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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회


제 1 장


1


서울 동빙고동은 사람들이 도적촌 혹은 오적촌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남산의 산줄기가 밋밋하게 한강으로 흘러내리는 잘뚜마기를 뭉청 잘라서 확 밀어제껴 넓게 터전을 닦고 그곳에 억원대로 불리우는 현대적호화주택들이 경쟁하듯 들어앉은 곳이였다. 우에는 푸른 남산이 솟아있고 앞에는 한강이 흐른다. 어느 집이나 로대에 서서 보면 전망들이 좋았다. 전에는 빈민들의 오막살이들이 있던 곳이나 그들은 지금 어디로 쫓겨갔는지 모른다. 그들을 쫓아낸 자리에 호화주택들이 즐비하게 들어앉았다.

집들은 거의다 추상적인 직선으로만 구성된 현대적인 건축양식의 호화주택들이였다.

상공부 차관 오동원의 집도 그런 식의 2층건물이였다. 겉도 좋았지만 안에 들어서면 더 놀랄만큼 사치스럽게 꾸려놓았다.

현관, 복도, 살림방, 침실, 응접실, 서재, 오락실, 아동실 어디에나 완전한 방음장치들이 되여있고 바닥에는 대리석을 비롯한 고급건재를 깔았으며 육중한 문들에는 목각으로 서양무늬들이 부각되여있었다. 창가림과 융단은 물론 문의 손잡이로부터 초인종, 무리등, 변기에 이르기까지 모두 외국제품들이였다.

정원도 대단하였다. 한그루가 몇백만원씩 한다는 각종 정원수들이 여기저기에 서있었다. 수영장, 련못, 인공폭포… 폭포에서는 시민들이 음료수로 아우성치는 때에도 수도물이 폭포로 쏟아져 안개같은 비말을 날리며 그 언저리의 잔디밭을 적시여주었다.

도적을 예방하는 전자경보장치가 있는데도 지붕에는 세퍼드 한마리가 앉아서 지키고있었다.

오동원은 일요일 같은 날 혹은 오후에 손님들이 오면 집을 한바퀴 돌거나 정원만 보이면서 안내를 하였다. 그 담화의 내용이 잡담일수도 있고 용건일 때도 있었다. 어떤 경우가 되든지 그 호화로운 주택과 사치스러운 가구들과 장식들이 가지는 돈으로의 가치와 품격은 그의 《위신》과 신용을 높여주었다. 그후에 식당에 들어와 향연까지 베풀고나면 그의 사교는 반은 벌써 성공하는것으로 되였다.

아무리 사람들로부터 도둑촌이라는 지탄을 받는다 해도 그의 사업과 활동을 위하여서는 그 호화주택과 연회를 빼놓을수가 없었다.

연회에서 그는 상급에 대하여서는 아첨하고 하급에 대하여서는 《선심》을 쓰며 상공업자들과는 결탁하여 실리를 구하였다.

미국상전들을 비롯해서 수많은 인물들을 끌어들이는 그와 같은 사교과정은 그를 교통부 국장으로부터 상공부 차관으로 발탁케 해주었으며 총리가 위원장으로 되여있는 《관광정책 심의위원회》 위원의 직책도 얻게 하였다.

남조선의 《관광정책》이라는것이 단순히 외국인을 끌어들여 자연경치와 사적이나 구경시켜 외화를 획득하는데만 목적이 있는것이 아니였다. 보다 중요하게는 관광을 계기로 외국의 투자를 끌어들이자는데도 목적이 있느니만치 오동원은 상공부 차관의 간판으로 그 위원의 자리를 하나 얻은것이다.

그리하여 이즈음은 남조선에 투자를 많이 하는 일본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연회가 잦게 되였다.

그러한중에도 그날 연회는 어느때보다도 준비가 야단스러웠다. 벌써 이틀동안이나 차리고 마련하는데도 일은 끝나지 않았다.

이런 날에 죽어나는것은 그 집 하녀로 있으면서 손님접대를 맡아보는 수정이였다. 그는 얼굴이 곱게 생긴데다가 총명하기까지 하여 그 일을 맡아보는것이였다. 손님이 와서 기분이 좋고나쁘고 심지어는 그날 연회의 목적이 달성되고 안되는것까지 마치 그의 책임같이 되여있었다.

