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2 회)

 

제 11 장

41

 

캄캄한 어둠속에서 그 불빛은 그저 불빛이 아니라 등대처럼 보였다. 거침없이 찾아들어 세상만사를 몰인정하게 덮어버린 밤의 어둠을 그 한점의 불빛이 밀어내고있는듯 했다. 정원속의 푸른 잎새들과 주위에서 떠도는 밤나비들까지 그에 편승하여 성수가 나서 뒤설레이고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면 불빛이 안겨주는 비로도같은 포근함과 명주발같은 부드러움이 살갗을 스치고 한걸음 더 다가들면 그 뜨거움과 눈부신 빛발에 쇠덩이도 단숨에 녹아버릴듯 한 그곳은 장군님의 저택이였다.

최현은 후둑후둑 떨어지기 시작하는 비방울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제한몸에다 다 맞을듯 한 기세로 손가락만 한 나무아지 하나 드리우지 않은 길복판에 망두석처럼 박혀있었다.

이제는 밤도 깊고 비발도 굵어져 군복을 입은채로 빨래감이 되여버렸지만 그래도 서있는것이 움직이는것보다 편안하다는 진리를 고집스럽게 증명하려는것 같기도 했다.

원래 최현은 이렇게 고집스러운데가 많은 사람이였다. 그래서 이 저녁도 다른 어디도 아닌 장군님저택으로 오게 된것이다.

최현은 좀전에 내무성 경비국에 들렸다가 오백룡을 만났었다. 오백룡은 38연선에서 최현의 익측인 동부지역을 담당한 1경비려단장이였다. 최현이 송악산에서 복닥소동을 일으키는통에 자기까지 경비국에 불리워와 곁불에 얻어맞았다고 투덜거리던 그는 아예 죽은 시체같이 된 최현의 몰골을 보고는 이제 어디 가서 잘데는 있는가고 조용히 물었었다. 최현이 평양에 올라오면 늘 장군님댁에서 머무르군 하던것을 념두에 둔 물음이였다.

《자, 오늘은 나하고 같이 갑시다.》

《싫네!》

최현은 잡아끄는 오백룡의 손을 뿌리쳤다.

《내야 내가 가던 곳이 있는데…》

《뭐?! 그럼 장군님댁에 가겠다는건가요?》

《그래도 난 거기밖에 갈데가 없소.》

최현은 마치 장난끝에 동네에서 욕을 먹고 잔뜩 볼이 부은 어린아이처럼 찔통을 부렸다. 오백룡은 기가 막혀 혀를 찼다.

《무슨 면목으루 거길 간단 말입니까? 장군님께서 또 노하시게 하려구?》

최현은 곰같이 눈을 부릅뜨고 그냥 고집을 부렸고 오백룡은 끝내 그의 고집을 꺾어놓지 못하고 물러나고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 이렇게 왔지만 저택의 뜰안으로 선뜻 들어서지 못하고있었다.

자박자박―

포장길에 고인 비물을 튕기며 가볍게 내짚는 발자욱소리가 울렸다.

누군가의 단아한 형체가 저택의 불빛을 가리우며 빠른 속도로 확대되여왔다.

어느새 최현의 앞에 나타난 김정숙동지께서 비에 젖은 그의 머리우에 우산을 펼쳐주시였다.

《최현동지, 왜 그러십니까? 아, 왔으면 들어와야지 밖에서 이게 뭔가요?》

최현은 사람이 아니라 그저 하나의 물건짝처럼 끄시는대로 끌려갔다.

락수물이 떨어지는 저택의 처마밑에 이르러서야 녀사께서는 최현의 젖은 소매를 놓아주시였다.

《어서 들어가서 옷부터 말리워야겠어요.》

최현은 들어갈념은 안하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내가 온건 어떻게 알았습니까?》

장군님께서 이야기해주시더군요. 그래 최현동지가 평양에 온 사연을 나도 다 알게 됐어요.》

《평양이 아니라… 여기…》

최현은 손을 들어 뜨락을 흘끔 가리키고는 그 손으로 무릎을 꽉 눌렀다.

《여기… 와있는건 어떻게 알고 나왔소다?》

《어떻게 알다니요? 최현동지가 평양에 오면 늘 여기로 오군 했는데 왜 모르겠나요?》

《오늘도… 올줄 알았던 모양이우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시였다.

