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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0 회


제 1 장


10


수정은 서울을 떠나서 《마산자유수출지역》에 있는 《하또리》피복공장으로 왔다.

한강주변에서 최문상과 함께 자갈을 춘 그 이후로도 얼마동안 그 일을 계속하다가 마산에 그런 일자리가 있다는것을 알고 온것이다. 양복일이고 해서 지체하지 않고 왔더니 이번에는 어렵지 않게 들어갈수 있었다.

《마산자유수출지역》은 그것의 영어를 략칭해서 《마페즈》라고 부른다.

《마페즈》란 곳은 곧 일본의 조계지와 같은 곳이였다. 조계지란 제 나라 땅의 일부를 남의 나라에 내여주고 그곳에 가면 이방인같이 되며 제 나라의 법도 통용되지 않는, 지금은 세계 어디에도 없는 낡은 시대의 침략적인 유물인것이다.

그런데 마산에는 그 조계지와 같은것이 시대에 역행하여 새로 생기였다. 명칭은 조계지라 하지 않고 《마산자유수출지역》이라고 한다. 그러나 본질은 조계지, 치외법권의 지역인것이다. 아니, 그것은 일본군국주의재침에 문을 활짝 열어주고있는 곳이다.

수정은 그 사정을 모른다. 수정이뿐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찾아서 그곳으로 모여드는것이다.

《하또리》피복공장은 규모가 컸다. 수정은 직접 그 공장의 전무 아쯔마와의 면담끝에 채용되였다. 그는 수정이 양재학원을 다녔다는 리력을 보고 수련기간 3개월을 면제해주었다.

수당까지 합치고 무엇무엇 계산하면 장차 아버지, 어머니를 모셔올수도 있지 않을가 하고 생활설계를 꾸며보기도 하였다.

부모를 모셔오는것이 수정에게는 최대의 목적이였다.

수정은 매일 밤 열시까지 잔업을 하였다. 《마페즈》의 일본기업체들에서는 기본월급이 없는 일당제이기때문에 일을 많이 하면 할수록 수입이 많아진다고 했다.

흐름식작업이였다. 앞공정에서 넘어오는 일감을 받아서 제때에 처리한 다음 다음 공정에 곧 넘겨주어야 작업의 흐름이 중단되지 않고 제대로 흘러간다. 조금이라도 지체하는 때에는 앞에서 빨간 불이 꺼졌다켜졌다 하면서 뺑뺑 소리까지 내여 독촉을 한다. 녀감독이 달려온다. 순간도 한눈을 팔아서는 안된다. 두시간에 한번씩 10분동안의 휴식시간이 있었다. 그때에 쉬는것이다. 기계가 돌아가듯 계속 손을 놀려야 한다.

총감독이라는 왜인이 높은 전망대에 올라앉아서 녀성로동자들의 작업상태를 감시하고있다. 전망대에서는 어느 작업장소도 손금보듯이 볼수 있었다. 또 총감독은 쌍안경까지 가지고있어서 세밀한 부분까지 감시하게 된다. 녀성로동자들은 언제나 그 총감독의 예리한 눈을 잔등에 느끼면서 손을 재게 놀려야 한다. 노예취급을 당하는 기분이였다.

수정도 그것을 다 참아야 했다.

그와 함께 일하는 로동자는 열일곱살 난 소녀인데도 그 고역을 감당해나가고있었다.

《언닌 이런데서 일할 사람이 아닌데 왜 왔죠?》

어느날 그 소녀는 무엇을 보고 그렇게 말하는지 속삭이듯 물었다. 자갈 출 때 볕에 몹시 그슬렸던 얼굴도 이제는 그늘에서 희게 되였고 서울에서 자연 몸에 배였던 도회풍의 몸놀림이 촌에서 왔다는 소녀에게는 그렇게 보였는지 모른다.

《그런 말 하는거 아냐. 이렇게 일하는게 제일 좋은거야.》

오동원의 집에서 일은 비록 험하지 않았는지 모르나 옛날 몸종같이 미라의 화장하는 시중까지 들어줘야 하던 생활에 비기면 이것은 그래도 견딜만한 일이였다. 고되다 하더라도 거기서 생활의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하였다. 문상이 언젠가 녀성로동자가 되라고 권고했던 일을 그는 생각하였다.

