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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10월 14일

평양시간


제 23 회

제 2 장

길은 많아도

13


텅 빈 제관작업장에는 준석이 홀로 굳어져있었다.

방금전 민영태가 던지고 간 말들이 한마디한마디 되살아나 뇌리에 박혀들었다.

《되지도 않을 대용연료 믿구 멍청해있다가 모내기를 제때에 못해서 농사를 망치게 되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겠소?》

《그렇게 강압적으로 내몬다고 일이 되는가?… 전문적으로 농기계를 제작하는 기업소들에서도 해결 못한걸 농장수리분조가 어떻게 한다는거요? 어떻게?》

《너무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놀지 말라구. 제 말만 제일이라구 남의 말은 다 무시하는가?… 어디 남들의 진정을 다 뿌리치구 혼자 독단으루 농사를 지어보게, 지어보란 말이야!》

직접 들을 당시에는 혹독하다고만 생각했던 그 말들이 지금은 부인할수 없는 론거를 가지고 육박해오는것이였다. 준석은 그때 리치를 가지고 맞섰지만 영태는 사실을 가지고 자기를 타매한것이다.

영태의 말에서 현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그것으로 하여 준석의 아픔은 보다 더 큰것이다. 어째서 나는 진리를 현실로 만들지 못하고있는가? 나는 필요성과 가능성을 주장하고 영태는 현실을 부르짖었다. 과연 누가 옳은가? 내가 택한 이 길이 정말 주관과 독단이고 비현실적인 길이란 말인가?

준석은 아니라고 주장하고싶었으나 그럴수 없는것이 안타까왔다.

그래, 모내기철이 박두하도록 실현 못한 대용연료에 계속 매달리는것이 과연 옳은 처사란 말인가? 부위원장이 애써 구해온 휘발유를 마다하는것이 한개 농장의 농사를 책임진 관리위원장으로서 옳은 처신인가? 손모내기를 할수 있는 가능성도, 휘발유를 구해올수 있는 공간도 다 줴버리고 파악도 없는 대용연료 하나에만 집착하는것이 과연 옳은가.

준석은 어느덧 기계화반수리장을 나서 터벅터벅 걷고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아직 점심시간이여서 주위는 조용하였다. 번민에 잠긴채 기계적인 걸음을 옮겨놓고있는데 문득 뒤에서 털썩털썩 다가오는 발자국소리가 났다.

그래도 한자세로 머리를 짓수굿하고 걸으려니까 지나치던 사람이 놀란 소리로 말을 건네였다.

《아니, 관리위원장이 웬일인가?》

로인분조장 덕준로인이였다. 질통에 잔뜩 짊어진 돼지두엄에서 역한 냄새가 풍겼다.

《아, 분조장아바이입니까? 이 점심참에 어딜 바삐 가십니까?》

준석은 애써 웃음을 짓고 물었다.

《점심먹고 밭에 나가는 길이지. 오후 쉴참에 4반서 경제선동을 하게 되였는데 그전에 김 한고랑씩 매자구 했네.》

《그런데 거름은 왜요?》

《나갈 때마다 한지게씩 내다 강냉이포기에 묻어주군 하네. 빈몸으로 맹탕 다닐 멋이야 있나?》

《그렇군요, 역시 오랜 실농군들이 다르군요.》

준석은 저으기 감심하여 말했다. 어머니도 짬만 있으면 집짐승배설물들을 모아 바께쯔에 들고나가군 하는것을 여러번 목격했다.

《헌데 임자 무슨 여의찮은 일이라도 있는게 아닌가? 걸음발이 이렇게 무거울 땐…》

《제가요? 허…》

준석은 속 빈 웃음을 지어보이고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같아선 아버지벌되는 덕준로인앞에 자기의 타는 속을 후련히 터놓고싶었으나 정작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는새에 어느덧 로인분조포전에 이르렀다.

리덕준은 밭머리에 두엄을 쏟고 지게를 벗어놓더니 밀짚모자를 벗어 부채질을 하며 최뚝의 잔디밭에 앉았다. 다리쉼도 할겸 한대 태우고 일을 시작하려는것이였다.

곰방대에 엽초를 다져넣으며 로인은 말했다.

