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페지로
날자별열람

제 6 회


5


봉황산의 지명유래는 이 산의 지형학적특징과 관련되여있다. 즉 봉황새가 내려앉는 모양이라는건데 듣고보면 과연 그럴법도 했다. 가운데 제일 큰 봉우리는 봉황새의 몸뚱이요, 량옆으로 완만하게 흘러내렸다가 다시 불쑥 솟아오른 두개의 봉우리는 봉황새의 활짝 펼친 날개요, 몸뚱이앞으로 쭉 빠져나와 봉긋이 솟은 작은 봉우리는 머리, 뒤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봉우리는 봉황새의 꼬리형국이다.

사실은 봉황새란것자체가 현실에 없는 환상적인 새로서 신비로운 새에 비할 정도로 봉황산은 생김새가 기묘하고 다양하며 아름다왔다. 봉우리마다 울울창창한 소나무와 참나무의 혼성림들, 기암절벽들로 조형미를 갖춘데다 서남쪽으로 바다처럼 넓은 저수지가 시원하게 탁 트여 산의 수려한 풍치를 통채로 거울처럼 비껴담았다.

준석은 어느덧 산기슭에 올랐다.

풀잎마다 함초롬히 맺힌 이슬에 운동화와 바지가랭이가 축축히 젖어들었다.

수정같이 맑은 물이 쪼록쪼록 소리내며 흐르는 골개를 만나자 소년시절의 애틋한 동심이 살아나 신발을 벗고 들어섰다. 쩌릿한 쾌감이 온몸에 퍼져갔다. 물이 어찌나 맑은지 고기비늘모양의 무늬주름이 잡힌 모래바닥이며 버들치, 송사리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양이 눈이 아물거리도록 안겨왔다.

준석은 형언할수 없는 매혹과 감동의 충동을 느끼며 와락 물을 떠서 얼굴에 끼얹었다. 한참동안 푸푸 세면을 하고나서 수건을 뽑아든채 물속을 그냥 걸어 올라갔다. 사락사락 보드라운 모래가 발바닥에 밟힌다.

골개물을 따라 산중턱에 이르니 밥상처럼 크고 둥근 바위가 눈길을 끌었다.

바위에 깃든 소년시절의 추억 한토막이 삼삼히 떠올랐다.

가을철 어느날 준석은 자기 집 사랑채에서 친형제처럼 살고있던 18명 아이들과 함께 봉황산에 들놀이를 갔었다. 언제나처럼 맏이인 대일이가 열살아래인 준석을 옆에 끼고 걸었고 준석이보다 이태아래인 막냉이 영순이가 떨어질세라 달랑달랑 뒤를 따랐다. 사내이상으로 배짱이 세고 벌차기 그지없는 영순은 같은또래 처녀애들은 물론 동네방네 남자애들한테도 지려고 하지 않았다.

영순은 손우오빠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했는데 그중에서도 진중하면서도 인정많은 준석을 그림자처럼 따랐다. 저수지에 나가 물고기잡이도 같이했고 밤따러 나무에도 같이 올랐다.

이날도 오빠들이 하는 내기에 같이 끼여들었다. 봉황산에 있는 바위들은 죄다 찾아내여 이름붙일 내기였다. 봉황산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많았는데 그 모양을 보고 누가 먼저 신통한 이름을 붙이는가 그 개수를 세여보고 승부를 결정하는 놀음이였다.

봉황산의 이름없던 많은 바위들에 이들이 제멋대로 지은 이름들이 붙게 되였다. 《상투바위》, 《주름바위》, 《개구리바위》, 《삿갓바위》, 《곰바위》, 《오또기바위》, 《고구마바위》…

어떤 때는 같은 대상을 놓고 세개의 각이한 이름이 나와 서로 제 말이 옳다고 싱갱이질도 했다. 그러다가 이 바위를 놓고 마지막결승전이 벌어졌다. 둥글고 널퍽하고 반반하게 생긴 이 바위의 이름을 어떻게 지을것인가 문제를 내놓자바람에 세 아이의 입에서 동시에 《밥상바위》라는 이름이 튀여나왔다. 너무도 신통한 일치에 그들은 허리가 끊어져라고 웃어댔다. 생김새도 여불없는 밥상모양이거니와 그 바로 밑에 사시절 마를줄 모르는 차고 정갈한 옹달샘이 있어 그야말로 안성맞춤한 《밥상바위》였다.