《마산자유수출지역》에 근무하는 녀성로동자들이 거의 2만명이나 되였다. 남쪽 각지에서 모여들었고 그들의 학력도 여러층이였다. 대학을 나온 녀자도 적지 않았고 고졸, 중졸… 수정이 같은 중졸이 절대다수였으나 학력을 말하자는것이 아니였다. 그들이 모두 하나같이 젊고 발랄하다는것이였다. 누구나 다 왜인공장주들에게 착취를 당하며 감시를 받고있지만 축잡히고 살지 않겠다는듯 잘들 웃고 떠들었다.

《고향엔 누가 계시지?》

수정은 소녀에게 물었다.

《어머니, 아버지 다 계셔요.》

《농사를 지어?》

《그것도 못 짓게 됐어요.》

《왜?》

《고속도로가 지나갔거든요.》

수정은 자기 집사정과 비슷한데 놀라며 전망대를 훔쳐본 다음 말하였다.

《그래도 아버지만 건강하시면…》

《306호!》

전망대에서 일에 집중하라는 주의가 내렸다. 작업장에는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고 재봉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렸다.

왜인총감독은 로동자들의 이름은 다 기억해두지 못하고 번호로 불렀다. 그러다가 그자의 입에서 녀성로동자의 이름이 나오게 되면 그들속에서 화제거리로 되였다. 그자가 그 녀성로동자에게 관심이 있어서 이름까지 기억해둔다는 뒤소문이였다. 수정의 번호는 306호였다. 꼭 감옥과 같은것이다. 수정은 이야기하던것을 그치고 일에 열중하였다.


《자유수출지역》으로 된 마산은 변모되여간다고 하였다. 1876년에 일본의 강요에 의하여 이루어졌던 《조일수호조규》로 개항한지 근 100년, 아름다운 항구로 손꼽히던 마산은 또다시 왜인들에 의하여 달라지고 또 달라져가고있었다.

마산은 겉보기에는 경제적으로 풍성거려보였다. 거리에는 술집이 늘고 다방이 늘었다. 호텔건물이 키를 높여가며 자랑한다.

새벽부터 통금고동이 울릴 때까지 일본제 《혼다》오토바이들이 소란스럽게 달린다.

《유레떼… 유레떼 요꼬하마…》 하며 곳곳에서 일본가요를 불어댄다.

아무튼 마산은 속이야 어찌되든 겉으로는 활기를 띠고있었다.

그러나 이곳은 일본의 식민지, 이름그대로 왜인들이 마음대로 행세하는 《자유지역》인것이다.

수정은 여기서 그 소음들을 들어가며 밤마다 야간작업을 하였다. 밤에는 마산앞바다에서 바람이 불어오건만 온종일 다리미와 싸우고있는 그의 등에서는 땀이 흘렀다. 이마에는 땀띠가 돋았다.

수정은 그렇게 일하였다. 벌써 두달이 지나갔다. 이제는 처음 들어와서 일하던 때의 긴장감도 기대감도 사라지고 《마페즈》란 곳의 현실이 제대로 눈에 들어오게 되였다.

로임봉투가 무엇보다도 그 모든 사태를 잘 말하여주었다. 겨우 제 입벌이나 될 정도로서 고향집을 생각할 여지는 없었다. 그는 일할 열성도 별로 생기지 않았다. 손동작은 점차 떠지며 일감이 앞에 와서 밀리기 시작하였다. 앞의 신호불이 깜박이며 뺑 하는 소리를 내였다. 수정은 정신을 가다듬으며 손을 빨리 놀렸다.

《뭐야?》

전망대에서 또 소리를 쳤다. 이번에는 누구를 두고 소리치는지 번호는 지적하지 않았다.

소곤거리며 일하던 속삭임은 또 뚝 그쳐지고 기계돌아가는 소리만이 가락을 맞추듯 들리였다.

녀감독이 수정에게로 왔다.

《전무헌테 가봐.》

《네?》

수정은 자기의 귀를 의심하였다. 전무가 그를 부를 일이 무엇일가, 혹시 사람을 헛갈리고 하는 소리가 아닌가, 그는 다시 녀감독을 쳐다보았다.

《전무헌테 가보라는데도.》

주위의 로동자들이 모두 의아한 눈으로 수정을 보았다.

