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10 장


54


어느날 자정이 지난 깊은 밤에 진수는 얼굴에 비쳐지는 전지의 불빛에 잠을 깼는데 그바람으로 누군가의 왁살스러운 손에 살멱을 잡혀 류치장으로부터 달빛이 환한 뜨락으로 끌려나갔다. 거기서 그는 자기처럼 영문도 모르고 끌려나온 10여명의 사람들과 함께 유리창이 없는 호송차의 적재함에 처실렸다.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정신을 미처 차릴새없이 차가 떠나는 바람에 그들은 먹물같은 어둠속에서 일제히 쓰러진채 그대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왜 끌려나왔는지, 누구와 함께 어데로, 무엇때문에 가는지 아무도 몰랐다. 앞쪽에서도 동음이 들리는것으로 보아 다른 차가 같이 가는 모양이였다. 차가 쾌속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철문이 가락을 맞춰 나지막하게 달가닥거렸다.

구석쪽에 웅크리고 앉아 세운 무릎우에 이마를 얹은 진수는 이런 경우엔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놀란 가슴은 절망적인 예감으로 두근거렸다.

교도소나 정보부계통의 다른 구류장으로 옮기는것인가? 아니면 죽이려고 끌어가는것인가? 둘중의 하나일것이라고 판단했다.

오래동안 가볍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들추어대기 시작했다. 포장도로에서 벗어나 어느 시골의 흙길을 달리는 모양이였다. 갑자기 반반한 포장도로에 다시 오른듯 바퀴밑이 짧은 사이를 두고 몇번이나 쟁가당거리더니 잠잠해졌다. 다리를 지나온 모양이였다.

차는 다시 몹시 들추며 돌밭길을 달리는가 하면 소란한 물소리를 내며 내물을 건너갔다. 점점 더 한적한 외진 곳으로 가고있다는 느낌은 차안의 사람들을 무섭게 괴롭혔다.

《재판도 없이 이렇게 죽인단 말인가? 더럽구나. 더럽다! 개새끼들…》

누군가 통탄하며 신음했다. 차는 약간 둔덕진 돌밭으로 오르는것같더니 급히 방향을 꺾으며 멈춰섰다. 곧 밖에서 주고받는 말소리가 들리더니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는 소리가 귀따갑게 들리는것과 함께 철문이 벌컥 열렸다.

검푸른 어둠속에서 색안경을 낀 잠바차림의 사나이가 내리라고 소리쳤다. 모두들 주저하며 차에서 내렸다. 가벼운 현기증을 느끼며 맨 나중에 차에서 내린 진수는 달빛이 굼실거리는 괴괴한 야산을 보는 순간 어쩔길 없는 공포와 함께 여기서 내가 죽는단 말인가 하고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나는 살아야 한다. 놈들의 총탄이 내 가슴을 벌집으로 만들어놓는다고 하더라도 나는 살아야 한다!)

진수는 공포와 분노로 굳어진 동료들곁에 다가서며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급급히 주위를 돌아보았다.

그들이 선 곳은 풀이 무성한 두두룩한 돌밭이였는데 달빛이 하두 밝아서 쑥대를 분간해볼수 있었다. 오른쪽 20여메터앞에는 경사를 지어 흘러내린 야산의 한가닥이 서너길높이의 깎아지른 긴 돌벼랑을 지어 끊어져있었다. 그 앞쪽에는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 굵은 버드나무들속으로 내물이 달빛을 반사하며 소란스레 흐르고 그 너머로는 군데군데 물웅뎅이가 희미하게 번들거리는 진펄인듯 한 황량한 좁은 벌판이 펼쳐져있었다.

진수는 푸른 달빛속에 어슴푸레한 진펄쪽을 바라보며 생각을 이어갔다.

