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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44회)


제 5 장


2


묵직한 창가림이 드리워진 창문, 그앞에 놓인 량수책상, 구석에 웅크리고있는 든든한 철궤…

번쩍거리는 가구는 없었지만 그 단순하고 겉치레없는 꾸밈새로 하여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은근히 위압감을 주는 방이였다.

방안에 들어선 표무강은 책상을 마주하고 앉은 사람을 보다가 놀랐다.

문건철을 차근차근 번지고있는 그는 로성익이였던것이다.

그때 그는 전선을 넘자 전선사령부로 올라갔는데 풍문에는 민족보위성으로 소환되였다고 하였다. 그랬던 그가 전쟁이 끝난지 두해가 지난 오늘 인민군검찰일군의 신분으로 나타난것이다.

세상은 넓고도 좁다더니 하필 이런 곳에서 그를 만날줄이야.

지난날의 감정이 어떠하였든지 로성익은 한때 자기와 운명을 같이한 전우였다.

《안녕하십니까?》

문건철우에서 머리를 쳐든 로성익은 반갑게 거수경례하는 상대방을 알아보았으나 대충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짓으로 방가운데 놓여있는 나무걸상을 가리켰다.

《거기 앉소.》

표무강은 다시금 놀라지 않을수 없었으니 그가 권한 걸상은 피의자들을 위한 걸상이였던것이다.

상봉의 기쁨으로 들끓던 가슴은 취수구를 열어놓은 저수지마냥 서서히 가라앉았다.

다음 말을 어떻게 떼야 할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로성익은 서늘한 눈길을 문건철에 박았다.

《?!》

비로소 자신이 검찰기관의 호출을 받은 몸이라는것을 깨달은 표무강은 나무걸상에 천천히 앉았다.

머리속에 그럼 로성익을 어떻게 불러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몇해가 지난 오늘도 변함없는 랭담한 얼굴과 피의자들의 엉치에 쓸려 반들거리는 나무걸상은 그가 전쟁시기 련대에 내려와있던 전선사령부 대표가 아니며 따라서 자기들의 관계도 그전과 퍽 달라졌다는 사실을 강조해주고있었다.

이윽고 문건철에서 눈길을 뗀 로성익은 이제는 사업에 착수할 때가 되였다는듯 틀스러운 자세를 취하였다.

《확인할 문제가 있어 찾았소.》

《…》

《지난주 일요일 오후 어디에 갔댔소?》

그런 질문이 나오리라고 생각지 못하였던 표무강은 인차 대답을 못하고있다가 한참후에야 입을 열었다.

《검사동지!》

그 부름소리는 로성익의 메마른 목소리에 동강났다.

《난 상급검사요.》

위엄있게 말하는 그의 얼굴에는 자기 직무에 대한 자부심이 어려있었다.

《미안합니다. 상급검사동지!》

로성익의 얄팍한 입술에 희미한 웃음이 어렸다.

《그날 있은 일을 말해보오.》

그렇다 하고 속으로 뇌인 표무강은 곰곰히 돌이켜보았다.

그날 그는 기숙사에서 전쟁전에 다른 대대를 이끌고 의거하였고 전쟁시기 사단장으로 싸웠으며 전후 고급군사학교에도 같이 입학한 강성무와 오전내껏 공부를 같이하였다.

오후에는 시장에 나가 잉크를 사가지고 돌아와서 또 밤늦게까지 공부했었다.

그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로성익은 따지듯 물었다.

《시장에서 다른 일은 없었소?》

《없었습니다.》

《잘 생각해보오. 만난 사람이 있겠는데…》

《없습니다.》

뭔가 알아내려는듯 로성익은 집요하게 뜯어보았다.

《정말이요?》

《그렇습니다.》

그는 여유있는 동작으로 상체를 쏘파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였다.

《난 동물 솔직한 사람으로 알고있었는데.》

그가 무엇을 념두에 두고 말하는지 표무강은 알수 없었다.

언제나 론리가 정연하고 공과 사를 명백히 가르던 사람이 오늘은 무엇때문에 빙빙 에도는가. 차라리 직방 말할게지.

속이 답답해서 장령복단추를 열어제꼈으나 별로 시원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로성익의 목단추처럼 꼭꼭 닫겨있는 창문들을 활짝 열어제끼고싶었다.

그러는데 로성익이 문건철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냈다.

《이자가 낯익지 않소?》

그가 내민 사진을 들여다보던 표무강의 두눈에서 불꽃이 벙긋 튕겨났다.

납작한 캡을 쓰고 가죽잠바를 입은 사나이는 분명 허정효였던것이다.