면도자국이 새파란 전무 아쯔마는 뾰죽한 턱을 들고 문에 들어서는 수정을 맞이하였다. 돌아가는 선풍기의 바람방향을 그에게로 돌려주었다.

《간상은 일 잘한다고 듣고있소.》

그는 수정의 성인 《한》자를 그들의 발음대로 《간》이라고 하였다.

《아직 잘 못합니다.》

수정이는 그앞에 두손을 모으고 서서 말하였다.

《그런데, 어떤가. 우리는 수정을 일본본사에 연수생으로 추천할 생각인데.》

아쯔마는 그 말을 해놓고 수정이 좋아서 깡충 뛰기라도 하는것을 기대하는 사람같이 저부터 먼저 입이 벌어져 금이가 쏟아져나올것 같았다.

수정은 별로 반갑지 않았다. 그는 지금 일본에 갈 형편이 못되였던것이다. 가족문제를 수습하는 일이 급선무로 나서고있었다.

《나는 일본에 갈 형편이 못됩니다.》

《뭐?》

아쯔마는 뜻밖의 대답에 놀랐다. 약간 노여워하는 빛까지 얼굴에 나타났다.

《무슨 형편이요?》

《그럴 사정이 있습니다.》

수정은 자기의 착잡한 심정을 상대가 리해하도록 말할만 한 일본어를 배우지도 못하였거니와 또 그럴 생각도 없었다.

《모를 일이다. 남들은 일본에 가지 못해 야단들인데…》

아쯔마는 일본본사에 있을 때부터 남조선의 녀성로동자들을 연수생이라는 이름으로 데려다가 부족되는 로력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본사의 로력사정을 잘 알고있었다. 그래서 부임해오는 초기부터 파견할 대상을 물색해왔었다. 이번에는 제3차로 15명을 보내는데 수정을 후보로 내정하고 부른것이였다.

《그래도 잘 생각해봐. 기회는 두번다시 없으니까.》

《알았어요. 허지만 저는 갈 사정이 못됩니다.》

《그러면 명단에서 지워도 좋은가?》

아쯔마는 장부 같은 책을 들여다보며 다짐받듯 말하였다.

《유감이군. 가면 일도 잘 배우고… 남들은 가지 못해 애쓰는데.》

《그래도 저는 사정이…》

《결혼을 하는가?》

《아닙니다.》

아쯔마는 더 강권하지는 않았다. 본사에 못 갈 형편이면 현재대로 일을 잘해줘도 좋은것이다.

《그러면 여기서도 일을 잘하라구.》

《잘하겠습니다.》

작업장으로 돌아오자 벌써 다른 로동자들이 부러움 반, 비난 반의 눈길들로 그를 보았다. 녀감독이 전무가 부른 까닭을 말한 모양이였다.

《언니, 일본 가요?》

소녀가 호기심을 가지고 물었다.

《아니.》

《안 가요?》

《일본은 무슨 일본이라고 그래.》

《그래도 아까 휴식시간에 다들 그렇게 말이 돌았어요. 언니는 얼굴이 고와서 일본 가는데 뽑혔다구.》

《괜한 소리야.》

이곳 《마페즈》에서는 덮어놓고 일본을 숭배하는 바람이 일고있었다. 그곳에 가면 돈을 번다는것이였다. 하기는 이곳 《마페즈》와 일본현지 본사의 임금수준을 비교해보면 여기는 거기의 4~5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마페즈》에 와있는 일본기업체들에게 있어서 이 땅의 로동력은 과연 《우수하고 저렴한》것이였다.

그래서 일본기업가들은 말한다.

《〈한국〉은 기업활동의 락원이다.》

《〈한국〉은 돈벌기 가장 좋은 곳이다.》

왜인들은 남조선사람들을 녀자나 남자나 할것없이 돈을 벌어주는 《산 기계》로만 간주한다. 그런데 모를 일은 남조선사람들은 또 그들대로 일본에 가고싶어한다는것이다. 이곳보다 4~5배나 된다는 《높은 임금》이 그들을 유혹하고있었다.

수정은 점심시간에 바다로 나가보았다. 만조의 바다바람이 시원하였다. 로동자들이 많이 나와있었다. 그들은 무리를 지어서 바다가를 거닐었다.

수정은 혼자였다. 전무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게 되였다. 역시 갈수 없는것이였다. 집을 어떻게 하고 일본엘 가랴.

