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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회


제 1 장


8


한강변의 빈민촌에 있는 유씨부인의 친정조카집에서 하루밤을 자고난 수정은 다음날부터 직업을 구하려고 다녔다.

고향집의 절박한 사정을 생각해서도 그러하였고 또 그 집에서 하루밤을 자보았지만 한시가 새롭게 직업을 구해서 나가지 않으면 안될 형편이였다.

단간방이였다. 젊은 내외가 사는 그 단간방에서 신세를 지는것은 거북한 일이였다. 남편은 그날부터는 공장경비실에 나가서 자고 올테니 수정에게는 마음놓고 머무르며 직업을 구하라고 하였다.

안해는 세탁소에서 일을 하였다. 아이가 둘이였다. 그도 수정에게 집에서 아이들이나 봐주면서 천천히 일자리를 얻으라고 하였지만 그것은 다 수정이의 미안해하는 마음을 덜어주려는 마음에서 하는 말들이였다. 유씨부인이 그렇게 사람이 좋더니 그를 닮아서 이들도 그러한것인가.

그러나 수정은 이들이 고마우면 고마울수록 빨리 직업을 구해야만 하였다. 이들의 살림도 구차하였다.

수정은 며칠동안 직업소개소를 여러곳 다녀보았다. 그러나 어딜 가나 실업자들이 차넘칠뿐 마땅한 자리가 없었다. 조금 그럴사한 곳은 보증금이 들어서 엄두도 내지 못하고 물러서서 나오는 일도 있었다.

아침에 유씨집을 나올 때는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를 바라고 떠나군 하지만 저녁때는 어쩔수없이 그 집으로 또다시 돌아와야 되였다.

직업소개소에는 수정이와 같이 직업을 구하러 다니는 녀자들이 많았다. 오전에 이쪽소개소에서 만난 녀자를 오후에 저쪽소개소에서 또 만나서 알은체를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농촌에서 살수 없어 도회지로 온 녀자들이 많았다.

취직자리 하나를 가지고 경쟁도 심하였다. 거기다가 유혹도 많았다. 수정은 그와 같은 생존경쟁속에서 비록 며칠은 되지 않았지만 취직이 얼마나 힘들며 악을 쓰고 덤비지 않으면 안된다는것도 알게 되였다.

어느날은 거리에서 눈에 보이는대로 양복점들을 하나하나 찾아 들어가서 사람을 쓰지 않느냐고 물어보기도 하였다. 어디서나 랭랭하였다. 그러나 수정은 단념하지 않았다. 끝닿는데가 있으리라 굳게 마음을 다잡고 남대문곁의 어느 양복점의 문을 또 밀고 들어갔다.

점방에는 상점주인인듯 한 중년남자가 역시 점원으로 보이는 젊은 녀자와 안락의자에 나란히 앉아있다가 수정이 들어서자 동시에 일어나며 반가이 맞이해주었다.

《어서 오십시오.》

남자가 은근한 태도로 말하였다.

《이리 앉으세요.》

녀자도 자리를 권하였다.

수정은 자기가 손님으로 잘못 보이는듯 하여 당황하였다. 그의 깨끗한 얼굴과 균형이 잡힌 날씬한 몸매에 치마저고리를 입은 옷매무시가 양복점측의 눈으로 볼 때는 틀림없이 봄옷양장을 맞추러 온 녀자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수정은 조금 어색해하며 적당한 말을 찾고있었다. 그러나 주인은 그의 눈치는 알지 못하였다.

《네, 옷을 맞추시려고요? 네, 감이 좋은게 들어왔습니다. 마침 오늘 코오롱텍스가 여러가지 색갈로, 어서 이리 앉으십시오. 어이, 견본 보여드려!》

주인은 녀점원에게 양복천의 견본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양복점은 불경기로 손님이 없던터에 수정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갖은 친절을 다하는것이였다. 수정은 점점 말하기가 어려워졌으나 그렇다고 가만히 있다가는 정말로 안될것 같았다.

