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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 회


6


준석이 관리위원회마당에 들어섰을 때는 아직 누구도 출근하기 전이였다.

생산부사무실에서 젊은 부원이 방안거둠을 하고있었다.

그는 황황히 달려나와 준석의 비자루를 뺏으려 했다.

《저… 관리위원장동지, 제가 쓸겠습니다.》

준석은 무슨 죄나 저지른것처럼 당황해하는 부원을 의아스럽게 마주보았다.

《왜 그러오? 동무 할 일이 있는데.》

부원은 무안해서 얼굴을 붉히며 되들어갔다.

얼마 안있어 또 한사람이 출근했는데 그도 역시 놀란 얼굴로 뛰여와 비자루부터 뺏으려 했다.

준석은 이번에도 리해할수 없다는듯 대꾸했다.

《저기 비자루가 또 있지 않소?》

그는 면구한듯 뒤더수기를 긁으며 비자루를 가지러 뛰여갔다.

세번째 사람이 꼭같은 행동을 반복했을 때는 그만 웃지 않을수 없었다.

《허, 아니, 남의 로동도구를 빼앗는게 무슨 도덕인가 하는게 아니요?》

《예? 로동도구를… 빼앗다니요?》

부임인사때 눈에 익혀두었던 번대머리회계장이 오히려 제편에서 이상하다는듯 놀란 표정을 짓고 스스럼없이 반문했다.

《우리 관리위원회에 마당 쓸 사람이 없어서 관리위원장동지가 비자루를 들게 한단 말입니까?》

《회계장동무 생각이 그러하니 여기 사람들의 관리위원장에 대한 인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겠소. 나는 여기 량반노릇하러 온게 아니니 달리 생각 마오.》

준석은 부드럽게 말하고 흔연히 일손을 잡았다.

맨 나중에 나온 사람은 민영태부위원장이였다. 차색잠바를 걸치고 버릇처럼 담배대를 물고 나타난 그는 심상하게 마당을 휘둘러보다가 구석쪽에서 풀을 뽑으며 쓰레기를 몰아나오는 준석을 보자 뜻밖인듯 굳어졌다. 화구간으로 가보았으나 비자루가 더는 없는지라 공연히 헛기침을 깇으며 서성거렸다.

사실 민영태는 관리위원회의 년장자로서 젊은 관리위원장의 이런 행동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매우 딱하고 옹색스런 심정이였다. 그렇잖아도 지금까지 몇달동안 대리관리위원장을 하면서 아래사람들을 신칙하는데 습관되여온터에 이제부터 나이가 훨씬 아래인 젊은이를 웃사람으로 섬긴다는게 마음편할리 없는 그였다. 첫시작부터 전례를 깨뜨리고 상하간의 새로운 도덕관념을 말없이 가르치는 그 행동이 다름아닌 자기에 대한 힐난처럼 느껴져 얼굴 달아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영태는 그 어색함을 모면하기 위해 아무렇지 않은듯 느슨한 웃음까지 지으며 롱말을 던졌다.

《하, 이거 젊은 관리위원장이 오니 관리위원회가 다 젊어지는것 같소. 나같은 로장파는 이젠 어스벙대지도 못할게 아닌가? 허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부위원장동지같은 선배들이 있어 우리들도 있는거지요. 더구나 60청춘을 노래하는 때에 벌써부터 로장파로 자처하며 뒤전에 서면 우리가 섭섭하지 않습니까?》

준석이도 우선우선하게 웃으며 롱을 받아넘겼다.

민영태는 그 말에 한결 마음이 풀어져 쓰레박을 찾아들고 나가면서 래일부터는 아침출근을 바싹 서둘러야겠다고 단단히 속다짐을 하였다.

잠시후 청소가 끝나자 관리일군들은 위원장방에 일제히 모여앉았다.

새 관리위원장 부임후 첫 조회여서 어떤 사업이 조직될것인가 하고 모두 긴장된 속에서도 은근한 호기심들을 품고있었다.

마침내 준석의 입에서 새납소리같이 청청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늘 새벽 처음 일부 작업반 포전들을 돌아보았습니다.

돌아본 결과 제가 결심하게 된것은 봄갈이에 앞서 토지를 개량하기 위한 사업을 전격적으로 벌려야 하겠다는것입니다. 그 필요성에 대해선 저보다도 동무들이 더 잘 알겠기때문에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강조하고싶은것은 올해 긴장한 비료사정과 관련해서 토지의 지력을 높이는 문제가 특별히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는것입니다.

