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9 장


46


진수는 다음날에도 몇몇 사람들을 만나 인상적인 이야기를 들었으나 가장 큰 충격을 받은것은 웃마을에 있는 《벙어리》로인의 집에 들렸을 때였다. 서대문감옥에서 무기징역을 사는 아들을 면회하겠다고 이따금 서울에 올라올 때마다 김용기네 집에 들리군 하던 그 로인의 집이였다. 이즈음 로인의 아들인 김용권이라는 무기징역수는 병보석으로 풀려나와 집에 누워있는데 병이 위독하여 오늘래일 숨을 거둘 형편이라는 소문이였다.

무섭게 가난한 집이였다. 뒤켠에 세운 받침대들에 겨우 의지해있는 다 찌그러진 컴컴한 초가였다. 여러해전에 손이 간듯 한, 꺼멓게 삭고 고랑이 진 벼짚지붕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군데군데 흙이 떨어진 벽골재로 얽어놓은 수수대가 드러나있었다. 서투른 솜씨로 흙매질을 한 굴뚝섬우에는 역시 흙매질로 얼룩얼룩한 새까만 널굴뚝이 추녀귀아래 자빠듬히 서있는데 그 아가리에는 다 헐어빠진 삼태기가 씌워져있었다.

가난이 그대로 역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울타리도 없는 좁은 뜨락귀에 잠시 머물러선 진수는 토방에 여러 컬레의 낡은 신발들이 놓인것을 보고 방문객들이 있다는것을 알았다. 밤에 다시 올가 하고 망설였으나 그대로 찾아들어갔다.

초약 달이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스레한 방에 들어선 진수는 아래목에 어지러운 이불을 덮고 누운, 무섭게 상한 얼굴이 검푸른빛을 띤 환자와 그곁에 창문쪽을 등지고 앉아있던 낯익은 마을사람들이 경계하는 놀란 눈으로 자기를 돌아보는 굳어진 얼굴에서 신분적인 적대감과도 같은 싸늘한것을 느꼈다. 그렇지만 병보석으로 나왔다는 무기징역수인 용권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것이 잊지 못할 무엇을 남긴것만 같은 예감이 든 진수는 그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떨구었다.

《용권형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렇게까지 상하시다니…》

《고맙소만, 누구신지?…》

용권은 진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럴밖에 없는것이 이미 오십나이를 바라보는 용권이 어린 진수를 마지막으로 본 때로부터 근 이십년의 세월이 흘러간것이다. 《왜가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익살스럽게 생긴 농민이 용권에게 알려주었다.

《모르겠소? 아래마을 재만령감네 맏아들 진수를, 이 사람도 서울서 대바르게 사느라 고생이 많은가본데, 허허.》

그제야 중환자는 생각이 드는 모양, 말라서 보풀이 이는 까만 입술가에 희미하게 미소를 그리며 미열이 있는 여윈 손을 뻗쳐 진수의 손을 더듬어쥐고 갈린 목소리로 말했다.

《진수, 영 몰라보겠구만. 반갑네. 소식을 들었다. 접때 용기랑 왔을 때 들었어. 죄많은 놈들과 굴함없이 싸운다지. 고맙네. 사는 동안은 싸워야 사람이지… 그런데 난 끝났어. 한생을 감옥에 버리고 이렇게 끝났어. 편히 앉으라구. 세상사에 대해서 좀 배워주게…》

《무슨 말씀을, 내가 배우러 왔습니다.》

진수는 서글서글한 커다란 눈과 덩실한 코마루에나 옛 모습이 희미하게 남아있는듯싶은 용권의 참혹한 얼굴로부터 낯익은 마을사람들에게로 눈길을 옮기며 말했다.