《아닙니다. 저는 옷을 맞추러 온게 아니고요, 여기서 혹시 녀직공을 쓰지 않는가 해서 들어왔습니다.》

그러자 굽실거리던 남자의 얼굴색이 대번에 노여움으로 변하며 눈을 데굴거렸다.

《그럼 왜 진작 그러지 못하고…》

진작이라니?!… 수정은 들어서서 말해볼 사이도 없이 자기들이 굽실거리며 덤벼쳤던것이다. 수정이도 살길을 찾아서 양복점의 문을 밀고 들어섰다면 주인이 호들갑스럽게 맞이한것도 역시 삶을 위해서 한노릇이였다. 어느 편도 잘못은 없었다.

무안을 당하고 그곳을 나온 수정은 양복점이 더 있어도 다시는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네거리에 우두망찰 서있었다. 해는 또 저물어갔다. 또다시 강변빈민촌의 유씨집으로 가야만 되였다.

도대체 직업을 구해보려고 나선것이 잘못이였는지 모른다. 수정은 직업소개소로 다니는 동안에 구직자들, 실업자들의 표정을 짐작할수 있었다. 축 처진 어깨들, 공연히 바쁜 녀자들의 걸음걸이… 네거리는 그러한 군상들로 홍수를 이루고있었다. 수정도 그 흐름속에 밀리고있는것이다.

손쉽게 할수 있는 아무 일이나 할 생각을 안하고 직업이라는 환상을 붙잡아보려고 하는 자기가 아직도 세상을 모르는 허영녀였는지 모른다.

직업소개소에 첫날 나갔을 때 거기에 와있던 어떤 녀자가 말하기를 남대문시장 어디에 가면 녀자옷동정을 도매하는 곳이 있는데 그것을 받아서 팔면 하루에 적지 않은 수입을 올린다고 하였었다. 그것은 수속도 아무것도 필요치 않았다. 백원이 있으면 백원, 천원이 있으면 천원어치를 받아서 팔면 된다는것이였다.

수정은 처음에는 그것을 탐탁히 듣지 않았다. 고정된 직업만이 희망이였다. 그러나 며칠동안 그것을 찾아다녀도 헛일이였다. 몇달, 몇해를 두고 직업을 찾아 헤매여도 안된다는 세상이였다.

수정은 하루가 새로왔다. 아무것이나 당장 할수 있는 일을 하는것이다. 그것이라도 하고있느라면 또 무슨 수가 생길지 아는가, 되지 않는 일에 헛된 희망을 걸어놓고 남의 단간방신세를 질 일이 아니였다. 무엇이나 닥치는대로 하는것이다. 그는 녀자옷동정도매소를 찾아갔다.

듣던 말 그대로였다. 비닐봉지에 녀자옷동정이 열개씩 들어있었다. 그 봉지를 스무개만 팔면 웬만한 회사의 녀사무원보다도 나은편이란다. 거리에서 팔아도 좋고 호별방문을 해서 팔아도 좋다. 그러나 경험은 거리에서 팔다가는 경찰의 《교통방해》라는 단속에 걸려서 파출소에 잡혀가 물건을 빼앗길뿐아니라 잘못하다가는 몸을 망치기 쉽다는 말이였다. 《대한민국》의 경찰은 그렇게 질이 나빴다. 그것은 수정도 신문에서 더러 본 일이 있었다.

결국 시장이 제일 좋다고 통계적인 경험담은 말하고있었다. 시장은 누구나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들로 차있어서 녀자들도 구매욕에 들떠있는것이다. 사람도 또 서울시내 어느곳보다도 조밀하다. 발들여놓을 곳이 없을만큼 인산인해를 이룬다. 그들의 틈에 끼워 한손으로 동정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서있노라면 하루에 서른개는 문제도 아니라는 도매소주인녀자의 담보가 박힌 말이였다.

수정은 그 녀자가 가르쳐준대로 한손으로 동정봉지를 들고 서있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의 좌우로 흘러갔다. 그와 같은 행상들은 동정장사뿐이 아니였다.

자물쇠, 라이터, 손칼, 쟈크, 양말, 기저귀, 혁띠, 고무풍선까지 올리고보니 시장은 가히 만화경이였다.