《처음 하는 농사일이니 여간 힘들지 않을거네. 그렇다고 관리위원장 얼굴색이 그래서야 되겠나? 온 농장이 임자 얼굴을 쳐다본다는걸 잊지 말아야지.》

《글쎄… 그래야겠는데… 농장원들의 그 기대를 저버리게 될가봐 더 속이 상합니다.》

《참, 모내는기계에 도입한다는 대용연료는 어떻게 돼가나?》

준석은 급소를 찔리운듯 흠칫해서 겨우 얼버무렸다.

《아무래도… 잘…》

《힘이 들겠지. 하물며 휘발유없이 모기계를 돌린다는게 어찌 떡먹듯 쉬울텐가?》

준석은 어쩐지 아버지같은 사람앞에 솔직한 심정을 툭 털어놓고싶은 충동을 금할수 없었다. 그래 손가락으로 머리칼을 훑으며 《후―》한숨부터 내쉬고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아바이, 제가 지금… 되지두 않을 일을 벌려놓구 강압적으로 내미는게 아닌지. 헐하게 할수 있는 길도 있는데… 이러다 모내기기일을 보장하지 못한다면… 제가 무슨 낯으루 농장원들앞에…》

《아―니, 그게 무슨 소린가?》

덕준로인이 곰방대를 뽑아들고 놀란 소리를 지르며 돌아보았다. 버쩍들린 눈귀며 귀박죽이며 어깨죽지가 한길 닁큼 솟구쳐오르는것 같았다.

준석은 그 기상에 눌리우듯 머리를 떨구었다.

로인의 석쉼하고도 청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임자가 과연 윤기형님 아들이 옳긴 옳은가? 어쩌면 임자입에서 그런 나약한 소리가 나올수 있나? 헐하게 할수 있는 길도 많다구? 그럼 뭣때메 대용연료를 시작했나? 중도에 이리저리 흥정하구 흔들릴걸 시작은 왜 했나 말일세? 그게 떡먹듯 쉽게 될줄 알구 그랬나? 아니믄 거기서 자네 명예나 보수가 나오길 바랬댔나?》

《예?》

준석은 아바이의 노여움과 추상같은 질책이 너무도 뜻밖이여서 기가 질려 대꾸를 못했다.

아바이는 후들거리는 손에 곰방대를 쥐고 뻐금뻐금 빨고나서 절규하듯 부르짖었다.

《난 그래두 임자가 처음 평양서 고향에 내려왔을 때 윤기형님이 살아돌아온것처럼 기뻤더랬네. 헌데 이제보니 임잔 아버지를 따르자믄 멀었어.

옳다구 생각하고 일을 시작했으믄 어떡허든 끝장을 봐야 할게 아닌가? 왜 다른 길을 넘겨다봐? 임자 아버진 절대 그러지 않았어. 나쁜 놈들이 협동화를 시기상조요, 뭐요 하면서 방해하구 압력을 가했을 때두 오직 수령님교시밖에 몰랐단 말일세. 그래서 그놈들이 아버지를 눈에 든 가시처럼 여기구 이렇게저렇게 흠을 잡아 못쓰게 만들려구 했던거야. 하지만… 아버진 비록 곡절은 겪었어두 마음만은 끝까지 한길을 걸었네.》

말을 마치자 로인은 움쭉 일어나 밭이랑의 강냉이그루 사이사이에 구뎅이를 파나가기 시작했다.

둔중한 쇠방망이에 얻어맞은듯 머리가 핑 돌아 한동안 그린듯이 앉아있던 준석은 그 어떤 충동적인 힘에 떠밀려 벌떡 일어났다. 무슨 일이든 뼈마디가 부서져나가게 몸을 바쳐 하고싶었다.

어느새 거름을 지고 들고 올라온 로인분조원들이 이랑을 하나씩 맡아나가고있었다.

준석은 덕준로인이 지게에 얹어가지고 온 곽지로 구뎅이마다 돼지두엄을 날라다 묻어주고 새 이랑을 잡아 김을 매나가기 시작했다.

어느덧 그의 얼굴에서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쩝쩔한것이 뚝뚝 떨어져 땅을 적시였다.

덕준로인이 한 말이 그냥 귀전을 떠나지 않았다.

《아버진 비록 곡절은 겪었어두 마음만은 끝까지 한길을 걸었네.》

그 말이 뇌리에 공명을 일으키며 아버지가 들려주었던 40년전의 이야기를 불러왔다.