《뵈일 낯이 없습니다. 용권형님앞에선 더구나…》

마을사람들은 진수가 서울에서 권력자들에게 거듭 반항하다가 여러번 화를 입었다는 소문도 더러 들은데다가 그의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서 긴장했던 낯을 풀고 허물없이 대해주었다. 그러는중에도 아까부터 이 집 《벙어리》로인을 만나고싶던 진수는 웃방에서 기척이 나는것을 듣고 사이문을 열어보았다.

《벙어리》로인은 곰팡내가 나는 그 빈방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진수가 인사를 했으나 로인은 눈확이 까맣게 죽은 흐리멍텅한 눈길로 그를 천천히 돌아보았을뿐 아무 대꾸도 없었다. 마른 왕골짚이 널린 방안복판에는 로인의 말없는 벗인듯싶은 서투른 솜씨로 반이나 엮은 돗자리가 달린 볼품없는 돗틀이 놓여있고 구석에는 크기가 각이한 숱한 꾸레미들이 쌓여있었는데 로인은 뽕나무뿌리같은 손을 거기에 얹고 깊은 생각에 잠겨있었다.

《그게 뭡니까? 로인님.》

진수가 물었으나 눈가에 서러운 미소 같은것이 언뜻 지나갈뿐 대답은 없다. 《왜가리》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농민이 대신 알려주었다.

《그거야 낟알이지. 용권이 이 사람이 병보석으로 감옥에서 돌아온 날부터 여러 사람들이 몰래 와서 살그머니 놓고 가니 누구누구건지도 몰라. 보기가 초라해두 그게 다 보배인정들이 아니겠나.》

듣고보니 진수에게는 그것들이 황금이 든 주머니들처럼 여겨졌다. 사이문을 열어놓은채 자리에 돌아간 진수는 찾아온 사연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이 집 사람들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무서운 불행을 당하게 됐는가 하는것을 물어보았다. 용권은 어두운 천정구석에 생각에 젖은 눈길을 겨눈채 대답이 없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던 끝에 《왜가리》와 덕보라는 건장한 체구의 농민이 서로 보충하면서 이야기를 해주었다.

《벙어리》로인으로 불리우는 김한섭은 전쟁직전까지만 해도 이 동네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인민군대에 의하여 남녘땅의 많은 지역이 해방됐을 때 한섭로인일가는 토지를 주시고 새세상을 열어주신 고마우신 김일성장군님의 한없는 은덕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고 애썼다. 그런데 미군과 《국군》이 다시 기여들어와 모든 사람들을 막 잡아가고 죽이는 참변이 벌어졌다. 로인은 그 직전에 경기도의 한 시골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맏아들 용권을 찾아갔다가 거기서 이 참변을 겪었다. 그때 한창 젊은 나이였던 용권은 인민군대에 의해 해방된 서울에 가서 직업을 잡아보려고 하다가 생각을 바꾸어 어느 시골에 가서 낮에는 학생들에게 글을 배워주었다. 아들 둘을 낳은 용권의 안해는 남편의 소개로 병원에 나가 인민군부상병들의 치료일을 도와주었다.

미군이 다시 기여들었을 때 용권은 일시 몸을 피했으나 그의 처자와 며칠전에 이곳에 온 한섭로인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서해바다가의 낭끝으로 끌려갔다. 살인귀들은 그들 남녀로소 십여명씩 한바줄에 묶어 밤바다가에 차던졌다. 거기서 살아난것은 한섭로인 하나뿐이였다. 그는 손에 감추고있던 손칼로 바줄을 끊고 물속에서 간신히 솟아올랐던것이다. 뭍으로 기여나온 그는 며느리와 두 손자를 구원하려고 몇번이나 자맥질해들어갔으나 허사였다. 달빛속에 거센 바람을 안고 광란하는 바다의 울부짖음은 그대로 로인의 통곡이였다.