《자물쇠요, 어떠한 도둑놈도 열지 못하는 자물쇠 사려어. 도둑놈 많은 세상에 자물쇠 사려어!》

《라이터요! 단방치기로 불붙는 하꾸라이라이터요!》

《담배 사시오. 가짜담배 아닌 진짜담배 사시오!》

《기저귀요! 기저귀요, 불량식료품 먹고 설사, 거품똥, 푸른 똥 싸도 새나지 않는 기저귀 사려어!》

저마다 소리높이 고객들을 부르며 이동하였다.

그러나 수정은 아직 《동정이요.》 하고 웨치지는 못하였다. 그래도 마수걸이로 웬 중년녀자가 두봉지나 사주어서 부푼 가슴을 안고 계속 한자리에 서있었다.

시장에는 행상들뿐이 아니였다. 앉은장사들도 많았다. 그것도 형형색색이였다. 사과를 몇알 놓고 앉아있는 할머니, 명태 몇마리 놓고있는 할아버지, 팥죽장사, 막걸리장사, 국밥장사, 떡장사…

수정은 한낮이 지나자 몹시 시장하였으나 동정을 열개만 판 다음에 팥죽이든지 떡이든지 사먹기로 마음먹고있었다. 그러나 두개 팔린 다음에는 아무도 사자는 사람이 없었다. 배는 점점 허기가 져왔다. 저절로 시선이 떡장사아주머니에게로 자주 가고있었으나 참았다. 그러자 떡을 거진 다 판 아주머니가 손짓해 불렀다.

《색시, 여기 시장이 처음이요?》

《네.》

떡장사아주머니는 한숨을 쉬였다.

《고향이 어디요?》

떡장사아주머니는 처음 만나면 대체로 듣는 말들을 하고 수정의 사정도 짐작하는지 동정의 빛을 얼굴에 나타냈다.

《세상을 잘못 만났지. 저런 나이에 동정장수행상이 다 뭐요. 고향의 어머니가 알았다간 기절을 하겠소. 그래도 하는수 없지. 살아가는게 그런걸. 동정을 몇개 팔았소?》

《두개 팔았어요.》

《저런! 그걸론 시장세도 안되겠는데…》

《시장세가 있나요?》

수정은 도매소에서도 시장세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하였다.

《이런거요.》

떡장사아주머니는 허리춤에서 종이쪽지를 한장 꺼내보였다.

《색시는 내가 보니까 한자리에 서있던데 그러지 말고 자꾸 걸음을 옮겨 걸어요. 그래야 시장세를 내지 않지 그렇지 않으면 앞에 가방을 멘자가 아무말없이 이런 쪽지를 줄거요. 저녁때 시장세를 내라는 고지서요. 만약 안 내고 가면 어느 틈에 깡패가 와서 덜미를 잡을지 몰라. 색시도 그러니 자주 걸음을 걸어요. 한군데 섰으면 안돼. 저것을 보구려.》

떡장사아주머니가 가리키는 장사치들을 자세히 보니 과연 부단히 자리를 옮기고있는것이였다. 마침 뚱뚱한 배에 가죽가방을 늘이고 작업모에 색안경을 낀 사내가 잽싸게 어느 자물쇠장사치의 주머니에 시장세쪽지를 찔러넣었다. 자물쇠장사군은 물건을 파느라고 걸음을 잠시 멈추었던것이다. 대번에 싱갱이가 벌어졌다. 자물쇠장사군은 허우적거리며 그것을 받지 않으려고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고 시장관리인은 어깨를 으시대며 저리로 가고있었다.

수정은 용하게 그때까지 그것에 걸리지 않았던것이다.

떡장사아주머니는 수정에게 개피떡 다섯개를 접시에 담아서 주었다.

《먹어요.》

《두개만 주세요.》

《다 먹어두오, 내가 주는거니. 나도 색시같은 딸이 있소. 뻐스차장을 하는데 그것도 못할노릇이라오. 세상을 잘못 만났소.》

수정은 떡을 다 먹고 돈을 내려 하였으나 떡장사아주머니는 한사코 받지 않았다.