그날 점심을 바로 여기다 차려놓고 오락회도 하고 밤청대도 해먹던 일이 어제런듯 선했다.

세 동무의 생각을 하나로 일치시켜준 바위여서 그들은 모두 이 《밥상바위》를 《한마음한뜻》을 의미하는 우정의 상징으로 간직하고 잊지 못했다. 그해 가을 군대로 떠나는 대일이를 바래우고 몇해후 준석이가 또 군대에 나갈 때에도 바로 여기서 《송별회》를 조직했었다. 어려서부터 다정다감한 문학소년이였던 준석은 그날 이 《밥상바위》에 한편의 즉흥시를 남겨놓고 떠났다.


이 땅의 열매를 가득 담아

진수성찬을 차려놓아도

다리부러질 념려없으리

넓고도 굳건한 《밥상바위》야


마치도 너는 우릴 위해 여기 솟은듯

한마음한뜻으로 맺었지

영원히 변함없을 우리의 우정을


우리 오늘

즐거웠던 소년시절의

가지가지 추억을 차려놓고

너와 작별한다만


기다려다오 다시 만나는 그날엔

사랑하는 고향의 오곡백과를

네우에 차려놓고 상봉의 주연을 베풀리

잘있으라 《밥상바위》야


그때로부터 세월은 어언 20년이나 흘렀다. 그날의 《밥상바위》 명명자들이 오늘 경영위원장으로, 관리위원장으로, 작업반장으로 다시 만났다.

갖가지 과일나무들이 줄지어선 과수원이 시작되였다. 오래전부터 호랑이가 새끼칠 정도로 무성하던 풀숲을 개간한것이였다. 복숭아, 추리, 사과, 배, 대추, 살구, 양벗, 왕밤 등 없는것이 없다. 과수원 한가운데 금잔디가 정결하게 덮인 큰 봉분이 나타나자 준석은 걸음을 멈추었다. 산뜻한 화강석묘비에 《로력영웅 김윤기의 묘》라는 붉은 글발이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15년전 이 과수원개간전투를 끝내고 쓰러져 림종에 이르렀을 때 아버지는 자기를 바로 여기에 묻어달라고 유언하였던것이다. 선봉리를 살기 좋은 락원으로 더 잘 꾸리고 어버이수령님을 다시 모시게 되는 날 넋이라도 여기서 깨여나 그이를 뵈옵고싶다는것이였다.

봉분을 마주하고 서니 그리운 아버지의 얼굴이 선히 떠올랐다.

(아버님, 용서하십시오. 이렇게 뒤늦게야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지심깊은 곳에서 아버지의 목소리가 분명히 울려오는듯싶다.

준석은 산기슭아래로 즐비하게 일떠선 문화주택마을이며 그앞으로 무연히 펼쳐진 청룡벌이며 동서로 길게 뻗어간 옥수천동뚝을 추연히 바라보았다.

아버지세대가 일떠세운 이 사회주의농촌을 어떻게 하면 더 활짝 꽃피우고 빛내일수 있을가?

일찌기 어버이수령님께서 가르쳐주신것처럼 쌀은 곧 사회주의다.

쌀!

단 한글자로 표현되는 그 쌀이 인간의 생명과 련결되고 민족의 운명, 제도의 흥망과 관련되여있다.

그 한글자로 표현되는 쌀을 위해 얼마나 많은 영농자재와 영농공정이 요구되며 얼마나 많은 땀과 지혜와 노력이 필요한것인가.

준석이 이런 생각을 하며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데 어디선가 철썩철썩 하고 돌이 물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산굽이를 돌아 그리로 가보니 삼태기처럼 생긴 골안어구에서 웬 로인이 웅뎅이의 돌을 추어내다 개울가녁에 던져넣고있었다. 머리엔 백발을 이였는데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검정색닫긴옷을 입은 키가 꺽두룩한 늙은이였다. 땅속에 박힌 돌을 뽑아내느라 안깐힘을 쓰는데 입술을 사려문 기름한 얼굴에 땀이 비오듯 흘러내리고있었다. 로인은 들고 온 돌을 철써덕 내던지고 돌아서더니 이번에는 괭이를 찾아들고 웅뎅이밖의 풀뿌리를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준석은 로인이 웅뎅이자리에 밭을 만들고있음을 알아차렸다. 세괃게 내리치는 괭이날에 주변의 풀이며 잡관목들이 뿌리채 뒤집어졌다.