(어떻게 하든지 도망쳐야 한다. 살아서 범죄자들을 치는 싸움에서 죽어야 한다. 숱한 절망의 고개를 넘어 겨우 찾은 신념의 기치를 마음껏 휘날리며 달려보지도 못하고 죽다니… 그럴수는 없다! 문제는 이 친구들과 재빨리 의논하여 결심을 내리는것이다.…)

그런데 그의 생각을 조롱이나 하듯 먼저 도착하여 저켠에 서있는 차옆에서 세 사나이가 자동총을 메고 흥얼흥얼 코노래를 부르며 다가오고 그뒤로 헌 모자에 검은 안경을 낀 자그마한 사나이가 두주먹을 하늘에 찌르고 기지개를 켜면서 따라왔다. 놈은 바지주머니에서 전지를 꺼내여 켜들고 진수일행을 하나하나 점검해보았다. 그러면서도 한마디도 말이 없었다.

이때 또 한대의 차가 도착했는데 거기서는 뜻밖에도 두눈에 수건을 처맨 중키의 사나이가 손을 뒤로 묶이운채 두명의 호송병에게 끌리워내렸는데 몸을 가누지 못할 형편인지, 아니면 발목에 맨 사슬때문인지 땅바닥에 발을 딛자 꼬꾸라졌다. 그러나 다시 일어나더니 호송병에게 조용하면서도 위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수건을 푸시오. 나는 겁쟁이가 아니요.》

호송병은 주저하다가 수건을 풀어주었다. 사나이는 한순간 주위를 돌아보더니 호송병들의 총부리앞에서 바위를 옮겨놓는듯 한 무거운 걸음으로 절꺼덕절꺼덕 사슬소리를 내며 진수일행이 서있는 곳에서 10여메터도 안되는 돌밭까지 와서 앉았다.

진수는 같은 운명의 동료들(그들중에는 신분을 알수 없는 늙은 사람도 있는것 같고 로동자나 대학생으로 짐작되는 젊은이들도 있었다.)과 함께 그 미지의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그에게는 이 미지의 사람이 사형수이고 자기들은 구경군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놈들은 시계만 자꾸 보았다. 또 누가 오기를 기다리는 모양이였다.

십분, 이십분, 괴로운 시간이 흘러갔다. 놈들은 지루해났는지 저켠에 떨어져있는 차곁으로 가더니 이쪽을 살피면서 잡담을 했다.

《어떤 사람일가요?》

젊어보이는 진수의 곁사람이 사형수를 두고 조용히 물었다.

《글쎄요. 훌륭한 사람이겠지요. …》

사형수를 주시하며 진수가 대답했다.

무섭게 여윈 얼굴에 상처인지 검은 얼룩이 보이는 사형수는 두두룩한 큰돌에 잔등을 기대고 앉아 서쪽으로 기울어진 둥근달을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머리맡에 핀 들국화를 얼굴로 천천히 쓸어주었다. 그러다가 문득 진수일행을 이윽토록 유심히 바라보고는 알아들을수 없는 낮은 소리로 혼자말을 했다.

《선생은 누구십니까?》

진수가 속삭이는 소리로 물어보았다.

다른 목소리가 또 속삭이였다.

《우린 갇혀있다가 끌려나온 사람들입니다.…》

사형수는 미동도 없이 그냥 이쪽을 주시하더니 힘없는 갈린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했다.

《알겠소, 알겠소.… 나는 정의와 진리를 따르는 사람이요!…》

겨우 들린, 그러나 자랑하듯 울린 이 대답은 번개처럼 진수의 가슴을 찔렀다. 보통사람도 아닌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는다는 비분이 가슴에 끓어올랐다.

순간 진수에게는 낯선 사형수가 더없이 친근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렇구나, 저 사람은 어디에서나 보이지 않는 손길로 나를 이끌어준 은사였는지도 모른다.

진수는 이 하나의 생각으로 숨을 죽인채 가슴을 그러쥐고 사형수를 주시했다.