여러척에 달하는 흰 빛갈로 장식된 왜인들 소유의 소형선박들이 부두에 매여있기도 하고 어떤것은 먼바다로 나가서 원을 그리며 돌기도 하였다. 앞으로 마산항구보다 이곳 《마페즈》의 부두가 더 커진다고 하였다. 몇만톤급의 배도 마음대로 드나들도록 말이다. 지금도 5천톤급의 배가 두척이나 와서 닻을 내리고있었다. 갑판에서 선원들이 란간에 배를 걸치고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녀성로동자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저것들은 녀자들만 보면 손짓이야. 왜놈이면 제일인줄 아는가봐.》

《그럼 넌 왜놈이 제일 아니면 일본본사에 가고싶지 않냐?》

《그것허구 이것허군 딴 문제다.》

수정이 보이지 않는 바위에 앉아서 물에 발을 잠그고있는 네댓명의 녀성로동자들이 재잘거렸다.

《요샌 왜놈들이 점점 망측해간다. 녀공들을 모두 도둑년처럼 여기잖니. 처음엔 그러지 않더니 몸수색하는게 뭐냐? 얇은 옷은 겉으로만 봐도 됐지. 우리를 사람으로 보면 그렇게는 못할거야. 개새끼들!》

《그런 땐 항의를 해야 하는건데 항의만 해도 자유지역설치법에 위반된다고 〈한국무스메 사요나!〉 하는거야.》

《무스메란 말 가시내란 말이가?》

《양놈들은 쌕씨 쌕씨 하더니 왜놈들은 무스메 하잖아.》

《그것들은 왜 우리완 반대로 말을 할가, 우린 남자를 머스마락카잖나?》

《옛날에 우리가 모두 거꾸로 가르쳐줬다더라. 그래서 가시내도 무스메라고 일러주고…》

녀성로동자들은 왜인들을 어지간히 싫어하는것 같았다.

《얘, 그 곤도란 총감독 있잖니? 그게 또 첩을 갈아댄다더라.》

《그건 개니까 그렇다치고 가는 년들은 뭐가 좋아서 그런다던?》

《다 말 못할 사정이 있는거지 뭐, 요새 밤이면 려관에 출근하는 애들이 늘어간다더라. 〈마페즈〉엔 일자리가 있다는 바람에 모여왔다가 그 꼴이 된거지 뭐냐. 고작 7천, 8천원 받아서야 밥값도 겨우 되잖니. 마음이 조금만 들떠봐라, 그렇게 되기 첩경 쉽다.》

《참, 저 다리미질하는 예쁜 애 있잖니. 오늘 전무가 불러서 일본 가라는데도 안 간다 했다더라. 얼굴이 예쁘니까 뽑혔을거야. 그런데도 안 간다는걸 보면 아직 여기 사정을 모르는 모양이지, 로임이 몇푼 안되는줄도 모르고…》

《가시내두, 그런 애도 더러 있어야지, 이건 모두 미쳐서 왜놈들헌테 달라붙어봐라. 그땐 우리들이 더 망신이다. 녀자가 깔끔하게 처신할줄도 알아야지. 난 그 다리미질하는 애, 뭐랬니 이름이? 수정이? 그애가 된 애로 본다.》

수정은 자기의 이야기만 아니였더라면 그들 틈에 끼워보고싶었지만 자기의 말이 나오자 살며시 자리를 떠서 저쪽으로 갔다.

수정은 언제인가 고향에 한번 갔다올 생각이 간절하였다. 아버지의 병환도 직접 눈으로 보고 앞으로 가족이 살아갈 방책도 세워보는것이다.

그러던 어느날은 희한하게도 전망대에서 곤도가 내려오고 녀감독만이 작업장을 부지런히 돌아다니더니 오후에 어떤 귀한 손님들이 공장을 시찰하러 온다고 하였다. 점심시간에는 작업장을 청소도 하며 법석을 떨었다. 전에도 가끔 그런 일이 있었다.

오후에 곤도가 앞에 서서 손님들을 안내해가지고 들어왔다. 그뒤로 전무가 대여섯명의 손님들과 함께 들어오는데 뜻밖에도 그중에는 오동원과 후지노의 얼굴도 보였다. 수정은 순간 반사적으로 고개를 떨구며 그들의 눈을 피하였다. 그들과의 관계에서 잘못한것은 없지만 만날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였다. 불쾌한 인물들이였다.

