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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10월 14일

평양시간


제 46 회

제 5 장

순정의 열매

3


《뭐라구?!》

준석은 책상을 꽝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추켜든 눈섭이 푸들푸들 떨고 유순하던 두눈이 불찌를 튕기듯 무섭게 이글거렸다.

그의 앞에는 수건을 손에 말아쥔 영순이 당황하여 서있었다. 이렇게 성난 모습을 처음 보는 그는 가슴이 쿵당쿵당 널뛰듯 하였다.

준석은 말없이 창가로, 책상으로 오가기 시작했다. 뒤짐진 주먹이 성급히 쥐였다풀렸다 하였다.

그가 2작업반에서 조직한 일을 알게 된것은 추석날 아침일찍 봉황산에 성묘를 하러 갔을 때였다.

매해 추석날이면 대일과 영순이를 비롯하여 아버지가 키운 사람들이 성묘하러 온다는것을 알고있은 준석은 그들이 오기 전에 벌초부터 해놓으려고 먼저 올라왔다.

묘소의 잔디를 깎고 잡초를 뽑는데 대일이 올라왔다.

준석이 대일과 함께 주변을 깨끗이 거두고 상돌을 닦아내는데 호영이가 아들애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

《영순인 왜 같이 안 오나?》

대일이 의아해서 물었다.

한동안 갑자르던 호영은 어쩔수없이 사실을 터놓고 이야기했다.

대일과 준석은 아연해서 한동안 말을 못했다.

성묘가 끝나자 준석은 대일의 승용차를 타고 급히 마을로 돌아왔다.

마침 작업반원들과 함께 벌로 나가는 영순이와 마을어구에서 마주쳤다.

준석의 눈길에서는 노기가 번뜩이였다.

영순은 그 눈길앞에서 태연하려고 애썼으나 어쩔수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준석은 치미는 격분을 지그시 누르며 사람들앞으로 돌아섰다.

《미안합니다, 여러분. 제가 일을 쓰게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니 량해하여주십시오. 그리고 모두 돌아가서 산에도 가고 휴식도 하십시오.》

머리를 기웃거리던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헤여져갔다.

준석은 영순을 데리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어떻게 된 일인가고 따졌더니 자원성에 호소해서 나온거라고 대답하지 않는가?

《그래, 자원성에 호소한 그자체가 옳은 처사라는거요?》

준석의 엄한 물음에 영순은 흠칠 어깨를 떨었다. 그러나 이어 침착하게 대꾸했다.

《물론… 쉬는게 원칙이지요. 하지만 단 하루 한시간이래두 벼가을을 앞당기겠다구 휴식을 하지 않고 일나온 사람들을… 나쁘다고 볼수야 없지 않습니까?》

영순의 당돌한 대답은 준석을 더욱 격분케 했다.

《반장동무! 끝내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하자는거요?

솔직히 말해보오. 동무가 정말 나라의 쌀독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런 일을 조직했소? 아니면 남보다 뒤떨어진 벼베기실적을 봉창하자고 그랬소? 어느쪽이요?》

정통을 찌르는 날카로운 물음에 영순은 다시한번 흠칠 몸을 떨었다. 예상치 못했던 준석의 가혹하고 무자비한 비판은 영순을 한절반 얼구어버렸다. 언제나 믿어주고 내세워주던 그 손길과 잘못이 나타나도 따뜻이 타일러주던 부드럽고 너그러운 아량에 습관되여온 그였던것이다.

아무 대꾸도 변명도 못하고 머리를 숙이고있는 영순을 한동안 지켜보던 준석은 가슴이 저려드는것을 느끼며 괴롭게 한마디 던졌다.

《돌아가서 자기 사업을 심각히 돌이켜보오.》

영순이 풀이 죽어 나간 다음에도 준석은 오래도록 가슴아픈 생각에 잠겨있었다. 영순이가 어쩌면 이렇게까지 할수 있을가? 보통 휴식날도 아닌 추석날에 꺼리낌없이 이런 전횡을 부리다니? 내가 이때까지 그를 너무 무원칙하게 어루만져주었기때문인가?

피뜩 이것이 우연적인 실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강냉이밭김매기때 간부들의 눈을 속였던 일도 떠올랐다. 아, 그때 내 왜 좀 더 아프게 매질하지 못했던가?