《그럼 어디 다른데 가서 저녁 얻을데가 있는가요?》

《그거야… 없지비.》

《없지비.》하는것으로 들어가는 문제는 결정된셈이였다.

최현을 방안의 초물방석우에 앉히신 녀사께서는 장안에서 깨끗이 손질한 면내의를 가져다주시고 부엌으로 내려가려 하시였다.

《정숙동무, 나가지 말아주오.》

최현은 녀사가 내놓은 마른옷을 밀어놓고 절이나 하듯이 무릎을 바닥에 대고 허벅지를 꼿꼿이 일으켜세웠다.

《다 들었다니 무슨 말이든 좀 해주오, 욕을 하든 충고를 주든…》

《최현동지, 우선 옷부터 갈아입고 몸을 말리세요.》

《정숙동무도… 몹시 언짢았고만, 말을 안하겠다는걸 보니…》

최현은 제풀에 맥을 잃고 풀썩 주저앉았다. 그래서 녀사께서는 그를 그냥 두고 나가실수 없으셨다. 무릎을 포개며 최현의 앞에 조심히 앉으시였다. 그와 동시에 벽시계에서 찌르르― 무엇이 감기는 소리가 나더니 뗑뗑 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현은 할일 없는 사람인듯 입속으로 그 종소리를 직심스럽게 세여보았다.

녀사께서는 팔목에 차고있던 시계를 얼핏 내려다보시였다. 최현은 그것이 만경대할머님이 일생 처음으로 장군님께 부탁하여 장만했다가 손자며느리에게 선물한것이라는것을 알고있었다. 일찌기 부모를 여의신 녀사께서는 그 시계를 통해 혈친의 따뜻한 정을 느끼군 하시였고 그것이 너무 소중하여 아끼시며 잘 사용하지 않으시였었다.

그런데 오늘은 최현을 기다리며 부뚜막의 밥그릇을 덥히느라 자주 드나들다나니 시간을 수시로 알아보려고 차신것 같았다.

(아홉…)

최현은 시계종소리의 마지막여운과 함께 셈세기를 끝냈다.

아홉시면 보통사람들에게는 늦은 밤시간이다. 다만 보통사람들에게만 말이다.

《어서… 말씀해주시우.》

《최현동지…》

김정숙동지께서는 팔목에서 반짝거리는 손목시계를 다른 손으로 감싸시였다.

장군님께서 주신 비판을 너무 노엽게 생각지 말아주세요. 비판이 너무했다면 그건 그만큼 믿음이 컸다는걸 의미하지요.》

《정숙동무, 이거 어째 이러시오.》

최현은 이제서야 정말 노여움을 타는듯 했다.

《이 최현이 너무 옹색해서 쥐구멍이라도 찾게 하자고 그러는건 아니요? 난 비판받은걸 두고 고민하는게 아니요. 아니, 그런게 아니라 저…》

최현은 생각보다 말이 앞서 허둥거리다가 그만 말문이 막혔다.

《하긴… 비판받은걸 두고 고민하고있지비.》

최현은 이마를 아래로 드리우고 쇠덩이같은 주먹으로 짓쪼았다.

《아니, 최현동지는 지금 자신이 장군님의 믿음을 본의아니게 저버렸다는것으로 하여 고민하고있을겁니다. 비판을 받은 그자체가 아니라 비판을 받도록 일처리를 잘하지 못한 자기를 놓고 후회하느라 고민하고있을겁니다.》

그이의 사려깊은 모습에서 최현은 자기라는 사람을 거울처럼 보다 더 선명하게 비쳐보고있었다.

《그리고 또…》하고 녀사께서는 계속하시였다.

《순간이나마 장군님의 뜻을 잊고있다가는 이보다 더 엄중한 과오를 범할수 있다는 교훈때문에 고민하고있지요. 늘 새겨보며 자기를 비추어보아야 할 그 어떤 소중한것을 잃은것 같아 그래서 모지름쓰고있는거지요.》

김정숙동지께서는 다시한번 자신의 손목을 쓰다듬으시며 시계를 어루만지시였다. 최현은 녀사의 손길을 자꾸만 잡아끄는 그 시계가 만경대가문의 혈통과 이어지는 맥박과도 같은것임을 알고있었다.