죽음의 바다가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떠난 로인은 피신한 맏아들 용권의 행방을 찾아헤매다가 그 역시 잡혀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로인은 얼혼이 나간 몸으로 충청도의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거기서는 마누라와 둘째아들까지 숱한 마을사람들과 함께 계룡산에 있는 흑룡봉골짜기에 끌려가서 총살을 당했다는 무서운 소식이 기다리고있었다. 로인은 시체라도 찾아내려고 참사의 현장에 찾아갔으나 거기에는 벼랑이 허물어져 뒤덮인 스산한 돌밭에 내장을 뒤집는 살탄 냄새가 코를 찌를뿐 아무것도 찾을수 없었다. 살인귀들은 시체들을 휘발유로 불태운 후에 포사격으로 벼랑을 허물어 그우에 덮어버렸던것이다.

그 돌밭에 어푸러져 몸부림치며 통곡한 한섭로인은 울음을 그친 그 순간부터 《벙어리》가 되였다. 세상도, 인간들도, 인간이 쓰는 말도 무섭고 더러웠다. 온 육신에 독처럼 밴 절망은 눈에 짙은안개를 드리우고 혀를 얼구었다. 그가 자살하지 않은것은 맏아들 용권이라도 혹시 살아남을수 있지 않을가 하는 한줄기 희망때문이였다. 그러나 체포된 용권은 온갖 살인법정에 여러번 선 끝에 종신징역수로 서대문감옥안에 던져지고말았다. 근 이십년이나 철창속에서 시달린 용권은 치명적인 질병으로 얼마전에 가석방되여 고향집으로 돌아온것이다. 한섭로인과 용권은 남편도 없는 둘째며느리(그에게는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친정에 맡겨 키우고있었다.)의 눈물겨운 보살핌을 받고있었다.

《왜가리》와 덕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용권은 이상하게 번들거리는 눈길로 진수를 몇번 돌아볼뿐 말이 없었다. 웃방에 앉은 《벙어리》로인은 이따금 깊은 한숨을 쉬며 느린 동작으로 돗자리를 엮고있었다. 부엌문소리가 나더니 까만 눈에 성실한 마음이 비쳐있는 로인의 며느리가 시큼한 냄새가 나는 초약그릇을 환자의 머리맡에 공손히 놓고 나갔다.

방금 들은 이야기로 가슴속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듯 한 진수는 겨우 머리를 들고 약을 마시는 용권을 지켜보며 다가앉았다.

《어떻게 하면 이 원쑤를 갚을수 있습니까? 살인귀들을 쓸어내고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자면 어느 길로 가야겠는지, 생각해본것이 있어요? 무슨 신념 같은것이 있으면 배워주시오. 진정을 알고싶어서 찾아왔어요!… 나도 이대로는 참을길 없습니다.》

진수의 절절한 호소는 모두에게 납득되는 모양이였다. 웃방에 있는 한섭로인까지 돗틀에 손을 얹고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용권은 실눈을 짓고 진수를 돌아보더니 조용히 물었다.

《인민군대가 여기로 나왔을 때 임자는 몇살이였소?》

《열여섯살, 보긴 봤어도 철없는 때여서…》

용권은 깊은 한숨을 쉬며 생각에 잠기더니 일어나 앉으려고 했다. 진수는 얼른 부축하여주었다.

《난 공부도 별로 못한 사람이니 세상사를 깊은 리론으로 풀이할 재주는 없네. 더구나 진수군앞에서야 더욱 그렇지.》

용권은 벽에 기대여앉아 조용히 말하였다.

《그렇지만 꼭 하고픈 얘기가 있네.》

이렇게 꼭지를 뗀 용권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인민군대가 미군과 리승만도당을 쳐부시면서 경상북도지경까지 밀고내려가던 1950년 여름이였다.

용권이 낮이면 소학교에 나가 학생들을 배워주고있던 경기도의 한 시골도 해방지구 어데나와 같이 생활이 약동했다. 마을에는 농민열성자들로 인민위원회가 조직되여 모든 계층의 주민들을 차별없이 보살펴주는가 하면 토지개혁을 비롯한 각종 민주개혁으로 주민들을 새 제도, 새 생활에로 힘차게 이끌어주었다. 누구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느꼈고 행복의 참뜻을 배웠다. 미군비행기들은 밤낮으로 줄폭탄을 쏟아부어도 생활은 질서와 힘과 노래를 자랑했다. 지어는 이전에는 길가의 조약돌처럼 버려졌던 아이들까지 책보자기를 메고 학교로 갔다.