《장사나 잘하오. 내 말대로 자주 옮겨다녀요.》

수정은 다음부터는 한자리에만 서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여다녔다. 아닌게 아니라 시장세까지 내게 되면 물건은 변변히 팔지도 못하고 세금만 내게 되는것이다. 잠시도 서있지 않고 이리저리로 발을 옮겨놓았다. 다리가 아팠지만 옮겨놓았다.

그러나 그것도 다 헛일이였다. 어떤 녀자아이가 동정을 사자고 해서 보이고있을 때에 세금쪽지는 벼락같이 수정의 품에 날아들었던것이다.

그래도 수정은 한번 시작한 일이여서 다음날도 시장으로 나가보았다. 첫날보다는 요령이 생기였으나 결국 수지가 맞는 장사는 못되였다.

다음은 한강하류지대에 있는 어느 온실농장에 가서 김을 매보았다. 무엇이든지 닥치는대로 해보는것이다. 마른일, 궂은일을 가리지 않았다. 비교적 큰 남새농장이였다. 온실안에서 재래식방법으로 심은 얼갈이배추들을 솎아내고 김도 매주는 작업이였다. 품삯으로는 현금을 주지 않고 저장해놓은 배추나 무우가운데서 상하기 시작한것을 《헐값》이라고 구슬려 그것을 돈으로 쳐서 주었다. 주인은 상하기 시작하는 배추를 그렇게 처분하니 좋은 일이였고 받는 사람들은 시장에 갖다가 팔면 현금보다 낫다는 계산이였다.

수정이도 현품인 배추를 받아가지고 와서 마포시장으로 나갔다. 그러나 거기서도 시장세가 너무 높다고 하여 시장어귀에 벌려놓고 팔았다. 잘 팔릴것으로 짐작되였다.

그러나 한낮이 되였을 때 근처에 있는 파출소 순경들이 나와서 《교통방해》라는 구실로 치우라고 하였다. 그렇게 시장어귀도로에 물건을 내다놓고 파는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였다. 누구인가 나서서 돈을 모아 순경의 입을 막자고 하였다. 수정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차라리 시장안으로 들어갈 일이 아니냐. 그는 물건이 많은것도 아니고 또 순경의 입을 막는데 들일 돈도 없었다.

그래서였는지 모른다. 아무튼 또다시 순경들이 나오더니 시장어귀에 펼쳐놓은 물건들을 마구 차고 짓밟기 시작하였다. 수정은 배추를 몇포기 안기는 하였으나 나머지는 모두 순경의 발길에 밟혀서 오물이 되고말았다.

아, 살기가 힘들다. 세상은 야속하였다. 어느 하나도 그를 위해주는것은 없었다. 그중에서도 《민중의 지팡이》라는 경찰이 제일 미웠다. 그에게 그렇게도 일자리 하나 보장해주지 않는 사회가 허망하였다.

그동안 유씨집이 아니였더라면 어떻게 되였을지 모른다. 고마운 집이였다. 또한 남대문시장의 떡장사아주머니도 고마웠다. 그밖에는 모두 그를 박대하였다. 심지어 농장의 주인까지 현금을 주지 않아 골탕을 먹이였다.

그러나 살아야 한다. 역경에 지지 말아야 하였다. 남대문시장에 가면 그 근처어디에 또 세타를 뜨는 집이 있다고 들었다. 그곳에 또 가보는것이다. 세상에는 끝이 있을것이다. 수정은 순경의 구두발길에 밟히고 남은 배추가운데서 성한 포기로 세개를 보자기에 싸가지고 집을 나서려고 하였다. 남대문시장 떡장사아주머니의 떡 다섯개 신세를 갚자는것이였다.

유씨집 애기엄마가 빨래거리가 있을지도 모르니 기다려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어느 세탁소에서 빨래감을 맡아다가 빨아왔었으나 수도가 고장나서 그것을 빨지 못하였는데 이제는 강물이 풀리니 거기 나가서 빨면 된다는것이였다. 줄곧 있는 일은 아니지만 뜨내기로 얼마간의 수입은 얻게 된다. 좋은 일자리가 나설 때까지 그것이라도 함께 빨아보자고 하였다.