준석은 이 새벽에 년로한 몸으로 홀로 힘겨운 일을 하고있는 그를 무심히 볼수 없었다.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그가 먼저 준석을 띄여보고 우뜰 놀라 굳어졌다.

《아―니, 이게 뉘시우?》

준석이도 로인을 알아보았다.

그는 영순의 시아버지 리덕준이였다.

성큼한 키에 거쿨진 체구며 쩍 벌어져 량쪽으로 솟구친 두어깨며 하관이 목아래까지 쭉 빠진 길쑴한 얼굴에 량끝이 쳐들린 큰 눈이며 날개죽지를 펼친것 같은 넙적고무신모양의 귀박죽… 모든 생김이 다 길면서도 솟구치는 형이여서 주름깊은 얼굴일망정 왕성한 정력이 느껴진다.

《그새 안녕하셨습니까? 아버님.》

준석이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자 로인은 괭이를 내던지고 허둥지둥 달려와 준석의 손을 와락 부둥켜잡았다.

《이 사람 준석이! 자네가 여기 관리위원장으로 왔단 소릴 들었네. 잘 믿어지지 않더니 정작 이렇게 보니까 꿈을 꾸는것 같구만. 꼭 자네 아버지를 보는것 같애서…》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준석은 아버지와 한전호에서 싸웠고 협동조합도 함께 무은 로병의 손을 오래도록 놓지 못했다.

《자, 여기 좀 앉자구.》

《뭘 하시댔는지 함께 마저 하면서 얘기합시다.》

《아니, 아니야! 염소방목 나왔던 길에 아까운 공지가 눈에 띄길래 풀판이나 좀 만들어볼가 해서 소일거리삼아 하던 일일세. 자네야 관리위원장인데 이런데까지 들이밀 몸이 어디 있나?》

로인은 지게에 실었던 마대 두개를 나란히 눕혀놓고 준석을 끄당겨앉히더니 부시럭부시럭 담배쌈지를 끌러댔다.

좀 떨어진 풀밭에서는 젖통이 두부자루같이 늘어진 염소가 작시미로 버텨놓은 지게에 달라붙어 안쪽에 댄 벼짚을 뜯어먹고있었다.

준석은 로인이 말아주는 담배 한대를 받아들고는 그의 주름진 얼굴을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년세도 많으신데 이런 산길이 힘겹지 않습니까?》

《아닌게아니라 이젠 다리힘두 전같지 않은게 알려. 허지만 한생 습관된 일이 돼놔서 하루라도 이 봉황산의 새벽바람을 쐬지 못하면 못살것 같다니. 이렇게 산에 올라 염소두 멕이구 소꼴두 하면서 내려다보면 내 한생이 깃든 고향땅이 한눈에 안겨오니 얼마나 좋은가. 늙으면 추억하는 재미에 산다더니 그래 그런가보이, 허허…》

로인은 고불통에 마라초를 다져놓고 뻐금뻐금 불을 붙였다.

《저―기 마을중심에 우뚝 서있는 정자나무 있잖나? 그게 자네 아버지랑 같이 협동조합을 뭇던 날 기념으로 심은거라네. 그날이 엊그제같은데 벌써 수십년세월이 흘렀군. 그때 애리애리하던 나무가 오늘은 저렇게 거목이 된걸 보면 마치 우리 농장이 걸어온 력사를 보는것 같네.》

《예―》

준석이도 로인의 눈길을 따라 리당과 관리위원회사이에 거연히 솟아있는 한그루 거목을 생각깊이 바라보았다.

로인이 지게에 달라붙어 벼짚을 뜯어먹는 염소의 잔등을 철썩 때려 고삐를 잡아당겼다.

《이놈아, 그만 먹지 못하겠니?》

《참, 그 염소가 왜 지게등을 뜯어먹습니까? 생생한 햇풀도 많은데 하필…》

준석이 이상한 생각이 들어 물었다.

