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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회


제 1 장


6


학생시위사건은 《정부》를 극도로 궁지에 몰아넣게 하였다.

그날 오후에 청와대에서는 긴급《국무회의》가 열리였다. 만약에 시위가 확대될 기미가 보인다면 《비상사태》라도 선포할 예정이였다.

그 자리에서 키가 커다란 문교부 장관 민공식은 허리를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박정희앞에서 쩔쩔매며 사건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낸다고 하였다. 박정희는 그것을 무시하고 사태를 빨리 수습하라고만 지시하였다.

다음날 일본대사가 외무부로 찾아와서 외무부 장관에게 엄중한 항의를 제기하였다. 면담시간은 불과 30분.

신문기자들이 면담을 마치고 나오는 일본대사를 붙잡고 여러가지 질문을 하였으나 그는 할 말이 없다고 일체 대답을 피하였다. 그러자 신문들에서는 이것을 거들며 호상간에 매우 긴장된 정세가 조성되였다고 보도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내외기자들앞에서 발표한 일본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내용이 외신을 통해서 들어왔다.

《〈한국〉의 사태가 앞으로 안정되지 않고 계속 일본을 불안케 하는 기운으로 나간다면 일〈한〉각료회담도 고려될것이다. 이외에 〈한국〉과 관련된 모든 〈원조〉와 차관도 중단될지 모른다.》

대사의 항의나 일본외무성 대변인의 담화내용으로 미루어보면 남조선은 매우 곤난한 처지에 빠질지 모르는 일이였다. 문제는 학생들의 동향여하에 달려있었다.

문교부 장관에게는 련일 청와대에서 추궁이 들이닥쳤다. 민공식은 그때마다 회의를 열고 대책을 강구하였다. 각 국장들과 과장들을 각 대학들에 보내서 감독을 하게 하는 한편 총장, 학장들을 불러들여 학생들의 동향을 청취하였다. 사태의 추이에 따라서는 조기방학을 하도록 조치를 취하며 입학시험도 연기할 예정이였다.

그러나 학생들의 동향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그들은 정상적으로 등교를 하였다.

이번 시위의 특징은 산발적으로 오래 지속되고있는데 있었다. 경찰은 학생들을 수많이 체포하여 문초하고 조사해보았으나 배후관계는 없었다.

《정부》에서는 너무도 로골화된 대일예속화가 빚어낸 사태라고 스스로 인정은 하였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 외교방침을 시정할 의사는 물론 그럴만한 힘도 없었다. 앞으로도 대일관계에서는 변함이 없을것이며 학원에 대한 사찰과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한편 구금한 학생들은 평소부터 주목해오는 사람외에는 전원 석방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민공식은 주무장관으로서 난처한 립장에 있었으나 이제는 조금 한숨을 돌리게 되였다.

그러던 어느날 오동원이 후지노를 데리고 장관실로 그를 찾아왔다. 오동원과는 대학동문으로서 민공식이 4~5살은 우였지만 오동원이 일본의 줄을 잡고있는것으로 하여 장관과 차관과의 관등급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만나면 저절로 장관의 티를 내지 않게 되였다. 후지노와 동행해서 왔을 때는 더구나 그러하였다.

《후지노씨가 장관이 이번 학생소요를 잘 수습한 공로를 치하한다고…》

오동원은 뚱뚱한 몸을 안락의자에 깊이 담으며 굵은 목소리로 후지노의 방문의 뜻을 일본말로 소개하였다. 그들은 후지노와 만날 때는 언제나 일본말이 공용어로 되여있었다.

후지노도 오동원의 옆에 앉아서 머리를 까딱해보이고 미소를 짓다가 그 뻐드렁이를 감추려는듯 입은 다문채 눈웃음만 보였다.

《고맙습니다. 일본은 벌써 따뜻하지요?》

민공식은 자리에서 일어나 한번 더 후지노의 손을 잡아서 흔들고 왜인들이 그렇게 하듯 허리도 굽실거렸다. 그도 후지노와 잘 아는 사이였다.