《어떻습니까? 최현동지, 제 말이 옳지요?》

《그야… 여부가 있습니까?》

《보세요, 그런데 제가 또 무슨 말을 해달라는건가요? 말을 해야 군더더기나 되지요.》

녀사께서는 활짝 웃으며 일어나시였다.

《그럼 전 이젠 좀 나가봐야겠어요. 장군님께서도 곧 오겠다고 하셨으니 잠간 앉아 기다려주세요. 제 오늘 만두국을 대접하지요.》

장군님께서요? 아마 안 들어오실거웨다. 이 최현이 꼴이 보기 싫어서라도 오늘 밤엔 안 들어오실거우다.》

《정말 그러실가요?》하고 녀사께서는 또 한번 웃으시였는데 꽃같은 그 웃음발이 자름자름 떨어져 최현이 앉은 초물방석에 꽃잎 하나가 더 새겨지는듯 했다. 최현은 그우에 편안히 앉아 어느 정도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나 잠시후 장군님께서 들어서시는 소리가 문밖의 마루에서 울릴 때부터 가슴은 또다시 쿵쿵 방아질을 했다.

녀사께서 부엌간쪽에서 마중나가시는 소리가 나더니 이어 《최현동무가 왔소?》하는 우렁우렁하신 음성이 문짬으로 새여들어와 최현의 가슴을 후두둑 두드려댔다.

문이 열리고 장군님께서 들어서시였다. 최현은 깔고앉았던 초물방석우에서 슬며시 내려앉아 일어서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허둥대다가 얼김에 엉치를 들썩하며 반쯤 일어섰다.

《허 참, 그래도 오긴 왔구만. 무슨 체면에 여길 왔소?!》

금시 쫓아내기라도 하실듯 한 그이의 어조가 도리여 마음을 가라앉게 하였고 최현은 셈평좋게 그 자리에 다시 주저앉았다.

《그래 식사는 했소?》

《아직…》

《그건 왜? 내가 안 들어오면 저녁을 굶을 잡도리였던게지?》

《정숙동무가 만두국을 끓여주겠다기에…》

얼김에 대답올리다가 최현은 얼른 뒤를 이어붙이려 했다.

《실은 그런게 아니라 저…》

《됐소, 만두국 한다는건 나두 몰랐는데 동무는 어떻게 알아가지고 찾아왔소. 비판이 아니라 그걸 먹자고 38도선에서 여기까지 부리나케 온것 같구만.》

장군님, 전 용서를 빌려고 왔습니다.》

《용서? 무슨 용서? 동무야 다 잘했고 다 타산했는데 무슨 용서를 빌일이 있다는거요?》

정지문이 열리고 녀사께서 저녁상을 들고 들어서시였다. 장에서 술병도 하나 꺼내여 밥상밑에 놓아주시더니 최현에게 국이 식기 전에 많이 들라고 다정히 권하시고는 조용히 방에서 나가시였다.

김일성동지께서 최현에게 술병을 밀어놓으시였다.

《부으시오.》

《…》

《부으라는데! 오늘은 죄지은 몸이니 내가 하라는대로 해야 하오.》

최현은 술병을 들어 부었다. 장군님의 잔에 먼저 붓고 다음엔 자기 잔에도 부어넣으려 했다. 그러다가 황황 타오르는 장군님의 눈길과 마주치자 찍소리 한번 못하고 술병을 얼른 내려놓았다. 그이께서는 그에는 개의치 않으시고 최현이 부어준 술을 단번에 기울여 밑굽을 내시였다.

《또 붓소.》

최현은 단추를 누른 기계처럼 또 부었다.

그이께서는 그 잔도 단숨에 비우시였다.

《또!》

장군님…》

술병을 든 최현의 손이 후들거리였다. 그이께서는 아직 국그릇이나 안주감에는 수저를 대지 않으시였던것이다.

최현은 그이께서 세번째 잔도 내고 네번째로 술을 또 부으라고 하시자 두손을 와락 뻗쳐 그이의 잔을 움켜쥐였다.

장군님… 제발…》

그이께서는 최현의 손을 느긋이 힘을 주어 밀어버리시였다. 그러나 더이상 술잔을 당기지 않으시고 저가락으로 접시우의 산나물을 집으시였다.