자기의 최후를 주시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인가 가슴속에 간직된 말을 하고싶은 사형수는 깊은 한숨을 쉬며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이겼소. 죽으면서도 이기고있소. …무척 살고싶지만 이렇게 죽는것이 정말 영광스럽소!… 이 말을 알겠소? 성실하고 정의롭게 살줄 아는 사람은 언젠가는 이 진실을 깨달을수 있을것이요.…》

진수는 그가 비범한 투사라는것을 직감했다. 그러자 그가 곧 죽는다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에 얼어붙었던 가슴은 더없이 귀중하고 아름다운 사람을 잃는다는 통분과 강렬한 애석의 정에 녹아내리고 금시 눈시울이 뜨거워났다.

이때 총을 멘 호송병 한놈이 이쪽으로 다가와서 동정을 살피더니 손목시계를 보며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놈들은 출출해났는지 술 같은것을 돌려가며 마시고있었다.

진수가 다시 조용히 물었다.

《무슨 부탁이 있으면 말씀하십쇼.》

《고맙소. 부탁은 없소.…》

사형수는 곧바로 진수쪽을 바라보며 무척 정감이 있는 목소리로 속삭이였다.

《다만 괴로운건 남해바다가 초막에서 외로이 늙어가는 어머님께 한번도 아들구실을 못하고 가는것이요.

춘하추동 삼지사처로 뛰여다니다나니 언제 한번 생일상도 차려드리지 못했소. 아들대신 손자라도 안겨드렸으면 좋았으련만 나라는건 장가도 못 갔으니…》

사형수는 다난했던 생애를 회고하는듯 깊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진수는 그를 위해 울어주고싶었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누리지도 못하며 오직 겨레들을 위해 숨차게 살아온 열정의 인간!

그는 깊은 생각에 젖어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머닌 이 아들을 기다려 이밤에도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잠드시지 못할거요.… 내가 바라는건 그저 나의 죽음이 제발 비밀로 남아서 어머님이 나를 기다리시느라고 오래오래 살아라도 계셨으면!…》

사형수의 얼굴에 번들거리는것이 흘러내렸다. 그는 울고있었다. 진수도, 동료들도 소리없이 눈물을 삼켰다.

사형수는 검푸른 하늘을 쳐다보며 말을 계속했다.

《나는 어머니가 그리울수록 외세와 매국노들을 반대해서 그리고 나라의 통일을 이룩하고 어머니와 만나 행복하게 살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 싸웠소.… 그러나 내가 한 일이 너무 적었소. 이것이 괴롭고 분하오!… 일흔아홉살에 혈혈단신인 어머니를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오. 그렇지만 내가 걸어온 투쟁의 길은 옳았소!…》

진수는 격정이 북받쳐서 견딜수 없었다. 어쩌면 사악한 무리가 날뛰는 이 병든 세상에서 이렇게도 고결한 인간이 자라날수 있었단 말인가!

그는 사형수의 발밑에 몸을 던지고 자기의 맹세를 웨치고싶었다. 누군가 울음섞인 신음소리를 크게 내며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자 두놈의 호송병이 뛰여와서 그를 구두발로 마구 차고 짓밟았다.

이때 또 한대의 자동차가 도착하더니 중키에 몸이 옆으로 퍼진 사나이가 뛰여내렸다. 중앙정보부의 국장이였다.

《다른 급한 일이 있어서 좀 늦어졌다. 그놈은 어데 있어?》

놈이 상관다운 태도로 으르렁거리자 부하들이 그를 데리고 이쪽으로 왔다. 사형수앞에 이르자 그자는 손뒤짐을 지고 사형수를 내려다보았다. 사형수가 쓰겁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유쾌한 밤이요. 그럼 시작해볼가요?》

국장은 말없이 부하들에게 행동을 개시하라는 암시로 한손을 들어보였다.

세명의 교형리들이 다가오고 사형수가 사슬소리를 내며 일어섰다. 한놈이 총구로 벼랑밑을 가리켜보였다.

