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제 9 장


45


조치원에서 뻐스로 공주까지 와서 거기서 다시 시골길로 삼십리나 걸어온 진수는 다리쉼을 할겸 늙은 뽀뿌라나무들이 렬지어선 나지막한 동뚝에 앉았다. 거기서 고향마을은 한키로메터도 채 안될 지척이였다. 하늘이 낮고 흐린탓인지 저녁 다섯시를 갓 지났는데도 사위는 어스레했다. 작황이 좋아보이지 않는 푸른 논벌에는 논김을 매는 농민들의 모습이 점점이 희끗거릴뿐 사위는 숨죽인 고요속에 묻혀있었다. 진수는 깊은 한숨을 쉬며 키높은 느티나무사이로 보이는 허줄한 샘골마을과 그속에 유난히 거무스레한 고향집의 기와지붕을 바라보았다. 미쳐서 죽은 인수의 묘앞에서 그렇게도 무섭게 오열하던 늙은 어머니를 생각하자 가슴이 미여지는것 같았다.

나는 죄인이고 패배자다. 무엇 하나 이룩한것도 없이 소중한 모든것을 빼앗긴채 권력자들의 채찍에 끝없이 잔등을 패우다가 빈손으로 이렇게 찾아온것이다.…

자신을 지나치게 경멸하는데서 생긴 이러한 우울증은 그가 고향에 올 때마다 느끼군 하는것이였다.

고향은 그의 어린시절의 가난한 요람이였다.

풍부한 감성을 타고난 그는 코흘리개시절부터 쓰거운 흙과 곡식뿐인 이 광야에 서려있는 울적한 공허를 두려워하였다. 남쪽으로 아득히 열린 먼 지평선은 그에게 서러운 서정시를 끝없이 읊어주었다. 하늘에 가위다리를 그리며 날아오는 계절조도, 신록과 꽃을 뿌리며 미소하는 어여쁜 봄도 그 아득한 지평선에서 흘러오고 담배며 여러가지 알록달록한 물건들을 지고 와서 남녀로소의 떠들썩한 마중을 받군 한 《고을할아버지》도 그 들끝에서 왔다고들 했다.

그리하여 소년은 그 지평선너머엔 신기한 새세상이 있는것이라고 생각했고 이런 공상이 생긴 다음부터는 달구지군들의 구슬픈 노래가 흐르는 먼길을 바라보거나 연하서린 지평선을 바라보기만 해도 그 새세상을 보고싶은 갈망에 지지리 가슴을 앓았다.

그러다가 여섯살인가 일곱살때인지 한번은 장보러 가는 어머니를 따라 그 지평선을 넘어 공주라는 도시로 가보았다.

아, 도시란 얼마나 별스러운 곳인가! 간혹 눈에 띄우군 하는 2층짜리 집들과 번쩍거리는 유리창들, 비좁은 거리가 더 좁다하게 종종 굴러가는 자동차와 자전거들, 오가는 사람들의 뭇시선을 끌어당기는 길가의 매장들…

이날이후로부터 진수의 모든 꿈은 도시에 가있었다. 진수에게서 도시이야기를 들은 그의 동무들은 하나같이 눈이 둥그래졌다. 당장 가보자고 끓어댔다. 진창과 물뿐인 시골에서 여름이면 내물에서 미역이나 감고 겨울이면 얼음판에서 썰매나 타면서 만족한다는것은 그야말로 쬐쬐한 일이였다.

진수는 어머니에게 도시구경을 갈수 있도록 돈을 달라고 졸랐으나 어머니는 《그런 무서운데로 너를 보내다니, 그런 소리 아예 말아라.》 하고 딱 잘라 거절이다. 진수와 같은 나이또래들도 다 저희네 어머니들에게서 이런 거절을 당했다. 그들은 난관을 풀 방도를 생각해냈다. 제가끔 자기 집에서 쌀을 한두되씩 훔쳐내다가 도시로 가지고 가서 팔면 돈이 생길것이 아닌가! 과자도 사먹고 영화관에도 들어가볼수 있다!

아침일찍 진수는 어머니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자기 집 뒤울안에 있는 쌀독에서 쌀을 퍼내여 대님을 단단히 맨 바지가랭이속에 쏟아넣고는 아닌보살하고 마을앞 느티나무아래로 갔다. 거기서 동무들의 환호속에 대님을 풀고 쌀을 보자기에 쏟았다. 모두들 이런 방법으로 쌀을 모았다.