수정으로서도 몇가지 해본 일이 모두 시원치 않아 또 새로운 일을 해보려던 참이여서 마침 잘된 일이였다.

그때까지 월급을 준 다음날에는 정기적으로 고향에 보내던 돈을 이번에는 보내지 못하였다. 전에 보낼 때에는 수일이가 받았다는 통지와 함께 집사정도 자세히 알리더니 돈이 가지 않자 편지가 없었다. 수정의 곤난한 형편도 짐작되여 누이를 더 괴롭히지 않으려고 차라리 편지를 안하는것이리라. 그러나 수정은 인편소식을 통해 집형편을 손금보듯 잘 알고있었다. 오치원이 수정이가 쫓겨난 까닭을 무엇이라고 말하였을지 모르나 그 소식과 함께 아버지는 소작논을 내놓지 않으면 안되였다는것이다.

수정은 너무나 무거운 짐을 몸에 지고있었다. 그때까지는 오동원의 집에서 받는 천대와 고역의 대가로 그 어려운 사정을 겨우 미봉해왔었으나 이제는 그것도 되지 못하여 고향집의 곤궁은 극도에 달해가고있는것이다.

수일이 어찌 편지를 쓰겠는가. 편지가 없는 사연이 그를 더 괴롭히고있었다.

한푼이라도 벌어보는것이다.

아홉시쯤 해서 애기엄마가 한보따리의 빨래감을 가지고 왔다. 이웃의 어떤 녀자의 몫으로 나온것인데 그가 앓고있어서 수정이가 대신 빨게 되였다고 하였다.

수정은 그것을 가지고 강으로 나갔다. 늦추위를 해서 2월이 다 가도록 얼어붙었던 강이 간밤의 비로 풀리기 시작했다. 강복판에도 군데군데 얼음이 풀려서 푸른 수면을 드러내며 강가에는 빨래할 자리도 생겨났던것이다. 수도물이 고장나서 빨래를 못하고 몇푼벌이나마 막혔던 가난한 녀자들은 그 얼음이 녹기만을 기다린듯 강으로들 나왔다.

날은 좋았으나 바람은 쌀쌀하였다. 비끝에도 봄은 활짝 오지 않고 아직도 추위를 매달고있었다.

녀자들은 강변에 솥을 걸면서 해빛이 퍼지기를 기다렸다. 솥을 걸어놓고 애벌 빨았다가 삶아서 또다시 빠는것이다. 일찍 나오기들은 하였지만 물이 너무 차서 얼른 빨래를 시작하지 못하고 솥들만 먼저 걸어놓고 불을 피우기도 하였다. 마치도 강빨래로 봄을 앞당기려는 녀인들같았다.

수정은 고향의 단양강을 생각하였다. 고향집에서도 강얼음이 풀리는 그맘때면 겨울난 옷을 강에 가지고 나가서 빠는 일이 있었다. 어머니도 혹시 오늘 강에 나가서 수정이를 생각하며 빨래를 할지도 모른다. 어머니가 그렇게 강에 나가서 빨래를 할 때면 수정은 강변에서 나무등걸들을 주어다가 불을 피워주었기때문이였다. 고향집의 곤난한 사정, 어머니의 걱정이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고 모든 현상이 그렇게 고향과만 련결되는것이였다.

수정은 다른 녀자들보다 먼저 빨래감을 강물에 넣고 빨기 시작하였다. 물은 손이 저리도록 차거웠다. 얼음쪼각들이 떠있는 물이였다. 온몸이 얼어드는것 같았다.

《물이 차지?》

솥을 걸고있던 녀자들가운데서 누구인가 소리쳐물었다.

《좀 차요.》

《해살이 좀 퍼지거든 빨지 않고.》

《네.》

그러면서도 수정은 그래도 빨아나갔다.

한낮이 지나자 성에장들이 더 많이 떠내려갔다. 사람들의 생활이 어디론가 흘러가듯 성에장들은 아래로, 아래로 흘러갔다.