사형수는 한없는 사연이 어린, 린광이 뿜는듯 한 눈길로 진수일행을 한순간 지켜보더니 사슬소리를 울리며 벼랑쪽으로 무겁게 걸어갔다. 그의 생명은 이제 벼랑까지의 20메터 남짓한 달구지길우에 놓여있었다. 그 피할 길 없는 종점을 향하여 사슬을 끌며 천천히 걸어가던 그는 길녘에 몇송이의 코스모스가 핀것을 보더니 머리를 숙여 얼굴로 그 꽃을 애무했다. 그리고는 깊은 한숨을 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넓은 물웅뎅이가 나지자 발을 적시지 않으려고 에돌아갔다. 그렇게 몇걸음 더 가던 그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북녘하늘에 반짝이는 북두칠성을 하염없이 바라보더니 그쪽으로 깊이 허리굽혀 절을 하였다.

손을 옆구리에 짚고 사형수의 의미심장한 행동을 노려보던 국장이 신경질적으로 한쪽팔을 탁 휘둘렀다. 사형수의 행동이 너무도 침착하고 지어는 신념을 자랑하는듯 엄숙하고 도고하기까지 한것이 화가 나면서도 놀라왔던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엄습하는 죽음앞에서까지 저렇게도 일상적인 안정속에서 자기의 열정을 표현할수 있단 말인가?

국장만이 아니라 졸개들도 전률하였다. 미국과 박정희를 반대하는 수많은 민주인사들을 무자비하게 처형한 《공로》로 최근에 국장으로 승급한 그자에게는 이 사형수가 전혀 리해할수 없는 거인이였다.

국장은 으드득 이를 갈더니 씩 돌아서서 숨을 죽이고 사형수를 바라보는 진수일행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진수일행은 사회계의 압력에 못이겨 그가 며칠안으로 석방하려는 수감자들중의 일부였다. 《세뇌작전》의 능수로 자처하는 그자는 저항의식은 있으나 아직은 특별한 문제거리가 있어보이지 않는 그들에게 이 특수한 사형을 현지에서 목격시킴으로써 그들의 의식을 《초를 친 문어탕》처럼 만들어 석방할 작정이였다.

《똑똑히 보고 정신을 차리라.》

국장이 손뒤짐을 지고 오락가락하면서 위협적으로 뇌까렸다.

《국책에 맞서서 란동을 부리는자의 운명이란 어떤것인가? 무서운 빨갱이의 리용물로 되여 죄인으로 망하는것, 죽는것이다, 죽는거! 사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다. 일체의 저항의식을 씻어버리고 선량한 시민으로 사는거다. 알겠는가?…》

그러나 온몸이 눈이 되여 사형수의 최후의 순간을 지켜보는 진수일행에게 놈의 지껄임이 뇌리에 남을리 없었다.

진수는 자기자신은 허깨비이고 사형수가 다름아닌 자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다, 그런것도 아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통곡하는 심장을 짓누르고 자신을 철저히 자제해야 할 래일의 무자비한 복수자였다.

사형수는 꺼밋꺼밋한 벼랑을 등지고 섰다. 짙은 그늘에 가리워져서 륜곽만이 희미하게 보이는 그는 시내가에 렬지은 버드나무들너머 어덴가 먼곳을 불타는 눈길로 바라보고있었다. 진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최후의 순간, 시간도 흐름을 멈춘듯 했다.

진수는 혀를 깨물며 몸부림쳤다.

겨레여, 너는 어데 있느냐. 설음과 고통속에서 네가 키운 아들이, 너의 불행을 아파하여 마흔에 백발이 되고 너를 사랑하여 불덩어리가 되여 솟아오른 영웅이 야만들에게 죽어가는데 어찌하여 보고만 있느냐? 네가 남몰래 키워온 사람이며 미래를 더듬는 너의 눈초리인 사람이, 정녕 흔하게는 키울수 없는 너의 기수가 저렇게 죽음의 낭끝에 서있는데 무엇을 하느냐? 너의 팔, 너의 품, 너의 통곡과 분노는 두었다가 무엇에 쓰려느냐?…

국장이 사형수에게 물었다.

