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9 회


제 1 장


9


최문상은 광장다리를 건너 천호동쪽으로 걸어가고있었다. 다리에서 오른쪽강변에 멀리 보이는 어디쯤엔가 백제시대의 토성이 있다. 거기로 가는 길이였다.

여기는 원래 광주땅으로서 백제의 고적이 더러 산재해있고 토성은 고적보존으로 지정은 되여있었지만 근년에는 주민들이 밀집하여 토성도 파헤쳐지는 실정에 있었다. 서울시가 여기까지 팽창되고 시내에서 판자촌철거 등으로 쫓겨난 주민들이 밀려와서 강건너로 보이는 워커힐(미8군사령관 워커의 이름을 단 서울시 광장동일대의 언덕, 호텔과 무도장, 도박장 등 유흥시설들이 집결되여있다.)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강변풍경을 이루고있었다.

다리에서 내려다보이는 강물은 푸르고 깨끗하며 유유하게 흘렀으나 강변에는 번잡하고 구차하고 어지러운 생활이 벌어지고있었다.

진정되지 않는 가슴을 안은채 불안이라 할지 불만이라 할지 모르는 상념에 잠겨 어수선한 강변의 풍경을 번갈아 바라보면서 다리우에 서있던 최문상은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는 다리를 건너섰다.

홍수때 물에 잠기는 뚝바깥에는 판자집이나 움막들이 없고 밀보리밭들만 잇닿아서 한가로운 농촌풍경을 아직도 간직하고있었다. 그러나 최문상의 마음은 한가로움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낯을 잔뜩 찌프린채 무엇엔가 쫓기는듯싶은 그런 심정으로 걸었다.

찾아간 토성은 특별한것이 별로 없었다. 고구려나 백제의 토성은 돌로 쌓고 그우에 흙을 덮는것이 특징인데 여기서도 그런 특징을 확인할수 있었을뿐이다.

무슨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온 걸음은 아니였으나 최문상은 몸의 피곤과 함께 마음이 허전해짐을 느끼면서 토성에 앉아보았다.

력사학과에서 동양사를 전공해온 그는 1년전까지만 해도 그저 막연히 동양사를 배워왔을뿐이지 전공할 령역이 구체화되지 못했었다. 작년말경에야 세나라때의 조선과 일본 두 나라간의 관계로 연구범위가 좁혀졌는데 그것은 박정희도당의 대일굴욕외교에 대하여 한 력사학도로서 그나름의 민족적울분이 커가고있었기때문이였다.

그가 이미 알고있는바에 의하더라도 조선민족의 유구한 문화가 일본렬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것은 엄연한 사실이였다. 그 단적인 실례로 고유일본어의 어원을 탐구해온 일본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들수 있었다. 그에 의하면 농사에 쓰이는 고유일본어들은 그 대부분이 조선어의 일본식와전음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곧 조선사람들이 건너가 배워주기 전에는 농사짓는 법도 왜인들은 몰랐었다는 사실을 말하여준다. 청동기와 철제품의 제작기술도 조선에서 건너갔으며 일본에 남아있는 가장 오랜 건물은 백제사람들에 의해 건립된것이다.

이처럼 력사적으로 후진국이였던 일본이 19세기말~20세기초에 조성된 정세를 악용해서 조선을 침략하고 40여년간의 치욕을 남겨놓은것만도 분한 일인데 지금 위정자들은 대일예속외교를 당연한 일로 여기고있으니 력사학도인 최문상이 분개하는것도 응당한 일이였던것이다.

그래서 연구제목을 일단 확정했던것인데 요즘 그 연구에 몰두하려고 하면 할수록 가슴속에 불만이 자꾸만 커감을 느끼는 그였다.

이 땅의 젊은 량심들이 경찰곤봉에 얻어맞아야 하고 애국의 정열이 끓고있는 가슴들이 압제의 무지스러운 발길에 채우고 밟혀야 했던 지난번의 시위를 잊을수가 없는 그였다. 열흘동안의 구금후 《훈방》의 형식으로 놓여나온셈이지만 최문상의 가슴에는 시위대렬에 있을 때 끓던 그 울분이 아직도 끓고있었다.

