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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48회)


제 5 장


6


친구의 집앞에 이른 표무강은 흠흠해났다.

어디서나 흔히 볼수 있는 반토굴, 산중턱을 파고 아웅하게 문을 낸 볼품없는 집이였지만 문손잡이만은 잘 생겼다. 비록 고대광실문에 달려있는것처럼 우아하지는 못해도 작고 통통하게 만든 쇠손잡이에는 어려운 속에서도 행복한 살림을 착실하게 꾸려나가는 집주인의 마음이 느껴졌다.

문손잡이를 잡고 서있느라니 겨울날 뜨뜻한 방에 들어선것처럼 가슴이 훈훈해지며 검찰소에 불리워갔던 일이며 좀전에 공원에서 있었던 사실이 별치 않은것처럼 생각되였다.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며 안개발같은 김이 쓸어나왔다.

뿌옇고 눅눅한 김발속으로 낯익은 얼굴이 헤염치듯 나타났다.

《아, 왔으면 들어와야지 왜 뻗치고 서있나?》

《…》

《여보, 뭘 하고있소? 왕별을 단 장령이 왕림하셨는데…》

평시 롱을 하지 않는 김흥선이였으나 오늘은 그답지 않게 너스레를 떨었다.

문안으로 들어서자 코구멍만 한 부엌에서 팽이처럼 돌아가던 안주인이 《어야나?》 하고 손벽을 치며 반겨맞았다.

《련대장동지! 어서 오십시오.》

《주옥동무, 잘 있었소?》

전쟁시기 련대군의소 간호원이였고 지금은 친구의 안해인 신주옥을 향해 씩 웃어보인 표무강은 집주인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갔다.

천정이 낮은 반토굴이였지만 바닥에 노란 장판을 하고 벽에는 흰종이를 깨끗하게 발랐다. 뙤창가에는 주름종이를 동그랗게 둘러감은 백일홍화분들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요란한 가장집물은 없었지만 집안의 구석구석에서 안주인의 깐지고 섬세한 일솜씨가 엿보였다.

방아래목에 배추잎사귀만 한 모포를 덮고 잠든 총각애를 알아본 표무강은 그앞에 쭈그리고앉았다.

이녀석 제 엄마를 닮았군. 아니, 입술은 아버지를 닮은것 같애.

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표무강은 바지주머니에서 짬시간마다 깎은 나무권총을 꺼내여 세상모르게 자고있는 총각애의 머리맡에 놓아주었다.

바쁜데 언제 그런것까지 깎을 사이가 있느냐고 나무라듯 친구를 흘겨본 김흥선은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뭘 하오? 빨리 들여오지 않구.》

김이 문문 피여오른 문짬으로 얼굴을 내민 주부는 활짝 웃으며 남편의 말을 받아넘겼다.

《아이참, 여기가 뭐 당신네 공장인줄 아세요?… 헌데 밥상도 놓지 않고 뭘 하는거예요?》

《어, 내 정신봤나.》

친구앞에서 가장의 위세를 뽐내려다가 되려 코를 떼운 김흥선은 방 한쪽에 세워져있는 밥상을 끌어당겼다.

밥상을 펴놓기 바쁘게 음식그릇들을 올려놓은 안주인은 옛 련대장의 손을 잡아끌었다.

《차린건 없지만 그릇들을 다 비워야 물러날수 있다는걸 아십시오. 호호호.》

《주옥동문 여전하구만.》

표무강의 말에 친구는 기분이 좋아서 받아넘겼다.

《이 사람이 다른건 몰라두 음식은 좀 할줄 안다네.》

표무강은 행복한 부부를 보며 진심으로 부러워하였다.

《자넨 복이 있구만.》

《무슨 소릴?… 자네가 아니였다면 어떻게 오늘을 생각할수 있겠나?》

그것은 전쟁시기에 있은 일이다.

어느날 오후, 련대장의 호출명령을 받은 신주옥은 련대지휘부로 급히 달려왔다.

그런데 표무강은 웬일인지 그를 유심히 보기만 하였다.