그들은 작업장을 한바퀴 돌아보면서 수정이 일하는 자리에 이르렀다. 수정은 그들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일손만 계속 놀렸다. 원래는 잠간 일어난다든가 해서 목례를 보내는것이 례의겠지만 오동원을 보지 않자니 그럴수밖에 없었다. 손님들은 흘러가듯 다음 작업대로 옮겨갔다. 수정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곁눈으로 지나가는 그들을 훔쳐보았다. 그중에 오동원이 보이지 않자 자기의 등뒤에 아직도 그가 서있다는 감촉을 받으며 등골이 오싹해질 때 오동원의 뚱뚱한 체구가 앞선 사람들을 따라가다가 불쑥 뒤를 돌아보는 순간 수정과 눈이 마주쳤다. 그자의 눈은 피발이 선듯 하였다. 수정은 얼른 외면하고말았다.

오동원은 직책상 이곳 《마페즈》에 오게 되여있는 인물이였다. 수정은 그와는 앞으로도 또 만날지 모른다. 그러면 대수냐, 그러나 불쾌한 대면이였다.

다음날 수정은 전무의 부름을 또 받았다.

《앉소.》

전무는 앉으라고 권하였다. 수정은 전무앞에서 먼 자리를 골라앉았다.

《수정이는 오동원차관을 잘 아는가?》

그는 전무가 부른 용건이 엉뚱한데 놀랐다. 수정은 잠간 생각하다가 말하였다.

《그 집의 하녀였습니다.》

《하녀?》

전무는 무슨 비밀이라도 알아낸 사람같이 고개를 몇번이고 끄덕이며 말하였다.

《그랬던가, 그랬었군!》

그는 일어나서 팔짱을 지르고 방을 한바퀴 돌고나서도 무슨 짐작이나 혹은 의문이 생기는지 또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인사를 안했나, 무슨 말 못할 일이라도 있었나?》

참으로 딱한 일이였다. 그 어느 편도 대답하기 싫었다.

《말하기 어려운가? 알만 해. 그래도 내가 한가지만은 말해두는데 전에는 주인이였고 또 현재는 당국의 높은 관리인데 인사를 해야지. 그게 례의가 아닌가? 난 수정이를 좋게 보기때문에 이런 말을 해주는거야. 알겠나?》

수정은 제나름대로 생각해버리는 전무를 피해 방에서 얼른 나가고만싶었다.

그런데 전무의 말은 너무도 놀라왔다.

《수정인 우리 공장에서 나가게 돼있어.》

수정은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전무는 그를 딱한 눈으로 보고있었다. 모든것이 짐작되였다. 오동원이 무엇이라고 한것이 틀림없었다.

《내가 왜 공장에서 나가야 됩니까?》

《그건 묻는게 아냐, 건방진 놈!》

전무의 《건방진 놈》이라는 마지막말은 수정이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오동원을 비난한것이였다.

오동원은 일본에 연수생들을 보내는것과 관련하여 《마페즈》에 있는 일본기업체들의 협력을 얻으러 왔던것이다. 당국으로서도 추진시키고는 있지만 제일 좋기는 일본기업체들이 자체로 선발해보내는것이였다. 그러면 저희네는 통계만 장악하고 려권이나 내여주면 되는것이다.

《하또리》피복공장에도 그래서 후지노와 함께 제주도로 가던 길에 들린것이였다. 제주도《개발》사업은 그동안 많이 진척되였다. 오동원은 그가 계획한대로 관광지대의 일부를 미라의 오래비의 명의로 불하받아서 투자하려는것이였다. 이제는 시공에 들어갈 단계에 이르러서 후지노와 함께 가던 길이였다.

공장전무가 보여주는 연수생파견후보자명단에서 그는 수정의 이름을 보았었다. 그의 이름에는 붉은색연필로 부결한다는 표시가 되여있었다.

《이건 왜 부결이 됐습니까?》

오동원은 전무에게 물었다.

《일본에 안 가겠답니다.》

《안 가겠대요?》

오동원은 수정이 어떤 경로로 그곳까지 왔는지 모르나 자기를 보고도 외면한것이 발칙스러운데다 일본에도 안 간다는것이 괘씸했다. 무엇인가 사사건건 그에게서 도전을 당하는것 같았다.

