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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별열람

제 2 회


제 1 장


2


수정은 연회장과 주방사이의 긴 복도에 있는 창문곁에 서서 밖을 내다보고있었다.

연회장에서는 그를 한번도 찾지 않았다. 후지노의 웃음소리가 가끔 새여나올뿐이였다.

바깥하늘에서는 별찌가 떨어졌다. 벌써 두번째였다. 동갑내기가 죽으면 별똥이 떨어지는것이라고 전에 고향에 있을 때에 어머니가 말한적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강쪽으로는 강변도로로 빈번히 달리는 자동차들의 불빛이 어지러웠고 그너머 저만치 한강에는 안개가 흐르는지 허공이 뿌옇게 흐려보였다. 강은 보이지 않지만 수정이 심란한 때면 고향의 강을 그리는 마음이 언제나 그쪽을 바라보게 하였다.

식모방으로 식모들이 드나드는 그림자가 창으로 보였다. 그들은 식당의 연회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그러고들 있는것이리라. 주방에서도 모자를 벗은 료리사가 이쪽을 기웃해보고 들어갔다. 원래는 수정이 식모들과 료리사에게 연회의 형편을 알려주며 적당히 쉬게도 하고 무엇을 더 준비하도록 알려주게 되여있지만 수정이자신이 그러고있자 모든 질서가 헝클어지고 혼란을 빚어내고있는것이였다.

드디여 연회장에서 사람들이 나와서 응접실로 옮겨갔다. 수정은 바삐 주방으로 가서 심부름을 하는 순애를 시켜 차를 들고 가게 하였다.

그러나 후지노는 벌써 응접실에서 나오고있었다. 오동원형제가 그를 호위하듯 따라 나왔다.

《내가 조금 시간이 바빠서요. 정말 오지 못할것을 댁에서 초청해주니까 온겁니다. 고맙습니다. 아주 유쾌했습니다. 부인, 그 문제는 나중에 오선생과 또 얘기하겠습니다.》

그는 옆에서 소매라도 잡고 늘어질것 같이 안달을 하는 미라를 달래듯 그렇게 말을 하였다.

그 말소리만 가지고는 그날 밤의 연회의 목적을 이루었는지 실패를 하였는지 알수 없었으나 수정이 그렇게 나온 뒤로 오동원형제와 미라는 후지노에게 사과하듯 굽실거리기만 하는 바람에 제주도《개발》에 대한 리권문제는 결정을 보지 못하였던것이다. 또 응접실에서 차도 들지 않고 가는것을 보면 겉으로는 껄껄거리고있었으나 속으로는 후지노가 노여워하고있는지도 모른다.

미라는 후지노를 보내고나서 수정이가 서있는 복도로 뛰여왔다. 그때까지 수정에 대한 불같은 노여움을 겨우 참아왔던것이다.

《나 좀 보자!》

수정은 응접실로 따라 들어갔다.

《너 무슨 심사냐? 오늘연회는 네가 망쳐놨다. 말해봐라!》

미라의 처진 눈이 곤두섰다.

수정은 그러한 때에는 어떠한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빨간 융단만을 내려다보고있었다.

《말해봐!》

《…》

《말 못하겠니? 오늘은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네 말 좀 들어봐야겠다. 오늘 그 일본손님이 어떤 사람인지 너도 모르지 않지? 내가 괜히 너헌테 몇번씩이나 부탁을 하고 새옷까지 해입혔어? 너도 우리 집에 그만큼 있었으면 눈치코치 다 알겠구나.

말해봐. 네가 무슨 량반의 집 딸이냐 뭐냐? 지금은 량반의 집 딸도 그렇지 않아. 촌놈 무지렁이딸을 데려다가 그만큼 때도 벗겨주고 양재학원도 넣어줬으면 고마와서도 손님헌테 술을 부어줄것이지 뭐가 어쨌다고 남의 집 연회를 망치느냐 말이다. 말 좀 들어보자.》

미라는 혼자서 펄펄 뛰며 탁자우에 놓인 책들을 수정이앞에 마구 던졌다. 수정이 아침에 정리해놓은 책들이였다. 후지노는 연회가 있기 전 응접실에 들어와서 거기 장식해놓은 골동품들과 서가의 책들을 둘러보다가 일본력사에 관한 책들을 몇권 뽑아보면서 그러한 책은 일본사람들의 서재에서도 보기 드문 진본이라고 하여 오동원을 매우 기쁘게 해주었던것이다. 그런데 미라는 손에 잡히는대로 그 책들을 던지며 자기의 목걸이까지도 잡아떼려들었다.