수정은 벌써 어제부터 집을 청소하고 연회장으로 될 식당도 장식해가고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신역은 아무것도 아니였다. 2년동안 그 집에서 살아오면서 그러한 일은 몸에 배여있었고 손에 익기도 하였다. 진정 참고 견디기 어려운것은 그 집주인부처들 특히 오동원의 처 미라의 잔소리와 수모였다. 때로는 오동원의 점잖지 못한 눈길과 그것을 살피는 미라의 눈초리였다. 그것들은 2년동안 아무리 당해봐도 습관으로 될수 없었으며 당할 때마다 억울하고 기막혔다.

그날도 미라는 여느날같이 아침부터 미장원에 가있었다. 그동안에 상공부에 나갔던 오동원이 미술품상인을 데리고 와서 식당에 걸려있던 정물화를 풍경화로 바꾸어 걸게 하였다. 그 정물화는 어떤 화가가 미라를 위하여 그린것으로 미라가 소중히 여기는 그림이였다. 그러나 오동원이 하는 일에 수정이 참견할바가 아니였다. 수정은 폭포가 그려져있는 그 풍경화에 맞추어서 식당의 장식도 조금 달리하고있었다.

그때에 미라가 미장원에서 돌아왔다.

《이게 웬 일이냐?》

그림이 바뀌여진데 대하여 미라는 깜짝 놀랐다. 그의 강파른 얼굴에 처진 눈이 곤두섰다.

《아저씨가 가지고 오셔서 바꿔 걸고 나가셨어요.》

《누가?》

《아저씨가.》

《넌 아저씨면 그만이냐, 다 큰 계집애가?》

뚫어지게 수정을 노려보았다. 수정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정도 나이는 열아홉살, 그 구박속에서도 얼굴은 점점 고와져서 미라가 남편을 경계하는 눈은 때로 병적이였다.

《그림을 바꿔 걸겠다고 하면 넌 내게 전화라도 걸어서 내 허락을 받아야지 않니? 이 전화는 뭐하자는거냐?》

미라는 송수화기를 들어서 팽개쳤다. 깨지지 않은게 다행이였다.

미라는 한참 수정을 보다가 제 신경질에 지치고마는지 연회의 준비정형을 물었다.

《준빈 다 돼가니?》

《네.》

미라는 식당에서 나갔다. 마루바닥에 떨어진 송수화기에서는 신호소리가 계속 나고있었다. 수정은 그것을 제자리에 올려놓고도 한동안 멍하니 서있었다. 상습화된 생억지였으나 창피스럽고 억울하였다. 어떻게 하면 저 성화를 면할것인가.

식모들을 나무라는 미라의 뾰죽한 소리가 또 주방쪽에서 들리였다. 수정은 그 목소리에 질겁을 하며 하던 일을 계속하였다.

미라는 생전 일이라고는 해보지 못한 녀자였다. 일의 두서도 갈피도 모르는 주제에 주인노릇은 하자니까 잔소리만 하기마련이였다.

《가난뱅이들이 돼서》, 그의 잔소리에는 자주 이 말이 붙어다녔다. 유리창 하나를 조금 잘못 닦아도 《가난뱅이들이 돼서 찢어진 창구멍같이만 생각하니.》 하고는 쯧쯧 혀를 차기가 일쑤였다. 그러면 일하던 사람들은 그만 기가 꺾이고 풀이 죽군 하였다.

미라는 무엇이나 마음에 안 들면 수정을 먼저 불러댔다.

《수정아!》

수정은 주방쪽으로 달려갔다. 침모로 일하는 유씨부인이 위생모를 쓰지 않고 주방일을 도와주고있었다.

《저것 좀 봐라.》

그것은 의례히 료리사가 책망을 들어야 할 일이건만 미라는 수정을 불렀던것이다.

