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6(2017)년 11월 7일

 

절세위인의 품속에서 새 모습을 갖춘 왕건왕릉

 

개성시 해선리에는 고려의 태조왕이였던 왕건의 무덤이 있다.

왕건이 사망한 943년에 처음으로 릉이 만들어졌으나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태조왕릉으로서의 그 면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되였다.

 

본래의 왕건왕릉

 

주체81(1992)년 5월 5일 왕건왕릉을 찾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첫 통일국가인 고려의 태조왕릉답게 잘 만들어야 한다고 절절하게 교시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 이후에도 왕건왕릉을 꾸리는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차례에 걸쳐 강령적인 교시를 주시였으며 개건형성안도 보아주시면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정력적인 령도와 세심한 보살핌속에서 주체83(1994)년 왕건왕릉이 훌륭히 개건되여 우리 조국인민뿐만아니라 남조선과 해외의 전체 조선민족에게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었다.

왕건왕릉은 송악산의 가지줄기가 뻗어내려온 만수산의 나지막한 등성이우에 자리잡고있다.

 

개건된 왕건릉의 전경

 

릉문앞의 한 옆에는 어버이수령님의 친필이 새겨진 고려태조 왕건왕릉개건비가 정중히 세워져있다.

 

 

릉문으로 들어서면 제당과 비각이 있다. 제당안에는 왕건의 화상이 있으며 그밖에 고려를 창건하고 고구려의 통일지향을 계승하여 민족을 통합하여 나간 왕건의 생애에서 의의있었던 장면들을 그린 그림들이 있다.

2개의 비각안에는 각각 왕릉의 연혁을 기록한 릉비와 왕릉을 건설하고 보수정비한 내용을 기록한 릉비가 있다.

제당과 비각을 지나면 높은 단우에 전형적인 고구려식돌칸흙무덤의 모습을 갖춘 왕건왕릉이 있다. 왕릉(무덤)의 바깥둘레에는 쥐, 소, 범 등 12지신을 새긴 12각의 병풍돌을 세웠으며 그 밖으로 돌란간을 둘렀다.

왕릉의 네귀에는 돌범이 놓여있으며 앞에는 상돌과 망주석, 돌등 등이 있다.

둘째 단과 셋째 단에는 왕건을 따라 통일국가수립에 공헌한 《개국공신》들을 비롯한 8명의 측근신하들이 4명씩 량켠에 갈라서있다.

무덤칸내부는 중심에 큰 판석으로 된 관대가 놓여있고 좌우벽체아래에는 유물을 올려놓는 긴대가 있으며 동, 서, 북쪽의 세벽에는 참대와 소나무를 비롯한 그림들을 그린 벽화가 있다.

오늘 왕건왕릉은 백두산절세위인들의 숭고한 민족애와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며 북과 남, 해외의 모든 조선동포들을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실현을 위한 투쟁에로 힘있게 고무추동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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