《마감으로, 마감으로 묻는다. 이제라도 뉘우칠 생각만 보여주면 이 사형을 다른 형벌로 바꿔주겠다.》

사형수가 대답했다.

《우리가 네놈들을 총살할 때는 이런 시간랑비를 하지 않는다. 들으라. 나는 원한많은 겨레들의 이름으로, 분렬의 피눈물이 흐르는 우리 강토의 이름으로 네놈들과 너의 모든 상전들에게 사형을 선언한다!…》

대기를 산산이 찢어발기며 요란한 총소리가 울렸다. 검은 벼랑에 무수한 불이 튀고 돌쪼각들이 휘파람을 불며 사방에 날리는 속에서 일종의 알아들을 길 없는 웨침소리가 터져올랐다.

진수일행은 비명을 지르며 꼬꾸라졌다.

정신없이 몇걸음 달려나가던 진수는 한놈의 주먹에 맞아 쓰러졌다. 그가 다시 머리를 들었을 때엔 주위가 철판으로 짓누르는듯 한 침묵이 흐르고 영웅은 이미 희생된 뒤였다.

순간, 진수는 주위가 번개불에 비친듯 색조를 잃고 창백해진채 온통 숨을 죽이고 얼어붙은것을 보았다. 버드나무들은 내물에 어푸러져 얼어붙고 황량한 벌은 쏟아질듯 무서운 경사를 지어 새까매진 하늘에 걸려있었다.

모든것이 혼란되고 얼어붙어있었으나 국장을 비롯한 살인귀들은 사자를 만난 이리처럼 공포에 질려 어슬비슬 뒤걸음치고있었다. 한놈은 돌에 걸려 엉덩방아를 찧고는 엉겁결에 비명을 지르며 한켠으로 달아뺐다. 영웅-정의와 진리의 투사는 희생되면서도 살인귀들을 경멸적으로 위압한 승리자로 솟아오른것이였다.

진수는 슬프다는 생각조차 못했다.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뚫린듯한 아픔과 함께 마비상태에 빠졌던 그는 영웅의 형언 못할 정신력에 압도되는것과 함께 그를 앗아간 모든 검은 무리를 천백배로 징벌하고픈 불길같은 분노의 열정에 달아올랐다.

그날 밤, 류치장으로 돌아온 진수는 앉아서 새벽까지 소리없이 울었다. 슬픔을 넘어선 격동의 눈물이였다. 최후의 시각에도 자기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놈들에게 사형을 선언하던 그 투사의 비장한 모습은 그의 온넋을 뒤흔들며 죽음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삶에 대하여 웨치고있었다.

일상적인 량심의 행동으로부터 진보적인 사상에 이르기까지 온갖 고귀한것이 탄압을 당하는 이 사회에서 정의의 기치를 들고일어나는 사람은 누구나 수난을 각오해야 할것이다. 투쟁에는 고통과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투사에게는 죽음이란 있을수 없다. 몸이 부서지고 육체적인 생명이 끊어져도 그것은 종말이나 죽음일수 없다. 그의 참생명, 가장 고귀한 삶은 그가 뿌린 투쟁의 씨앗속에, 벗들과 겨레의 투쟁속에 살아있는것이다. 진정 통일애국의 길에서는 죽음이란 없으며 참다운 투사는 영생하는것이다.

진수에게는 이전에는 리성으로만 알고있던 이 진리가 폭풍같이 휘몰아치는 거센 힘과 열정으로 안겨왔다. 정의를 파악하고 옹호하는 자세와 그 정의를 위해서는 목숨도 주저없이 바칠수 있는 마음의 자세사이에는 짧지 않은 거리가 놓여있는것이다. 희생된 투사의 모습을 그리며 자기 정신의 갈피갈피에서 온갖 나약성의 자세까지 씻어버린 진수는 이 짧지 않은 거리를 급속으로 정복한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높이에로의 인생관의 비약이였다.