그들은 쌀을 가지고 공주를 향하여 달음박질쳤다. 도중에 짐마차를 부리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부락에 들려 헐값으로 쌀을 팔았다. 삼십여리를 땀투성이가 되여 달려간 그들은 공주를 감돌아흐르는 금강의 강뚝이 저만치 보이는 곳까지 갔다. 강뚝에만 올라서면 금강의 흐름너머에 별천지인 도시가 보일것이다. 생각만 해도 진수의 가슴은 터질듯 활랑거렸다. 그는 동무들과 함께 있는 힘을 다하여 금강의 강뚝으로 치달아올랐다. 그것은 옛말에 나오는 보물나라 의 성문을 여는 순간이였다. 그렇게도 가슴을 조이며 강뚝우에 올라 금강의 흐름너머에 솟아있는 도시의 높고낮은 집들을 본 소년들은 동동 뛰여오르며 환성을 질렀다. 도시의 문화는 흙속에서 기여나온 소년들을 열광케 하였다.

그때로부터 삼십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갔다. 한해두해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도시문화에 대한 그의 첫 환희는 차츰 회색빛실망으로 바뀌여갔다. 알고보니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농민들 못지 않게 가난하게 살고있었다. 그곳의 높은 집들은 가난뱅이들이 아글타글 벌어놓은것을 빼앗아 가져다 쌓아놓은것이였고 도시의 문화란 민중의 피와 눈물을 빨아먹고 피여난 독버섯이였다. 권세와 재산의 소유정도에 따라 사람들을 성돌처럼 층층으로 쌓아 보이지 않는 쇠사슬로 비끄러맨 아우성의 인간피라미드인 도시들, 거기서 통치자들과 부자들은 민중을 착유기로 비틀어짜고 그들의 살과 피로 음식을 만들어 먹으며 그들의 뼈로 장신구들을 만들어 몸에 두르고 뽐내는것이다. 이것이 바로 부르죠아문명이고 《자유세계》의 문화였다.

부르죠아문화에 대한 철부지시절의 첫 환희로부터 환멸과 저주에 이른 전체 과정을 회고해본 진수는 피로가 어린 얼굴을 높이 들고 재빛하늘과 설레이는 뽀뿌라나무의 푸른 가지를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동혁이, 자네 말이 옳아. 이 세상은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그러니 자네가 가는 길이야말로 진정으로 옳바른 길이란 말인가?…》


오래간만에 제 집에서 아들을 맞이한 진수의 어머니는 죽은 인수생각에 목놓아울었다. 아버지 역시 우울한 이야기들뿐이였다.

저녁상을 물리기 바쁘게 목적하고 온 일로 마을에 나선 진수는 불빛이 비친 집집의 창문들을 둘러보며 어느 집부터 먼저 찾아가서 전쟁때의 이야기를 들을것인가 하고 한동안 망설이였다. 그러다가 마을의 맨 서켠에 나앉아있는 차종현로인의 집에 먼저 들려보기로 했다.

진수가 사납게 짖어대는 개의 성화를 받으며 그 집 웃방에 들어섰을 때 차종현로인은 방안에서 낫을 갈고있었다. 백발이 흩어지고 탄력을 잃은 주름살투성이의 살가죽이 축축히 늘어진 얼굴에 꽛꽛해보이는 희끄무레한 눈섭이 들썽한 로인은 진수를 알아보자 몹시 반가와했다. 아래방에 면한 문이 열리더니 들일에 얼굴이 까맣게 탄로인의 건장한 아들 용달과 처량히 늙은 할머니며 애기설이에 얼굴이 얼룩진 며느리까지 진수에게 다투어 인사를 하면서 반겨주었다.

한순간 법석대다가 자리를 잡고 앉아 농사이야기, 죽은 인수이야기, 서울이야기 등 두서없이 주고받았다. 그러던중에 진수는 자세를 바로하며 신중한 표정으로 로인에게 말했다.

《조용히 좀 묻고싶은 말이 있어서 왔습니다.》

로인은 대번에 긴장했다. 축 늘어져드리웠던 주름진 눈시울이 걷혀오르더니 빛이 바랜 누르끼레한 눈이 낯선 침입자를 쏘아보듯 했다.