부정의 싹을 허용하고 자래워준 사람이 바로 자기자신이라는 판단때문에 준석의 가슴은 더욱 미여지는듯 아팠다.

준석은 일군들에게 자극을 주고 농장원들에게 사죄하기 위해서라도 이 문제를 스쳐넘길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당비서를 찾아가니 그도 얼굴빛이 컴컴해있었다.

《그렇잖아도 리당에 반영이 들어왔소.》

《그래요?》

준석은 문제가 생각보다 더 엄중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비서동지, 제 잘못이 큽니다. 제가 영순동무의 우점만 중시하면서 무원칙하게 어루만져준 후과입니다.》

《어째 위원장동무만의 잘못이겠소? 내 책임이 더 크지. 단발머리 선동원때부터 손때묻혀 키운 애라고 너무 믿었거던. 무슨 일에서나 내내 1등자리에만 내세워주어버릇해서 자기는 응당 1등만을 해야 한다는 자고자대, 그걸 위해서 농장원들을 혹사시키는 관료주의싹이 자라날수 있다는걸 예견하지 못했단 말이야.》

박정운은 담배연기와 함께 괴로운 한숨을 내그었다.

《그래,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소?》

준석은 잠시 침묵끝에 나직이 대꾸했다.

《인정에 사로잡혀있을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되게 비판하고 해당한 책벌을 주었으면 합니다.》

정운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이튿날 저녁 영순의 자유주의적이며 관료주의적인 사업방법과 작풍을 취급하는 회의가 관리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렸다.

호상비판이 진행되였다. 호상비판들은 한결같이 격렬하고 날카로왔으며 비판의 초점들은 일치하게 공명주의에 대한 타매에로 향해졌다.

공명주의는 개인리기주의의 변신이다, 영순동무는 지금까지 무엇을, 누구를 위해서 일해왔는가?

백번 정당한 비판이였다. 그제서야 영순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비낀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환멸을 금할수 없었다.

영순은 머리를 아래로 떨구고 터져나오려는 오열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입술을 깨물었다.

×

보름이 갓 지난 타원형의 달이 봉황산의 기기묘묘한 경치를 조명해주는 그윽한 밤이였다. 시원하게 펼쳐진 저수지수면우에 은은한 달빛이 천쪼각만쪼각으로 부서져 굼니는데 이따금 쩜벙소리를 내며 물고기들이 튀여오른다. 주변의 높고낮은 산봉우리들과 기슭에 눕다싶이한 소나무, 단풍나무들의 그린듯 한 자태가 물우에 그대로 비끼여 천하의 신비경을 이루었다.

귀를 기울이면 쪼록쪼록 흐르는 골개물소리, 쏙독쏙독 밤새의 구성진 울음소리, 미풍에 실려오는 과원의 들큰한 열매향기…

그토록 아름다운 절경도 영순에겐 쓰라린 눈물만을 자아낼뿐이였다.

그는 지금 추억깊은 《밥상바위》에 앉아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준석이와 소꿉놀이하던 유년시절 그리고 함께 밤을 따서 마주앉아 밤청대를 해먹던 학창시절, 그의 시랑송을 들으며 입대를 축하해주던 송별의 추억…

아, 추억이란 얼마나 아름답고도 야속한것인가!

언제나 감정은 리성에 앞서는 법이지만 화약같이 폭발하기 잘하는 박영순의 성미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했다. 속에 묻어두는것이 없이 툭 터놓고 앞뒤가 따로 없는 영순은 자기반성에서도 구태여 변명이나 구실을 앞세우는 성미가 아니였다.

별로 큰 비판이 없이 지금껏 일해왔고 그대신 일단 한번 비판을 받으면 중심을 잃고 지나친 자기 학대속에서 몸부림치는 성격적약점도 있었다.

헌신으로 줄달음쳐온 지난 20년세월에 대한 허무감이 가슴을 하냥 아프게 긁어내렸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얼마든지 갈 곳도 많았지만 무엇을 위해서 농사군이 되였던가? 김윤기영웅처럼 쌀로써 조국을 받드는 진짜배기 농사군이 되자고, 그처럼 살기 위해 애써오지 않았던가?