그러한 그로서는 천여년전의 백제시기에만 눈을 팔고 고적지들을 답사하며 고고학적인 출토품들을 비교연구하는데 온 정신을 다 쏟아부을수 있을만큼 마음을 진정시킬수가 없었다. 시위학생들은 석방되였지만 학원의 자유자체를 감옥에 가두고있는 당국의 처사를 안 보려 해도 안 볼수가 없는 그였다. 《매춘관광》을 반대하여 목이 터져라고 웨쳤으나 지금도 옥진이는 저 워커힐에서 혹은 서울의 하늘을 더럽히며 서있는 호텔들에서 울어가며 몸을 팔아야 하는것이다.

백제건국 초기의 토성을 보려고 일부러 찾아나왔으나 눈에 보이는것은 워커힐이고 외국인들이 물밀듯이 쓸어드는 바로 그 서울에서 쫓겨난 사람들의 가난한 집들이다.

천여년전에 존재한 백제의 력사를 탐구해야만 력사학도라 할수 있는가? 낯을 찌프린채 토성에 앉아있는 최문상은 자기의 정신이 천여년전으로 거슬러올라가기에는 너무나 무거운 짐을 지고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고있었다.

언제인가 본 일이 있는 한 천문학자의 수필이 생각났다. 4. 19의 거리들을 청년학도들의 붉은 피가 적시고있고 온 강토가 들끓고있던 바로 그 시각에도 자기의 직책은 수백만광년거리에 있는 별을 관찰하는것이였다고 쓴 수필이다. 그 천문학자의 글은 공감할수 있는 점도 있고 공감할수 없는 부분들도 있었지만 한가지 명백한 사실은 결코 자기는 그런 위치에 놓이고싶지 않다는것이였다. 이 사회의 젊은 량심들이 피를 흘리고있을 때 수백만광년의 거리를 달리거나 천여년의 세월을 거슬러올라가고있을수는 없는 일이다.

최문상은 일어서면서 생각을 하였다.

외국의 세력들은 이미 너무나 우리의 내부깊이 들어왔고 오늘의 긴박하고 참담한 현실에 비해볼 때 천여년전의 세나라시기는 너무나 멀다. 지금 내가 탐구해야 할 동양사는 양키를 등에 업은 일본제국주의의 조선침략을 기본내용으로 하는 제국주의자들의 동양침략사로 되여야 하지 않겠는가!

그는 토성을 떠나 강변으로 향하였다.

마음을 한번 정하고보니 무겁게 짓누르고있던 불안과 불만이 걷히고 가슴이 좀 열리는듯싶었다. 그대신 최근시기까지 보아오고 느껴오던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머리를 쳐들었다.

어딘가 마음이 개운해지는듯싶으면서도 울분은 갑절 더해지는 심정으로 그는 강변을 걸어갔다.

강기슭의 모래톱에는 자갈을 추는 사람들이 많았다.

문상은 고등학교에 다닐 때 방학을 리용해서 강가에서 자갈을 파본 경험이 있다. 그의 걸음은 저도 모르는 사이 모래톱으로 향했다.

5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장소도 상류로 많이 밀려났지만 자갈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만은 전과 조금도 다름이 없어보였다. 모여들었다기에는 너무 띄염띄염 널려있고 널려있다기에는 모래톱에 너무 가득해보이는 그러한 정도의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 각기 제나름으로 일들을 하고있었다. 그들의 년령과 성별은 각이하고 옷들도 각각이지만 한가지 공통점은 옷주제가 극히 람루한것이였다. 부끄러워서 거리로는 입고 나가지 못할 옷들도 여기까지 입고 나와서는 벗어서 나들이옷처럼 간수해두고 여기서만 입는 옷으로 갈아입고 일하고있는것이다.

남자들은 대개가 반라체로 일한다. 그편이 차라리 보기에 나았다. 드문드문 섞여있는 녀자들은 그럴수도 없어서 옷주제들이 참으로 민망스러웠다.

요즘 가슴속에서 끓어오던 민족의 울분과 이 강변에서 보게 되는 광경들이 하나로 뒤엉키여 더욱 울적해진 마음을 안고 걸어가던 문상은 문득 걸음을 멈추고 한곳을 바라보았다.

벌겋게 흙물이 오른 염색한 작업복을 입고 머리에는 흰 수건을 쓴 녀인이 자갈구뎅이에서 소쿠리를 든채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숨이 차고 허리가 아파서 일손을 잠시 쉬는 자세다. 그런데 그 몸매가 어딘가 눈에 익어보였다. 아무래도 눈에 밟히는데가 있는 녀자의 몸매다.

