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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9월 16일

평양시간


(제55회)


제 6 장


4


《그 량반 영 버릇이 없더구만.》

지글지글 타고있는 양고기를 저가락으로 슬슬 뒤집은 부소장은 교양이 없는 사람은 할수 없다는듯 절레절레 도리머리를 저었다.

식탁을 사이에 두고 그와 마주앉은 로성익은 상대방이 자기의 말을 긍정해주었으면 하고있다는것을 번연히 알고있었으나 일언반구하지 않았다.

반시간전 그는 급히 토의할 문제가 있다는 련락을 받고 부소장의 집으로 달려왔었다.

부소장은 량쪽벽에 유럽의 명화들이 비좁게 걸려있고 천정에 값비싼 무리등이 매달려있는 화려한 방가운데 불고기판을 차려놓고 맞아주었다.

청렴결백한 사람으로, 오직 사업밖에 모르는 상급으로 존경해온 그에게 이런 생활의 리면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혹시 까마귀를 봉황새로 알고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심중을 아는지 모르는지 부소장은 뭐니뭐니해도 건강이 첫째라고, 그러자면 질높은 식사를 해야 하는데 영양가높은 양불고기로 그동안 쌓인 피로도 풀겸 한번 화락하게 젖어보자고 하는것이였다. 그리고는 불고기의 력사를 한바탕 내리엮고나서 불쑥 표무강에 대한 이야기를 끄집어냈던것이다.

로성익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월남도주기도사건》은 상급에서도 중시하고있는데 그런 문제를 사무실이 아니라 집에서, 그것도 양불고기에 술까지 받쳐 마시며 토의한다는것은 사업원칙에 어긋나는 처사였다.

표무강의 《교양문제》로 화두를 뗀 부소장은 한걸음 더 나아가 사건이 어느 정도 진척되였는가고 물었다.

《본인은 제기된 자료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취기가 올라 그자신이 입안에 쓸어넣은 양불고기처럼 얼굴이 불깃해진 부소장은 손에 들고있던 저가락을 탁 내려놓았다.

《건방지게!》

유들유들한 얼굴에 비해 형편없이 작은 메밀눈을 쪼프린 부소장은 단호한 어조로 뇌까렸다.

《그 량반이 인정하건 안하건 관계없소.》

로성익은 그의 의도를 알수 없었다.

이번 사건의 물적증거는 고작해야 허정효의 몸에서 나온 《대통령》임명장뿐이고 사건련루자로 지목된 표무강이 간첩의 진술내용을 완강히 부정하고있는데 어떻게 사건을 진척시킨단 말인가.

자기가 끄집어내려는 이야기에 무게를 싣듯 접시에 놓인 양불고기를 손으로 가리킨 부소장은 의미심장하게 내뱉았다.

《이 불고기도 채 익지 않았지만 얼마든지 먹을수 있거던.》

《?!》

역시 오늘의 푸짐한 불고기는 공짜가 아니였다. 《월남도주기도사건》을 빨리 결속지으라는 일종의 독촉인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은페된 압력이였다.

로성익은 마음이 무거워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표무강의 사업과 생활을 료해하기 위해 전쟁시기 그가 근무한 련대와 총참모부, 군사학교에 나갔었는데 그곳 정치부들에서는 표무강을 전적으로 보증하였다. 항일혁명투사인 고급군사학교 교장 오성국과 기계공장 당위원장 김흥선, 인민군군관 리경일 등 많은 사람들도 그를 적극 보증해나섰다.

부소장은 사건진행과정은 물어볼념도 하지 않고 덮어놓고 언제면 결속할수 있는가고 따졌다. 그러면서 말끝마다 이 사건으로 동무의 앞날이 결정될수도 있다고 은근히 위협하군 하였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로성익은 그쯤한 일에 허리를 굽석거릴 비굴한 인간이 아니였다.