김용권이 교편을 잡고있던 학교는 동산기슭에 우거진 밤나무숲속에 새로 지은 자그마한 가교사였다.

어느날 저녁무렵, 용권은 학교정원에서 담임한 학급학생들에게 도수체조를 배워주고있었다.

이때 멀지 않은 건너마을쪽에서 부지중 여러 사람들이 웨치는 만세소리가 들렸다. 선생과 학생들은 체조를 멈추고 그쪽을 돌아다보았다. 두대의 군용승용차가 마을에서 나와 학교앞을 가로지른 큰길을 따라 이쪽으로 오는것이 보였다.

《누굴가? 혹시…》

용권은 가슴이 울렁거렸다. 한참후에 누군가가 목청껏 웨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김일성장군님께서 오셨다!》

뒤이어 학생들이 쨍쨍한 목소리로 일제히 환호를 올리며 교문쪽으로 새떼처럼 몰려갔다.

용권이가 선뜻 미덥지 않아하며 따라서는데 아이들은 그냥 환성을 지르며 경주라도 하듯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벌써 교문앞까지 달려가고있었다.

그러나 두대의 승용차는 학교교문으로 꺾어드는 갈림길목을 그냥 지나가고있었다. 아니다. 그런것이 아니였다. 차는 서서히 속력을 늦추더니 멈춰섰다. 곧 해빛을 눈부시게 반사하며 차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구에 수수한 군복차림을 한분이 좌석에 앉으신채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보이시며 자애롭게 웃으시였다.

순간 숨차게 달려나가던 아이들과 용권은 처음으로 뵈옵는분이 장군님이 옳은지 아닌지 얼른 판단이 가지 않아서 교문밖에 무춤 서버렸다.

그러자 차안에 계시던분이 경쾌한 동작으로 길에 내려서시더니 두팔을 크게 벌리고 환하게 웃으며 아이들을 향하여 다가오시였다. 그이의 사랑이 넘치는듯 한 환한 표정, 자애에 넘친 그 눈부신 미소를 바라보는 용권은 따뜻한 해살이 가슴속 갈피갈피에 스며드는듯만싶었다.

가슴을 치는 세찬 충격을 느끼며 용권이 앞으로 나서려는 순간, 아이들은 벌써 《장군님! 야아!》 하고 귀청이 떨어지게 환성을 지르며 장군님께로 달려가 그 품에 안겼다.

전후좌우에서 승벽내기로 매달리며 눈이 없어지게 웃는 아이들, 다리에, 허리에 감겨돌아가는 아이들, 장군님의 옷자락이라도 잡으면 그것이 자랑스러워 까르르 웃어대는 아이들… 모두다 저마다의 환희에 끓어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이 광경을 바라보는 용권은 장군님의 은덕으로 새 생활을 맞이한 남녘땅이 어쩌면 이 아이들을 빌어 한없는 환희와 감사의 정을 아뢰이는것이나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장군님께서는 그 아이들모두를 무척 귀여워하시였다. 서둘러 아이들의 뺨이며 머리들을 골고루 만져주시기도 하시고 혹은 끼여들 틈이 없어 뒤켠에서 팔을 벌리고 《나! 나두!》 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을 차례로 추켜들어주시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생각할수록 장군님을 만나뵙게 된것이 꿈같기만 한 용권은 머리가 얼떨해진채 눈물만 흘리고있었다.

이러는 사이에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사진기를 든 한 젊은 인민군군관이 련속 사진기의 샤타를 누르는것이 보이였다.

이윽고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을 둘러보시며 말씀하시였다.