이 사업은 아무때나 해도 되는것이 아니라 땅에 씨앗을 묻기 전에 와닥닥 해제껴야 하는 매우 긴급한 일이기도 합니다.

봄갈이와 씨뿌리기에 들어가기전 10일어간에 농장의 모든 로력을 총동원해서 돌격전을 벌리자고 합니다. 특히 여기서 우리 관리일군들이 앞채를 메고 선도적인 역할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선 오늘중으로 매 동무들이 담당작업반들에 나가 진거름달구지 두대씩을 만들어 3일내로 보고해야 하겠습니다.》

(진거름달구지 두대?)

민영태는 자기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다른 관리일군들도 마찬가지였다.

평양에서 금방 내려온 일군의 첫 사업포치라고는 선뜻 믿기 어려웠던것이다.

민영태로 말하면 준석의 뜨르르한 배경과 경력을 크게 믿었던 사람이고 또 관리위원장의 진짜능력은 대상기관과의 사업에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으로서 준석이 처음으로 하는 사업조직에 놀라움정도가 아니라 허거픈 느낌마저 들었다.

좌중이 술렁거리자 준석은 못을 박듯 강조했다.

《지금 포전마다 흙깔이를 한다고 하였지만 유기질성분이 매우 적기때문에 결정적으로 진거름작업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습니다.

3일내로 진거름달구지를 만들고 그 다음날부터 한대가 하루 두탕씩 정확히 10일간 진거름을 수집해서 논밭에 내야 하겠습니다.》

방안은 물을 뿌린듯 조용해졌다.

준석은 한층 더 절절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제가 이 과업을 작업반장들에게 직접 주지 않고 동무들에게 주는것은 우리 관리일군들부터가 농장원들과 한덩어리가 되여 그들의 앞장에 서기를 바라기때문입니다. 이제는 우리 일군들이 농장원들에게 말로만 지시하고 교양할 때가 아닙니다. 사회주의가 좋다고, 사회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연설하기 전에 사회주의가 우리의 생활이고 생명이라는것을 실지 행동으로, 열매로 보여주어 진심으로 믿고 따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 일군들과 농장원대중이 일심동체가 되여 생사운명을 같이하면서 이 땅을 가꾸어야 풍작이 이루어진다는것입니다.》

마디마디 진정에 넘치면서도 결패있는 준석의 호소는 참가자들의 심금을 강하게 울리였다.

조회가 끝나 모두 담당작업반으로들 흩어져 떠나는데 때를 기다린듯 전화종소리가 울렸다.

송수화기를 드니 강철판을 두드리는듯 쟁쟁한 목소리가 귀전을 울렸다.

《관리위원장동무요?… 나 김대일이요.》

《아니, 경영위원장동지가?》

준석은 공식적인 부름말을 썼으나 가슴속엔 혈친의 정이 가득차올랐다.

《혹시 지금 회의도중이 아닌가?》

《아닙니다. 방금 조회를 마치구 작업반에 나가보자던 참입니다.》

《부임 첫날부터 몹시 바쁘구만. 당장 계획한 일이 많은가?》

《그야 말할게 있습니까? 분토생산, 흙깔이, 봄갈이, 벼락종준비, 밀보리감자파종, 게다가 대용비료, 대용연료연구도 추진시켜야지 무엇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준석이 하소하듯 내리엮는 자신을 깨닫자 스스로 얼굴을 붉히였다.

수화기에서는 격려에 찬 대일의 목소리가 쟁쟁하게 진동판을 때렸다.

《그럴수록 주선을 놓치지 말아야 해, 주선을! 알겠나? 지금 당면한 영농공정은 씨뿌리기야.

사실은 내 준석이도 새로 온김에 선봉리를 내세울겸 거기에 씨뿌리기방식상학을 조직하자고 하네. 처음부터 기세를 올릴 필요가 있기에 그러는데 어떤가? 자네 생각은?》

《씨뿌리기방식상학을요?》

준석은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당장 벌려놓은 전투만 해도 로력과 시간이 긴장한데 방식상학준비까지 할 여유가 있겠는가?

그는 이내 고쳐생각하고 대답했다.