아직 범행자료가 립증되지 않은 사람을 놓고 어떻게 사건을 결속짓는단 말인가. 그건 검찰일군의 본도에 어긋나는 행위이고 또한 인간의 량심에도 저촉되는짓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표무강문제를 끈덕지게 파고든것은 검찰일군의 본분을 다하려는 자각때문이였다.

하지만 표무강에 대한 료해를 진행하는 과정에 그처럼 철칙으로 삼아온 로성익의 원칙은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얼마전에 찾아왔던 김흥선이 던지고 간 이야기도 가슴속에 맺혀있었다.

《상급검사동진 원칙이란 차겁고 무자비한것이라고 생각하는것 같은데 난 그것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가장 뜨거운 사랑과 믿음에 기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랑과 믿음말입니다.》

불고기판에서 내뿜는 열기로 하여 방안은 화독처럼 달아올랐다.

로성익은 목단추를 풀어놓을념도 하지 않고 상념을 이어갔다.

지금까지 나는 혁명이란 랭철하고 무자비한것으로 여겨왔었다. 전쟁시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여왔다. 하여 한번의 과오나 탈선도 없이 오늘에 이르렀고 뿌듯한 자부심과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왔었다. 그런데 요즘에 와서 그 좌우명에 대해 회의심이 생겨나는건 무엇때문일가? 그래, 목에 피대를 세우고 원칙을 부르짖은것이 과연 혁명이란 말인가? 결국 나에게 남은것은 무엇인가? 랭돌같은 심장을 가진 사람, 얼음인간이라는 뒤소리뿐이다. 이제 와서 난 고독한 인간이 되고말았다.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있는게 아닐가?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그는 부소장의 말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다시말하지만 그 량반이 어떻게 나오든 관계없이 사건을 이틀내로 결속해야겠소.》

로성익은 고개를 버쩍 쳐들었다.

《그렇게는 안됩니다.》

부소장의 메밀눈에서 독기가 뿜어나왔다.

《동문 상급의 지시를 거역한다는거요?》

《난 사업상원칙을 지키자는겁니다.》

모욕을 느꼈는지 부소장의 살집좋은 얼굴은 점점 더 벌깃해졌다.

그랬으나 그것은 순간이였다. 미구에 그의 얼굴은 부하의 투정을 너그럽게 받아주는 인심후한 상급의 표정으로 바뀌였다.

《허허, 동무말이 옳소. 아무렴, 우리야 원칙을 베고 죽어야 할 사람들이지.》

로성익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달라진 그의 태도가 좀처럼 믿어지지 않아서였다.

그가 알고있는 부소장은 하급이 반발한다고 호락호락 물러날 인간이 아니였다. 일단 자기가 지시한 일에 대해서는 한걸음도 양보하지 않았고 아래사람들속에서 자신에 대한 뒤소리가 한마디라도 새여나오면 밤이 열둘이라도 끝까지 파고들어 복수하는 무서운 인간이였다. 그런 그가 지금은…

《자, 사업얘긴 그만하기요. 누가 말한것처럼 술좌석이란 화려해야지.》

그가 빙긋 웃으며 손벽을 치자 출입문이 사르르 열리더니 미모의 녀성이 사뿐 들어섰다.

《미영이, 인사하라구. 나와 같이 일하는 로성익동무요.》

젖가슴이 반나마 드러나게 파진 옷을 입은 그 녀자는 날씬한 허리를 률동적으로 흔들며 다가오더니 서유럽의 숙녀들마냥 한쪽다리를 살짝 굽히며 고개를 까딱거렸다.

로성익을 넌지시 바라본 부소장이 서툰 로어로 설명하였다.

《내 친구의 동생이요. 로어를 배우겠다고 따라다니는데… 귀찮아죽겠소. 글쎄, 온종일 바쁘게 돌아치는데 언제 짬이 있는가 말이요.》

《배우겠다는거야 좋은게 아닙니까?》

로성익은 류창한 로어로 응답하였다.

능란한 대화솜씨에 감탄한듯 부러운 눈으로 로성익을 바라보던 미영은 술잔에 워드까를 붓고 생긋 웃음을 지었다.