《너 오늘연회가 어떤건가를 알기나 하니? 저렇게 맨머리로 하다가 음식에 머리카락이라도 들어가봐라.》

《잘못했어요.》

수정의 그 남모르는 고충과 분망으로 연회의 준비도 거의 끝나갈무렵 오동원이 또 집으로 왔다. 그도 준비상태를 최종적으로 확인해보려고 온것이였다. 또 어느 미국사람이 동부인해서 나타날려는지, 그날 연회가 얼마나 중요한것인지 알만 하였다.

그는 미라와 함께 식사칸에도 들어와보았다. 초대하는 인원은 많지 않다고 해서 식사칸을 특별히 잘 꾸려놓았다. 바뀌여진 풍경화도 그럴듯하였다. 장식들도 다 새로 하였다. 어디 한군데도 나무랄데가 없었다. 오동원은 식탁보를 쳐들고 보았다. 식탁은 회화나무로 만든것이였다. 그는 무엇인가 잠시 생각하는듯 하며 시계를 보더니 전화를 걸었다. 지정가구점에 마호가니나무로 만든 식탁이 있으면 곧 가져오라는것이였다.

수정은 걱정이 되였다. 언제 가져와서 다시 바꾸며 또 장식은 어떻게 하는가.

《시간이 될가요, 이건 안되겠어요?》

그 집의 모든 가구들은 외국제인데 그 식탁이 유일하게 《국산품》이라는것은 그도 오동원이나 미라한테 들어서 알고있었다. 그것때문에 마호가니나무제품으로 바꾸는가. 시간이 있다면 그가 알바가 아니였지만 시간이 없을것 같아서 의논삼아 걱정해본것이였다.

미라가 톡 쏘았다.

《네가 뭘 안다구 그러니? 배운것이 없어서. 모두 외국젠데 그거 하나만 국산이니 보기 좋니?》

《배운것이 없어서!》

수정은 몸이 나른해지도록 그 말이 가슴에 와서 찔렀다. 그 말가운데는 온갖 악의와 수모가 가득차있어서 그것을 참고 견디려니 자기 신세가 한스러웠다.

그러나 마호가니나무식탁이 왔을 때에는 또다시 억지로 기운을 내서 그것을 바꾸어놓고 장식도 급히 새로 하였다.

장식이 끝나자 미라가 자기 방으로 불렀다.

《넌 이젠 몸치장을 해라, 우리 목욕실에 가서 얼른 씻고 와.》

수정은 또 한번 얼굴이 붉어졌다. 우리 목욕실이란 미라의 부처가 쓰는 뛰르끼예식목욕실이였다. 그곳이 어떤 곳인줄 수정은 알고있었다. 그는 그곳으로 가지 않고 식모들의 목욕실로 가서 온종일 흘린 땀이나 씻고 돌아왔다.

《너 어디서 목욕을 했니?》

《저희들 하는데서.》

《넌 언제 그 가난뱅이버릇이 없어지니?》

미라는 묻지 않아도 수정이 제 말을 듣지 않고 식모들의 목욕실에서 목욕을 하고 온줄 알았다. 수정의 몸에서 향내가 나지 않기때문이였다.

《좋아, 시간이 없는데 그대신 이걸 뿌리자.》

미라는 제가 쓰는 향수를 뿌려주고 새옷을 내주었다.

《입어라, 네 얼굴엔 이만한 옷을 입어야 어울려.》

미라는 수정을 삼면경대앞에 앉혀놓고 제가 화장을 시켜주었다. 그런 때의 미라는 정말 《아줌마》라도 되는듯이 싹싹하였다. 욕하고 수모할 때와는 딴판이였다.

그러나 수정은 그것이 죽기보다도 싫었다. 그 간사스러운게 역겨웠다. 손님을 잘 접대하라는 수작이였다. 수정은 어차피 제가 그 집에 와있는 몸이고 또 손님을 접대하는 책임을 맡은 이상 싫어도 하기마련이다. 그와 같은 간능만 부리지 않으면 손님접대도 그의 나름대로 소박하고 친절하게 할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사람을 구슬리는데는 죽을노릇이였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속만 태우는 수정이였다.

《너 오늘연회는 다른 때와 다르다. 잘해야 돼.》

미라의 화장해주는 손은 끝날줄을 몰랐다. 다듬고 또 다듬어주었다.