《허, 이런! 자, 이젠 헤여지자. 공부를 해야지. 저기 선생님이 기다리지 않냐!》

아이들이 물러나자 용권은 장군님께로 다가가 깊이 머리숙여 인사를 올렸다.

그이께서는 용권의 어깨에 한손을 얹으시고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아이들을 배워주느라 수고많겠소. 갖춤새도 부족하고 불편한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겠는데 학교를 한번 잘 지읍시다. 아이들은 나라의 보배고 우리의 미래요. 앞으로 각별히 마음을 써서 한 아이도 폭격에 상하는 일이 없도록 잘 지켜주어야겠소. 그럼 길이 바빠서 믿고 가겠소.…》

용권은 장군님께 기쁨이 될 대답을 올리고싶었으나 차에 오르시는 그이께 거듭 허리숙여 인사만 드렸을뿐 목이 메여올라서 말을 못했다. 아이들과 교원은 장군님께서 타신 차가 먼 산굽이를 돌아 사라질 때까지 그냥 만세만 불렀다.

그후 용권은 커다란 사명감과 환희를 안고 열정적으로 일을 했다. 학교에서 일이 끝나기 바쁘게 하루에도 폭격에 몇번이나 파괴되는 다리복구장에 나가 사흘이나 꼬박 밤을 새우며 일을 했다. 그리고는 다음날 아침에는 그길로 또 학교에 나갔다.

어느날 중낮무렵에 그는 학교방공호를 수리하다가 교장실로 불리워갔는데 교장과 함께 뜻밖에도 장군님을 모시고 왔던 낯익은 인민군 군관이 책상우에 한장의 사진을 놓고 그를 기다리고있다가 반겨맞아주었다.

《선생님, 이 사진을 좀 봐주십시오. 한가지 확인하고싶은게 있어서…》

사진에 허리를 굽힌 용권은 끓어오르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며칠전에 학생들이 장군님의 품에 안겨 찍은 사진이였는데 몹시도 기뻐하시는 장군님의 모습은 물론 끓어대는 아이들 하나하나가 어찌나 생동한지 환호소리, 웃음소리가 막 들리는것 같았다.

《참 훌륭한 사진이군요! 그때가 참 꿈만 같습니다.》

용권은 감탄했으나 군관은 손가락으로 사진의 한 세부를 짚으며 물었다.

《여기 이 아이가 어떤 아입니까? 장군님께서 알아오라고 말씀하셔서 이렇게 급히 달려왔는데… 잘 보십시오.》

용권은 사진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거기에는 첫눈에는 알아보기 힘든 류별난 아이가 하나 어슴푸레하게 보였다. 기뻐 날뛰는 아이들 짬으로 간신히 보이는 그 아이는 장군님의 옷깃을 꼭 잡고 한쪽뺨을 대고있는데 얼굴을 일그러뜨린것이 꼭 웃으며 우는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투명한 기쁨에 싸인 아이들과는 대조적인, 심상치 않은 얼굴이였다. 용권은 가슴이 뭉클하고 코허리가 찡해왔다. 그 아이는 고아였다.

《알아볼수 있습니까, 어떤 학생인지?》

교장이 다가서며 물었다.

《장기도라고… 고아입니다. 아버지는 오래전에 잃고… 어머니는 얼마전에 폭격에 그만 잘못되였습니다. …》

《고아라구요? 아, 그렇구만!…》

군관은 머리를 떨구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용권과 교장은 금시 눈굽이 젖어왔다.

고아! 부모없는것이 장군님께 안긴것이 얼마나 기뻤으면 철부지가 그렇게 울기까지 했으랴.

그런데 놀라운것은 수십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환희에 끓어대는 그 사진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그 얼굴을 첫눈에 알아보시고 그렇게도 걱정하신 장군님의 비범한 통찰력과 어버이사랑이였다.

잠시후 군관은 다음과 같은 사연을 들려주었다.