진수의 피발이 선 눈에서는 많은 눈물이 그냥 흘러내렸으나 얼굴표정은 고요했다.

그러나 그의 취조관은 진수가 얼이 나가고 절망에 시들어버린것이라고 판단했다. 진수의 상태를 관찰하고 자기 방으로 돌아간 취조관은 그의 조사카드를 번져보면서 동료에게 말했다.

《글 써먹고 살아가는 놈들이란 그저 그렇지. 몇번 불질을 하면 풀썩하거던. 국장은 역시 골을 쓴단 말이야.》


며칠후 진수는 취조관으로부터 정보부에서 보고 당한 사실을 한마디라도 입밖에 낼 때는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것이라는 경고를 거듭 받은 후 교도소의 미결감으로 옮겨졌다. 그는 각종 투쟁사건으로 잡혀들어온 대학생들을 비롯한 여러 계층의 사람들과 잡범들로 초만원을 이룬 그곳 류치장에서 며칠 지내는 사이에 바깥세상의 소식도 얻어들을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충격을 받은것은 박정희역도가 온 겨레의 규탄과 치렬한 저항을 무릅쓰고 강도의 본색대로 심야의 복마전 구석방에서 한줌도 못되는 제놈들끼리 끝내 단 몇초사이에 《3선개헌》모략을 날치기로 감행하고야만 사실이였다. 세계의 그 어느 악질적인 통치자도 그렇게 몰렴치하고 추악하게 행동할수는 없었다. 오직 박정희와 그의 상전들만이 그렇게 발악할수 있었다. 범죄는 놈들이 빚어낸 사실이며 그들의 무덤인것이다. 놈들은 흉계를 감행하였으나 더한층 높이 쌓은 죄업은 놈들이 떨어져죽을 락차를 높였을뿐이고 그놈들을 내려찧을 징벌의 바위들을 더 크게 만들었을뿐이다. 죄악은 그자체의 무게로 그것을 빚어낸 놈을 내려찧기마련인것이다.

저항은 계속되고 격화될것이다. 머리를 들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체험한 사람이면, 자주적인 삶이 피타게 그리운 사람이면 그 누가 투쟁만이 살길임을 깨닫지 못하랴. 투쟁은 우여곡절을 겪고 흐르는 피와 눈물이 발등을 적신다 하더라도 나날이 압축공기처럼 다져지는 분노, 땅속을 누비는 용암처럼 돌파구를 찾는 민족의 그 분노는 언젠가는 결정적으로 폭발하여 땅우의 모든 인간쓰레기들을 쓸어버리고야말것이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것을 다하여 그날을 앞당기는것, 그것은 진수의 의무이기에 앞서 사명이였다.


날씨가 맑은 10월초의 어느날 오후였다. 교도소의 미결감앞에서는 이날도 출감자들을 마중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수감자들의 가족, 친척들, 학생들과 여러 계층의 시민들, 시골에서 온 행색이 표나는 사나이들과 녀인들… 각양각색이였다.

이틀전에 시골에서 온 시어머니 리씨와 어머니를 거느린 문희는 벌써 한시간전부터 비좁게 모여선 사람들속에 끼여 큰 철문에 난 작은 철문으로 마중나온 사람들의 떠들썩한 마중을 받으며 수감자들이 오륙명씩 풀려나올 때마다 그들속에 행여나 남편의 얼굴이 보이지 않나 하여 안타까이 바장이고있었다.