오동원의 부처가 그와 같이 온갖 정성을 기울여서 맞이한 주인공은 별사람이 아니였다.

왜인인 뻐덩이였다. 그 뻐덩이를 덮은 입술은 자연 두두룩하여 그것이 보는 사람의 눈을 먼저 끌었다. 그러나 승용차에서 내려 집을 둘러보며 미라와 오동원의 인사를 받는 동안에 나타내는 여유작작한품은 틀거지가 잡힌게 만만치가 않아보였다. 이마는 좁고 50이 넘어보이는 나이에 머리숱이 많아서 그것을 기름을 발라 올빽으로 넘겼다. 어깨에는 왜인들모두가 그러하듯이 그도 사진기를 하나 메고있었다.

일본개발회사 고문인 후지노라는 사람이였다. 그는 박정희와 일본륙군사관학교 동창생으로서 일본의 정계나 실업계에서도, 남조선관계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였다.

그가 남조선에 자주 드나드는 목적은 《〈한〉반도의 안전이 일본의 안보에 긴요하다.》는 과거의 관념을 더욱 《발전》시켜 일본이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촉진을 위해 기여할 용의가 있다.》는 의지를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기려는데 있었다.

그 구체적인 사업의 하나로서 제주도를 남조선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것이였다.

인사들이 끝나고 미라가 교태를 부리며 서투른 일본말로 그를 집으로 안내하려 하였다.

《고맙습니다. 정원이 훌륭하군요.》

그는 집으로 들어갈 생각보다 정원에 더 마음이 끌리는 모양이였다.

정원에는 정원수들외에도 그의 눈을 끌만 한 괴석들이 많이 널려있었다. 오동원의 고향 단양땅에서 실어온 돌들이였다. 그곳 어느 절에서 헐어온 아담한 탑도 있었다. 후지노는 그것을 사진찍었다.

집도 겉으로 둘러보았다.

《저쪽이 한강이지요?》

미라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한강이예요.》

《아름답습니다. 강과 이 정원과 집, 한강의 기적입니다.》

《아유!》

미라는 그 말에 손벽까지 치려다가 간신히 참고 손을 모아 가슴에 얹으며 감동의 빛을 보였다.

《고맙습니다.》

남조선에서 관리들이나 그러한 계층의 사람들은 《한강의 기적》이라는 말을 쓰기 좋아하였다. 그러나 이 오적촌에 있는 호화주택을 가리켜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었다.

오동원도 후지노에게 고개를 숙이였다.

《그렇게 보아주시니 고맙습니다.》

후지노는 련못에서 굼실거리며 노니는 잉어들에도 흥미를 보였다. 그는 무심코 피우던 담배꽁다리를 련못에 던졌다. 순간 한자가량이나 되는 잉어가 뛰여오르며 그것을 삼켜버렸다.

《아, 이건 안됐군요.》

그는 오동원부처에게 머리를 까딱해보였다.

《천만에요. 저희들이 먹이를 미리 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

미라가 그렇게 후지노를 위안한 다음 소리를 높여 수정을 불렀다. 수정이 그들에게로 달려왔다.

《손님이 련못가에 오셨으면 잉어먹이를 눈치있게 가져와야지. 그렇게도 센스가 없을가.》

수정은 급히 정원관리인을 찾아가서 잉어먹이를 가지고 왔다.

《손님 드려!》

수정은 종이에 싼 먹이를 후지노에게 주었다.

후지노는 그것을 받으며 감탄하였다.

《따님입니까?》

《아닙니다.》

오동원이 대답하였다.

《하녀예요.》

미라가 수정을 힐끔 보면서 말하였다. 수정이 그 자리가 거북해서 돌아서 올 때에 후지노의 말소리가 뒤에서 들리였다.

《기생같이 곱군요.》

그 말이 들리자 얼굴이 화끈해진 수정은 무엇에 얻어맞은듯 빨리 뛰여 달아났다.


연회는 순 가정적이였다.