사실 그는 속으로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있었다. 전번에도 느꼈지만 확실히 신주옥의 모색은 김흥선의 안해와 신통하였다.

《동무한테 특별임무를 주겠소. 이 시각부터 동문 문화부련대장동무의 부상처가 다 아물 때까지 그의 곁에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말아야겠소.》

《특별임무》라는 말에 신주옥은 얼굴이 밝아졌다.

《알았습니다. 헌데 문화부련대장동진 저만 보면…》

표무강은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말이 많소?》

《알았습니다. 련대장동지!》

씩씩하게 대답한 신주옥은 종주먹을 쥐고 련대지휘부를 나섰다.

그날 저녁 표무강은 김흥선을 따로 만났다.

《자, 이젠 솔직히 털어놓게.》

다짜고짜 던진 그 말에 김흥선은 뜨아해하는 기색이였다.

《한사코 주옥동무를 피하는 리유를 털어놓으란 말일세.》

고지식한 친구는 나쁜 장난을 하다가 들키운 총각애처럼 쩔쩔매였다.

《그건… 그건…》

표무강은 76미리직사포마냥 직방 갈겼다.

《복실이때문에 그러지?》

정통을 얻어맞은 김흥선은 와뜰 놀랐다.

《자네… 알고있었나?》

《흥, 아무렴 내가 그만한것도 모를것 같나?》

일이 다 틀렸다고 생각한 김흥선은 이실직고하였다.

《난 처음 그 처녀를 보았을 때 복실이와 너무 신통해서 그만 삭갈릴번 했네. …》

그들의 화제에 오른 복실이란 김흥선의 안해였다.

어릴적부터 한마을에서 자란 당돌한 계집애, 한쌍의 원앙부부가 된 후 너무 고와서 저고리주머니에 넣고 다니고싶던 안해.

그러던 그가 수욕을 채우려고 달려드는 무리들에게 정조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우물에 몸을 던질줄을 어찌 알았으랴.

처음 얼마동안은 안해가 자기옆에 없다는 사실이 통 믿어지지 않았다.

아침에 깨여나면 보름달처럼 환하게 웃으며 수건과 세면물을 받쳐주군 하던 안해가 눈앞에 떠오르고 저녁에는 부뚜막에 올려놓았던 더운밥과 국을 차려주던 그 사랑스러운 모습이 생각나 우두커니 앉아있기도 하였다.

뒤늦게야 자기가 착각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세상에 이런 기막힌 일도 있는가 하고 몸부림쳤다. 눈에 넣어도 아플것 같지 않던 귀중한 안해를 잃고도 자기가 숨쉬고 움직인다는것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이를 부드득 갈던 김흥선은 어느날 안해의 복수를 하고 곧장 군사분계선을 넘어섰다.

공화국으로 넘어온 후 그 슬픔은 가슴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그러나 심장속에 소중히 간직된 안해는 기쁠 때나 괴로울 때나 언제나 함께 있군 하였다.

그러던중 련대군의소에 들렸던 그는 신주옥이라는 간호원을 보자 하마트면 《복실이!》 하고 찾을번 하였다.

보름달처럼 환한 얼굴이며 늘씬한 몸매랑 흰 이를 곱게 드러내며 웃는 활달한 모습도 신통히 안해와 같았다. 마치 죽은 안해가 살아난것 같았다.

세상에 이렇게도 꼭같이 생긴 녀자도 있단 말인가.

그날 밤 김흥선은 잠을 이루지 못하고 궁싯거렸다.

겨우 아물었던 상처를 헤집어놓은 그 간호원처녀가 야속하였다. 한편 명색이 문화부련대장이라는 사람이 처녀앞에서 실수할가봐 은근히 겁나기도 하였다. 그래서 련대군의소에 내려갈 일이 생기면 다른 사람들을 보내군 하였고 불가피하게 들린 경우에는 일을 끝내고 제꺽 돌아서군 하였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하지 않는가.

그 처녀를 보지 않으면 생활은 이전처럼 흘러갈것만 같았다.