원래 사진은 인차 완성되였으나 장군님께서 너무나 분망하시여 며칠째나 미루어오다가 어느날 아침식사후에 드리게 되였다.

사진을 받아보신 장군님께서는 무척 기뻐하시며 소리내여 웃으시였다.

《아주 잘되였소. 쌓인 피곤이 다 풀리는구만.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귀엽소! 우리는 이 아이들을 위하여, 아이들의 웃음을 지키기 위하여 싸우고있거던. 난 이따금 생각하오. 량심의 후회없이 아이들의 맑은 눈을 들여다보는것, 그것이 행복이라고!… 그렇지 않소?…》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며 다시금 만면에 미소를 지으시고 사진을 다시금 들여다보시였다. 그러시다가 한 세부를 눈여겨보시더니 금시 안색을 흐리시였다.

《얠 보라구, 이상하지 않소?》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본 군관은 거기에 그런 얼굴모습이 있었다는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였다.

《그러구보니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다른것 같긴 합니다.》

《글쎄 그렇다니까. 이 아이는 속에 눈물이 끓고있소. 이 얼굴을 보라구. 어린것이 벌써 어른의 설음을 배웠소. 무슨 사연이 있음직한데…》

그이께서는 자그마한 창문으로 아침노을이 비낀 먼 하늘가를 바라보시다가 군관더러 곧 학교에 찾아가서 그 아이에 대해서 알아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은 용권과 늙은 교장은 젖은 눈을 슴벅거릴뿐 말을 못했다. 그들은 곧 장기도라는 그 고아를 만나보았다. 열한살인 그 아이는 먼 친척벌이 되는 집에서 학교에 다니고있었다.

용권은 그 고아를 각별히 돌봐주지 못한 자신이 한없이 죄스러웠다.

사연을 전해들은 군관은 서둘러 돌아갔다.

그런데 그렇게 다녀간 그가 그날 저녁에 다시 학교로 찾아왔다. 그는 교장실에 모인 교원들앞에서 군용가방을 열더니 한통의 편지를 내놓았다. 김일성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친필편지였다.

교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편지를 읽었다.

장군님께서는 부모친척을 다 잃고 의지가지할데가 없는 장기도학생을 자신께서 친히 키우고싶다고 하시면서 혁명가유자녀들을 공부시키는 학원에 그를 보내려 한다는 결심을 피력하시였다.

방안에는 숨소리만 높아갔다. 용권은 무한대한 사랑의 바다에 안기는 기분이였다.

군관이 침묵을 깼다.

《제가 장군님께 기도학생이 고아라는 보고를 드렸더니 장군님께서는 〈고아라구? 그것 보라구, 그런 예감이 들더라니까!〉라고 하시며 몹시 가슴아파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창문쪽으로 돌아서시더니 손수건을 눈에 가져가신채 떼지 못하셨습니다!…》

모두가 울었다. 군관은 사이를 두었다가 말을 이었다.

《장군님께서는 방안을 거니시며 〈우리가 인민들모두를 성의껏 보살펴준다고 해도, 그들의 아픔을 다 덜어주었다고 생각하면 안되거던. 언제나 어디에선가 장기도와 같은 설음에 젖은 아이들이 있을수 있다는걸 잊어선 안돼.…〉라고 말씀하시고나서 이 편지를 써주셨습니다!》

북받치는 감격에 달아오른 용권은 방안벽에 모셔진 장군님의 초상화를 우러러 목멘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그러자 모두가 뜨거운 눈물을 쏟으며 장군님 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얼마후 장기도학생은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군관과 함께 자애로운 장군님께서 계시는 평양으로 떠나갔다.…

김용권이 갈린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마쳤을 때 방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젖어있었다. 진수는 두손으로 방바닥을 짚고 머리를 떨군채 움직일줄 몰랐다. 《왜가리》는 자꾸 코를 훌쩍거렸다. 웃방에서 사이문턱에 팔굽을 얹고 아들의 회고담을 듣고있던 《벙어리》로인은 눈물이 샘솟는 눈을 꽉 감고 처져내린 까만 입술을 덜덜 떨고있었다.

