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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39회)


제 4 장


7


린색한 마가을해가 뉘엿뉘엿 저물고있는무렵.

련대가 전개한 산골짜기에 두 사나이가 도적고양이마냥 살금살금 기여들었다. 그중 멀쑥하게 생긴자가 락조에 반사되지 않도록 쌍안경을 감싸쥐고 숙영지를 살피기 시작하였다.

그옆에 엎드린 저격수는 익숙한 솜씨로 조준경을 보총에 설치하였다.

쌍안경을 들여다보던 사나이의 몸이 흡사 적수를 발견한 독사마냥 꼿꼿해졌다.

배수가 확대된 렌즈안에 들어온 인민군련대장!

《저기 뒤짐을 지고있는자가 목표다.》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댄 저격수가 물었다.

《중령님, 중성 세알을 단 장교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이는 허정효의 눈에서 살기가 뿜어나왔다.

표무강, 넌 오늘 끝장이다!

지금까지 허정효는 그를 《자유세계》로 돌려세우기 위해 무진 애를 써왔었다. 특히 자신심을 가진것은 표무강이 지휘하는 련대장병들의 과반수가 몇해동안 《자유세계》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해방후 남조선에서는 미군의 주둔과 더불어 《자유세계》에 대한 환상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났고 북을 매도하는 적대의식이 잔뜩 부풀어올랐다. 인간의 의식은 그가 속한 사회제도의 교육과 환경에 따라 형성되고 발전한다. 뿐만아니라 오래동안 굳어진 의식은 인차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들의 머리속에 인박힌 《자유세계》에 대한 환상은 맹물에 헹군 빨래처럼 잘 빠지지 않을것이다.

그들의 고향이 남쪽이라는 사실도 중요시하였다.

그들은 젊은 혈기에 표무강을 따라 입북하였지만 가족들이 있는 고향에 대한 향수는 강렬할것이다. 그러므로 작전을 인내성있게 벌리면 그들속에서 동요가 일어나고 귀순자들이 속출하게 된다. 그것은 기필코 도미노현상을 일으킬것이고 표무강도 자기의 실패를 인정하고 주저앉을수밖에 없을것이다.

솜씨있는 료리사마냥 허정효는 《료리감》을 차근차근 준비하였다.

먼저 표무강련대가 북상하는 길목마다에 허위로 날조된 삐라들을 락화처럼 뿌렸고 공화국이 멸망하였다고 거짓방송을 불어댔다.

표무강련대는 천연바위마냥 끄떡하지 않았다.

이러다가 실패하지 않을가 하고 초조해하는데 귀가 번쩍 뜨이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한 인민군병사가 앓고있는 어미를 만나려고 집에 왔다는것이다.

쾌재를 올린 허정효는 그 병사를 체포하지 말고 은밀히 목소리를 도청하게 하였다.

밤중에 집으로 들어가는 홍일남의 뒤를 밟은 첩자는 덜덜 떨면서 그의 목소리를 도청하는데 성공하였다. 만여명이 넘는 사병들중에서 그와 목소리가 비슷한 사병을 찾는것은 좋지 못한 쌀에서 돌을 고르는것보다 더 쉬운 일이였다.

치밀하게 짜고든 공작은 효력을 발생하였다.

바야흐로 드라마가 절정을 향해 흘러가고있을 때 갑자기 무대막이 내려졌다. 총살당할줄 알았던 홍일남이 용서를 받고 대오에 들어섰던것이다.

첩자의 보고에 의하면 괜찮게 연출되고있던 그 드라마를 파탄시킨 장본인은 다름아닌 표무강이라는것이다.

분통이 터졌지만 락심하지 않고 무대막을 다시 올렸다.

다음날 그의 지시를 적은 련락쪽지가 첩자에게 전해졌고 그자는 몰래 산에 올라 신호탄을 쏘고는 뛰여내려와 대렬속에 끼웠다. 결과 전선사령부 대표는 현장을 수색하고 의심되는 전사들을 불러들여 료해하였으며 나중에 고남수라는 사민을 혐의자로 지목하였다. 그것때문에 표무강과 전선사령부 대표는 또다시 의견충돌을 일으켰다.

붙는 불에는 부채질을 해야 불길이 더 커지는 법이다.

허정효는 위조한 최덕근의 《비밀편지》를 련대지휘부근방에 떨구게 하였다.

그래, 자기네 련대장이 적사단장과 암암리에 련계를 갖고있다는것을 안다면 《공산군》들의 마음이 어떻겠는가?

벌써부터 눈앞에 갈팡질팡하다가 무리로 산을 내리는 《공산군》들의 모습이 얼른거렸다.

허정효는 자기의 요구라면 언제든지 침대에 눕군 하는 녀방송원에게 스코치위스키를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그 녀자가 부어주는 위스키를 마실수 없었다.