(아니겠지, 설마…)

문상이 자기 눈을 믿지 않으면서 서있는데 녀인은 기웃하고 무져놓은 자갈더미를 바라보더니 손채양을 하고 해를 쳐다본다. 지금은 몇시쯤이나 되였으며 오늘은 자갈을 얼마나 출수 있으려는지 그런것을 가늠해보는 동작이였다. 그 동작이 문상의 눈에 확 안겨왔다. 수건을 써서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틀림없이 그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리쳐부르고말았다.

《수정씨!》

대답하듯 상대편의 얼굴은 이쪽으로 돌려졌다. 눈만 반짝이는 까맣게 탄 얼굴을 보자 문상은 아차 내가 실수를 했나보다 했었다. 턱이 뾰죽해지고 길어뵈는 그 얼굴에서 수정이의 모습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것이다.

그러나 상대편의 눈이 잘못 보지 않았음을 알려준셈이다. 그는 들었던 소쿠리를 떨어뜨리며 한손을 이마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비칠거리더니 구뎅이 언저리에 걸터앉으려 했다. 그러나 채 앉지를 못하고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말았다.

문상은 당장에 무슨 변고를 볼것만 같아 가슴부터 조이면서 달려갔다. 기절해 정신잃고 쓰러진줄로만 알았던것이다.

《이게 웬 일이요, 수정씨?》

그는 쓰러져있는 수정이를 일으켜주려 하였다. 수정은 얼굴을 땅에 박고 엎드린채 잦아드는듯싶은 가느다란 목소리로 말했다.

《일없어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조금… 기다려주세요.》

그러면서 얼굴에 묻은 모래를 손끝으로 털기 시작하였다. 문상은 그제야 안심하고 그가 일어나 앉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직도 기운이 채 회복되지 않았는지, 부끄러워서 고개를 들지 못하는것인지 수정은 그냥 엎드려있었다.

발을 구뎅이밑 물속에 잠근채 모래우에 쓰러져있는 그의 모습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문상의 마음은 답답해지기만 했다.

누덕누덕 기워입은 염색한 작업복은 완전한 걸레였다. 해진 곳을 각근히 기워입은 그 극성스러움만이 단정하려는 그의 마음씨를 알리고있을뿐이였다. 손발은 볕에 타고 물에 붓고 바람에 터서 말라죽은 소나무껍질처럼 꺼칠했다.

그 모습만 보아도 그가 겪어온 고생들이 어떠한것이였는가를 충분히 알수 있어서 이것이 바로 이 땅의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그는 눈을 들어 멀리 워커힐을 바라보았다. 수정이가 이런 모습으로 자갈을 추고있을 때 외국인유흥객들은 히히덕거리며 바라보고있었겠지 하는 생각에 그만 분격을 금치 못했던것이다.

수정이 일어나 앉았다.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게 된 문상은 옷주제와 손발만 보았을 때와는 비할수도 없는 강한 충격을 받았다. 반년도 못되는 사이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달라질수 있단 말인가! 열병을 앓고난 사람처럼 눈은 퀭 들어가고 까맣게 탔는데도 피기가 없어서 창백해보이는 얼굴이였다.

그의 처량한 모습이 최근시기 서려있던 우울한 마음과 함께 어울려서 가슴속을 파고들었다. 문상은 하고싶은 말이 참으로 많은것만 같은데 할 말을 찾아내기가 어려웠다. 간신히 한마디 물어보았다.

《어디 다치지나 않았습니까?》

수정은 기운이 채 회복되지 않았지만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하였다.

《아니예요,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저 머리가 아찔해서…》

이런 때는 위로의 말을 해야 될듯싶었다. 그러나 무슨 말로 위로를 하랴, 말이 중단되여 그저 덤덤히 서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극도의 영양실조와 과로가 깃들어있었다. 그런데다 전부터 잘 아는 사람이 눈앞에 불쑥 나타나는 바람에 람루한 자기 꼴을 보이기 부끄러운 생각이 치밀었을것이고 그것이 허약한 그 몸에 충격을 주었을것이다. 졸도할 정도로 쓰러졌던 자신이 더 창피해진것이나 아니겠는지, 피기가 없던 그 얼굴이 차츰 뻘겋게 물들기 시작하였다.

문상은 이런 말을 또 건네본다.

