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통일념원으로 온넋을 불태워온 시인 오영재

 

 

《생각도 많은 섣달 그믐날 밤을 보내고 새해의 아침을 맞을 때면 나는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남쪽하늘을 향해 세배를 시키군 했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배를 받으십시오.〉 〈통일되는 그날까지 오래오래 살아계십시오.〉》

- 오영재선생의 수기중에서-

 

통일없이 가는것도 세월이냐

통일없이 사는것도 민족이냐

세기의 마지막 이 년대에

통일아, 우리 너를 불러오지 못한다면

미래가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냐

2천년대가 무슨 소용이냐

 

                                         

김일성상계관인이며 로력영웅인 오영재선생이 쓴 시《통일을 안아오자》의 한구절이다.

오영재선생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을 칭송하는 작품들과 사회주의조국을 노래한 1 000여편의 시와 가사들을 창작한 관록있는 시인인 동시에 조국통일을 애타게 절규한 통일시인이기도 하였다.

1935년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청빈한 교육자가정의 둘째아들로 태여난 그는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16살 나이로 의용군에 입대하였다. 가렬한 전화의 나날 전선신문에 실린 박세영, 조기천선생의 작품들을 보며 점차 시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는 전쟁이 끝날무렵에는 여러편의 시를 출판물에 발표하였다.

그는 제대후 로동생활과 조선작가동맹직속 작가학원(당시)을 거쳐 문학예술출판사 기자로, 1965년부터는 조선작가동맹 작가로 활동하였다. 이 나날 그는 남녘땅에 두고 온 부모형제들을 그리며 쓴 시초 《아, 나의 어머니》와 같은 많은 시들을 창작하였다. 지난 2000년에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 성원으로 서울에 나간 그는 아들을 만날 날만을 애타게 기다리다가 끝내 그날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의 사진앞에서 쏟아지는 눈물을 머금으며 조국통일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에 앞장설것을 남녘의 형제들과 약속하였다.

 

서울에서 남측기자들에게 통일의 절박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오영재선생

 

시 《다시는 헤여지지 맙시다》, 《6. 15는 밝은 달》은 오영재선생이 그 이후에 창작한 작품들중의 일부이다.

그토록 열렬히 조국통일을 갈망하던 선생은 끝내 그날을 보지 못하고 지난 2011년 10월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백두산절세위인들의 뜨거운 은정속에 오영재선생은 오늘도 애국렬사릉의 높은 언덕에서 영생의 삶을 빛내이고있으며 그가 남긴 훌륭한 시가작품들은 북과 남, 해외동포들을 통일애국의 길로 힘있게 떠밀어주고있다.

 

행복한 삶을 누려가는 오영재선생의 자손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되돌이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