후지노를 주빈으로 앉히고 오동원부부와 오동원의 동생 오일원 네사람뿐이였다. 오일원은 왜인이 큰 주주로 있는 《닛뀨》관광호텔의 부지배인이였다. 오동원이 교통부 국장으로 있을 때에 넣어준것이였다. 후지노는 서울에 오면 반드시 그 호텔 특별실에 투숙하게 되여있어서 그의 형과 후지노와의 사이에는 언제나 그가 끼우기마련이였다.

그밖에 누구 한사람도 참가하는것은 후지노가 바라지 않았다. 그는 이번 기회에 제주도《개발》을 일층 추진시킬 목적으로 서울에 온만치 해당한 대상외에는 누구도 만나기를 피하였다. 그렇건만 그가 와서 하는 일의 낌새를 어찌 그렇게 아는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귀찮을 정도였다.

오동원의 집에 온것도 《한국》의 가정을 구경하는 즐거움을 하루저녁 가져본다는 약속으로 허락한것이였다.

오동원은 그의 희망대로 연회에서 그를 즐겁게 해줄수 있도록 여러가지로 마음을 썼다. 음식도 가정적인 연회의 분위기에 어울리게 순수한 조선료리로 준비하였다.

그것도 보통가정에서 흔히 보게 되는 류가 아니였다. 아주 희귀한 료리들을 만들게 하였다. 돈이 많이 드는 조리법이였고 사치스러운 구색이기도 하였다. 가령 고기료리 몇접시를 마련하는데 많은 고기가 소용된다든가 하는 식이였다. 료리들이 또 시각적으로는 얼마나 화려하겠는가. 보기만 하여도 먹음직스러웠다.

후지노는 처음 식당에 들어와서 그 이채로운 차림에 놀라면서도 외국인의 체면에 점잖게 앉아있었다. 미라가 금잔에 그것도 순 조선술이라는 국화주를 따라주며 그의 건강을 위하여, 그가 오동원의 집을 찾아준데 대한 감사의 표시로 주는 잔이라고 하였을 때 후지노는 받았던 잔을 내려놓고 잠간만 자기의 청을 들어주기 바란다고 하였다.

《난 몇군데 〈한국〉가정에도 가본 일이 있지만 이러한 음식은 처음 보았습니다. 훌륭합니다.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죄송합니다만 이 훌륭한 상차림과 음식들을 사진찍었으면 하는 생각인데 어떻습니까? 참으로 처음 보는 음식들입니다. 과연 차관댁이 아니면 볼수 없는 진귀한 상입니다. 훌륭한 주부의 솜씨입니다.》

후지노의 제의는 죄송한게 아니라 오동원의 부처 특히 미라를 미치도록 기쁘게 하였다. 그는 남편이 후지노의 말을 대강 전달해주는 동안에도 기쁨을 참을길이 없어서 연신 후지노에게 눈웃음을 보내고는 사진을 찍은 다음에 말하였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고맙기 이를데없습니다. 허물치 마시고 댁에 오신 기분으로 많이 들어주십시오.》

《천만에요. 한가지 유감은 있습니다만.》

《무엇입니까? 말씀만 해주세요.》

《이런 음식과 접대를 우리 가족들에게 보이지 못하는게 유감입니다.》

《아이유, 어쩌나! 정말 이분은 세련된 외교가이셔. 여보, 그렇지 않아요?》

미라는 그 기쁨과 흥분을 주체할길이 없어서 남편의 손을 꼭 잡고 진저리치듯 몸을 가늘게 떨기까지 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 진심으로 대해주시니 어찌나 고마운지 모릅니다. 약주도 많이 드시고 이 료리도 골고루 맛봐주세요. 후지노선생님을 위해서 맵지 않게 조미도 했어요.》

《고맙습니다. 나를 위해서 조미방법까지 생각하시다니, 난 조선음식을 참 좋아합니다. 집에서는 김치를 담거먹을 정도인걸요.》

《어쩌면!》

술은 처음 첫 잔은 순 조선음식에 대한 격식을 맞추느라고 국화주로 건배를 올렸지만 후지노를 위해서 일본술 또는 각종 양주, 맥주 등을 기호에 따라 마시도록 하는 한편 식탁을 풍성하게 장식하기 위해서도 여러가지 술을 내놓았다.