이야기는 가지를 쳐서 구석에 앉아있던 준삼이라는 농민이 강원도 속초에 사는 자기의 외조카가 고기잡이하러 바다에 나갔다가 풍랑에 밀려 북에 들어가서 희한한 별천지를 마음껏 구경하고는 딴사람이 되여 돌아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가 하면 덕보는 북에서는 남의 등을 쳐먹는 지주나 자본가가 없어진지는 벌써 옛날이고 모두들 옛날 부자 부러운것 없이 잘사는데다가 백성들이 모두 나라의 주인이라고 했다.

《그게 다 옳은 말이요.》 하고 용권이 말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그처럼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따뜻이 보살펴주시니 이북세상이 좋을수밖에 있겠소.》

용권은 깊은 한숨을 쉬더니 급작스레 무섭게 번쩍이는 눈으로 진수를 쏘아보며 격정에 컥컥 막히는 소리를 질렀다.

《진수, 나는 어찌라니? 철창속에서도… 그분의 해빛을 안고 견디여온 내가… 어떻게 이대로 죽는단 말이냐?…》

이 순간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벙어리》로인이 자리를 차고 일어서며 추상같이 소리쳤다.

《너 이놈! 죽다니, 그것도 말이라고 하느냐?…》

모두가 깜짝 놀라 돌아보았다. 설음의 화신같던 한섭로인이 갑자기 요새우에서 불타는 전장을 바라보는 담대한 로장처럼 서슬이 등등해서 소리쳤다.

《죽다니? 숱한 피붙이들을 잃은 이 애비까지 살자고, 원쑤를 갚자고 벙어리노릇까지 하며 버티여온걸 모르느냐? 저 살인귀놈들을 티끌이 되게 짓밟아놓기 전에는 안된다. 안돼! 기를 쓰고 살아야 한다!》

《옳습니다. 아버지! 내가 어떻게 죽을수 있겠습니까!…》

용권은 자리에 엎드려 조용히 어깨를 들먹거렸다.

모두들 로인을 앉히려고 했으나 듣지를 않았다. 며느리가 낟알꾸레미를 든 마을아낙네를 달고 들어와서 팔에 매달려서야 한섭로인은 자리에 앉았다.

로인은 한동안 씨근거리더니 겨우 진정하며 입을 열었다.

《기막히는 일이지. 이런 모진 세상에서… 어휴, 이걸 어떻게 참는단 말인가. 우리가 사람답게 살자면 다른게 없네. 들고일어나 원쑤를 갚고 민중이 주인이 되는 새세상을 세워야 하네!…》

파란많은 생애우에 울린 로인의 이 말은 그가 스무해나 지켜온 긴 침묵의 공간을 우렁찬 종소리처럼 울리고있었다. 그 소리는 진수를 비롯한 모두의 가슴속에도 새로운 생활의 봄을 부르는 우뢰소리처럼 커다랗게 울리고있었다.…

이날 저녁 이 집에서 나온 진수는 몸과 함께 온 정신을 깨끗이 정화시키고난듯 한 기분이였다. 땅버들이 일렁이는 동뚝우에 홀로 오른 그는 광야에 널린 마을들을 돌아보며 생각했다.

(나는 얼마나 어리석었던가. 인민들은 그렇게도 이북사회를 부러워하고있는데 나 혼자 지난 세기의 영웅들처럼 앞서 달리다가 파멸이나 당하지 않을가 하고 두려워하였지. 그러나 보라. 실은 어떠한가. 나는 선각자도, 영웅도 못된다. 군중이 오히려 나보다 앞서있다.

아! 그 어떤 압제도 인민을 죽일수 없다는걸 왜 몰랐던가!… 동혁이 백번 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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