《제발 어쨌다는거요? 나에게 뭘 빌려 한다는거요? 그럴 필요가 없소. 난 이미 최현동무가 려단장자격이 없다는것을 말했소.》

장군님…》

최현은 피를 토하듯이 부르짖었다.

《직무에서 떼는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하지만 절 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전 살아도 죽어도 장군님과 운명을 같이하겠습니다.》

《어떻게 같이한다는거요?》

장군님의 음성에서 서리찬 노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최현이 듣건대 몇시간전에 집무실에서 권총을 회수하실 때보다 더더욱 노하신것 같았다.

《인민들과 경비대원들의 운명같은건 안중에도 두지 않고 저 하나의 밸풀이에만 급급해서 내달리고서도 나와 운명을 같이하겠다는거요? 이 김일성의 번뇌나 생각 같은것은 아랑곳도 하지 않고 저만 실컷 싸워보다 죽으면 죽고 그게 다라는것이겠지? 그러고도 나와 운명을 같이하겠다고 소리쳐낼 재간이 있소? 말해보오! 있는가, 없는가?》

《그야 없… 없습지비요.》

최현은 장군님께서 여유도 주지 않고 다그어대시는 바람에 떠듬거리면서도 제꺽 대답올렸다. 그가 그렇게 날래게 대답올린것이 어느 정도 흥분을 갈앉히셨는지 장군님께서는 깊은숨을 내쉬고나서 최현의 잔에 몸소 술병을 기울여주시였다. 최현은 얼나간듯 잔에 부어지는 술을 그저 지켜보기만 하다가 뒤늦게야 후들쩍 놀라며 그이의 손에서 술병을 앗아내려 했다.

장군님… 제가, 제가…》

그이께서는 허우적거리는듯싶은 최현의 손을 술병곁에서 치우시였다.

《됐소. 동무가 뭘 어쩌겠다는거요. 동무는 이 땅의 수천만인민을 서슴없이 사지판에 들이밀고도 자기는 영웅답게 죽으니 책임이 없다는 사람인데. 자기는 죽고 뒤에 가서 전쟁이 일어나든 국토가 분렬되든 관계치 않는다, 이거였지?》

《아닙니다, 장군님…》

《아니긴 뭐가 아니라는건가!》

그이께서는 어조를 높이시였다.

《드시오! 왜 들지 않소?》

술잔을 가리키시는 그이의 손짓도 명령처럼 여겨져 얼른 술잔을 입에 기울였다. 쓰겁고도 향긋한 술기운이 목구멍을 뜨겁게 지졌다.

최현은 거기에 취하고싶었다. 그래서 단숨에 잔을 냈다. 그이께서 또 부어주시였다. 또 마셨다. 세번째 잔도 그렇게 비웠다.

그이와 최현의 앞에는 네번째 잔이 각기 놓여있었다.

《동무는… 자기가 이 김일성의 뜻을 잘 받들지 못했다고 자책하고있는것 같은데 그보다 내가 동무에게서 바라는것이 무엇인지 그것부터 똑똑히 알아야 하오.》

그이의 어조는 침통한 무게를 안고 거침없이 가라앉는듯 했다.

《사실 난 요즈음 미국놈들과 정면으로 대결하고있는 나라의 운명을 두고 언제한번 발편잠을 자보지 못하고있소. 조국전선을 결성하고 통일을 위해 할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이면서도 전쟁이 각일각 다가오고있다는것을 수시로 느껴왔단 말이요. 그러면서도 38도선에 최현이 버티고있다는 생각으로 안도감을 느끼군 했소. 그런데… 그런데… 동무가 이럴줄은 정말 몰랐소. 모험을 했다… 타산을 한 모험을 했다…

오늘 동문 이렇게 말했지. 자기의 생명은 물론 그 생명뒤에 있는 수많은 인민들의 안전과 나라의 운명을 걸고 모험을 했단 말이요. 그럴수 있는가? 최현이 아직도 나를 모르는가 말이요.》

최현은 뼈저린 자책감으로 하여 눈물이 글썽해지려는것을 막으려고 두눈을 있는 힘껏 감았다.