단발머리 애어린 처녀시절부터 새벽이면 남먼저 이슬차며 포전에 나갔고 이른봄의 살얼음진 논창에도 맨먼저 뛰여들었다. 선동원이 되여서는 해마다 500톤의 풀거름을 남먼저 하기 위해 밤에도 무서운줄 모르고 호랑이 새끼친다는 무성한 풀숲을 찾아갔고 읍거리로 거름달구지도 끌고 다녔었다. 분조장을 거쳐 반장이 되여서부터는 가정을 남편에게 내맡기고 밤이나 낮이나 작업반에 나가 살았고 공사가 제기되면 솔선 작업반원들을 이끌고 달려나가 남정들과 함께 앞장서서 이악스레 일하여 매번 1등으로 끝내고야말았다.

내가 언제 한번 단란하게 가족과 밥상을 마주해본적 있었던가. 상을 차릴 시간도 아까와 늘 부뚜막에서 퍼먹고 달려나가군 했다.

그러나 내가 지금 어느 지경에 이르렀는가!

친오빠처럼 믿고 따르던 준석을 보기가 괴로왔다.

이제 어떻게 다시 얼굴을 맞대고 일한단 말인가.

자기를 친딸로 받아주고 고이 길러 내세워준 김윤기관리위원장에 대한 죄스러움까지 겹쳐 자신에 대한 환멸감이 더더욱 커졌다.

영순은 쓸쓸한 한숨을 내지으며 시계추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없어, 이젠… 1등반장 박영순이두, 준석오빠두…

남은건 인격두 존엄두 다 잃은 이 허울, 넋이 없는 허깨비일뿐이야.)

가슴도 텅 비고 머리속도 공허해진다. 눈앞의 아름다운 절경도 홀연 사라지고 암회색 공간만이 뿌잇하게 비껴든다.

문득 귀전에 인기척이 울려왔다. 와스삭와스삭 마른 가랑잎을 밟는 발자국소리, 헐썩이는 숨소리가 가까와온다.

영순은 숨을 죽인채 돌아보지 않았다. 온몸이 경직된듯 움직일수 없었다. 남편이 어떻게 알고 여기까지 찾아나오는가 하는 의심이 든것은 다음순간이였다.

다가오던 발자국소리도 한자리에 멈춰서버렸다. 숨소리가 더욱 높아간다. 이제 곧 다가와 귀뺨을 칠것이다. 아니면 비판을 받은것이 오히려 잘됐다고 듣기 좋게 위안해줄수도 있겠지. 어떻게 하든 남편앞에 한마디 항변도 할수 없는 자기였다.

영순은 눈을 감은채 차례지는 운명을 묵묵히 받아들이기로 하였다.

《영순이!》

《?!》

뜻밖에도 그것은 준석의 목소리였다. 이밤 봉황산의 《밥상바위》에 영순이 있으리란걸 알 사람은 준석이밖에 없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사실 김준석은 방금전 영순을 만나러 그의 집에 갔던 길이다. 방안 한가운데 밥상을 차려놓은채 풀썩풀썩 담배를 피우며 안해를 기다리는 리호영을 보니 참을수없이 눈물이 났다.

《관리위원장큰아버지! 우리 엄마 어디 갔나요?》

승철이가 울먹거리며 묻는 말에 준석은 금시 숨이 멎는것만 같았다. 눈물이 가랑가랑해서 올려다보는 그 눈빛에는 자기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훌륭한 엄마라고 대답해주기를 바라는 애절한 기대가 담겨있었다.

준석은 이 순간 자기가 제때에 호된 매를 들지 못한것이, 그래서 영순이가 이렇게까지 번져지지 않도록 다잡아주지 못한것을 가슴을 치며 후회하였다.

호영이가 대신 아이를 달래였다.

《승철아, 엄마는 승철이를 제일로 고와하구 사랑하는 좋은 엄마란다. 한알의 낟알이라도 더 내려고 아글타글하는 훌륭한 엄마지. 승철이가 밥도 잘 먹고 공부도 잘해서 엄마를 기쁘게 해드려야 해. 알겠지?》

그리고는 다시 자리에 눕혀 이불깃을 꼭꼭 여며주었다.

준석은 가슴이 뭉클하고 눈굽이 뜨끈해졌다. 호영이 안해가 왜 안 들어오는지 모르겠다고 걱정하자 준석은 얼핏 생각되는것이 있어 좀 있으면 들어올것이라고 안심을 시키였다.