《좀 바쁜건 있지만 해야지요. 방식상학을 준비하는 과정에 선봉사람들의 일본새를 혁신시킬수 있지 않겠습니까?》

《옳소. 바로 그거요. 선봉리가 응당 군의 본보기가 되여야 하며 될수 있다는것을 확신시켜야 하오. 방식상학단위부터 잘 설정하구 준비를 다그쳐주오. 날자는 이달 22일이요. 참가대상은 군내 관리위원장, 기사장들이요. 한번 본때를 보이라구.》

《알겠습니다.》

《처음 하는 일이니 힘은 들겠지만 첫걸음은 될수록 크게 떼야 한다는걸 명심하오. 내 말뜻을 알겠소?》

《예, 알겠습니다.》

어느 작업반을 방식상학단위로 정할것인가?

불쑥 떠오르는것이 박영순의 얼굴이였다.

어제 밤 당비서의 집을 나와 자기 집으로 들어섰을 때 영순은 어느새 두부를 앗아가지고 와서 어머니와 함께 자기를 기다리고있었다.

《준석오빠!》

그는 준석의 손을 붙잡고 눈물부터 앞세웠다.

작업반을 이끌어나가면서 사내들도 줌안에 걷어쥐고 휘여낸다는 녀성반장이 준석이앞에서는 《밥상바위》시절의 소녀로 되돌아갔다.

그것이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추억때문이라는것을 준석은 모르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나가던 날 《밥상바위》에서의 송별회끝에 영순이와 작별하던 일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때 이미 영순은 장난세차던 철부지소녀가 아니였다.

영순은 정성스레 뜬 당원증주머니를 주며 《오빠! 꼭 당원이 돼서 돌아와야 해요.》 하고 당부했다.

준석은 어리게만 보아온 영순이 그사이 훨씬 키가 자란것이 대견하여 다정히 물었다.

《영순인 졸업하고 어디 갈래?》

남달리 총명하고 어여쁜데다가 승벽심이 강해서 누구에게 지는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영순이의 앞날이 못내 기대되였던것이다.

《나 아버지처럼 영웅이 될래.》

《뭐? 영웅?!》

뜻밖의 말에 준석은 놀랐다. 소녀의 가슴에 이런 웅심깊고 어벌 큰 포부가 들어앉았을줄은 미처 몰랐었다.

준석은 감동에 겨워 영순의 손을 꼭 잡아 흔들었다.

《좋아! 탁구녀왕 박영순인 체육인영웅이지만 우리 영순인 농민영웅이 되여라.》

《농민영웅! 아이, 정말 그렇게 될테야.》

두손을 맞잡고 가슴을 들먹이는 영순의 두눈이 구슬처럼 빛났다.

이렇듯 그들 두사람을 련결시킨것은 오누이로서의 단순한 친밀감만이 아니라 아버지 김윤기에 대한 존경심의 뉴대였다.

영순은 준석과 헤여진 후 자기의 목표를 향해 완강히 돌진해갔다.

단발머리로 농장에 진출한지 얼마 안되여 하루에 모를 열판씩 뜨고 뜸을 마흔장씩 엮어 사람들을 깜짝 놀래웠다. 얼마나 일을 무섭게 하는지 《꼬리없는 황소》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게다가 쉴참에는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어 《농장의 보배둥이》로 뭇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다싶이 되였다.

19살에는 선동원이 되였고 몇해후엔 전국선동원대회에도 참가하게 되였다.

초소에서 신문을 통해 영순을 보게 된 준석은 너무 기뻐 장문의 축하전보를 보냈었다.

《고맙다! 영순! 내 고향의 이름을 온 나라에 빛내여주는 박영순에게 축복을!》

그때 감탄부호를 세개씩 친 전보용지를 보고 눈이 둥그래지던 기통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때로부터 인생의 목표에서 흔들림없이 리에서 언제나 1등을 양보하지 않는 《1등반장》, 《욕심반장》으로 성장한것이다.

준석은 이렇게 성장한 영순이를 만나게 된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눈귀에 맺힌 물기를 말끔히 닦고난 영순은 복스런 얼굴에 함뿍 웃음을 담고 간절히 부탁했다.

《오빠, 이제는 어디 가지 말고 이 덜렁이가 영웅이 될수 있게 잘 이끌어줘요.》

《그래, 그러자꾸나.》

준석은 일군으로서의 영순의 앞날을 기대하면서 앞으로 영순을 각근히 돌보아줄 결심을 헌헌히 다졌었다.

(그래, 영순이한테 맡기자.)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준석은 지체없이 사무실을 나서 2작업반으로 향했다.

