군경들의 감시를 받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은 이 소동이 너무도 갑작스레 벌어진 일이여서 모두가 어리벙벙한 얼굴이였다.

밤새 내린 진눈까비가 질벅하게 녹았다가 새벽에 터진 추위에 얼어붙어서 엷은 유리같은 얼음이 깔려있었다. 발이 빠질 때마다 얼음모서리가 발목을 찔렀다. 아이들은 엎어질 때마다 손을 상하곤 발을 동동 구르며 울어댔다.

날씨는 점점 더 사나와지기만 했다. 흙탕물을 끼얹은듯 을씨년스럽게 찌프린 하늘은 숨막힐듯 낮추 드리우고 칼바람이 윙윙거렸다.

그러나 이 칼바람속에 놓인 길이 인간적인 따뜻한 배려의 눈이 지켜보는 구원의 길이라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한 길이라면 손발이 얼고 눈물의 고드름이 볼에 맺힌들 어떠랴.

하지만 이 길이 끝나는 곳에 그들의 육신을 찢어발길 기관총과 수류탄이 기다리고있는줄이야 그 누가 짐작이나 할수 있었으랴!

그들중의 많은 사람들에게는 마지막길이였다. 백발이 성성한 늙은이들도, 인제 겨우 다섯살이나 열살인 철부지도, 포화속에서 불안스레 청춘의 꽃망울을 키운 소녀들도 《부역자가족》으로 몰려 죽어야 하는것이다.

그들중에는 이 고장태생이 아닌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서울지방이나 다른 곳에서 전쟁의 포화를 피해 부산삼각지나 또 다른 어느 지방으로 도망을 쳤다가 이 고장에 흘러든 초라한 사람들이였다.

그들도 이 고장내기들과 같은 운명의 궤도를 타고 돌아올수 없는 종점을 향해 미끄러져가고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닥쳐올 최후를 모르고있어서 모두들 그저 걷기만 할뿐이다. 하지만 매사에 피해만 겪어온터이여서 무엇인가 자꾸 불안스럽기만 한 사람들이다. 더러는 경찰들에게 이렇게 꼭 가야만 하는가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경찰들도 내막을 모르고있어서 대답이 없거나 꿱꿱거리기만 할뿐이였다.

그런대로 사람들속에서는 군중이 모인 곳이란 어데서나 그러하듯 일종의 락천적인 기분까지 돌아서 혹은 롱을 걸며 웃어대기도 하고 철부지들은 부모들과 함께 원족을 가는 기분에 싸여 조잘거리며 들까불기도 했다. 몇몇 젊은 사람들은 자라모양의 술병을 서로 돌려가며 청주를 마시더니 화풀이나 하듯 비틀어진 목소리로 구슬픈 노래들을 뽑아댔다.

대포 한잔만 마시면 의례히 신세타령처럼 터지던 노래, 끝없는 고통속에 운명의 줄타기를 하며 포성에 지쳐 쫓기우는 하루살이들의 노래였다. 그속에는 추악한 사회제도와 외세가 빚어낸 타락풍조가 와글거리고 패자들과 기만당한 난민들로 고무풍선처럼 터질듯 하던 도시들과 촌락들의 수라장이 비껴있었다.

진수와 동혁은 사람들속에 섞여 말없이 걸었다. 홀가분한 마음이였다. 다만 그렇게도 마음에 들던 북녘사람들과 한편인 유격대원들을 만나보지도 못하고 강제로 《피난》해야 하는 딱한 사정이 서러울뿐이였다.

진수의 앞에서는 망건차림에 허리가 ㄱ자로 굽은 로인이 부지런히 지팽이를 휘두르며 숨차게 반달음을 치고있었다. 샘골마을에 처음으로 들어서던 인민군병사들에게 매달려 기쁨에 울던 로인이였다. 로인은 지팽이를 들지 않은 한쪽손으로는 다 꿰여진 어른용방한모를 쓰고 꾸겨져서 말려오른 가둑잎같은 치마밑에 더러운 내의를 입고 칭얼거리며 자꾸 주저앉으려고 하는 대여섯살 나보이는 어린 손녀의 손목을 끌며 허둥거리고있었다.

진수와 동혁은 그 모습에서 횡포와 악운이며 숱한 재난들이 다가올 때마다 몸바쳐 항거도 하고 저렇게 자손을 업고 이끌고 헤매기도 하던 선조들의 수난의 력사를 생각했다. 세월은 험해도 력사는 흘러왔고 수난은 겹쳐도 사람들은 자손을 길러왔다. 영원한 영화를 공상하던 악독한 통치자들의 권력의 자리는 무너져 티끌이 되였어도 겨레의 강은 갈수록 거창한 흐름을 이루어 대지를 누벼오지 않았던가. 지금 어린 손녀를 이끌고 허둥거리는 저 로인에게도 그 꺾을수 없는 신비로운 의지가 흐르고있는것이 아닐가?