《오동원네 집에서 나왔다는 말은 나도 들은적이 있는데요. 그게 언제쯤이죠?》

《최선생이 나가신지 한달쯤 후였어요.》

그것으로 대화는 또 중단되였다.

문상은 아무 말도 없이 교복저고리를 벗고 신발까지 벗었다. 바지가랭이도 걷어올렸다. 수정은 눈이 둥그래져서 그를 지켜보기만 하였다. 문상은 구뎅이로 들어서서 소쿠리를 집어들었다.

《오랜만에 자갈이나 좀 출가!》

《선생님이 어떻게?》

《왜? 못 출것 같습니까?》

《옷을 다 버려요, 그만두세요.》

수정은 소쿠리를 빼앗으려는듯 구뎅이로 따라 들어왔으나 차마 빼앗지는 못하고 무춤 서있었다.

문상은 모래가 섞인 자갈을 소쿠리에 담아들고 짜락짜락 소리를 내가며 물에 헹구더니 솜씨있게 자갈더미로 올려던지였다. 의아스러운 눈으로 보고 서있던 수정이 감탄하였다.

《참, 잘하시네요.》

《솜씨가 이만하면 괜찮죠?》

무겁게 가라앉은 그의 마음을 추슬러보려는것이다.

《언제 이런 일을 다 해보셨어요?》

《고등학교에 다닐 때 두어해 여름 해봤거든요. 학비에 보탬이 될가해서…》

《그랬었구먼요.》

그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문상이 소쿠리를 비우면 수정은 삽을 들고 그것을 채워주기 시작하였다.

《안되겠어요. 그만두세요. 흙탕물이 막…》

문상의 바지에 흙물이 튀였던것이다.

《일없어요, 이쯤이야 어떱니까, 빨면 그만이지요!》

《여전하시네요.》

마음이 언제 풀렸는지 이렇게 말하는 수정이의 얼굴에는 미소까지 떠올랐다. 그리하여 수정은 담아주고 문상은 물에 헹구어 자갈을 추면서 스스럼없는 이야기가 오가기 시작하였다.

문상이 물어보는대로 수정은 자기가 오동원네 집에서 쫓겨나던 이야기며 그후에 겪은 경난을 숨기지 않고 대강 다 추려서 이야기하였다. 억울하고 딱한 일들만 겪으면서도 하소할데가 없었던 그였다. 문상이도 전에 자갈을 추어본 일이 있노라는 말에 우선 그와의 거리가 갑자기 좁혀짐을 느꼈고 함께 일을 하는 가운데 옹이 맺혔던 마음도 어느샌가 풀렸던것이다.

이야기하는데만 마음이 팔렸던 수정이가 문득 정신이 들어서보니까 문상이의 일하는 솜씨는 참으로 빨랐다. 단순히 빠르다고만도 할수 없었다. 격렬한 무엇이 느껴지는 그런 일솜씨였다. 숨소리는 높아져서 씨근거렸다. 그는 미안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소쿠리 주세요, 제가 하겠어요.》

《아니요, 어서 섬겨나 줘요.》

문상은 소쿠리를 내주려 하지 않았다.

수정이가 지나온 이야기를 하면서 자기 마음을 진정시키고있는 동안 문상의 마음은 반대로 더 격동되여갔다. 뭔지 저주롭고 증오스럽고 화가 치밀었다. 최근시기 가슴을 짓눌러오던 울분이 그만 폭발하고야말것 같았다. 뭐라고 목청껏 웨치고싶었다. 그 웨침이 자갈을 추는 격렬한 동작으로 분출되고있었던것이다.

문상이도 잘 알고있는 일이지만 무슨 일이든지 해서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 손쉬운대로 자갈을 추러 나선다. 리력서나 보증금이라는것이 필요없고 입직수속도 없이 언제나 할수 있는 일이지만 일은 어느 막로동보다도 더 힘들고 수입도 토목건축업의 경기에 따라 일정치 않은 일이다.

취직할 희망이 적은 사람들이나 하는 그런 일을 수정이가 하고있는것이다.

민족의 존엄이 모욕을 당하고있음을 느끼는데서 그의 울분은 커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이 자리에서 느끼는것은 민족적인 감정 하나만으로는 다 설명할수 없는 그 무엇이였다. 그러나 자신도 자기 마음을 다 해명할수 없었다. 따라서 수정에게는 그런 말을 할수가 없었다. 그저 직성이 풀리도록 한번 해대고싶은 막연한 충동만 커가서 짜증을 내가며 자갈을 추고있었다.