탈곡장에서는 언제 나왔는지 2반담당인 민영태부위원장이 작업반 기술원과 열성스레 사업토의를 하고있었다. 적동색으로 탄 얼굴이 갱핏하면서도 유순하고 차분한 성미가 엿보이는 기술원이 선전실 앞면벽의 퇴비반출경쟁도표에 붓질을 하던 자세로 꾸벅 인사를 하였다. 그리고는 반장이 지금 모판작업현장에 나가있다고 알려주었다.

《아니, 벌써 모판작업에 착수했단 말이요?》

《말할게 있습니까? 우리 반장이야 번개불에 콩닦아먹을 정도로 성미가 급한걸요.》

《그렇소?》

준석이 새삼 놀라와하자 민영태도 《아 그럼, 말씨도 행동도 언제봐야 한두박자는 남보다 빠르니까.》 하고 맞장구를 쳤다.

준석은 어쨌든 마침 잘됐다는 생각을 하며 총총히 벌판으로 나갔다.

수십명의 작업반원들이 지게로 부식토를 나르느라 분주히 오가는 속에 삽질을 하는 박영순의 모습이 유표하게 나타났다. 암록색작업복 한벌에 연보라빛꽃문양을 넣은 흰 바탕의 목수건을 두르고 파란 장화를 가뜬히 받쳐신은 그의 온몸에서는 생기와 탄력이 넘쳐났다.

김이 문문 나는 잘 썩은 거름을 걸이대로 듬뿍듬뿍 떠서 지게들에 담아주던 영순이 문득 허리를 펴더니 자갈밭을 달달 구는듯 한 그 특유한 목청으로 소리를 쳤다.

《참, 이봐요. 금옥이 아버지! 수로작업을 좀 빨리 다그쳐야겠어요. 늦어두 래일까진 끝내야 해요!》

저쯤 떨어진 곳에서 혼자 도랑을 파던 중년의 사나이 창세가 힐끗 고개를 돌려보더니 쓰다달다 말없이 삽질을 계속했다.

《아이, 들었어요? 못 들었어요?》

영순이 안타까운듯 목청을 높여 되물어서야 《들었수다.》 하는 대답이 날아왔다.

영순은 얼굴에 걱정스런 기색을 담고 혼자소리로 중얼거렸다.

《왜 또 저럴가? 어디가 아프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수가 없다니까.》

그 소리에 누군가 능청스럽게 수군거렸다.

《그 사람 병엔 약이 없시다. 색시를 얻어주어야 해요, 색시를.》

이때라는듯 젊은 남정들이 이구동성으로 키질을 해댔다.

《사실말이지 그 말이 맞지 뭐. 알뜰살뜰한 색시가 곁에 있으믄야 저렇게 하루종일 소죽은 귀신처럼 뚜해있겠소?》

《원래 홀애비생활이란 그렇게 궁상스러운 법이야. 무조건 아주머닐 얻어주어야지 안된다구.》

《한데 어디 색시감 톺으러 다닐 시간이 있어야 얻어주지?》

《어데 멀리루 다닐거 있소? 한마을에 혼자 사는 녀인이 있지 않나?》

《아유, 말마우다. 그 아낙네가 창세따위를 거들떠나 보는줄 알우? 흥!》

《그런게 아니라 창세가 그 녀자를 쓴외보듯 합디다, 원.》

가재도 게편이라고 남정들은 남자편을, 녀인들은 녀자편을 드는 판이다.

《그래가지구야 홀애비 언제 장가가보겠소?》

누군가의 말에 깔깔껄껄 웃음이 터지는데 영순의 맵짠 목소리가 그우에 날아갔다.

《됐어요! 남의 속은 알지도 못하면서 이러쿵저러쿵 말들 하지 말아요. 혼자 사는 사람 심정은 알지도 못하면서들…》

그러자 격자직모자를 삐딱하니 눌러쓴 애젊은 총각 하나가 익살스럽게 제꺽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이야요. 아, 우리 반장동지가 어련히 생각하구 책임져주겠는데 괜히들 밑에서 윽윽거리거던요, 알지두 못하면서들!》

그 말에 잦아들었던 웃음이 또다시 터져올랐다.

영순은 삽을 땅에 쿡 박고 허리에 손을 얹으며 소리쳤다.

《명준이! 아첨을 해두 똑바루 하라! 이건 올리추는지 내리깎는지 알겠어? 슬슬 흉내를 내면서 말이야!》

《옛! 고치겠습니다.》

약이 올라 퍼붓는 욕설에도, 그것을 접수하는 깍듯한 대답소리에도 다같이 웃음이 배여있었다.

준석은 농장원들속에서 오가는 롱담들을 재미있게 듣다가 방금 명준이라고 불리운 애숭이청년에게 다가가 슬그머니 질통끈을 벗겨냈다.