《나한테? 나야 무슨 할 말이 있어야지. 농사군이 뭘 알겠다구…》

《그런게 아닙니다. 믿고 찾아왔어요. 다른게 아니구, 지난 전쟁때 보시고 겪으신 일들을 더 잘 알고싶어서…》

로인은 어지간히 놀란 모양, 멍청한 얼굴이 되였다.

《그게 벌써 언제 일인데, 싹 잊어먹었어. 자넨 내가 뭘 죄진게라도 있는줄 아는가? 무슨 생각을 하고 그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로인은 뿌루퉁해서 물러앉더니 아래방에서 쳐다보는 가족들에게 화를 냈다.

《이거 문을 얼른 닫지 못하겠어?》

마누라가 근심이 서린 얼굴로 조심히 문을 닫았다. 진수는 창호지가 찢어져서 수없이 덧붙인 문이며 낫을 가느라고 물을 떠놓은 이빠진 오지그릇이며 세월의 때가 꺼멓게 앉은 흙벽에 수북이 걸린 각종 세금고지서며 흙물이 오른 초라한 잠뱅이등속을 둘러보며 생각했다.

나는 아무것도 얻어듣지 못할수 있다. 령감은 나를 경계하고있는거다. 무서운 세월에 제 속을 드러내는것은 화만 벌어들이는 우둔이라고 여기고있는걸가. 사람들을 침울케 하는 무서운 가난, 자기를 가리우고 감추지 않고서는 어느때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 얼마나 숨막히는 세상인가.

진수가 이전에 알고있던 이 차로인은 대바르고 성미가 광솔불처럼 팔팔했다. 마을사람들이 무슨 일로 싱갱이를 벌리면 통쾌한 꾸짖음으로 단번에 화해를 시켰고 마름같은 놈이 꽥꽥거리면 눈에 불을 켜들고 당장에 개몰듯 쫓아버렸다. 그러던 사람이 이렇게도 소심해졌단 말인가.

《로인님, 난 배우려고 왔습니다. 박정희같은 놈을 편들가봐 그럽니까?》

진수는 진정이 느껴지게 말했다.

《사람답게 새롭게 살자고 그럽니다. 그러자니 지난 전쟁때 나왔던 이북사람들이 편 정치가 어떠했는지 더 잘 알고싶어서 그래요. 전 그땐 아직 세상물정을 모른 철부지나이여서…》

차로인은 여전히 긴장이 풀리지 않은 얼굴이였다. 그러더니 깊은 한숨을 쉬며 중얼거렸다.

《힘든 얘기야. 내가 그걸 알턱이 없지.…》

미련은 있으면서도 시간이 급한 진수는 다른 집에 먼저 가보고 다시 찾아올 작정으로 일어났다. 그러자 그를 무서운 눈으로 쳐다보던 로인이 아래방에 대고 소리쳤다.

《용달아, 밖에 나가 누가 오지 않는지 살피고있거라! 얼른!》

그리고는 진수의 손을 무턱 끌어 자리에 앉히더니 젖어오는 눈을 슴벅거렸다.

《자네 그걸 알고싶어하는걸 보니 사람이 됐구만! 사람이 됐어! 이 샘골 흙속에서 난 진수야 어델 가겠나. 모두 자네를 믿고있었네.》

용달이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진수는 로인앞에 다가앉으며 당부했다.

《저를 꼭 믿고 말씀해주십쇼. 그때 이북사람들이 여기에 나와서 편 정치가 어떠했습니까? 보신대로, 느끼신대로…》

차로인은 진수가 내놓은 담배갑을 밀어놓고 대통에 써레기담배를 꾹꾹 눌러담더니 화로불에 붙여물고 한동안 맛스레 피우다가 눈을 빛내며 말했다.

《벌써 많은 세월이 흘러갔지만 그때에 본 인민군대랑, 이북사람들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찌르르하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았겠나. 정치는 또 어떻구! 가만, 피뜩 떠오르는 얘기가 하나 있네. 잊어먹기 전에 그걸 먼저 얘기합세.》

잠간사이에 딴 사람이 된듯 명랑해진 로인은 다음과 같은 체험담을 폈다.