일은 뜻대로 되지 않았다.

정찰병들과 함께 적후에 들어갔던 그는 라지오를 로획해가지고 돌아오다가 적들의 추격을 받았다. 교전중에 적탄이 오른쪽어깨를 심하게 긁어놓았는데 련대에 돌아온 후 일없겠지 하고 방심하였던 부상처가 독을 쓰기 시작하였다.

할수없이 련대군의소에 찾아갔더니 공교롭게도 자기를 처치해준 간호원이 신주옥이였다.

그 처녀가 부상처를 소독하는데 심장이 후두둑 높뛰였다.

어찌나 심하게 두근거리는지 혹시 간호원이 그 소리를 듣지 않았을가 하고 겁이 났다.

《문화부련대장동지, 어디 편치 않습니까?》

처녀가 걱정스럽게 묻자 비지땀을 흘리던 김흥선은 《바쁜 일이 있어 그러니 후에 오겠소.》 하고 군의소를 뛰쳐나왔다.

일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김흥선의 속마음을 알리 없는 신주옥은 련대장이 직접 준 《특별임무》를 수행하려고 이악하게 따라다녔다.

7대대에 내려가면 그곳에 나타났고 반땅크총소대에 들리면 거기까지 뒤쫓아왔다. 어제는 련대부에까지 찾아왔기에 박격포중대로 간다고 하고 달아났는데 3포장의 말을 들으니 그가 찾아왔다가 자기네를 혼내우고 돌아갔다고 한다.

《무강이, 난 어떻게 하면 좋겠나?》

표무강은 시치미를 뚝 따고 셈평좋게 대꾸하였다.

《어떻게 하긴? 처치를 받으면 되지.》

뜨거운 불판에 올라선것처럼 김흥선은 한길이나 올리뛰였다.

《그래두 친구라고 믿고 털어놓았는데… 에익!》

화가 나서 돌아서는 그를 보며 표무강은 씩 웃었다.

며칠 지나 신주옥은 자신만만해서 련대지휘부에 찾아왔다.

《련대장동지, 〈특별임무〉를 수행했습니다. 련대군의소 간호원 신주옥!》

《수고했소. 임무를 수행한 동무한테 련대장감사를 주오.》

뜻밖에 련대장감사를 받은 처녀간호원은 기뻐서 어쩔줄 몰라하였다.

《조국을 위하여 복무함!》

《참, 동무한테 한가지 알려줄게 있소.》

무슨 임무를 받든 무조건 수행하겠다는 결의로 충만되여있는 처녀에게 표무강은 김흥선이 안해를 잃게 된 사연을 털어놓았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주옥은 몇번이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

그러나 동정이 곧 사랑은 아닌것이다.

하루는 신주옥이 조용히 표무강을 찾아왔다.

무슨 일인가고 묻자 처녀간호원은 손톱여물만 썰뿐 인차 입을 열지 못하였다.

《주옥동무, 말해보우.》

그제야 신주옥은 자신없는 목소리로 말꼭지를 떼였다.

《저, 문화부련대장동진 마음씨도 착하고 아는것도 많지만…》

《그래서?》

《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다가 급기야 빨개진 얼굴을 숙이는 처녀를 보자 표무강은 속이 답답해났다.

그 친구가 총각이 아니라는거지. 제길, 총각이면 어떻구 한번 장가를 갔댔으면 어떻다는건가? 사람만 좋으면 그만이지.

곰곰히 생각해보니 신주옥의 심정도 리해되였다.

세상에 어느 처녀가 수많은 총각들을 두고 장가갔던 남자를 사랑하겠다고 하겠는가. 그렇지만…

《난 동무한테 사랑을 강요하진 않겠소. 하지만 한가지만은 말해주고싶소.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거요.》

그 일이 있은 후 신주옥은 표무강을 만나면 슬슬 피하군 하였다.

표무강은 속이 좋지 않았으나 그를 탓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김흥선이 전투에서 또다시 부상당하는 일이 발생하였다.