히스테리환자를 보는것 같았다.

오동원의 형제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그들도 후지노의 이날 밤의 일거일동과 한마디의 말까지도 종합하고 판단해서 그의 심중을 정확히 알아내자는것이였다. 그래야 앞으로의 대책을 세울수 있는것이였다.

미라는 그들이 들어오자 더 날뛰였다.

오동원이 수정을 딱한 눈으로 보며 미라에게 말하였다.

《엎지른 물을 가지고 뭘 그러오. 그만두오!》

《그만두다니, 이젠 제주도〈개발〉이니 뭐니 하는게 다 틀어지게 되고 우리 집이 망해도 좋아요? 얠 이렇게 방자한 계집으로 만들어놓은것도 모두 당신탓인줄이나 알아요. 밤낮 잘한다, 총명하다, 곱다 하고 말이 모자라서 칭찬을 못다하더니 오늘 꼴 좋습디다.》

미라의 독설은 어느 틈엔가 남편을 늘 경계하는 질투심으로 흘러갔다.

《그만두라는데도, 그리고 수정이 너도 그래선 못써. 같잖게, 나가라!》

그러면서 수정을 보는 오동원의 눈은 불이 이는듯 무서웠다. 어찌 보면 미라보다도 더 혐오로 이글거렸다. 그러나 미라는 분풀이가 다되지 않았다.

《아뇨, 저년 버릇을 똑 떼놔야 해요. 다신 못 그러게 저년의 말 좀 들어봅시다. 내가 저헌테 한노릇이 분해죽겠소.

너 무슨 맘을 먹고 그러는거냐, 속시원히 말 좀 해라, 앙?》

미라는 선자리에서 수정에게로 한발자국 더 다가섰다.

그러나 수정은 아무러한 마음도 먹은것이 없었다. 다만 술을 따르기가 싫었을뿐이였다. 그것은 어떻게 설명할 길도 없었다.

《말해봐라!》

《…》

《아유, 요런 안차고 다라지고. 세상에, 아이구 내가 인복도 없지. 기른 강아지헌테 발뒤꿈치를 물리는것도 류만부동이지. 이놈의 집에서 네가 주인이냐, 내가 주인이냐. 어디 보자.》

그는 수정의 머리끄뎅이를 잡을듯이 팔을 허우적거리며 덤볐다.

오동원이 그의 팔을 잡아 막아서며 수정에게 호령하였다.

《잘못했다고 한마디 못하겠니? 정말 하늘소발통같이 버티고 섰지만 말고.》

그도 수정의 사과를 듣고싶어하는 눈치였다.

수정은 고개를 떨군채 아무도 보지 않고 자신에게 하는 말같이 중얼거렸으나 말은 되지 않았다.

(난 잘못한게 없어요!)

수정은 더는 그들앞에 서있을수가 없었다. 응접실 문을 박차고 나와버렸다. 그가 나온 응접실에서는 미라의 청높은 목소리가 연방 들려나왔으나 무엇이라고 하는지는 몰랐다.

수정은 식모들의 방옆에 있는 자기 방으로 와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집에 와서 욕도 많이 먹고 억울한 일도 수없이 당하여왔지만 그날 밤같이 분한적은 없었다.

미라는 수정의 고향에 있는 아버지까지 걸어서 《촌놈 무지렁이》라고 하였다. 듣는 그 순간에는 명치에 딱 맺히는것 같이 아프기만 하고 슬픈줄은 모르겠더니 지금은 아버지가 무한히 가엾게 생각되며 몸부림치도록 슬펐다.

다른 때는 또 아무리 욕을 먹어도 그로서는 다 할 말이 있었고 까닭이 있어서 그까짓 한쪽귀로는 듣고 다른 귀로는 흘려버릴 마음의 여유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울음만이 나왔다. 그러나 남의 집이였다. 이불에 얼굴을 묻고 어깨만 들먹거렸다. 속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식모들이 모여왔다. 그들은 식당의 뒤거둠을 하면서 수정이가 응접실에서 미라한테 욕먹던 소리를 다 들었다. 미라는 어찌나 큰소리로 발악하듯 욕을 했던지 그 넓은 집 어디서나 다 들렸던것이다.

식모들은 엎드려우는 수정이의 두리에 섰을뿐 그를 위로할 말들을 찾지 못하였다. 평소에 수정은 모든 일처리에 있어서 다른 식모들보다 총명하였고 적절한 조언도 주어왔었다. 식모들을 대신하여 그가 욕을 먹는 때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식모들과 미라와의 중간에 있으면서 언제나 식모들의 사정을 알아주었다. 어찌 고충이 없었으랴만 항상 명랑하려들었다.