그리고 죄스러운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호영이, 내 자네를 볼 면목이 없네. 안해를 그렇게 리해하고 받들어준 자네앞에 내 무슨 말로 사죄를 해야 할지…》

《아니요. 그렇게 말하지 마우다.》

호영은 머리를 흔들며 준석의 말을 밀막았다.

《난 진심으로 말하는데 그 사람은 이 남편도 고쳐줄수 없는 악성병이 들었수다. 곪을대로 곪은 상처야 터지게마련 아니겠소. 가슴은 아프지만 이 고비를 겪어야 바른 사람이 될거라구 난 생각하우다.》

《호영이! 자넨 정말… 좋은 친구요! 영순인 이제 자기가 얼마나 훌륭한 남편과 살고있는가를 꼭 알게 될거요.》

준석은 감동에 젖어 호영의 손을 뜨겁게 잡아흔들었다.

그렇게 헤여져 곧바로 여기 《밥상바위》로 올라온 그였다. 《밥상바위》는 그들의 소년시절의 추억이며 《한마음한뜻》을 의미하는 우정의 상징이였던것이다.

뜻밖에 준석을 보자 영순은 또다시 설음과 울분이 북받쳐 터져나오는 흐느낌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눈물엔 설분만이 아닌 자기의 아픔을 헤아려 여기까지 찾아와준 준석에 대한 인간적인 공감이 깔려있었다. 그로 해서 더 울고싶고 투정질도 하고싶었다.

준석은 말없이 영순이옆에 앉았다.

영순이 좀 진정이 되였을 때 준석은 입을 열었다.

《영순이, 오늘 받은 비판이 잘 내려 안가서 그러나?》

《…》

《비판받은게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하나?》

재차 물어서야 영순은 눈굽을 훔치며 대꾸했다.

《아니요. 전 여기 앉아 지나온 나날들을 더듬어보았어요. 내가 이런 지경에 이르게 된것을 두고 자신을 용서할수가 없어요.》

한동안 얼음장같은 침묵이 흘렀다.

준석은 이윽고 추연한 어조로 말을 꺼냈다.

《나도 가슴이 아프다. 영순이가 지금까지 일해온걸 생각하면 눈물이 나도록 가슴이 아파. 하지만… 아버지처럼 살겠다고 그렇게 아글타글해온 너의 의로운 마음이 오늘에 와서 사소하게나마 흐려져가는게… 더욱 가슴아프다.》

《그만하세요, 오빠.》

영순은 속삭이듯 부르짖으며 머리를 떨구었다. 회의에서 하던 동지들의 비판이 떠올랐던것이다.

준석의 목소리는 더욱 준절하게 울렸다.

《아무리 헌신적인 노력이라도 거기에 티끌만 한 사심이 깔려있으면 빛이 안나는 법이야.

영순이! 난 이렇게 생각해.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큰 재부는 바로 사람들의 존경과 믿음이라고. 그 존경과 믿음을 떠나서 억만재부나 명예가 무슨 의의가 있겠어?

영순인 지금껏 물질적향락도, 육체적안락도 다 희생하면서 명예를 추구해왔지만 참다운 명예는 바로 사람들의 존경과 믿음이라는것을 몰랐던 탓에 오늘과 같은 과오를 범한거야.

난 영순이가 오늘의 비판과 처벌을 달게 받아들이구 사람들의 진정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진짜배기 일군의 참된 명예를 되찾기 바란다.》

영순은 머리를 숙인채 한동안 꼼짝하지 않았다. 무릎을 감싸안은 손등우에 눈물이 방울져내렸다.

《자, 이젠 어서 내려가자. 집에서 승철이 아버지가 밥상을 차려놓구 기다리구있더라.》

《예?!》

《사람의 진정은 어려울 때 알아본다더니 참 그 친구가 진짜배기 사내야. 그러구보면 우리 영순이가 남편을 아주 잘 골라잡았거던. 허허…》

준석의 말에 영순은 마음이 훈훈해짐을 느꼈다.

그는 얼른 눈굽을 훔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솔길을 따라 산등성이에 올라서니 교교한 달빛아래 한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고향마을이 정답게 안겨왔다.

영순의 눈앞에는 마디굵은 손가락에 두툼하게 마라초를 말아들고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남편의 모습이 얼른거리며 절로 발걸음이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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