피를 많이 흘린 그는 의식을 잃었는데 그때 제일먼저 군복소매를 걷어올리고 자기의 피를 뽑아 수혈해준 사람이 바로 신주옥이였다.

김흥선이 정신을 차리자 처녀는 그의 몸을 추세우려고 아글타글 애썼다.

하루는 처녀의 몸으로 잣나무우에 올라가 잣을 따다가 그만 떨어져 허리를 심하게 다쳤었다. 그런데도 아픔을 참고 온밤 잣알을 까고 죽을 쑤고는 혹시 김흥선이 자기를 보면 걱정할가봐 옆의 간호원한테 들려서 보냈다.

그가 잣죽을 다 내고 고맙다는 인사말을 보냈다는 소식을 전해듣자 신주옥은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아, 몹시도 정을 그리워하는 사람, 가슴속에 슬픔을 안고있으면서도 내색않고 전사들에게 자기의 정을 깡그리 바치는 착한 남자. 만일 그 아픔을 덜어준다면 그는 더 쾌활하고 더 억센 사람이 될거야. 그래, 바로 내가 그의 슬픔을 덜어주겠어. 친혈육이 되여 끝까지 돌봐줄테야!

바치고 또 바치고싶은 그 아름다운 마음씨는 처녀를 대담하게 만들었으며 그때부터 신주옥은 김흥선을 진심으로 따랐다.

어느날 처녀는 씩씩하게 표무강을 찾아왔다.

《련대장동지, 그날 련대장동진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사랑은 심장으로 하는것이라고. 뭘 더 숨기겠습니까? 사실 전 이것저것 생각하면서 주저했댔습니다. 허지만 이젠 아닙니다. 전… 결심했습니다.》

표무강은 처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얼마나 아름다운 처녀인가. 사랑을 어떤 타산이나 체면이 아니라 인간에 대한 진실한 리해와 헌신으로 이어가려는 훌륭한 처녀!

김흥선은 그가 자기한테 너무도 과분하다고 하면서 그냥 달아났다.

진정한 사랑앞에서는 하늘도 머리를 숙이는 법이다.

신주옥의 뜨겁고 열정적인 사랑은 굳게 닫겨있던 사나이의 심장의 문을 끝끝내 열어제꼈으니 김흥선은 일생 처녀로 늙을지언정 끝까지 동지를 따라다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처녀앞에서 눈굽을 적시고야말았다.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한가정을 이루었고 다정한 부부는 떡돌같은 아들을 낳고 행복하게 살고있었다. …

《엄마!… 엄마!…》

《오, 우리 성철이가 깨났구나!》

아이를 끌어안은 신주옥은 활짝 웃으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애가 어찌나 순돌인지 깨나도 울지 않습니다. 꼭 제 아버지를 닮았지요 뭐.》

《여보, 쓸데없이…》

거북해하는 남편을 곱게 흘겨본 신주옥은 냅다 말해버렸다.

《련대장동지, 제 말이 틀립니까?》

웃음으로 수긍해준 표무강은 고사리같은 아이의 손에 나무권총을 쥐여주었다.

《공부하느라 바쁘시겠는데 언제 그런걸 다… 성철아, 삼촌한테 고맙다고 인사해야지.》

아이는 어머니를 따라 고개를 까딱거리며 종알거렸다.

《고맙…습니다.》

장난감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를 바라보던 신주옥은 정색한 표정을 지었다.

《련대장동지, 저희들의 결혼식날을 잊지 않고 찾아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그제야 떨어졌던 가장의 위신을 추켜세울 때가 왔다고 생각한듯 김흥선은 밥상옆에 놓여있는 술병을 손에 들었다.

《자, 들자구.》

술잔을 단번에 비운 표무강은 진심으로 말하였다.

《내 다시말하지만 자넨 정말 좋은 안해를 만났네.》

김흥선은 정이 그득 고인 눈길로 안해를 바라보았다.