밖에서는 한강쪽에서 불어오는 강바람에 정원수들의 나무잎날리는 소리가 계속 들려 술을 당기게 하는 밤이였다. 후지노는 워낙 술이 센 사람이였지만 남의 가정에 외국손님이랍시고 와서 점잖은체 해야 하는 신분으로서 마음껏 마시지는 않고 조금씩 사교적으로 이야기를 하면서 졸금졸금 마시였다. 그러나 국화주라는것이 순하고 향기로우면서도 은근히 취기가 올라 그는 매우 거나한 기분으로 되여갔다.

《취해옵니다. 이 술은 무슨 술입니까?》

후지노는 금잔에 부어놓은 술을 가리키며 오일원에게 물었다. 금빛에 비치여 술빛도 노랗게 보이였다.

《국화주라는겁니다. 국화로 담근…》

《아, 국화! 가을국화! 참, 그럴듯합니다. 가을밤에 국화로 빚은 술, 운치가 있군요.》

밖에서는 계속 바람이 불고 락엽날리는 소리가 들리였다.

《저 그림도 가을이구요.》

후지노는 낮에 바꾸어 걸어놓은 그림을 또 한번 보며 가을일색에 탄복하는듯 하였다.

《어디 그림입니까? 금강산입니까?》

《아닙니다, 제주도 백록담입니다.》

오동원이 대답하였다.

《제주도!》

후지노는 또 한번 감탄을 하였다.

《제주도를 위하여 한잔 듭시다.》

그들은 술잔을 들었다.

《제주도는 〈한국〉의 보물섬이죠.》

《그렇습니다. 보물섬입죠. 제일 큰 섬입니다.》

오동원은 이제야 화제가 이날 밤 연회를 차린 소기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되는 실마리를 쥔것을 속으로 기뻐하면서 맞장구를 쳤다. 그는 후지노에게 모든 성의를 다하여 어떻게 하든지 이번 기회에 제주도《개발》에 한몫 끼워 리권을 얻자는것이였다.

《우리 〈한국〉에서는 제주도를 바람과 돌과 녀자, 이 세가지가 많은 삼다의 섬으로 말하고있습니다. 오직 귀국의 〈원조〉로 〈개발〉되면서부터 보물섬으로 되여가지요.》

《그건 〈한국정부〉의 기발한 착상입니다. 우리는 박군의 이번 아이디어와 그의 내심을 좀 알고있습니다.》

박군이란 박정희를 가리키는 말이였다.

오동원은 《한국》의 관리인 자기앞에서 박정희를 《박군》이라고 부르는것이 조금 듣기 거북했지만 후지노가 그만큼 마음을 터놓는것이라 믿고 오히려 고맙게 여겼다.

《그러고보면 더욱 후지노씨의 이번 방문은 〈한〉일관계에서 새로운 장을 열어놓게 되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잔을!》

순간 오동원을 마주보는 후지노의 눈앞에는 아까 련못에서 먹이를 던져줄수록 더 높이 뛰여오르던 잉어떼들이 새로운 감각으로 떠올랐다. 오동원도 제주도《개발》의 리권부스러기를 얻어먹으려고 그렇게 뛰여오르는것이리라.

《고맙습니다. 오동원씨 내외분의 건강을 위하여!》

후지노도 상반신을 뒤로 젖히고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자기의 잔을 오동원의 잔과 그리고 오일원과 미라의 잔과 가볍게 찧었다.

연회는 점점 화기애애한 가운데 격식없이 고조되여갔다.

후지노는 미라에게 맥주를 권하며 심부름으로 드나드는 수정에게도 앉으라고 하였다.

수정은 정원에서 자기를 보고 기생같다던 후지노의 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가볍게 머리만 숙여보이고 나가려 했다. 그러자 미라가 그의 손을 잡아끌어서 자리에 억지로 앉히였다.

《손님이 저렇게 앉으라고 하는데 앉아야지. 접대하는 수정이가 그래서 쓰나.》

수정은 어쩔수없이 후지노의 앞자리에 앉아서 몸둘바를 몰랐다.

《수고한다!》

그는 기분이 좋아서 수정이 거북해하는것은 알지도 못하고 맥주를 따라서 그앞에 내밀었다.