《이런 녀자는 공장에서 내보내는게 좋겠습니다.》

오동원은 속에서 부아가 끓어올랐으나 온화한 목소리로 말하였다.

《왜 그럽니까, 일본에 안 간다고 해서입니까? 혹시 무슨 다른 리유라도?》

전무가 오동원에게 따지듯 물었다.

《다른 리유는 별로 없고, 여기 와서 일하면서 일본에 가라는데 제 맘대로 안 가겠다고 하면 앞으로 그 영향이 어떻겠습니까? 우리 〈정부〉로선 여기 〈마페즈〉에 좋은 녀성로동자들만 보내고싶은 심정이지만 그렇게 다 선발할수는 없고요, 안 가겠다는 녀자가 발견된 이상에는 내가 모른체 할수는 없습니다. 후지노씨, 그렇잖습니까?》

오동원은 후지노에게도 자기의 뜻을 알리고싶었다. 후지노도 수정을 알아봤을지 모른다. 그것이 또 《당신네 집에도 반일적인 기분이 있죠?》 하는 식의 구실을 줄수도 있었다.

후지노는 오동원에게는 직접 대답을 하지 않고 전무에게 말을 하였다.

《오동원차관은 철저한 친일사상가라 그 말이요.》

오동원은 만족한 나머지 전무에게 굽실거려보였다. 전무는 《허어!》 하고 감탄해보인 다음 말하였다.

《그래도 난 이 녀공이 일을 잘하기때문에 현재대로 쓰려고 하는데요.》

《내보내는게 좋겠습니다.》

오동원은 부드러우나 단호히 말하였다.

《그 권고를 존중하겠습니다.》

전무는 녀성로동자 한명 내보내는 문제를 가지고 오동원과 옥신각신할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오동원을 현관에서 바래주고 돌아서는 길로 뇌까렸다.

《건방진 자식!》

제따위가 무엇이기에 《마페즈》에까지 와서 관료의 권한을 행사하려드느냐 말이다.

전무는 오동원을 일본의 권위를 몰라보는 건방진 놈이라고 단정하였다. 그렇기때문에 수정이앞에서도 불쑥 《건방진 놈.》이라는 말이 튀여나왔다.

수정은 자기가 또 직업을 찾아 헤매는 모습을 눈앞에 그려보고있었다. 직업소개소, 삯빨래, 시장, 자갈추기 등 실로 암담한 날들이였다.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빚은 또 어떻게 갚는가. 자갈을 추다가 마산까지 오자니 려비도 필요하였고 이런저런 준비도 해야 하였다. 와서도 빚을 졌다. 일정한 직업이 있다는 그 한가지만 믿고 외상을 준 구멍가게주인의 신의를 저버릴수도 없지 않은가. 속으로 셈을 해보았다.

부당한 해고에 대하여 항의도 할수 없는것이였다. 파업권도 없었다. 아무데도 호소할 곳이 없었다. 자신이 또 슬프기만 하였다. 이런 해고는 오동원과 관련되여있는듯 하나 전무는 그것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는 마루바닥만 내려다보고있었다. 조금전까지는 전무의 방에서 나가고만 싶더니 이제는 그럴 용기도 없었다.

《수정이!》

전무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불렀다.

《일본에 가오. 일본에 가면 기술을 배울수 있소.》

《…》

《일본에 가지 못하는 사정이 뭐요?》

《집 떠날 사정이 못됩니다.》

《지금 집에서 다니고있소?》

《아닙니다.》

《고향이 어디더라?》

전무는 연수생파견명단을 들여다보았다.

《아, 여기가 아니군. 그러니까 현재도 집에서 다니는게 아니고 하숙에 있을텐데… 그러면 돈때문이겠군. 알만 하오. 그런 사정이 있는 녀자들도 있었소. 진작 그렇게 말하지 않고…》

전무는 어떻게 해서든지 수정을 연수생으로 보냈으면 하는 눈치였다. 그새 보아왔으니까 일솜씨를 인정해서 그러는가? 혹시 녀성로동자들속에서 흔히 돌아가는 말대로 일본으로 보낼 처녀들을 뽑는데는 인물이 잘 생겼는지 그 점부터 본다는 그것때문일가?

수정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전무가 친절을 보이며 말을 걸었다.