후지노는 일본개발회사의 고문으로서 제주도관광《개발》에 그렇게 주력하면서 한편으로는 박정희와 일본륙군사관학교 동창이라는 간판을 팔며 필요하다면 《한국정부》의 어디나 안 가는데가 없었다. 그는 일본방위청의 정보원이기도 하였다. 그의 아비는 옛날 일본경시청의 특고계형사로서 숱한 조선사람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던자였다.

후지노는 저의 아비의 대를 이어 또다시 남조선을 침략하는 행위에 가담하고있는것이였으나 그것은 본인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였다. 남조선의 학생운동이 반일적이니만치 그는 서울에 오면 무슨 일이나 만들어가지고 문교부 장관을 찾아보며 그 진상을 알아보는것을 잊지 않았다.

《민장관, 이번 사건에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귀국에 심려를 끼친게 죄송할뿐입니다. 이곳 일을 계속 알고계셨습니까?》

《〈한국〉과 일본과는 일일생활권이 아닙니까. 신문에서도 보도를 했고요. 지금은 어떤가요?》

《별일없습니다. 학생들이 공부가 하기 싫으면 가끔 학질앓듯 그래보는거니까요.》

《그래도 원인이 있겠지요. 어떻게 학질앓듯이야 그렇게 되겠습니까. 혹시 내가 묻는게 실례가 됐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신네들로서는 너무나 심각한 문제가 돼서 차라리 롱담으로 흘려버리시는것 같이도 들리고…》

민공식은 후지노가 말한것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회피하려들었으나 후지노의 그렇지 않은 태도를 보자 허리를 펴고 신중하게 응대를 하였다.

《옳습니다. 심각한 문제긴 합니다. 방향을 상실한 사이비애국심이랄까, 그렇습니다. 애국심이라는 환각밑에 무분별한 국민의 호응까지 받는데 위험성이 약간은 있습니다. 허지만 우리는 귀국의 변함없는 성원이 있는 한 일정한 시기에 가서는 이 모든 잡음은 없어질걸로 압니다.》

후지노도 앉은키를 높이며 말을 하려고 기침을 한번 하였다.

녀서기가 차를 가지고 들어와 앞에 놓고 《드십시오.》 하고 영어로 애교를 떨며 말하는데도 후지노는 고개만 조금 끄덕했을뿐 쳐다보지도 않고 말을 시작하였다.

《난 우리 일본에서 어느 자리에 가든지 〈한국〉과 일본과는 같은 운명체라고 주장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번에 또 그런 사건이 일어나고보니 립장이 난처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우리 일본정계에는 비둘기파도 있으니까요.

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이 카멜레온같은자들아! 너희들은 이랬다저랬다 변해도 일〈한〉관계는 변하지 않는다고. 그러던차에 일단 소란이 가라앉았다는 보도를 듣고 왔습니다. 와서 보니 김포세관은 여전히 친절하고 아까 그 녀서기도 다름없이 상냥한 웃음으로 대하고 영어로 차를 권하는게 좀 달라졌다고 할가. …》

그는 차잔을 들어 한모금 마신 다음 손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아마 우리 일본의 신문들이 과장을 했나 봅니다. 그들속에도 나쁜자들이 많으니까요. 그래 어떻습니까. 류학생도 보내고 연수생은 금년에도 많이 보낼 예정입니까?》

그의 말을 미루어보면 일본에서는 남조선이 바라는대로 공장의 연수생들을 많이 받아줄 방침인것 같았다. 류학생을 보내는 문제는 물론 문교부에서 취급하는 일이지만 공장에 연수생들을 보내는 일도 그들이 일본에 가서 산업교육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문교부에서 취급하게 되여있었다.

민공식과 오동원은 후지노가 묻는 말에 대답하기보다 먼저 희색이 만면해서 서로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였다.