그리고 미라에게는 이미 따라놓은 맥주잔을 내라고 재촉하였다. 미라는 맥주 세병가량은 아무렇지도 않게 마실수 있는 주량의 소유자였다. 후지노가 따라주는대로 사양하는체 하면서 잔을 비우고 후지노에게는 양주를 따라주었다. 그러나 수정은 후지노가 따라준 잔을 마시지 않았다. 지금은 술이 사교계에서는 녀자들사이에서도, 더구나 맥주쯤은 어지간히 마실수 있는것으로 인식될수도 있겠지만 그는 지금까지 그러한 자리에 나갈만큼 번다한 생활을 한 일도 없었고 오동원의 집에서 손님접대는 하지만 술이란 자기와 같은 녀자는 마셔서는 안되는것으로 알고있었다.

《조금 입에 대는체라도 해. 귀중한 손님이 주시는건데. 내가 아까부터 말했잖아?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실례가 되는 일이 있어선 안된다고. 조금도 들지 않으면 그것도 이런 자리에선 실례야. 귀중한 손님앞에서 례의가 있어야지. 어서 입에 조금 댔다가만이라도…》

《아줌마도, 내가 술을 어떻게?》

미라는 그래도 자꾸 마시라고 하였다. 그는 마치 수정이 그 잔을 마시고 안 마시는데 그날 밤 연회의 목적이 좌우되는듯이 극성스러웠다.

《맥주는 술이 아니라는데도. 외국에선 청량음료로 마시는건데. 수정이는 언제나 현대화가 될가?》

《…》

《아이, 수정인 그런 땐 꼭 촌색시같다니깐. 괜히 우리 집 망신시키지 말고. 어서!》

미라의 말은 상냥하였으나 강요의 가시가 들어있는것을 수정은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속은 점점 편안치 않았다. 금방 일어나고싶었으나 그러지도 못하였다.

맞은편에 앉아서 후지노를 상대로 술을 마시며 단양팔경에 대하여 자랑을 하고있던 오동원이도 지꿎게 굴었다.

《집에 오신 손님이 주시는 잔인데 고맙게 받아야지. 네가 귀여워서 주시는 술이야.》

수정은 미라의 말보다도 그것이 더 언짢게 들리였다. 빈그릇이 눈에 보이는대로 맥주를 쏟아부었다.

후지노는 그러면 안된다고 손을 저었다.

《모처럼 준 맥주를 쏟아버리다니, 그건 실례요. 난 그 잔이 얼른 돌아오기만 여태껏 기다렸는데. 수정아가씨, 내 잔을 돌려주오.》

그는 일본말로 말하고 누가 통역을 해서 수정에게 들려줄 사이도 없이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어느 연회에서나 술자리에서는 의례히 있기마련인, 권하고 사양하고 젊은 녀자들에게는 더 권해보려는 그런 광경이라고도 볼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후지노는 수정이 네가 접대원이나 하녀인 주제에 일본사람이 주는 술이면 감지덕지 고맙게 생각하며 받지 않고 무엇을 그다지도 비싸게 구느냐 하는 눈치같았다. 수정은 예민하게도 그것을 그의 눈에서 읽어내였다.

《우리 수정인 코카콜라나 주십시오.》

난처해지는 좌석을 모면해보려고 오동원이 허둥거렸다.

《정말 그게 좋겠어요. 코카콜라도 술로 알고 후지노선생님이 주시는걸 마시면 되니까요. 그렇죠, 후지노상!》

미라는 한껏 아양을 떨었다. 그리고 코카콜라병을 들어서 후지노에게 주자 그는 그걸 따라서 또 수정에게 주었다.