《우리 공장에서 나가면 어디 취직할만 한데라도 있소?》

《없어요.》

《그것 참, 안됐소. 여기 〈마페즈〉에서는 다른 공장에 취직할수도 없을것이고…》

《왜요?》

《그럴 까닭이 있소. 아무튼 일이 딱하게 됐소. 앞으로 어떻게 할 작정이요?》

《…》

《집사정이 딱한것 같군. 우리 공장에는 그런 애들이 많소.》

《…》

《집사정이 난처해서 그런다면 선금을 줄수도 있소. 얼마나 요구되오?》

수정은 고개를 들고 잠시 그를 쳐다보았다.

일본으로 가지 않으면 실직을 당하고 다시 헤매야 한다. 빚이 없었을 때도 그처럼 힘겹던 그 지긋지긋한 방황을 빚까지 짊어지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것이다.

자기 힘으로는 감당해낼수 없는 일에 부딪친 사람들이 흔히 그렇게 하듯이 그도 우선 자기의 차후행동을 두고 생각을 해볼 결심이였다.

《좀더 생각해보겠어요.》

《다른 사람 보내기로 결정하기 전에 빨리 대답하오. 래일까지.》

그날 수정은 극도의 피곤을 느끼면서 자취를 하고있는 하숙집으로 돌아왔다. 일이 여느날보다 더 힘들었다고 할수도 없는데 그만 몸이 지쳐버렸다. 저녁은 먹든말든 우선 누워서 한잠 잤으면 하는 생각뿐이였다. 래일 대답할 걱정은 래일 가서 하기로 하고 오늘은 그저 푹 쉬고싶었다. 가슴이 답답해서 아무것도 생각하고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하숙방에서도 그는 푹 쉴수가 없었다. 수일의 편지가 그를 기다리고있었기때문이였다.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꼭꼭 눌러서 쓴 편지봉투의 겉면만 보고도 그는 가슴이 내려앉음을 느꼈다. 언제나 기다려지는것이 집소식이고 언제나 읽고나면 우울해지는것이 집에서 오는 편지다. 집을 떠난 후 기쁘고 즐거운 집소식을 들어본적이 없는 그였다.

수정은 설레이는 가슴을 붙안고 봉투를 뜯었다.

《누나. 그동안 안녕하셨습니까. 누나가 걱정해주는 덕택으로 집에서는 다들 무사히 잘 지냅니다.》

편지의 허두에 다들 무사히 잘 지낸다고 했지만 수정은 안심하지 않았다. 수일의 편지는 언제나 이런 말로 시작되는데 그뒤에 계속되는 사연이 매양 무사치 못한 내용들이였다.

그러나 이날의 편지는 읽어내려갈수록 좋은 소식들이였다. 아버지의 병환은 한결 나아졌으니 과히 걱정하지 말라고 했고 어머니가 소작밭이나마 부지런히 다룬 보람이 있어서 농사도 잘되였으니 집걱정은 조금도 하지 말라고 씌여있었다.

수정의 마음도 차츰 밝아졌다.

그런데 맨 나중에 더 붙이는듯 쓴 내용이 그만 그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누나! 나는 학교를 그만두려고 해요. 아버지는 허리증으로 운신도 하기 힘들어하시지, 어머니 혼자 죽을힘을 다해서 농사를 지어도 반년농량이 안된다고 해요. 이런 형편에서 공납금을 어떻게 물겠어요. 내 공납금때문에 누나가 얼마나 고생을 해왔는지 나도 다 알고있어요. 내가 누나를 더 고생시킨다고 아버지한테서 꾸중도 여러번 들었어요. 나는 학교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어요. 누나, 나때문에 너무 무리하지 말아주세요.》

앞부분은 아버지가 쓰라고 일러주는대로 쓴것이고 뒤부분은 수일이 제 소견대로 쓴것이 분명하였다.

집안의 살림형편이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어려워만 가고있다는것과 그것을 딸한테는 알리지 않으려 하고있다는것을 깨닫지 않을수 없었다. 그처럼 힘들여 중학교에 넣었던 수일이가 중퇴한다는것만도 참을수가 없는 일이였다.

편지를 읽고난 수정은 한숨만 쉬며 앉아있었다. 아버지와 집을 생각하면 떠날수가 없는 몸이다. 그러나 바로 그 아버지와 집을 위해서는 일본으로 가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였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알수 없어 그는 그저 울고싶기만 하였다. 그러나 왜 그런지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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