진수는 로인의 손녀를 업었다. 그러자 동혁은 묵묵히 돌아보는 로인을 부축하여나섰다. 멀리 앞쪽에 보이는 정재만은 머리를 푹 숙이고 걷는것이 무엇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듯싶었다.

일행은 점심때가 다되여서야 계룡산기슭에 있는 국민학교 교정에 들어섰다. 《국군》이 병영으로 쓰다가 철수한 뒤여서 교정둘레엔 높은 철조망이 쳐있었는데 그속엔 앞서 도착한 린근마을사람들이 철조망의 한귀가 트인쪽에 몰려들어 웅성거리고있었다. 여러명의 경찰들이 명부책을 들고 앞쪽에 나서서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고있었다. 불리운 사람들은 가족을 데리고 경찰들이 지켜선 문밖으로 허겁지겁 빠져나가고있었다.

샘골사람들에게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뱁새눈에 눈섭 한오리 없는 경찰이 나타나더니 매독쟁이처럼 잠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호명을 받은 사람들만 먼저 가족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시오!》

그러곤 아무 설명도 없이 속주머니에서 문서를 꺼내여들고 이름들을 불러댔다. 사람들속에서는 처음엔 의혹이, 다음엔 불안과 공포의 파문이 일어났다. 그것도 그럴것이 사람을 골라내는것도 이상하거니와 불리워나가는 사람들은 군인가족, 경찰가족, 공무원가족들과 그들의 친척들뿐이였다. 그러고보면 남는것은 인민군대를 도와나섰다고 하여 당국으로부터 《부역자》라는 루명을 쓰고있는 사람들과 그들의 가족들뿐이였던것이다.

《저놈들이 우리를 감옥에 처넣자는게 아니요?》

누군가 한마디 터치자 녀자들이 비명을 지르고 아이들이 울어댔다.

진수는 동혁이를 걱정했다. 동혁은 샘골사람이 아니므로 호명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던것이다. 그런데 진수의 아버지이름마저 불리우지 않았다.

불안해진 진수는 교문곁에 선 한 경찰에게 무엇인가 하소연하는 아버지에게로 달려갔다.

정재만은 달려온 아들을 눈짓으로 물리치며 경찰에게 애원했다.

《표형, 이런 일이 어데 있소? 내가 면서기로 있을 땐 그렇게도 돌봐주던 표형이 어떻게 이럴수 있소? 제발 사정 좀 봐주오!…》

경찰은 팔소매에 매달리는 재만에게 눈을 부라리며 화를 냈다.

《시끄럽소. 당신이 빨갱이들을 도와 다리공사에 나다닌걸 모르는줄 알아?》

그럴수록 재만은 상대를 부여잡고 가슴을 치며 애걸했다.

진수는 추태를 부리는 아버지를 도끼눈으로 쏘아보았다. 저렇게 비굴하게 굴어서 풀려나가면 무엇하나. 차라리 떳떳이 남는편이 낫지 않을가?

이렇게 생각한 진수는 아버지를 만류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때 경찰은 자기 상관에게 가서 무엇인가 밀담을 하더니 뜻밖에도 정재만의 석방을 허락했다.

재만은 기뻐서 어쩔줄 모르며 진수와 동혁을 불렀다. 그러나 석방계선에서 동혁이 저지를 당하는 바람에 재만은 또 한번 온 육신을 발동하여 애걸하면서 이름난 성격배우처럼 기막히는 연기를 놀지 않으면 안되였다.

세사람이 운명적인 석방계선을 넘어 밖으로 나왔을 때 성공의 기쁨에 얼굴이 달아오른 재만은 진수와 동혁에게 빨리 집으로 돌아가라고 당부하더니 어디론가 자취를 감추었다.

동혁과 진수는 그곳을 떠나자니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갇혀있는 사람들에게 무슨 불행이 떨어질것인지 지켜보고싶었던 그들은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학교부근에서 숨어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찬바람을 피해 빈 도람통들이 쌓여있는 곳에 가서 앉았을 때 수수께끼같은 정보를 듣게 되였다.

지나가던 찌프차에서 두 장교가 내리더니 도람통무지의 저켠에서 소변을 보면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렸다.

《장소가 좀 어떨가?》

《흑룡봉아래말인가? 외진 곳이니까 괜찮아. 몰사격으로 제꺽 해치울판이니까.…》

그리고는 다시 차에 올라 멀어져갔다.