두번째 드라마 역시 한번 켜졌다가 꺼진 성냥불마냥 맥없이 막을 내렸던것이다. 그것뿐이라면 모르겠다. 표무강은 밤새 100여리를 내달려 최덕근사단을 답새겼고 사단장자신은 삼십륙계줄행랑을 놓는 신세가 되고만것이다.

《악어》가 나타난것은 바로 그때였다.

《흠, 대단히 좋구만!》

《대단히》라는 말에 정신을 펄쩍 차린 허정효는 앞에 서있는 하불을 쳐다보았다.

순간 의식적으로 그랬는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그랬는지 《악어》가 빨간 혀로 입술을 핥는것을 보았는데 잔등이 오싹해났다. 마치도 악어의 아가리속으로 자기의 몸이 통채로 빨려들어가는것 같은 착각이 일어났다.

아, 이렇게 끝장난단 말인가? 아니다!

꽉 감았던 두눈을 치뜬 허정효는 갈린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각하, 하루만 시간을 주십시오.》

하불의 노란 눈동자가 번쩍이였다.

로회한 그는 번견이 최후발악으로 사냥감을 물어뜯으려 한다는것을 알아차린것이다.

향긋한 분내가 배여있는 침대를 흥미있게 내려다보던 하불은 고개를 주억거리고 돌아섰다.

상전의 그 행동이 무엇을 암시하는것인가를 알아차린 허정효는 즉시 저격수를 데리고 허둥지둥 표무강련대를 쫓아왔다. …

쌍안경을 내리운 그는 싸늘한 어조로 뇌까렸다.

《단방에 요정내.》

날아가는 참새대가리도 쏘아맞힌다는 저격수는 히죽 웃었다.

《중령님, 걱정마십시오.》

조준경안에 적수를 잡아넣은 저격수가 방아쇠를 당기려는 때였다.

《이놈들아!》

난데없이 터진 고함소리에 허정효는 뒤를 홱 돌아보았다.

등에 배낭을 멘 웬 사나이가 팔을 휘두르며 달려오고있었다.

급한 나머지 손에 들고있던 권총으로 한방 갈겼다.

《억!》

손으로 어깨를 부여잡은 사나이는 비틀거리다가 산비탈면으로 디굴디굴 굴러갔다.

아차! 하는 생각이 뇌리를 때린것은 그후였다.

다시 몸을 돌린 허정효는 후닥닥 뛰쳐일어나는 저격수를 보았다.

《뭐야?》

《추, 추격입니다.》

고개를 뽑아들고보니 정말 《공산군》들이 이쪽으로 밀려오고있었다.

분하구나!

《중령님, 빨리 뜁시다!》

겁에 질린 저격수는 상관의 승낙도 받지 않고 허둥지둥 내뛰였다.

땅, 따당!

앞쪽에서 정신없이 도망치던 저격수가 풀썩 주저앉았다.

피가 흐르는 다리를 부여잡은 그는 징징 울면서 도움을 청하였다.

《중령님, 제발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예?》

허정효는 인정많은 나그네처럼 푸수한 어조로 말을 받았다.

《그야 물론이지.》

그의 손에 쥐여있던 권총이 불을 뿜었다.

발치에 나딩구는 저격수를 바라보며 허정효는 이사이로 씨벌이였다.

《표무강, 오늘은 이렇게 물러가지만 난 일생 너를 괴롭힐테다!》

얼마후 사건현장에 도달한 전사들은 죽어가는 저격수를 발견하였다.

숨이 멎기 전에 그자는 허정효가 련대장을 암살하기 위해 이곳에 기여들었으며 어떤 사민이 나타나 소리를 지르며 달려드는통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고 토설하였다.

그 보고를 받은 표무강은 주먹을 불끈 틀어쥐였다.

허정효!

그는 여우와 독사를 합친것처럼 교활하고 악독한 원쑤였다.

허정효는 해방전 왜놈군대에서 복무하며 무고한 애국자들을 학살한 공로로 왜왕의 표창까지 받은 악질친일분자였으며 미군이 남조선을 강점한 후 카멜레온처럼 잽싸게 친미파로 둔갑하고 자기를 미국의 《사자》로 길들이기 위해 음으로양으로 책동하였다. 자기가 대대를 이끌고 공화국으로 의거하자 그자는 호시탐탐 복수의 칼을 벼리여왔으며 련대를 《귀순》시키기 위해 혈안이 되여 날뛰였다. 그러다가 그 암계가 실패하게 되자 이리처럼 달려들었던것이다.

허정효가 달아난 후 한가지 사실이 밝혀졌는데 울분을 토하며 입대를 탄원하였던 최가가 감쪽같이 사라진것이다.

련대를 돌아보는 길에 표무강은 련대군의소에 들렸다.

《고남수라는 사람은 어떻게 됐소?》

련대군의소장은 그의 어깨에 박힌 총탄을 뽑았는데 정신을 차리자마자 배낭부터 찾았다고, 그것을 안겨주자 또다시 의식을 잃었다고 보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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