《마시오. 내가 또 한번 주는거요. 아까 잉어먹이 고맙소. 일본의 우리집에서도 잉어를 기르는데 그것들이 내가 가면 어떻게 아는지 모여와요.》

후지노는 이제는 수정에게가 아니라 미라를 보며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내가 손벽을 딱딱 치면 집의 하녀가 알아듣고 먹이를 가지고 달려오죠. 아까 이 색시가 먹이를 갖다줄 때 난 꼭 우리 집에 와있는 기분이였습니다.》

《고마와요. 그러니까 우리 집에 오셔서 꼭 일본의 후지노씨 댁에 간것 같은 기분을 느끼셨단 말씀이시죠. 고맙습니다.》

《그렇습니다. 련못, 잉어, 하녀… 〈한국〉은 우리 일본이나 꼭같습니다.》

후지노는 점점 수다스러워졌다.

수정은 그만 자리를 일어나 나가려 하는데 후지노가 마치도 그의 일거일동만 지켜보고나 있는듯이 《저거 봐요. 코카콜라도 안 마시고… 이건 좀 섭섭하군.》 하고 말했다.

수정은 마셔야 실례가 되지 않는다는 오동원의 형제 특히 미라의 성화에 마지못해서 코카콜라를 입에 대는척 했지만 마시지는 않았다. 그 잔도 어떻게 해야 좋을지 그 처리에 곤난을 느꼈다. 다른 날은 손님을 접대하는 일이 있어도 음식을 날라다주고 그릇을 내가고 하면 되였지 그날같이 술을 따르고 하는 일은 없었다.

《잔을 후지노씨에게 드려야지.》

미라가 또 훈수를 들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후지노에게 취흥을 돋구어주자는것이였다.

그러나 수정은 도저히 그렇게는 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런데 오동원은 한술 더 떠서 후지노를 향하여 《스카치(영국술의 하나)를 받으십시오.》 하며 자기앞에 놓인 스카치병을 수정이앞에 옮겨놓는것이였다.

후지노는 오동원이 하는 조선말의 뜻을 알아차리고 벌써 잔을 들어서 수정의 앞으로 내밀며 그가 따르는 술을 받을 자세로 나왔다. 수정은 자기앞에 내민 후지노의 반지를 낀 털이 검실검실한 손을 보자 더한층 모욕을 느끼였다.

1초, 2초, 3초… 후지노는 그렇게 기다리다가 인차 표정을 바꾸었다. 그도 외국인으로서의 자존심이 있었을것이다.

《하하하! 고맙소.》

갑자기 억지로 쥐여짜내는듯 한 헛웃음을 터뜨린 후지노가 내밀었던 손을 거두어 빈잔을 내려놓으려 하였다. 그때 오동원이 당황해서 벌떡 일어나며 가까이 있는 술병을 잡으려다가 그것을 넘어뜨렸다. 술이 쏟아져 튀면서 하필 후지노의 앞으로 흘러가 그의 양복앞섶을 적시였다. 그러나 그는 물러나지도 일어서지도 않았다. 금방 몹시 노한 태도였다. 미라는 얼른 그에게로 가서 손수건을 꺼내 술에 젖은 앞섶의 부위를 닦아주었다.

《실례했습니다. 제가 사과합니다.》

오동원도, 오일원도 일어나서 어쩔바를 모르는듯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를 하였다.

미라는 넘어진 술병을 치우고 손수건으로 상을 훔친 다음 새로 병을 따서 후지노의 빈잔에 술을 찰찰 붓고는 사죄하는 투로 말했다.

《제가 대신 따랐습니다.》

《고맙습니다.》

후지노는 수정에게서 받은 무안을 술로 얼버무리려는듯 단숨에 그것을 마시였다.

《부인이 부어주는 술은 각별히 맛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는 일부러 크게 웃어대며 앉은키를 돋구었다.

《모든 잘못을 제가 사과합니다.》

미라는 후지노가 노여워하지 않고 웃어주는데 대하여 새삼 고마운듯 일어나서 다시한번 사과를 하였다.

오동원도, 오일원도 후지노에게 연방 술을 따라주며 굽신거렸다.

수정은 그 광경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안타깝게 후지노에게 비대발괄하며 빌붙는 미라의 눈길이 어쩌다 자기와 마주칠 때는 그 아양을 떨던 얼굴에 살기가 지나갔다.

《수정이 넌 나가라! 꼴 보기 싫다!》

수정은 밖으로 나갔다.

밖에서는 강바람이 세게 불어왔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였다.

연회장에서는 후지노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려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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