《도대체 민족의 운명을 놓고, 나라의 앞날을 놓고 그 무슨 모험이라는걸 할수가 있겠는가 말이요. 우리 공화국정권을 믿고 따르는 당원들과 근로자들, 북남조선의 수많은 인민들의 운명을 놓고도 모험을 운운할수가 있는가 말이요. 그래 동문 우리가 시간이 많고 할 일이 없어 조국전선을 결성한다, 선언서를 채택한다 품을 들이는줄 아오? 전쟁이냐, 평화냐! 분렬이냐, 통일이냐! 오직 이 두가지로 판가름을 해야 할 오늘의 정세에서 이쪽도 저쪽도 아닌 그 무슨 모험이라는 중간개념이 끼여들수가 있는가! 그런데 동무는 뭐 타산을 했다구? 타산을 하고 모험을 했다… 그래 몇번이나 타산을 했소? 다른것은 몰라도 민족의 운명을 놓고, 나라의 장래를 두고, 닥쳐올 전쟁을 두고는 열백번 타산을 하고 또 하고도 천만번 다시 재여보고 또 재여봐야 한단 말이요. 왜 이걸 모르는가 말이요. 난 정말 최현이가 이렇게 사람을 실망시킬줄은 몰랐소. 정말…》

그이의 어조는 침통했다. 최현은 손을 휘저으며 몸부림쳤다.

장군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제가 정말 못난 놈이였습니다.》

부르르 떨리고있는 최현의 손에 꽉 틀어잡힌 밥상이 통채로 흔들리고있었다. 그러나 최현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고개만 자꾸 아래로 숙였다. 김일성동지께서 그 모든것을 괴롭게 지켜보고계신다는것도 느끼지 못했다.

《내 말을 좀 들어보오. 물론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 원쑤들과 사생결단하여 싸우겠다는 그 각오는 나도 리해되오. 하지만 최현동무, 우리에게 있어서 자기의 자주권을 지키는것과 나라의 통일문제는 하나의 개념이요. 우리가 주동적인 조치로 쏘련군대를 철수시키고 조국전선을 형성한것도 다 그래서가 아니겠소. 김석원일 요정내기 위해 개성까지 밀고나갔다는데 김석원이 역시 조선사람으로서 언젠가는 동족상쟁음모에 가담했던 오늘의 자신을 두고 후회하고 가책할 때가 있을거요.》

최현은 그이의 말씀을 페부에 쪼아새기고있었다. 말씀을 들을수록 심장이 점점 더 높뛰고 피가 마르는듯 한 괴로움에 시달렸다.

장군님, 제 성미가 덜돼먹다나니 과오를 범했습니다. 처벌해주십시오.》

《그건 성미때문이 아니요. 동무는 평양에서 멀리 떠나있다나니 나에게서 마음까지 멀어진것 같소. 아무래도 동물 다시 평양에 끌어올려야 마음놓을것 같소.》

장군님, 려단장에서는 해임시켜도 좋으나 38선만은 떠나지 않게 해주십시오. 대대를 맡겨줘도 좋고 중대를 맡겨줘도 좋고 일반병사들처럼 참호 하나만 맡겨줘도 좋습니다.》

《왜? 내 가까이에서 잔소리를 듣기 싫다는거요?》

《제겐… 38선에 있는것이 장군님곁에 있는것입니다.》

최현의 진정의 말에 장군님께서는 눈굽이 저려와 끝내 고개를 돌리시였다. 상우에서는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만두국이 아직도 김을 몰몰 피워올리고있었다. 그리고 그곁에는 들지 못한 네번째 잔이 놓여있었다. 장군님께서 먼저 그 잔을 손에 드시였다. 권하지는 않았지만 최현도 장군님을 따라 잔을 들었다.

이 마지막잔을 비우기가 헐치 않았다. 목안으로 흘러드는 뜨거운 액체가 팽팽하게 부풀었던 무엇인가를 다쳐놓은듯 다잡기 어려운 격정이 치밀어올라 술을 마저 낼수 없었다.

마구 울음을 터뜨리고싶은것을 겨우 억누르며 그래도 끝까지 잔을 비우느라고 온갖 인내성과 기력을 깡그리 짜내였다. 한참만에야 얼굴을 가리우고있던 술잔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잔이 내려지는 그곳에서 딱딱한 금속덩이가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상우에는 장군님께서 꺼내놓으신 권총이 있었다.