그러한 수정이 지금은 우는것이였다.

《수정이 그만둬. 우린 수정이만 믿고 사는데, 네가 울면…》

그러면서 어떤 식모는 벌써 코멘소리를 하였다.

사실 그들은 도적촌이라고 하는 이곳 호화주택에서 식모살이를 하면서 받는 구박과 천대가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제일 나이많은 유씨부인이 들어왔다. 그 집의 침모로 오래동안 있는 중년 녀인이였다. 그는 방에 들어서면서 대번에 수정이를 나무랐다.

《네가 철이 있니 없니? 누구 좋으라고 울어? 남의 집 살려면 딴 비위 하나씩은 다 가지고있어야 하는거다. 주인들이란게 뭐 일만 시키려고 우릴 두는줄 아니? 자기들 속상할 때 욕할려고도 두는거란다. 그런줄 알고 살아야지 뭐 이 집에 와서 사람대접 받아보겠다고. 아서라, 눈물 닦아라.》

유씨부인의 말은 많은 경우 수정의 기분전환을 시켜주는 힘이 되군 했지만 그날 밤은 그의 말도 소용이 없었다.

가슴이 터질것만 같았다. 숨이 막히고 답답하였다.

그는 밖으로 나왔다. 그날 밤은 그놈의 지붕밑에서 잘것 같지 못했다.

그는 강쪽을 향해서 걸었다. 바람은 조금 잦아들었다. 강에 마음이 끌리는대로 강변도로의 뚝을 넘어서 무작정 그쪽으로만 걸어나갔다. 얼마큼 가자 강변모래톱이 발에 밟혔다. 그가 자라난 고향의 단양강에도 그러한 모래톱이 있었다. 거기 가면 신었던 신발도 벗고 맨발로 깔깔한 모래알들의 감촉을 즐기던 때가 있었다. 그 소녀시절의 추억은 그를 더욱 슬프게 하였다.

눈앞에 강물이 보였다. 강건너 외로운 불빛이 물결우에 반사되여 흔들거렸다. 그는 강물에다 그 슬프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흘려버리고싶었다.

그의 뒤에서 발자국소리가 따라왔다.

수정은 놀라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동원의 집에서 그 집 큰아들인 중학생을 가르치는 가정교사 최문상이였다. 수정은 그를 보기가 부끄럽기만 하였다. 필경 그도 수정이가 오늘 당한 일을 알고 따라나온것 같았다. 아니나다를가 문상은 그것을 말하는것이였다.

《수정씨, 너무 괴로워마십시오. 나도 2층에서 다 들었습니다. 나올 때 유씨아주머니한테서도 얘길 들었고요. 몹쓸놈의 집입니다. 나도 분개하였습니다.》

《…》

수정은 그에게는 모든것을 숨기고만싶은 심정이였다. 일체 자기의 비참한것을 문상이 몰라주기를 바랬다. 그런데 하필 오늘 밤 일을 그가 알았으니 부끄러운 가운데 슬픔은 더해가기만 하였다.

문상은 계속 말을 하였다.

《난 그 집이 그런줄은 모르고 집도 비교적 가깝고 해서 가정교사로 왔더니 아주 나쁜 집입니다. 왜인까지 끌어들여서…》

그곳에서 강변도로를 끼고 한 30분 걸어가면 되는 곳에 문상의 하숙집이 있었다. 그들은 강변에서 도로로 올라서서 나란히 걸었다. 주로 문상이 말을 하고 수정은 듣기만 하였다.

《나는 처음 왔을 때 수정씨가 그 집 친척인줄만 알았습니다. 친척이니까 그렇게 못살게 굴어도 허물이 없는것으로 알았죠. 그랬더니 친척도 아닌데 수정씨는 용케 참아옵니다.》

문상은 수정을 위해서 많은 말들을 하였다. 그 고마운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수정은 고향마을을 생각하고 부모와 동생을 생각하였다. 문상도 경상도 농촌출신으로서 고학을 하였으며 농촌녀성들이 도회지에 와서 곤난을 겪고있는데 대하여 깊은 동정을 가지고 이야기하였기때문이였다.

두사람은 오래도록 밤길을 걷고있었다.

오동원을 욕하는 문상의 격분에 찬 목소리는 점점 높아가고있었으나 어쩐지 수정에게는 그 말소리가 마치 고향마을의 안개서린 단양강나루터를 떠나는 마을처녀들의 구슬픈 노래소리처럼 들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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