그 자태는 흡사 어항속에서 귀엽게 꼬리치는 빨간 금붕어같았다.

《로성익동지라고 하셨던가요?… 드세요.》

원래 술을 좋아하지 않는데다 방안의 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로성익은 술잔을 비우지 않았다.

《그러면 쓰나. 미인의 성의를 거절해서야 안되지.》

부소장이 옆에서 점잖은 어조로 재촉하였다.

그가 술잔을 그대로 들고있자 부소장은 그럼 셋이서 축배를 들자고 하더니 미영이의 잔에 워드까를 부었다.

《아이참, 난 술을 못해요.》

부끄러운듯 긴 속눈섭을 내려깔았지만 녀자의 말쑥한 손은 어느새 술잔을 거머쥐고있었다.

《자, 우리 사업의 성과를 위하여!》

잔을 높이 들었다가 로성익의 잔과 대충 찧고나서 옆에 바싹 붙어있는 미영의 술잔에 흥취나게 찧은 부소장은 제 먼저 쭉 들이켰다.

미영이도 눈섭 하나 찡그리지 않고 마셔버렸다.

《흐흐흐, 좋아, 좋아!》

절반도 비우지 않은 로성익의 잔을 넘겨다본 부소장은 이런 장소에서까지 검찰일군흉내를 내겠느냐고 나무라듯 혀를 찼다. 그러더니 한창 소화가 진행되고있는 불룩한 배를 슬슬 내리쓸며 미영이한테 슬쩍 눈짓하였다.

미영은 엉치를 맵시나게 흔들며 전축이 놓여있는 원탁으로 다가갔다.

《로동진 어떤 곡을 좋아하시는가요?》

고작 한두마디밖에 나누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구면지기처럼 《로동지》라고 스스럼없이 부른 그 녀자는 레코드판을 이것저것 들어보였다.

이런 일에 습관되지 못한 로성익은 얼핏 부소장을 돌아보았다.

뚱뚱한 몸을 쏘파에 틀어박은 그는 뻔한것을 묻는다는듯 시물시물 웃고있었다.

《그야 미영이가 더 잘 알텐데.》

알만 하다고 눈웃음을 친 미영은 레코드판을 골라들고 전축에 살짝 끼워넣었다. 그런 다음 무슨 곡이 나오는지 알아맞춰보세요라고 묻듯 로성익을 향해 생글생글 웃었다.

이윽고 오스트리아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의 대표작인 《아름답고 푸른 두나이강가에서》의 경쾌하고 박력있는 선률이 흘러나왔다.

그 선률을 타고 녀자의 사근사근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궁정무도회악단의 지휘자로 있던 슈트라우스는 어떤 사람한테서 유쾌한 노래를 한곡 작곡해달라는 부탁을 받자 남성합창곡을 작곡하였다고 해요. 그런데 가사가 시원치 않아 다시 지었는데 그것이 일약 명작으로 이름떨쳤다나요. 어때요? 알프스산맥에서 시작하여 오스트리아평원을 거쳐 흑해로 유유히 흘러가는 두나이강 량언덕의 아름다운 풍경과 강물우에서 즐겁게 놀고있는 사람들이 떠오르지 않는가요?》

눈앞에 두나이강 량언덕의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있기라도 하듯 두눈을 사르르 감은 미영은 신나서 계속하였다.

《유감스러운건 왈쯔곡을 5백편이나 지었다는 〈왈쯔의 왕〉이 윈에서 왈쯔를 출줄 모르는 유일한 남자였다는 사실이예요. 한번은 아름답게 생긴 한 녀성이 그에게 왈쯔를 추자고 청하였는데 슈트라우스는 춤을 추는척 하면서 악단쪽으로 유인해가서는 제1바이올린수에게 짝패를 슬그머니 떠맡기고 자기는 바이올린을 연주했답니다.》

《왈쯔의 왕》을 칭찬하는지 아니면 비난하는지 알쑹달쑹한 말을 늘어놓던 그 녀자는 제편에서 먼저 춤을 청하였다.