그이께서는 최현의 놀라운 눈길을 받으며 국그릇에 숟가락을 먼저 담그시였다.

《이젠 그만하고 식사나 합시다. 정숙동무가 모처럼 끓인건데 국이 다 식겠소. 그 총은 도루 건사하오. 38도선에 기어코 다시 나가겠다면 총이야 가지고가야지.》

최현은 보물을 싸안듯이 총을 움켜잡았다. 총과 함께 손이 떨리고 음식을 차려놓은 식탁까지도 떨렸다. 폭풍을 만난듯 모든것이 다 떨리고있었다. 국그릇안의 만두국도 파문을 일으키고 거기에 점점이 떨어지는 몇방울의 액체마저 떨리는 자리길을 그렸다.

이날 밤 최현은 그처럼 노하시였고 그처럼 사정없이 질책하신 장군님곁에서 발편잠을 잤다. 씩씩 황소숨을 내쉬며 업어가도 모르게 잠이 든 그의 곁에 누우신 김일성동지께서는 팔굽을 세워 몸을 반쯤 일으키시고 아기같이 잠자는 최현의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고계시였다.

그이께서는 최현의 이번 과오에서 파생될수 있는 문제들을 생각하시며 그 수습책들을 연구하고계시였다.

그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것은 이번 전투에서 부상을 당한 경비대원들에 대한 치료대책문제였다. 손실이 크지는 않지만 생사기로에서 헤매이고있는 중상자들이 적지 않았다. 언제인가 약혼녀문제로 되게 다불러세웠던 변익수소대장도 중태에 빠져 아직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있다는것이다. 그들을 하루빨리 평양의 내무성중앙병원에 후송하여 집중치료전투를 벌리게 해야 한다. 내무성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을 한사람도 빠짐없이 다 살려내야 한다고 곱씹어 당부하는것을 잊어서는 안되였다.

(아니, 차라리 내가 직접 가보는것이 더 좋지 않을가? 그래… 내가 가봐야 한다. 내가 직접 찾아가 그들을 고무하고 일으켜세워야 한다. 얼마나 귀중한 전우들인가? 그들은 조국을 위하여 서슴없이 스스로 불속에 뛰여들줄 아는 참다운 애국자들이다. 인민이 모두 알고 내세워야 할 조국의 수호자들이다. 신문과 방송으로 그들을 널리 소개하고 그들을 형상한 영화나 연극도 만들어야 한다. 래일 허정숙을 만나면 무엇보다먼저 그 문제를 의논하자. )

문득 그이께서는 강태무의 안해문제를 놓고 방학세에게 임무를 주시던 일이 떠오르시였다. 방학세가 능력도 있고 책임성도 있는 일군이니 어려운 과업이지만 무조건 훌륭히 수행해내리라는것은 믿어의심치 않으시였다. 그러나 남쪽에 혈육을 두고있는 강태무나 표무원이 같은 사람들이 겪고있을 심리적고충을 생각하면 심장이 저려나시였다.

(강태무처럼 처자와 갈라져 생사여부조차 모르고있는 귀중한 동지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한시바삐 나라의 통일위업을 성취해야 한다. 통일, 나라의 통일은 오늘의 준엄한 정세뿐아니라 평범한 매 개인들의 생활에서까지 미루어서는 안될 절실한 문제로 나서고있다. 앞으로 조국전선의 활동에 관심을 더 돌리자. 그다음… 참, 잊을번 했군. 정숙동무에게 말해서 최현이 이번에 내려갈 때 야전침대생활에 좋은 배띠를 더 장만해보내야겠다. 최현이 내 충고는 설사 죽으라는것도 다 들을 사람이지만 건강을 돌보는것만은 지켜주지 못할 사람이다. 아무리 욕을 하고 비판을 주어도 그것만은 어쩔수 없으니 그런 방법이라도 생각해내야지.

최현이… 내가 권총을 회수할 때는 무던히도 벌벌 떨더니…)

그이께서는 그동안 반대켠으로 돌아누운 최현의 뒤머리를 내려다보시였다.

최현은 여전히 세상만사를 다 장군님께 내맡기고 그곁에서 깊이 잠들어있었다. 깨우지 않으면 영원히 깨여나지 않고싶은 그런 잠에 빠져있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kakaotalk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