그들로부터 얼마간 떨어진 뒤켠에는 시골에서 마누라와 함께 온 정재만이 진수를 맞이하려고 온 기자들과 학자들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서있었다. 그들속에는 강동혁부부와 박명찬 그리고 김용기를 비롯한 몇몇 로동자들도 섞여있었다. 정재만은 거듭 모진 고통을 겪는 진수의 일로 가슴이 쓰리면서도 이렇게 숱한 사람들이 제 아들을 귀중히 여기고 념려해주는것이 못내 자랑스러웠다.

《못된놈들 하고 싸우는거야 백번 잘하는 일이지요. 헌데 보시오. 이런 감옥이 떡 버티고있은즉 사람의 몸이 어떻게 견디겠소.》

아까부터 아들을 두고 간간이 벌어지는 이야기에 몇마디씩 끼우던 재만이 이렇게 말하자 용기의 친구인 허우대가 크고 강파르게 생긴, 얼굴이 검실검실한 선반공이 참견했다.

《마음만 먹으면야 감옥 같은거야 별것인가요? 오히려 이런델 거쳐 나오면 속이 더 굵어질걸요. 쇠도 불에 달궈야 강해지는거 아닙니까.》

《그 말이 옳소.》

중절모를 깊이 눌러쓴 박명찬이 색안경밑에서 부드러이 미소짓는 동혁의 표정을 곁눈질로 살피고나서 한마디 했다.

《총칼과 감옥을 요란스레 차리는 세상은 절대로 오래 못 가는 법입니다. 이전에도 보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포악스레 날뛰던 왜놈들도 때가 되니 망하지 않습디까. 머리칼까지 독을 뿜던 그놈들이 거지떼로 변하여 밭수수를 까먹으면서 달아나는걸 못 봤어요? 세상이란 바뀌는거지요.》

이미 문희에게서 박명찬을 진수의 스승으로 소개받은 재만은 과연 학자가 다르구나 하고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더니 후렁후렁한 두루마기의 안주머니에서 담배갑을 꺼내여 그에게 공손히 한대 권했다. 교도소의 문을 지켜보고있던 주한숙이 박명찬에게 불까지 켜주는 재만을 미소로 바라보며 말했다.

《로인님은 정말 좋은 아드님을 두셨어요. 진수씨는 정말 모두의 기수예요. 기수, 아시겠어요? 투쟁의 기발을 들고 민중을 부르며 앞장에서 달려나가고있단 말예요. 정말 우리모두의 자랑이예요!》

흡족한 재만은 모두의 감탄의 시선앞에 몸가짐을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몰라했다. 저도 몰래 벙싯 웃고는 점직해서 커다란 손으로 코밑을 문지르며 잔기침을 했다.

이때 십여명의 사람들이 그들에게로 반달음을 쳐와서 명찬과 동혁부부에게 눈인사를 했다. 자유동지회의 일부 성원들이였다. 옥림이 눈을 빛내며 그들에게 정재만을 소개했다.

《인사들 하세요. 진수씨의 아버님이예요.》

그 말에 모두들 앞을 다투어 인사를 했다.

《아, 아버님이시군요. 인사 늦었습니다.》

《아버님, 축하합니다. 진수는 이겼습니다!… 우리모두가 이겼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훌륭한 아들을 두셨습니까. 한턱 크게 내셔야겠어요!》

모두가 진심으로 격려해주는 바람에 재만은 얼굴이 뜨거워나서 머리를 들지 못했다. 정의와 진리의 길을 걷고있는 아들을 받들어주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살줄 모른다고 나무람만 한것은 얼마나 큰 잘못이였던가! 숱한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굴함없이 싸우는 아들이야말로 참답게, 빛나게 사는것이 아니겠는가!…

인수가 그렇게 참혹하게 죽은이래 세상에 대한 원한을 품고 괴롭게 살아오던 재만은 이제야 참인생의 의미를 깊이 깨달은듯싶었다.

동혁부부와 박명찬은 진수가 풀려나오게 된것이 더없이 장하고 기쁠수록 한없는 감동으로 류인태교수를 생각했다. 진수의 석방은 그가 놈들과의 결사전에서 추호도 굴복하지 않았다는것을 말해주고있다.

