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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10월 14일

평양시간


제 31 회

제 3 장

사랑을 가꾸라

8


오늘도 모든것을 체념한 공허상태에서 울적하게 하루를 보낸 금혁은 저녁이 되자 터벌터벌 작업장을 나섰다.

보라빛황혼이 비낀 소재지마을이 쓸쓸하게 안겨온다.

직화로의 포기와 동시에 불쑥 떠나버린 사랑은 생의 환희는 물론 의욕마저 잃게 했고 아름답던 생활을 별안간 어두운 재빛으로 흐려놓았다.

금혁은 아직도 자기들의 사랑이 결렬되였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으면서도 며칠째 계속되는 침묵에 문득문득 가슴이 서늘해지면서 절망적인 허무감에 사로잡히군 하는것이였다.

도대체 그는 《직화로》를 《사랑》이라는 귀중한 감정과 나란히 놓고 생각할수가 없었다. 직화로가 성공하지 못했다 해서 사랑마저 배신할수 있단 말인가!

명명백백히 수향의 태도는 달라졌다.

퇴근시간마다 찾아오군 하던 걸음도 끊어졌고 우연히 마주쳐 이야기를 나누자 해도 시간이 바쁘다며 총총 지나쳐버린다. 청년동맹회의에 참가하면 의례히 옆에 붙어앉군 했는데 이제는 어설픈 웃음으로 한번 굼때고는 쓸쓸히 외면하며 돌아앉는것이 다였다.

그때마다 수향이 마지막으로 던졌던 한마디 말이 비수처럼 가슴을 찌르고들었다.

《난 동무가 이렇게 지조가 없는 인간일줄은 몰랐어요. 결국… 내가 머저리였지요.》

아, 그보다 더한 모욕이 어데 있으랴.

금혁은 수향의 그 말이 직화로를 포기한 그 사실자체에 대한 불만이고 타매일뿐 그것을 벗어난 다른 의미라고는 생각하고싶지 않았다.

기술문제에서의 《지조》에 대해 말한다면 오히려 할수 없는것을 하겠다고 하는것이 지조가 없는 행위라고 그는 굳게 믿는것이였다.

하기에 어디까지나 수향이 외면한것이 일시적인 울분때문이지 인간자체에 대한 환멸때문이라고 의심할수는 도저히 없었던것이다. 만일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더라도 자기같으면 수향의 일이 성공하지 못했다 해서 인간자체를 부정하고 의리를 저버릴수 있겠는가? 없다. 어디까지나 기술문제는 기술문제고 사랑은 사랑인것이다.

그는 안개속같은 의혹속에서 더이상 정처없이 헤매일수 없었다.

하여 오늘 저녁은 용단을 내려 시험포로 향했다.

수향이와 리순이 두 녀인이 걸이대로 썩은 두엄무지를 뒤져놓고있었다.

금혁을 띄여본 리순이 얼른 눈치있게 걸이대를 박아놓으며 《가만, 집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겠어.》하고 팔소매를 내리웠다.

그런데 수향이도 덩달아 《아이, 언니! 혼자 가면 어떡해요?》하고 따라나서는 바람에 당황해난것은 금혁이였다.

그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다잡고 수향의 앞을 막아섰다.

《수향이! 좀 서라구. 할말이 있어!》

《무슨 말인지 빨리 하세요. 난 시간이 없어요.》

금혁은 모닥불을 뒤집어쓴듯 온몸이 화딱 달아올랐다. 심장이 터져나올듯이 요동쳤다.

어느새 그는 수향의 손목을 무섭게 거머쥐고 부르짖었다.

《숨박곡질은 그만하고 똑똑히 말해! 정말 우리사이의 모든걸 끝장내자는거야?》

《마음대로 생각하세요. 난 자기의 감정을 숨기고싶지 않아요. 이젠 동무가 싫어졌어요.》

수향의 대답은 의연히 도고하였다.

금혁은 눈앞이 핑 돌며 맥없이 손을 놓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심장도 차겁게 식어드는것을 느끼며 자기로서도 놀라우리만치 태연한 어조로 내뱉았다.

《좋소! 나도 싫다는 녀성을 억지로 붙잡고싶진 않으니… 깨끗이 잊읍시다!》

다음순간 실로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새침하고 도고해졌던 처녀가 별안간 《흑.》 오열을 터치더니 두손에 얼굴을 묻고 달려가는것이였다.

금혁은 한순간 무의식상태에 빠져 망두석처럼 멍하니 서있었다. 생각할수 있는 힘조차 진해버린듯싶었다.