이자의 사진이 어떻게 상급검사의 손에 들어갔는가?

《말해보오. 허정효와 만나 무슨 말을 했는지?》

자, 이젠 솔직히 말할 때가 된것 같은데 하고 재촉하는 눈길과 마주치자 표무강은 기가 막혔다.

내가 언제 그자를 만났고 무슨 말을 했단 말인가?

사진을 넘겨받은 로성익은 더 론의할 여지가 없다는듯 단호한 어조로 내뱉았다.

《허정효는 지금 우리한테 잡혀있는데 심문과정에 그날 시장에서 동물 만났다고 했단 말이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표무강은 격해서 부르짖었다.

《허튼소립니다. 난 그자를 만난적 없습니다!》

문건철에 사진을 도로 끼워넣은 로성익은 엄한 기색을 지었다.

《솔직하게 털어놓는게 좋을거요.》

《도대체 뭘 털어놓으라는겁니까?》

미간을 찡그린 로성익은 뻘건 지장이 찍혀있는 종이장을 꺼내보였다.

《이게 뭔지 아오? 고용간첩 허정효의 진술서요.》

표무강은 그게 나와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하는 눈길로 그의 손에서 펄럭거리는 종이장을 보았다.

《동문 지금 내가 허정효의 진술서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내 말이 옳소?》

상대방의 마음속을 꿰뚫어보는 로성익의 비상한 통찰력은 여전하였다.

《내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동문 허정효와 륙사동창생이지?》

표무강은 속이 불끈거렸다.

전쟁시기에도 이 사람은 그와 비슷한 질문을 했었다.

어째서 자꾸만 그 문제를 강조하는가? 도대체 여기에 륙사동창생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동문 법기관앞에 성근한 태도를 취해야 하오.》

로성익의 위풍당당한 태도를 보면 이미 자기의 《범행》을 기정사실화하고있는것 같았다.

《난 말할게 없습니다.》

사람이 어쩌면 그렇게 뻔뻔스러울수 있느냐는듯 지그시 노려보던 로성익은 진술서를 넘겨주었다.

《이걸 보면 생각이 달라질거요.》

표무강은 마지못해 진술서를 들여다보았다.

…미군첩보장교 에드윈 하불은 나에게 표무강씨를 남으로 데려오라는 특수임무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루이틀에 생각해낸것이 아니라 표무강씨가 대대를 이끌고 북으로 들어간 그날부터 진척시켜온 계획이였습니다. 그는 표무강씨를 《국군》군단장으로 임명한다는 리승만《대통령》의 임명장을 넘겨주었습니다. 북으로 들어온 후 나는 표무강씨를 만나려고 기회를 노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던중 지난주 일요일 오후, 드디여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날 표무강씨가 외출하는것을 발견한 나는 그의 뒤를 따르다가 시장입구에서 만났습니다. 처음에 그는 나를 경계하였습니다. 우린 이전에는 가까운 륙사동창생이였지만 전쟁시기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싸웠으니 그 심정은 충분히 리해되였습니다. …

허정효, 이 독사같은 놈!

또다시 눈길을 진술서에 박았으나 글줄이 마구 흔들렸다. 다만 자기가 월남계획에 찬동하였으며 만약 허정효가 체포되지 않았다면 월남하여 《국군》장성이 되였을것이라는 내용을 겨우 알아보았다.

심장이 뚝 멎는것 같았다.

너무 억울하고 분통해서 어쨌으면 좋을지 몰랐다. 그 원쑤가 앞에 있다면 갈기갈기 찢어죽이고싶었다.

《다 봤으면 이리 주오.》

로성익의 딱딱한 말소리에 표무강은 치밀어오르는 격분을 눌러버렸다.

《상급검사동진 어째서 이런걸 나한테 보여주는겁니까? 혹시 나보다 그자의 진술을 더 믿는게 아닙니까?》

넘겨받은 진술서를 문건철에 끼우던 로성익의 얼굴이 굳어졌다.

《누구를 믿는가 하는건 상급검사가 판단할 일이요.》

《!》

그렇다. 이 사람은 나를 옛 전우가 아니라 사건혐의자로 보고있다.

자리에서 일어난 로성익은 습관적으로 군복자락을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오늘은 이만하기요. 후에 다시 찾겠으니 잘 생각해보오.》

걸상에서 몸을 일으킨 표무강은 뒤로 돌아섰다.

《가만!》

《?》

《한가지 묻기요. 동문 다른 훈장들은 어떻게 하구 왜 군공메달만 달고 다니오?》

군공메달을 내려다본 표무강은 숨을 크게 내쉬고나서 가슴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듯 한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이 군공메달은… 내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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