수정은 조금 쉬자고 한번 권하고 두번 권하였다. 그의 일솜씨에 감탄도 하고 미안도 하고 걱정스러웠던것이다. 네댓번만에야 그가 권하는대로 문상은 소쿠리를 놓고 구뎅이에서 나왔다. 그는 따라 나오는 수정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수정씨가 참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수정은 어리둥절하였다. 수고했다고 말하려던 자기에게 그가 먼저 인사를 했기때문이다.

《아이, 어쩌면 좋아요. 옷을 다 버려놨군요.》

《버리기는 뭘 버려요!》

문상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천천히 강물이 흐르는데로 걸음을 옮겼다. 수정은 따라가며 머리에 썼던 수건을 벗어서 내밀었다.

《땀 씻으세요.》

《네.》

대답은 성큼 했으나 문상은 자기 손수건을 꺼내 땀을 씻었다.

두사람은 강물이 흐르는 곳까지 나와 큼직한 돌 하나씩을 깔고 앉았다. 문상은 교복바지를 입은채로 흙물이 튄 곳만 골라 씻으면서 말하였다.

《가난한 고학생살림을 하자면 이런 빨래방법도 알고있어야 하죠.》

그러면서 웃어보이려고 했으나 얼굴이 조금 찡그러지는데 그쳤다.

수정은 그의 바지를 벗으라 해서 빨아주어야 했을텐데 하고 걱정만 하고있었다. 갈아입고 집으로 갈 옷이 없을테니 그럴수도 없고 해서 미안해하던 그는 손을 내밀었다.

《그 손수건 주세요.》

땀과 흙탕물로 얼룩진 손수건을 수정은 정성들여 빨고 또 빨았다. 그리고는 볕에 단 돌에 널어놓았다.

입은채로 바지를 다 빨고난 문상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일할 능력이 있어도 일자리가 없는 세상이라는건 나도 잘 알고있다고 생각해왔어요. 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까 너무나 막연히 생각해왔을뿐이거든요.》

수정에게 위로가 될 말을 하고싶어서 일부러 꺼낸 말이였다. 그러나 한번 입을 떼고보니 격해졌다. 페부에서 그자신의 신음이 울려나오기 시작하였다.

《돈도 빽도, 사람을 속여넘기는 기술도 없고 그저 착한 마음씨만 간직한 녀인들이 자기의 정직한 노력 하나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 세상입니까? 수정씨 같은 녀성들이 왜 이렇게 험한 일터에서 고생을 해야 합니까? 가슴이 아픕니다.》

수정은 고개를 숙이고 숙연히 앉아있었다.

《그렇다고 내가 수정씨를 도와드릴 힘도 물론 없고요, 그저 세상이 저주로울뿐입니다.》

수정이편에서 도리여 그를 위로하고 안심시키고싶어졌다.

《너무 걱정마세요. 살아갈 길이 나설거예요.》

수정은 지금 자기가 유씨부인의 친정조카네 집에 얹혀있다는것과 고모를 닮아서 마음씨가 착한 집주인이 자기 일을 많이 걱정해준다는것 그리고 여러곳에 연줄을 놓아서 그가 지금 수정이의 일자리를 구해보고있다는것 등을 이야기하였다.

《그런 이야기라도 들으니까 마음이 조금 가벼워지는군요.》

두사람은 흐르는 강물에 발들을 잠근채 한참동안 더 앉아서 이야기를 하였다.

문상은 작별하기에 앞서 이런 말을 하였다.

《마음이 악하지 않고는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란 말을 자주 듣지요. 나는 이 말을 생각하다가는 무서워지는 때가 더러 있어요. 온갖 악들만 판을 친다고 해서 세상이 무서워지는것은 아닙니다. 이런 세상에서는 나자신의 마음도 약해지지나 않을가 그게 무서워지는거죠. 그렇게 된다면 그건 얼마나 무서운 비극입니까! 난 수정씨가 어떤 곡절을 겪어도 언제나 굳세게 아름다운 마음씨를 그냥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나갈줄로 믿고있어요.》

이런 말을 작별인사삼아 남기고 걸어가는 문상을 수정은 오래오래 지켜보며 서있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장편소설 《수난기》 제29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8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7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6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5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4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3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2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1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0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9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8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7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6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5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4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3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2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1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0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9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8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7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6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5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4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3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2회 장편소설 《수난기》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