《난들 처음에야 인민군대가 어떤 사람들인지 알턱이 있나. 허, 북쪽 왕재골 골안쪽에서 대포소리, 총소리에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더니 인민군대가 오늘래일 이 고장을 덮친다는 소문이 짱하거던. 헌데 어떤 놈들이 편 소린지 빨갱이군대는 눈도, 얼굴도, 머리칼도 다 새빨갛고 사람을 보면 아이고 어른이건 닥치는대로 찢어죽인다는거여. 이런 무서운 소문을 펴면서 빨리 피난하라고 들볶으며 야단을 치질 않나. 그래 이 샘골에서도 더러 뛰였네.

그런데 난 큰일이 났거던. 빨리 달아빼야겠는데 하필이면 우리 집 암소가 오늘래일 새끼를 낳게 됐거던. 남산만 한 배를 깔고 누워 나만 쳐다보며 버둥거리질 않나. 이 소는 농살 망치고 대전으로 간 내 형되는 사람이 땅을 판 돈과 내 가산을 다 털어 팔아서 맨 손데, 어떡하나, 그 소를 버리고 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무너지는거야. 난 외양간으로 들이뛰고 내뛰고 하던 끝에 집에 남아서 소와 목숨을 같이하기로 마음을 다졌네.

그래 외양간 천정구석에 덕대를 매고 그우에 도끼를 가지고 올라가 숨질 않았겠나. 빨갱이들이 와서 소를 끌어가면 너 죽고 나 죽고 결판을 내자고말일세. 지금 생각해보면 똑 미친놈이였지. 상바보였지. 그땐 정말 그랬다니까.》

차로인은 저로서도 어이없다는듯 울상이 되여 쓰겁게 웃었다. 그러더니 재미있는 꾀를 생각해낸 사람처럼 묘한 미소를 짓고 목소리를 더욱 낮추어 감칠맛있게 말을 이어갔다.

《마침내 면소가 있는쪽으로 차소리, 땅크소리가 야단스레 지나가더니 이 마을에도 인민군대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질 않겠소. 그런 판에 우리 소는 덜컥 새끼를 낳았구먼. 그것도 잘 생긴 수송아지를 말이요. 덕대우에서 내려다보노라니 눈물이 콱 나더군. 허, 이제는 한마리도 아닌 두마리나 빼앗기게 됐구나 하고 생각하니 기가 막힌단 말이여.

그런데 이걸 어쩌겠소. 울밖으로 돌아오는 구두발소리가 들리더니 부엌문앞에서 〈주인님 계십니까?〉 하고 찾는 소리가 들리지 않겠소.

난 도끼를 틀어쥐고 숨을 딱 죽였지. 나도 소도 영낙없이 죽었구나 하고 생각하니 왈칵 밸이 나는게 참 미칠것 같더군.

난 그저 행여나 하고 속이 한줌만해있는데 암소가 그만 새끼를 핥아주다가 버스럭거리며 웅얼거리는 소리를 냈소. 그바람에 돌아나가는가싶던 군인들이 이쪽으로 오는 소리가 나더니 외양간문을 벌컥 열지 않겠소. 그러니 내 속이 어떠했겠소.

헌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내려다보니 짤막한 총들을 쥔 세사람의 군인이 소와 송아지를 보더니 아이들처럼 〈히야! 히야!〉 하면서 좋아서 어쩔줄 모르거던. 이발도 눈알도 새빨갛다더니 웬 소리. 아, 얼마나 구수하게 잘 생긴 사람들이겠소!

상관인듯 한 그중 나이들어보이는 실팍한 사람은 제 총을 어린 대원의 어깨에 걸치더니 팔을 걷어붙이고 피가 즈락한 검불을 걷어내고 마른 검불을 송아지에게 깔아주는가 하면 암소의 잔등을 쓸어주거던. 그러면서 중얼거리는거야.

〈이 집 주인도 한심하지, 이런 소를 버리고 어델 갔는지… 몸은 가도 알둔 새의 넋이라더니… 얼마나 속이 타겠소!…〉

이 말을 듣자 난 그만 속이 치밀어서… 자, 이렇게 되니 내사 어쨌으면 좋겠는지 알수가 있어야지. 그때까지도 난 그 사람들이 소를 돌봐주고 그냥 가려고 그러는지, 그 자리에서 잡아죽이자고 그러는지 알수가 없었거던.