《걱정마십시오. 이미 우리 〈정부〉로서는 귀국정부와 비공식으로 다 굳은 언약이 된걸로 압니다. 〈한〉일각료회담을 비롯해서 각종 회담이나 협정에서 체결된 사항들은 어느 하나도 변경 또는 보류도 없다, 없을뿐아니라 더 강화된다, … 일본속담을 하나 차용하겠습니다. 〈비온 끝에 땅이 더 굳어진다.〉 우리 속담으론 뭘가, 오차관?》

민공식이 오동원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글쎄 〈매끝에 정이 든다.〉쯤으로 되는게 아닐가.》

오동원이 대답했다.

《옳아, 그것 참 좋구먼. 후지노씨, 우리 속담엔 〈매끝에 정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 〈한〉일 두 나라사이는 우리 〈대통령〉이 부자지간과 같다 했지만 부부와 같은 사이, 아무튼 그런 혈연과도 같은 사이가 아닙니까. 연수생문제는 귀국에서 받아만 주신다면 2천~3천명도 좋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러면 나도 안심하고 그렇게 당사자들에게 말해주겠습니다. 사실 최근에는 일본의 각 공장들에서 당신네 연수생들을 많이 요구합니다. 그러다가도 일〈한〉관계에 이번과 같은 구름이 끼게 되면 조금 주춤하거든요.

그래서 나는 먼저 상공부도 찾아보고 이렇게 여기도 온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혹시 시간이 있으면 청와대에 가서도 만나볼가 하는데 이런 실무야 뭐 그 자리에서 다 말할수는 없고… 하여간 고맙습니다.》

후지노는 앞에 놓인 차를 마시려들었다. 민공식은 종을 눌러 녀서기를 불렀다.

《차를 다시!》

녀서기는 식은 차를 거두어 가지고 가서 다시 더운 차를 가지고 왔다.

《드십시오.》

그 녀자는 또 영어로 말하였다. 외국손님에게는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모양이였다.

《일본손님에겐 일본말을 하잖고.》

민공식이 말하자 그 녀자는 또 한번 일본말로 권하였다.

《실례했습니다. 식기 전에 드세요.》

후지노는 이번에는 녀서기를 자세히 쳐다보며 치하를 하였다.

《고맙소.》

이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조성한 다음 후지노는 서류가방에서 한통의 서류를 꺼냈다.

《내게다 누가 이런걸… 나는 믿으려 하지 않지만 당신들은 혹시 참고가 될지 모릅니다.》

후지노는 남조선의 대학생들에 대한 여론조사표라고 하면서 그것을 민공식앞에 내놓고는 그의 기미를 떠보듯 물끄러미 바라다보았다.

《봐도 좋습니까?》

《보시오.》

민공식은 그것을 보면서 얼굴빛이 대번에 하얗게 변하여갔다. 다 읽고나서 책상에 놓고 천정에 시선을 주었다. 천정에는 밝은 낮인데도 불을 끄지 않아서 희미한 불빛이 알릴락말락 보였다.

오동원이 서류를 집어보더니 그도 역시 안색이 달라졌다.

남조선의 대학생들은 일본을 싫어한다. 그들은 일본을 《요시찰국가》로 본다. 일본이야말로 위협적인 존재며 경계심을 한시도 늦출수 없는 달갑지 않은 린접국으로 간주한다.

남조선의 대학생들은 일본의 식민지시대를 겪은 기성세대가 과거를 잊은채 주체성없는 대일관을 갖고있다고 일치하게 불만을 말한다.

왜인들을 《명백한 경제동물》이라고 락인을 찍는 학생 33%.

왜인들을 《정의가 무엇인지, 지성이 무엇인지 모르는 야만인》이라고 하는 학생들도 있다.

민공식은 자기를 빤히 바라보고있는 후지노의 시선을 피하듯 가끔 천정의 그 희미한 불빛에 눈을 주다가 용기를 내서 말하였다.