《그야 물론이지. 내가 몇달동안 공장건설때문에 들어오지 못했는데 이 사람이 혼자서 집을 짓느라 고생했다네. 그뿐인줄 아나? 자기는 제대로 먹지 못하면서 국수를 눌러가지고 공장에 찾아와 로동자들을 고무해주었네. 그바람에 당위원회가족들은 물론 공장간부들 모두가 지원사업을 하느라고 법석 끓었다네.》

옹색해하던 주부가 남편을 시까슬렀다.

《여보, 제 녀편네 자랑하는 사람보구 뭐라는지 알아요?》

술이 한잔 들어가서 그런지 김흥선은 배포가 유해서 대꾸하였다.

《훌륭한 바보라고 하지.》

전쟁시기 엉뚱한 이야기로 전사들을 곧잘 웃기군 하던 그의 능청스러운 대답에 방안에는 웃음판이 터졌다.

눈물이 찔끔 나도록 웃고난 표무강은 술을 가득 채운 잔을 신주옥에게 내밀었다.

《이 친구가 주옥동무를 만나 행복하게 사는걸 보니 기쁘구만. 자, 우리 련대전사들의 마음을 다 담은것이니 받소. 그리구 이 친구를 변함없이 사랑해주오.》

억실억실한 신주옥의 눈에 맑은것이 고여올랐다.

《련대장동지, 고… 고맙습니다.》

잠시후 주부는 많이 들라고 권하고나서 아이를 안고 방을 나섰다.

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김흥선이 말을 꺼냈다.

《아까 보니 자네 낯빛이 좋지 않더군.》

표무강은 속으로 놀랐다.

집에 들어설 때 아무 내색도 않더니… 능구렝이같으니.

예나 지금이나 진실한 친구앞에서 표무강은 구태여 숨기고싶지 않았다.

하여 검찰소에 불리워갔던 일을 꺼내놓았다.

진술서이야기를 들은 김흥선은 격분을 금치 못하였다.

《그 독사같은 놈이 자넬 해치려고 악을 쓰고있구만.》

표무강은 괴로운 모양 이마살을 찡그렸다.

《리해할수 없는건 상급검사가 어째서 내 말보다 허정효의 진술을 더 믿는가 하는걸세.》

친구의 얼굴을 자세히 보고있던 김흥선의 고개가 기웃해졌다.

《자네 그것때문에 우거지상을 했나?》

《기분이 좋을수야 없지 않나.》

술병을 덥석 집어든 표무강은 옆에서 말릴 사이도 없이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그 기세를 보면 병을 통채로 비울것 같았다.

《그만하게.》

친구의 손에서 술병을 나꿔챈 김흥선은 준절한 어조로 질책하였다.

《난 자네가 이렇게 나약한 인간인줄은 몰랐네.》

표무강도 어지간히 화가 돋았다.

《내가 나약하다구? 자네 같으면 그런 오해를 받고…》

김흥선의 입에서 쏟아져나온 불같은 말이 그의 말을 동강냈다.

《그만하게. 그래, 자넨 군공메달을 앞가슴에 달고 다니기가 부끄럽지 않나?》

《뭐라구?》

표무강은 반사적으로 앞가슴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 군공메달이 있는데 뭐가 두려운가. 응?》

비로소 자기를 돌이켜본 표무강은 고개를 슬며시 떨구었다.

《날 욕하게. 내 일만 일이라구 하면서 자넬 잘 돕지 못했네.》

표무강은 그러는 친구의 손을 꽉 잡고 허심하게 토설하였다.

《내가 잘못했네. 정신이 번쩍 들게 한대 후려갈기라구.》

김흥선은 싱글싱글 웃었다.

《허, 난 워낙 주먹이 약해놔서 그만두겠네.》

서로 마주보던 두 친구는 누가 먼저라고 할것없이 와락 끌어안았다.

《흥선이!》

《무강이!》

머리를 맞대고 비비던 두사람은 속이 후련하게 한바탕 웃었다. 믿음으로 맺어지고 믿음으로 이어지는 사나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는 작은 반토굴집의 문밖을 뚫고나와 드넓은 하늘가로 울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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