수정은 일을 해도 흥겹지 못하고 무거운 상념이 머리를 누르고있었다. 그것을 잊어버리자고 빨래방망이질을 힘껏 하였다. 다른 녀자들도 경쟁하듯 방망이질을 하였다. 그 소리들이 강변을 울리고 강건너 공장지대에까지 메아리쳤다.

강건너 강변도로에서 총소리가 들렸다. 녀자들은 일제히 방망이질을 멈추고 강건너를 바라보았다. 어느 미군병졸이 또 누구인가 지나가던 사람을 쏜것 같다고 하였다. 미군의 총신이 해빛에 반사되여 번쩍거리였다. 수정은 처음이지만 다른 녀자들은 종종 보아오는 일이라고들 말하였다. 강건너 도로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가 흩어져가고있었다. 수정이도 그쪽 공장에서 녀성로동자를 뽑는다고 해서 가본적이 있는 곳이였다.

강에는 밀물이 뻗치였다. 서해바다의 조수가 거기까지 오지는 않지만 힘은 그곳까지 미치여 떠내려갔던 성에장들이 도로 밀려오르고있었다.

강에서는 성에장들이 서로 부딪치고 밀리며 부서지고 깨지는 어지럽고 소란스러운 광경이 벌어졌다. 봄이 오면서 해마다 벌어지는 광경이였다.

수정이 그 며칠동안 체험한 세상같았다. 어디를 가나 저렇게 아우성을 치고있었다. 시장의 행상인들, 직업소개소에 모여드는 실업자의 군상들, 일일고용의 표딱지 하나를 얻기 위하여 코피를 흘리며 싸우는 광경들…

녀자들은 말없이 일자리를 찾아다니고있지만 그들의 가슴속은 저렇게 아우성이라도 치고싶은 심정일것이다. 수정이자신도 그러하였다. 누구에게 보낼지 모르는 호소, 오동원을 고발하고싶은 분노… 그러나 어디에도 그의 호소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혼자서 소리라도 치고싶었다.

성에장들의 깨지고 부서지는 광경이 마치도 가난과 치욕의 거리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 모든 녀자들의 몸부림같고 아우성같았다.

그 심정이 빨래방망이를 힘있게 두들겨대게 하였다. 성에장들은 점점 더 거세차게 부딪치고 깨지며 강심에서 밀려난 쪼각들은 강변으로 몰리여 세찬 힘으로 빨래터에까지 덮치여왔다.

《어이쿠!》

녀자들은 빨래감을 안고 얼음을 피해 모래톱으로 물러섰다.

오리떼가 날아올랐다. 그때까지 얼음이 풀린 곳을 따라다니며 헤염치고 자맥질치던 오리들은 성에장 부딪치는 소리에 놀라서 갈팡거리며 갈갈 울어대며 날고 또 날아올랐다.

수정은 막대기를 구해다가 강가로 밀려오는 성에장들을 삿대질하듯 밀어냈다. 그리고 또 빨래를 계속하였다.

바람이 찼다. 물도 찼다. 그의 손은 퉁퉁 부어올랐다. 이제는 추운줄도 모르게 감각이 마비되여갔다.

《이것 좀!》

밀려드는 얼음을 저마다 밀어달라고 소리쳤다. 수정은 그쪽으로 가서 또 밀어주고 와서 빨래를 하였다.

춥고 힘들고 소란스러워도 녀자들은 연방 떠들며 이야기들을 그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추위와 힘든 고역을 잊어버리려는것이였다.

수정의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 얼음에 베여진것이다. 그래도 손은 쉬지 않았다.

옆에서는 녀자들이 빨래삯을 주먹구구로 계산해보았다. 물값이 없으니 얼마간 더 남는다고 하였다. 추위와 얼음과 싸운 보람은 나오는것이라고 스스로 그날의 고역들을 위로하였다.

빨래가 떠내려갔다. 수정은 막대기를 들었으나 팔이 짧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물속에 뛰여들어 빨래감을 건져냈다.

물이 흐르는 아래도리를 손으로 훑어내려 물이 찌게 하고 신발만 벗어서 턴 다음 다시 신고 또 빨래를 하였다.

저녁때였다. 강바람은 서풍으로 더 차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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