《후지노씨, 이건 어딘가 편견이 많이 작용한 조사같습니다. 오차관, 그렇지 않아요?》

그는 오동원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그는 이 여론조사가 매우 정확하다는것도 알고있었다. 그러나 후지노앞에서는 그렇게 말하기가 어려웠다. 민공식뿐아니라 장관들 그 누구도, 김종필이나 박정희도 왜인들에 대한 남조선사람들의 감정이 나쁘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왜인들앞에서는 알랑거리고 굽실거리는것이 《국시》같이 되여있었다. 그는 조금전에 대학생들이 공부하기가 싫어서 그런다든가, 사이비애국자라고 말한것을 후회할 생각은 없었다. 다만 후지노가 왜 그 여론조사표라는것을 자기에게 내놓았을가 그것이 궁금하였다. 그것을 잠시나마 생각해보도록 오동원이 후지노를 상대해서 말해주기를 바라고 그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민장관도 말했지만 이건 일본의 좌익기자들이 날조한 여론같습니다.》

오동원도 그렇게 말하고 후지노의 반응을 기다렸다.

후지노는 한참동안 두사람의 거동만 살피다가 말하였다.

《두분을 곤혹에 빠뜨릴 의사는 난 조금도 없습니다. 그걸 보고 그렇게 난처해할건 없어요. 난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자는겁니다. 또 하나는 민장관이 학생들을 어루만지다가는 실책을 할가 념려돼서 참고로… 그리고 난 아까 내가 말한걸 다시한번 다짐해요. 일본과 〈한국〉관계는 부자지간이라 해도 좋고 부부간이라 해도 좋은 운명공동체라 그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내가 보기에도 이 땅에 반일기운이 적지 않다 그겁니다.》

《미안합니다.》

오동원이 궁둥이를 들었다놓으며 앉았다. 후지노는 말을 이었다.

《그걸 어떻게 하면 깨끗이 없애느냐? 난 그걸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두분은 나를 도와줄 생각을 해야지 결코 난처해할건 없어요. 그렇게 쓴 얼굴들을 하지 말고 웃으시오.》

두사람은 후지노가 그 여론조사표를 내놓은 뜻을 듣고서야 비로소 얼굴을 폈다. 민공식은 일어나서 후지노에게 허리까지 굽히고 인사를 하였다.

《고맙습니다.》

오동원도 덩달아 후지노와 악수를 하였다.

《후지노씨의 심중을 잘 알았습니다.》

《내 말이 맞지요?》

후지노는 두사람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일부 사람들은 아직 귀국의 호의를 모릅니다.》

민공식이 대답하였다.

《그럴수 있죠. 여기 오차관네 가정에서도 나는 그런걸 보았는데 다른 사람이야 말할게 있소. 그렇죠? 당신네 가정에도 반일기분이 있죠? 아니, 이건 롱담입니다.》

그는 오동원의 어깨까지 툭 치고 웃으며 말하였다.

그러나 오동원은 그 한마디에 전신이 꼿꼿해지는것을 느꼈다.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물체의 색채까지 희미해졌다. 그러면서도 그것을 내색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웃는 얼굴을 하자 입은 천치같이 벌어진채 다물어지지 않았다. 속은 후들거리며 떨리였다. 그것을 억지로 가라앉혀보려고 식은 차를 마셔도 보았다. 그러나 속은 여전히 후들거렸다.

(오차관네 가정에도 반일기운이 있어요.)

후지노는 민공식을 상대로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고있었으나 오동원은 그 말이 하나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반일기운》이란 소리로만 들렸다.

후지노는 롱담같이 말하였지만 그것은 결코 롱담이 아닐것이다. 언중유언이라고 그속에는 단단한 뼈가 들어있었다. 후지노가 제주도《개발》리권에 대하여 확답을 주지 않는 까닭도 이제야 알아차렸다. 집에 반일기운이 있다고 보기때문인것이다. 그의 집에 반일적인 기운이란 무엇이겠는가?

민공식도 슬며시 걱정을 해주었다.

《차관네 가정에서 반일기운이란게 뭐요?》

《글쎄…》

민공식이 그렇게 걱정을 해주자 오동원의 등에서는 오히려 더 진땀이 주르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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