그때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였던 아버지는 평양에서 열리는 대의원회의에 올라가기 위해 역으로 가고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현지지도를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가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 달리는 차창으로 아버지를 띄여보시고 승용차를 멈춰세우시였다.

《윤기동무 아니요? 그래, 어디를 가오?》

아버지는 감격에 넘쳐 인사를 드리고나서 평양회의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간다고 대답올렸다.

《그래? 내가 오늘 좋은 동행자를 만났군. 자, 어서 타오.》

아버지가 못내 송구해하며 기차를 타고 가겠다고 말씀드렸으나 수령님께서는 굳이 차안으로 이끄시였다.

수령님의 소탈하신 인품에 끌려 아버지는 어려움도 잊고 올해 조합의 농사정형과 조합원들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말씀올리며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다.

문뜩 수령님께서 아버지의 앞가슴에 달려있는 로력영웅메달을 바라보시며 영웅칭호를 수여받던 그때의 일을 뜻깊게 회억하여주시였다.

《그때 윤기동문 전쟁의 피해가 그 어느 지역보다 혹심한 지역에서 남먼저 협동조합을 무은 비결에 대해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지.

비록 생소한 길이기는 하였지만 당이 가리키는 길이니 틀림이 없으리라는걸 믿고 나섰다고 한 그 말이 늘 잊혀지지 않소. 당의 뜻이라면 그 어떤 타산도 흥정도 모르고 무조건 옳은것으로 받아들이고 관철하는 그 투철하고 결백한 마음이 언제나 힘이 되였소.》

아버지는 응당 할일을 했을뿐인 자기에게 그토록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시는 수령님앞에서 뜨거운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면서 영원히 그 하나의 신념만을 안고 살리라 굳은 맹세를 다지였다. 어디서 어떤 바람이 불어와도 오직 수령님께서 가리키시는 한길로만 가리라고, 그길이 비록 험산준령을 넘고 진펄길을 헤쳐야 하는 험한 길이라 해도, 또 불비가 쏟아지는 죽음의 길이라 해도 서슴없이 가리라고…

그때 아버지는 이런 말로 이야기를 마쳤었다.

《사람이 살아가느라면 여러갈래 길이 나질 때가 있다. 그러나 신념의 길은 오직 한길뿐이다.》

아버지는 자기의 한생으로써 자기가 한 이 말의 진리성을 증명하였다.

그런데 아들인 나는?…

자그마한 실패에 겁을 먹고 동요하지 않았는가? 《실패》라는 현실을 《진실》로 간주하며 신념이 흔들리지 않았던가?

준석은 다시한번 소스라치도록 놀랐다.

대용연료가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론하는것자체가 타산이고 흥정이다. 그것이 실지 농사에 필요하다면 그만이지 무슨 론의가 필요한가? 그것을 위해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만이 우리에겐 있을뿐이다.

휴식시간이 되자 준석은 4작업반 김매기현장에서 진행하는 로병들의 경제선동을 보았다.

전시와 전후의 투쟁정신을 보여주는 노래, 시, 이야기 등은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리였다. 특히 전시식량생산을 위해 폭격속에서도 녀성들이 보탑을 잡고 달구지를 끌고 전선원호미를 날랐다는 준석의 어머니 현씨의 이야기며 전기가 오지 않는 조건에서 군량미보장을 위해 나무현미망을 창안도입하여 정미소를 대신했다는 한 로인의 이야기 그리고 전후 재더미만 남은 마을에 돌아와 부모형제, 친척 12명을 깡그리 잃은 슬픔을 이겨내고 협동조합에 들어 원쑤를 갚는 심정으로 농사를 지었다는 덕준분조장의 이야기는 뜨거운 눈물과 격동을 불러일으켰다.

준석은 이미 여러차례 보았지만 이날 다시 보며 새삼스럽게 생각되는것이 많았다.

그때는 조건타발이라는 말도 몰랐다. 불가능이란 말도 몰랐다.

오직 해야 한다는것밖에 몰랐다.

준석은 마음속으로 더더욱 결심을 굳히였다. 오늘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농사를 잘 짓자면 농장원들이 자기의 힘을 믿고 거기에 의거하도록 하여야 한다.

그러자면 철저히 자체의 힘으로 농사를 지어야 하며 그 결과에서 보람을 찾게 해야 한다. 그래야 알곡계획도 원만히 수행할수 있지 않겠는가.