《지게등이 땀에 절어서 쩝쩔하니까. 염소란 놈두 소금기가 섞인 먹이를 좋아하거던.》

《아니, 지게를 얼마나 졌으면 그렇게까지 됐습니까?》

로인은 고삐를 맨 쇠말뚝을 반대로 풀판에 끌어다 박고나서 지게를 소중히 쓰다듬었다.

《이 지게가 참 력사가 깊은거라네. 바루 그때 전후시기부터 거름을 져나른 지게지.》

《예? 아니, 그럼 40년이나 이걸 사용해왔단 말입니까?》

준석은 놀라 되물으며 사람의 손때가 묻어 옻칠을 한것처럼 반들반들 윤기가 도는 지게다리며 가름대를 신기하게 매만져보았다.

로인은 두눈을 좁혀뜨고 멀리 앞을 쳐다보며 감회깊은 어조로 말했다.

《지금 아무리 어렵다 하면 그때의 재더미에 비기겠나만 그때 정신으루 살지 못하는데 문제가 있지. 아, 그땐 조합살림이란게 달구지 몇대, 소 서너마리가 다였지만 그대신 사람들이 몸을 아끼지 않고 일했어. 풀단을 져두 한지게에 백여키로씩 졌단 말이야. 먹을것이 없어 올메 캐다 죽을 쑤어먹으면서도 우는소리 한마디 없었구 누구네 집에 불행이 생기면 같이 울고 슬픔을 함께 나누었네.

지금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더러 있거던. 어떤 농장원들은 농장일보담두 개인부업에 더 극성이구 거름두 진짜 좋은건 농장밭이 아니라 개인밭에 내가네. 농장일 해서 차례지는것보다 부업해서 버는 돈이 더 많다는거지.》

로인의 말을 새겨듣는 준석은 생각이 깊어졌다.

《일부 농장원들이 리기주의를 하게 된데는 일군들의 책임도 크다고 보네. 농장원들만 탓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거던. 참 안타까운 일이야. 웃사람, 아래사람이 한마음한뜻이 돼야 땅을 울릴텐데…》

로인의 말은 준석의 가슴에 예리한 충격을 주었다.

(그렇다. 문제는 일군들과 농장원들에게 달려있다. 기름, 비료 그 모든것이 다 긴장하고 중요한 문제이지만 원칙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문제는 대중을 어떻게 발동시키는가 하는것이다.)

준석은 이제부터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석연해지는듯싶었다.

《아버님, 제 아버님의 그 말씀을 꼭 명심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젊은이들이 일을 잘못하면 잘 신칙해주십시오.》

《고마우이. 자네야 평양서 고향엘 내려온것만 봐도 가히 그 마음을 알수 있지.》

《기대에 보답하겠는지 모르겠습니다.》

《허허… 무슨 일이나 마음이 중요한걸세.》

어느덧 날은 환히 밝았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인생의 열매 제54회 인생의 열매 제53회 인생의 열매 제52회 인생의 열매 제51회 인생의 열매 제50회 인생의 열매 제49회 인생의 열매 제48회 인생의 열매 제47회 인생의 열매 제46회 인생의 열매 제45회 인생의 열매 제44회 인생의 열매 제43회 인생의 열매 제42회 인생의 열매 제41회 인생의 열매 제40회 인생의 열매 제39회 인생의 열매 제38회 인생의 열매 제37회 인생의 열매 제36회 인생의 열매 제35회 인생의 열매 제34회 인생의 열매 제33회 인생의 열매 제32회 인생의 열매 제31회 인생의 열매 제30회 인생의 열매 제29회 인생의 열매 제28회 인생의 열매 제27회 인생의 열매 제26회 인생의 열매 제25회 인생의 열매 제24회 인생의 열매 제23회 인생의 열매 제22회 인생의 열매 제21회 인생의 열매 제20회 인생의 열매 제19회 인생의 열매 제18회 인생의 열매 제17회 인생의 열매 제16회 인생의 열매 제15회 인생의 열매 제14회 인생의 열매 제13회 인생의 열매 제12회 인생의 열매 제11회 인생의 열매 제10회 인생의 열매 제9회 인생의 열매 제8회 인생의 열매 제7회 인생의 열매 제6회 인생의 열매 제5회 인생의 열매 제4회 인생의 열매 제3회 인생의 열매 제2회 인생의 열매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