진수와 동혁은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을 못했으나 곧 그것이 학교에 갇힌 사람들의 운명에 대한 무서운 이야기가 아닌가 하고 추측했다. 그러나 자기들의 놀라운 추측을 갇힌 사람들에게 알릴 가능성도 없었다. 철조망둘레는 탐조등불빛으로 대낮같이 밝은데다가 요란스레 짖어대는 군견들을 거느린 순찰대들이 돌아다니고있었던것이다.

《이렇게 된바엔 흑룡봉골짜기쪽에 미리 가서 숨어보면 어떨가? 아무 일도 없으면 다행이구…》

동혁의 말이였다. 진수는 동의했다.

얼마후 그들은 엷은 달빛속에 추위에 우들우들 떨면서 장엄한 계룡산의 갈래많은 한 릉선에서 갈라져나온 날카로운 흑룡봉이 솟아있는 깊은 골짜기에 들어섰다. 거기서 그들은 달빛에 왕바위들이 희미하게 얼른거리는 컴컴한 흑룡봉과 그밑으로 돌아흐르는 얼어붙은 물결이 한눈에 엇비슷이 굽어보이는 산중턱에 올라가 숨었다.

막연한 불안속에 지루한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다가 요행 아무런 일이 없을것만 같아 막 자리를 뜨려고 할 때 문득 총칼에 둘러싸인 마을사람들의 소란한 무리가 여러 아이들의 울음소리를 앞세우고 산굽이를 돌아 들어서고 그뒤로 철갑모들에 덮인 여러대의 군용화물차들과 승용차들이 들이닥쳤다.

집단살륙이라는 번개같은 생각에 진수와 동혁은 억이 막히여 굳어졌다.

총칼로 군중을 벼랑밑에 몰아세우더니 자동차들의 불빛과 여러개의 전지불이 그들을 비추었다.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것인가. 아니면 죽음의 창극을 실컷 구경하려는것인가?

무서운 광경이였다. 남녀로소모두가 사슬과 포승에 묶여 공포와 저주에 얼어붙어있었다. 몇시간사이에 여위고 이즈러진 얼굴들, 로인과 한사슬에 묶이운 처녀들, 마지막젖을 빠는 애기를 가슴에 안은채 포승에 묶여 넋나간 얼굴을 허공에 추켜든 녀인, 어른의 털저고리를 외투처럼 걸치고 맨발로 얼음우에 서있는 소년…

이들은 어찌하여 죽어야 하는가. 어둡고 추운 땅으로 해빛과 봄을 안고왔던 인민군대를 보고 좋아하고 그들을 사랑했기때문에, 아무런 죄도 아닌 그 《죄》때문에 죽는것이다. 그리고 어린아이들은 죄없는 부모에게서 태여난 그 《죄》때문에, 아직은 인생을 시작해보지도 못해서 다만 무한한 가능성으로만 남아있는 목숨이기때문에 죽어야 하는것이다.

군중의 앞쪽에는 얼어붙은 도랑을 사이에 두고 카빈총과 기관총으로 무장한 군복입은 살인귀의 무리가 달빛과 반사된 불빛에 희미하게 드러나고 그앞에는 난쟁이를 겨우 면한 고급장교가 한가한 생각이나 즐기는것처럼 머리를 숙이고 오락가락하고있었다.

불쑥 군중들속에서 허리가 꼬부장한 로인이 허둥거리며 나오더니 짓눌린 목소리로 웨쳤다.

《이놈들, 이 사람들을 죽이지 말고 나를 백번 죽여라아!》

그러자 장교는 구두발로 사정없이 로인의 허리를 차버렸다. 로인은 언땅에 꼬꾸라져서 몸부림쳤다. 그러자 군중은 경악하여 뒤설레는데 한 청년이 달려나오며 앞으로 묶인 손을 높이 들고 웨쳐댄다.

《이 개같은 놈들아, 네놈들은 천벌을 받을거다!…》

그 순간 골안을 들부시는듯 한 일제사격이 터졌다. 진수와 동혁은 눈앞에 벌어진 너무나도 무서운 광경에 전률하여 서로 끌어안은채 바위에 이마를 찧으며 울었다. 그러다간 계속되는 집중사격속에서도 살인귀들을 저주하는 웨침소리를 듣고 다시 현장을 굽어보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죽어넘어져있었다.

사격은 계속되였다. 사람들은 쓰러지고 뭉친 덩어리들은 작아져갔으나 그들의 고함과 절규소리는 계속되였다. 어린것들은 뿔뿔이 흩어져 달아나다간 나동그라졌다.…

진수는 급작스레 의지의 힘을 잃고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으나 그 찰나에 육신의 온 기력이 전류처럼 발밑으로 빠져달아나는것을 느끼며 눈을 꽉 감고 자빠졌다. 그리곤 사격소리가 멎을 때까지 죽은듯이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간신히 눈을 뜬 그는 쪼각달과 점점이 빛나는 별들이 일제히 검은 하늘의 무한한 공간속으로 빠져 달아나며 종적을 감추는것을 보았다.