이날 준석은 공연이 끝나는 길로 수리분조 직화로연구현장으로 나갔다. 실패한 직화로를 해체하고 원인을 찾기 위한 금혁의 작업을 조력하면서 자기자신이 직화로제작기술에 정통하려고 애썼다.

지친 몸으로 밤늦게야 집에 들어서니 여느때같으면 벌써 잠든지 오랬을 예성이가 눈이 초롱초롱해서 마당으로 달려나왔다.

《아버지! 엄마 아파요. 밥두 못 잡숫구…》

준석은 품에 안기여 눈물이 글썽해 울먹거리는 아들애를 이끌고 급히 방안으로 들어갔다.

현씨가 며느리의 이마에 찬물수건을 대주고있다가 《이제 오느냐?》 하며 일어났다.

《밥은 먹구 왔어요. 헌데 병세가 어때요?》

준석은 시장기가 싹 가셔짐을 느끼며 안해의 달아오른 얼굴부터 만져보았다.

《병원에서 금방 왔다갔는데 급성페염이라고 하더구나. 열이 40도가 넘어서 헛소리까지 치구… 주사놓구 약을 먹였더니 이제 잠이 드는가보다. 대여섯시간후에 이 약을 먹이라더라.》

《그래요.…》

준석은 떨리는 가슴을 누르고 물었다.

《어떻게 이런 병을 갑자기 만났을가요?》

《요즘 며칠째 가물어서 모판에 물을 주느라 지게를 지고 뛰여다니더니 무리가 간 모양이다.》

할머니의 말에 긍정하듯 두볼에 밤알을 물고 입이 뿌죽해있던 예성이가 토달거렸다.

《아버지때문이야요. 왜 엄마를 농장원시켜가지구, 씨…》

《이녀석! 그럼 못써!》

현씨는 손자의 궁둥짝을 가볍게 철썩 갈기고 자기 품으로 끌어갔다.

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안해를 이토록 고생시키면서도 아직 대용연료를 실현하지 못하여 사람들의 비난과 실망의 대상이 된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터지는것만 같았다.

워낙 육체로동에 단련되지 못한 안해는 저녁마다 온몸이 매맞은것처럼 뻐근하고 저리여 종종 신음소리를 내군 했었다. 그러나 하루도 누워 안정하라는 권고를 해보지 못했다. 할수가 없었다.

그때마다 타자기에 마주앉아 건반이나 누르던 안해를 고생시키는것에 대해 미안스런 감정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처음 하는 농사일이여도 남들의 동정을 사지 않으려고 이악하게 달라붙는 안해가 그지없이 고마왔다.

그런데 오늘은 끝내 쓰러지고야만것이다.

《어머니, 예성이랑 너무 근심말고 쉬세요. 애엄마간호는 제가 하겠어요.》

준석은 안해의 이마에 찬물수건을 갈아주며 밤을 지새다싶이 하였다.

몇시간이 지나 열이 좀 내리는지 리순이 눈을 스르르 떠올렸다.

준석은 해열제와 함께 보온병의 물을 고뿌에 따라들고 안해에게 다가앉았다.

《여보, 정신이 좀 드오?》

리순은 무슨 말을 하려는듯 초들초들 말라터진 입술을 바르르 떨었다.

《자, 어서 약을 먹고 기운을 내오. 쓰러지면 안돼, 날 생각해서라도.》

준석은 한팔로 안해의 허리를 안아일으켰다.

남편이 쥐여주는 알약을 입에 넣고 물을 마시고난 리순은 눈물이 글썽해서 속삭이였다.

《난 쓰러지지 않아요. 당신이 곁에 있는 한… 절대로…》

가쁜숨을 톺아쉬는 녀자의 입새로 뜨거운 열기가 확확 풍겨나왔다.

시간이 흐르자 화끈거리던 안해의 몸이 차츰 식어드는것 같았다.

준석은 안도의 숨을 가늘게 내쉬고나서 자신에게 말하듯 나직이 뇌이였다.

《우린 너무도 할일이 많은 사람들이야. 농사를 잘 지어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기 전엔 쓰러질 권리가 없어, 그 믿음에 보답하기 전엔…》

《알아요.…》

그들의 높뛰는 숨결속에 어느덧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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