헌데 이때 총을 두자루 멘, 얼굴이 해사해보이는 어린 대원이 송아지의 발이 너무나 깜찍스러워서 군화발로 툭툭 건드렸는데 그걸 본 상관은 〈쩟쩟, 이 동무가?… 어데다 함부로 발을 대?〉 하고 큰일이 난것처럼 화를 내질 않겠소.

키큰 다른 사람은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소리를 내더니 버치에 미지근한 물을 떠내오고 상관은 방안에서 쓰는 몽당비자루를 구해다가 그 물로 송아지를 씻어주는데 어찌나 정성을 기울이고 어찌나 좋아들 하는지. 그러면서 이북에서 살던 얘기를 구수하게 하거던. 토지개혁의 덕으로 삼대머슴을 살던 자기네가 수천평의 기름진 땅을 공짜로 받은 이야기, 성미가 과묵하여 〈윤달에 히쭉이〉라는 별명이 붙은 자기 아버지가 탁주 한사발을 걸치고 논머리에서 꽹과리, 북장단에 맞추어 꼽새춤을 기막히게 추어 온 마을이 박장대소한 이야기, 분배받은 땅에서 첫해농사를 잘 지어 네귀 번듯한 기와집을 틀어올리고 소까지 사맨 이야기… 들을수록 꿈같이 희한한 얘기거던.…〉

온몸이 귀가 되여 듣고있던 나는 숨어있다는것도 까맣게 잊어먹고 가슴이 치밀고 눈앞이 흐려와서 흑- 하고 그만 흐느낌소리를 냈네구려. 군인들은 놀라 일제히 총을 재우며 뛰쳐일어나 쳐다보더니 덕대우에 엎드려있던 나를 끄집어내리는거야. 헌데 이걸 어떻게 허나, 도끼를 보더니 글쎄 나를 소도적놈으로 몰아대는게 아니겠나.

뜨락에 끌어내더니 〈이 전쟁판에 도끼들고 소도적질을 다녀? 에이, 더러운 두상!〉, 〈감히 인민의 재산을 먹어보겠다구? 어데서 어떤 놈이 보냅데까, 엉?〉 이러면서 자기들이 오히려 분해서 막 꾸짖는단 말이여.

난 그만 속이 넘어나서 그 사람들의 다리를 안고 엉엉 울었소구려. 그렇게 소리를 내여 울어보긴 처음이였네. 욕을 먹을수록 말 못할 기쁨이 오랜 세월 가슴에 응어리진 설음을 폭포수처럼 씻어주는데도 한번 터진 울음은 그냥 자꾸 쏟아지는구려!…》

여기까지 이야기한 차종현로인은 목이 갈려 더는 말을 못했다.

눈물이 질벅한 눈을 들고 무슨 말인가 더 하려고 했으나 입술만 덜덜 떨다가 백발을 푹 떨구고 끝내 어깨를 들먹거렸다. 방바닥을 짚은, 흙살이 터갈라진 커다란 손등에 시누런 눈물이 쏟아졌다.

진수는 급히 담배를 피워물려고 했으나 그도 머리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아래방에서는 할머니가 코를 풀고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곧 진정을 한 차로인은 이상한 눈으로 진수를 바라보더니 움쭉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사이 령감의 통제에서 벗어난 할머니가 사이문을 열고 치마귀로 눈물을 닦으며 진수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인민군대가 돌봐준 소를 글쎄 후에 다시 쳐들어온 〈국군〉들이 끌어가질 않았겠소.》

《저런! 그놈들이 잡아먹었는가요?》

진수가 놀라와하니 로파는 문턱에 다가앉으며 농촌녀자특유의 억양으로 말했다.

《저 면소가 있는 안골부락에 끌어다가 잡아먹었다오. 송아지는 제일 높은 놈이 술안주로 처먹고, 우리 령감은 그날부터 심화병으로 누워 한달이나 모질게 앓았다오. 그대로 영 잘못되는줄로 알았는데…》

할머니는 말끝을 흐리며 어지러운 수건을 눈에 가져갔다. 다시 들어온 차로인은 다 타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대통에 또 써레기담배를 다져 피워물었다.…

밤 세시가 지난 다음에야 차로인의 집을 나선 진수는 고향집 웃방에 들어가 누운 다음에도 잠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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