두손으로 귀를 막고 바위밑에 엎드려 몸부림치던 동혁이 진수를 부축하여 일으켰다. 그때 그들은 아래쪽으로 가까이 보이는 산기슭에 서너점의 담배불이 빛나는것을 보았다. 그곁에서 또 하나의 라이터불이 켜지더니 그 불에 양키고급장교가 길다란 곰방대에 불을 붙이는 모습이 선명히 드러났다. 진수와 동혁은 그것을 보고서야 이 치떨리는 범행을 명령한것은 혹시 미군들이 아닐가 하고 막연한 생각을 했을뿐이다.

둘은 걸음마다 엎드려기며 겨우 산에서 도망쳤다. 달빛도 추위에 얼어붙은 광야에 나선 그들은 땅우엔 다만 자기들 두사람만이 살아남은것처럼 생각되였다.…

회상에서 현실로 돌아온 진수는 벌떡 일어나앉았다.

숨이 가쁘고 머리가 무거웠다. 한칸에 든 사람들은 모두 깊은 잠에 들어있었다.

진수는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나 렬차의 복도에 나섰다. 식당차에 들린 그는 접대원을 깨워 술 한병과 말린낙지를 청해가지고 빈 식당의 구석자리에 앉아 조용히 마시며 자기 회상의 여운을 음미했다.

그에게는 이상하게도 오랜 세월이 흘러도 지난 전쟁시기의 추억은 흐려질줄 몰랐다. 해마다 겨레를 울리고 들끓게 한 가지가지 사건들과 사변들은 시간의 흐름을 따라 련달린 파도처럼 그 전쟁의 추억을 흔들어부시고 거기에 천만가지 퇴적물을 쌓아 산을 이루어도 잊혀지지 않았다. 하기는 진수의 경우에도 단순히 흘러보낸 세월이 아니였다. 군대에 끌려나가 포화속을 헤매였고 정전후에 대학에 들어간 그는 미국의 로회한 도사들과 권위를 자랑하는 학자들이 설계하고 창조한 《반공》, 《숭미》의 용광로에 빠져 끊임없이 《체질개조》를 강요당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한편 망국이 지어내는 모든 소리와 그림과 서책들은 그를 《자유세계》의 개념과 철학과 류행으로 무장시켰다.

그러나 그를 둘러싼 한심한 현실은 더럽혀지고 무너진 민중의 생활과 그우에 솟아오른 외세와 매판의 전당이며 생활의 갈피마다에 우글거리는 군경들과 정보원들의 횡포를 펼쳐보이며 진수에게 소리치는듯 했다.

(《자유민주주의》란 거짓이다. 그것은 압제와 략탈의 대명사이다!)

그러니 어느것을 믿어야만 하는가? 진수는 자기가 받은 교육과 현실간의 풀 길 없는 갈등안에서 우울에 잠겼고 사색을 이어나갈 힘을 잃군 하였다. 그럴 때면 이제는 아득한 멀리로 감감히 사라진것만 같던 전쟁시기의 추억이 그 무슨 운명의 예고처럼 문득 되살아왔다. 경의, 청춘, 무장의 신비로운 결합으로 그렇게도 매혹과 믿음을 주던 인민군대며 농민들에게 땅을 주고 새 삶의 권리를 주던 북녘사람들이 군악대의 황홀한 노래를 앞세우고 세월의 검은 바다너머로부터 노을처럼 일어나 가까이 다가왔다.

진수는 그속에서 아름다운 처녀손풍금수를 알아본다. 그 녀자는 그때와 다름없이 투쟁하는 청춘의 자랑을 노래부르며 그 꿈꾸는듯한 눈으로 묻는다.

《진정한 청춘이란 무엇일가요?…》

그 모습이 신기루처럼 가뭇없이 사라지면 이번에는 흑룡봉골짜기에서 학살당한 남녀로소가 탄알과 수류탄에 찢긴 처참한 가슴들을 펼치고 높이 솟아오르며 온 목청을 다하여 피타게 소리친다.

《그래 복수자들은 없단 말이냐?…》

이러한 환상에 시달리며 끙끙 신음할 때 혹시 문희가 무슨 말을 걸어오기라도 하면 그는 안해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아듣지도 못하고 앉으면 앉아있는 그대로, 누우면 누워있는 그대로 몇십분이고 눈을 꽉 감고 움직일줄 몰랐다.

지금도 진수는 텅 빈 렬차식당의 구석에 반이나 마신 술병을 놓고 앉은채 달리는 렬차의 진동에 따라 몸을 기울거리며 어두운 창밖에 눈을 겨누고 오래오래 앉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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