《힘들지? 내 좀 져보자구.》

《아니, 저…》

《쉿!》

준석은 얼른 손가락을 입술에 세워보이고 눈을 끔뻑했다. 그리고는 시침을 뚝 따고 영순이 못 보는새 다가가 등을 돌려댔다.

미처 준석을 알아보지 못한 영순은 걸싸게 부식토를 퍼서 털썩털썩 질통안에 쏟아넣으며 으름장을 놓았다.

《혼 좀 나보라. 올리추는척 하면서 반장을 놀려? 어때? 무겁지?》

질통만 보고 명준인줄 알았는데 대답은 왕청같은데서 날아온다.

《헤헤… 누구보고 욕해요? 명준이 여기 있는데?》

《엉?》

그제야 눈이 동그래서 머리를 쳐든 영순은 벌써 부식토를 쏟고 돌아서는 준석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쳤다.

《어마나, 위원장동지였군요.》

《2작업반이 모판준비에 앞장섰다구 해서 왔소. 자, 또 담으라구.》

준석은 서글서글한 웃음을 지으며 질통을 돌려댔다.

《야! 그만두십시오.》

《왜 그러오? 나도 한공수 하자는건데, 어서!》

영순은 어쩔수없이 부식토를 담아주었다.

길옆에 부리워놓은 부식토를 모판자리마다 일정하게 날라다쌓는 일이 끝나자 농장원들은 활창대감을 하러 떠났다.

《활창대감은 어디서 해오나?》

《봉황산에 참나무가 가득하지 않아요?》

《참나무가지가 그렇게 탄력이 있던가?》

《그럼요, 활창대뿐인줄 아세요? 좀 굵은 아지는 지주목으로 쓰구 가는건 산자감으로 좋답니다, 땔나무는 물론이구… 어쨌든 영농자재로 요긴하게 쓰이군 하지요 뭐.》

《음, 우리 선봉리야 산을 끼고있으니 산을 잘 리용해야지.》

준석과 영순은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으면서 모판자리들을 돌아보았다.

준석은 무릎을 꺾고앉아 검스레한 부식토를 한줌 쥐여 비벼보고는 코밑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며 말했다.

《두엄냄새가 참 좋구만.》

영순은 믿어지지 않는듯 곱게 눈을 흘겼다.

《정말 그렇게 좋아요? 도시에서 향수냄새만 맡다 온 오빠가 아무렴?…》

《물은 목마른 사람에게 단 법이라구 진짜농사군이 아니면 이 썩은 흙내가 얼마나 구수한지 그 진미를 알수가 없지. 난 지금 어떻게 하면 질좋은 거름을 더 많이 낼수 있을가 하는 생각뿐이다.》

《그래서 오자부터 진거름달구지를 포치했군요.》

《봄갈이전에 조금이라도 땅을 걸구고싶어 그러는데 욕망대로 되겠는지?》

《걱정마세요, 오빠! 제가 앞채를 메고 달리겠으니. 우린 벌써 사업조직이 다됐거던요.》

《뭐? 그게 정말이냐?》

준석은 저도 모르게 놀라 부르짖고는 감탄과 믿음에 찬 눈빛으로 영순을 마주보았다.

《과시 〈욕심반장〉이로구나. 그러찮아도 내 지금 영순이한테 중요한 과업을 맡기자고 왔는데.》

《뭔데요?》

《며칠후에 군적인 씨뿌리기방식상학을 우리 농장에서 해야겠는데 2반에서 맡아주어야겠다. 나와보니 꽤 해냄직한데 어떠냐?》

《방식상학? 그러니까 우리 작업반이 군적인 본보기단위가 된다 그 말이지요?》

영순은 흥분하여 웨치듯 물었다.

《그럼, 작업반을 통해서 우리 선봉리가 군의 본보기가 되여야 하며 될수 있다는것을 보여주자는거다. 참관자들만이 아니라 우리 농장원들자신이 그러한 자각과 신심을 가지게 말이다. 그러자면 영순이가 이번 씨뿌리기작업을 최상의 수준에서 보여주어야 한다, 모든 공정을 최상의 수준에서!》

준석은 강조하듯 이렇게 곱씹었다.

《알겠어요. 제 꼭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해내겠어요.》

영순은 야심만만하게 대답하고 입술을 꼭 오무려 다물었다. 숯불처럼 타는 그의 쌍겹눈이 곧추 앞을 겨누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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