로성익은 춤을 모른다고 듣기 좋게 거절하였다.

까치다리를 하고있던 부소장이 시까슬렀다.

《그런 말 마오. 내가 듣기엔 동문 붉은군대에 있을 때 금발머리처녀들이 왈쯔를 추자고 줄을 섰댔다던데…》

부소장이 어떻게 그것까지 다 알고있을가 하고 생각하면서 로성익은 이렇게 둘러쳤다.

《그건 풍문입니다.》

《아이참,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나겠어요?》

미영은 교태를 머금고 로성익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래도 그가 응하지 않자 미영은 금시 울상이 되여버렸다.

쏘파에서 일어난 부소장은 로성익을 향하여 위혁적인 손짓을 하였다.

《좋지 않소. 미인을 울리다니. 할수 없지. 자, 미영이!》

당신은 졸장부예요라고 나무라듯 두눈을 흘긴 미영은 언제 그랬던가싶게 해쭉 웃으며 부소장한테로 다가갔다.

그러기를 기다리고있었던듯 부소장은 녀자의 잘룩한 허리를 부여잡더니 뚱뚱한 몸을 날렵하게 놀리며 때마침 흘러나오는 왈쯔곡에 맞춰 경쾌하게 첫발을 떼였다.

사이좋게 빙글빙글 돌아가는 그들을 보자 로성익은 자기가 미영이의 청에 응하였더라면 어쩔번 했는가 하고 생각하였다.

거의나 한몸이 되여 방안의 여기저기로 활기있게 돌아가던 두사람은 이미 로성익이란 존재는 안중에 없이 자기들의 세계에 푹 빠져버렸다.

교태가 찰찰 넘치는 녀자의 귀에 두툼한 입술을 바싹 가져다댄 부소장은 음침한 어조로 수군거렸다.

《어제 그 사람이 뭐라고 하던가?》

《부소장동지가 먹다남은 보신탕을 자기한테 보낸게 아닌가고 하더군요. 아이, 그 사람은 저속해요. 녀성을 보신탕에 비유하다니요.》

《그래서?》

《앵돌아진척 하고 그 보신탕을 맛보지 못해 안달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르고계십니다 하고 쏘아주었지요 뭐.》

《그래서?》

《그랬더니 롱담으로 한마디 한건데 뭘 그러는가고 하시더니 미영이는 성났을 때가 더 곱다면서 내 손목을 슬쩍 잡더군요.》

《그래서?》

《뭘 자꾸만 그래서, 그래서예요? 그 다음이야 뻔하지 않아요.》

《흐흐흐!》

《그렇게 점잖아보이던 사람도 녀자앞에서야 어쩌는수가 있어요? 에이, 다신 그 사람한테 가지 않겠어요.》

《내 귀염둥이가 싫다고 하는걸 보니 그 사람이 그 분야에선 나보다 못한게지. 솔직히 나도 미영이를 보내고싶지 않아. 허지만 그가 우리 집에 왔다가 널 보고 반해서 꼭 만나게 해달라고 성화먹이는데 어쩌겠나? 그러니 날 위해서라도 노여워말라구. 내 다 봉창하지 않으리.》

《아이참, 미워요.》

부소장은 토달거리는 미영의 탱탱한 엉치를 슬슬 어루만졌다.

그러자 기다리고있은듯 녀자는 그의 목을 꽉 그러안았다.

방안의 분위기가 이쯤되고보니 로성익은 자기가 있을 곳이 못된다는것을 깨달았다.

정신없이 끌어안고 돌아가는 남녀를 남겨둔 그는 자리에서 슬그머니 일어났다.

밖으로 나오자 흐렸던 하늘에서 소나기가 쏟아졌다.

워낙 단정한것을 좋아하는 그는 옷이 젖을 생각을 하니 끔찍하였다.

저도 모르게 몇발자국뒤에 있는 부소장네 집을 돌아보았다.

가서 우산이라도 빌려달라고 할가? 아니, 그만두자.

고개를 가로저은 로성익은 억수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걷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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