정말 모든것이 끝났는가? 한참만에 의식이 돌아와 떠오른 첫 생각이였다.

내가 꿈을 꾼게 아닌가? 이 모든게 정녕 꿈이 아닌 현실이란 말인가?

금혁은 허탈에 빠진채 비척비척 집으로 돌아왔다.

마당의 수도가에서 빨래를 하던 어머니가 방치질을 멈추고 아들의 기색을 살폈다.

열병을 앓고난 사람처럼 해쓱하고 정기가 없어보이는 그의 얼굴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너 오늘 또 직화론지 뭔지때문에 주접 떨다오는게 아니냐?》

《말시키지 말라요. 직화로구 뭐구 다 끝장이예요.》

금혁은 발작적으로 부르짖고 방으로 들어가 장식장 아래칸을 열어젖혔다. 목긴 술병을 끄집어내자 마개를 따고 병채로 꿀꺽꿀꺽 마시기 시작했다.

뒤따라 들어온 어머니가 기겁하여 병을 빼앗아냈다.

《야, 너 이게 무슨 추태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래? 응?》

금혁은 초점잃은 눈으로 어머니를 멍하니 올려다보다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다… 끝났어요.》

그는 비칠거리며 일어나다가 쏘파에 쓰러졌다.

유미옥은 아들을 편히 눕혀주며 이상해서 중얼거렸다.

《직화로가 끝났으면 차라리 잘 됐지 뭘 그러니? 그새 다른걸 했어두 열두번 했겠다.》

금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꾹 감은채 죽은듯이 누워있었다.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기운도 나지 않았다.

문여닫기는 소리가 나더니 아버지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얘가 왜 이 모양이 됐소?》

《쉿! 조용 좀 하라구요. 오늘루 아마 직화로에서 정식 손을 뗐는가 봅디다. 그래 몹시 피곤해하길래 재웠어요.》

《음― 그거 마침 잘 됐군.》

아버지의 목소리는 오늘따라 별스레 흥떠있었다.

유미옥은 몹시 기분이 좋아진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며 은근히 물었다.

《왜요?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게요?》

《음, 오늘 경영위원장과 합의가 있었는데 금혁일 군에 들여보내야겠소.》

《군에요? 무슨 일루?》

미옥은 눈이 번쩍 띄여 다우쳐물었다.

영태는 희색이 만면해서 겉옷을 벗어 안해에게 내밀며 호기있게 대답했다.

《무슨 일이긴? 군에서 써먹자는게지. 아까운 기술자를 촌구석에서 썩인다는거야.》

《아유― 그래요? 당신이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호호… 이젠 됐어요!》

미옥은 기뻐서 환성을 지르듯 떠들며 호들갑스럽게 웃었다.

《그러니까 이젠 금혁이가 군에 가게 된다는거지요?》

《녀자들이란 고작 생각한단게 쯧쯧… 아 왜 금혁이가 군에만 머무르겠나? 갸 머리 가지믄야 도에도 갈수 있지.》

《참말 그렇군요. 이젠 전망이 환히 열렸수다. 호호…》

《딴거 없어. 하루빨리 군에 보내서 생활부터 안착시켜야겠소. 그래야 사업에서도 마력을 내구 삐여지게 실적을 낼수 있거던.》

《생활부터 안착시킨다는건… 장가를 들여야 한다는거겠지요?》

《그럼, 그러잖아두 군에서 맞춤한 처녀를 골라보라구 경영위원장댁한테 부탁을 해놨소.》

《아니, 색시감을 다른데서 구해요? 저 앤 수향이와 여사여사한 사이같은데…》

《흥, 수향이 말은 하지두 마오. 눈이 잔뜩 꼭뒤에 붙어가지구… 평양서 내려온 연구사총각과 붙어다니는걸 내 눈으로 몇번이나 봤소. 그 집 사위가 다 된것처럼 집에도 드나들구 말이요.

녀자의 정이 벌써 그리루 간것 같은데 뭘 더 바란다는거요? 누구 말마따나 채우기 전에 차야지.》

《뭐라구요?》

금혁은 소스라치듯 놀라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들이 잠든줄 알고있었던 민영태와 유미옥은 깜짝 놀라 눈을 흡떴다.

《너 왜 그러니?》

《수향이가… 그게 사실이예요?》

《사실 아니면, 아버지가 뭐 없는 소리를 지어냈겠니? 너두 이젠 똑똑히 정신차릴 때가 됐어.》

금혁은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듯 아찔함을 느끼며 쏘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두손으로 와락 머리칼을 움켜쥐며 부르짖었다.

《가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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