이런 투사들과 함께 있다는 자부심으로 그들의 가슴은 뻐근했다.

한편 시어머니, 친어머니와 함께 철문옆에 서있는 문희는 한순간도 곁눈을 팔지 않고 출감자들이 나오는것을 눈이 빠지게 지켜보고있었다. 출감자들은 문을 지켜선 무장한 교도관앞으로 하나둘씩 힘없이 걸어나오고있었다. 매 사람이 나올 때마다 군중속에서는 목메여 이름을 부르는 소리며 울음섞인 함성이 터져오르군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진수는 나올줄 몰랐다. 볼이 훌쭉 꺼진 창백한 남자가 한쪽다리를 힘겹게 끌며 나오자 교도관은 철문을 닫을셈인지 안쪽으로 들어갔다.

《에구, 어쩌겠니. 우리 진수는 못 나오는게 아니냐?》

리씨가 울상이 되여 통탄하자 윤씨도 절망하여 사돈의 어깨에 머리를 묻었다.

문희는 울고싶었다. 교도관은 철문을 천천히 닫고있었다. 쇠가 부딪치는 소리가 귀따갑게 울렸다.

남편은 정녕 못 나오는가? 자기의 고뇌와 투쟁으로 불행도 배워주고 행복도 배워준, 한없이 소중한 그 사람은 이 지옥의 형장을 거쳐 어덴가 무서운 무인지경의 어둠속으로 끌려갔단 말인가? 아니다. 그를 잃을수는 없다! 교도소안으로 뚫고들어가 모든 감방을 샅샅이 뒤져서라도 그를 기어이 찾아내여 안아내오고싶은 문희는 닫기려는 철문을 향해 달려나갔다.

이때 반쯤 닫긴 철문을 다시 열어제끼며 한쪽볼에 상처가 보이는 중키의 창백한 남자가 서글픈 미소를 짓고 느린 걸음으로 나왔다. 진수였다.

문희는 남편을 알아보는것과 함께 달려나가던 그 힘으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여보!…》

그는 한마디를 겨우 입밖에 냈을뿐 목이 잠겨 말을 못했다. 여기에 리씨와 윤씨가 달려나가 진수를 부여안았고 갑자기 나타난 김성우까지 어깨에 멘 사진기로 그의 모습을 몇번 찍고는 역시 그를 포옹했다.

진수는 한손을 어머니에게 맡긴채 다른 손으로 장모의 어깨를 안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장모님, 죄송합니다! 일이 그만 이렇게 되는 바람에 역에도 마중을 못 나가고…》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닦으며 머리를 드는 윤씨는 사위가 아니라 새로운 자기 인생의 화려한 아침을 보는듯 마음이 자글거려서 눈조차 제대로 뜨지를 못했다.

진수는 자기를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쪽으로 허둥거리며 다가갔다. 숱한 사람들과 친구들의 앞장에서 아버지가 입술을 떨며 마주 온다.

《장하다! 네가 옳다!… 장하다!…》

재만은 아들의 손을 더듬으며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부자의 상봉을 지켜보던 강동혁일행은 진수를 열띤 미소로 조용히 맞이했다. 진수의 승리는 정의와 진리의 승리였다!

동혁의 제의로 박명찬이 젖어오는 눈을 슴벅거리며 먼저 진수의 손을 쥐였다. 그우에 동혁이 손을 얹자 모두들 일제히 손을 덧쌓았다.

덧놓이는 손과 손들, 손의 탑을 보는 진수는 그리운 삶에로 돌아온것을 실감하며 소리없이 웃었다. 그러나 두볼로는 뜨거운것이 흘러내렸다. 문희와 리씨, 윤씨와 재만을 비롯하여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도 맑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고통이란 넘을수 있는것이였다. 보람찬 궤도를 찾은 삶보다 더 아름답고 강한것은 세상에 없었다.


주체66(197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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